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9.03.03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2. 2019.03.03 막내와 순두부


 어느 의문의 존재가 등장한다. 시한부 삶 속에서 나의 하루 수명을 연장해 주는 대신 한 가지를 세상에서 없애 주겠다는 다소 기괴스러운 조건을 제안한다. 나도 모르게 내 자신을 영화에 대입해 보았다. 나의 눈에는 영화가 재생되고 있는 노트북 옆에서 열심히 불을 밝히고 있는 향초가 눈에 들어왔다. 이내 영화 속에서 의문의 존재가 말을 이어간다.

 

 “세상에 없어져도 그만인 것은 널렸어. 트럼프 카드? 루빅스 큐브?”

 

 묵묵히 영화에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향초 정도는 세상에서 없어져 버려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의문의 존재가 제안했던 사라짐은 사라지는 존재와 이어지는 추억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이었고 그것을 알게 되자 나는 향초가 사라져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한 내 자신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전화가 사라졌을 때에는 항상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로 교감했던 첫사랑의 추억이 전화와 함께 사라졌고, 영화가 사라졌을 때에는 비디오 갤러리에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을 추천해 주는 친구와의 추억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주인공의 수명은 하루씩 연장되었다. 이러한 패턴의 전개가 반복되자 나는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을 지키느냐, 나의 목숨을 지키느냐. 이 두 가지의 명제를 두고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의문의 존재는 주인공에게 자신의 목숨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말했고, 주인공도 그 말에는 공감하는 듯 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 어떤 것이 사라진다고 해도 큰 쇼크는 받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의문의 존재가 제안한 대상들이 사라질 때마다 주인공은 점점 패닉 상태에 빠져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 했다. 이번에는 무엇이 사라지게 될까. 나는 의문의 존재가 어떤 것을 사라지게 할지에 대한 궁금함보다 무엇의 사라짐으로 인해 같이 사라질 예상치 못했던 어느 추억이 얼마나 주인공을 더욱 괴롭게 만들지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말았다. 그 순간, 차라리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꼭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해야만 하는 걸까. 무엇을 얻기 위해선 무엇을 잃어야만 한다는 대사가 모든 상황에 해당되지는 않는 것 같으면서도 뾰족한 예시를 들기에는 딱히 떠오르는 소재가 없어서 답답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형언하기 어려운 먹먹함과 따뜻함이 동시에 떠올라 계속해서 내 눈 앞에 이상한 신기루를 일게 하였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하룻밤의 꿈과도 같았다.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어젯밤 꾸었던 꿈의 모든 서사가 떠오르진 않아도 꿈속에선 확실한 여정이 펼쳐졌던 것처럼 말이다. 만약 몽환이라는 명사를 동사화할 수 있다면 꼭 이 영화를 근거로 해야만 되겠다.


 주인공의 엄마는 사람이 고양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고 고양이가 사람의 곁에 있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엄마는 생을 마감하기 전주인공에게 양배추(고양이 이름)를 잘 키워달라고 부탁하기보다 양배추에게 아들의 곁에 있어 달라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사라짐을 토대로 느낀 것이 있었는지 주인공은 의문의 존재가 고양이를 없애겠다고 할 때, 자신의 남은 수명을 인지하고 있으니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죽을 수 있다며 고양이를 없애지 말아달라고 했다고양이가 사라진다는 것은 죽기 직전까지도 아들을 위하는 일에 힘쓰고 싶었던 나의 엄마가 사라지는 것과도 같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의문의 존재가 영화를 없애겠다고 말할 때는 주인공이 갈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의문의 존재는 영화가 사라진다고 해서 누가 죽는 것도 아니고, 예술이 물과 음식보다 중요하냐며 주인공을 다그쳤다. 끝내 주인공은 목숨의 중요함에 설득되어 영화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영화가 사라지자 주인공이 있던 세상에서 영화와 연결된 관계들에는 절망이 초래되고 말았다. 주인공의 친구 츠타야, 그의 눈물이 그것을 대변했다. 주인공에게 어울리는 영화를 찾아주는 것.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며 눈물을 쏟았다. 그렇다. 무언가가 사라진다고 해서 세상의 전체가 역변하진 않는다. 그러나 전체가 아닌 내가 있던 세상에서 그것과 이어진 관계들에는 분명한 다름이 발생했다. 나중에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때에도 세상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늘 그렇듯 아침이 되면 해가 뜰 테고, 저녁이 되면 달이 뜰 테다. 그러나 내가 존재했던 세상만큼은 이 세상의 전체와 다르리라 믿고 싶다.(주인공의 내레이션에도 등장하는 구절이다.)

 

 일본 영화는 이렇게 괴상한 타이틀과 주제를 가지고 사람의 감정을 깊게 파고 들어오는 점에서 아주 강세를 보인다. 이것도 재주다. 영화가 끝나자 나는 향초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향초가 사라지면 나에게 생일 선물로 향초를 선물했던 민지가 사라질 테고, 민지가 사라져 버리면 우진이까지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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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oi0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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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와 순두부

내얘기 2019. 3. 3. 10:24

 한 동료의 연차와 예약 없이 당일로 내원한 환자들의 과밀로 인해 오버타임이 나고 말았다. 지칠 대로 지쳐서 물미역이 되어 있는 그 날의 나에게 사수는 같이 퇴근을 하자고 말했다. 이내 사수는 내게 약속이 있는 것이 아니면 같이 저녁을 먹고 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사수는 순두부를 맛있게 하는 식당을 알고 있다며 강남역 센트럴에비뉴의 지하상가로 나를 안내했고, 그렇게 나는 사수와 처음으로 사석에서의 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다.

 

 대화의 화두는 나의 퇴사였다. 나는 학교 복학과 어학 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을 빌미로 근 몇 달간 퇴사를 고민했다. 그러다 몇 주 전, 상사와 실업급여에 대한 내용을 나누던 중, 그것을 왜 궁금해 하냐는 상사의 질문에 나는 앞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이유로 4월 말까지만 현재의 직장에서 근무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밝히게 되었다.

 

 이 날, 나의 사수는 술이 몇 잔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내가 받아들이기엔 심히 과분했던 말들을 수도 없이 건넸다. 사수는 내가 퇴사를 한 이후 새로운 사람이 채용되었을 때, 새로운 사람에게 이 직장에서의 업무들을 새로 가르쳐야 하는 부담보다 정들었던 사람이 떠난다는 현실이 더 부담이라며 나의 퇴사를 말렸다. 그러면서도 나중에 가령 어학 시험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얻게 되었을 때, 결과의 이유가 직장이 되어 버리면 나에게 미안한 제안을 건네 버린 것이 되니 내가 퇴사를 하게 되어도 사수는 그것을 수긍하면서 뒤에서 묵묵히 나의 앞날을 응원해 주는 게 자신의 역할인 것 같다며 빈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지금까지 나는 기존의 동료들이 이루어 놓은 끈끈한 팀워크의 울타리에서 한 명이 탈퇴하려고 할 때, 그저 겉으로 보이는 이탈과 중단이라는 이미지에 얽매여 항상 불화, 퇴출과 같이 부정적인 이유로만 연관지어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나의 퇴사를 두고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사수를 보며 당장의 끝이 영원한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탈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 동료들로부터 응원과 격려를 받으며 끝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행복하게 또는 강하게 만들어 주는지까지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식사만으로 이 시간을 끝맺고 싶지 않아서 사수에게 장소를 옮겨 2차를 이어가자고 권했다. 사수는 내게 전역 후의 금연은 잘 지키고 있냐며, 친구들 만나서 술 마실 때 한 번 쯤은 담배를 핀 적이 있지 않냐며 은밀하게 유도심문을 건넸다. 나는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되어서 술이 들어갈 때는 가끔 한 두 대씩 피는 편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사수는 반전있는 대답에 놀랐는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갖고 있던 담배를 내게 건넸다.

 


<에필로그>


 사수와 순두부 식당에 막 들어갔을 즈음, 사수가 어머니와 통화를 나눌 때였다.


 “엄마, 저 밥 먹고 들어갈게요.”

 “누구랑 먹는데?”

 “, 우리 막내랑 같이 저녁 먹기로 해서.”

 

 나는 막내라는 단어가 너무 좋다. 막내 포지션은 몇 년 만이다.

 

 입사 초기, 부족한 일처리에 대한 꾸지람을 들을 때는 막내라는 이유로 더 호되게 혼나기도 했다.

그러나 동료들과 가까워지고 일처리를 인정받고 난 이후에는 밤새 클럽 갔다가 술 덜 깨서 출근해도

막내라는 이유로 그럴 때다.”, 어린 거 언제 까지 가나 봐라.” 소리 듣는다.

가끔 대담한 말장난을 건네기라도 하면 어디 여섯 살 차이 나는 누나한테!”라며 팔뚝 스매싱 맞기도 한다.

 

 예전에는 하고 싶지 않아서, 이 일에 대한 자신이 서지 않아서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계속해서 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퇴사라는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어서 가슴 한 쪽이 아려오고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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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oi0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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