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10

D+9

정글에서의 초대


정글 투어 당일,


미러리스 카메라를 들고 투어에 참가하면 일정 소화가 불편할 것 같아서 카메라는 호텔에 놓고 정글로 향했습니다.

또, 눈으로 담고 싶었던 장면들이 많았던 만큼 사진 촬영에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에피소드에 비해 사진들이 다소 부족합니다. 이로 인해 가독성이 떨어질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화창한 토요일 아침,

오늘 나의 일정이 정글로 가는 것을 하늘은 예견이라도 했는지

전날과 달리 무척이나 파랗고 많은 뭉게구름을 보였다.


나는 전날 가동 야시장에서 먹다 남긴 팬케이크와 펩시 콜라로 아침식사를 대신해서 때웠고

픽업 시간보다 10분 빨리 호텔 로비로 내려와 픽업 차량을 기다렸다.


 


그러나 픽업 차량은 오지 않았다.


게다가 시간은 7시 30분을 서서히 넘기고 있었다.

7시 15분까지 하이어 호텔 로비로 데리러 오겠다는 메시지를 받았음에도

로비 앞으로는 어떤 차량도 도착해있지 않았다.


서서히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찰나,

한 대의 대형버스가 도착했다.


그런데, 이 버스는 단체 중국인들을 태우는 버스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버스에서 내리는 중국인 가이드에게

나의 픽업 메시지를 보여주며 목적지를 물었다.


그 순간, 나보다 호텔 로비에 먼저 나와있던 히잡을 쓴 여성이

나와 중국인 가이드의 쪽으로 오더니 픽업 메시지를 확인해 주었다.


그러더니 그녀가 말했다.

 

Follow me. It was you.(나를 따라오면 돼요. 계속 로비 앞에 있었던 너였구나.)


히잡을 쓰고 있던 이 여성이 바로 나의 픽업 담당 가이드였던 것이었다.

그 순간, 픽업 차량이 호텔 로비 앞에 도착했고 나는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울루 템부롱 국립공원으로 가는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버스에는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두 명의 남자 관광객만이 앉아 있었다.


쭈뼛쭈뼛 눈인사를 하며 빈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찰나,

남자 관광객들이 나에게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아닌 진짜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브루나이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이 투어는 사전에 여행사를 통해 예약한 것이 아닌,

현지에서 예약을 한 브루나이 관광객(국적 불문)들로만 구성된 투어였기 때문에

한국인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은 더욱 희박했다.


한국인 형들과 나를 태운 버스는

또다른 투어 참가자들을 태우기 위해 다음 호텔로 향했다.


버스는 그 곳에서 여섯 명의 참가자들을 더 태웠고,

가이드는 이렇게 모인 총 아홉 명의 참가자가 

오늘 울루 템부롱 정글투어를 함께할 인원들이라고 하셨다.


브루나이 현지에서 울루 템부롱 정글투어를 저렴하게 예약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브루나이②] 브루나이 페리 탑승기와 울루 템부롱 정글투어 현지 예약 방법 을 정독해주세요.

(위 타이틀을 클릭하면 해당 게시글이 새 창으로 띄워집니다.)


 


버스는 스피드 보트를 탈 수 있는 선착장에 참가자들을 내려 주었다.


이제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 곳에서 스피드 보트를 타고 템부롱 지역에 도착한 후,

버스와 롱 보트를 한 번씩 더 타야 울루 템부롱 국립공원에 도착할 수 있다.

(스피드 보트에 탑승하는 순간부터 픽업 담당 가이드와는 헤어지게 된다.)



스피드 보트를 타며 템부롱으로 가는 도중에는 말레이시아의 국경을 넘나들기 때문에

비행기가 착륙했을 때 받아볼 수 있는 입국 문자도 자동으로 수신된다.


 


왼쪽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스피드 보트는

좌측의 브루나이와 우측의 말레이시아의 경계가 되는 강을 넘나들며 템부롱으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국경에 들어왔기 때문에 로밍을 할 수 있다는 문자메시지도 받아볼 수 있다.



50분 가량 스피드 보트를 타고 도착한 템부롱.

보트 안에서 꿀잠을 잔 덕분에 개운한 발걸음으로 보트에서 내릴 수 있었다.


템부롱에 도착하니 정글 투어 담당 가이드들이 참가자들을 맞이해 주었다.

가이드들은 본격적인 정글 투어 시작 전, 참가자들을 데리고 조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으로 향하는 내내 문명과 인간의 위대함에 감탄했다.


템부롱에 오기 위해선 스피드 보트를 통해서만 올 수 있는데,

과거에는 대체 어떠한 교통 수단을 통해 이 곳에 사람들이 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과

이 곳에 있는 차량 정비소, 식당 등에서 필요한 자원들은

도대체 어떻게 조달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끊이지 않았다.


템부롱에 오는 길이 험난해서였는지

나는 템부롱을 거니는 내내 이 곳을 아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어느 시골마을처럼 여겼다.


 

 


조식은 페스츄리 빵과 콜라(음료 선택 가능)였다.

소스는 왼쪽에 있는 하얀 소스가 제일 맛있었고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제일 인기가 좋았다.

연유 맛이 나는 달콤한 맛의 소스였는데 페스츄리와 궁합이 제일 잘 맞았다.


조식을 처음 받았을 때, 다소 빈약해 보여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데

먹다 보니 맛도 있었고 은근히 배가 금방 차서

나를 포함한 한국인 형들, 그리고 여섯 명의 외국인 참가자들까지 모두 맛있게 먹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가이드는 모든 참가자들에게 생수병을 하나씩 나눠 주었다.

이제 롱 보트를 타고 정글까지 가야 한다.

롱 보트의 최대 탑승 인원은 3~4명인데 가이드는 이 날 참가자 수가 총 9명이었기 때문에

3명씩 팀원을 구성해서 보트에 탑승하라고 했다.


나는 주저없이 2명의 한국인 형들과 함께 보트를 타기로 했고,

형들도 내게 함께 보트를 타고 정글까지 들어가자고 해 주셨다.



롱 보트의 뒤에서는 기사님이 열심히 시동을 걸어 보트를 운전해 주시고,

앞에서는 조수가 강의 수심이 얕아지는 곳에서 열심히 작대기를 이용하여 돌을 치워준다.

작대기로도 돌이 움직이지 않을 때는 보트에서 내려 손수 보트를 끌기도 했다.


보트 앞에서 열심히 작대기를 저으며 돌을 치우는 조수를 보고 있으니

편하게 앉아서 가는 내가 괜히 미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또 한 번 보트를 50분 가량 탔다.

보트를 타는 내내 보이던 템부롱의 자연 경관은 나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한국에서 본 적 없는 이름 모를 새들이 눈 앞에서 날아다니고

하늘과 숲, 그리고 강. 오로지 자연만을 상징하는 매체들이

눈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오늘의 날씨가 맑아서, 템부롱에서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보트를 타는 내내 또 한 번 들었던 생각은

이렇게까지 깊이 숨어있는 이 공간은 도대체 누구에 의해 발견됐으며,

그 옛날에는 어떤 수단을 통해서 이 곳까지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


그렇게 템부롱에 대한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어느새 보트는 울루 템부롱 국립공원 앞에 도착해 있었다.



브루나이에서 만나는 한국어 인사말. 어서오세요.’

정글이라는 신비한 곳에서 읽게 되니 더욱 반가웠다.



보트에서 내리자 가이드들은 방문 기념 방명록을 작성해달라고 하셨다.

방명록에는 이름과 국적, 나이를 기재하는 공간이 있었다.


Yeongwan Choi, Korea, 22


혹시나 해서 방명록을 한 장 앞으로 들춰 봤는데 내가 제일 어린 나이였다.

괜히 자부심이 흘러넘치는 순간이었다.


 


방명록을 적고 나면 본격적인 정글 트레킹이 시작된다.

참가자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라는 부심이 생긴 나는 정글 완주에 대한 의욕을 안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트레킹 코스는 생각만큼 힘들지 않았다.


트레킹 계단을 한 번에 올라가지 않고

중간에 쉬어갈 수 있는 정자를 네 번이나 들리며 올라가기 때문에 체력적인 부담이 적다.


솔직히 나는 정자를 네 번씩이나 들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같이 동행했던 한국인 형들은 정자가 나오면 땀에 젖은 손수건을 쥐어 짜가며 휴식을 가졌고,

일부 외국인 참가자들은 뒤처지기까지 해서 팀이 나누어지기도 했다.


정자에서 쉴 때마다 제일 쌩쌩하던 나를 향해 가이드가 나이를 물었다.

스물 둘이라고 하자 가이드는 스물 하나라며 더 밝게 나를 대해 주었다.

또래 나이대의 참가자를 만나서인지 나도 가이드도 서로가 지치지 않아 하며 트레킹을 할 수 있었다.


그 때, 동행하던 한국인 형 중 한 분이 말을 꺼냈다.


올라가는 것도 올라가는 건데 내려올 땐 어떡하냐. 무릎 나갈 거 같은..”


그래도 올라갈 때보단 내려갈 때가 훨씬 부담이 덜하지 않겠냐고 말하자 한국인 형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어려서 그래. 어려서. 라고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막내 취급에 기분이 좋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트레킹 코스는 힘들지 않았습니다...)


 

 


트레킹을 하다 보면 어릴 적 만화에서나 보던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이 외나무다리는 안전상의 이유로 한 번에 다섯 명 이상 건널 수가 없다.


나는 제일 먼저 다리를 건너게 되었는데 다리를 건널 때는 정말 무서웠다.

그래도 최대한 아찔한 순간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살짝쿵 다리의 옆과 밑을 보았지만

핸드폰을 떨어뜨릴 것만 같아 경직된 표정으로 침착하고 빠르게 앞만 보며 걸어갔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트레킹 계단과 외나무다리를 건너다 보니

어느새 정글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캐노피 타워 가까이까지 와 있었다.


목적지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가이드의 안내에

더 의욕이 샘솟았던 나는 빠르게 계단을 올라 캐노피 타워 앞에 도착했다.



그렇게 나와 한국인 형들은 캐노피 타워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캐노피 타워도 외나무다리처럼 안전상의 문제로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이 오를 수가 없어서

가이드는 한 사람 당 3층의 간격으로 오를 것을 권장했다.


먼저 광주에 사는 형이 선두로 캐노피 타워를 오르고,

그 다음이 나, 그리고 그 뒤로 가양동에 사는 형이 오르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캐노피 타워를 오르기 시작하는데

손잡이 기둥을 잡고 올라갈 때마다 캐노피 타워는 삐그덕 소리를 내며 조금씩 흔들렸다.

(무너질 것 같은 불안한 소리와 들림이 아닌 캐노피 타워가 전체적으로 힘을 받고 있는 듯한 소리와 흔들림이었습니다.

캐노피 타워는 절대적으로 안전하게 지어진 철탑입니다.)


형들과 나는 계속해서 비명 아닌 비명을 지르며 캐노피 타워를 올랐다.

나는 최대한 두려움을 벗어내고자 타워 밑을 보려하지 않고 바로 눈 앞에 보이는

계단만을 주시하며 성큼성큼 타워를 올랐다.


그 때, 빠른 속도로 올라온 나와 같은 층에서 만난 광주 형이

나에게 선두 자리를 내어 주시며 먼저 올라가라고 하셨다.



캐노피 타워 위에 올라서서 보이는 전경은 압권이었다.

울창하게 자란 밀림 나무들은 브로콜리처럼 빼곡하게 숲속을 채우고 있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데다가 새가 맑게 지저귀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하늘과 숲만 보면서 새 소리를 들은 경험은 생애 처음이었다.

감탄사 이외에는 그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숲 속에 나 홀로 우뚝 선 느낌, 대자연의 중앙에 놓여진 느낌,

외국이라는 개념을 떠나 다른 세상 위에 혼자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캐노피 타워는 1번부터 5번까지 있는데, 1번, 4번, 5번의 뷰가 제일 훌륭하다.

실제로 가이드도 1번, 4번, 5번의 뷰를 추천해주신다.







원래는 나도 로이킴과 에디킴, 박재정처럼 우정여행으로 브루나이에 오고 싶었던지라

혼자서 정글 투어를 오게 된 게 내심 아쉬웠는데

정말 운이 좋게 두 명의 한국인 형들을 만날 수 있어 <배틀트립>의 에로박처럼

3인 1조로 울루 템부롱 정글투어를 완주할 수 있었다.

덕분에 자유롭게 사진 촬영을 부탁드릴 수 있었고, 보트도 딱 셋이서 탈 수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 정글을 완주했을 때의 느낀 짜릿한 성취감을 한국어로 소통하면서

감정을 공감할 수 있었던 점이 형들을 만나게 되어 가장 감사한 순간이었다.


 


캐노피 타워에서 내려온 후 모든 투어 참가자들은 보트를 타고

정글 속에 숨겨진 계곡으로 들어가 닥터피쉬 체험을 했다.





피로한 발을 계곡물에 담그고 있다 보면

수많은 닥터피쉬들이 다가와 발을 물어뜯는다.


닥터피쉬가 발을 뜯는 느낌이 처음에는 생소해서 소리를 지르며 계곡물을 빠져나오곤 했다.

그런데 금세 적응이 되었고 어느새 나는 닥터피쉬들에게 편하게 내 발을 내어 주고 있었다.



이제 점심식사를 할 시간이다.


깊은 숲 속 정글까지 오느라 축적된 피로와 정글에서 소모한 칼로리를

한 번에 보상받을 수 있는 세상 가장 행복한 시간.


참가자들은 마찬가지로 보트를 타고 숲 속의 식당으로 향했다.



메뉴는 고슬고슬한 쌀밥에 간장 양념 닭찜과 닭강정, 야채절임이었고

디저트로 파인애플이 준비되어 있었다.

모든 음식은 뷔페식으로 자율적으로 떠서 먹을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쉬운 다양한 메뉴의 호화로운 뷔페는 아니었지만

정글 트레킹을 마치고 숲 속의 오두막에서 먹는 닭찜과 닭강정은

그 어느 뷔페에서의 한 끼보다 맛있었고 든든했다.


 


식사를 마치고 모든 참가자들은 오두막에서 잠시 눈을 붙이며 낮잠에 들었다.

나는 식사 직후에 바로 누으면 소화가 잘 되지 않는 편이라

원래 절대 식사 후에 바로 눕는 편이 아닌데 이 날은 예외로 바로 누워

숲 속의 소리를 들으며 낮잠에 들기로 했다.


나중에 형들 얘기를 들어보니

형들은 내가 불편해 보이는 자세로 코도 안 골고 잘 잤다며 신기해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무사히 울루 템부롱 정글 투어를 마치고 나는 브루나이 시내로 돌아왔다.

이제 브루나이를 떠나 발리로 향하실 형들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다시 혼자의 몸이 되어 호텔로 돌아왔다.


하룻동안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집에 혼자가 되어 돌아오는 것은

직장이든 여행이든 아쉽고 섭섭하다.


울루 템부롱 국립공원과

이 날 정글투어를 함께한 한국인 형들과 또래 가이드 친구들.

그리고 투어에 참가했던 여섯 명의 외국인들까지.


이들의 기억 속에 이 날의 기억이 오랫동안 남아 있기를.

그리고 그 기억 속에 나도 오랫동안 남아 있기를.

그리고 나는 말하지 않아도 그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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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9

D+8

가는 날이 장날


이슬람의 상징인 모스크.

이슬람교의 왕국인 브루나이에 와서 모스크 투어를 가지 않을 수 없다.

브루나이에는 대표적인 모스크가 딱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어젯밤 호텔의 복도에서 보았던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고

또 다른 하나는 브루나이를 상징하는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다.


오늘 나는 이 두 모스크에 걸어서 다녀올 예정이다.


땡볕 더위 속에서 다트 차량을 부르지 않고 굳이 걸어서 이동하는 이유는 경비를 절약하기 위함이었다.


인천공항에서 환전해 온 50만원 상당의 싱가포르 달러는 

브루나이에서 다 쓰지 않고 싱가포르에서도 쓸 예정이었던 데다가

싱가포르의 물가가 워낙 비싸다는 얘기가 자자했기 때문에

나는 애초부터 이번 여행을 계획할 때 경비 절약은

체류 기간이 제일 짧은 브루나이에서 하는 것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먼저 호텔에서 육안으로도 보이는 거리에 있는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로 향했다.


 

 


브루나이의 모스크는 코타키나발루에서 보았던 모스크와는 풍채부터가 달랐다.

코타키나발루에서 다녀왔던 UMS 모스크와 시티 모스크는 관광지의 이미지가 더 강했던 것에 비해

브루나이의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는 실제 왕의 저택에 들어온 것 같은,

모스크라는 단어를 정의하고 있는 듯한 고결한 아우라가 모스크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분수마저도 평화로워 보였던 정원을 지나 모스크의 앞에 도착한 나는

이제 복장을 입고 모스크 내부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기도 행사가 있어서 모스크를 개방하지 않는다는 공지가 적혀져 있었다.

그런데 모스를 개방하지 않는 것보다 더 아쉬웠던 것은 바로 폐쇄 기간이었다.

내가 브루나이에 있는 8월 12일까지 모스크가 개방하지 않는다는 소식에

어떤 날에, 어떻게 시간을 내서라도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에는

끝내 들어가지 못한다는 팩트가 나를 너무나 아쉽게 했다.



브루나이에서 맞이한 첫 아침의 첫 번째 일정에서부터 아쉬운 소식을 접한 나는

그렇게 쓸쓸히 모스크를 빠져나왔다.



그렇지만 이렇게 셀카라도 찍으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그리고 너무 아쉬워하지 말기로 했다.

이러한 상황 또한 계획없이 움직이는 배낭여행의 묘미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또 다른 모스크인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까지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면

그건 정말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을 것 같았다.


갑자기 불안감에 휩싸인 나는

원래 오후에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갈 예정이었던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에 지금 당장 가 보기로 했다.


 


몇 백년의 시간에 걸쳐 자라온 건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두꺼웠던 줄기의 나무를 지나,

횡단보도의 타이머가 전혀 맞지 않아 당황했던 고장난 신호등도 지나

브루나이의 상징,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에 도착했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안고 천천히 모스크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다행히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는 개방을 하고 있었다.


금요일이었던 당시, 나는 개장 시간(오후 4시 30분~5시 30분)에 맞춰 다시 모스크에 오기로 하고

이제 계속 걷느라 허기진 배를 채우러 모스크 주변의 식당을 찾아 나섰다.



계속 걸어다니며 먹거리를 찾아 다닌 나는

반다르세리베가완 터미널 앞에서 판매하는 브루나이 현지식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노란 밥의 색깔에 이끌려 특별한 맛을 기대하고 샀지만

특별한 맛은 개뿔. 니 맛도 내 맛도 없는 맛이었다.

허기진 배, 여행 경비 절약한다고 먹었으니 망정이지

어디 식당에서 음식 주문했는데 이런 맛 나왔으면 정말 열받았을 지도 모를 맛이었다.


그나저나 식사를 하다보니 이제 오늘의 일정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는 일단 갈 수 없고,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는 오후 4시 30분부터 입장할 수 있는 상황.


현재시각 오전 11시 30분.

다섯 시간동안 대체 어떻게 시간을 채워야 할까.


고민하며 인터넷을 검색하는 도중에

나는 현재 내가 있는 위치로부터 멀지 않은 거리에

캄퐁 아에르 수상가옥 마을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캄퐁 아에르 수상가옥 마을을 구경하기 위해선

수상보트를 타고 브루나이 강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선착장에서 가이드 기사님과 협상만 잘 이루어지면

무려 20달러(약 17,000원)의 가격으로 수상가옥 마을과 맹그로브 숲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걸음을 재촉하여 캄퐁 아에르 선착장에 도착했다.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수많은 보트들은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렇다. 호객행위가 시작된 것이다.

각 보트 안의 기사님들은 열심히 나를 부르며 손짓했지만

나는 원래 성격이 이 곳 저 곳 간보지 않고 한 우물만 제대로 파는 성격인지라

나와 제일 가까운 위치에 있던 보트의 기사님하고만 협상을 하기로 했다.


(캄퐁 아에르에 도착하기 전,

내가 어느 블로그에서 보았던 최고의 협상은 20브루나이달러에 1시간 30분 투어로,

투어 내용은 수상가옥 마을 구경과 맹그로브 숲에서 긴꼬리원숭이를 보는 것이었다.)

* 긴꼬리원숭이는 긴 코를 갖고 있어서 한국에서는 코주부원숭이라고도 불린다.


몇 시간 정도의 투어를 원해?

(보트 기사님)

 

“나는 1시간 30분의 투어를 원해. 얼마야?

(영완)


1시간 30분이면 40달러. 싱가포르 달러도 가능해.

맹그로브 숲에 가면 긴꼬리원숭이도 볼 수 있어.

빅 노즈 (코주부) 몽키! 몽키!

(보트 기사님)

 

“너무 비싸. 20달러 어때?

(영완)


20? 20달러는 곤란해.

(보트 기사님)

 

“그럼 25달러.

(영완)


그러면 1시간 30분에 30달러. 긴꼬리원숭이도 볼 수 있게 해 줄게.

(보트 기사님)

 

(흥정이 쉽지 않자 다른 블로그에서의 협상 후기도 읽어보기 위해 보트 기사님께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함.)

음... 잠깐만 시간을 줄 수 있겠어?”

(영완)


알겠어.

(보트 기사님)


(3분 뒤)


“(마지막 딜) 1시간 30분에 긴꼬리원숭이 보장. 25달러! 어때?

(영완)


안 돼. 25달러면 1시간만. 그래도 긴꼬리원숭이를 볼 수 있게 해 줄게.

그러나 30달러면 1시간 30분. 마찬가지로 긴꼬리원숭이는 볼 수 있어. 이 이상은 안 돼.

(보트 기사님)


계속해서 흥정이 길어지다 보니 어느새 나는 나에게 불만이 생기고 있었다.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 하나로 기껏 동경하던 브루나이까지 왔는데

겨우 5달러를 아끼겠다고 선착장 앞에서 길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내가 너무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급하게 내가 제안한 흥정을 파기시키고

보트 기사님이 제안한 30달러에 1시간 30분 협상을 체결하기로 했다.


“알겠어. 30달러에 1시간 30분.

대신 긴꼬리 원숭이 꼭 볼 수 있게 해 줘야 해.”

(영완)


OK. 내 보트에 타.

(보트 기사님)


캄퐁 아에르 수상가옥 마을+맹그로브 숲(긴꼬리원숭이 관람 포함)투어 [1인] 30브루나이달러(약 26,000원)

가이드와의 협상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 평균 20~40브루나이달러 내외

싱가포르 달러와 1:1 통용되어 싱가포르 달러로도 구입 가능(거스름돈은 브루나이 달러)


보트는 빠른 속도로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한적하고 넓게 트인 강 위를 달리다 보니 짜릿한 해방감이 들면서

가만히 있기만 해도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아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보트에 타기 전, 나는 기사님께서 보트 운전만 해 주시는 줄 알았는데 가이드의 역할도 같이 해 주셨다.

정말 그 어떤 가이드보다 책임감있게 가이드를 해 주셨다.


마을에 대한 설명과 보트를 타고 내릴 수 있는 제티의 위치,

그 외에 보트에서 보이던 브루나이 곳곳의 건물들에 대한 설명도 빠짐없이 알려 주셨다.


 


수상마을을 보는 내내

강 위에 있는 이 마을의 평범한 일상에 대한 궁금증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장을 보러 가기 위해 보트를 타고 육지로 나가는 생활이 평범한 일상일 테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창 밖으로 보이는 강의 모습도 평범한 풍경일 테다.

행여나 폭우가 내릴 때, 집이 침수될 걱정은 들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2호선 지하철을 타고 강남역으로 향하던 나의 평범한 일상과 비교하면

이들이 지내고 있는 평범한 일상은 나와 전혀 다른 세상 사람들의 일상처럼 생각되었다.


이런 마을에서 일상을 보내면 어떤 기분일까.


 


수상가옥 마을을 지나자 어느새 나의 시야에는 짙은 녹색만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트가 물살을 가르면 가를수록 더욱 울창해지는 양쪽의 풀숲과 늪지대의 눅눅한 풀냄새가 나를 반겨주었다.


낯선 광경과 낯선 감정.

지금까지 시골에서만 겪어본 자연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자연이었다.


브루나이의 자연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아니라

인간의 손이 닿을 수가 없는 곳 같았다.


극도의 위압감을 뿜어내던 맹그로브 숲의 자연에 나는 절로 숙연해지고 침착해졌다.


 


그리고 맹그로브숲 속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기사님의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바로, 긴꼬리원숭이를 찾기 위해서였다.


정적 속, 띄엄띄엄 새 소리만 들리던 울창한 숲 속에서

열심히 가이드를 해 주시던 기사님은 한 마디의 말도 없이 매서운 눈빛으로 숲 전체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행여나 엔진 소리 때문에 긴꼬리원숭이가 나타나지 않을까봐 보트의 속도도 최대로 낮추어주셨다.


그러나, 긴꼬리원숭이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기사님이 말씀하셨다.


“Try again?

(보트 기사님)


Yes.

(영완)


기사님께선 맹그로브 숲 일대를 한 번만 더 천천히 돌아보자고 하셨다.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그렇게 10분 가량을 또 천천히 달리며 보트 기사님은 나와 함께

맹그로브 숲 일대를 샅샅이 물색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긴꼬리원숭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기사님이 또 한 번 물어보았다.


“Try again?


나는 이번에도 Yes.”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세 번째 시도에도 긴꼬리원숭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긴꼬리원숭이를 보여주겠다는 기사님의 호언장담에 30달러 협상을 체결했는데

긴꼬리원숭이를 보지 못해 선착장으로 돌아가면 재협상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긴꼬리원숭이를 보지 못한 게 

의 문제지 기사님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답답한 갈등만이 계속되고 있었다.


세 번째 시도 끝에도 긴꼬리원숭이가 나타나지 않자

기사님은 원숭이들이 자고 있는 것 같다며 이만 선착장으로 돌아가자고 하셨다.

이에 나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선착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던 그 때,


“Hey! Hey! Hey! Hey! Hey! Hey! Hey! Hey!


갑자기 기사님이 작은 목소리로 나를 향해 다급하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기사님이 가리키던 손 끝을 바라보았는데


이럴 수가.


스무 마리 가까이 되는 긴꼬리원숭이들이 나무를 타면서 숲 속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탄성을 내질러 버렸다.


기뻐하는 나의 모습을 본 기사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나와 함께 덩달아 웃음을 지었다.


 

 


 기사님께서는 내가 긴꼬리원숭이를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나무의 바로 앞까지 보트를 끌고 들어가 주셨다.


덕분에 나는 긴꼬리원숭이들의 개구진 얼굴까지 제대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인근에 있던 다른 보트들도 긴꼬리원숭이를 찾아 헤매는 건 마찬가지였나보다.

나의 보트 기사님께서는 다른 보트 기사님들에게 손짓을 하며

지금 여기에 긴꼬리원숭이들이 있다고 가르쳐주었다.


내 기사님이 다른 기사님들에게 긴꼬리원숭이가 있는 장소를 알려주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선착장에서 이 기사님의 보트를 선택해서 타길 잘했다는 생각이 마구 들기 시작했다.


긴꼬리원숭이들이 시야에서 벗어나자 나는 함박웃음을 지은 얼굴로

기사님께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기사님의 사기를 최대로 북돋아 주었다.


기분좋은 마음으로 맹그로브 숲을 빠져나와 다시 수상가옥 마을 주변으로 향하는데

기사님께서 갑자기 어느 다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셨다.



이 다리는 브루나이에서 판매하는 생수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다리인데

기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 다리는 한국 기업이 지었다고 한다.


나중에 인터넷에 찾아보니 실제로 이 순가이 브루나이 대교는 한국의 대림산업에서 지은 다리로

문재인 대통령이 동남아시아의 3개국을 순방할 때 방문한 적이 있던 다리였다.


 


수상가옥 마을에 내린 나는 기사님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마을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걸어다니는 내내 눈 안에 담겼던 모든 모습들은 궁금증의 대상이 되어 주었다.


수상가옥 마을에서 선착장으로 올 때는 보트로만 올 수 있다.

마을 안에 있는 아무 제티에 가서 기다리다 보면 기사님이 보트를 태워 주시는데

이 때 보트 탑승 비용으로 1달러(약 870원)를 지불해야 한다.


캄퐁 아에르 수상가옥 마을과 맹그로브 숲 투어를 마치고 나니

가격 때문에 1시간 투어를 선택하지 않은 게 정말 현명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협상에서 이기려고 1시간 짜리 투어를 선택했다면 긴꼬리원숭이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나중에 호텔로 돌아와서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도 보다 보니 긴꼬리원숭이를 보기 위해서

두세 번씩 맹그로브 숲을 다시 도는 건 비일비재한 경우였다.


만약, 브루나이에 가서 울창한 맹그로브 숲 속에 있는 긴꼬리원숭이를 보고 싶다면

기왕 여행하는 김에 안전하게 1시간 30분짜리 투어를 골라

긴꼬리원숭이를 볼 시간을 버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팁을 전하고 싶다.


캄퐁 아에르 선착장에 도착한 나는 호텔로 돌어가서 쉬는 시간을 갖다가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의 개방 시간에 맞춰 다시 나오기로 했다.


 


여행 일정 동안 상대방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시간을 컨트롤하며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혼자 떠나는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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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7

D+6

결판의 날


코타키나발루에서 온전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밝았다.

내일이 되면 나는 페리를 타고 브루나이로 넘어간다.


이 얘기인즉슨,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쁠라우띠가 섬 투어 일정을 더이상은 미룰 수 없는,

이 날의 날씨에 나의 스노쿨링과 머드체험 등의

해양 스포츠 일정 여부가 판가름이 나는 결판의 날이 밝은 것이다.


전날 밤, 잠에 들기 직전까지도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며 잠에 들었는데

과연, 나는 무사히 쁠라우띠가 섬에 들어갈 수 있을까.


알람 시간에 맞춰 떠진 눈.

나는 재빠르게 이불 밖으로 나와 창밖을 바라보았다.


 


야속할 정도로 하늘에는 희뿌연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고 이내 강한 빗줄기를 매정하게 뿌리기 시작했다. 


하.. 씨x..


그래도 동남아시아는 스콜성 비가 자주 내리는 편이니 금세 비가 그쳐 다시 해를 띄우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 혼자만의 애처로운 희망고문에 불과할 뿐이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내 생각에는 투어가 취소될 것 같아. 픽업 장소로 나가지 않아도 되지?


(8분동안 아무런 답장이 없자)


우선 나는 호스텔의 픽업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영완)

 

좋은 아침 친구.

아... 오늘 쁠라우띠가 섬 투어는 헤비급 비 때문에 다시 취소되었어.

(도라)

 

이럴 수가... 쁠라우띠가...

(영완)



끝내 나는 코타키나발루에서의 해양 스포츠는 경험하지 못한 채 브루나이로 넘어가게 되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호스텔로 들어와 토스트를 먹으며 오늘의 일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때, 엊그제 탄중아루 비치에서 만나 필리피노 야시장에서의 먹방을 함께한 대니형 일행이 떠올랐다.

만약 형들의 일정에 정해진 계획이 없다면 대니형 일행과 하루를 보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일정을 조율하기 위해 대니형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는데

형들도 오늘 해양 스포츠를 하기 위해 가야섬에 들어가는 일정이셨다고 했다.


현지에서 해양 스포츠를 예약한 나와 달리

형들은 한국에서 미리 여행사를 통해 예약을 하고 온지라

취소를 확정받기까지의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만약 해당 여행사로부터 취소를 확정받으면 형들은 나와 함께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형들은 계속해서 지체되는 취소 확정에 지치기라도 했는지

일단 아침을 먹으며 취소 확정을 기다리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형들은 내게 아침 식사를 함께 하자며 나를 로컬 식당으로 부르셨다.


 


그렇게 이틀 만에 나는 대니형 일행을 이마고 쇼핑몰 주변 로컬 푸드 식당에서 다시 만났다.

형들은 여행사의 늦어지는 대처에 답답해하시며

빠른 취소 확정과 현지에서 환불에 대한 확신을 받은 나를 부러워했다.


그러면서 일행 중의 한 명이던 대이빗 형이

만약에 가야섬 투어가 취소되면 악어나 보러 가실래요? 코타키나발루에 악어 농장 있다고 하던데...라며

악어 농장에 대한 존재를 알려 주셨다.


그런데 아직 형들은 가야섬 일정에 대해서 취소를 확정받은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악어 농장 일정에 섣불리 OK를 하지 않았고

호스텔에서 블로그 작업을 하다가 따로 새로운 일정을 계획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호스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 때, 형들이 드디어 여행사로부터 가야섬 일정에 대한 통보를 받았다.

가야섬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된다고 한다.


그런데 대니형이 내게 자신을 대신해서 가야섬에 갈 의향이 있냐고 물었다.

대니형은 막상 가도 자신이 생각하던 바닷속의 풍경을 보지 못할 것 같다며

가야섬 일정을 자진해서 포기하셨다.


순간 엄청난 고민에 휩싸였다.


그런데 내가 쁠라우띠가 섬에 가기로 했던 이유가

가야섬이나 사피섬에 비해 보다 적게 찾는 관광객의 수와

그로 인해 더 깨끗하게 보존된 섬의 깨끗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쁠라우띠가 섬을 대신하는 일정으로 가야섬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 외에 답변을 전해야 하는 시간적인 상황도 촉박했던지라

나는 대니형에게 가야섬에 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렇게 대니형은 마사지 샵으로, 나는 호스텔로,

제임스 형과 대이빗 형은 가야섬으로 향했다.


대니형과 둘이서 새로운 일정을 계획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대니형과 카카오톡을 나눌수록 대니형은 느긋하게 쉬면서 시간을 보내는 걸

더 선호하시는 편이신 것 같아 혼자서 일정을 계획하기로 했다.


 


호스텔로 돌아온 나는 노트북을 켜고 코타키나발루에서의 당일치기 일정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땅한 장소가 눈에 띄지 않았다.


탄중아루 비치, 필리피노 마켓, 워터프론트몰, 이마고 쇼핑몰, 야외 수영장,

블루 모스크, 핑크 모스크, 반딧불 투어, 스쿠터 질주, 브리즈 비치 클럽, 선데이 마켓...


코타키나발루에서 해양 스포츠를 빼고 할 수 있는 액티비티는 다 한 상황이었다.


그 때, 대이빗 형의 악어 농장 언급이 뇌리를 스쳤다.


검색을 해 보니 악어 농장은 차로 약 40분 정도 걸리는 다소 먼 위치에 있지만

어차피 시간은 오늘도 제약될 것이 없었고,

한국에서 보기 힘든 악어라는 동물을 보면서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열리는 악어쇼에 참석하는 것이

지금의 상황에서 세울 수 있는 최고의 일정일 것 같았다.


악어쇼가 시작되기까지는 약 2시간 30분 정도를 남겨두고 있는 상황.

나는 제셀톤 포인트로 가서 쁠라우띠가 섬 투어의 비용을 환불받은 후

그랩을 이용하여 투아란 악어 농장으로 향했다.



[환불] 쁠라우띠가 섬 투어(스노쿨링, 장비, 호텔 픽업, 식사 포함) 240링깃(약 70,000원)


쁠라우띠가 섬 투어를 현지에서 저렴하게 예약하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말레이시아②] 쁠라우띠가 섬 투어와 브리즈 비치 클럽 바비큐 현지에서 예약하기 편을 정독해주세요.

(위 타이틀을 클릭하면 해당 게시글이 새 창으로 띄워집니다.)


그랩을 타고 투아란 악어 농장으로 향하는 도중,

기사님께서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짚어주셨다.

그것은 바로 투아란 악어 농장에서 제셀톤 포인트로 돌아올 교통편이었다.


투아란은 제셀톤 포인트와 달라. 여기처럼 그랩이 쉽게 잡히지 않을 거야.

(그랩 차량 기사님)

 

왜?

(영완)

 

시내로부터 너무 떨어진 곳이라서 그랩 차량이 거의 없어.

돌아올 교통편에 대한 준비는 되어 있어?

(그랩 차량 기사님)


아니..

(영완)


그러면 내가 투아란 악어 농장에서 돌아갈 때도 널 데려다 줄게.

(그랩 차량 기사님)


정말??

(영완)


물론이지.

(그랩 차량 기사님)


정말 고마워. 난 감동받았어.

악어쇼는 3시부터 시작되니 빠르면 4시, 아무리 늦어도 5시를 넘기지 않을게.

(영완)


알겠어.

(그랩 차량 기사님)


친절하신 그랩 차량의 기사님 덕분에 나는 악어 농장으로 가는 길에

돌아오는 교통편까지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40분 동안 열심히 달린 우리의 차량은 어느덧 투아란 악어 농장에 도착했다.


 


투아란 악어 농장 [1인(성인)] 30링깃(약 8,700원) + 세금 1.8링깃(약 520원)

→ 31.8링깃(약 9,200원) / 2019.08 기준


나른한 시간 오후 2시,

농장에 있던 모든 악어들은 부동자세를 취하거나

유유자적하게 물 위를 헤엄치며 조용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농장의 한적함에 다소 당황했지만

그러면서도 악어가 가끔씩 예고없이 몸을 움직이곤 했다.

크게 움직인 것도 아닌데 악어가 움직일 때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농장 곳곳에 있던 팻말들을 읽어보니 악어들의 평균 나이대가 60~70세였다.

악어들의 유유자적함을 바로 수긍하게 되었다.


악어님들. 편히 계세요. 얌전히 보다 갈게요..


 


그렇게 악어 농장을 둘러보는 도중, 갑자기 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바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악어 농장의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신나는 비트에 비해 너무나 움직임이 없던 악어들의 반응이 다소 민망했다.)


말레이시아에 온 이후 K-POP이 들렸던 적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마고 쇼핑몰에서는 NCT127, 트러블메이커, 티아라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코타키나발루에서의 불금을 즐기기 위해 가야 스트리트 야시장으로 가는 도중,

루카스 일행과 함께 탔던 그랩 차량의 기사님의 휴대전화에는 아이콘의 노래가 세 곡이나 있었다.


NCT127_無限的我(무한적아)

코타키나발루 이마고 쇼핑몰 / 2019.08.05


Trouble Maker(현승, 현아)_Trouble Maker(트러블메이커)

코타키나발루 이마고 쇼핑몰 / 2019.08.05


T-ARA(티아라)_SEXY LOVE

코타키나발루 이마고 쇼핑몰 / 2019.08.07


한국에서 보도하는 K-POP의 해외인기에 대해서 솔직히 과장하는 건 아닐까 싶었는데

이번 여행을 계기로 K-POP의 진실된 해외 인기와 내 나라 한국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악어 농장을 다 둘러보고 나니 어느새 시간은 악어쇼가 시작될 시간과 가까워져 있었다.

서둘러 공연장에 갔더니 나를 악어 농장까지 태워다 준 그랩 기사님이 악어쇼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사님께서도 악어 농장 주변에 있으면 어차피 손님을 태우지 못할 테니

나를 기다리면서 악어 농장을 구경하려고 하시는 것 같았다.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가 기사님께 인사를 건넸다.

기사님의 배려심에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죄송한 마음이 같이 들었다.


 

 


 악어쇼를 보면서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들었다.

보기만 해도 위협적이고 무서운 악어가 있는 물 속에

맨발로 들어가 맨손으로 악어를 유인하는 사육사의 조련에 감탄하면서도


악어를 하나의 생명체로 생각했을 때는

인위적으로 악어를 작대기로 자극하며 물밖으로 유인하는

조련 방법이 꽤나 가학적이라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또, 행여나 돌발적인 상황이 일어나

사육사가 악어에게 물리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싶은 걱정과

인간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정해진 시간마다 억지로 작대기를 맞으며

물밖으로 나와야하는 악어에 대한 걱정이 같이 들었다.


악어쇼가 끝나자 모든 관객들이 박수와 환호로 악어쇼에 화답했다.

나도 박수를 보내긴 했지만 마냥 밝은 얼굴로 악어쇼에 화답할 수는 없었다.


 


악어쇼를 다 보고 악어 농장을 나오면서 나는 일부러 나를 위해

악어 농장에서 시간을 할애해주신 기사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시원한 콜라 한 캔을 사 드렸다.


 


그렇게 쁠라우띠가 섬을 대신해서 악어 농장에서 오늘의 새로운 일정을 소화한 나는

KFC에 들러 간단하게 간식을 먹었다.

메뉴 이름이 기억나진 않지만 치킨에 수프 쏟은 맛이 났다.


맛이 없었다는 얘기다.



간식을 먹으며 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호스텔에 도착했다.

호스텔에 도착하고 나서는 짐 정리를 하면서 내일 아침 브루나이로 떠날 준비를 했다.


 


나는 호스텔 매니저에게 내일 아침 일찍 호스텔을 떠나야 하는

내 상황을 설명하며 얼리 체크아웃을 요청했다.


그렇게 내일을 위한 준비가 얼추 마무리가 되고 나니

나는 호스텔 테라스의 쿠션의자에 누워 코타키나발루에서의 마지막 야경을 눈에 담기로 했다.


그 때, 갑자기 대니형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마고 쇼핑몰의 아래에 매일 저녁마다 라이브 공연이 열리는 바가 있는데

그 곳에서 공연을 보며 같이 맥주를 마시자는 전화였다.

너무나 고마운 제안에 나는 렌즈를 끼지 않은 상태였는데도(나는 렌즈를 빼고 나면 웬만해서 외출을 하지 않는 편이다.)

바로 대니형이 알려준 징 레스토랑 바로 내려갔다.


 


아침 식사를 함께한 이후 다시 만난 형들에게 나는 오늘 하루 일정에 대한 얘기를 물어보았다.

대니형은 마사지 샵에 가서 편하게 마사지를 받은 후 숙소에서 여유있게 쉬면서 시간을 보냈고,

대이빗 형과 제임스 형은 동물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대이빗 형과 제임스 형에게 가야섬에 대한 일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된다고 해서

가야섬에 간 게 아니냐고 물어보니까

가야섬에 가는 배에 타려고 하는 순간, 아주 잠깐동안 내린 비 때문에

그 자리에서 바로 가야섬 일정에 대한 취소를 통보받았다고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형들이랑 악어 농장 같이 다녀올 걸..


형들 일행 중에서 이 날, 결국 최고의 승자는 대니형이었다.


무르익는 분위기 속에 점점 시간이 흘렀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바는 라이브 공연을 시작할 시간이 되어 있었다.



라이브 공연이 시작되었다.

전주가 흘러 나오는데 나와 형들은 모두 놀란 표정을 지은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라이브 가수들이 인디가수 숀의 ‘Way Back Home’을 영어로 개사해서 부르는 것이었다.

코타키나발루에서의 마지막 밤을 코타키나발루에서 친해진 한국인 형들과 한국 노래에 맥주를 마시며 보내게 되었다.


정말,


정말이지 행복했다.


이런 순간은 몇 달 전부터의 계획으로도 실천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 날, 나는 형들에게 나의 명함을 건네주었다.


 


여행을 계기로 금연을 실천하고 있었는데

술이 몇 잔 들어가고 대니형이 밖에 나가 연기를 뿜고 있으니 견디기가 힘들었다.


탄중아루 비치에서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 주었고,

필리피노 야시장에서도 나에게 줄 망고를 제일 먼저 구매해 준 유독 고마운 대니형과

맥주를 마시러 바에 내려갈 때, 나를 부르자는 얘기를 먼저 꺼냈다는 대이빗 형과 제임스 형.


코타키나발루에서 나와 함께한 모두가 뜻깊고 소중한 인연이지만

대니형 일행은 유독 더 기억이 짙게 남는 인연이다.

같은 한국인이었다는 동질감도 이유가 되지만

함께한 즐거운 시간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았기 때문인 것 같다.


한국에 돌아갔을 때,

자주 만나자는 그런 지키지도 못할 빈말은 서로가 하지도 않았지만

언젠가는 꼭, 한국에서 다시 만나 우리는 이 날처럼 다시 한 번 잔을 부딪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반딧불 투어에서 나의 말벗이 되어 주고,

나의 쁠라우띠가 섬 투어 일정을 위해 투어 스케줄을 강행하고 있는 도중에도

나의 카카오톡 문의에 불철주야 답장을 해 주었던 도라.


도라는 내가 브루나이로 떠나기 전, 같이 술을 한 잔 하자고 했었는데

우리는 그 약속을 오늘 실현하기로 했다.


대니형 일행과 헤어진 나는 도라의 퇴근 시간에 맞춰 필리피노 마켓으로 향했다.

도라는 나를 위해 코타키나발루의 현지 안주인 꼴뚜기 꼬치 구이와 생선 구이를 사 주었다.


 


예정보다 꽤 늦어진 도라의 퇴근과

내일 아침 일찍 브루나이로 가는 페리에 탑승해야 하는 나의 상황을 고려하여

결국 술은 마시지 않기로 했지만 도라와 나는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하며

코타키나발루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도라는 나를 제셀톤 포인트에서 처음 봤잖아. 그 때, 첫인상이 어땠어?

(영완)

 

 코타키나발루는 거의 가족끼리 오거나 연인들이 오는 경우가 많아서 좀 놀랐어.

(도라)


아, 혼자라서?

(영완)

 

 응. 왜 혼자 왔지? 싶었어.

(도라)


반딧불 투어에서 다시 만났을 때,

너가이드님께 나를 한국어로 ‘제셀톤 친구’라고 소개해 주었을 때 무척 고마웠어.

(영완)


“(웃음) 그 때 떠오르는 단어가 그냥 제셀톤 친구였어.

(도라)


 


이 날, 나는 한국의 술인 소주를 궁금해 하는 도라에게

입으로 소주병 따는 소리 내는 개인기를 가르쳐 주면서

앞으로 한국인 관광객들을 만나면 이 개인기를 선보여 보라고 했다.


도라는 입으로 내는 똑딱 소리가 꽤나 재미있게 들렸는지

계속 빵 터지면서 다음에 만나게 될 한국인 관광객에게 이 개인기를 선보이겠다고 약속했다.


혹시라도 가이드님께서 이런 거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보면 제셀톤 친구한테 배웠다고 하라 했다.



이제 나는 코타키나발루에서의 모든 일정을 끝마쳤다.


도라와 헤어지고 혼자 호스텔로 돌아오는데

계속 마음 한 편에서 아쉬운 기분이 일렁였다.

아직 누빌 나라가 두 곳이나 남았는데 왜 이렇게 아쉬운 걸까.



이유가 없다.

그냥 끝은 언제나 아쉽다.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기다 보니

내일 아침, 잠에서 깨면 새로운 나라로 이동한다는 설렘과

코타키나발루에서의 끝을 맺고 싶지 않았던 아쉬운 기분이 함께 들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잠에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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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가야 스트리트 야시장에 도착했다.

거리를 걷는 동안에 방콕의 카오산 로드가 머릿속에서 오버랩되었다.

카오산 로드가 젊음과 열정, 뜨거움이 들끓던 곳이었다면

가야 스트리트는 꼬치 굽는 불 냄새가 그윽하고 길거리 공연마저도 잔잔한,

부담스럽지 않게 흥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느낌의 야시장이었다.



우리는 가야 스트리트를 누비며 팔찌를 샀고 맛있는 식사도 함께 했다.


배부른 몸을 이끌고 숙소인 라바@사바 호스텔로 돌아온 우리는

식탁에 한데 모여 앉아 입가심으로 야시장에서 사 온 사탕수수 주스를 한 컵씩 나눠 마셨다.

생각해보니 식탁에 앉아서 사람들의 눈을 보며 대화를 나눈 것이 꽤나 오래 전의 일이었다.



직장생활 시절,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항상 불 꺼진 거실이 나를 반겼다.

나는 일주일에 절반 이상을 편의점에서 산 인스턴트 식품을 먹으며 저녁 끼니를 때웠고,

<한 끼 줍쇼>와 같이 가족끼리 식사하는 모습이 등장하는 방송을 보면서 외로움을 달랬다.

 

우리는 자라 온 나라, 그리고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지

Good Night.” 인사를 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 순간,

우리는 가족이었다.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2019.08.03

D+2

기적의 연속


아침이 밝았.

 

테라스로부터 보이는 탁 트인 뷰와 화창한 날씨는

아침부터 나의 여행 감성을 애타게 간지럽혔다.



나는 식탁에 앉아 조식을 먹었다.

잼이 네 개나 구비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블루베리 맛 잼이 제일 맛있었다.



오늘 나는 바이크를 렌트해서 블루 모스크와 핑크 모스크에 다녀올 예정이다.

면허를 딴 이후 한국에서 단 한 번도 운전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조금 걱정이 됐지만

두근대는 마음이 그보다 훨씬 더 컸다.



고고 사바 스쿠터 렌탈샵에 도착했다.

어제 내가 환전을 했던 위즈마 메르데카의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고고 사바 바이크 렌트 [1DAY/1인] 55링깃(약 15,000원) / 2019.08 기준 (보증금 200링깃)

1DAY : 렌트 시작 시간으로부터 24시간

ex) 대여시각 : 2019.08.02 AM10:30, 반납시각 : 2019.08.03 AM10:30

만약, 1DAY를 렌트해도 당일 반납을 원하면 폐점 시간인 저녁 7시 전까지 고고 사바로 돌아와 바이크를 반납해야 함.



고고 사바에서는 국제면허증 없이 한국 면허증만 소유하고 있어도 렌트가 가능하다.

그래도 나는 혹시나 하는 상황으로부터 대비하고자 국제면허증을 지참했지만

직원은 나의 한국 면허증만 확인하고 바이크를 렌트해 주었다.



신나는 분위기의 팝송을 크게 틀어놓고 코타키나발루 시내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크게 볼륨 키워놓고 자유롭게 운전할 짬은 아닌가 보다.

질주 시작 10분 만에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노래를 끄고 운전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구글 맵을 켜고 보니 내가 지금 있는 이 곳은 사바 주 청사로 이용 중인 건물, 툰 무스타파 타워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외관만 보면 호텔로 오해받기 좋은 건물이다.



한 15분 정도를 달렸을까.

목적지인 사바 주립 대학교, 한국에서는 소위 핑크 모스크라 불려지는 UMS 모스크에 도착했다.

UMS 모스크는 대학 건물인 만큼 모든 장소가 캠퍼스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 곳에서, 또 한 번 거짓말보다 더 거짓말같은 상황이 일어났다.



어제 나와 일본어로 대화를 이어가면서

코타키나발루에서의 첫 식사를 함께한 중국인 관광객을 이 곳의 입구에서 다시 만났다.


누군가 나를 두고 장난을 치는 것만 같았다.

어제 탄중아루 해변에서 같은 호스텔의 투숙객인 쿠알라룸푸르 친구를 만난 것에 이어

또 한 번, 우연으로부터 온 기적의 만남이 실현되었다.


이러한 만남이 이어질 확률은 대체 얼마나 되는 걸까.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놀랍고 신기하다.



UMS 모스크 입장료 [1인] 5링깃(약 1,500원) / 2019.08 기준


UMS 모스크는 정말 아름다웠다.


이런 캠퍼스에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이 곳의 학생들이 부러워졌다.

이 학교에 다니면서 CC도 하지 못하고 졸업을 하게 되면 진짜 안타까울 것 같다.



이 날, 무척 더워서 땀이 등에 한가득 고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학교의 학생인 느낌을 내고 싶어서 돌아다니는 내내 백팩을 메고 다녔다.


그렇게 또 한 번 떠오른 생각,


빨리 학교 가고 싶다.



UMS 모스크를 둘러 본 나는 이제 블루 모스크라 불리는 시티 모스크로 향했다.

블루 모스크로 갈 때는 길을 헤매지 않았다.


푹푹 찌는 더위, 살갗이 타는 과정이 서서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바이크의 속도를 더 올려서 빨리 시티 모스크로 향했다.



스쿠터로 약 15분 정도를 달려 시티 모스크에 도착했다.


시티 모스크는 코타키나발루를 대표하는 이슬람 사원 중 하나다.

멀리서 보아도 사원의 규모를 비롯한 위엄과 압도감이 절로 느껴졌다.

모스크 내부에는 정해진 시간에 한하여 관광객의 입장이 허용된다.

입장할 때는 정해진 복장을 입어야 하며 현장에서 대여가 가능하다.


시티 모스크 입장료 [1인] 5링깃(약 1,500원) 복장 대여 시 5링깃 추가 발생 / 2019.08 기준



엄마.. 나를 왜 한국에서 낳으셨나요..

내가 봐도 인정하게 되는 이 어울림.. 어쩜 이렇게 위화감이 안 느껴지..




새끼가 형 나이를 가지고..



시티 모스크까지 다 둘러본 나는 고고 사바로 돌아가 바이크를 반납하기로 했다.

이제 나는 바이크를 반납하고 나서 더 퍼시픽 수트라 호텔로 향해

오후 6시부터 시작될 브리즈 비치 클럽에서의 바비큐 파티를 즐기면 된다. 그런데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제셀톤 포인트 인근에서 차선 변경을 하지 못해 잘못된 길로 직진을 해 버리고 만 것이다.

심지어 꽤 오랫동안 직진을 한 후에서야 잘못된 길로 왔다는 것을 알아버린 나는

갓길에 바이크를 세우고 구글 맵의 도움을 받으며 다시 위치를 정리했다.



신호와 차선을 몇 번이나 어기고 말았다. 일부 운전자들로부터 경적 등쌀도 맞았지만 다 수긍할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고고 사바를 찾은 나는 렌탈샵에 들어가자마자 땀에 절은 얼굴로 물부터 한 잔 마실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브리즈 비치 클럽 바비큐 파티를 현지에서 예약하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말레이시아②] 쁠라우띠가 섬 투어와 브리즈 비치 클럽 바비큐 현지에서 예약하기 편을 정독해주세요.

(위 타이틀을 클릭하면 해당 게시글이 새 창으로 띄워집니다.)


그리고 저녁 6시, 그랩을 이용하여 브리즈 비치 클럽에 도착한 나는 예약 확인을 하고 자리를 안내받았다.

내 자리는 샐러드바와 가까워 음식을 가지러 가는 것은 편했지만 바다로부터는 다소 먼 위치였다.

그러고 보니 어제 예약을 하면서 바다와 가까운 자리로 부탁한다는 말을 미처 하지 못했다.

직원에게 혹시 자리를 옮길 수 있냐고 물어보았지만 현재 모든 자리가 만석이기 때문에 자리 이동이 어렵다고 했다.


사실 내 자리에서도 선셋과 뷰는 충분히 눈에 담을 수 있었지만

이왕 보는 거, 더 좋은 자리에서 볼 수 있으면 훨씬 좋으니까.




사실 모든 음식이 눈이 휘둥그레 돌아갈 정도로 맛있는 수준의 음식은 아니다.

그러나 선셋과 뷰를 눈에 담으며 바비큐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맛 그 이상의 특별함과 가치를 가져다 준다.



분위기 맛에 먹는다., 분위기에 취한다.는 말을 몸소 느꼈다.

음식은 개인적으로 머쉬룸 수프가 제일 맛있었다.


 



  브리즈 비치 클럽 바비큐 파티 [1인] 75링깃(약 21,000원)

음료 별도(Happy Hour 시간(7PM~9PM)에 일부 음료(맥주, 칵테일 포함) 주문 시 50%할인) / 2019.08 기준


바비큐 파티에서의 만찬을 끝내고 한 켠에 놓여 있던 해먹에 누워

귀에 파도 소리를 담고, 눈에 황홀한 선셋과 하늘을 담는데 감히 내가 이 순간을 만끽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행복했다.


역대 나의 여행 랭킹 중 1위를 차지했던 태국.

태국은 이 순간을 기점으로 1위의 자리를 말레이시아에게 내어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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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1

D-day

소년, 떠나다


퇴사한지 하루만에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캐리어를 끌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의 시작은 진에어와 함께 하기로 했다.


각 항공사 별 탑승권을 모으고 있는데 셀프체크인 제도의 도입으로 인해 컬러탑승권 발급이 어렵다고 한다.

과거에 영화티켓을 모을 때도 어느샌가 모든 티켓이 영수증 발급으로 바뀌어 기분이 언짢았는데

비행기 탑승권까지 흑백탑승권으로밖에 발급되지 않는다고 했을 때는 아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순순히 꼬리를 내리며 포기할 내가 아니다.

나는 수하물을 수속하는 체크인 카운터에서 지상직 승무원의 도움을 받아 컬러탑승권을 발급받았다.

나와 같이 탑승권을 모으고 있을 여행러들을 위해

인천공항에서 국내 저가항공사의 컬러탑승권 발급받는 팁을 공유하고자 한다.


국내 저가항공사 컬러탑승권 발급받는 방법


1.우선, 셀프체크인을 통해 탑승 수속을 마친다.

(진에어의 경우 탑승 수속은 셀프체크인으로밖에 진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2. 흑백탑승권을 발급받는다.

(셀프체크인을 통해서는 오로지 흑백탑승권밖에 발급되지 않는다.)


3. 수하물을 수속한다.


4. 체크인 카운터에서 수하물(캐리어)의 무게를 잴 때,

담당 지상직 승무원에게 흑백탑승권을 보여주며 컬러탑승권의 재발행을 요청한다.


5. 컬러탑승권을 발급받는다.

(이 때, 흑백탑승권은 폐기처분된다.)


※해당 방법은 진에어 체크인 카운터의 헬프 카운터에 계시던 지상직 승무원분께서 말씀해주신 방법이며

탑승권을 모으고 있어서 그런데 재발행 해주시겠어요?”라고 하면 즉석에서 바로 재발행을 해 주신다고 하셨음.

진상을 부리거나 무리한 요구로 컬러탑승권을 받아내는 방법이 아님.


이제는 수하물 수속 후, 캐리어 속의 내용물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수하물을 다시 수속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 즉, 탑승권을 재발행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만 컬러탑승권이 제공된다고 함.


해당 방법은 제주항공(2018.11이용), 진에어(2019.08이용)에서 가능한 방법이며,

타 저가항공사(이스타항공, 에어부산, 에어서울, 티웨이항공)는 이용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장담할 수 없음.



코타키나발루 행 비행기의 내부 정리가 길어지면서 탑승은 원래 예정 시간보다 10분이 늦어졌다.

그러나 전혀 급할 것 없었던 일정 탓에 그러려니 하면서 게이트가 열리기를 기다렸다.



10분이 지나고 탑승 진행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게이트가 열리더니 승객들은 일제히 탑승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제 비행기는 익숙해질 만큼 타 보았다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나는 창가 자리를 포기하지 못한다.

창가 자리는 화장실 가기가 번거롭다? 그게 뭣이 중헌디.



비행기가 이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푸실리 샐러드가 제일 맛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입이 심심하던 찰나였는데 요깃거리로 딱 좋았다.



항상 밤비행기만, 또는 낮비행기만 타 보았는데

낮에 출발해서 한밤중에 도착하는 비행기를 타게 되니

하늘 위의 선셋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세계 3대 선셋 중의 하나를 볼 수 있는 곳이 코타키나발루라는데

코타키나발루는 향하는 하늘길의 선셋마저도 무척이나 장관이었다.



코타키나발루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1>을 다시 보았다.


지겹도록 말하지만,

서로의 꿈을 모두가 함께 이루는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1>의 시놉시스는 언제 되새겨 보아도 감동적이고 아름답다.


나도 내 사람들이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내 한 몸 다 바쳐서 힘을 더해주고 싶고,

나 또한 그들의 힘을 받아 격려받고 나아가면서 내 꿈을 이루고 싶다.



코타키나발루에 도착했다.

비행기는 인천에서 10분 늦게 출발했지만 코타키나발루에 10분 빨리 도착했다.



코타키나발루 공항은 생각 그 이상보다 작았다.

인천공항이 거대한 규모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국제선 도착 게이트를 나오니 수많은 한국 여행사의 가이드들이

저마다 고객들의 이름 적힌 팻말을 들고서 픽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의 시차가 적용되었다.

서울은 자정을 넘겼고, 말레이시아는 자정을 앞두고 있었다.


머지않아 또 떠나게 될 여행에는 더 많은 시차가 적용되는 나라에 가 보고 싶다.



공항으로 마중나온 픽업 차량을 타고 공항 근처에서 하룻밤을 묵을 에미넌트 호텔로 왔다.

(예정보다 비행기가 빨리 도착해서 내가 픽업 차량을 기다린 건 안 비밀..)



에미넌트 호텔은 코타키나발루 공항 근처에서 묵을 수 있는 호텔들 중에 상위권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엄청 화려하고 호화로운 것은 아니지만 공항으로 무료 픽업을 요청할 수도 있는 데다가

시간도 차량으로 1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코타키나발루 노선 특성 상 국내 저가항공사는 밤에 도착하는 항공편이 많은데

이 정도의 옵션을 갖춘 호텔이라면 더 이상 묻고 따질 여지가 없지 않을까 싶다.


에미넌트 호텔(공항 무료 셔틀 요청 포함) [1박/1인] 28,893원 / 아고다 기준(2019.07 예약)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무사히 하룻밤을 보낸 나는 깨끗하게 방 정리를 마쳤고,

체크아웃을 한 후 호텔을 나와 *그랩을 이용하여 메인 베이스캠프인 제셀톤 포인트 근처로 향했다.


그랩 : 코타키나발루 식의 카카오택시 어플.(그러나 택시를 호출하는 어플은 아님.)

근처 차량 매칭 속도도 빠르고 웬만한 장소는 5링깃(1500원)~10링깃(3000원) 선에서 저렴하게 이동할 수 있다.



2019.08.02

D+1

기막힌 인연의 시작



그랩을 이용해서 제셀톤 포인트에 도착했다.

제셀톤 포인트는 해양 스포츠를 예약하거나 섬으로 이동할 수 있는 배편을 예약할 수 있는 곳으로

코타키나발루의 육지와 바다를 잇는 관문과도 같은 곳이다.


물론 나도, 곧 해양 스포츠와 배편을 예약하겠지만 지금은 아침 식사가 우선이다.

코타키나발루에 도착한 이후 첫 식사가 될 지금의 아침 식사는

이 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이펑 락사라는 식당에서 현지식의 로컬 푸드를 먹기로 했다.


처음부터 그랩을 타고 이펑 락사로 이동했으면 편했겠지만,

내 여행 스타일이 힘들어도 걸으면서 주변을 눈에 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에

목적지를 내 발로 직접 찾아가는 재미를 느낀 후에 식사를 하기로 했다.


15분 가량을 걸어 도착한 이펑 락사.

가게로 들어가려는 찰나, 한 중국인 관광객이 내게 말을 걸었다.


처음엔 중국어로 말을 하더니 내가 중국어를 못 한다고 했다.

그러더니 영어로 또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대체 그는 내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역으로 내가 질문을 건넸다.

 

“I’m Korean. I can’t speak Chinese and English.

But I can speak Japanese. You can speak Japanese?”


일본어를 할 수 있냐는 질문이었다.

그러자 그는 혼토데스카?” 라고 대답했다.


한국인과 중국인이 말레이시아에서 만나 일본어로 대화를 하고 있다.


이거 참 기이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그가 내게 묻고 싶었던 것은 이 가게가 유명한 가게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페이스북에서 이 식당을 접했다.

한국에선 이 가게가 로컬 푸드를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고 대답했다.



페이스북 [오즈 트래블_OZ Travel] 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펑 락사 소개 포스트



이펑 락사에서 먹은 코타키나발루에서의 첫 식사.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는지라 직원에게 베스트 메뉴를 달라고 했다.


고수 맛이 강했지만 새로운 맛이라 느끼면서 먹다 보니 나쁘지 않게 받아들여졌고,

음료 또한 신선한 기분으로 먹기에는 괜찮은 맛이었다.



식사를 마친 나는 중국인 관광객과 작별 인사를 하고 위즈마 메르데카로 향해서 환전을 했다.

그리고 제셀톤 포인트로 가서 쁠라우띠가 섬 투어와 멈바꿋 반딧불 투어를 예약할 예정이다 .


 


말레이시아 여행 팁을 전해받는 중에

코타키나발루의 경우 위즈마 메르데카에서 환전을 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아직, 여행 초반이고 가계부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공항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는 정확하게 비교하지 못했지만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날 리는 없는 법, 그렇겠지. 그런가 보다. 라는 마음으로 환전을 했다.


여행 경비 총 100만원.

그 중 10만원은 인천공항 우리은행 창구에서 링깃으로, 50만원은 싱가폴 달러로 환전했다.

나머지 40만원 중 30만원은 코타키나발루 위즈마 메르데카에서 환전했고,

나머지 10만원은 한국 돈 그대로 보관 중에 있다.

이 돈은 나중에 경비가 부족할 시, 추가 환전을 위한 비상금이다.



제셀톤 포인트로 온 나는 14번 창구로 가서 쁠라우띠가 섬 투어와 멈바꿋 반딧불 투어를 예약했다.

코타키나발루 해양 스포츠 섬 투어는 한국에서 미리 예약하는 것보다 현지에서 예약하는 것이 보다 저렴하다.


그러나 나는 가격을 떠나 기상 이변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코타키나발루 현지에 도착해서 일기예보를 확인한 후 해양 스포츠를 예약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았다. 14번 창구에서는 도라’라는 직원이 나의 예약을 도와 주었다.


“8월 2일 토요일, 내일 쁠라우띠가 섬 투어와 반딧불 투어를 예약하고 싶어.

(영완)


“미안해, 아쉽지만 8월 2일은 예약이 다 차 있어. 3일은 어때?

(도라)


“일기예보에서 3일 저녁에 비가 온다고 했다. 비가 와도 반딧불을 볼 수 있어?

(영완)


“윈디(바람)가 많으면 못 봐. 레인(비)는 괜찮아.

(도라)


“알겠어. 하루에 다 가능한 거지?

(영완)


“응, 예약해 줄까?

(도라)


쁠라우띠가 섬 투어(스노쿨링, 장비, 호텔 픽업, 식사 포함) + 멈바꿋 반딧불 투어(식사, 간식 포함) - 1DAY

[1인] 390링깃(약 113,000원) 현장에서 10링깃 할인 → 380링깃(약 110,000원)

제셀톤포인트 14번 창구 도라 기준(2019.08 예약)



쁠라우띠가 섬 투어와 멈바꿋 반딧불 투어 예약을 마치고

코타키나발루에서 지낼 7일의 일정동안 나의 집이 되어 줄 라비@사바 호스텔로 이동했다.


이 때도 역시 걸어서 이동했다.



제셀톤 포인트 앞에 있던 한 가게에서 코코넛 쉐이크를 구매했다.

첫 맛이 정말 시원하고 맛있었는데 먹으면 먹을수록 질리는 맛이었다.

주스가 많이 만들어졌다며 무료로 리필을 해 주셨는데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마음으론 울고 있었다.


걸어가다 보였던 중앙시장에서 만난 한 소녀는 내게 시식을 해 보라며 망고와 람부탄을 건네 주었다.

과일 정말 싫어하는 편인데 이 곳에서 마냥 내 입맛에 맞출 수는 없는 노릇.

모든 것을 도전이라 생각하며 입 안으로 망고와 람부탄을 넣었다.



이렇게 대놓고 관광객 티 내는 사진 또한 무척 싫어하는 편이지만,

막상 랜드마크를 무시하고 지나치려니 아쉬운 기분이 들어서 한 컷 찍었다.



이 곳이 바로 내가 코타키나발루에서 6박을 보낼 라비@사바 호스텔이다.

이마고 쇼핑몰의 아파트 건물에 위치하고 있으며 선셋을 볼 수 있는 테라스와 수영장이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지금까지의 여행에서는 호텔과 게스트하우스만 이용했는데 이렇게 가정집과 같은 호스텔에서 묵게 된 것은 처음이다.

들어가자마자 집 같다.’는 느낌을 바로 받았다.


나는 이 곳을 찾기 위해 이마고 쇼핑몰 주변을 무려 한 시간이나 헤맸다.

한국과 일본, 태국에서도 이렇게까지 길을 헤맸던 적은 없었는데

이 호스텔은 대형 쇼핑몰 건물에 있는 숙소였음에도 불구하고 찾기까지 무척이나 시간이 많이 걸렸다.


호스텔에 도착하고 나니, 이 곳은 일반 호텔처럼 간판이 있는 것이 아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파트 건물의 8층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나 말고도 많은 투숙객들이 이 곳을 쉽게 찾지 못한다고 한다.


라비@사바 호스텔(수영장, 조식 포함) [6박/1인] 294링깃(84,409원) / 부킹닷컴 기준(2019.07 예약)

현지에서 현금결제만 가능



고된 몸을 잠깐 침대에 눕히고 쉬고 있는데 맞은편 침대에 있는 한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Where are you from?”


나는 서울에서 왔다고 대답했고 이에 그는 반갑게 나를 반기며

자기는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서 왔다며 인사를 건넸다.



잠시 침대에 누워서 고단함을 덜어낸 나는 옷을 갈아입고 서둘러 더 퍼시픽 수트라 호텔로 향했다.


더 퍼시픽 수트라 호텔에서는 매주 금, 토, 일요일마다 호텔 내의 브리즈 비치 클럽에서 바비큐 파티가 열린다.

샐러드바 뷔페는 물론, 요리사가 직접 굽는 바비큐가 무한리필로 제공되며 호텔 투숙객이 아니어도 파티에 참가할 수 있다.

그러나 참가하기 위해선 예약이 필요하다.


최근, 한국인 관광객들의 전화 예약이 폭주하여 이제는 이메일과 직접 방문 예약만 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금요일이었던 당일, 토요일과 일요일 중 하루로 브리즈 비치 클럽 바비큐 파티를 예약하기로 했다.



더 퍼시픽 수트라 호텔은 5성급 호텔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정말 아름답고 호화로웠다.

여자친구와 함께 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나는 일요일에 쁠라우띠가 섬 투어와 반딧불 투어 일정이 있기 때문에

브리즈 비치 클럽 바비큐 파티는 토요일밖에 참석할 수 없었다.


나는 직원에게 바로 내일 바비큐 파티에 참석하고 싶은데 예약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직원은 내게 참석 인원 수와 도착할 수 있는 시간대를 묻더니 가능하다고 했다.


당일 저녁 시간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다음 날의 예약이 가능하다니.

생각만큼 예약 경쟁률이 치열한 편은 아닌 것 같다. (2019년 8월 기준)



브리즈 비치 클럽 바비큐 파티의 예약을 마치고 나는 탄중아루 해변으로 향했다.

세계 3대 선셋을 볼 수 있는 곳 중 하나라는 탄중아루 해변에서 나는 코타키나발루의 선셋을 그대로 눈에 담기로 했다.


그런데,


예능이었으면 조작 의혹은 물론, 제작진 입장 표명을 요구할만 한 상황이 벌어졌다.



바로 1시간 전, 호스텔에서 내 맞은편 침대를 쓰는 쿠알라룸푸르 관광객을 만난 것이다.

그는 나를 보더니 반갑게 “Hey!!” 라고 격하게 소리치며 인사해 주었다.

그는 그의 중국인 여사친들과 함께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중국인 여사친들도 나와 같은 호스텔의 투숙객이었으며 남자인 우리와는 방이 달랐다.



그렇게 나는 그들 일행에 조인하여 탄중아루 해변의 선셋을 눈에 담았다.

선셋을 배경으로 사진도 많이 찍고, 밀려오는 파도에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면서 함박웃음도 지었다.




코타키나발루 선셋이 특별한 이유는 해가 지는 과정에서 붉은 빛의 하늘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물감을 풀어 놓은 것 같은 영롱함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 모습은 사진으로도 담아낼 수 없다.

예전에 한 TV 프로그램에서 들은 말인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카메라는 눈이라고 했다.

아무리 잘 나온 사진이라도 사진은 그저 사진일 뿐, 이 말에 공감하고 싶다면 그냥 코타키나발루로 떠나길 바란다.



완전히 해가 저물자 중국인 여사친들은 내게 저녁 식사를 함께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러나 쿠알라룸푸르 친구는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함께하지 못했다.


중국인 여사친들은 불금을 기념하기 위해 가야 스트리트로 가자고 했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불금 기념하며 가슴 설레하는 것은 똑같나 보다.



가야 스트리트로 이동하는 도중에 차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공유했다.

내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던 쿠알라룸푸르 친구는 나와 후권이가 함께 찍은 셀카를 보고 귀엽다고 해 주었다.

그 반응에 궁금증을 갖던 중국인 여사친들도 내 피드 속의 사진을 보더니 격하게 귀엽다는 반응을 보여 주었다.



후권아,, 못 본 지 조금 시간 흘렀네,, 조만간 얼굴 보고 늘 그랬듯 맥주 한 번 조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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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26일,


생애 첫 직장 면접

당시 신분 육군 병장.


아직 전역도 안 한 군인인데 설마 채용하겠어?”


전역 다음 날부터 출근할 수 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201832일,



뜻밖의 합격 통보.


채용담당자는 나의 전역일을 다시 묻더니

출근일날 뵙겠다고 했다.


 

2018312일,



전역,

안양라이프 종료.


애정하는 후임들의 축하를 한 몸에 받으며 위병소를 나섰다.



2018313일,



입사,

치과라이프 시작.


낯설고 혼란스러웠던 매일.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섣불리 직장생활에 발을 들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매일 들었다.


 

2019731일,



1년 5개월의 생애 첫 직장생활 종료.


2학기 복학 결정여부를 더이상 늦출 수 없었던 마지막 휴학기의 끝자락에서

나는 연봉협상을 거절하고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저, 학교 복학해서 졸업하고 싶어요.

 


201981,



퇴사 후부터 2학기 복학 전까지 주어진 3주의 시간.

나는 트래블러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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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개국을 누빌 예정이며, 첫 번째로 누빌 나라는 말레이시아다.


군생활부터 직장생활까지.

 

모든 날들에 떳떳할 정도로 잘 살아왔다고 자부할 순 없지만

누구보다 숨가쁘게 살아왔다고는 말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퇴사 소식을 전하자

과반수 이상은 오랜만에 얼굴이나 한 번 보자며 약속 날짜를 정하자고 했다.

 

그러나 당장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 제안에 빈말 섞인 대답은 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흐지부지 기억도 나지 않는 애매한 대답을 전했다.

 

무엇보다 나만을 위한 시간을 먼저 가지고 싶었다.

 

익숙하지 않은 나라, 흔히들 갈 생각을 하지 못하는 나라,

경비가 비싸도 한 번은 과감하게 소비해서 가 볼만한 나라.

 

내가 퇴사와 복학 사이에 누빌 말레이시아와 브루나이, 싱가포르는

이러한 기준 아래에 정해지게 되었다.

 

생애 처음으로 편도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고,

대부분의 일정은 정하지도 않고, 현지에서의 상황에 맡기기로 한 채

코타키나발루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두렵지만 설레고, 무섭지만 기대된다.

퇴사와 복학 사이에 있는 소년,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하는 나의 이야기가 지금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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