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못 말린다는 중학교 2학년 때의 추억을 헤집어보면 그녀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녀는 당시 같은 학년 모든 친구들의 관심대상이었고 베이비 페이스에 도도하기까지 했다.

복도에 등장만 하면 모두가 그녀로부터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건네받고자 아등바등 대곤 했다.

그녀가 친구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되받아 건네면 나는 괜히 조바심이 나기도 했고 그런 친구들을 시샘하곤 했다.

 

 나는 그녀와 같은 반이었다.

그녀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서 수학여행이라도 가면 늘 친구들의 사진을 찍어주며 선한 미소를 보였고

학급을 위해 음식 만들어 먹는 자율 활동 시간도 자주 제의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시크하게 친구들을 제압하는 은근한 카리스마도 지니고 있었다.

평소에는 말수도 별로 없고 얌전히 텀블러에 따뜻한 차를 우려 마시던 그녀였는데 그녀의 책상은 고양이 사진으로 꾸며져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 선생님은 고양이를 좋아하시는 구나.”


 스승의 날이 되면 나는 중학교 2학년 때의 선생님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SNS를 보니 선생님은 지난 5년 사이에 결혼을 하셨다심지어 예쁜 딸아이의 엄마가 되어 육아휴직까지 낸 상태셨다. 내가 학창시절 좋아했던 선생님이 결혼을 한다는 걸 알았을 때, 생각보다 슬프지는 않았다어쩌면 선생님과 나는 애초부터 진실된 사랑으로 연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애제자가 되고 싶어 발버둥쳤던 지난 날들은 또래들의 사이에서 내가 선생님과 가장 인연이 두텁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었던 풋풋한 욕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중학교를 졸업한 지도 어연 5년 전이다. 가끔 스승의 날을 빌미로 만남을 기약하는 메시지라도 보내면 선생님은 늘 육아를 이유로 지금은 시간을 낼 수 있는 시기가 아니라며 연신 미안해하셨다. 그리고 입대를 앞두고 있던 5월 중순의 어느 날. 올 해에도 스승의 날을 빌미로 선생님에게 입대까지 언급해가며 티 나지 않게 만남의 승낙을 구걸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선생님으로부터 만날 수 없다는 연락을 전해 받으면 앞으로는 만남을 기약하는 메시지도 눈치껏 보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내 답장이 도착했다. 선생님은 만날 수 있다고 답장하셨다. 그렇게 사제지간의 상봉(?)4년 만에 성사되었다.

 

 약속 장소에 나타난 선생님의 모습이 7년 전과 비교하면 많이 변해 있었다. 7년 전의 미모는 여전했지만 육아로 인해 과거보다는 많이 수척해지셨고 도도했던 말투보다는 활기찬 말투가 더 몸에 배신 듯 했다. 성인이 된 이후에 만나서인지 나와 선생님은 대화의 사이에 인간미가 넘치는 욕도 조금씩 섞어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바르고 고운 우리말을 가르치던 국어 선생님이, 심지어 ‘국어계의 여신이라는 별명을 달고 계셨던 선생님이 내 앞에서 욕이 섞인 말을 하고 있다. 7년이 지난 지금도 선생님의 입덕 포인트는 여전히 많은 여지를 두고 있었다.


 그런데 머지않아 선생님과 나 사이에는 어색한 정적이 드문드문 올라오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선생님과 잦은 소통이 없었던 지난 7년간 내가 일본어에 시도했던 이유들과 대학 입학에 지니고 있는 비관적인 생각들을 허물없이 이야기를 하기에는 그동안 내가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나 그와 관련한 긴 비하인드 스토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7년 전, 나의 담임선생님이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가기에는 소재도 슬슬 고갈되어 한계점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내색은 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했던 선생님과 나 사이를 어색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럴 즈음에 나는 선생님에게 학교 복직을 축하하는 의미로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에코백과 따뜻한 차를 우려 드실 수 있는 텀블러가 담긴 선물 박스를 양 손에 안겨 드렸다.


 

 이 날, 나는 선생님과 건강한 군 복무를 약속하며 작별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좋아했던 그 시절의 선생님과 지금의 선생님은 꽤 다른 모습이었다. 반가웠던 홧김에 초반의 대화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선생님과 나는 7년 전의 모습이 서로에게서 보이지가 않았다. 7년 전의 나는 해맑은 순수함을 지니고 아무렇지 않게 선생님을 찾아가 국어 1등을 받겠다는 당찬 약속도 걸 수 있는 대담함과 용기가 있었지만 입시 전쟁을 겪고 짧게나마 겪어본 사회생활의 탓인지 나는 7년 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선생님에게 다가갈 수 있는 뻔뻔함을 잃어버리고 말았다선생님도 어쩌면 예전처럼 다가왔던 7년 전의 나를 기억하고 계셨기 때문에 약간의 어색함과 정적이 존재했던 건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지금도 나는 선생님을 너무나 사랑하고 존경한다. 그러나 이제는 억지로 선생님에게 만남을 구걸하거나 연례행사와도 같은 형식적 연락을 건네고 싶지 않아졌다. 굳이 그러지 않더라도 선생님은 지금쯤 쉬는 시간이 되면 내가 드린 텀블러에 차를 우려 드실 테고, 수업 종이 치면 하얀 고양이 에코백에 수업 준비물을 한아름 챙겨 수업의 교실로 향할 모습이 머릿속에서 그려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모습이 연상되는 것만으로도 나는 선생님을 만나지 않아도 배부르다. 도리어 영화 <써니>에서 나미와 선생님이 만났던 주름 자글한 상태가 된다면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7년 전,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으면서도 정말로 좋아했던 내 선생님. 사제지간의 애정이란 게 무엇인지 정의하게끔 일깨워주고 학급 일기를 통해 서른 명의 학생들과 소통하고자 했던 내 인생의 선생님. 사춘기 시절, 친구들하고 노는 것이 더좋았던 나에게 자기주도적 학습법을 알려 주시며 공부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그렇게 또 평균 성적을 16점이나 올릴 수 있어 감사했고, 무엇보다도 성인이 된 지금도 기억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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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oi0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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