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던 순간.

블로그에서 브리즈 비치 클럽의 내용을 끝내는 것마저도 아쉬울 정도다.


2019.08.04

D+3

황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


오늘은 쁠라우띠가 섬에 가는 날이다.

쁠라우띠가는 코타키나발루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 불릴 정도로 자연 환경이 깨끗하게 보존되고 있다.

거리도 제셀톤 포인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다른 섬 투어에 비해 가격도 비싸고 찾는 사람들도 적은 편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가야섬이나 사피섬으로 해양 스포츠를 즐기러 간다.)


그런데, 아침부터 잔뜩 낀 먹구름의 상태가 심상치 않더니

머지않아 헤비급 비를 쏟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취소 여부에 대한 연락은 오지 않은 상황.

말레이시아의 기후 특성상 금방 비가 그칠 것을 예상하고 원래 일정대로 투어를 진행하려고 하는 걸까 싶었다.

우선은 예정대로 픽업 시간이었던 7시 20분까지 나는 호스텔 로비로 내려가서 픽업 차량을 기다렸다.

그러면서 나의 예약을 담당했었던 도라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다.



“지금 비가 많이 내려. 쁠라우띠가에 갈 수 있어? 우선, 나는 호스텔 앞의 프론트에서 픽업을 기다리고 있어.”

(영완)


“아니야, 쁠라우띠가는 강한 비로 인해 취소되었어.

(도라)


“어떻게 환불받을 수 있어? 내가 제셀톤 포인트로 가면 돼?”

(영완)


“응, 나중에 사무실에 가면 환불을 주선할게. 그리고 내가 너에게 알려줄게.

(도라)


쁠라우띠가 섬에 들어가지 못해 아쉬웠지만 나는 한국에서 미리 몇 달 전부터 예약을 한 것이 아닌,

현지에서 즉흥적으로 계획을 정해서 움직이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생각만큼 많이 아쉽지 않았다.

픽업장에서 도라와 환불 절차에 대한 카카오톡 대화를 마친 나는 호스텔로 올라왔다.



쁠라우띠가 섬 투어가 취소되어 하루 일정이 펑크나버리고 만 이 날,

나는 호스텔에서 여유롭게 블로그 포스팅을 하면서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쁠라우띠가 섬 투어와 멈바꿋 반딧불 투어를 현지에서 저렴하게 예약하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말레이시아②] 쁠라우띠가 섬 투어와 브리즈 비치 클럽 바비큐 현지에서 예약하기 편을 정독해주세요.

(위 타이틀을 클릭하면 해당 게시글이 새 창으로 띄워집니다.)


서서히 호스텔의 투숙객들이 기상하더니 그쯤 되어서 비도 함께 그쳤다.

투숙객들은 분주히 각자의 일정을 위한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그 때, 나의 맞은편 침대를 쓰는 쿠알라룸푸르 친구가 내게 가야 스트리트에서 열리는 선데이 마켓에 함께 가지 않겠냐고 했다.

그 때만 해도 새로운 일정에 대한 뚜렷한 계획이 잡히지 않은 상황이라

아직 외출에 대한 생각이 없던 나는 그에게 호스텔에서 혼자 블로그를 하며 시간을 보내겠다고 했다.


쿠알라룸푸르 친구는 알겠다며 자신의 중국인 여사친들과 함께 가야 스트리트 선데이 마켓으로 향했다.


그 순간,

나는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터지고 말았다.


선데이 마켓..? 일요일.. 시장? 일요일만 열어..? 오늘...? 일요일????’


조급한 마음에 서둘러 구글에 가야 스트리트 선데이 마켓의 개점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확인해 보니 선데이 마켓은 오후 1시까지만 연다고 한다.


현재 시간 오전 9시.

그리고 오늘은 코타키나발루에서 보내는 유일한 일요일.

오늘 일정의 정답은 선데이 마켓이다.


서둘러 외출 준비를 마치고 나는 그랩을 이용하여 가야 스트리트로 향했다.

가야 스트리트의 주변은 택시와 차량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 순간, 도라에게서 카카오톡이 왔다.



“손님, 아직 반딧불 투어는 갈 수 있다. 갈래?

(도라)


“멈바꿋(지역 이름)?

(영완)


“네.

(도라)


“몇 시에 떠나?

(영완)


“시간이 업데이트되는 대로 알려 줄게. 아마 2시 20분~2시 40분일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작전 팀에서 수송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반딧불 투어를 하고 싶어? 아니면 전액 환불을 원해?”

(도라)


“반딧불 투어는 가겠다. 그러나, 쁠라우띠가의 환불은 원한다. 가능해?

(영완)


“좋아, 작전 팀에게 알려주고 픽업 시간과 자동차 번호도 알려 줄게.

(도라)





선데이 마켓에 다녀온 후, 반딧불 투어를 다녀오면 오늘의 일정이 깔끔하게 정리된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방향으로 벌어지는 상황 전개였는데

카톡 타이밍이며 반딧불 투어 픽업 시간까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나는 선데이 마켓에서 가벼운 식사 한 끼로 나시 고랭을 먹었고

동생에게 선물할 힙백도 하나 샀다.

또, 주전부리를 좋아하는지라 망고 주스와 꼬치도 두어개 사 먹었다.

알차게 펑크난 시간을 때운 나는 이제 반딧불 투어를 떠나기 위해 호스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 때,

선데이 마켓의 입구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상어 가족 노래를 말레이시아에서 듣는데 정말 반가웠다.

저 통통 튀는 텐션 너무 귀여우심.


호스텔로 돌아와서 쿠알라룸푸르 친구를 다시 만났다.

쿠알라룸푸르 친구는 선데이 마켓에서 투숙객들을 위해 다같이 나눠 먹을 마랑’ 이라는 과일을 사 왔다.

이런 정이 너무 좋다.


투숙객들과 다같이 나눠 먹을 간식을 사 올 생각을 왜 나는 미처 하지 못 했을까.

더 멀리 볼 줄 아는 여행러가 되어야 겠다.

마랑을 먹고 나서 나와 쿠알라룸푸르 친구는 명함을 교환했다.

그의 이름은 루카스였다.



알고 보니 루카스는 오늘이 이 곳에서의 마지막 숙박이었던 것이었다.

이 순간은 내가 반딧불 투어를 가기 전, 루카스와 함께 있을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우리는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나는 반딧불을 보러 가기 위해 픽업장으로 내려가 버스를 기다렸다.




나는 버스를 타고 2시간 30분 가량을 열심히 달려 멈바꿋에 도착했다.

멈바꿋에 도착하니 반딧불을 보기 위한 수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가이드의 멘트를 듣자 하니 이 모든 관광객들이 오늘 아침의 폭우로 인해 쁠라우띠가 섬에 가지 못한,

나와 같이 반딧불 투어라도 참가하고자 모인 사람들이었다.


반딧불을 보려면 해가 완전히 지고 난 뒤인 밤이 되어야 한다.

그 전까지의 프로그램은 간식 타임과 맹그로브 숲 투어, 선셋 비치 감상, 그리고 저녁 식사로 채워져 있었다.




입맛이 없어서 간식을 많이 먹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도넛이 제일 맛있었다.

간식 타임이 끝나자 가이드는 승객들을 보트에 태우더니 맹그로브 숲 투어를 시작했다.



이렇게 우거진 밀림을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경이로우면서 신기했다.


밀림은 상상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눈에 담기는 모든 모습들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저 숲 속에는 어떤 동물들이 살고 있을까.

혹시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가이드님 말씀대로 가늠조차 되지 않을 크기의 뱀이 있지는 않을까.


오만 궁금증과 잡생각이 다 들었던 것 같다.




맹그로브 숲 투어를 마치고 보트는 방향을 돌리더니 선셋 비치로 이동했다.

가이드님께서는 날씨가 다소 흐렸던 탓에 원래 볼 수 있는 선셋의 아름다움을 다 보지 못 할 거라고 하셨지만

나는 날씨는 사람의 힘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떠한들 미세먼지 가득한 한국의 하늘보다는 낫겠지. 싶은 생각이었다.


선셋 비치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보트에서 내려 저마다의 일행들과 함께 독특한 포즈들로 사진 타임을 가졌다.

투어에 함께한 가이드들은 관광객들의 인생샷을 반드시 건져 주고야 말겠다는 열정으로 촬영에 힘써 주셨다.

진흙을 맨발로 밟고 다니며 선셋 비치의 재미를 더 다채롭게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덤이었다.

(우측 아래 사진의 경우, 해당 여자 관광객 분들로부터 사진 업데이트 허락을 받았습니다.)



이 날, 유일하게 일행이 없는 홀로 관광객이었던 나는

제셀톤 포인트에서 인연을 맺은 직원 도라의 도움을 받아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도라와 셀카도 함께 찍었다. 알고 보니 나이도 같았던 우리.

사장님 가이드께 도라가 나를 제셀톤 친구’ 라고 소개했는데 우리 진짜 친구였다.



시간이 점점 흐르자 하늘은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탄중아루 비치에서의 선셋보다 멈바꿋에서의 선셋이 훨씬 더 아름다웠고 더 깊게 기억에 남는다.


영롱했던 선셋의 붉은 색으로부터 황홀한 기분을 느꼈다.

눈을 뗄 수 없었고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은 절대 다 담아내지 못하는 그 때의 선셋.

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맑은 날에 보면 더욱 아름답다고 한다.

대체 얼마나 더 아름답다는 걸까.


멈바꿋은 이제 땅거미가 지고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았다.

투어 업체에서 준비해 준 저녁 식사를 먹으며 오늘 일정의 하이라이트인 반딧불 투어의 시작을 기다렸다.



저녁 식사 메뉴가 정말 만족스러웠다.

김치를 포함한 다양한 한식 메뉴들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음식 준비의 정성이 한 눈에 보였다.

(지금 여행 10일 차인데 김치가 너무 먹고 싶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보트에 탑승했다.

가이드들은 관광객들을 위해 열심히 반딧불을 유인해 주었다.


처음에는 반딧불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반딧불의 수는 많아졌다.

모든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며 미소지었고, 감동받았고, 기뻐했다.


핸드폰을 켜는 순간 빛으로 인해 반딧불을 보기 어려워진다고 했다.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쉬웠지만

눈은 인간이 가진 최고의 카메라와도 같다고 했다.

열심히 이 순간을 눈에 담아 오래토록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꼬마전구가 켜진 모습과도 같았다. 그 모습은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의 동심을 자극했다.


가이드 님께서 웃으며 말씀하시길,

“무슨 어른들이 더 좋아해.


반딧불이 내 손에 앉았다.

살포시 손을 쥐어 보았다.

뜨겁지 않을까 싶었지만 뜨겁지 않았다.

계속해서 탄성을 지르며 기뻐했고, 이내 반딧불을 날려주며 인사를 건넸다.


하늘에는 별이 수없이 놓여 있었다.

이렇게 많이 놓여진 별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별 역시 마찬가지로, 아무리 사진을 찍어보아도 제대로 담기지 않아 끝내 촬영을 포기했지만

당시 하늘의 모습을 설명하자면

만약, 지금 떠 있는 모든 별들이 땅으로 떨어진다면 절대 피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늘에는 별, 땅에는 반딧불.

행복했다는 말로 모든 감정이 전해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때, 정말 행복했다.



반딧불 투어를 마치고 호스텔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와 연락을 나눴다.

엄마는 항상 젊은 나이에 해외여행을 다니는 나와 같은 젊은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졸업하고서 전공 맞춘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꼭 우리 엄마 국제선 비행기 한 번 태워드려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호스텔에 도착하자 나의 베개 위에 카드 하나가 놓여 있었다.

바로 루카스가 쓴 카드였다.



머리맡에 놓인 선물을 받아본 적,


아마 유치원 꼬맹이 시절,

산타의 존재를 믿으며 머리맡에 양말을 놓고 잠들었던 때가 마지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곳에서 만난 모든 인연들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여행을 통해서 한 걸음 더 성장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안녕, 영완. 다음에 또 만나자. ^^- 루카스


이 날, 나는 쁠라우띠가에 가서 스노쿨링도 하지 못 했고 니모도 보지 못 했지만

의도치 않게 그보다 더 큰 가치와 행복을 얻었다.


쁠라우띠가에 갈 수 없었던 이 날이 선데이 마켓이 열리던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별과 반딧불을 통해 잊고 지낸 동심을 되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여행에서 만난 인연으로부터 베개맡에 놓인 카드를 선물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정말 행운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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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oi0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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