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34.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 조식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즐거운 여행을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이 빨리 갈 거라고 예상은 했다. 그러나 태국에서의 마지막 날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나는 우리의 마지막 날 일정에 체크아웃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일정을 단출하게 세웠다. 그 이유는 마지막 날의 체크아웃은 곧 공항에 도착하기 전까지 캐리어를 직접 이끌고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체크아웃은 낮 12시까지로 제한하고 있었다. 우리가 오늘 탑승할 인천행 비행기는 밤 1030분 이륙으로, 그 전까지 갈 곳은 단 두 곳뿐이었다. 고로, 오늘은 그 어느 날보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워너원투어>의 일정 중, 처음으로 기상시간을 정하지 않고 늦잠을 잤다. 그래도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의 조식은 먹어 보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830분에는 1층의 라운지로 내려와 조식을 먹었다.


 나는 3년 전, 일본 후쿠오카로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 게스트하우스의 라운지에서 화창하게 비치는 햇빛을 눈부셔 하며 조식 토스트를 먹은 적이 있다. 그 때, 토스트와 함께 마셨던 홍차가 생애 첫 홍차였다. 그 뒤로 여행을 떠날 때마다 아침에 홍차를 마시는 것은 내가 치르는 일종의 의식이 되었다. 그 의식이 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직접 구운 토스트 빵과 조식 옵션으로 제공되는 수박, 스크램블 에그, 그리고 홍차를 마시며 태국에서의 마지막 아침식사를 기억에 담았다.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조식

 

 찐빵 속에 앙꼬가 없으면 허전하듯 토스트에 딸기 잼이 없으면 어딘가 허전하다. 그런데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의 조식에 딸기 잼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한참동안 잼을 찾으며 딸기 잼 토스트를 먹고 싶어 했지만 라운지 직원이 잼은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대신 버터와 케찹, 핫 소스가 있다고 했다. 그래. 없으면 없는 대로, 오히려 익숙했던 맛에서 벗어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S#35. 카오산 로드

 식사를 마친 정원이가 갑자기 게스트하우스의 밖으로 나가더니 카오산 로드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갑자기 왜 혼자 나가냐고 묻자 정원이는 반박할 수 없는 대답을 했다.

 

 “그냥 발걸음이 이끌렸어.”

 

 나는 그 기분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아니,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정원이를 따라 같이 카오산 로드를 구경했다. 우리는 고작 이틀밖에 이곳에 있지 않았지만 이제야 조금 이 길이 익숙해지고, 이제야 조금 이곳의 감성을 알 것 같았다.


말도 없이 갑자기 게스트하우스의 밖으로 나가더니 카오산 로드를 누비기 시작하는 정원

 

 우리는 어둠이 내리지 않은 순간에 카오산 로드를 구경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덕분에 시야도 밝아진 걸까. 정원이는 밤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구석진 골목길로 들어가더니 미로 찾기와 같은 모험을 강행했다. 나는 그런 정원이를 뒤따라갔다. 처음에는 골목 안을 헤매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어느새 나는 골목 안의 운치에 빠져 정원이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카오산 로드의 뒷골목을 찍고 있는 나


 고양이를 좋아하는 정원이는 고양이가 보일 때마다 쓰다듬어 주곤 했다.

나는 그런 정원이에게 손을 씻기 전까지 절대 나를 터치하지 말라고 했다.

 

S#36. 짜뚜짝 공원

 여유롭게 게스트하우스의 체크아웃을 마치고 우리는 짜뚜짝 공원으로 향했다. 카오산 로드에서 짜뚜짝 공원은 꽤 시간이 걸리는 위치에 있었다. 가뜩이나 이제는 손에 캐리어를 쥐고 있는 상황. 대중교통보다는 택시가 나을 것 같다는 판단 아래에 우리는 택시를 찾아 카오산 로드를 방황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택시기사들은 우리가 이미 다녀온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까지 저렴한 가격에 태워다 주겠다며 호객행위를 걸어왔다. 우리는 그들의 말에 위 원트 고 짜뚜짝 파크, 미터기 온!” 이라 대답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기사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 곳까지는 가지 않는다며 승차를 거부했다. 그러던 중, 한 기사님이 우리의 미터기 온을 승낙했다. 심지어 짜뚜짝 공원에도 간다고 하셨다. 그러나 트래픽 잼 시간대임을 고려해서 일반 도로가 아닌 고가 도로로 가겠다고 하시며 톨게이트 비용만 잘 챙겨 달라고 하셨다.(태국에서는 택시를 이용하여 톨게이트를 지날 때, 톨게이트 비용을 운임과는 별도로 기사에게 지불해야 한다.)


짜뚜짝 공원까지 정상 미터기를 켜고 모셔다 주신 기사님

(미터기를 켜도 20바트씩 올라가면 조작된 미터기이다. 2바트씩 올라가야 정상 미터기이다.)


태국에서 처음 만난 미터기를 켜고 운전해주신 기사님과 함께

 

 20분 가량을 달려 도착한 짜뚜짝 공원. 그런데 습하고 흐린 날씨 탓에 공원을 찾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통행을 제한하고 있는 구역도 있어서 우리는 짜뚜짝 공원의 안에 있는 호수까지 가 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입구 주변에 있는 넓은 잔디밭에서 파노라마 사진을 찍거나 우거진 풀숲 안에서 설정샷을 찍으며 짜뚜짝 공원을 즐겼다. 또, 여름의 풀밭에서 찍은 우리의 병사 시절 단체 사진을 가져온 나는 정원이에게 지금의 순간과 단체 사진을 하나의 사진에 담아 보자고 제안했다. 그 말에 정원이는 벤치의 틈에 단체 사진을 꼽더니 짜뚜짝 공원을 배경 삼아서 분위기있는 사진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사실 짜뚜짝 공원은 여느 공원과 크게 다를 것 없이 드넓은 잔디밭과 다양한 식물들이 심어져 있는 흔한(?) 공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곳에 오고 싶었던 이유는 태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야자수 나무들이 공원에 심어져 있는 모습이 궁금했으며여유롭게 공원에서 쉼을 만끽하는 태국인들의 모습을 눈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공원의 제한적인 상황과 날씨 탓에 이 점을 만족하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쉬웠다. 그러나 여름 풀밭을 배경으로 과거의 1생활관을 상기시킬 수 있던 것은 계획했던 일정보다 더한 만족감과 뿌듯함을 가져다 주었다.


우거진 풀숲에서 찍은 설정샷. 이름하여 '숨은 영완 찾기'


짜뚜짝 공원의 잔디밭


나와 정원이가 막내 라인이던 때의 시설 1생활관.

전날 밤, 영상통화를 걸었던 종희형, 승호형, 김하사님, 재현이형이 선임이던 시절(2016.07)


선임이던 형들이 모두 전역하고 정원이가 분대장이던 시절의 시설 1생활관.

나는 정원이의 뒤를 이어 분대장 이임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2017.09)

 

S#37. 베스트 비프 뷔페

 우리는 이번 여행 내내 <배틀 트립>의 방콕, 파타야 편에 출연하며 태국의 매력을 소개했던 배우 김민교의 추천 스팟(꼬란 섬, 시암 앳 시암 호텔, 담넌 사두억 수상 시장 등)을 정말 많이 다녀왔다. 우리가 지금부터 향할 베스트 비프 뷔페도 김민교의 추천 스팟에 해당되는 여러 장소 중에 한 곳이다. 우리는 이곳을 워너원투어 대장정의 마지막 일정으로 결정했다. 이유를 말하자면 베스트 비프 뷔페에서의 식사를 태국에서의 마지막 만찬으로 장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베스트 비프 뷔페는 BTS의 온눗역 2번 출구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야외 테라스형 뷔페로, 고기와 해산물, 맥주와 음료를 439바트(한화 약 15,000)에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 베스트 비프 뷔페는 오후 4시부터 영업을 시작하지만 영업 시작과 동시에 웨이팅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4시보다 빨리 이곳에 도착하기로 했다.


비가 내리던 온눗역. 이 곳에서 10분을 걸어가면 베스트 비프 뷔페가 있다.

 

 우리는 베스트 비프 뷔페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위해 게스트하우스에서 조식을 먹은 이후, 맥도날드 파인애플 파이와 길거리에서 파는 음료수 한 잔을 나누어 먹은 걸 빼고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우리는 배고픔과 캐리어를 같이 이끌고 짜뚜짝 공원이 있는 모칫역에서 40분 가량을 달려 온눗역에 도착했다. 온눗역에 도착하자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행히 시로코 스카이바에서 만났던 정도의 굵은 빗줄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우산을 쓰지 않기에는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우리의 손에는 캐리어가 있다. 전철역 한구석에서 짐 정리가 끝난 캐리어를 열어 우비를 꺼내 입고 뷔페까지 가느냐. 아니면 빗속을 뚫고 지금의 옷차림으로 빠르게 뷔페까지 가느냐. 습한 공기와 등골에 맺혀있는 땀방울. 그리고 태국에 올 때보다 무거워진 캐리어의 무게.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고민 끝에 우리는 후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10분 가량을 걸어 베스트 비프 뷔페에 도착했더니 시간은 오후 3시를 갓 넘기고 있었던 데다가 웨이팅을 하고 있는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 이 날의 첫 번째 손님은 우리였던 것이다. 영업을 시작하기까지는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지만 오히려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아 우리는 여유롭게 벤치에 앉아 땀을 식히면서 영업이 시작되기까지를 기다렸다.


<배틀 트립> 외에 <원나잇푸드트립>에서도 소개된 방콕의 인기 맛집 '베스트 비프 뷔페'


베스트 비프 뷔페가 오픈하기까지 기다리며 찍은 셀카

 

 오후 4시가 되었다. 비는 그쳤지만 하늘이 맑게 개지는 않았다. 우리는 1차적으로 뷔페와 음료, 맥주까지 무제한 리필이 가능한 풀코스로 2인을 주문했고, 2차로 음식을 주문했다. 직원이 보여준 메뉴판에는 돼지의 간과 혀 등 한국에서도 쉽게 접하지 못했던 음식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다. 우리는 잠시 동안 고민하더니 모든 메뉴들을 한 접시씩 주문하기로 결정했다.

 

 “디스 원, 디스 원, 디스 원, 디스 원

 

 모든 주문을 마치자 직원은 맥주와 음료를 가져다주더니 직접 잔에 따라주었다. 직원은 다른 손님들을 응대하다가도 우리의 잔이 비어있거나 콜라에 얼음이 녹아있으면 잽싸게 우리의 테이블로 와서 빈 잔에 맥주를 채워주고, 콜라에 얼음을 넣어주었다. 서비스에 감탄한 정원이는 직원의 손에 팁을 쥐어주기도 했다.


주문과 동시에 제일 먼저 나온 창 맥주와 이스트콜라


 

녹는 버터를 기름 삼아 고소하게 구워지고 있는 고기들과

그물 석쇠 위에서 본연의 색을 잃어가며 빨갛게 익어가고 있는 해산물들

 

 베스트 비프 뷔페에서는 음식만큼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것이 바로 버터다. 이곳에서 버터는 고기를 먹기 전 프라이팬 불판을 칠하는 용도로 이용된다. 그래서 베스트 비프 뷔페에서 먹는 고기는 버터 향과 풍미가 더해져 다른 곳에서 먹던 고기보다 훨씬 고소했다. 반면 해산물에는 버터를 닿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화로 하나를 새로 주문하여 버터를 칠할 수 없는 그물 석쇠 위에 올려서 해산물을 구웠다. (화로 추가 시 비용 발생)


시원했던 맥주와 고소했던 고기, 그리고 맛있었던 해산물까지.

태국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베스트 비프 뷔페에서 먹기로 한 건 잘 내린 결정인 것 같다.

 

 정신없이 음식을 입에 넣었다. 우리는 빠짐없이 모든 음식들을 맛보기 위해서 전 메뉴를 한 접시씩 주문했지만 먹다 보니 그것도 너무나 많은 양이었다.(어떤 메뉴는 구워 보지도 못하고 남겼다.) 그러나 우리는 아쉽지 않을 정도로 원없이 뷔페를 즐겼다. 식사를 마치고 한 숨 고른 우리는 맥주와 음료를 채워주던 서비스 만점의 직원에게 우리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줄 것을 부탁했다. 직원은 그 부탁에 흔쾌히 응해 주셨다.


 베스트 비프 뷔페를 끝으로 태국에서의 모든 일정을 끝마친 사진 속의 우리는 태국에서의 46일동안 줄곧 그래왔듯, 워너원투어의 깃발을 들고 있었고 표정은 당연지사 웃는 얼굴이었다.


<워너원투어>의 대장정. 그 끝을 장식한 베스트 비프 뷔페에서.

 

S#38. 수완나품 공항

 식사를 마친 우리는 공항철도선을 타고 수완나품 공항으로 왔다. 언제나 그렇듯 공항은 항상 분주하고 정신없다. 그리고 두 가지의 감정을 느끼게끔 한다. 설레거나, 아쉽거나. 지금의 우리는 아쉬움이다. 인천에서 태국으로 올 때만 해도 갑작스럽게 지연된 비행기를 보며 질책하고 짜증을 냈는데, 지금은 지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너무나 간절했다.


지연 없이 제 시간에 출발하는 타이항공의 인천행 TG688 비행기

 

 “정원, 비행기 지연 안 되나? 여기 더 남아있고 싶은데…….”

 

 그러나 이럴 때는 꼭 모든 상황이 철두철미하게 흘러간다. 비행기는 지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체크인 카운터에서는 제 시간보다 빠른 시간부터 탑승 수속을 시작했다.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공항에서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면세점을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수하물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밟았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요기베라의 말은 여전히 참을 증명하는 명제였다. 나는 출국 심사장에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쳤다. 출국 심사원은 나의 여권과 탑승권을 검토하더니 출국 카드를 제출하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도 도통 모르겠는 태국어와 그 이상으로 더 모르겠는 영어. 그리고 내 뒤에서 줄줄이 출국 수속을 기다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 나는 출국 심사원이 말하는 출국 카드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리액션을 보였다. 그러자 그는 태국 입국 시 받은 출국 카드의 샘플을 보여주면서 이러한 카드를 제출하라고 말했다. 당황한 나머지 나는 옆의 줄에서 출국 심사를 기다리던 정원이에게 SOS를 요청했다. 그러자 정원이는 나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내가 태국 도착했을 때 말했었는데 이거(출국 카드) 나중에 한국 돌아올 때 꼭 필요하니깐 잃어버리지 않게 잘 보관하라고 했었잖아.”

 

 그러나 나는 지금도 정원이가 그런 말을 했던 게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추측이건대 방콕에 도착했을 당시, 지연된 비행기로 인한 짜증과 태국에 처음 닿았다는 설렘이 합쳐져 정원이의 공지를 귀담아서 듣지 않았던 것 같다. 이내 정원이는 서 있던 줄로부터 이탈해 출국 심사장의 입구를 지키던 승무원에게 가서 출국 카드 양식을 새로 받아왔다. 그러더니 나에게 다시 출국 카드를 작성해서 심사원에게 제출하라고 말했다. 만약, 정원이가 나보다 출국 심사를 먼저 마쳐서 이미 심사장을 빠져나간 뒤였다면 나는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했을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출국 심사를 마칠 수 있던 나는 심사장을 나오자마자 정원이에게 사과를 했다.

 

 “정원, 너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아 미안해. 앞으론 너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는 최영완이 될게.”

 

 그러나 정원이는 괜찮다고 했다. 오히려 파니니 레지던스 호텔에서 있었던 여권 해프닝과 방콕으로 올 때, 기내에서 잃어버린 정원이의 볼펜을 찾아 준 나의 전례를 들면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며 나의 태도를 포용해주었다.


집에 돌아와서 짐 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백팩 앞주머니에 있던 출국 카드

 

 이어 우리는 하루 내내 빗속에서 캐리어를 끌고 다니느라 땀에 젖은 몸을 씻기 위해서 수완나품 공항 내의 미라클 라운지로 갔다. 그곳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온 우리는 출출하게 허기진 배를 채우고자 푸드코트로 발걸음을 옮겨 똠얌꿍과 해물 볶음밥을 먹었다. 우리는 식사까지 마쳤음에도 수하물 수속을 빨리 마친 탓에 여전히 탑승까지의 시간이 꽤 남아있었다. 그래서 면세점을 둘러보면서 미처 다 사지 못했던 기념품을 구매하기로 했다. 나는 이번 여행을 떠날 수 있게 5일이라는 긴 휴가를 제공해준 생애 첫 직장에 감사하는 마음과 아직도 많이 부족한 나라는 막내 신입사원의 일솜씨를 크게 내색 없이 받아주시는 고마운 동료들에게 지금보다 더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마음을 함께 담아 선물할 초콜릿과 말린 망고를 한가득 샀다.


수완나품 공항에서 먹은 마지막 식사.

볶음밥은 너무나 맛있었지만 똠얌꿍이 적응되기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

 

 시간은 어느덧 1030분에 가까워져 있었다. 우리는 탑승장으로 발걸음을 옮겨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거짓말과 과장을 하나도 보태지 않고 나는 이번 여행이 꿈같았다고 말할 수 있다. 줄곧 말했듯이 우리는 우기인 시기에 태국에 왔지만 메인이 되는 일정을 소화할 때 단 한 번도 빗방울을 만나지 않았고, 일부러 계획하려고 해도 계획할 수 없는 기적적인 인연들도 많이 맺고 돌아왔다. 나의 인스타그램 속 태국 여행 게시글을 보고 좋아요를 눌러준 배우 김민교를 비롯하여 시암 앳 시암 호텔에서 만난 터키 청년들과 동갑내기 한국인 여직원, 또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대만 공군 팡야와 방콕에서의 일정을 깔끔하게 정리해 준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의 여직원과 그의 한국인 남자친구까지. 이 외에도 너무나 많은 인연들이 우리의 여행에 함께해 주었고 덕분에 다채롭게 워너원투어를 장식할 수 있었다. 진짜 꿈속에서도 이런 사람들을 만나서 이러한 에피소드를 만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번 여행은 꿈보다도 더 꿈같았.


내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파타야 시암 앳 시암 호텔 게시글에 '좋아요'를 눌러준 배우 김민교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나와 정원이는 빗방울이 맺힌 비행기 창문을 배경으로 네 장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각자 두 장의 사진을 나누어 갖기로 했다. 폴라로이드 사진이 갖고 있는 잔잔한 필름 감성과 사진 속으로 보이는 우리의 표정들을 보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군대에서 만난 선후임의 인연이라는 관계를 뛰어넘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청춘이라는 시기에 여행이라는 순간을 함께하며 평생의 안주거리를 만든 사이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그 안주거리도 평범한 여행이 아닌, 우리가 이루고자 했던 목적과 독특했던 기획들이 있었기 때문에 남들이 갖고 있는 여행 안주거리와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륙 전 기내에서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과 우리의 모든 여정을 함께한 <워너원투어> 깃발

 

S#39. 인천 공항

동이 트는 새벽, 어느덧 비행기는 한국의 영공에 진입했고 인천 도착을 얼마 남기지 않고 있었다.


 비행기는 6시간동안 하늘길을 날았지만, 도중에 시차가 적용되어 우리는 새벽 6시에 인천에 도착했다. 인천에 도착하고 나니 한국은 축구로 대동단결되어 있었다. 속출하는 기사들을 보니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피파 랭킹의 1위를 달리고 있는 독일을 2:0으로 이겼다고 한다. 그 역사적인 순간에 우리는 비행기의 안에 있어서 축구를 보며 열광하지 못했지만 아쉽지 않았다. 그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알 것이다. 방금 읽은 안주거리내용만 읽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아쉬운 인사를 나누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인천공항 리무진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온 나는 집에 오자마자 밀린 빨래를 돌렸고, 일요일 아침의 기상보다 귀찮은 여행 후의 짐 정리를 시작했다. 

 

S#-. 일상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내가 어제까지 아무리 꿈같았던 여행을 다녀왔다고 해도 신은 나에게 내일의 출근을 위해서 여행 후유증을 떨칠 수 있는 시간 따위를 주지 않는다.

 

 슬랙스 정장 바지와 파란색 셔츠, 그리고 까만 넥타이. 마지막으로 왼쪽 귀에 꽂는 무전기 이어폰까지.

 

 6일 만에 직장으로 복귀한 나는 동료들에게 면세점에서 샀던 선물을 건네며 고마움을 전했다. 동료들은 고맙다며 인증샷을 찍기도 했고 잘 먹었다는 메시지를 보내주기도 했다. 나는 고마워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이것이 부족한 나의 일솜씨에 대한 뇌물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처음 입사했을 때보다 주어진 업무에 더 성실하게 임할 수 있게 되었다.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에서 샀던 말린 호박을 다 먹고 인증샷을 보내주신 진료실의 새솔 선생님

 

 나는 오늘도 치과 데스크에 앉아서 내원하는 환자들의 예약 접수와 수납을 돕고, 일본인 환자들의 진료 통역을 이행하며 생애 첫 직장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이번 주가 지나면 워너원투어는 어느덧 한 달 전의 과거가 되고 만다. 그러나 몇 달, 아니 몇 년이 지나도 워너원투어는 나의 일상이 고단해질 때 피로회복제보다 더한 역할이 되어 주어 그 피로를 덜어줄 것이다.

 

 1생활관 영(0)완&정원(1), 그리고 영완(WAN)과 정원(ONE)이 원하던(WANNA) <WANNAONE TOUR>

 

 이 투어명을 기반으로 한 시즌2의 여행이 멀지 않은 시간 내에 다시 한 번 실행될 수 있기를 바라며 [방콕&파타야] 우리가 원하던 WANNAONE TOUR 포스트는 여기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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