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11

D+10

짠내투어


브루나이에서의 메인 일정이었던 울루 템부롱 정글투어가 끝나니

일정에 대한 부담감이 사르르 녹아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나 울루 템부롱 정글투어가 브루나이의 메인 일정이 될 수는 있어도

브루나이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전세계에 딱 두 곳밖에 없다는 7성급 호텔!

(국제적으로 호텔은 최대 5성급까지로만 구분하고 있음. 7성급은 일종의 마케팅을 위한 용법.)


하나는 모두가 알고 있는,

가 본 적은 없어도 외관은 너무나 익숙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두바이의 버즈 알 아랍 호텔.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더 엠파이어 호텔이라는 곳인데 그 호텔이 바로 브루나이에 있다.


여행 전, 사실은 더 엠파이어 호텔을 두고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언제 다시 올 지 모르는 브루나이에 기왕 가는 거, 더 엠파이어 호텔에서 하룻밤이라도 묵을까.

아니면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서 투숙하진 못해도 구경만이라도 하며 대리만족을 할까.


끝내 나는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는 쪽으로 결정을 지었지만

막상 7성급 호텔을 무시하고 브루나이를 떠나자니 아무래도 성이 차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더 엠파이어 호텔에 가기로 했다.


더 엠파이어 호텔에서 할 수 있는 활동거리를 찾아보는 도중,

딱 두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수영장과 애프터눈티.


그러나 수영장은 이미 코타키나발루에 있을 때 다녀왔기 때문에 스킵하고

애프터눈티를 먹으며 호텔 전경을 눈에 담을 수 있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더 엠파이어 호텔의 애프터눈티는 한화 약 2만 원의 가격으로

샌드위치와 케이크, 스콘과 같은 디저트와 커피, 차를 무한리필로 즐길 수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을 해 보니

애프터눈티는 평일과 주말을 불문하고 매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호텔 로비에서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더 엠파이어 호텔의 [Dining] 탭을 클릭하면 [Lobby Lounge] 항목에 애프터눈티와 관련한 설명을 읽을 수 있다.


The perfect place to unwind with a selection of refreshments throughout the day and traditional English High Tea in the afternoon.

On weekends a tempting high tea buffet with mouth watering pastries and cakes are featured.

Take-away cakes and bread may also be ordered through the Lobby Lounge.


하루 종일 다양한 다과와 오후의 전통적인 잉글리쉬 티와 함께 ​​휴식을 취하기에 완벽한 장소입니다.

주말에는 입에 물을 바르는 패스트리와 케이크가 담긴 유혹적인 차 뷔페가 제공됩니다.

테이크 아웃 케이크와 빵도 로비 라운지를 통해 주문할 수 있습니다.


Operating Hours:

Daily Afternoon Tea from 2 pm to 6 pm


운영 시간:

오후 2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일 애프터눈티

 

Reservation:
Please call 241 8888 ext. 75008


예약 :
241 8888 내선으로 전화하십시오. 75008


현재 시각 오전 10시.


내가 투숙하고 있는 하이어 호텔에서 더 엠파이어 호텔까지는

걸어서 4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에 위치하고 있지만 차를 타고 가면 25분만에 도착할 수 있다.


나는 걸어서 가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두 가지의 선택지 중 하나를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무모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 실감하지만

이 때는 물가가 비싸다는 싱가포르에서의 일정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어차피 시간 남고, 어차피 할 게 없는 브루나이에서 사소한 풍경 한 장면이라도

더 눈에 담고자 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걸어서 더 엠파이어 호텔까지 가기로 했다.


먼저 호텔 1층에 있는 식당에서 철판덮밥으로 아침을 해결한 후

짠내를 풀풀 풍기며 4시간이나 걸리는 호텔로의 여정을 출발했다.


 


호텔을 떠난지 정확히 10분 만에 나는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에 땀범벅이 되고 말았다.

앞으로 3시간 50분이나 걸어야 하는데 벌써부터 선크림이 땀에 녹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더 엠파이어 호텔로 향하면서 가동 야시장을 지나가게 됐는데

엊그제 정신없이 팬케이크와 파파존 버거를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 한 40분 정도를 걸었을 때,

땀을 뻘뻘 흘리며 차도 끝자락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나를 보고 한 경찰관이 나를 보고 손짓했다.

태국에서도 바이크를 타다가 경찰에 적발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브루나이에서 경찰에 적발되고 말았다.



아무래도 외국인 혼자 텅 빈 차도 위를 혼자서 걸어가는 모습이

평범하게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니 경찰관은 나를 향해 국적을 물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

(경찰)


“나는 한국에서 왔어.

(영완)


“(땀을 흘리는 나를 보고) 괜찮아?

(경찰)


“매우 더워. 그러나 괜찮아.

(영완)


“대체 어디에 가는 거야?

(경찰)


“나는 더 엠파이어 호텔로 가고 있어.

(영완)


“걸어서?

(경찰)


“응. 걸어서 갈 거야.

(영완)


“그럼 이 길을 쭉 따라서 가다가 큰 길이 나오면 우회전을 해.

그러면 더 엠파이어 호텔로 갈 수 있어.

(경찰)


“......?????

(영완)


“좋은 여행이 되기를.

(경찰)


“...고마워.

(영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대화가 흘렀다.

경찰은 차가 빠르게 달리는 차도 위를 무방비 상태로 걸어다니면 위험하다는 경고나

날씨가 더우니 다트를 불러서 차량을 통해 이동하라는 조치도 없이

걸어서 3시간 여정을 걸어야 하는 나의 여정을 오히려 응원해주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물이라도 한 잔 얻어먹고 나올 걸 그랬다.

그래도 골치아픈 상황에 연루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며 마저 호텔로 향하기로 했다.


그렇게 10분 가량을 더 걸었을 즈음, 눈 앞에 쇼핑몰 건물이 보였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에어컨 바람을 쐬며 쉬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데

매정하게도 쇼핑몰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쇼핑몰 주변에 최대한 햇빛이 비치지 않는 바닥에 주저앉아 체력을 보충했다.


 


그런데 이 더위 속에서 계속 걸어서 가다보면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짠내는 여기까지만 풍기기로 결정했다.

간단하게 간식을 먹으며 배를 채운 후 그냥 다트로 차량을 불러 편하게 엠파이어 호텔까지 가기로 했다.


 


나는 쇼핑몰 주변에 있던 한 슈퍼에서 오렌지 크림빵과 콜라를 사서 먹은 후

사람 한 명 없는 쇼핑몰 바닥에 주저앉아 유유자적 시간을 흘려보냈다.


더위로 나간 멘탈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할 때, 나는 다트를 실행해서 차량을 불렀다.

그런데 콜을 받고 온 다트 운전자가 아침에 내가 호텔 1층 식당에서 철판덮밥을 먹을 때

바로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남자였던 것이다.


심지어 기사님이 나를 먼저 알아봐 주었다.

나는 속사포처럼 미치고 무모했던 나의 여정기를 들려주며 엠파이어 호텔로 가 달라고 말했다.



기사님은 호탕하게 웃으면시 엠파이어 호텔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리니

에어컨 바람을 쐬며 잠깐 눈이라도 붙이라며 나를 편하게 대해 주셨다.



 드디어 더 엠파이어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의 로비는 호화로운 느낌보다 고즈넉한 느낌이 더 강했다.



그냥 보았으면 몰랐겠지만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모든 금색이 실제 금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더 엠파이어 호텔 안에 있는 내 자신이 괜히 주눅이 들었다.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있는 프론트 직원의 도움으로

애프터눈티 로비에서 나는 애프터눈티 입장을 문의했다.


 



현재 시각 오후 1시 50분


“애프터눈티 입장을 하고 싶어요.

(영완)


“예약을 하셨나요?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아니요. 예약은 하지 않았어요. 2시부터 애프터눈티 타임이 열린다고 해서 왔어요.

(영완)


“이 호텔에서 투숙하고 있나요?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아니요.

(영완)


“몇 분이시죠?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저 혼자에요.

(영완)


“우선 지금 바로는 입장할 수 없어요. 예약이 다 차 있어요.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당황) 네??

(영완)


“오후 2시와 3시까지 모든 예약이 다 차 있어요.

만약, 이용을 원하시면 오후 4시부터 예약을 도와드릴 수 있어요.”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저 한 명인데... 어떻게 지금 바로는 안 될까요...?

(영완)


“죄송합니다. 현재로서는 모든 테이블이 다 예약석이에요.

그래서 예약은 4시부터 도와드릴 수 있어요. 예약을 진행해 드릴까요?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네, 일단 그렇게 해 주세요.

(영완)


“혹시 이 호텔에 계속 계실 건가요?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네.

(영완)


“혹시 지금 사용하는 핸드폰으로 브루나이 현지 전화를 할 수 있나요?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네.

(영완)


“전화번호를 알려주시겠어요?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로비 직원이 나의 전화번호를 예약자 명단에 기재함)


“만약 4시보다 빠른 시간에 빈 테이블이 생긴다면 제가 바로 전화를 드릴게요.

그러면 바로 이 로비로 와 주세요.”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진짜요?? 감사합니다.

(영완)


애프터눈티 테이블로 바로 입장할 수는 없었지만 이것도 어떻게 보면 괜찮게 전개된 상황이라 생각되었다.

덕분에 나는 여유있게 호텔 곳곳을 누비며 7성급 호텔의 뷰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애프터눈티는 식사가 아닌 디저트 개념이기 때문에 4시가 되기 전에 전화가 올 거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게 예약을 마친 나는 호텔 밖으로 나가 야외 수영장과 해변가를 걸어다녔다.


 

 


잔잔한 파도소리와 소리없이 얌전한 리조트.

전세를 낸 기분이라는 게 이런 기분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이 여유로운 감성을 파괴하는 것은 바로 더위였다.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 한 시간을 걸어오며 누적된 피로가 아직 완전히 가시지는 않아서

더이상 호텔 곳곳을 누비는 건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바다와 제일 가까운 벤치로 가서 드러누워 낮잠을 잤다.



그러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바로 애프터눈티 로비에서 걸려온 전화였으며

빈 테이블이 생겼으니 지금 바로 로비로 오라는 전화였다.


시간은 오후 3시밖에 되지 않았다.

기존 예약 시간보다 1시간이나 빨리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정말 좋았다.


 


테이블에 자리를 잡자 웨이터 분께서 잔에 스파클링 포도주스를 따라 주셨다.

이 스파클링 포도주스도 무한리필이며 잔이 비면 홀에 있는 웨이터 분들이 알아서 주스를 새로 따라 주신다.

톡 쏘는 자극적인 탄산은 아니었지만 시원했던 짙은 과일맛이 묘하게 중독성 있었다.

나는 커피와 차도 몇 번이나 다른 메뉴로 리필을 해서 마셨지만

그 어떤 음료보다도 나는 이 스파클링 포도주스가 제일 맛있었다.


몇 병 사서 한국으로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있었다.


 

 


기본 : 스파클링 포도주스

차 :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다즐링, 얼그레이, 캐모마일, 그린, 자스민, 페퍼민트

커피 :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카푸치노, 에스프레소


*주황색으로 색칠된 글씨가 리필할 때마다 주문했던 음료입니다.


먼저 디저트에 대한 얘기부터 하자면 디저트는 단연 케이크 종류(3층 접시)가 최고였다.

태어나서 이렇게 부드러운 케익 시트와 크림은 처음이었다.

3층 접시에 있던 케이크들은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모든 조각케이크가 입 안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았다.


그 탓인지 샌드위치 종류(2층 접시)가 평범하게 느껴졌고

스콘(1층 접시)은 전반적으로 퍽퍽해서 자주 손이 가는 맛은 아니었다.


그리고 차는 페퍼민트 차가 정말 맛있었다.

맛있었다는 표현보다는 깔끔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지도 모르겠다.

향긋하고 깨끗한 향이 입 안에 감돌 때의 그 시원한 느낌이 지금도 인상적이다.

계속되는 디저트 먹방에 입이 조금씩 물리는 느낌이 들 때 모금씩 마시면 금세 입이 개운해졌다.


한 가지 팁을 전하자면 음료를 리필할 때(스파클링 포도주스 제외)는

미리 리필을 주문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음료를 만드는 데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라 잔이 비었을 때 음료를 새로 리필 주문하면

디저트를 먹다가 느낄 갈증의 타이밍이 음료가 나올 때까지의 타이밍과 안 맞을 수 있다.



디저트를 먹으며 차를 마시는 데 로비 한 켠에서 피아노 연주와 한 소녀의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포함한 많은 관객들이 찬사를 보내는 공연이었다.


생각해보니 아이가 주인공인 공연을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무리 기억을 되새겨 봐도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니 아이가 주인공인 공연은 브루나이에서 본 것이 처음같았다.


소녀의 목소리와 음색은 정말 청아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피아노 선율도 무척 감미로웠다.


음악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았던 순간.


더 엠파이어 호텔에서의 애프터눈티가 더욱 특별한 이유다.


더 엠파이어 호텔 애프터눈티(디저트, 음료 무한리필) [1인] 24.2브루나이달러 (약 21,000원) / 2019.08 기준

싱가포르달러와 1:1 통용되어 싱가포르 달러로도 구입 가능(거스름돈은 브루나이 달러)



그렇게 배부르게 디저트 먹방을 끝내고 나는 하이어 호텔로 돌아갔다.

하이어 호텔로 다시 돌아갈 때는 처음부터 깔끔하게 다트를 이용해서 갔다.


 


하이어 호텔의 방으로 돌아온 나는 쉬는 시간을 가지며 해가 질 때를 기다렸다.

해가 지면 나는 엊그제 미처 보지 못했던 술탄 모스크의 야경을 보러 갈 것이다.


 

 


모스크의 야경을 보러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섰는데

해가 지는 하늘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계 3대 선셋을 볼 수 있다는 코타키나발루에서 본 하늘보다 훨씬 예뻤다.

짧은 시간마다 변하는 하늘의 모습이 신기해서 몇 걸음 걷다가 뒤돌아 하늘보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아예 뒤로 걸어가면서 하늘을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보정 하나 하지 않은 사진인데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황홀한 풍경에 넋이 나가 모스크로 가는 길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모스크에 도착하니 어느새 하늘은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고풍스럽게 빛을 내뿜는 술탄 모스크의 모습은 무척 위엄있어 보였다.


 


코타키나발루의 시티 모스크에 갔을 때 가장 아쉬웠던 것이

강에 모스크의 모습이 선명하게 비춰지지 않은 것이었다.


블로그나 사진에서 보았던 것처럼 강에 비춰진 모스크의 모습이 꼭 보고 싶었는데

그 소원은 브루나이에서 이룰 수 있었다.

황금색의 술탄 모스크가 어둠이 내린 강에 그대로 비추어져

데칼코마니와 같은 모습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으며 주변에 있던 모든 관광객들은 홀린 듯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이 곳에서 나와 같은 혼자 브루나이에 온 필리핀 남자 관광객을 만났다.

우리는 서로의 포토그래퍼가 되어 주며 사진을 찍어 주었고 많은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는 JTBC에서 방영된 드라마 <미스티>를 굉장히 재밌게 보았다며

한국 드라마에 대한 호평을 아끼지 않았는데

내가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원활하게 대화를 이어가기가 어려웠다.


그렇지만 만나는 외국인 관광객마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호의적이며

물어보지도 않은 한국 드라마와 K-POP 가수들을 언급하는 걸 보면서

내 나라 한국의 위상이 결코 낮지 않다는 것을 여러번 실감할 수 있었다.



술탄 모스크의 야경은 아름답다는 느낌보다

몽환적이고 신비스러운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그만큼 이슬람은 낯설고 신기했다.


모스크 주변을 돌아다니는데 스피커 방송으로 기도문을 읊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모스크의 위엄과 압도가 한층 더 강해지는 순간이었다.


 


술탄 모스크의 야경을 다 보고 호텔로 돌아온 나는 빨래를 돌리러 코인빨래방으로 갔다.

코인빨래방은 하이어 호텔의 로비 옆에 있으며 늦은 시간까지도 이용할 수 있다.


다음 날 아침이 아닌 이 날의 늦은 밤에 굳이 빨래를 돌린 이유는

싱가포르로 출국하기까지는 앞으로 이틀밖에 남지 않았는데

혹시라도 빨래가 다 마르지 않을 우려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부지런히 움직여서 여유롭게 빨래를 말리고 싶었다.

.

 

 


하이어 호텔 셀프 코인빨래방(14KG, 건조기능 선택X) [1회] 4브루나이달러 (약 3,500원) / 2019.08 기준

환급기에 금액을 넣은 후 환급받은 코인을 세탁기에 투입하면 세탁기가 작동됨(세제는 자동으로 나옴)


코인빨래방의 TV 모니터에 나오던 <겨울왕국>을 보며 빨래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엘사의 노래를 듣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세탁이 끝난 빨래를 들고 방으로 돌아오니 옷걸이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방 밖의 복도 난간에 널어 놓자니 불안해서

방 곳곳을 물색하며 옷을 걸 수 있을만한 모든 곳에 세탁물을 널어놓았다.

그러다 보니 안전고리에도 바지를 널게 되었다.


정말 열악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브루나이에서의 하루는 또 한 번 저물었고

그렇게 나는 또 새로운 하루를 맞이했다.




Photo by choi0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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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oi0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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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0

D+9

정글에서의 초대


정글 투어 당일,


미러리스 카메라를 들고 투어에 참가하면 일정 소화가 불편할 것 같아서 카메라는 호텔에 놓고 정글로 향했습니다.

또, 눈으로 담고 싶었던 장면들이 많았던 만큼 사진 촬영에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에피소드에 비해 사진들이 다소 부족합니다. 이로 인해 가독성이 떨어질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화창한 토요일 아침,

오늘 나의 일정이 정글로 가는 것을 하늘은 예견이라도 했는지

전날과 달리 무척이나 파랗고 많은 뭉게구름을 보였다.


나는 전날 가동 야시장에서 먹다 남긴 팬케이크와 펩시 콜라로 아침식사를 대신해서 때웠고

픽업 시간보다 10분 빨리 호텔 로비로 내려와 픽업 차량을 기다렸다.


 


그러나 픽업 차량은 오지 않았다.


게다가 시간은 7시 30분을 서서히 넘기고 있었다.

7시 15분까지 하이어 호텔 로비로 데리러 오겠다는 메시지를 받았음에도

로비 앞으로는 어떤 차량도 도착해있지 않았다.


서서히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찰나,

한 대의 대형버스가 도착했다.


그런데, 이 버스는 단체 중국인들을 태우는 버스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버스에서 내리는 중국인 가이드에게

나의 픽업 메시지를 보여주며 목적지를 물었다.


그 순간, 나보다 호텔 로비에 먼저 나와있던 히잡을 쓴 여성이

나와 중국인 가이드의 쪽으로 오더니 픽업 메시지를 확인해 주었다.


그러더니 그녀가 말했다.

 

Follow me. It was you.(나를 따라오면 돼요. 계속 로비 앞에 있었던 너였구나.)


히잡을 쓰고 있던 이 여성이 바로 나의 픽업 담당 가이드였던 것이었다.

그 순간, 픽업 차량이 호텔 로비 앞에 도착했고 나는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울루 템부롱 국립공원으로 가는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버스에는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두 명의 남자 관광객만이 앉아 있었다.


쭈뼛쭈뼛 눈인사를 하며 빈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찰나,

남자 관광객들이 나에게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아닌 진짜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브루나이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이 투어는 사전에 여행사를 통해 예약한 것이 아닌,

현지에서 예약을 한 브루나이 관광객(국적 불문)들로만 구성된 투어였기 때문에

한국인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은 더욱 희박했다.


한국인 형들과 나를 태운 버스는

또다른 투어 참가자들을 태우기 위해 다음 호텔로 향했다.


버스는 그 곳에서 여섯 명의 참가자들을 더 태웠고,

가이드는 이렇게 모인 총 아홉 명의 참가자가 

오늘 울루 템부롱 정글투어를 함께할 인원들이라고 하셨다.


브루나이 현지에서 울루 템부롱 정글투어를 저렴하게 예약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브루나이②] 브루나이 페리 탑승기와 울루 템부롱 정글투어 현지 예약 방법 을 정독해주세요.

(위 타이틀을 클릭하면 해당 게시글이 새 창으로 띄워집니다.)


 


버스는 스피드 보트를 탈 수 있는 선착장에 참가자들을 내려 주었다.


이제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 곳에서 스피드 보트를 타고 템부롱 지역에 도착한 후,

버스와 롱 보트를 한 번씩 더 타야 울루 템부롱 국립공원에 도착할 수 있다.

(스피드 보트에 탑승하는 순간부터 픽업 담당 가이드와는 헤어지게 된다.)



스피드 보트를 타며 템부롱으로 가는 도중에는 말레이시아의 국경을 넘나들기 때문에

비행기가 착륙했을 때 받아볼 수 있는 입국 문자도 자동으로 수신된다.


 


왼쪽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스피드 보트는

좌측의 브루나이와 우측의 말레이시아의 경계가 되는 강을 넘나들며 템부롱으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국경에 들어왔기 때문에 로밍을 할 수 있다는 문자메시지도 받아볼 수 있다.



50분 가량 스피드 보트를 타고 도착한 템부롱.

보트 안에서 꿀잠을 잔 덕분에 개운한 발걸음으로 보트에서 내릴 수 있었다.


템부롱에 도착하니 정글 투어 담당 가이드들이 참가자들을 맞이해 주었다.

가이드들은 본격적인 정글 투어 시작 전, 참가자들을 데리고 조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으로 향하는 내내 문명과 인간의 위대함에 감탄했다.


템부롱에 오기 위해선 스피드 보트를 통해서만 올 수 있는데,

과거에는 대체 어떠한 교통 수단을 통해 이 곳에 사람들이 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과

이 곳에 있는 차량 정비소, 식당 등에서 필요한 자원들은

도대체 어떻게 조달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끊이지 않았다.


템부롱에 오는 길이 험난해서였는지

나는 템부롱을 거니는 내내 이 곳을 아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어느 시골마을처럼 여겼다.


 

 


조식은 페스츄리 빵과 콜라(음료 선택 가능)였다.

소스는 왼쪽에 있는 하얀 소스가 제일 맛있었고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제일 인기가 좋았다.

연유 맛이 나는 달콤한 맛의 소스였는데 페스츄리와 궁합이 제일 잘 맞았다.


조식을 처음 받았을 때, 다소 빈약해 보여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데

먹다 보니 맛도 있었고 은근히 배가 금방 차서

나를 포함한 한국인 형들, 그리고 여섯 명의 외국인 참가자들까지 모두 맛있게 먹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가이드는 모든 참가자들에게 생수병을 하나씩 나눠 주었다.

이제 롱 보트를 타고 정글까지 가야 한다.

롱 보트의 최대 탑승 인원은 3~4명인데 가이드는 이 날 참가자 수가 총 9명이었기 때문에

3명씩 팀원을 구성해서 보트에 탑승하라고 했다.


나는 주저없이 2명의 한국인 형들과 함께 보트를 타기로 했고,

형들도 내게 함께 보트를 타고 정글까지 들어가자고 해 주셨다.



롱 보트의 뒤에서는 기사님이 열심히 시동을 걸어 보트를 운전해 주시고,

앞에서는 조수가 강의 수심이 얕아지는 곳에서 열심히 작대기를 이용하여 돌을 치워준다.

작대기로도 돌이 움직이지 않을 때는 보트에서 내려 손수 보트를 끌기도 했다.


보트 앞에서 열심히 작대기를 저으며 돌을 치우는 조수를 보고 있으니

편하게 앉아서 가는 내가 괜히 미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또 한 번 보트를 50분 가량 탔다.

보트를 타는 내내 보이던 템부롱의 자연 경관은 나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한국에서 본 적 없는 이름 모를 새들이 눈 앞에서 날아다니고

하늘과 숲, 그리고 강. 오로지 자연만을 상징하는 매체들이

눈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오늘의 날씨가 맑아서, 템부롱에서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보트를 타는 내내 또 한 번 들었던 생각은

이렇게까지 깊이 숨어있는 이 공간은 도대체 누구에 의해 발견됐으며,

그 옛날에는 어떤 수단을 통해서 이 곳까지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


그렇게 템부롱에 대한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어느새 보트는 울루 템부롱 국립공원 앞에 도착해 있었다.



브루나이에서 만나는 한국어 인사말. 어서오세요.’

정글이라는 신비한 곳에서 읽게 되니 더욱 반가웠다.



보트에서 내리자 가이드들은 방문 기념 방명록을 작성해달라고 하셨다.

방명록에는 이름과 국적, 나이를 기재하는 공간이 있었다.


Yeongwan Choi, Korea, 22


혹시나 해서 방명록을 한 장 앞으로 들춰 봤는데 내가 제일 어린 나이였다.

괜히 자부심이 흘러넘치는 순간이었다.


 


방명록을 적고 나면 본격적인 정글 트레킹이 시작된다.

참가자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라는 부심이 생긴 나는 정글 완주에 대한 의욕을 안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트레킹 코스는 생각만큼 힘들지 않았다.


트레킹 계단을 한 번에 올라가지 않고

중간에 쉬어갈 수 있는 정자를 네 번이나 들리며 올라가기 때문에 체력적인 부담이 적다.


솔직히 나는 정자를 네 번씩이나 들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같이 동행했던 한국인 형들은 정자가 나오면 땀에 젖은 손수건을 쥐어 짜가며 휴식을 가졌고,

일부 외국인 참가자들은 뒤처지기까지 해서 팀이 나누어지기도 했다.


정자에서 쉴 때마다 제일 쌩쌩하던 나를 향해 가이드가 나이를 물었다.

스물 둘이라고 하자 가이드는 스물 하나라며 더 밝게 나를 대해 주었다.

또래 나이대의 참가자를 만나서인지 나도 가이드도 서로가 지치지 않아 하며 트레킹을 할 수 있었다.


그 때, 동행하던 한국인 형 중 한 분이 말을 꺼냈다.


올라가는 것도 올라가는 건데 내려올 땐 어떡하냐. 무릎 나갈 거 같은..”


그래도 올라갈 때보단 내려갈 때가 훨씬 부담이 덜하지 않겠냐고 말하자 한국인 형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어려서 그래. 어려서. 라고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막내 취급에 기분이 좋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트레킹 코스는 힘들지 않았습니다...)


 

 


트레킹을 하다 보면 어릴 적 만화에서나 보던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이 외나무다리는 안전상의 이유로 한 번에 다섯 명 이상 건널 수가 없다.


나는 제일 먼저 다리를 건너게 되었는데 다리를 건널 때는 정말 무서웠다.

그래도 최대한 아찔한 순간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살짝쿵 다리의 옆과 밑을 보았지만

핸드폰을 떨어뜨릴 것만 같아 경직된 표정으로 침착하고 빠르게 앞만 보며 걸어갔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트레킹 계단과 외나무다리를 건너다 보니

어느새 정글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캐노피 타워 가까이까지 와 있었다.


목적지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가이드의 안내에

더 의욕이 샘솟았던 나는 빠르게 계단을 올라 캐노피 타워 앞에 도착했다.



그렇게 나와 한국인 형들은 캐노피 타워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캐노피 타워도 외나무다리처럼 안전상의 문제로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이 오를 수가 없어서

가이드는 한 사람 당 3층의 간격으로 오를 것을 권장했다.


먼저 광주에 사는 형이 선두로 캐노피 타워를 오르고,

그 다음이 나, 그리고 그 뒤로 가양동에 사는 형이 오르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캐노피 타워를 오르기 시작하는데

손잡이 기둥을 잡고 올라갈 때마다 캐노피 타워는 삐그덕 소리를 내며 조금씩 흔들렸다.

(무너질 것 같은 불안한 소리와 들림이 아닌 캐노피 타워가 전체적으로 힘을 받고 있는 듯한 소리와 흔들림이었습니다.

캐노피 타워는 절대적으로 안전하게 지어진 철탑입니다.)


형들과 나는 계속해서 비명 아닌 비명을 지르며 캐노피 타워를 올랐다.

나는 최대한 두려움을 벗어내고자 타워 밑을 보려하지 않고 바로 눈 앞에 보이는

계단만을 주시하며 성큼성큼 타워를 올랐다.


그 때, 빠른 속도로 올라온 나와 같은 층에서 만난 광주 형이

나에게 선두 자리를 내어 주시며 먼저 올라가라고 하셨다.



캐노피 타워 위에 올라서서 보이는 전경은 압권이었다.

울창하게 자란 밀림 나무들은 브로콜리처럼 빼곡하게 숲속을 채우고 있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데다가 새가 맑게 지저귀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하늘과 숲만 보면서 새 소리를 들은 경험은 생애 처음이었다.

감탄사 이외에는 그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숲 속에 나 홀로 우뚝 선 느낌, 대자연의 중앙에 놓여진 느낌,

외국이라는 개념을 떠나 다른 세상 위에 혼자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캐노피 타워는 1번부터 5번까지 있는데, 1번, 4번, 5번의 뷰가 제일 훌륭하다.

실제로 가이드도 1번, 4번, 5번의 뷰를 추천해주신다.







원래는 나도 로이킴과 에디킴, 박재정처럼 우정여행으로 브루나이에 오고 싶었던지라

혼자서 정글 투어를 오게 된 게 내심 아쉬웠는데

정말 운이 좋게 두 명의 한국인 형들을 만날 수 있어 <배틀트립>의 에로박처럼

3인 1조로 울루 템부롱 정글투어를 완주할 수 있었다.

덕분에 자유롭게 사진 촬영을 부탁드릴 수 있었고, 보트도 딱 셋이서 탈 수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 정글을 완주했을 때의 느낀 짜릿한 성취감을 한국어로 소통하면서

감정을 공감할 수 있었던 점이 형들을 만나게 되어 가장 감사한 순간이었다.


 


캐노피 타워에서 내려온 후 모든 투어 참가자들은 보트를 타고

정글 속에 숨겨진 계곡으로 들어가 닥터피쉬 체험을 했다.





피로한 발을 계곡물에 담그고 있다 보면

수많은 닥터피쉬들이 다가와 발을 물어뜯는다.


닥터피쉬가 발을 뜯는 느낌이 처음에는 생소해서 소리를 지르며 계곡물을 빠져나오곤 했다.

그런데 금세 적응이 되었고 어느새 나는 닥터피쉬들에게 편하게 내 발을 내어 주고 있었다.



이제 점심식사를 할 시간이다.


깊은 숲 속 정글까지 오느라 축적된 피로와 정글에서 소모한 칼로리를

한 번에 보상받을 수 있는 세상 가장 행복한 시간.


참가자들은 마찬가지로 보트를 타고 숲 속의 식당으로 향했다.



메뉴는 고슬고슬한 쌀밥에 간장 양념 닭찜과 닭강정, 야채절임이었고

디저트로 파인애플이 준비되어 있었다.

모든 음식은 뷔페식으로 자율적으로 떠서 먹을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쉬운 다양한 메뉴의 호화로운 뷔페는 아니었지만

정글 트레킹을 마치고 숲 속의 오두막에서 먹는 닭찜과 닭강정은

그 어느 뷔페에서의 한 끼보다 맛있었고 든든했다.


 


식사를 마치고 모든 참가자들은 오두막에서 잠시 눈을 붙이며 낮잠에 들었다.

나는 식사 직후에 바로 누으면 소화가 잘 되지 않는 편이라

원래 절대 식사 후에 바로 눕는 편이 아닌데 이 날은 예외로 바로 누워

숲 속의 소리를 들으며 낮잠에 들기로 했다.


나중에 형들 얘기를 들어보니

형들은 내가 불편해 보이는 자세로 코도 안 골고 잘 잤다며 신기해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무사히 울루 템부롱 정글 투어를 마치고 나는 브루나이 시내로 돌아왔다.

이제 브루나이를 떠나 발리로 향하실 형들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다시 혼자의 몸이 되어 호텔로 돌아왔다.


하룻동안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집에 혼자가 되어 돌아오는 것은

직장이든 여행이든 아쉽고 섭섭하다.


울루 템부롱 국립공원과

이 날 정글투어를 함께한 한국인 형들과 또래 가이드 친구들.

그리고 투어에 참가했던 여섯 명의 외국인들까지.


이들의 기억 속에 이 날의 기억이 오랫동안 남아 있기를.

그리고 그 기억 속에 나도 오랫동안 남아 있기를.

그리고 나는 말하지 않아도 그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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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에 도착한 나는 낮잠을 자며 체력을 보충했다.


2시간 뒤,


잠에서 깬 나는 브루나이의 상징과도 같은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에 가기 위해 다시 호텔을 나섰다.


이번에도 모스크로 갈 때는 오전처럼 걸어서 움직였다.


 


그러나 모스크로 곧장 향하지는 않았다.


시간표처럼 정해진 대로만 일정을 소화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의자가 보이면 앉아서 쉬었다 가기도 하고 전봇대에 카메라를 걸어놓고 스냅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20분이면 올 모스크를

이 곳 저 곳 들려가며 오느라 1시간에 걸쳐 오게 되었다.


 

파랗지 않은 흐린 하늘이 다소 아쉬웠지만

모스크는 하늘과는 별개로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맑은 하늘 아래의 모스크를 보지 못해서 그런지

나는 밤이 되었을 때 모스크의 야경이 더욱 보고 싶어졌다.



모스크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발을 씻어야 한다.

모스크의 입구를 기준으로 좌측에 세족대가 있는데 나는 그 곳에서 시원한 물로 깨끗이 발을 씻었다.


 


복장을 갖춰 입은 후 모스크에 들어가려고 하는 찰나,

한 관리인 분께서 오늘 모스크 내에서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입장할 수 있는 구역이 한정되어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아쉽긴 했지만 모스크의 입장이 완전히 제한되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나마 조금은 안도할 수 있었다.


대신, 모스크의 중앙 홀의 사진 촬영을 허가해 주겠다고 하셨다.

원래 모스크 내부는 어떠한 이유로도 사진을 촬영할 수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블로그나 SNS에 사진을 게시해도 되냐고 물었는데

이 부분도 흔쾌히 동의를 해 주셨다.


 


이번 여행을 통해 매번 느낀 점은

브루나이에서의 사제복을, 코타키나발루에서의 이슬람 복장을 입은

나의 모습에서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통이면 낯설 법도 하고 어울리지 않을 법도 한데

이번 여행 동안 예절 겸 체험으로 입어 보았던 모든 복장은 내게 찰떡(?)같이 어울렸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내 사진을 본 주변 사람들도 모두가 그런 반응을 보였다.


 

 


모스크를 둘러보고 나오니 야경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밤이 깊어질 때까지 모스크의 주변을 돌아다니며

브루나이의 일상적인 모습들을 담기 시작했지만

생각 그 이상으로 브루나이는 심심하고 한적한 나라다.


이런 표현을 쓰고 싶진 않지만 나쁘게 표현하면 뭐 하나 할 게 없는 나라다.


느린 시간도 여행의 미학이라 생각하며 느끼기에

브루나이는 너무나 조용하고 차분한 나라였다.


그래서 나는 일정을 바꾸기로 했다.


모스크의 야경은 브루나이에 있는 동안에 하루로 날짜를 다시 정해서 오기로 하고

이제는 하루 종일 걸어서 모스크를 오가느라 많은 시간동안 굶주렸던 나를 위해

가동 야시장으로 가서 맛있는 야시장 음식을 먹으며 포만감을 느끼기로 했다.



천천히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하늘을 보고 걸으며 나는 가동 야시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가동 야시장까지 걸어서 가는 길은 꽤 험난했다.


가동 야시장으로 가기 위해선 원형차도를 건너야만 하는데

이 원형차도에는 보행자를 위한 신호등도 횡단보도도 없다.


오로지 눈치 하나로만 차도를 건너야만 하는데

그 때, 나는 차도 앞에서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는 한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 소녀는 나와 같이 가동 야시장에 가고 있던 참이었다.

그리고 겁에 질린 표정에 대한 이유는 나의 예상대로 횡단보도 건너기를 무서워하고 있던 것이었다.


 


나는 소녀에게 같이 가동 야시장까지 가자고 했다.

그리고 차가 달리지 않는 순간, 내가 빠르게 차도를 건널 테니

그 때, 바로 나를 따라서 차도를 건너라고 했다.


낯선 나라에서 내가 선두가 되어 누군가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입장이 된 게 처음이었다.

나, 그리고 소녀도 안전하게 이 차도를 건너야 한다.

그러나 매정하게도 많은 차들을 빠른 속도로 차도 위를 달렸고

우리는 한없이 차가 달리지 않을 때를 기다리면서 차도를 주시했다.


그래도 우리는 안전하게 차도를 건너 가동 야시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가동 야시장에서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다.







가동 야시장은 실내에 마련된 야시장이었기 때문에

연기가 자욱하고 불냄새가 야시장 안을 가득 메우고 있음에도

일반적인 야시장과 비교하면 훨씬 깔끔하고 쾌적한 분위기를 보였다.


<배틀트립>에 방송되었을 때가 야시장이 생긴지 두 달 정도 되었을 때라고 하는데,

지금으로 계산하면 거의 2년 정도가 지난 셈이다.


그럼에도 가동 야시장은 방송에서 보았던 것 그대로 깔끔하고 정돈된 모습이었다.


가동 야시장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으로 로이킴이 추천했던 파파존 버거.

사실 나도 <배틀트립> 방송을 보면서 파파존 버거의 맛이 제일 궁금했다.

마요네즈가 들어가면 다 맛있다는 에디킴의 말에도 공감이 가고,

비주얼적으로 봐도 제일 맛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가동 야시장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파파존 버거를 목놓아 말하며 찾아다녔다.

한참을 찾아다닌 끝에 파파존 버거를 발견한 나는 비프 파파존 버거와

맞은 편에서 판매하던 브루나이 전통 팬케이크를 같이 구입했다.

(파파존 버거를 주문할 때, 비프와 치킨 중 토핑을 고를 수 있다.

치킨은 먹어보지 않았지만 사장님께서 인기있는 메뉴는 비프라고 하셨고

실제로도 비프가 파파존 버거에 더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음.)


 

 


먹킷리스트 쇼핑을 마친 나와 소녀는 빈 테이블로 자리를 잡고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소녀는 배가 많이 고프지는 않다고 해서 나보다는 적게 먹었지만

브루나이 전통 팬케이크는 정말 맛있다고 해 주었다.


 


소녀는 브루나이 전통 팬케이크를 픽(Pick)했지만

나의 픽은 로이킴과 같이 파파존 버거다.

칠리소스와 마요네즈가 계란 지단에 어울려 내는 맛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파파존 버거가 만약 한국에 들어온다면

아마 핫도그와 샌드위치를 대신할 수 있다는 수식어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반면 브루나이 전통 팬케이크는 퍽퍽한 식감이 아쉬웠다.

크림이나 잼이 조금만 더 들어갔으면 훨씬 더 부드럽고 달콤한 맛을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소녀의 집이 있어서 우리는 귀가도 함께 하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에도 원형차도는 피할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손을 맞잡고 빠르게 원형차도를 뛰어 건넜다.


 

 


이번 여행 기간동안 들어갈 수 없었던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는

밤이 되자 더욱 위엄있고 웅장해 보였다.


끝내 내가 모스크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일지는 모르겠는데

밤하늘 아래에 독보적으로 밝게 빛나던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의 풍채는

마치 아무나 이 곳에 들어올 수 없다는 아우라를 풍기는 것 같기도 했다.

그 기분탓에 호텔로 향하는 내내 모스크에 대한 궁금증과 신비감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었다.


 


이 날 하룻동안 정말 많이 걸어다녔다.

몸도 발도 무척이나 피로한 상태였다.


호텔에 도착하면 나는 곧바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단잠에 들기로 했다.



호텔에 도착했더니 문턱 아래에 게스트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종이를 펼쳐 보니 울루 템부롱 정글 투어의 픽업 안내 메시지였다.


드디어 내일,


내가 브루나이에 온 목적이자

이번 브루나이 여행의 메인 일정이 되는

울루 템부롱 국립공원으로 정글 투어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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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9

D+8

가는 날이 장날


이슬람의 상징인 모스크.

이슬람교의 왕국인 브루나이에 와서 모스크 투어를 가지 않을 수 없다.

브루나이에는 대표적인 모스크가 딱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어젯밤 호텔의 복도에서 보았던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고

또 다른 하나는 브루나이를 상징하는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다.


오늘 나는 이 두 모스크에 걸어서 다녀올 예정이다.


땡볕 더위 속에서 다트 차량을 부르지 않고 굳이 걸어서 이동하는 이유는 경비를 절약하기 위함이었다.


인천공항에서 환전해 온 50만원 상당의 싱가포르 달러는 

브루나이에서 다 쓰지 않고 싱가포르에서도 쓸 예정이었던 데다가

싱가포르의 물가가 워낙 비싸다는 얘기가 자자했기 때문에

나는 애초부터 이번 여행을 계획할 때 경비 절약은

체류 기간이 제일 짧은 브루나이에서 하는 것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먼저 호텔에서 육안으로도 보이는 거리에 있는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로 향했다.


 

 


브루나이의 모스크는 코타키나발루에서 보았던 모스크와는 풍채부터가 달랐다.

코타키나발루에서 다녀왔던 UMS 모스크와 시티 모스크는 관광지의 이미지가 더 강했던 것에 비해

브루나이의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는 실제 왕의 저택에 들어온 것 같은,

모스크라는 단어를 정의하고 있는 듯한 고결한 아우라가 모스크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분수마저도 평화로워 보였던 정원을 지나 모스크의 앞에 도착한 나는

이제 복장을 입고 모스크 내부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기도 행사가 있어서 모스크를 개방하지 않는다는 공지가 적혀져 있었다.

그런데 모스를 개방하지 않는 것보다 더 아쉬웠던 것은 바로 폐쇄 기간이었다.

내가 브루나이에 있는 8월 12일까지 모스크가 개방하지 않는다는 소식에

어떤 날에, 어떻게 시간을 내서라도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에는

끝내 들어가지 못한다는 팩트가 나를 너무나 아쉽게 했다.



브루나이에서 맞이한 첫 아침의 첫 번째 일정에서부터 아쉬운 소식을 접한 나는

그렇게 쓸쓸히 모스크를 빠져나왔다.



그렇지만 이렇게 셀카라도 찍으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그리고 너무 아쉬워하지 말기로 했다.

이러한 상황 또한 계획없이 움직이는 배낭여행의 묘미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또 다른 모스크인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까지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면

그건 정말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을 것 같았다.


갑자기 불안감에 휩싸인 나는

원래 오후에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갈 예정이었던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에 지금 당장 가 보기로 했다.


 


몇 백년의 시간에 걸쳐 자라온 건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두꺼웠던 줄기의 나무를 지나,

횡단보도의 타이머가 전혀 맞지 않아 당황했던 고장난 신호등도 지나

브루나이의 상징,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에 도착했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안고 천천히 모스크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다행히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는 개방을 하고 있었다.


금요일이었던 당시, 나는 개장 시간(오후 4시 30분~5시 30분)에 맞춰 다시 모스크에 오기로 하고

이제 계속 걷느라 허기진 배를 채우러 모스크 주변의 식당을 찾아 나섰다.



계속 걸어다니며 먹거리를 찾아 다닌 나는

반다르세리베가완 터미널 앞에서 판매하는 브루나이 현지식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노란 밥의 색깔에 이끌려 특별한 맛을 기대하고 샀지만

특별한 맛은 개뿔. 니 맛도 내 맛도 없는 맛이었다.

허기진 배, 여행 경비 절약한다고 먹었으니 망정이지

어디 식당에서 음식 주문했는데 이런 맛 나왔으면 정말 열받았을 지도 모를 맛이었다.


그나저나 식사를 하다보니 이제 오늘의 일정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는 일단 갈 수 없고,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는 오후 4시 30분부터 입장할 수 있는 상황.


현재시각 오전 11시 30분.

다섯 시간동안 대체 어떻게 시간을 채워야 할까.


고민하며 인터넷을 검색하는 도중에

나는 현재 내가 있는 위치로부터 멀지 않은 거리에

캄퐁 아에르 수상가옥 마을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캄퐁 아에르 수상가옥 마을을 구경하기 위해선

수상보트를 타고 브루나이 강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선착장에서 가이드 기사님과 협상만 잘 이루어지면

무려 20달러(약 17,000원)의 가격으로 수상가옥 마을과 맹그로브 숲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걸음을 재촉하여 캄퐁 아에르 선착장에 도착했다.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수많은 보트들은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렇다. 호객행위가 시작된 것이다.

각 보트 안의 기사님들은 열심히 나를 부르며 손짓했지만

나는 원래 성격이 이 곳 저 곳 간보지 않고 한 우물만 제대로 파는 성격인지라

나와 제일 가까운 위치에 있던 보트의 기사님하고만 협상을 하기로 했다.


(캄퐁 아에르에 도착하기 전,

내가 어느 블로그에서 보았던 최고의 협상은 20브루나이달러에 1시간 30분 투어로,

투어 내용은 수상가옥 마을 구경과 맹그로브 숲에서 긴꼬리원숭이를 보는 것이었다.)

* 긴꼬리원숭이는 긴 코를 갖고 있어서 한국에서는 코주부원숭이라고도 불린다.


몇 시간 정도의 투어를 원해?

(보트 기사님)

 

“나는 1시간 30분의 투어를 원해. 얼마야?

(영완)


1시간 30분이면 40달러. 싱가포르 달러도 가능해.

맹그로브 숲에 가면 긴꼬리원숭이도 볼 수 있어.

빅 노즈 (코주부) 몽키! 몽키!

(보트 기사님)

 

“너무 비싸. 20달러 어때?

(영완)


20? 20달러는 곤란해.

(보트 기사님)

 

“그럼 25달러.

(영완)


그러면 1시간 30분에 30달러. 긴꼬리원숭이도 볼 수 있게 해 줄게.

(보트 기사님)

 

(흥정이 쉽지 않자 다른 블로그에서의 협상 후기도 읽어보기 위해 보트 기사님께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함.)

음... 잠깐만 시간을 줄 수 있겠어?”

(영완)


알겠어.

(보트 기사님)


(3분 뒤)


“(마지막 딜) 1시간 30분에 긴꼬리원숭이 보장. 25달러! 어때?

(영완)


안 돼. 25달러면 1시간만. 그래도 긴꼬리원숭이를 볼 수 있게 해 줄게.

그러나 30달러면 1시간 30분. 마찬가지로 긴꼬리원숭이는 볼 수 있어. 이 이상은 안 돼.

(보트 기사님)


계속해서 흥정이 길어지다 보니 어느새 나는 나에게 불만이 생기고 있었다.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 하나로 기껏 동경하던 브루나이까지 왔는데

겨우 5달러를 아끼겠다고 선착장 앞에서 길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내가 너무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급하게 내가 제안한 흥정을 파기시키고

보트 기사님이 제안한 30달러에 1시간 30분 협상을 체결하기로 했다.


“알겠어. 30달러에 1시간 30분.

대신 긴꼬리 원숭이 꼭 볼 수 있게 해 줘야 해.”

(영완)


OK. 내 보트에 타.

(보트 기사님)


캄퐁 아에르 수상가옥 마을+맹그로브 숲(긴꼬리원숭이 관람 포함)투어 [1인] 30브루나이달러(약 26,000원)

가이드와의 협상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 평균 20~40브루나이달러 내외

싱가포르 달러와 1:1 통용되어 싱가포르 달러로도 구입 가능(거스름돈은 브루나이 달러)


보트는 빠른 속도로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한적하고 넓게 트인 강 위를 달리다 보니 짜릿한 해방감이 들면서

가만히 있기만 해도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아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보트에 타기 전, 나는 기사님께서 보트 운전만 해 주시는 줄 알았는데 가이드의 역할도 같이 해 주셨다.

정말 그 어떤 가이드보다 책임감있게 가이드를 해 주셨다.


마을에 대한 설명과 보트를 타고 내릴 수 있는 제티의 위치,

그 외에 보트에서 보이던 브루나이 곳곳의 건물들에 대한 설명도 빠짐없이 알려 주셨다.


 


수상마을을 보는 내내

강 위에 있는 이 마을의 평범한 일상에 대한 궁금증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장을 보러 가기 위해 보트를 타고 육지로 나가는 생활이 평범한 일상일 테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창 밖으로 보이는 강의 모습도 평범한 풍경일 테다.

행여나 폭우가 내릴 때, 집이 침수될 걱정은 들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2호선 지하철을 타고 강남역으로 향하던 나의 평범한 일상과 비교하면

이들이 지내고 있는 평범한 일상은 나와 전혀 다른 세상 사람들의 일상처럼 생각되었다.


이런 마을에서 일상을 보내면 어떤 기분일까.


 


수상가옥 마을을 지나자 어느새 나의 시야에는 짙은 녹색만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트가 물살을 가르면 가를수록 더욱 울창해지는 양쪽의 풀숲과 늪지대의 눅눅한 풀냄새가 나를 반겨주었다.


낯선 광경과 낯선 감정.

지금까지 시골에서만 겪어본 자연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자연이었다.


브루나이의 자연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아니라

인간의 손이 닿을 수가 없는 곳 같았다.


극도의 위압감을 뿜어내던 맹그로브 숲의 자연에 나는 절로 숙연해지고 침착해졌다.


 


그리고 맹그로브숲 속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기사님의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바로, 긴꼬리원숭이를 찾기 위해서였다.


정적 속, 띄엄띄엄 새 소리만 들리던 울창한 숲 속에서

열심히 가이드를 해 주시던 기사님은 한 마디의 말도 없이 매서운 눈빛으로 숲 전체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행여나 엔진 소리 때문에 긴꼬리원숭이가 나타나지 않을까봐 보트의 속도도 최대로 낮추어주셨다.


그러나, 긴꼬리원숭이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기사님이 말씀하셨다.


“Try again?

(보트 기사님)


Yes.

(영완)


기사님께선 맹그로브 숲 일대를 한 번만 더 천천히 돌아보자고 하셨다.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그렇게 10분 가량을 또 천천히 달리며 보트 기사님은 나와 함께

맹그로브 숲 일대를 샅샅이 물색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긴꼬리원숭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기사님이 또 한 번 물어보았다.


“Try again?


나는 이번에도 Yes.”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세 번째 시도에도 긴꼬리원숭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긴꼬리원숭이를 보여주겠다는 기사님의 호언장담에 30달러 협상을 체결했는데

긴꼬리원숭이를 보지 못해 선착장으로 돌아가면 재협상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긴꼬리원숭이를 보지 못한 게 

의 문제지 기사님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답답한 갈등만이 계속되고 있었다.


세 번째 시도 끝에도 긴꼬리원숭이가 나타나지 않자

기사님은 원숭이들이 자고 있는 것 같다며 이만 선착장으로 돌아가자고 하셨다.

이에 나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선착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던 그 때,


“Hey! Hey! Hey! Hey! Hey! Hey! Hey! Hey!


갑자기 기사님이 작은 목소리로 나를 향해 다급하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기사님이 가리키던 손 끝을 바라보았는데


이럴 수가.


스무 마리 가까이 되는 긴꼬리원숭이들이 나무를 타면서 숲 속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탄성을 내질러 버렸다.


기뻐하는 나의 모습을 본 기사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나와 함께 덩달아 웃음을 지었다.


 

 


 기사님께서는 내가 긴꼬리원숭이를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나무의 바로 앞까지 보트를 끌고 들어가 주셨다.


덕분에 나는 긴꼬리원숭이들의 개구진 얼굴까지 제대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인근에 있던 다른 보트들도 긴꼬리원숭이를 찾아 헤매는 건 마찬가지였나보다.

나의 보트 기사님께서는 다른 보트 기사님들에게 손짓을 하며

지금 여기에 긴꼬리원숭이들이 있다고 가르쳐주었다.


내 기사님이 다른 기사님들에게 긴꼬리원숭이가 있는 장소를 알려주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선착장에서 이 기사님의 보트를 선택해서 타길 잘했다는 생각이 마구 들기 시작했다.


긴꼬리원숭이들이 시야에서 벗어나자 나는 함박웃음을 지은 얼굴로

기사님께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기사님의 사기를 최대로 북돋아 주었다.


기분좋은 마음으로 맹그로브 숲을 빠져나와 다시 수상가옥 마을 주변으로 향하는데

기사님께서 갑자기 어느 다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셨다.



이 다리는 브루나이에서 판매하는 생수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다리인데

기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 다리는 한국 기업이 지었다고 한다.


나중에 인터넷에 찾아보니 실제로 이 순가이 브루나이 대교는 한국의 대림산업에서 지은 다리로

문재인 대통령이 동남아시아의 3개국을 순방할 때 방문한 적이 있던 다리였다.


 


수상가옥 마을에 내린 나는 기사님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마을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걸어다니는 내내 눈 안에 담겼던 모든 모습들은 궁금증의 대상이 되어 주었다.


수상가옥 마을에서 선착장으로 올 때는 보트로만 올 수 있다.

마을 안에 있는 아무 제티에 가서 기다리다 보면 기사님이 보트를 태워 주시는데

이 때 보트 탑승 비용으로 1달러(약 870원)를 지불해야 한다.


캄퐁 아에르 수상가옥 마을과 맹그로브 숲 투어를 마치고 나니

가격 때문에 1시간 투어를 선택하지 않은 게 정말 현명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협상에서 이기려고 1시간 짜리 투어를 선택했다면 긴꼬리원숭이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나중에 호텔로 돌아와서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도 보다 보니 긴꼬리원숭이를 보기 위해서

두세 번씩 맹그로브 숲을 다시 도는 건 비일비재한 경우였다.


만약, 브루나이에 가서 울창한 맹그로브 숲 속에 있는 긴꼬리원숭이를 보고 싶다면

기왕 여행하는 김에 안전하게 1시간 30분짜리 투어를 골라

긴꼬리원숭이를 볼 시간을 버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팁을 전하고 싶다.


캄퐁 아에르 선착장에 도착한 나는 호텔로 돌어가서 쉬는 시간을 갖다가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의 개방 시간에 맞춰 다시 나오기로 했다.


 


여행 일정 동안 상대방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시간을 컨트롤하며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혼자 떠나는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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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08

D+7

국제미아


브루나이로 가는 페리가 출발하기까지는 아직 30분이나 남았다.

그러나 국경을 이동하는 페리의 선착장 치고는 너무나 고요했던 선착장의 분위기에 나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창구 직원의 호통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되어 선착장의 끝까지 가 보았다.


제셀톤 포인트에서 4번 창구 직원에게 선착장 위치를 물었을 때 일어났던 일이 궁금하다면?

[말레이시아⑧] 아듀 코타키나발루! 브루나이로 향하는 페리 탑승기 을 정독해주세요.

(위 타이틀을 클릭하면 해당 게시글이 새 창으로 띄워집니다.)


가다 보니 어딘가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바로 출입국 심사대였다.



출입국 심사대에 들어가니 출입국 심사관이 나에게 여권을 보여달라고 했다.

나의 여권과 페리 탑승권을 확인한 출입국 심사관은 서둘러 페리에 탑승하라고 손짓을 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선원들은 배를 출항시키기 위해 몹시나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서둘러 캐리어를 끌고 페리를 타기 위해 게이트를 따라 내려갔다.

그러나 그 순간까지도 창구 직원과 출입국 심사관, 그리고 페리의 선원들이

왜 이렇게 하나같이 나를 닦달하고 보채는 걸까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내가 페리에 탑승하자마자

한 선원은 나의 캐리어를 잽싸게 짐칸으로 던져넣고 페리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또다른 선원은 페리의 문이 닫히자 마자

부두에 묶어놓았던 밧줄을 푸르고 선장에게 출항 신호를 건넸다.


페리에 탄지 30초도 지나지 않아서 페리는 뱃고동 소리를 울리며 선착장을 떠났다.


그 시각은 오전 8시 3분이었다.


페리에 들어오니 페리 안에는 수많은 승객들이 앉아서 출항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무언가 잘못 되었음을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빠르게 움직이는 페리의 속도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던 나는 던져지듯이 빈 자리로 앉혀졌다.



그리고 나는 휴대전화 사진첩으로 들어가

브루나이 행 페리의 출항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사진을 다시 확인한 나는 경악했다.



코타키나발루(사진 속 K.K)에서 라부안으로 출발하는 페리의 출항 시간은

오전 8시 30분이 아니라 바로 오전 8시였던 것이다.


그 순간,

온 몸에 소름이 확 돋으며 등골이 오싹해졌다.


생각을 다시 해 보니 코타키나발루에서 출발하여 라부안에 도착하는 시간이 11시 30분이었고,

라부안에서 브루나이로 출발하는 시간이 오후 1시 30분,

그리고 브루나이에 도착하는 시간이 오후 2시 30분이었기 때문에

나는 모든 시간을 30분 단위로 잘못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호스텔에서 5분, 아니 1분이라도 더 여유를 가졌다면

나는 브루나이로 가지 못할 뻔 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상황.


이번 여행의 모든 순간들 중에서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은

단연 이 순간이었다.


오전 8시 30분.



어느덧 페리는 통화권을 이탈하였다.

서서히 고된 여정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오전 8시 45분,


강하게 쏟아내리는 폭우, 창문으로 무섭게 부딪치는 물살,

그리고 좌우로 심하게 요동치는 페리.

게다가 지나치게 빵빵한 에어컨 바람 때문에

시원하다 못해 니트티가 생각날 정도로 추웠던 페리 안.


 


가뜩이나 민소매를 입고 있었던 나로서는 이 순간, 버티기 힘들 정도로 고된 시간이었다.

캐리어에서 긴팔을 꺼내 오고 싶었으나 좌우로 심하게 요동치는 페리 안에서

캐리어를 찾으러 이동하는 것은 도저히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나는 있는 힘껏 몸을 꽉 껴안은 채 이 악물고 에어컨의 추위에 맞섰다.


그러던 그 때,

페리 안에서 입에다 바구니를 대고

오바이트를 하는 첫 번째 승객이 등장했다.


고통스럽게 오바이트를 하는 적나라한 소리가 페리 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그 어느 승객도 그 승객을 질타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순간,

페리 안에 있던 모든 승객들이 배멀미와 힘겹게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멀미를 잘 하지 않는 나도 이 순간만큼은 정말 죽을만큼 힘들었다.

그런데도 끝까지 멀미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멀미를 한 후에 느끼게 될 입 안의 텁텁함을 절대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잠에 들려 노력했다.

목베개를 끼고 잠에 들 수 있는 자세를 찾기 위해 의자 위에서 몇 번이나 몸을 뒤집었다.

그런데 노력을 하면 할수록 잠은 오지 않고 속만 더 메스꺼워졌다.


이 순간,

여행이고 나발이고 그냥 다 때려치우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오전 11시 40분.


어쩌다 보니 잠에 들어 있었다.

깨고 나니 예정된 도착 시간은 이미 넘어가 있었지만

통화권에 다시 들어왔고 페리는 터미널의 근처에 와 있었다.



창밖을 보니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보이고 있었고

페리 안에는 단 한 명도 예외없이 모두가 잠에 들어 있었다.


악천후의 기상과 배멀미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무사히 라부안에 도착한 내게 스스로 대견한 기분이 들었다.


오후 12시.


드디어 지옥같았던 페리에서 탈출했다.

나는 코타키나발루를 출발한지 4시간 만에 라부안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제 이 곳에서 1시간 가량의 시간을 보내다가

1시 30분에 브루나이로 향하는 페리를 한 번 더 타야 브루나이에 도착할 수 있다.


어디에서 시간을 때울까 고민하다가 나는 근처에 라부안 박물관이 있는 것을 보고

라부안 박물관에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라부안 박물관은 박물관이라고 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작은 규모였다.

입장료가 무료여서 그런가.

생각보다 볼 거리가 너무 없어서 그냥 동네 시장 구경하듯이 짧게 구경하다가 바로 나왔다.


터미널로 다시 오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간단하게 한 끼를 때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혹시라도 브루나이로 가는 중에 멀미를 하게 될까봐 제대로 식사를 하기가 두려웠다.


그런데 배고픔에 계속 맞서자니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그냥 한 끼를 때우기로 했다.


폭우 속에서 흔들리는 페리 안에서도 멀미를 참았는데 내가 뭘 못 하겠어?’


그래, 어차피 브루나이로 가는 페리는 이동 시간이 1시간 밖에 되지 않으니

멀미를 참는 건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카야 크림맛 와플과 레인보우 펄이 들어간 페퍼민트 아이스 블렌디드를 먹었다.

와플은 내 입맛과 맞지 않았지만 아이스 블렌디드는 페퍼민트의 향이

멀미와의 싸움으로 인해 잃어버린 생기를 되찾아주는 기분이 들 정도로 향긋하고 시원했다.


오후 1시.


터미널 카운터에서 터미널 이용료를 지불한 후

나는 라부안에서 브루나이로 가는 페리에 탑승하기 위해

수하물 검사와 출국 심사를 진행했다.

(국경은 라부안에서 브루나이를 갈 때 넘기 때문에

코타키나발루에서 라부안으로 갈 때는 수하물 검사를 진행하지 않음.)



페리를 타고 국경을 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선착장에서 수하물 검사를 하고 여권에 출국 허가 도장을 받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배를 타고 나니 선원은 곧바로 출입국 카드를 나눠주었다.

출입국 카드의 작성을 마친 나는 바로 곯아 떨어졌다.


오후 2시 30분.


이번에는 멀미로 인한 불편함 하나 느끼지 않은 채 무사히 선착장에 도착했다.

새로운 나라에 도착했다는 설렘이 터미널 밖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브루나이에서의 여정이 시작된다.


 


브루나이 입국 심사와 수하물 검사를 마친 나는 터미널 밖으로 나와

때마침 대기 중에 있던 33번 버스를 탔다.

33번 버스는 5분 정도 달리다가 모든 승객들을

브루나이 시내의 중심지인 반다르세리베가완까지 갈 수 있는 버스 정류장에 내려준다.


 


브루나이의 첫 이미지는 차분했다.

내가 브루나이에 대해 미리 갖고 있던 이미지가

왕국, 부자, 자연과 같은 카테고리들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평범하게 화창하던 브루나이의 풍경도

괜히 어릴 때 만화 속에서나 보던 왕국의 한적함처럼 느껴지곤 했다.


버스에 있던 안내원은 승객들에게 시내로 가는 37번 버스로 환승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시내로 가지 않고 공항으로 가서 브루나이 유심 카드 구입과 환전을 할 예정이었다.

37번 버스가 공항도 들르냐고 물었더니 안내원이 공항으로 갈 승객은 38번 버스를 타라고 했다.


 


33번 버스에서 내린 나는 38번 버스가 오기까지 기다렸다.

한 15분 정도를 기다리고 나니 정류장에 38번 버스가 도착했다.

기사님은 33번 버스에서 받은 나의 표를 확인하더니 바로 출발하셨다.


그 때, 쭈뼛대는 나의 모습이 불안하기라도 했는지

한 승객이 내게 어디까지 가냐고 물었다.


Where are you going?

(버스 안 승객)

 

I’m going to Brunei international airport.

(영완)


그러자 그 승객은 기사님께 Hey!” 라고 말을 걸더니 캐리어를 들고 있는 나를 가리키며

브루나이 공항에 가는 승객이라며 대신 말을 해 주셨다.


버스는 50분을 달려 브루나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공항 근처가 어딘지, 또 정류장의 위치가 어딘지도 몰라

하차벨을 미처 누르지 못했는데도

기사님께서는 공항에 도착하자 알아서 버스를 세워 내가 내릴 수 있게끔 해 주셨다.



여행을 하다 보면 사소한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정말 많아진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볼 때,

나는 과연 서울 버스 안에서 주저하는 외국인이

목적지까지 안심하고 도착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할 수 있을까.


마음에 여유가 없는 일부 사람들은 그런 시선을 오지랖이라고 해석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들의 용기있게 내민 손이 오지랖이라는 단어로 치부되어 버리는 게 너무 싫다.



두 번의 페리와 두 번의 버스를 타고서야

나는 브루나이 국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순간까지도 나는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백팩에서 노트북을 꺼내 <배틀트립> 방송 영상을 보며

유심 카드를 판매하는 샵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배틀트립> 브루나이 편이 방송된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유심 샵에서 <배틀트립> 방송을 보여주면서 10달러 짜리의 같은 유심 카드를 달라고 하자

해당 유심은 더이상 판매되지 않는 제품이라고 하셨다.


이제 오로지 25달러 짜리 유심 카드만 판매하고 있으며

해당 카드로는 1주일간 브루나이 로컬 전화와 문자,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다.


브루나이 USIM [1주] 25브루나이달러(약 20,000원) / 2019.08 기준

싱가포르 달러와 1:1 통용되어 싱가포르 달러로도 구입 가능(거스름돈은 브루나이 달러)



유심 카드를 구입하면서 이제 브루나이에서의 휴대전화 사용이 자유로워졌다.

이제 울루 템부롱 정글투어의 예약을 한 후,

한국에서 미리 예약한 호텔로 가서 체크인을 하면 된다.


말레이시아에 그랩이 있다면 브루나이에는 다트가 있다.

나는 다트라는 어플을 이용하여 울루 템부롱 정글투어를 예약할 수 있는

더 브루나이 호텔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공항 주변에서는 다트가 잘 잡히지 않는다는 유심 샵 직원의 말에

수강신청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택시를 타고 더 브루나이 호텔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런데 택시비가 너무 비쌌다.

공항에서 더 브루나이 호텔까지 무려 25달러라는 것이다.

다트를 이용하면 7달러 내외로 갈 수 있는 곳을 무려 3배 넘는 가격을 지불하면서 가야 하는 상황.


그러나 일부러 다트를 사용하기 위해 공항 주변까지 걸어서 이동하며

애매한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눈 딱 감고 택시를 이용하여 더 브루나이 호텔까지 가기로 했다.

이것은 내가 브루나이에서 타는 처음이자 마지막 택시였다.



더 브루나이 호텔에 도착한 나는 프론트에서 울루 템부롱 정글 투어를 예약했다.

더 브루나이 호텔에서는 투숙객이 아니어도 울루 템부롱 정글 투어의 예약이 가능하다.


프론트 직원이 정글 투어 예약 날짜를 묻자

나는 그 자리에서 브루나이의 일기예보를 확인한 후

8월 10일 토요일로 예약을 하겠다고 했다.


울루 템부롱 정글 투어는 브루나이에 오는 모든 관광객들의 목적이 되는 일정과도 같다.

그래서 한국에서 어떠한 사전 예약도 하지 않은 내가

너무 대책없는 도박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당장 이틀 뒤의 투어 예약이 가능한 것을 보고

생각만큼 예약 경쟁률이 심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울루 템부롱 국립공원 정글투어(호텔 픽업, 식사(조식, 중식) 포함) [1인] 150브루나이달러(약 130,000원)

더 브루나이 호텔 현지예약 (2019.08 기준)

싱가포르 달러와 1:1 통용되어 싱가포르 달러로도 구입 가능(거스름돈은 브루나이 달러)


유심 카드도 샀고 울루 템부롱 정글 투어의 예약도 큰 탈 없이 마무리되자

어깨 위에 올려져 있던 무거운 짐 하나가 떨어져 내려간 기분이었다.


한시름 마음의 짐을 덜은 나는 편안하게 다트를 불러

브루나이에서 나의 집이 되어 줄 하이어 호텔로 향했다.


 

 


하이어 호텔(조식 불포함) [5박/1인] 106,255원 / 아고다 기준(2019.07 예약)


페리, 버스, 택시까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교통 수단에 몸을 맡긴 하루였다.

이제 좀 두 발 뻗고 침대에 누워 휴식을 좀 취해 볼까 했는데

수강신청 과목을 장바구니에 담아야 한다.


잽싸게 노트북 전원을 켜서 2학기에 수강하고자 하는 과목들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다행히 내가 듣고자 하는 과목들은 많은 사람들이 몰리지 않았다.


이제 수강신청이라는 짐까지 덜었으니 식사를 해야 되겠다.

나는 호텔 라운지에 있던 식당에서 블랙 페퍼 비프 철판덮밥과 파인애플 주스를 먹었다.


 


여행 내내 통통한 쌀로 지어진 밥이 먹고 싶었다.

코타키나발루에서도 종종 밥은 먹었지만 먹었던 모든 밥이 모두 한국의 밥과는 달랐다.

한국의 쌀만큼 통통하지도 않았고 영양가가 없는 것처럼 쌀알이 금방 바스러지곤 했다.

처음에는 그 모든 것을 현지식 음식이라 생각하며 먹었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한식이 그리워지고 김치가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브루나이에 와서 첫 끼가 되어 주었던 이 덮밥이

내가 먹고 싶었던 밥맛과 가장 가까웠다.


나는 양손에 숟가락과 포크를 쥐고 정신없이 덮밥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식당의 바로 옆에 있던 편의점에서

간단한 간식거리를 산 후 방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한 두개의 과자봉지를 집어들고 계산대로 향하는 순간,

나는 미친 대박.” 이란 소리를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내뱉고 말았다.



바로 한국 라면이 보인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손에 쥐고 있던 과자들을 다시 원래 자리에 갖다놓은 후

뭐에 홀리기도 한 사람처럼 신라면과 콜라를 사서 카운터로 향했다.

이 와중에 콜라도 태극기와 비슷한 로고가 새겨진 펩시 콜라를 샀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콜라는 코카콜라밖에 먹지 않았다.)


계산을 마치고 나는 편의점 안에 있던 테이블에서 바로 컵라면을 끓여 먹었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해외여행을 떠날 때,

김치와 김을 챙겨서 여행하는 한국인들을 절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비난하기까지 했다.


아니, 외국 나가서 김치 먹고 김 먹을 거면 대체 뭐하러 외국 나가는 거야? 그냥 한국에 있지.’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나의 엄마는 내게 밥은 먹고 가냐면서

김치와 밥 얘기가 담긴 카카오톡을 보냈다.

그 말에 답답한 기분이 들었던 나는 화가 나서 퉁명스런 말투로 엄마에게 답장을 보냈다.



그런데 엄마 말은 다 맞다고 했다.


집 떠난 지 일주일만에 나는 한식이 그리워 미칠 것만 같았다.

심지어 엄마가 먼저 말을 꺼내지도 않은 컵라면은

내가 알아서 먹지도 않겠다고 해 놓고서

브루나이에 오자마자 바로 하나를 사서 국물까지 뚝딱 해치웠다.


덮밥에 컵라면까지 먹고 나니 세상천지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방으로 올라오니 어느새 브루나이에도 밤이 찾아왔다.

복도 끝 너머로 보이는 황홀하게 빛나는 자메 아스르 하사날 볼키아 모스크가 눈에 띄었다.


브루나이에 왔다는 것이 서서히 실감나기 시작했다.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던 왕국.

왕국이라는 단어에서 전해지는 묘한 아우라와 기류를 서서히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 해가 뜨면

나는 자메 아스르 하사날 볼키아 모스크에 가기로 했다.


그렇게 브루나이에서의 첫 번째 날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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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있을 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걸그룹은

<여자친구>였고,


내가 가장 좋아했던 예능프로그램은

<배틀트립>이었다.


2017년 5월,

바야흐로 상병 시절.


전역 후의 여행을 그저 갈망할 수 밖에 없던 시기에

나는 로이킴, 에디킴, 박재정의 <배틀트립> 브루나이 편을 보게 되었다.


라오스를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은 남자 우정 여행지라는 생각과 함께

처음 들어본 나라 이름으로부터 전해지는 호기심과 설렘에

언젠가는 브루나이에 가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갖게 되었다.




2019년 6월,

퇴사와 여행을 앞두고 있던 시기.


내가 배낭여행지로 골랐던 코타키나발루에서

페리를 타고 브루나이로 갈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나는

여행 일정에 브루나이를 추가하게 되었다.


외국에서 국경을 넘어 또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국경을 넘어가는 기분이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고,

그 처음을 경험할 나라가 내가 동경하던 브루나이가 되어 더 두근거렸다.


주변에서 내게 이번 여행에 어느 나라에 가냐는 질문을 건네면

나는 항상 브루나이를 제일 먼저 언급했다.


그런데 브루나이의 인지도는 생각 그 이상으로 낮았다.

주변에서 브루나이를 알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원래 브루나이의 인지도가 낮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보통 여행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나라가 소개되면

인지도가 상승하며 그 나라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기 때문에

브루나이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 거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것이 더욱 나를 설레게 했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생소한 나라 브루나이에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는 내가 최초로 가게 되었다는 점에 자부심이 들기 시작했다.


빨리 가 보고 싶었던 나라,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경험담을 들려주고 싶었던 나라,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감이 컸던 나라,


지금부터 브루나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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