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너원투어가 벌써 4일 차에 접어들었다.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과 위험한 기찻길에 가는 오늘의 일정은 우리만의 일정이 아닌 다른 한국인 여행객들과 함께 떠나는 패키지투어 일정이었기 때문에 다른 날들보다 더 시간관리에 신경을 기울였다. 하필 또 집합 시간은 아침 7시 50분까지였다. 고로, 이 날은 워너원투어의 일정 중에서 제일 빨리 일어나야만 했던 날이었다사실 나는 자유여행을 선호하기 때문에 패키지 여행상품은 지금까지 이용해본 적도 없었고, 이용할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지만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이 방콕의 교외에 위치하고 있는 데다가 교통편도 마땅치 않아서 자유여행으로 떠나기에는 너무나 많은 부담들이 동반되어야 했다. 그래서 결국 패키지 여행상품을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심지어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은 낮 12시까지만 운영하고 있어 9시까지는 이 곳에 도착해야 수상시장의 활기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방콕에서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까지 소요되는 이동 시간과 시장의 운영 시간 등 여러 가지 점을 미루어 보아 이 일정만큼은 패키지 여행상품을 통해서 가는 것이 더 이득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속 역으로 출발하기 전, 카오산 로드에서 찍은 서로의 독사진

 

 우리가 이용했던 <몽키트래블>의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위험한 기찻길 반나절투어 상품은 750분까지 아속 역 5번 출구 에 있는 로빈슨 백화점 앞 맥도날드로 모이라고 공지했다. 우리는 어젯밤 게스트하우스 여직원의 한국인 남자친구가 말해주었던 조언을 바탕으로 하여 630분에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730분경 아속 역에 도착하는 가정을 세웠다. 우리는 시암 역까지는 택시의 도움을 받았고 시암 역부터 아속 역까지는 방콕의 지상철인 BTS의 도움을 받았다.

 

 우리를 시암 역까지 데려다 준 택시기사의 유쾌함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택시기사는 한국 여성들에 대해 굉장히 선의적인 시선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대표 걸그룹 트와이스의 존재를 그에게 알려 주었다. 나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트와이스의 히트곡 ‘TT’와 함께 TT댄스를 알려주며 택시 안을 채우던 식상한 라디오 음성을 한순간에 트와이스의 ‘TT’로 바꿔버렸다. 그 시간에 아마 방콕에서 제일 시끄러운 택시는 우리가 타고 있던 택시였을 것이다. 기사님의 웃는 미소를 보다 보니 언뜻 명품 배우 황정민의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우리는 기사님에게 황정민을 닮았다며 사진을 보여주었지만 그는 황정민이 훨씬 잘생겼다며 우리의 칭찬을 부끄러워 했다.


한국 여성과 트와이스의 매력에 푹 빠진 택시기사님과 함께.

 

S#26. 아속 역

 기사님이 시암 역에 내려주신 이후 우리는 BTS(방콕의 지상철)를 타고 네 정거장을 거쳐 아속 역에 도착했다. 아속 역에 도착하자 시간은 우리가 가정했던 730분에 정확히 맞아떨어져 있었다.(게스트하우스 여직원의 남자친구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함을 전한다.) 우리는 맥도날드 앞에서 패키지 투어 여행객들을 기다리던 태국인 가이드를 만나 예약 확인 절차를 마치고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으로 출발하기 전까지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아침 식사는 우리들의 집합 장소가 되었던 맥도날드였다. 나는 맥모닝 세트를 먹되, 음료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선 판매하지 않는 딸기 맛 환타로 변경해서 먹었다.


방콕의 BTS를 처음으로 탑승하게 된 시암 역 전경.


출근 시간의 트래픽 잼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차들은 거북이 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아침 식사로 맥모닝을 먹고 있는 정원


내가 주문한 맥모닝 세트와 딸기 맛 환타.

딸기 맛 환타가 국내에 도입된다면 나는 맥도날드의 수입을 더 올려줄 수 있다.

 

S#27.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

 아속 역에서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까지는 차로 약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됐다. 우리는 그 시간동안 수면을 취하며 아침 일찍 나오느라 피로해진 체력을 보충했다.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에 도착하자 태국인 가이드는 우리 두 명과 네 명의 한국인 여행객을 한 팀으로 묶어서 같은 보트에 태워 주었다.


담넌 사두억 수상 시장의 강 위에 있는 수상가옥



강 내부로 접어들자 본격적으로 펼쳐진 즐비한 상점들과 배 위의 먹거리


승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돼지고기 꼬치구이.

승객들은 음식보다도 배 위에서 음식이 만들어지는 광경이 더 신기한 듯 보인다.

 

 나는 어릴 때부터 누군가가 태국을 제시하면 항상 과일 담긴 나룻배가 다니는 강이 떠올랐다. 그 이미지를 가장 많이 반영하고 있는 곳은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번 여행지로 태국을 결정했을 때,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은 꼭 가 보고 싶은 곳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수상시장의 강물은 지저분했고 쓰레기가 적지 않게 강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환상이 약간 깨지긴 했지만 강 위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던 전통 수상 가옥들과 태국식 전통이 담겨있던 소박한 먹거리는 충분히 나를 만족시켜 주었다.


 나는 바나나튀김을 판매하던 보트가 눈에 띄었다. 상인을 향해 바나나튀김 한 봉지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내가 타고 있던 보트와 거리가 꽤나 멀어 다른 보트에서 사 먹겠다고 눈치를 보내고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상인은 나를 놓치지 않았다. 즉석에서 바나나튀김을 봉지에 담더니 긴 막대기를 이용하여 나와 같은 보트에 탄 다른 여행객에게 배달해 주어 나에게 전달할 것을 부탁했다. 그래서 보트에 탄 다른 승객들은 내가 상인에게 지불해야 할 돈까지 받아서 상인에게 전달해 주었다. 얼떨결에 승객들은 나와 상인의 사이에서 배달의 역할을 해 주고 있었다. 그것이 고마웠던 정원이는 같은 보트에 탄 승객들과 함께 바나나튀김을 나눠 먹자고 제안했다. 나는 그 의견에 찬성했다. 승객들은 우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맛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정말 맛있었다. 바나나의 부드럽고 단 맛이 겉의 바삭한 튀김옷과 조화를 이루어 내는 맛이 절로 감탄을 불렀다. 매번 바나나는 껍질을 까서 먹을 줄만 알았는데 바나나도 요리로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보트 위에서 한국인 여행객들과 나누어 먹었던 바나나튀김.

비주얼은 치킨의 닭 목처럼 생겼다.


뱀을 만져보는 정원.

만지는 것은 무료지만 사진을 찍는 것은 돈을 내야 했던 이 상점의 규칙..;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돈을 지불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깎아서 지불하는 재미가 있던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


 보트에서 내린 후, 가이드는 모든 여행객들에게 위험한 기찻길로 이동하기 전까지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을 걸으며 둘러볼 수 있는 시간으로 20분을 주었다. 이 때 정원이는 여동생에게 줄 태국의 향신료 가루와 말린 과일 세트를 구매했고, 나는 직장 동료들에게 선물할 말린 과일 세트와 애주가인 아버지에게 드릴 술잔을 구매했다. 술잔을 구매할 때는 상인이 한 잔당 100바트를 제시했다. 그러나 같은 상점에 있던 한국인 여행객이 나에게 절대 이 가격에 사지 말라며 따끔하게(?) 지침을 주었다.

 

 “이거 그냥 반값에 달라 하세요. 충분히 깎을 수 있어요.”(한국인 여행객)

 

 물론 태국에서는 충분히 흥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상인들과 유쾌한 대화를 나누며 즐겁게 흥정을 해 보고 싶었지만 막상 흥정을 하려니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이 답답했는지 한국인 여행객은 이내 나를 대신하여 상인에게 흥정을 시도하고 있었다.

 

 “(나에게) 이거 잔 두 개 사실 거죠?”(한국인 여행객)

 “.”(영완)

 

 한국인 여행객은 가게 안에 있던 계산기에 30을 쳐서 상인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상인은 이 가격으론 절대 줄 수 없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한국인 여행객은 50을 쳐서 상인에게 보여주었다.

 

 “50! But 1+1.” (한국인 여행객)

 

 눈치를 살피던 상인은 끝내 흥정을 받아들였다. 덕분에 나는 100바트에 태국 국기와 코끼리가 그려진 술잔 2개를 구매할 수 있었다. 저렴한 가격에 술잔을 살 수 있었던 건 좋았지만 내가 직접 흥정에 시도하지 못한 게 다소 아쉬웠다. 만약 다음에 태국을 다시 오게 된다면 그 때는 절대 주저하지 않으며 당당하게 흥정에 시도할 것이다.


지금은 우리 집의 접시 건조대에 자리를 잡은 두 개의 술잔

 

S#28. 위험한 기찻길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예능프로그램 <짠내투어>에서 위험한 기찻길을 다녀간 이후 위험한 기찻길은 한국 관광객들의 사이에서 태국여행 시 꼭 가 봐야 할 명소로 급부상했다. 더군다나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에서 차로 10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여행사에서는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과 위험한 기찻길을 묶어서 관광할 수 있게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도 그 여행 상품을 구매하여 위험한 기찻길을 같이 구경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위험한 기찻길도 <짠내투어>의 방송을 타기 전부터, 더 나아가서는 10년도 더 된 예전부터 이곳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 지금의 내가 <배틀트립><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1>을 좋아하던 그 이상으로 즐겨본 예능프로그램 <스펀지>에서 이곳을 소개하는 방송을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10년 전부터 기약되지 않던 훗날에 태국을 가게 된다면 꼭 이곳에 가 보고 싶었다. 그렇게 강산도 바뀐다는 10년이 흘러 스물 하나가 된 나는 거짓말처럼 태국을 가게 되었다. 강산은 변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태국의 위험한 기찻길은 변하지 않았다. 폐역이 증가하는 추세와 달리 위험한 기찻길은 10년 전 TV에서 보았던 같은 장소에 그대로 위치하고 있었다.


기찻길 위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위험한 기찻길의 매끌렁 시장

 

 위험한 기찻길은 실제로 기차가 다니는 기찻길의 위에 평범한 재래시장이 자리를 잡고 있어 이름 그대로 위험한기찻길임을 느낄 수 있다. 이 기찻길을 달리는 기차는 시장이 있는 매끌렁 역을 출발하여 방콕까지 매일 운행한다. 평상시에는 여느 시장과 다를 것 없이 장사를 이어 가다가 기차가 들어올 때면 상인들은 분주하게 천막을 걷어서 공간을 마련하고, 내놓은 물건들을 가게 안으로 들이기 시작한다. 이 위험하고 아찔한 움직임은 매일같이 반복된다.

 

 가이드는 패키지 투어의 관광객들에게 시장을 자유롭게 구경하다가 11시에 매끌렁 역으로 모이라고 했다. 가이드는 매끌렁 역에 모두 모이면 매끌렁 역에서 한 정거장 위치에 있는 랫 야이 역까지 향하는 기차표를 나눠줄 거라 했다. 시장을 거닐며 구경을 마친 우리는 시간에 맞춰 매끌렁 역에 도착했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기차표를 주었고 기차표를 받자 저 멀리서 기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시장 위의 기찻길을 달리며 들어오는 기차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한 관광객들의 처절한 셔터질이 꽤나 장관이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사람 냄새 물씬 풍기던 평범한 재래시장


 "너도 워너원투어의 동료가 되지 않겠나?"


 시장을 나오면 바로 보이는 매끌렁 역. 관광객들은 하나같이 기차가 들어오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기차 안은 매우 복고적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교실의 천장에 붙어 있던 선풍기가 푹푹 찌는 기차 안에서 열심히 회전하고 있었지만 결국 열기 섞인 바람으로 변질되어 더운 바람만이 기차를 채우고 있었다. 쉴 새 없이 손으로 부채질을 하다 보니 어느새 기차는 경적을 울리고 운행을 시작했다. 차창 너머로 보인 소박한 시골 풍경은 서울 생활이 익숙한 나에게 여유를 선사하며 마음이 편안해 지는 듯한 기분탓을 전해 주었다.


 푹푹 찌는 기차 안에서. 천장에 선풍기가 붙어있었지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창문을 열고 바깥을 보니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보다 가깝게 시장이 있었다.

이 위험한 기찻길에서 인명사고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 매우 놀랍다. 


 기차는 시장을 양보하기 위해 천천히 달렸고, 시장은 기차를 양보하기 위해 물건을 가게  안으로 들여놓았다.

나는 이 풍경이 서로를 위하며 배려하는 모습처럼도 보여서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매끌렁 시장을 빠져나오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기차.

창 밖으로 보였던 꾸밈없고 소박했던 시골 풍경은 지금도 너무 그립다.

 

S#29. 로빈슨 백화점 푸드코트

 랫 야이 역에 도착한 관광객들은 그 곳에서 패키지투어 승합차를 타고 처음 모였던 아속 역으로 돌아왔다. 배가 고파진 우리는 패키지투어의 집합 장소가 되었던 아속 역 로빈슨 백화점의 지하에서 푸드코트 음식을 먹기로 했다. 나는 볶음밥을 골랐고, 정원이는 쌀국수를 골랐다. 푸드코트 음식은 예상 외로 고퀄리티였다. 놀란 우리는 감탄을 금치 못하며 허겁지겁 식사를 이어갔다. 정원이는 이제야 태국 음식이 어떤 음식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라며 태국의 요리에 사용되는 향신료들의 맛과 향을 궁금해했다. 물론 나 또한 그랬다.


 한국의 여느 태국 음식 전문점보다 맛있었던 로빈슨 백화점 푸드코트에서의 한 끼

 

S#30. 왓 포 사원

 아침부터 숨 가쁘게 움직였다. 더위와 피로, 이대로 일정을 강행하다간 지칠 것만 같아서 우리는 왓 포 사원으로 떠나기 전,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잠깐의 쉬는 시간을 가졌다. 땀을 많이 흘린 나는 샤워를 했고, 정원이는 침대에 누워 짧은 휴식을 취했다.

 

 우리는 툭툭을 타고 왓 포 사원으로 향했다. 왓 포 사원은 누워있는 불상(와불상)이 있는 사원으로 유명하며 그 불상의 크기 또한 거대하여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닿는 방콕의 대표 사원이다. 왓 포 사원에서는 입장권을 구입할 때, 프리 워터 티켓이 입장권에 같이 붙여져 발행된다. 이것은 11회 이용에 한정되는 티켓으로 입장권을 뜯지 않고 왓 포 사원을 둘러보면 사원의 끝에 위치한 프리 워터 천막에서 한 병의 생수병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나는 뚜렷한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정원이는 불교 신자다. 우리는 불상을 모시는 공간이 보일 때마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 관리인에게 절을 하는 방법을 물어 불상에게 인사를 드렸다. 나는 모든 것이 신기해서 절을 드릴 때에도 미소를 지으며 즐거운 모습으로 사원을 누볐지만 정원이는 나와 달리 몹시 진지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정원이에게 불교에 대한 신앙심을 물었다. 그러자 정원이는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듯 그저 태국과 이 사원에서 갖출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워너원투어 깃발도 함께 한 왓 포 사원


불상을 모시고 있던 작은 방


왓 포 사원의 핫플레이스, 누워있는 불상(와불상).

누워있는 불상의 모습을 카메라에 다 담아내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불상이 너무나도 거대했다.


와불상이 있는 사원을 나오자 있던 프리 워터 부스

 

 왓 포 사원을 모두 둘러보고 나오려고 하던 찰나에 우리는 리포터를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 촬영 팀을 볼 수 있었다. PD는 리포터가 서 있는 곳을 기점으로 왓 포 사원의 주변을 카메라에 담았는데 나와 정원이는 우연히 그 옆에 서 있었다. 그 때였다. 카메라가 워너원투어의 깃발을 들고 있는 나의 모습을 원샷으로 잡았다.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뮤직뱅크 엔딩 속의 홍진경처럼 촬영되는 순간에 집중하면서 깐족대기 시작했다.


왓 포 사원을 소개하고 있는 리포터와 그 장면을 촬영 중인 PD들


 시선을 강탈하며 카메라를 홀리고 있는 <뮤직뱅크> 엔딩 속의 홍진경

 

S#31. 왓 아룬 사원

 왓 아룬 사원에 가기 위해서는 왓 포 사원을 나와 인근의 선착장에서 수상보트를 타야 한다. 우리는 4바트밖에 하지 않는 저렴한 편도 탑승비를 지불하고 왓 아룬 사원에 내렸다. 우리는 왓 아룬 사원의 웅장한 규모와 경이로운 자태에 한참동안 넋이 나갔다. 태국어로 아룬은 새벽을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 왓 아룬 사원은 새벽 동이 틀 때의 풍경이 제일 장관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일정 상 새벽에는 이곳을 들를 수 없어서 오후 늦게라도 이곳에 들러 왓 아룬 사원의 정취를 만끽했다.


왓 포 사원의 근처에 있던 선착장에서 수상보트를 타고 왓 아룬 사원으로 향하는 중


왓 아룬 사원의 성벽에 앉아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길고양이


하얗고 웅장했던 왓 아룬 사원

낮에 봐도 그 정취가 대단했는데 새벽에 보면 얼마나 경이로울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왓 아룬 사원은 사원보다는 고대 유적지와 같은 이미지가 훨씬 강하게 느껴졌다. 드넓은 사원의 크기와 하얀 외벽을 채우고 있던 문양 패턴이 내가 생각하는 사원의 이미지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 사원까지 안내하는 정원의 나무 조경도 깔끔하게 되어 있어 이곳에서 살면 진짜 왕이 된 기분이 들 것 같다는 초등학생다운 생각도 절로 들었다.


왓 아룬 사원을 나오기 전에 같이 찍은 우리의 셀카

 

 내가 태국을 누비며 찍은 사진들 중에서는 왓 아룬 사원에서 찍은 사진이 제일 잘 나왔다. 어느 곳에서 어떤 각도로 찍어도 수많은 계단과 문양 패턴들이 조화를 이루어 전신 사진은 전신 사진대로, 착석 사진은 착석 사진대로 그 분위기를 잘 표현하고 있었다.

 

S#32. 시로코 스카이바

 식상하지만 여행의 마지막 날 밤은 야경과 함께하기로 했다. (바늘 가는 데 실 따라가듯이 여행의 마지막 날 밤에 야경이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방콕에서의 일정을 담당했던 나는 64층의 루프탑에서 한 눈에 방콕을 내려다볼 수 있는 시로코 스카이바로 정원이를 안내했다. 시로코 스카이바는 지나치게 캐주얼한 의상은 입장을 제한하고 있어서 스카이바로 가기 전 우리는 게스트하우스에 들러 옷을 갈아입었다.


툭툭을 타고 시로코 스카이바로 향하는 중이다.

이 툭툭을 운전하던 기사는 스피드를 즐길 줄 아는 기사였다. 우리도 그 스피드를 같이 즐겼다.

 

 그런데 오랜만에(?)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 순간, 기상이 악화되면 바로 영업을 중단한다는 시로코 스카이바의 공지사항이 떠올랐다. 64층 전경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야경을 코앞에 두고 비를 맞이하다니. 방콕 버스 사건 이후로 나의 다급 모드가 다시 되돌아왔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침착을 유지했다. 왜냐하면 비는 매우 소량으로 찔끔찔끔 떨어지고 있었던 데다가 우산을 쓰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은 지금 내리는 이 비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시로코 스카이바 건물에 도착하자 태국의 전통의상을 입은 여직원들은 우리를 64층의 스카이바로 안내해 주었다. 다행히 스카이바는 영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스카이바에 다다르자 사람들은 말끔하게 수트와 원피스를 입고서 칵테일을 마시거나 연주자의 음악에 심취하며 저마다의 취향대로 방콕의 야경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 호화스러운 시로코 스카이바의 모습에 나와 정원이는 서울에 올라온 시골쥐마냥 절로 어색하게 주위를 살피며 여직원의 안내를 따라갔다. 여직원은 메뉴판을 보여주더니 우리에게 칵테일만 마실 것인지, 식사와 칵테일을 함께할 것인지를 물었다. 그런데 가격이 상당한 고가였다. 제일 저렴한 칵테일이 한 잔에 2,300바트(한화 8만 원)에 달했다. 여행에 가서 돈을 아끼면 한국에 돌아왔을 때 후회한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이 가격은 선뜻 구매를 결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쌌다우리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다음 날의 남은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 곳에서 모든 경비를 탕진하기가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기껏 온 스카이바에서 가격을 주저하며 돌아가기엔 너무 아쉬워서 칵테일 한 잔만 기분 좋게 마시기로 했다.

 

 여직원은 칵테일이 나오기까지 우리에게 야경이 보이는 테라스로 안내하며 카메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여직원은 사진을 찍어주는 성의가 여느 포토그래퍼 저리가라 할 정도로 지극정성이었다. 손전등을 활용하며 조명까지 조절해 주었고 포즈 제안도 열정적으로 제시해 주었다. 사진 촬영이 끝나자 우리는 방콕의 야경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확실히 고가의 값은 하는 수준의 시설과 야경이었다. 야경이 보이는 높이는 지금껏 보아 온 어느 곳의 야경과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았고, 그 덕에 눈에 담기는 시야의 범위도 절로 넓어질 수밖에 없었다. 칵테일 잔을 부딪치며 이번 여행의 모든 순간을 파노라마 사진처럼 떠올리려고 하는 찰나에 우려했던 걱정이 현실로 벌어지고 말았다.


시로코 스카이바에서 주문한 칵테일


카메라에 장소의 여운을 제대로 담지 못한 건 시로코 스카이바가 유일하다.

사진으로 보면 여느 야경과 별 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 내려다 보는 시로코에서의 야경은

일반 야경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높이를 자랑하며 높이로부터 느껴지는 중압감이 압도적이다.

 

 갑자기 스콜(열대 지방에서 내리는 짧은 시간 안에 강하게 퍼붓는 소나기)이 내리기 시작했다. 스카이바는 공지대로 그 순간 모든 영업을 중단했고 야경을 관람하던 손님들을 실내 라운지로 이동시켰다. 아쉬움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물론, 우기인 시기에 비해 우리의 여행 일정동안 한 번도 비를 만나지 못한 것은 고마운 기적과도 같았으나 이번 여행에서 가장 초호화 시설을 누리고 있는 지금의 일정에서 비를 만나 신비로운 방콕의 야경을 10분도 채 눈에 담지 못한 것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끝내 우리는 실내 라운지에서 유리창 너머로 방콕의 야경을 보며 칵테일을 마셨다.


갑작스러운 비로 인해 실내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우리는 성공적이었던 우정 여행과 태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자축하며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던 1생활관의 모든 전우들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워너원투어를 자랑했다. 우리는 훗날, 1생활관 전우들이 완전체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하는 버킷리스트를 마음에 새겼다. 그 날이 서른이 되기 전에는 꼭 실현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막내이던 시절을 기준으로 했을 때

병장이던 종희형, 상병이던 승호형, 일병이던 김하사님과 재현이형.

그리고 같이 이등병이던 워너원투어의 정원이와 나.

 

S#33.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

 갑작스러운 스콜 탓에 우리는 예상보다 빨리 시로코 스카이바에서 내려와 택시를 타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게스트하우스의 여직원은 스카이바에서 금방 돌아온 우리를 맞이하면서도 덩달아 같이 아쉬워 해주었다. 정원이와 나는 간단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게스트하우스의 라운지로 내려와 소박한 뒤풀이를 이어가기로 했다. 뒤풀이의 메뉴는 컵라면, 과자, 음료수. 이제야 뭔가 우리다운(?) 느낌이 난다. 그래도 비 오는 창밖 너머의 운치있는 방콕을 바라보며 컵라면을 먹을 수 있는 기회도 흔치는 않다고 생각했다.


게스트하우스의 라운지에서 컵라면과 과자들로 뒤풀이를 이어가고 있는 우리

 

 뒤풀이를 마친 우리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기로 했다. 그런데 시로코 스카이바의 야경을 보고 왔음에도, 우리 나름의 뒤풀이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이대로 잠에 들기엔 너무나 아쉬웠다. 그래서 나는 정원이에게 오랜만의 일탈을 제안했다. 그것은 바로 담배였다. 우리는 흡연의 컨트롤이 가능한 흔치 않은 흡연 성향을 갖고 있어 이렇게 담배를 태워도 몇 달간을 금연 상태로 지낼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군 생활을 하면서도 흡연의 여부를 서로만 알고 있었다. (군대 안에서도 다른 전우들이나 간부들은 우리의 흡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의 밖으로 나온 우리는 천막 아래에 놓여 있던 의자에 앉아 오랜만에 담배에 불을 붙였다. 우리는 서로에게 여운이 되는 노래들을 번갈아가며 틀었고, 그 노래들과 비 그친 방콕의 밤 풍경을 배경 삼아 워너원투어의 마지막 밤을 물들였다. 그 순간, 남자친구를 통해서 우리에게 아속 역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게스트하우스의 여직원이 간식을 선물해 주었다. 이유는 어제 우리가 선물했던 불닭볶음면과 음료수에 대한 보답이라고 했다. 도움을 받은 쪽은 오히려 우리였는데 그녀는 우리에게 선물까지 챙겨주었다. 우리는 서로가 코쿤 캅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훈훈하게 이 시간을 장식했다.


 

우리의 방콕 뒤풀이는 5개월 만의 맞담배로 마무리를 했고,

우리의 막막했던 방콕 일정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이름 모를 한국인 남자친구의 그녀와 함께.


그녀가 우리에게 선물해 준 통새우마요 삼각김밥

 

 그 시간 속에서 정원이는 사람과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의 문화에 완전히 반했다. 정원이는 직원에게 누군가 방콕으로 여행을 간다고 하면 이 게스트하우스를 소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앞으로 본인의 여행에 있어서도 게스트하우스를 자주 이용하게 될 것 같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번외. 비 오는 우기의 태국

 

 마비’ 라는 하나의 단어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 갑자기 비가 내리면 천막을 치며 가게를 정비하는 한국과 달리 태국에서는 배수가 원활하지 않은 도로의 특성 상 대다수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땅에 고인 빗물을 퍼내기 시작한다. 일부 건물에서는 옥상에서 지하로 빗물이 흐를 수 있도록 파이프를 붙여 놓기도 했다.


 택시는 미터기를 키지 않으며 급격히 정체되는 도로 상황을 이유로 기사가 부르는 가격에 승객들이 탈 수 있게 호객행위를 한다. 우리는 기본 택시 가격 치고는 비싼 가격을 제시하는 기사의 행술에 타지 않겠다고 말하며 호객행위로부터 빠져 나왔지만 기사는 모든 택시가 마찬가지일 거라며 우리를 끈질기게 포섭했다. 끝내, 우리는 흥정을 시도했고 기사는 이내 흥정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열대 지방과 동남아시아에서 내리는 비는 스콜의 뜻에 걸맞게 짧은 시간동안 많은 양의 비를 퍼붓다가도 금세 그친다. 우리도 생각보다 비가 금방 그쳐서 게스트하우스에 다시 돌아왔을 때, 시로코에서 더 긴 시간을 있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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