언내추럴

소년 2020. 1. 22. 12:49


 나는 한국인이지만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항상 썸과 밀당이 있고, 연애라는 카테고리를 제외하면 드라마가 이어지지 않는 느낌이다. 드라마는 예술을 표현하는 작품의 일종이다. 한국은 이것에 막장까지 붙여 버린다. 뜬금없는 전개로 개연성을 무시한 채 작품의 끝을 내버리는 드라마는 막장이라는 단어로 포장되고 그렇게 성의없이 완성된 드라마는 막장 드라마라는 하나의 콘텐츠가 되어 대중들에게 전달된다. 그런데 그마저도 대중들은 그것이 재미랍시고 소비하고 즐긴다.

 

 반면, 일본 드라마는 그렇지 않다. 나의 취향에 맞지 않거나 재미없는 드라마는 있을지언정 최소 막장은 없다. 그것은 내가 일본 드라마를 소비하는 이유가 된다. <고쿠센>, <마이보스 마이히어로>는 코미디 학원물로 드라마의 장르에 집중하며 확실한 웃음을 보장한다. 그리고 일본 드라마의 특징인 교훈까지 확실하게 전달한다. 휴머니즘 스토리텔링의 <야마다 타로 이야기>, 사람을 향해 좋아하는 감정을 섬세하게 풀어내고 있는 멜로 드라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적어도 내가 보았던 일본 드라마만큼은 어느 것 하나 갑작스럽거나 뜬금없는 전개로 이어지는 드라마가 없었다. 모두 교훈을 담고 있었고 장르에 충실했고 스토리가 탄탄했다.

 

 그 때문인지 나는 일본 드라마에 기대하고 있는 어느 정도의 눈높이가 있었다. <언내추럴>은 그 눈높이를 극대치로 높여 주었다. 지난 도쿄 여행 때, 나는 여행메이트였던 후권이로부터 요네즈 켄시의 ‘LEMON’이라는 노래를 소개받았다. ‘LEMON’은 유튜브에서 5억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고,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은 모두 아는 유명한 노래였다. 이어 나는 ‘LEMON’이 드라마 <언내추럴>OST임을 알게 되는데 이것은 나의 <언내추럴> 정주행의 시작이 된다.

 

 <언내추럴>은 법의학 수사 드라마로 전반적으로 회색 색감을 연상케 하는 어두운 드라마다. 부자연스러운 사인의 죽음을 가진 시체는 이 드라마 속의 주 배경이 되는 UDI라보 연구소로 이송되며 UDI라보에 소속되어 있는 법의학자들은 시체를 부검하며 시체의 부자연스러운 죽음의 진상을 규명한다. 그 과정 속에 외면할 수 없는 사회적 현실(바이러스의 전파, 학교 내 10대들의 집단 따돌림, 부부 살인, 직장 내 초과근무, 여성 차별 등)을 담담하게 풀어내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물음표를 던진다. 이 물음표에 대한 공허함과 먹먹함이 깊어지자 나는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흘린 눈물이 여섯 번이 넘는다. 무거운 가삿말이 특징인 OST, 요네즈 켄시의 ‘LEMON’이 재생되는 순간도 눈물샘이 열리는 시점에 한 몫을 했다.

 

 또, <언내추럴>은 일본 드라마 특유의 오버스러운 연기가 전혀 없다. 일본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주인공들의 연기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라 단언한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실제와 연기를 혼동할 수 없을 정도로 법의학에 집중하며 극 속에서 벌어지는 안타까운 상황에 분개하거나 속상해한다. 이사하라 사토미. 그녀의 연기력과 배역에 녹아드는 집중력. 그리고 <언내추럴>의 출연을 결정했을 캐스팅 수락의 안목까지 감히 박수쳐 본다. 그녀는 천재다.

 

 그리고 부검을 하는 과정에서, 사건의 진상을 다시 파악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생물학적 용어들이 <언내추럴>을 더욱 집중하게 한다. 사실 일반인들은 뭐가 뭔지도 모를 용어들이지만 그 용어들을 침착하게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연구하는 과정이 <언내추럴>의 수준이, 더 나아가서는 일본 드라마의 수준이 이렇게까지나 높아졌나 싶을 정도의 극찬을 나오게 한다.

 

 UDI 라보 연구소에 각자의 사연을 지니고 있는 캐릭터의 콘셉트마저도 성공적이다. 콘셉트 속에 들어있는 복선을 잘 활용하며 동료애에 대한 내용을 잘 풀어낸다. 이들의 동료애가 특별한 이유는 이들이 법의학자들이기 때문이다. 법의학자는 시체의 왜곡된 죽음을 사실대로 규명해야 하며, 이들에게 모든 심정을 걸고 있는 유가족들에게 앞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찾아 알려주어야 하기 때문에 책임의 무게가 유독 무겁다. 왜 이 시체는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을까. 절망적인 질문에 마침표를 내야 하는 법의학자. 그 속에서도 절망할 시간이 있으면 맛있는 거 먹고 잘래.” 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미스미 선생(이사하라 사토미)의 캐릭터는 호감도를 더욱 이끌어 냈다.

 

 <언내추럴>을 보고 듣는 ‘LEMON’이 확실히 다르다. 나는 사람들에게 그 차이를 전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LEMON’을 추천해 준 후권이에게 <언내추럴>의 시청을 적극 추천했다. 2020년이 지나기 전에 <언내추럴>을 뛰어넘는 일본 드라마를 접할 수 있을까 싶다.



Posted by choi0wan
,



2019.08.11

D+10

짠내투어


브루나이에서의 메인 일정이었던 울루 템부롱 정글투어가 끝나니

일정에 대한 부담감이 사르르 녹아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나 울루 템부롱 정글투어가 브루나이의 메인 일정이 될 수는 있어도

브루나이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전세계에 딱 두 곳밖에 없다는 7성급 호텔!

(국제적으로 호텔은 최대 5성급까지로만 구분하고 있음. 7성급은 일종의 마케팅을 위한 용법.)


하나는 모두가 알고 있는,

가 본 적은 없어도 외관은 너무나 익숙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두바이의 버즈 알 아랍 호텔.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더 엠파이어 호텔이라는 곳인데 그 호텔이 바로 브루나이에 있다.


여행 전, 사실은 더 엠파이어 호텔을 두고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언제 다시 올 지 모르는 브루나이에 기왕 가는 거, 더 엠파이어 호텔에서 하룻밤이라도 묵을까.

아니면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서 투숙하진 못해도 구경만이라도 하며 대리만족을 할까.


끝내 나는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는 쪽으로 결정을 지었지만

막상 7성급 호텔을 무시하고 브루나이를 떠나자니 아무래도 성이 차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더 엠파이어 호텔에 가기로 했다.


더 엠파이어 호텔에서 할 수 있는 활동거리를 찾아보는 도중,

딱 두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수영장과 애프터눈티.


그러나 수영장은 이미 코타키나발루에 있을 때 다녀왔기 때문에 스킵하고

애프터눈티를 먹으며 호텔 전경을 눈에 담을 수 있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더 엠파이어 호텔의 애프터눈티는 한화 약 2만 원의 가격으로

샌드위치와 케이크, 스콘과 같은 디저트와 커피, 차를 무한리필로 즐길 수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을 해 보니

애프터눈티는 평일과 주말을 불문하고 매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호텔 로비에서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더 엠파이어 호텔의 [Dining] 탭을 클릭하면 [Lobby Lounge] 항목에 애프터눈티와 관련한 설명을 읽을 수 있다.


The perfect place to unwind with a selection of refreshments throughout the day and traditional English High Tea in the afternoon.

On weekends a tempting high tea buffet with mouth watering pastries and cakes are featured.

Take-away cakes and bread may also be ordered through the Lobby Lounge.


하루 종일 다양한 다과와 오후의 전통적인 잉글리쉬 티와 함께 ​​휴식을 취하기에 완벽한 장소입니다.

주말에는 입에 물을 바르는 패스트리와 케이크가 담긴 유혹적인 차 뷔페가 제공됩니다.

테이크 아웃 케이크와 빵도 로비 라운지를 통해 주문할 수 있습니다.


Operating Hours:

Daily Afternoon Tea from 2 pm to 6 pm


운영 시간:

오후 2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일 애프터눈티

 

Reservation:
Please call 241 8888 ext. 75008


예약 :
241 8888 내선으로 전화하십시오. 75008


현재 시각 오전 10시.


내가 투숙하고 있는 하이어 호텔에서 더 엠파이어 호텔까지는

걸어서 4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에 위치하고 있지만 차를 타고 가면 25분만에 도착할 수 있다.


나는 걸어서 가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두 가지의 선택지 중 하나를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무모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 실감하지만

이 때는 물가가 비싸다는 싱가포르에서의 일정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어차피 시간 남고, 어차피 할 게 없는 브루나이에서 사소한 풍경 한 장면이라도

더 눈에 담고자 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걸어서 더 엠파이어 호텔까지 가기로 했다.


먼저 호텔 1층에 있는 식당에서 철판덮밥으로 아침을 해결한 후

짠내를 풀풀 풍기며 4시간이나 걸리는 호텔로의 여정을 출발했다.


 


호텔을 떠난지 정확히 10분 만에 나는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에 땀범벅이 되고 말았다.

앞으로 3시간 50분이나 걸어야 하는데 벌써부터 선크림이 땀에 녹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더 엠파이어 호텔로 향하면서 가동 야시장을 지나가게 됐는데

엊그제 정신없이 팬케이크와 파파존 버거를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 한 40분 정도를 걸었을 때,

땀을 뻘뻘 흘리며 차도 끝자락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나를 보고 한 경찰관이 나를 보고 손짓했다.

태국에서도 바이크를 타다가 경찰에 적발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브루나이에서 경찰에 적발되고 말았다.



아무래도 외국인 혼자 텅 빈 차도 위를 혼자서 걸어가는 모습이

평범하게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니 경찰관은 나를 향해 국적을 물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

(경찰)


“나는 한국에서 왔어.

(영완)


“(땀을 흘리는 나를 보고) 괜찮아?

(경찰)


“매우 더워. 그러나 괜찮아.

(영완)


“대체 어디에 가는 거야?

(경찰)


“나는 더 엠파이어 호텔로 가고 있어.

(영완)


“걸어서?

(경찰)


“응. 걸어서 갈 거야.

(영완)


“그럼 이 길을 쭉 따라서 가다가 큰 길이 나오면 우회전을 해.

그러면 더 엠파이어 호텔로 갈 수 있어.

(경찰)


“......?????

(영완)


“좋은 여행이 되기를.

(경찰)


“...고마워.

(영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대화가 흘렀다.

경찰은 차가 빠르게 달리는 차도 위를 무방비 상태로 걸어다니면 위험하다는 경고나

날씨가 더우니 다트를 불러서 차량을 통해 이동하라는 조치도 없이

걸어서 3시간 여정을 걸어야 하는 나의 여정을 오히려 응원해주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물이라도 한 잔 얻어먹고 나올 걸 그랬다.

그래도 골치아픈 상황에 연루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며 마저 호텔로 향하기로 했다.


그렇게 10분 가량을 더 걸었을 즈음, 눈 앞에 쇼핑몰 건물이 보였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에어컨 바람을 쐬며 쉬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데

매정하게도 쇼핑몰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쇼핑몰 주변에 최대한 햇빛이 비치지 않는 바닥에 주저앉아 체력을 보충했다.


 


그런데 이 더위 속에서 계속 걸어서 가다보면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짠내는 여기까지만 풍기기로 결정했다.

간단하게 간식을 먹으며 배를 채운 후 그냥 다트로 차량을 불러 편하게 엠파이어 호텔까지 가기로 했다.


 


나는 쇼핑몰 주변에 있던 한 슈퍼에서 오렌지 크림빵과 콜라를 사서 먹은 후

사람 한 명 없는 쇼핑몰 바닥에 주저앉아 유유자적 시간을 흘려보냈다.


더위로 나간 멘탈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할 때, 나는 다트를 실행해서 차량을 불렀다.

그런데 콜을 받고 온 다트 운전자가 아침에 내가 호텔 1층 식당에서 철판덮밥을 먹을 때

바로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남자였던 것이다.


심지어 기사님이 나를 먼저 알아봐 주었다.

나는 속사포처럼 미치고 무모했던 나의 여정기를 들려주며 엠파이어 호텔로 가 달라고 말했다.



기사님은 호탕하게 웃으면시 엠파이어 호텔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리니

에어컨 바람을 쐬며 잠깐 눈이라도 붙이라며 나를 편하게 대해 주셨다.



 드디어 더 엠파이어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의 로비는 호화로운 느낌보다 고즈넉한 느낌이 더 강했다.



그냥 보았으면 몰랐겠지만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모든 금색이 실제 금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더 엠파이어 호텔 안에 있는 내 자신이 괜히 주눅이 들었다.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있는 프론트 직원의 도움으로

애프터눈티 로비에서 나는 애프터눈티 입장을 문의했다.


 



현재 시각 오후 1시 50분


“애프터눈티 입장을 하고 싶어요.

(영완)


“예약을 하셨나요?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아니요. 예약은 하지 않았어요. 2시부터 애프터눈티 타임이 열린다고 해서 왔어요.

(영완)


“이 호텔에서 투숙하고 있나요?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아니요.

(영완)


“몇 분이시죠?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저 혼자에요.

(영완)


“우선 지금 바로는 입장할 수 없어요. 예약이 다 차 있어요.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당황) 네??

(영완)


“오후 2시와 3시까지 모든 예약이 다 차 있어요.

만약, 이용을 원하시면 오후 4시부터 예약을 도와드릴 수 있어요.”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저 한 명인데... 어떻게 지금 바로는 안 될까요...?

(영완)


“죄송합니다. 현재로서는 모든 테이블이 다 예약석이에요.

그래서 예약은 4시부터 도와드릴 수 있어요. 예약을 진행해 드릴까요?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네, 일단 그렇게 해 주세요.

(영완)


“혹시 이 호텔에 계속 계실 건가요?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네.

(영완)


“혹시 지금 사용하는 핸드폰으로 브루나이 현지 전화를 할 수 있나요?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네.

(영완)


“전화번호를 알려주시겠어요?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로비 직원이 나의 전화번호를 예약자 명단에 기재함)


“만약 4시보다 빠른 시간에 빈 테이블이 생긴다면 제가 바로 전화를 드릴게요.

그러면 바로 이 로비로 와 주세요.”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진짜요?? 감사합니다.

(영완)


애프터눈티 테이블로 바로 입장할 수는 없었지만 이것도 어떻게 보면 괜찮게 전개된 상황이라 생각되었다.

덕분에 나는 여유있게 호텔 곳곳을 누비며 7성급 호텔의 뷰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애프터눈티는 식사가 아닌 디저트 개념이기 때문에 4시가 되기 전에 전화가 올 거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게 예약을 마친 나는 호텔 밖으로 나가 야외 수영장과 해변가를 걸어다녔다.


 

 


잔잔한 파도소리와 소리없이 얌전한 리조트.

전세를 낸 기분이라는 게 이런 기분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이 여유로운 감성을 파괴하는 것은 바로 더위였다.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 한 시간을 걸어오며 누적된 피로가 아직 완전히 가시지는 않아서

더이상 호텔 곳곳을 누비는 건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바다와 제일 가까운 벤치로 가서 드러누워 낮잠을 잤다.



그러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바로 애프터눈티 로비에서 걸려온 전화였으며

빈 테이블이 생겼으니 지금 바로 로비로 오라는 전화였다.


시간은 오후 3시밖에 되지 않았다.

기존 예약 시간보다 1시간이나 빨리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정말 좋았다.


 


테이블에 자리를 잡자 웨이터 분께서 잔에 스파클링 포도주스를 따라 주셨다.

이 스파클링 포도주스도 무한리필이며 잔이 비면 홀에 있는 웨이터 분들이 알아서 주스를 새로 따라 주신다.

톡 쏘는 자극적인 탄산은 아니었지만 시원했던 짙은 과일맛이 묘하게 중독성 있었다.

나는 커피와 차도 몇 번이나 다른 메뉴로 리필을 해서 마셨지만

그 어떤 음료보다도 나는 이 스파클링 포도주스가 제일 맛있었다.


몇 병 사서 한국으로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있었다.


 

 


기본 : 스파클링 포도주스

차 :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다즐링, 얼그레이, 캐모마일, 그린, 자스민, 페퍼민트

커피 :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카푸치노, 에스프레소


*주황색으로 색칠된 글씨가 리필할 때마다 주문했던 음료입니다.


먼저 디저트에 대한 얘기부터 하자면 디저트는 단연 케이크 종류(3층 접시)가 최고였다.

태어나서 이렇게 부드러운 케익 시트와 크림은 처음이었다.

3층 접시에 있던 케이크들은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모든 조각케이크가 입 안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았다.


그 탓인지 샌드위치 종류(2층 접시)가 평범하게 느껴졌고

스콘(1층 접시)은 전반적으로 퍽퍽해서 자주 손이 가는 맛은 아니었다.


그리고 차는 페퍼민트 차가 정말 맛있었다.

맛있었다는 표현보다는 깔끔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지도 모르겠다.

향긋하고 깨끗한 향이 입 안에 감돌 때의 그 시원한 느낌이 지금도 인상적이다.

계속되는 디저트 먹방에 입이 조금씩 물리는 느낌이 들 때 모금씩 마시면 금세 입이 개운해졌다.


한 가지 팁을 전하자면 음료를 리필할 때(스파클링 포도주스 제외)는

미리 리필을 주문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음료를 만드는 데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라 잔이 비었을 때 음료를 새로 리필 주문하면

디저트를 먹다가 느낄 갈증의 타이밍이 음료가 나올 때까지의 타이밍과 안 맞을 수 있다.



디저트를 먹으며 차를 마시는 데 로비 한 켠에서 피아노 연주와 한 소녀의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포함한 많은 관객들이 찬사를 보내는 공연이었다.


생각해보니 아이가 주인공인 공연을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무리 기억을 되새겨 봐도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니 아이가 주인공인 공연은 브루나이에서 본 것이 처음같았다.


소녀의 목소리와 음색은 정말 청아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피아노 선율도 무척 감미로웠다.


음악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았던 순간.


더 엠파이어 호텔에서의 애프터눈티가 더욱 특별한 이유다.


더 엠파이어 호텔 애프터눈티(디저트, 음료 무한리필) [1인] 24.2브루나이달러 (약 21,000원) / 2019.08 기준

싱가포르달러와 1:1 통용되어 싱가포르 달러로도 구입 가능(거스름돈은 브루나이 달러)



그렇게 배부르게 디저트 먹방을 끝내고 나는 하이어 호텔로 돌아갔다.

하이어 호텔로 다시 돌아갈 때는 처음부터 깔끔하게 다트를 이용해서 갔다.


 


하이어 호텔의 방으로 돌아온 나는 쉬는 시간을 가지며 해가 질 때를 기다렸다.

해가 지면 나는 엊그제 미처 보지 못했던 술탄 모스크의 야경을 보러 갈 것이다.


 

 


모스크의 야경을 보러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섰는데

해가 지는 하늘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계 3대 선셋을 볼 수 있다는 코타키나발루에서 본 하늘보다 훨씬 예뻤다.

짧은 시간마다 변하는 하늘의 모습이 신기해서 몇 걸음 걷다가 뒤돌아 하늘보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아예 뒤로 걸어가면서 하늘을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보정 하나 하지 않은 사진인데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황홀한 풍경에 넋이 나가 모스크로 가는 길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모스크에 도착하니 어느새 하늘은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고풍스럽게 빛을 내뿜는 술탄 모스크의 모습은 무척 위엄있어 보였다.


 


코타키나발루의 시티 모스크에 갔을 때 가장 아쉬웠던 것이

강에 모스크의 모습이 선명하게 비춰지지 않은 것이었다.


블로그나 사진에서 보았던 것처럼 강에 비춰진 모스크의 모습이 꼭 보고 싶었는데

그 소원은 브루나이에서 이룰 수 있었다.

황금색의 술탄 모스크가 어둠이 내린 강에 그대로 비추어져

데칼코마니와 같은 모습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으며 주변에 있던 모든 관광객들은 홀린 듯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이 곳에서 나와 같은 혼자 브루나이에 온 필리핀 남자 관광객을 만났다.

우리는 서로의 포토그래퍼가 되어 주며 사진을 찍어 주었고 많은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는 JTBC에서 방영된 드라마 <미스티>를 굉장히 재밌게 보았다며

한국 드라마에 대한 호평을 아끼지 않았는데

내가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원활하게 대화를 이어가기가 어려웠다.


그렇지만 만나는 외국인 관광객마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호의적이며

물어보지도 않은 한국 드라마와 K-POP 가수들을 언급하는 걸 보면서

내 나라 한국의 위상이 결코 낮지 않다는 것을 여러번 실감할 수 있었다.



술탄 모스크의 야경은 아름답다는 느낌보다

몽환적이고 신비스러운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그만큼 이슬람은 낯설고 신기했다.


모스크 주변을 돌아다니는데 스피커 방송으로 기도문을 읊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모스크의 위엄과 압도가 한층 더 강해지는 순간이었다.


 


술탄 모스크의 야경을 다 보고 호텔로 돌아온 나는 빨래를 돌리러 코인빨래방으로 갔다.

코인빨래방은 하이어 호텔의 로비 옆에 있으며 늦은 시간까지도 이용할 수 있다.


다음 날 아침이 아닌 이 날의 늦은 밤에 굳이 빨래를 돌린 이유는

싱가포르로 출국하기까지는 앞으로 이틀밖에 남지 않았는데

혹시라도 빨래가 다 마르지 않을 우려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부지런히 움직여서 여유롭게 빨래를 말리고 싶었다.

.

 

 


하이어 호텔 셀프 코인빨래방(14KG, 건조기능 선택X) [1회] 4브루나이달러 (약 3,500원) / 2019.08 기준

환급기에 금액을 넣은 후 환급받은 코인을 세탁기에 투입하면 세탁기가 작동됨(세제는 자동으로 나옴)


코인빨래방의 TV 모니터에 나오던 <겨울왕국>을 보며 빨래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엘사의 노래를 듣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세탁이 끝난 빨래를 들고 방으로 돌아오니 옷걸이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방 밖의 복도 난간에 널어 놓자니 불안해서

방 곳곳을 물색하며 옷을 걸 수 있을만한 모든 곳에 세탁물을 널어놓았다.

그러다 보니 안전고리에도 바지를 널게 되었다.


정말 열악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브루나이에서의 하루는 또 한 번 저물었고

그렇게 나는 또 새로운 하루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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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0

D+9

정글에서의 초대


정글 투어 당일,


미러리스 카메라를 들고 투어에 참가하면 일정 소화가 불편할 것 같아서 카메라는 호텔에 놓고 정글로 향했습니다.

또, 눈으로 담고 싶었던 장면들이 많았던 만큼 사진 촬영에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에피소드에 비해 사진들이 다소 부족합니다. 이로 인해 가독성이 떨어질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화창한 토요일 아침,

오늘 나의 일정이 정글로 가는 것을 하늘은 예견이라도 했는지

전날과 달리 무척이나 파랗고 많은 뭉게구름을 보였다.


나는 전날 가동 야시장에서 먹다 남긴 팬케이크와 펩시 콜라로 아침식사를 대신해서 때웠고

픽업 시간보다 10분 빨리 호텔 로비로 내려와 픽업 차량을 기다렸다.


 


그러나 픽업 차량은 오지 않았다.


게다가 시간은 7시 30분을 서서히 넘기고 있었다.

7시 15분까지 하이어 호텔 로비로 데리러 오겠다는 메시지를 받았음에도

로비 앞으로는 어떤 차량도 도착해있지 않았다.


서서히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찰나,

한 대의 대형버스가 도착했다.


그런데, 이 버스는 단체 중국인들을 태우는 버스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버스에서 내리는 중국인 가이드에게

나의 픽업 메시지를 보여주며 목적지를 물었다.


그 순간, 나보다 호텔 로비에 먼저 나와있던 히잡을 쓴 여성이

나와 중국인 가이드의 쪽으로 오더니 픽업 메시지를 확인해 주었다.


그러더니 그녀가 말했다.

 

Follow me. It was you.(나를 따라오면 돼요. 계속 로비 앞에 있었던 너였구나.)


히잡을 쓰고 있던 이 여성이 바로 나의 픽업 담당 가이드였던 것이었다.

그 순간, 픽업 차량이 호텔 로비 앞에 도착했고 나는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울루 템부롱 국립공원으로 가는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버스에는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두 명의 남자 관광객만이 앉아 있었다.


쭈뼛쭈뼛 눈인사를 하며 빈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찰나,

남자 관광객들이 나에게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아닌 진짜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브루나이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이 투어는 사전에 여행사를 통해 예약한 것이 아닌,

현지에서 예약을 한 브루나이 관광객(국적 불문)들로만 구성된 투어였기 때문에

한국인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은 더욱 희박했다.


한국인 형들과 나를 태운 버스는

또다른 투어 참가자들을 태우기 위해 다음 호텔로 향했다.


버스는 그 곳에서 여섯 명의 참가자들을 더 태웠고,

가이드는 이렇게 모인 총 아홉 명의 참가자가 

오늘 울루 템부롱 정글투어를 함께할 인원들이라고 하셨다.


브루나이 현지에서 울루 템부롱 정글투어를 저렴하게 예약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브루나이②] 브루나이 페리 탑승기와 울루 템부롱 정글투어 현지 예약 방법 을 정독해주세요.

(위 타이틀을 클릭하면 해당 게시글이 새 창으로 띄워집니다.)


 


버스는 스피드 보트를 탈 수 있는 선착장에 참가자들을 내려 주었다.


이제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 곳에서 스피드 보트를 타고 템부롱 지역에 도착한 후,

버스와 롱 보트를 한 번씩 더 타야 울루 템부롱 국립공원에 도착할 수 있다.

(스피드 보트에 탑승하는 순간부터 픽업 담당 가이드와는 헤어지게 된다.)



스피드 보트를 타며 템부롱으로 가는 도중에는 말레이시아의 국경을 넘나들기 때문에

비행기가 착륙했을 때 받아볼 수 있는 입국 문자도 자동으로 수신된다.


 


왼쪽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스피드 보트는

좌측의 브루나이와 우측의 말레이시아의 경계가 되는 강을 넘나들며 템부롱으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국경에 들어왔기 때문에 로밍을 할 수 있다는 문자메시지도 받아볼 수 있다.



50분 가량 스피드 보트를 타고 도착한 템부롱.

보트 안에서 꿀잠을 잔 덕분에 개운한 발걸음으로 보트에서 내릴 수 있었다.


템부롱에 도착하니 정글 투어 담당 가이드들이 참가자들을 맞이해 주었다.

가이드들은 본격적인 정글 투어 시작 전, 참가자들을 데리고 조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으로 향하는 내내 문명과 인간의 위대함에 감탄했다.


템부롱에 오기 위해선 스피드 보트를 통해서만 올 수 있는데,

과거에는 대체 어떠한 교통 수단을 통해 이 곳에 사람들이 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과

이 곳에 있는 차량 정비소, 식당 등에서 필요한 자원들은

도대체 어떻게 조달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끊이지 않았다.


템부롱에 오는 길이 험난해서였는지

나는 템부롱을 거니는 내내 이 곳을 아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어느 시골마을처럼 여겼다.


 

 


조식은 페스츄리 빵과 콜라(음료 선택 가능)였다.

소스는 왼쪽에 있는 하얀 소스가 제일 맛있었고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제일 인기가 좋았다.

연유 맛이 나는 달콤한 맛의 소스였는데 페스츄리와 궁합이 제일 잘 맞았다.


조식을 처음 받았을 때, 다소 빈약해 보여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데

먹다 보니 맛도 있었고 은근히 배가 금방 차서

나를 포함한 한국인 형들, 그리고 여섯 명의 외국인 참가자들까지 모두 맛있게 먹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가이드는 모든 참가자들에게 생수병을 하나씩 나눠 주었다.

이제 롱 보트를 타고 정글까지 가야 한다.

롱 보트의 최대 탑승 인원은 3~4명인데 가이드는 이 날 참가자 수가 총 9명이었기 때문에

3명씩 팀원을 구성해서 보트에 탑승하라고 했다.


나는 주저없이 2명의 한국인 형들과 함께 보트를 타기로 했고,

형들도 내게 함께 보트를 타고 정글까지 들어가자고 해 주셨다.



롱 보트의 뒤에서는 기사님이 열심히 시동을 걸어 보트를 운전해 주시고,

앞에서는 조수가 강의 수심이 얕아지는 곳에서 열심히 작대기를 이용하여 돌을 치워준다.

작대기로도 돌이 움직이지 않을 때는 보트에서 내려 손수 보트를 끌기도 했다.


보트 앞에서 열심히 작대기를 저으며 돌을 치우는 조수를 보고 있으니

편하게 앉아서 가는 내가 괜히 미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또 한 번 보트를 50분 가량 탔다.

보트를 타는 내내 보이던 템부롱의 자연 경관은 나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한국에서 본 적 없는 이름 모를 새들이 눈 앞에서 날아다니고

하늘과 숲, 그리고 강. 오로지 자연만을 상징하는 매체들이

눈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오늘의 날씨가 맑아서, 템부롱에서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보트를 타는 내내 또 한 번 들었던 생각은

이렇게까지 깊이 숨어있는 이 공간은 도대체 누구에 의해 발견됐으며,

그 옛날에는 어떤 수단을 통해서 이 곳까지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


그렇게 템부롱에 대한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어느새 보트는 울루 템부롱 국립공원 앞에 도착해 있었다.



브루나이에서 만나는 한국어 인사말. 어서오세요.’

정글이라는 신비한 곳에서 읽게 되니 더욱 반가웠다.



보트에서 내리자 가이드들은 방문 기념 방명록을 작성해달라고 하셨다.

방명록에는 이름과 국적, 나이를 기재하는 공간이 있었다.


Yeongwan Choi, Korea, 22


혹시나 해서 방명록을 한 장 앞으로 들춰 봤는데 내가 제일 어린 나이였다.

괜히 자부심이 흘러넘치는 순간이었다.


 


방명록을 적고 나면 본격적인 정글 트레킹이 시작된다.

참가자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라는 부심이 생긴 나는 정글 완주에 대한 의욕을 안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트레킹 코스는 생각만큼 힘들지 않았다.


트레킹 계단을 한 번에 올라가지 않고

중간에 쉬어갈 수 있는 정자를 네 번이나 들리며 올라가기 때문에 체력적인 부담이 적다.


솔직히 나는 정자를 네 번씩이나 들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같이 동행했던 한국인 형들은 정자가 나오면 땀에 젖은 손수건을 쥐어 짜가며 휴식을 가졌고,

일부 외국인 참가자들은 뒤처지기까지 해서 팀이 나누어지기도 했다.


정자에서 쉴 때마다 제일 쌩쌩하던 나를 향해 가이드가 나이를 물었다.

스물 둘이라고 하자 가이드는 스물 하나라며 더 밝게 나를 대해 주었다.

또래 나이대의 참가자를 만나서인지 나도 가이드도 서로가 지치지 않아 하며 트레킹을 할 수 있었다.


그 때, 동행하던 한국인 형 중 한 분이 말을 꺼냈다.


올라가는 것도 올라가는 건데 내려올 땐 어떡하냐. 무릎 나갈 거 같은..”


그래도 올라갈 때보단 내려갈 때가 훨씬 부담이 덜하지 않겠냐고 말하자 한국인 형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어려서 그래. 어려서. 라고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막내 취급에 기분이 좋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트레킹 코스는 힘들지 않았습니다...)


 

 


트레킹을 하다 보면 어릴 적 만화에서나 보던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이 외나무다리는 안전상의 이유로 한 번에 다섯 명 이상 건널 수가 없다.


나는 제일 먼저 다리를 건너게 되었는데 다리를 건널 때는 정말 무서웠다.

그래도 최대한 아찔한 순간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살짝쿵 다리의 옆과 밑을 보았지만

핸드폰을 떨어뜨릴 것만 같아 경직된 표정으로 침착하고 빠르게 앞만 보며 걸어갔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트레킹 계단과 외나무다리를 건너다 보니

어느새 정글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캐노피 타워 가까이까지 와 있었다.


목적지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가이드의 안내에

더 의욕이 샘솟았던 나는 빠르게 계단을 올라 캐노피 타워 앞에 도착했다.



그렇게 나와 한국인 형들은 캐노피 타워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캐노피 타워도 외나무다리처럼 안전상의 문제로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이 오를 수가 없어서

가이드는 한 사람 당 3층의 간격으로 오를 것을 권장했다.


먼저 광주에 사는 형이 선두로 캐노피 타워를 오르고,

그 다음이 나, 그리고 그 뒤로 가양동에 사는 형이 오르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캐노피 타워를 오르기 시작하는데

손잡이 기둥을 잡고 올라갈 때마다 캐노피 타워는 삐그덕 소리를 내며 조금씩 흔들렸다.

(무너질 것 같은 불안한 소리와 들림이 아닌 캐노피 타워가 전체적으로 힘을 받고 있는 듯한 소리와 흔들림이었습니다.

캐노피 타워는 절대적으로 안전하게 지어진 철탑입니다.)


형들과 나는 계속해서 비명 아닌 비명을 지르며 캐노피 타워를 올랐다.

나는 최대한 두려움을 벗어내고자 타워 밑을 보려하지 않고 바로 눈 앞에 보이는

계단만을 주시하며 성큼성큼 타워를 올랐다.


그 때, 빠른 속도로 올라온 나와 같은 층에서 만난 광주 형이

나에게 선두 자리를 내어 주시며 먼저 올라가라고 하셨다.



캐노피 타워 위에 올라서서 보이는 전경은 압권이었다.

울창하게 자란 밀림 나무들은 브로콜리처럼 빼곡하게 숲속을 채우고 있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데다가 새가 맑게 지저귀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하늘과 숲만 보면서 새 소리를 들은 경험은 생애 처음이었다.

감탄사 이외에는 그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숲 속에 나 홀로 우뚝 선 느낌, 대자연의 중앙에 놓여진 느낌,

외국이라는 개념을 떠나 다른 세상 위에 혼자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캐노피 타워는 1번부터 5번까지 있는데, 1번, 4번, 5번의 뷰가 제일 훌륭하다.

실제로 가이드도 1번, 4번, 5번의 뷰를 추천해주신다.







원래는 나도 로이킴과 에디킴, 박재정처럼 우정여행으로 브루나이에 오고 싶었던지라

혼자서 정글 투어를 오게 된 게 내심 아쉬웠는데

정말 운이 좋게 두 명의 한국인 형들을 만날 수 있어 <배틀트립>의 에로박처럼

3인 1조로 울루 템부롱 정글투어를 완주할 수 있었다.

덕분에 자유롭게 사진 촬영을 부탁드릴 수 있었고, 보트도 딱 셋이서 탈 수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 정글을 완주했을 때의 느낀 짜릿한 성취감을 한국어로 소통하면서

감정을 공감할 수 있었던 점이 형들을 만나게 되어 가장 감사한 순간이었다.


 


캐노피 타워에서 내려온 후 모든 투어 참가자들은 보트를 타고

정글 속에 숨겨진 계곡으로 들어가 닥터피쉬 체험을 했다.





피로한 발을 계곡물에 담그고 있다 보면

수많은 닥터피쉬들이 다가와 발을 물어뜯는다.


닥터피쉬가 발을 뜯는 느낌이 처음에는 생소해서 소리를 지르며 계곡물을 빠져나오곤 했다.

그런데 금세 적응이 되었고 어느새 나는 닥터피쉬들에게 편하게 내 발을 내어 주고 있었다.



이제 점심식사를 할 시간이다.


깊은 숲 속 정글까지 오느라 축적된 피로와 정글에서 소모한 칼로리를

한 번에 보상받을 수 있는 세상 가장 행복한 시간.


참가자들은 마찬가지로 보트를 타고 숲 속의 식당으로 향했다.



메뉴는 고슬고슬한 쌀밥에 간장 양념 닭찜과 닭강정, 야채절임이었고

디저트로 파인애플이 준비되어 있었다.

모든 음식은 뷔페식으로 자율적으로 떠서 먹을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쉬운 다양한 메뉴의 호화로운 뷔페는 아니었지만

정글 트레킹을 마치고 숲 속의 오두막에서 먹는 닭찜과 닭강정은

그 어느 뷔페에서의 한 끼보다 맛있었고 든든했다.


 


식사를 마치고 모든 참가자들은 오두막에서 잠시 눈을 붙이며 낮잠에 들었다.

나는 식사 직후에 바로 누으면 소화가 잘 되지 않는 편이라

원래 절대 식사 후에 바로 눕는 편이 아닌데 이 날은 예외로 바로 누워

숲 속의 소리를 들으며 낮잠에 들기로 했다.


나중에 형들 얘기를 들어보니

형들은 내가 불편해 보이는 자세로 코도 안 골고 잘 잤다며 신기해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무사히 울루 템부롱 정글 투어를 마치고 나는 브루나이 시내로 돌아왔다.

이제 브루나이를 떠나 발리로 향하실 형들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다시 혼자의 몸이 되어 호텔로 돌아왔다.


하룻동안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집에 혼자가 되어 돌아오는 것은

직장이든 여행이든 아쉽고 섭섭하다.


울루 템부롱 국립공원과

이 날 정글투어를 함께한 한국인 형들과 또래 가이드 친구들.

그리고 투어에 참가했던 여섯 명의 외국인들까지.


이들의 기억 속에 이 날의 기억이 오랫동안 남아 있기를.

그리고 그 기억 속에 나도 오랫동안 남아 있기를.

그리고 나는 말하지 않아도 그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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