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을 벗고

내얘기 2018. 3. 6. 16:04

01.

아메리카노에 담겨있던 얼음이 없어졌다는 것은 둘 중에 하나다.

 

얼음을 입안에 넣어 깨 먹었다던가,

카페에 있던 시간이 오래되어 얼음이 모두 녹아 버렸다던가.

 

우리는 후자에 해당되었다.




02.

3, 그리고 우리.

결국엔 학교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얼음이 녹은 후,

2014년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모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교문을 들어서자마자 절로 나온 졸업생들의 단골 멘트.

우리 땐 이런 거 없었는데.”

지나간 시간의 흐름을 실감하며 나이를 떠올리니

어느 덧 우리는 스물 셋이었다.




03.

가끔 이런 생각을 해.

우리가 원래 40살의 날들을 살아가고 있는데 잠에 들었어.

그 잠에서 깼더니 지금 현재 우리의 모습이야.

그러면 너는 어떻게 살래?”

 

이 질문에 사실적 근거는 없지만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왜일까.

 

너가 요즘 힘들어서 그런 생각 하는 거야.”


친구의 질문에 애써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마냥 그 질문을 가볍게 흘려 넘길 수만은 없었다.

 

그만큼 학창시절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인생을 장식하고 있는 수많은 밀리언조각 중에서

가장 소중한 조각임이 분명할 테니까.




04.

이 날, 나는 친구에게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소개해 주었다.

 

내게 건넸던 그 질문이 이 뮤직비디오의 시나리오가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 뮤직비디오를 보면 분명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게 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근 몇 년간 느껴보지 못했던 특별한 여운에 취해

당분간은 길을 걷다가 내가 졸업한 모교의 교복 입은 학생들을 보면

괜한 기분 탓에 고개를 숙이며 멋쩍게 씩 웃는 날들이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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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oi0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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