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꺾 : 군 장병 계급별 복무 기간을 월별(호봉)로 나누었을 때, 일병의 계급이 5개월 차에 접어드는 시기


 육군 21개월의 복무기간을 기준으로 계급별 복무 기간은 3개월(이등병), 7개월(일병, 상병), 4개월(병장)으로 나뉜다. 7개월 간 달게 되는 일병, 상병의 시기에는 그 절반이 되는 4개월 차(4호봉)가 지난 5개월 차(5호봉)부터 해당 계급으로서의 남은 기간이 꺾였다고 표현하여 일병 꺾이는 시기, 축약해서 일꺾이라 칭하곤 한다. 고로 상꺾의 경우에는 상병 5개월 차인 상병 5호봉 때를 말한다.


 생애 처음으로 사석에서 전우의 관계를 맺은 인간과 술자리를 가졌다. 8개월 전만 해도 쭈뼛쭈뼛 어색하게 존댓말은 건네던 우리가 이제는 반말의 왕래가 너무나 당연시하고 자연스럽다. , 전역 이후의 버킷리스트까지 구상해보는 사이가 될 정도로 우리의 정은 두터워졌다. 기온이 영하권을 웃돌 정도로 매섭지는 않았지만 얇게 입고 다니기엔 너무나 추웠던 그 해 끝겨울의 어느 날. 그들은 40분처럼 짧게 느껴졌던 네 시간동안 아담한 맥주바에서 쉴 새 없이 맥주병을 부딪치며 그렇게 깊어져 가고 있었다.

 

 이 날의 로케는 후권이가 살고 있는 시흥동이었다. 위치상으로 후권이에게 편위된 곳이었지만 의외로 이것은 나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였다. 시흥동에서 만나야 하는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내가 그 곳으로 일부러 시간과 이동 거리를 할애하면서까지 가겠다고 한 이유는 오로지 가 보지 않았던 곳에 족적을 남기고 싶은 개인적인 유랑 욕구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인 걸까. 그 곳은 내가 3년 전, 음악마케팅 분야에 몸을 담고 있을 때 친하게 지냈던 가수 지망생 형의 웨딩홀 축하 공연을 응원하기 위해 한 번 다녀온 적이 있던 곳이었다. , 그 웨딩홀을 경유해야 갈 수 있는 문일고등학교는 후권이의 모교이기도 했다. 아슬아슬하게나마 일치했던 평행이론 덕분에 우리는 연신 하이파이브를 하기 바빴고 그것은 우리의 술자리를 더 밝은 조명으로 비추어 주고 있었다.

 

 이 날의 만남이 너무나도 값진 시간이었다고 느낀 건 후권이의 매너가 한 진가를 했다. 나는 일회성 만남을 싫어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추후의 만남을 기약하는 멘트를 건네는 데 항상 서투르다. 그것은 곧 고민이기도 했다. 그래서 몇 시간 후 오늘의 만남의 시간이 종료되고 후권이와 작별을 할 때, 나는 어떤 인사로 마무리를 지어야 할지 내색 없이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망설임의 시간은 얼마 가지 않아 금세 무색해지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후권이가 나에게 제안한 위시리스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하나는 전역 이후의 훗날, 서로의 커플들끼리 오사카에서 더블 데이트를 하자는 것이었다. 서로가 각각 중국어와 일본어에 일가견이 있는지라 훗날의 해외여행을 기약하는 건 어쩌면 그 누구보다 쉬웠을 지도. 나는 그 날의 통역을 책임지기로 했다. 더군다나 오사카는 이미 나에게 지견이 있는 곳. 그 제안을 수락하는 건 거절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당연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 번 보고 말 일회성 만남의 여지를 간단하게 파기시켰다.

 

 후권이가 술을 못 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그 날의 조연은 맥주로 결정했다. 1차는 후권이가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했던 치킨집에서의 치맥으로 시작했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주방 이모와 사장님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후권이를 반겼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근황을 주고받는 후권이의 모습은 아르바이트를 하던 당시의 주방 이모와 사장님이 지금까지 가게를 지키고 계신다는 것을 직감케 했다. 오고 가는 훈훈한 덕담과 안부에서 나는 후권이가 걸어온 지난 20년의 길과 사회성, 또 인간성 등이 한데 결합된 '사람 이후권'의 모습을 보았다. 모처럼 나온 휴가에 입대 날이 같았던 동기와 함께 자라온 동네에서 한 잔 하러 왔다고 하니 사장님께서는 망고맥주를 서비스로 주셨다. 단순한 유랑 욕구로 찾은 시흥동에서 마주했던 그 때의 후권이의 모습은 만남을 함께하는 사람이 자라온 동네에서 가질 수 있는 술자리에 대한 가치도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끔 했다. 2차는 치킨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작은 맥주바에서 이어갔다. 우리는 마셔보지 않았던 수입맥주에 테이스팅을 시도하며 맥주의 맛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그 때 오갔던 대화의 내용들도 결코 가볍지는 않았다. 어느덧 시간은 자정과 가까워져 있었다. 알코올이 가미된 이후였기 때문에 운전은 당연지사 대중교통의 도움을 받아 귀가할 수밖에 없어서, 그래서 더 긴 시간을 함께할 순 없었지만, 그 날의 가치는 결코 함께한 시간만으로 판가름을 하기에 너무나도 귀중했다.

 

 그 날 이후, 부대 안에서 마주칠 때 건네는 우리의 인사가 많이 변했다. 형식적이었던 인사보다는 악수를 하기 위해 오른손을 먼저 내밀게 되고 뜸하게 보이기라도 하면 살아 있었냐며 실없는 농담을 던진다. 군대 생활에서 쌓게 될 인간관계 역시 학창시절의 인간관계 못지 않게 너무나도 소중했다. 대학 시절, 수업이 자주 겹치던 친한 누나가 해 준 말이 있다. “사람을 따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는 시기에 인연을 많이 맺는 건 행운과도 같아.” 라고. 그것이 가능한 곳은 곧 학교라고 말했다. 누나는 나에게 나중에 졸업을 하고 사회에 진출하면 이렇게 허물없이 사람을 사귈 수 있는 기회가 드물게 될 것이라며 대학 시절은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학점 못지않게 대학에서의 인간관계도 충실하게 쌓으라고 충고했다. 그 말은 나에게 좋은 귀감이 되었다. 그러나 남자들에게 있어서는 그 마지막 기회를 군대로 수정해도 괜찮지 싶다. 남자들은 군대에서 아무 조건 없이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서로 욕이라도 한 번 하면서 담배를 태우면 그만이고 행복한 일이 있으면 걸그룹 무대와 레알 마드리드 대 바르셀로나의 하이라이트 경기를 보면서 희열을 나누면 그만이기에. 나도 이렇게 조건없이 자연스레 맺어진 이후권과의 인연을 행운과도 같이 여겨 그 날의 잊지 못할 시원했던 맥주의 맛처럼 오래토록 간직할 것을. 그리고 다음에는 내가 살고 있는 상봉동에서 만나기로.


 

Instagram @choi0wan @lukewon

일꺾을 맞이한 그들의 끝겨울,

2017년 2월 시흥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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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oi0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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