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란 섬에 올 때, 사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따웬 비치로 향한다. 왜냐하면 따웬 비치에는 대부분의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해양 스포츠가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만큼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다. 우리는 그것을 피해 한적하게 해양 스포츠를 즐기고자 싸매 비치로 왔지만 정작 싸매 비치에서는 패러세일링이 가능한 장소가 없다는 것을 이 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고민을 하던 도중, 우리를 지켜보던 오토바이 택시기사가 말을 걸어 오더니 솔깃한 제안을 건넸다.

 

 그는 싸매 비치에서 패러세일링과 제트스키의 이용이 가능한 해변까지 200바트만 받고 태워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가 패러세일링과 제트스키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달콤한 내용에 비해 요구하는 가격이 너무나 저렴해서 미덥지 않은 구석도 있었지만 그것을 꼼꼼하게 짚고 따지기에는 꼬란 섬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다. 그래서 그냥 그를 믿기로 했다. 우리는 즉석에서 200바트를 지불하고 그의 오토바이에 몸을 실었다. 10분 가량을 달려 우리는 그가 데려다 준 해변가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딘가 찜찜했다.

 

S#19. 따웬 비치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아 오지 않으려 했던 따웬 비치


 시끄러운 호객 행위 소리와 싸매 비치에 비하면 한여름의 해운대 인파를 연상시키는 수많은 사람들이 해양스포츠를 즐기고 있던 이 곳. 그렇다. 이 곳은 우리가 오지 않으려 했던 따웬 비치였다. 우리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패러세일링과 제트스키는 확실히 체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은 패러세일링부터 체험하기로 했다. 오토바이 택시기사는 우리를 이끌고 장사꾼에게 가더니 패러세일링 두 바퀴를 1000바트에 제안했다. 사전에 조사하고 온 가격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바가지 가격이었다. 나는 흥정을 시도했다. 그러나 장사꾼은 완강했다. 깊은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이 돈에 패러세일링을 하고 돌아가느냐, 하지 않고 돌아가느냐. 그러나 솔직히 하지 않았을 때 아쉬운 쪽은 우리였다. 그래, 태국 물가가 워낙 저렴해서 다른 부분에서 많이 소비하지 않았으니 패러세일링이 원래 이 가격이었다고 생각하며 우리는 1000바트에 두 바퀴를 합의했다.

 

 그러나 우리는 사전 예약 없이 즉석에서 해양 스포츠를 구매했기 때문에 다른 이용자들이 어느 정도 모였을 때 패러세일링을 하러 출발할 수 있었다. 그래서 보트 위에서 다른 이용자들이 오기까지 기다렸다. ,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니. 더군다나 바가지 가격에 당한 탓에 정원이의 표정도 어딘가 떨떠름해 보여 나는 정원이의 표정을 주시하며 우기인데 비 안 온 게 어디야~ 이왕 하는 거 재밌게 해 보자!”라고 오버를 떨며 얼굴에 미소를 되찾아 주었다. 이윽고 중국인 관광객 세 명이 우리가 타고 있던 보트에 탑승했다. 그제서야 패러세일링 보트는 바다 한가운데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안전 장비를 착용하고 순서대로 번갈아가며 패러세일링을 체험했다. 모든 불평과 불만은 이 순간 잊혀져 버렸다. 차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이 떠오르는 낙하산 풍선을 메고 하늘을 날고 있으니 봄 소풍에 놀러 온 어린 아이마냥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보트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정원이는 하늘 위의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시그널을 보냈다. 하늘과 바다 사이를 날고 있다 보니 인간은 자연의 범위 안에서 너무나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의 패러세일링이 끝나자 다음 차례로 정원이가 하늘을 향해 낙하산을 메고 날아갔다. 나는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주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그런데 그 때, 보트에 함께 탄 장사꾼들이 핸드폰을 달라며 사진을 대신 찍어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폴라로이드 사진까지 찍어주겠다는 제안을 했는데 모든 것에는 돈이 따라야 했다. 부담되는 가격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핸드폰으로 찍는 사진까지 억제하며 돈을 달라고 하니 표정이 찌푸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했다. 행복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 아쉬웠지만 정원이가 전날, 루프탑 인피니티 풀에서 말했던 것처럼 행복한 순간을 눈에 먼저 담겠다고 했던 말을 받아들여 우리는 비록 패러세일링의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어도 행복했던 당시의 기분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자위하며 패러세일링을 마쳤다.

 

 패러세일링을 마치고 따웬 비치의 백사장으로 돌아왔다. 오토바이 택시기사는 바로 제트스키를 타러 가자며 우리를 안내했다. 그 때였다. 정원이의 표정에 다시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이유를 막론하고 패러세일링을 즐겁게 체험한 건 사실이지만 중국인이 너무 많아 오지 않으려 했던 이 따웬 비치에서 또 한 번 바가지 가격에 당하면서까지 제트스키를 타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정원이의 뜻이었다. 이어 제트스키마저도 따웬 비치에서 하고 돌아가면 후회할 것 같다는 정원이의 의사를 받아들여 우리는 오토바이 택시기사에게 다른 해변으로 태워다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우리는 오토바이 택시기사와 가벼운 실랑이가 붙고 말았다.

 

 “우리는 따웬 비치에 오지 않으려 했다. 제트스키가 가능한 다른 해안가로 우리를 데려다 줘.” (정원)

 “너희가 패러세일링을 하러 간 사이에 이미 제트스키의 흥정과 구매를 마쳤다. 그럴 수 없다.” (오토바이 택시기사)

 “부탁이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 해양 스포츠를 즐기고 싶다.” (정원)

 “XX(확실한 뜻은 모르겠지만 말투나 당시 대화의 분위기가 태국어로 욕을 하는 듯 했다.)” (오토바이 택시기사)

 “……” (정원, 영완)

 “따라 와.” (오토바이 택시기사)

 

 우리는 끝내 오토바이 택시기사에게 티엔 비치로 데려다 줄 것을 부탁했다. 대신에 그는 티엔 비치에서의 해양 스포츠는 알선해 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 뜻에 동의했다. 가볍게나마 실랑이가 있던 탓에 우리는 정적된 분위기 속에서 티엔 비치에 도착하게 되었다. 솔직히 우리도 오고 싶지 않았던 따웬 비치에서 패러세일링을 하게 되어 예상 못한 손해를 보았지만 그러면서도 싸매 비치에서의 계약을 먼저 파기한 것이 미안해서 우리는 오토바이 택시기사에게 티엔 비치로 데려다 준 150바트의 비용에 50바트의 팁을 더해서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S#20. 티엔 비치

 티엔 비치는 따웬 비치와 비교하면 오버를 조금 더해 무인도 수준으로 한적했다. 그래서인지 따웬 비치의 바다보다 더 깨끗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티엔 비치 표지판

 

 이어 나는 정원이에게 챙겨 온 군복을 래쉬가드의 위에 입자고 제안했다. 나는 꼬란 섬에 입성하기 전, 정원이에게 잊지 않고 군복을 챙기라고 신신당부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에서 짐을 챙길 때부터 군복을 꼭 챙기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 이유는 바다에서 청춘의 이미지를 부각시킬 수 있는 수단과, 군대에서 만난 우리의 인연을 표현할 수 있는 건 군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색이라면 생색인데 아마 외국의 해변에서 군복을 입고 거닐 생각은 아이디어 뱅크인 내가 아니면 쉽게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웃음)


 한적한 티엔 비치에서 군복으로 환복한 후 찍은 경례샷


 군복 기획은 내가 생각했지만 정말 감탄스러운 기획이라 생각한다. (뿌듯V)

 

 그래서 우리는 티엔 비치에 도착한 이후 래쉬가드 위에 군복 상의를 입고 해변을 거닐었다. 그런데 아무리 걸어도 제트스키를 할 수 있을 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바다 위에 보이던 보트들도 어린이들이 단체로 탑승하는 바나나보트 정도였다. 엔진 고장으로 인한 시간 지연과 패러세일링 대기까지. 그런 와중에 제트스키를 위해서 언제까지 티엔 비치를 기약없이 걸을 수만도 없다. 우리는 긴급 회의에 들어갔다. 짧은 회의 끝에 우리는 좋은 방안을 도출했다. 그것은 바로 선착장이 있는 싸매 비치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싸매 비치에는 패러세일링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을 뿐, 제트스키는 이용할 수 있었고 우리에게 패러세일링을 할 수 없다고 알려주신 아주머니에게 가면 얼굴도 트였기 때문에 제트스키를 대여하는 게 지금보다 더 수월할 것 같았다. 게다가 파타야로 나가는 선착장까지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어서 시간에 쫓길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이 상황에선 이것만이 정답이었다. 우리는 티엔 비치에서 만난 오토바이 택시기사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싸매 비치로 돌아왔다.

 

S#21. 싸매 비치

 싸매 비치는 티엔 비치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돌아오는 데 오토바이로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싸매 비치로 돌아온 우리는 싸매 비치에서 패러세일링을 할 수 없다고 알려주신 아주머니를 찾아가 제트스키를 대여했다. 나는 워낙에 운전이 미숙한 편이라 제트스키를 운전하다 보면 어딘가에 부딪쳐 수리비를 물어주어야 할 상황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정원이에게 네가 운전하는 제트스키의 뒤에 같이 탈게.”라고 했지만 정원이는 거절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제트스키의 운전을 해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운전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며 다그쳤다.

 

 걱정스러웠지만 나는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1>처럼 서로의 계획에 열외 없이 참여하기로 약속했던 순간을 되새기며 끝내 제트스키를 운전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안전 요원에게 운전 교육을 받으며 서서히 운전 감각을 몸에 익혔다. 간략했던 교육이 끝나고 우리는 30분 동안 마음껏 싸매 비치 바닷가를 누볐다파도가 치는 방향과 제트스키의 질주 방향이 어긋날 때는 마찰력이 발생하여 제트스키가 공중으로 붕 뜨곤 했는데 그 때의 쾌감이 정말 짜릿했다. 만약, 이 곳이 인파가 들끓던 따웬 비치였다면 절대 이러한 속도감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토바이 택시기사와의 약속을 파기하면서까지 따웬 비치에서 제트스키를 타지 않게 고집을 부려 준 정원이가 너무 고마웠다.


 두려웠지만 용기내어 운전했던 제트스키.

다음에 타게 될 때는 더 빠른 속도를 내며 탈 수 있을 것 같다.

 

 제트스키를 체험했던 30분이 이렇게 짧은지 미처 몰랐었다. 약속했던 시간이 다 되자 싸매 비치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파타야로 돌아가는 배를 탈 때가 되면 알려줄 테니 그 때까지 싸매 비치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라며 고글 물안경과 썬 베드를 서비스로 제공해 주셨다. 폭풍 서비스에 감탄한 나는 내가 태국인이었으면 당신을 사랑했을 거야.” 라는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띄웠다.


 썬 베드에 누워 땡모반을 마시던 정원이는 꼬란 섬에 들어올 때, 나의 컨디션이 너무 나빠 보여서 재밌게 놀지 못 할 줄 알았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나도 사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시간이 턱없이 부족할 것 같아서 해양 스포츠를 제대로 즐길 수 없을 줄 알았다. 물론, 바가지 가격에 당하기도 하고 조식 뷔페 이후로 제대로 된 식사조차 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예상과 달리 너무나 즐겁게 꼬란 섬에서의 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썬 베드에 누워 파타야로 나가기 전까지 여유를 만끽하는 우리

 

 어느덧 파타야로 돌아갈 시간과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챙겨온 짐을 들고 선착장으로 향하려는 찰나, 우리는 싸매 비치 아주머니께서 박보검이 출연하는 한국 드라마를 보고 계시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 순간을 지나칠 수 없었다. 우리는 연예가중계의 리포터(?)로 빙의하여 박보검 사랑해요.(외국인의 어색한 한국인 말투로)” 라는 멘트를 가르쳐 주었고 이내 함께 손 하트 포즈를 지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당연히 사진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우리는 "박보검 사랑해요~"를 말하고 있는 중이다.

 

S#22. 발리하이 선착장(시암 앳 시암 호텔 체크아웃)

 짧은 시간밖에 있지 못했지만 강렬했던 그 곳, 꼬란 섬을 나오며.


 3시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파타야로 돌아가는 배를 타고 350분에 선착장에 내려서 호텔로 돌아와 체크아웃을 마친 이후, 430분에 방콕으로 향하는 벨 트래블 버스를 타는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그 얘기인즉슨, 이번에도 엔진이 고장나는 불상사가 벌어진다면 방콕으로 향하는 모든 일정이 죽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출발 직전, 선장에게 의심을 담은 눈초리로 엔진 오케이?” 라고 물어 보았다. 선장은 당당하게 괜찮다고 말했다. 안도감을 얻은 우리는 배의 2층으로 올라가 해먹 의자에 누워 잠시 눈을 붙였다. 눈을 떠 보니 시간은 340분이었다. 서서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파타야에 도착하기로 공지한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배는 여전히 육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해를 이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원이는 이런 초조한 나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단잠에 빠져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오전부터 멀미로 고생하는 나를 케어해 주던 모습이 떠올라 곤히 잠에 든 정원이를 깨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정원이를 깨워 닦달한다고 해서 배가 빨리 가는 것도 아닌 데다가 배가 선착장에 도착하기까지는 그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어서 나는 정원이가 깨지 않게 조용히 2층에서 내려와 선장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서툰 영어로 앞으로 육지에 도착하기까지 남은 시간을 물었다.

 

 “어.. 저기요. 워킹 스트리트. 지금부터 텐 미닛?” (영완)

 “. 피프틴 미닛.” (선장)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오케이.” (영완)

 

 2층으로 다시 올라가자 정원이는 부시시 잠에서 깬 모습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핸드폰 속 시계와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선착장을 번갈아 보며 초조함에 쫓기고 있었다. 그러나 정원이는 여전히 평화로웠다.

 

 우리는 예정된 시간보다 10분 가량 늦게 발리하이 선착장에 도착했다. 택시든 썽태우든 일단 교통 수단을 타려면 선착장의 긴 제방 길을 나와야 했는데 다급했던 탓인지 제방 길은 아침에 비해서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나는 정원이를 따돌리고 혼자서 제방 길을 뛰어나와 택시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일단 나라도 택시를 타면 기사가 뒤쫓아 오는 정원이를 태워서 호텔까지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보며 덩달아 조급해진 정원이는 그제서야 나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운이 좋게 택시는 바로 잡을 수 있었으나 문제는 꽉 막힌 도로였다. 현재 시간 오후 410. 그리고 방콕 행 벨 트래블 버스가 출발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20. 시간에 맞춰서 호텔에 도착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가늠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다. 택시는 속도를 내나 싶으면 금세 신호에 걸려 몇 분을 도로 위에 멈춰 있는 미칠 듯한 밀당을 반복했다. 조급해 하는 나를 보며 정원이는 예약한 버스가 아닌 다른 버스로도 충분히 방콕까지 갈 수 있다고 달랬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벨 트래블 버스를 타면 방콕에서 묵을 우리의 게스트하우스 주변까지 데려다 주는데, 우리가 다른 버스를 새로 타고 방콕으로 오려면 버스를 새로 찾아 보아야 하는 데다가, 방콕에 도착했다고 한들 게스트하우스까지 오는 시간을 또 할애해야 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게스트하우스에는 오늘의 밤중에나 도착할 것 같았다.


꽉 막힌 도로 위의 택시 안. 나는 이 순간이 태국 여행 일정 중에서 제일 촉박했고 예민했다.

 

 미칠 듯한 긴장감이 감도는 택시 안에서 나는 정원이에게 또 한 번의 부탁을 요청했다.

 

 “정원, 너 호텔에 전화해서 한국인 여직원 바꿔 달라 해 줘. 그 여직원이 전화 받으면 우리 지금 멀리서 오는 게 아니고 호텔 근처에서 택시를 타고 가고 있는 중이니까 버스 기사에게 조금만 기다렸다가 출발해 달라고 부탁해 줘.”

 

 나는 버스를 놓치면 놓치더라도 일단 해 볼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동원해 보고 싶었다. 정원이는 바로 호텔로 전화를 걸어 침착하게 우리의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나 영어의 한계에 부딪쳤다. 당황한 정원이는 한국인 여직원을 바꿔 달라 했고 전화를 건네받은 한국인 여직원은 알겠다며 우리에게 최대한 빨리 호텔로 돌아올 것을 요구했다.

 

 택시는 430분까지 고작 2분을 남기고서 호텔에 도착했다. 방콕으로 향할 승객들은 서둘러 기사에게 짐을 이송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한국인 여직원에게 더 빨리 올 수 있었는데 배가 지연되서 지금에서야 왔다며 버스가 떠나기까지의 시간을 벌어다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런데, 또 돌발 상황이 일어났다. 내가 전날 이용했던 세탁 서비스의 비용이 납부되지 않아서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프론트 데스크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시간은 430분을 지났고 정원이를 포함한 방콕으로 떠날 승객들이 승합차 안에서 나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나는 프론트 데스크에서 얼마나 걸릴지도 모를 시간을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 아침에 체크아웃 할 때 돌려받은 보증금에서 세탁 서비스 비용 제외하고 받아서 돈 낸 상황이에요. 빨리 확인 부탁드릴게요.”

 

 덩달아 조급해진 듯한 한국인 여직원은 나와 세탁 서비스 직원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통역해 주며 빠르게 이 상황이 정리될 수 있게 도와주었다. 5분 가량이 지났었나. 직원은 드디어 비용 납부가 확인되었다며 내가 맡겼던 세탁물을 돌려주었다.

 

 나와 정원이는 승합차 안에 타고 있던 승객들에게 늦어서 죄송하다며 사과를 연신 반복했다. 감사하게도 승합차에 타고 있던 관광객들은 한국인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이해해 주었고 도리어 밝은 얼굴로 정말 괜찮아요.” 라며 우리를 위로해 주었다.


벨 트래블 버스를 타고 파타야에서 방콕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차가 막히는 반대편 차도의 상황이 매우 혐오스럽다.

 

 금세 벨 트래블 파타야 스테이션에 도착한 우리는 승합차에서 벨 트래블 버스로 환승하여 방콕으로 돌아왔는데 파타야로 향할 때와는 달리 시간이 3시간이나 걸렸다. (이렇게나 시간이 걸렸는데 만약 버스를 놓쳐서 우리끼리 방콕으로 왔을 걸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기 그지없다.)

 

S#23.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

 벨 트래블 파타야 스테이션.

트렁크가 열려 있는 가운데의 차량이 우리를 이비스 호텔까지 데려다 줄 승합차다.


 3시간을 달려 벨 트래블 방콕 스테이션에 도착한 우리는 그 곳에서 승합차로 다시 환승하여 방콕의 이비스 호텔까지 왔다. 벨 트래블 서비스가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로는 픽업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아서 우리는 그나마 가장 인근에 위치하고 있던 이비스 호텔에 내려 툭툭(방콕 식 대중교통)을 타고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까지 찾아갔다.


방콕 입성. 승합차를 타고 이비스 호텔로 향하는 중.

 

 배낭여행객들의 성지라 불리는 방콕 카오산 로드의 뒤편에 위치하고 있던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는 심플한 나무 캡슐 형태로 2층 침대를 이루고 있었고, 조식 서비스와 라운지 이용 서비스까지 모두 제공하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가 처음이었던 정원이는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으며 방에 들어올 때마다 오픈된 마인드로 투숙객에게 인사를 건네며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는 게스트하우스의 개방적인 문화에 흠뻑 빠져 게스트하우스의 이용 경험이 많은 나보다 먼저 대만에서 온 여행객과 친구가 되기도 했다.


우리가 이틀 밤을 묵을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


정원이는 2층의 3번 침대에서, 나는 1층의 4번 침대에서 자기로 했다.


은은한 조명과 아늑했던 공간, 베개가 높아 다소 불편했지만 무척 푹신했다.

 

S#24. 방콕 카오산 로드

 이제껏 그랬듯이 오늘 하루도 너무나 알찼다. 그러나 식사를 한 기억은 12시간 전의 호텔 조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사히 방콕 카오산 로드에 도착한 우리는 가벼운 복장으로 갈아입고 저녁 식사로 카오산 로드의 길거리 음식을 섭렵하기로 결정했다.

 

 카오산 로드의 거리는 가렌드와 만국기가 곳곳마다 눈에 띄어 전 세계 배낭여행객들이 모인다는 카오산 로드의 슬로건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고 있었다. 우리의 길거리 음식 먹방은 코코넛 아이스크림으로 그 시작을 알렸다. 이어 팟타이와 망고 밥, 꼬치 구이와 웃음 가스 풍선, 그리고 태국의 맥도날드에서만 판매한다는 콘 파이와 파인애플 파이를 먹으며 전투적으로 음식들을 입에 넣었다.


전 세계의 배낭여행객이 모인다는 성지, 방콕 카오산 로드.


 

 

<배틀 트립>의 김민교가 강추하던 태국 여행 필수 먹방 메뉴 코코넛 아이스크림,

태국식 면발과 함께 볶아진 닭고기와 계란, 고명은 땅콩 크런치와 고춧가루 뿐인데 환상적인 맛을 내던 팟타이,

질게 지어진 밥과 말랑한 망고의 조화가 의외로 괜찮아서 놀랐다. 토핑된 소스는 망고 밥의 풍미를 더하고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도 맥도날드에만 한 달에 10만 원 이상을 소비하는 자칭 맥도날드 매니아.

태국에서만 판매하는 콘 파이 파인애플 파이를 먹지 않고 돌아갈 수 없었다.

음료도 한국에서는 마실 수 없는 딸기 맛 환타로 주문했다.

 

 팟타이를 먹을 때가 기억이 난다. 우리가 팟타이를 구매한 포장마차의 맞은 편에 있던 작은 라이브 카페에서는 정원이가 좋아하는 밴드 가수들의 곡들을 연이어 라이브로 연주하고 있었다. 우리는 팟타이를 먹으면서도 공연을 하고 있는 라이브 가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거나 박수를 치는 둥 적극적으로 공연에 회답했다. 그 곳에서 감동을 정통으로 받은 정원이의 표정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한참동안 넋이 나가 있던 정원이는 내게 고등학생 시절, 밴드 동아리의 멤버였던 시기를 회상하며 당시 자주 듣던 곡들을 내게 소개해 주었다. 팟타이와 음악이 함께 감동으로 하나되어 즐거운 방콕에서의 밤을 선물해 준 카오산 로드. 이렇게 무르익는 방콕에서의 분위기가 어제 있던 파타야와는 새삼 달랐다.

 

 먹방을 마치고 슬슬 배가 불러오고 있었다. 우리는 태국 여행 시 모두가 손꼽는 위시리스트, 발 마사지를 받기 위해 마사지 샵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정원이가 누군가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 곳에서 정원이와 인사를 주고받는 상대가 과연 누굴까 했는데 상대는 다름 아닌 정원이와 친구가 된 같은 게스트하우스의 대만 여행객이었다. 그 순간을 계기로 나와 정원, 대만 여행객은 서로 통성명을 가졌다. 대만 여행객의 이름은 팡야였다. 팡야는 특별한 계획이 없으면 자신과 일정을 함께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우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OK!”를 외쳤다. 그렇게 우리는 팡야와 함께 발 마사지 샵으로 향했다.

 

 발 마사지 샵은 정말 신선했다. 단순히 마사지만 해주는 줄 알았는데 발부터 직접 씻겨주더니 마사지사들은 저마다의 다양한 스킬로 우리의 피로를 풀어주었다. 정원이는 발이 너무 아팠는지 팔을 배배 꼬아 고통을 참고 있음을 온 몸으로 드러냈고 나는 아재(?) 마냥 동굴 깊이 파고 들어가는 목소리로 감탄하는 신음을 계속해서 내뱉었다. 그에 반해 비지니스 상 태국을 자주 방문하는 팡야는 한결같이 웃는 표정으로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우리들의 발 마사지를 해 주시며 즐거운 말동무가 되어 주셨던 케이 마사지 샵의 마사지사 분들

 

 팡야가 우리에게 어떻게 알게 된 사이냐고 묻자 우리는 군대에서 만난 인연이라 말했다. 그러자 팡야는 자신도 군인이라면서 제복을 입고 있는 본인의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보여주었다. 팡야의 말을 들어보니 그는 대만의 공군이었다. 팡야와 우리 사이에 닿는 인연의 소재가 너무나 유사한 점이 많아서 서로가 서로에게 놀라는 모습을 감출 수 없었다.

 

 발 마사지를 마치고 거리에 나온 팡야는 우리와 시간을 더 보내고 싶은 눈치를 보였다. 나와 정원이도 팡야와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싶었으나 우리는 내일 아침 일찍부터 담넌 사두억 수상 시장을 가기 위해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팡야에게 미안한 대답을 전하며 같이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자고 했다.

 

S#25.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온 나는 정원이에게 한 가지 사실을 고백했다.

 

 “정원, 내가 내일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을 가기 위해서 반나절 여행사 서비스와 버스는 다 예약을 했는데, 집합 장소로 모이는 역까지 가는 과정은 미처 조사하지 못했어.”

 

 그래서 나는 정원이가 챙겨 온 노트북을 빌려 내일 아침 우리의 이동 루트를 조사할 예정이었는데 의도치 않게 팡야에게 수상 시장으로 향하는 여행자들의 집합 장소, 아속 역까지 가는 방법을 묻게 되었다. 팡야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지만 모든 말들이 영어였기 때문에 나는 서서히 집중도가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정원이는 차근차근 대화를 이어 가며 팡야의 대답을 번역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에 달하고 말았다. 끝내, 팡야는 라운지에서 남자친구와 영상통화를 하고 있던 게스트하우스의 여직원에게 우리를 맡겼다. 여직원은 우리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서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남자친구와 영상통화를 하며 끼고 있던 양 쪽의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누어 우리에게 건넸다.


 막막했던 다음 날 아침 일정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준 게스트하우스 여직원과 그의 한국인 남자친구

 

 이어폰을 받고 보니 스마트폰 속의 남자가 익숙한 언어로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렇다. 영상 속의 남자는 한국인이었다. 남자는 게스트하우스 여직원의 한국인 남자친구였고 태국 여행의 베테랑이었다. 우리와 대화를 시작한 그는 출근 시간의 교통 정체를 피해 빠르게 아속 역까지 갈 수 있는 꿀팁을 알려주며 우리의 전우애를 응원해 주었다. 게스트하우스의 여직원 덕분에, 아니 예상치 못했던 그녀의 한국인 남자친구 덕분에 우리는 막막했던 당장 내일의 아침 일정을 말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여직원에게 고마움의 성의로 게스트하우스의 앞에 있던 세븐일레븐으로 향해 코리안 스타일 스파이시 라면이랍시고 불닭볶음면과 음료수를 선물해 주었다. 사실, 고마움도 고마움이지만 그녀에게 한국인 남자친구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으며 어떻게 이러한 우연이 가능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여행이 더 나아가서는 게스트하우스가 선사하는 무언의 인간적인 매력에 점점 더 매료되고 있었다.


* 게스트하우스 여직원의 한국인 남자친구가 말해 준 방콕의 교통체증 피하는 법 : 태국은 한국처럼 차선의 수가 많지도, 폭이 넓지도 않아서 출근 시간(6~9) 대의 도로는 마비 상태(트래픽 잼)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대중 교통 이용을 추천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택시나 자가용을 이용해야 한다면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간의 여유를 30분에서 1시간으로 잡으라고 했다. 그리고 카오산 로드 주변에는 지하철 역이 없어서 대부분 수상보트를 타고 선착장이 있는 사판탁신 역까지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거리상으로 봤을 경우 사판탁신 역까지 가서 방콕 시내를 누비는 것보다 택시나 툭툭(방콕 식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파야타이 역이나 시암 역(두 역이 방콕의 대표 역으로 보면 된다.)에서 일정을 시작하는 것이 거리 단축과 시간 절약에 훨씬 이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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