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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8.21 [말레이시아⑥] 이마고 쇼핑몰의 야외수영장에서 낮과 밤 보내기



2019.08.06

D+5

내가 먼저


방을 바꾸면서 침대도 2층으로 옮겨졌다.

2층 침대는 초등학교 때 동생이랑 썼던 때가 마지막이었는데

오랜만에 어릴 때 생각도 나고 좋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도 정해진 일정은 없다.

조식을 먹으며 천천히 오늘의 일정을 어떻게 채워 나갈까 생각해 보았다.

오늘의 조식에는 어제 대니형 일행으로부터 선물받은 달콤한 망고가 함께했다.



쁠라우띠가 섬 투어의 첫 예약이 취소된 이후 다시 잡은 새 예약일은

내가 코타키나발루에 있는 마지막 날이 되었다.


만약 이 날도 비가 오게 되어 예약이 취소되게 되면

나는 코타키나발루에서의 해양 스포츠를 끝내 경험하지 못한 채

브루나이로 가게 되기 때문에 내일로 변경된 예약을 앞당기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도라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다.

혹시라도 취소건이 생겼다면 내가 그 자리를 메꾸고 싶었다.


카카오톡은 8월 5일에 나눈 내용



“안녕, 친구(도라). 내일(8/6) 취소된 예약 있어?

7일도 가능하지만 6일에 갈 수 있다면 나는 6일에 가고 싶어.

만약, 7일에도 비가 오면 다음 날(8/8)에 내가 브루나이로 가야 하기 때문에 불안할 것 같아.”

(영완)


“알겠어 친구. 내가 계획을 확인해 보고 너에게 알려줄게.”

(도라)


“정말 고마워.

(영완)


(1시간 30분 후)


“안녕, 친구. 이미 내 계획을 물어보았어. 내일은 이미 예약이 다 차 있어서 함께할 수 없어.

8월 7일은 괜찮아.”

(도라)


“어쩔 수 없지. 비가 오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8월 7일로 할게. 나중에 셔틀 차량의 번호를 알려 줘.”

(영완)


“알겠어. 만약 8월 7일에도 비가 온다면 우리는 너에게 쁠라우띠가 투어의 비용을 환불해 줄게.

내일 밤, 스케줄이 잡히면 셔틀 차량 번호를 말해 줄게.

(도라)


만약, 내일도 비가 와서 쁠라우띠가 섬에 갈 수 없다고 가정하면

지금까지 나는 코타키나발루에 온 이후 한 번도 해양 스포츠를 즐기지 못한 것이 된다.

그래서 오늘은 혹시 모를 비 내릴 내일을 대비해 쁠라우띠가 섬 투어를 대신할 수 있는 레저를 즐기기로 했다.


그리하여 정해진 오늘의 일정.

바로 호스텔에 있는 야외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 것.


래쉬가드로 수영장에 들어갈 마친 나는 호스텔의 6층에 있는 야외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으로 가는 길이 잘 꾸며져 있었다.

작은 수로에는 잉어들이 많이 있었는데 인공적인 공간에 있는 잉어들의 모습이 무척 신기해서 구경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관리인 분께서 먹이를 잘 챙겨 주시는지 살찐 잉어들이 정말 많았다.


수영장에 도착을 하자 관리인 아저씨께서는 내게 투숙 중인 호스텔의 키를 보여달라고 하셨다.

키를 받으신 아저씨께서는 호스텔의 키에 기재되어 있는 일련번호를 확인하시고 나를 수영장으로 입장시켜 주셨다.


 

 


수영장 시설은 대체적으로 잘 마련되어 있었다.

비록 수영장에서 볼 수 있는 뷰의 반경에 바다가 포함되진 않았지만 호스텔의 가격대에 비하면 그것은 욕심이다.

물의 깊이도 적당했고 내가 좋아하는 썬베드도 구비되어 있었다.


만약, 물놀이에 비중을 크게 두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 규모의 수영장이 아쉬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사람 많고 북적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충분히 만족하면서 수영을 즐길 수 있었다.


내가 방문한 시간대가 오전이었어서 그런지 수영장에는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대다수였다.


 


코타키나발루에 있는 내내 비행기가 이륙하는 모습을 정말 많이 보았다.

공항과 시내가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여행객이라 그런지 나는 잦게 들리던 비행기의 이륙 소리조차도

소음이 아닌 여행의 감성을 북돋아 주는 일상음과 같이 여겼다.


썬베드에 누워 비행기가 날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각 비행기마다 붙혀진 항공사 로고를 계속 눈에 담는 것.


내가 살고 있는 서울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어렸을 때 수영을 배웠던 기억을 떠올려 풀장을 자유롭게 누비며 몇 년 만에 수영 실력(?)을 발휘해 보았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체중이 늘어서 그런지 금세 호흡이 딸렸다.

수영 도중에 가쁘게 숨을 내쉬는 내 자신을 발견하며 나는 착잡한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두 시간 가량이 지났을까.

수영을 하며 급격히 칼로리를 소모시킨 나는 식사를 하기 위해 호스텔을 나섰다.

식사는 호스텔로부터 도보로 약 10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로컬 푸드 식당에서 해결했다.


 

 


오늘의 점심은 해물 볶음밥과 아이스 밀크티.

물놀이 후에 먹어서 그런지 더 맛있었고 다른 때보다 더 허겁지겁 먹었다.


 


맛있게 식사를 하다 보니 주방의 옆에서 접시에 자신이 먹을 음식을 담는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소녀는 나의 주문과 서빙을 담당하는 이 식당의 아르바이트생같았다.

사실 아르바이트생이라고 말하기에도 소녀는 너무나 어려 보였다.


열심히 일을 한 후에 식사를 하려는 이 소녀.

어린 나이에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기특해 보였다.

이 소녀가 든든하게 한 끼를 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햄버거가 좋아서 햄버거 아르바이트를 했었던 내가 맥도날드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후식으로 말레이시아에서만 먹을 수 있는 쳄페닥 맥플러리와 콘파이를 먹었다.



쳄페닥은 태어나서 난생 처음 들어본 열매였다.

두렵지만 과감하게 도전해 보았다.

식감은 찰진 옥수수와 같았는데 향은 망고 비스무리한 향이 나면서 찐득한 시럽 맛이 함께 났다.

타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생소함에 한 번 쯤은 도전해 볼만 하지만 두 번은 찾지 않을 맛이었다.


 


그러나 콘파이는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꽉찬 옥수수 크림과 바삭한 파이의 겉면은 한국에서 판매되던 콘파이와 확연하게 달랐다.

한국 맥도날드에서 콘파이가 재출시된다고 하는데

조만간 맥도날드에 들러서 코타키나발루에서의 콘파이와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보아야겠다.


 


방을 옮긴 이후 한 번쯤은 저 귀여운 쿠션에 등을 대고 잠들고 싶었다.

호스텔로 돌아온 나는 바로 쿠션에 앉아 낮잠을 청했다.



잠에서 깨고 나니 어느새 시간은 저녁과 가까워져 있었고

하늘도 그에 맞게 점점 어둡게 짙어져가고 있었다.


그 때, 수영장에 다시 한 번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두운 밤의 수영장은 가족들과 아이들이 많았던 오전의 수영장과는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밤에 수영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을 계기로 한밤의 수영도 경험해 보고 싶었다.


 

 


밤의 수영장에 도착하자마자 느꼈다.

내가 원하던 수영장의 느낌은 바로 밤이었다는 것을.

적은 사람들과 짙푸른 하늘, 그리고 은은한 조명의 색감까지.


혼자여서 아쉬웠지만 이 순간, 여자친구와 함께 있을 수 있었다면 로맨틱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배영을 하면서 눈 앞에 광활하게 펼쳐져 있던 하늘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오전과 마찬가지로 그 하늘 위로는 수시로 비행기가 이륙을 하고 있었다.



수영을 마치고 나와 썬베드에 누워 물에 젖은 머리와 래쉬가드를 말렸다.

나는 수영장에서 젖은 물을 자연바람에 말리며 선선함을 만끽할 수 있는 순간이

수영보다 더 매력적인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물기가 다 마르면 한 번 더 물 속에 들어가 래쉬가드와 머리를 적셨고

다시 썬베드로 나와서 젖은 물기를 말리는 미련한(?) 행동을 반복했다.


 


오늘은 거의 모든 시간을 수영장에서만 보냈다.

피곤해진 나는 주섬주섬 짐을 챙겨 호스텔로 돌아왔다.


호스텔에 들어가니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던 한 남자 투숙객이 내게 인사를 건넸다.

이 투숙객은 나와 같은 방을 쓰는 투숙객이며 나의아래 층 침대를 쓰고 있다.

우리는 호스텔에 있는 내내 간단하게 아침 인사와 저녁 인사 정도만 주고받았는데

나는 이 투숙객과 인사를 할 때마다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말투와 표정에서 전해지는 사람의 기운이라고 할까.

그 기운이 너무 밝아서 마냥 인사만 나누며 지내기가 아쉬웠던 나는

용기내서 먼저 다가가 한 마디의 말을 덧붙였다.


본 대화는 기초적인 영어 회화와 번역기의 도움을 빌림.


괜찮으면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 와서 나와 식탁에서 같이 먹지 않을래?

(영완)

 

지금?

(아래 층 침대 투숙객)

 

일정이 되지 않거나 불편하면 일부러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된다.

(영완)

 

지금 바로는 어렵고 30분 뒤에 같이 나가자.

(아래 층 침대 투숙객)



그렇게 우리는 이마고 쇼핑몰 근처에 있는 오렌지 편의점에 가서 간단한 주전부리를 사 왔다.


간식을 사러 가면서 나누었던 대화를 




통해 나는 그의 이름이 셰디이며, 두바이에서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셰디와 식탁을 함께 하며 나눈 대화를 통해 느낀 것은

셰디가 상대방과 대화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마냥 내가 묻는 형식적인 질문(언제 코타키나발루에 왔는지, 나이가 몇 살인지 등)에만 대답하는 것을 떠나

식탁을 함께하는 상대에게 물어볼 수 있는 따뜻한 질문들을 많이 물어봐 주었다.


그 하나의 예로 긴 여행을 하기 위해 내가 집을 나와있는 동안 가족들에게 연락을 잘 하고 있는지와 같은 질문.

이 질문은 여행을 하는 동안 만났던 외국인 친구들은 물론, 같은 한국인들로부터도 받아본 적 없었던 질문이었다.


이 시간을 통해 나는 셰디는 정말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내가 한국인임을 말했을 때 셰디는

북한(North)에서 왔는지 남한(South)에서 왔는지와 같이 형식적인 질문을 건네는 게 아닌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하면서 나의 나라 한국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자기 형제들의 이름들을 노트에 적기 시작하더니 이 이름을 한글로 적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과연 나는, 처음 보는 외국인 친구에게 너희 나라의 언어를 가르쳐 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솔직하게 그럴 자신은 없다.


 


갑자기 시작된 한글 강의, 셰디는 내게 학생이냐 묻더니 전공과 할 줄 아는 외국어가 있냐고 물었다.

이에 한국어를 제외하면 일본어를 구사할 줄 안다고 하자 셰디는 내게 일본어도 가르쳐 달라고 했다.


형제들의 한글과 가타카나 표기법을 보며 각 언어의 규칙성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셰디의 모습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이름 표기 강의가 끝나자 셰디는 더 어려운 강의를 부탁했다.


Hello? / How are you? / What’ s your name? / Where are you from? 과 같은 기본적인 어휘의

한글과 일본어 표기법과 발음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가르쳐 주는 내가 어려울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영어권 나라 외국인의 입장에서 이 어휘들을

즉석에서 한국어와 일본어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몇 번이나 괜찮겠냐고 되물었지만 셰디는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편한 마음으로 셰디에게 한글과 일본어를 가르쳐 주었고

What’ s your name?과 같은 표현은 K-POP의 노래를 예시로 들며 포미닛의 <이름이 뭐예요?>를 들려주기도 했다.



모든 강의가 끝나자 나는 셰디에게 명함을 선물로 건네주었다.


셰디는 나의 명함을 보고 별자리 디자인이 예쁘다며 칭찬해주었다.

셰디는 답례로 자신의 메일 주소를 알려 주었고,

나는 셰디의 메일 주소로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내 주었다.


 


다 먹은 과자봉지를 치우며 식탁을 정리하고 있을 때,

한 일본인 투숙객이 방에서 나오더니 책을 읽기 위해 식탁에 앉았다.


그 때 셰디는 일본인 투숙객에게 나를 소개하며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친구라고 소개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일본인 투숙객과도 일본어로도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나는 사람들과 대화 나누는 것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학창시절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로부터 상처를 받은 이후

먼저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에 대해 극심한 경계와 거부감이 생겼다.


아무렇지 않은 척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나는 속으로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진 않을까,

혹시나 내가 억지로 붙잡아두고 대화를 이어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함을 항상 안고 눈치 속에서의 대화를 이어간다. 


그래서 가끔씩 점점 정이 깊어지는 친구들에게 과거에 받았던 상처를 고백하

모든 친구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에게 십중팔구 이러한 대답을 한다.


영완아, 너는 말도 잘 하고 사람을 집중하게 하는 그런 화법을 가지고 있어서 너랑 말하면 되게 재미있거든?

그런 너가 먼저 말을 거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몰랐어.


셰디가 건네는 따뜻한 인사,

나는 오로지 그 이유 하나로 말 한 마디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처음으로 함께 담소를 나누자고 제안을 해 보았다.


이 경험 또한,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별 거 아닌 여행객과의 수다에 불과할 수 있지만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큰 도전과도 같았고,

인간 대 인간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온정을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셰디는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넸고,

나는 셰디에게 먼저 담소를 제안했다.


내가 먼저 상대방을 위해 손을 내민다는 것은 나에게 손을 내미는 것과도 같다는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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