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09

D+8

가는 날이 장날


이슬람의 상징인 모스크.

이슬람교의 왕국인 브루나이에 와서 모스크 투어를 가지 않을 수 없다.

브루나이에는 대표적인 모스크가 딱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어젯밤 호텔의 복도에서 보았던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고

또 다른 하나는 브루나이를 상징하는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다.


오늘 나는 이 두 모스크에 걸어서 다녀올 예정이다.


땡볕 더위 속에서 다트 차량을 부르지 않고 굳이 걸어서 이동하는 이유는 경비를 절약하기 위함이었다.


인천공항에서 환전해 온 50만원 상당의 싱가포르 달러는 

브루나이에서 다 쓰지 않고 싱가포르에서도 쓸 예정이었던 데다가

싱가포르의 물가가 워낙 비싸다는 얘기가 자자했기 때문에

나는 애초부터 이번 여행을 계획할 때 경비 절약은

체류 기간이 제일 짧은 브루나이에서 하는 것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먼저 호텔에서 육안으로도 보이는 거리에 있는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로 향했다.


 

 


브루나이의 모스크는 코타키나발루에서 보았던 모스크와는 풍채부터가 달랐다.

코타키나발루에서 다녀왔던 UMS 모스크와 시티 모스크는 관광지의 이미지가 더 강했던 것에 비해

브루나이의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는 실제 왕의 저택에 들어온 것 같은,

모스크라는 단어를 정의하고 있는 듯한 고결한 아우라가 모스크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분수마저도 평화로워 보였던 정원을 지나 모스크의 앞에 도착한 나는

이제 복장을 입고 모스크 내부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기도 행사가 있어서 모스크를 개방하지 않는다는 공지가 적혀져 있었다.

그런데 모스를 개방하지 않는 것보다 더 아쉬웠던 것은 바로 폐쇄 기간이었다.

내가 브루나이에 있는 8월 12일까지 모스크가 개방하지 않는다는 소식에

어떤 날에, 어떻게 시간을 내서라도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에는

끝내 들어가지 못한다는 팩트가 나를 너무나 아쉽게 했다.



브루나이에서 맞이한 첫 아침의 첫 번째 일정에서부터 아쉬운 소식을 접한 나는

그렇게 쓸쓸히 모스크를 빠져나왔다.



그렇지만 이렇게 셀카라도 찍으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그리고 너무 아쉬워하지 말기로 했다.

이러한 상황 또한 계획없이 움직이는 배낭여행의 묘미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또 다른 모스크인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까지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면

그건 정말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을 것 같았다.


갑자기 불안감에 휩싸인 나는

원래 오후에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갈 예정이었던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에 지금 당장 가 보기로 했다.


 


몇 백년의 시간에 걸쳐 자라온 건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두꺼웠던 줄기의 나무를 지나,

횡단보도의 타이머가 전혀 맞지 않아 당황했던 고장난 신호등도 지나

브루나이의 상징,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에 도착했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안고 천천히 모스크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다행히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는 개방을 하고 있었다.


금요일이었던 당시, 나는 개장 시간(오후 4시 30분~5시 30분)에 맞춰 다시 모스크에 오기로 하고

이제 계속 걷느라 허기진 배를 채우러 모스크 주변의 식당을 찾아 나섰다.



계속 걸어다니며 먹거리를 찾아 다닌 나는

반다르세리베가완 터미널 앞에서 판매하는 브루나이 현지식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노란 밥의 색깔에 이끌려 특별한 맛을 기대하고 샀지만

특별한 맛은 개뿔. 니 맛도 내 맛도 없는 맛이었다.

허기진 배, 여행 경비 절약한다고 먹었으니 망정이지

어디 식당에서 음식 주문했는데 이런 맛 나왔으면 정말 열받았을 지도 모를 맛이었다.


그나저나 식사를 하다보니 이제 오늘의 일정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는 일단 갈 수 없고,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는 오후 4시 30분부터 입장할 수 있는 상황.


현재시각 오전 11시 30분.

다섯 시간동안 대체 어떻게 시간을 채워야 할까.


고민하며 인터넷을 검색하는 도중에

나는 현재 내가 있는 위치로부터 멀지 않은 거리에

캄퐁 아에르 수상가옥 마을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캄퐁 아에르 수상가옥 마을을 구경하기 위해선

수상보트를 타고 브루나이 강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선착장에서 가이드 기사님과 협상만 잘 이루어지면

무려 20달러(약 17,000원)의 가격으로 수상가옥 마을과 맹그로브 숲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걸음을 재촉하여 캄퐁 아에르 선착장에 도착했다.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수많은 보트들은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렇다. 호객행위가 시작된 것이다.

각 보트 안의 기사님들은 열심히 나를 부르며 손짓했지만

나는 원래 성격이 이 곳 저 곳 간보지 않고 한 우물만 제대로 파는 성격인지라

나와 제일 가까운 위치에 있던 보트의 기사님하고만 협상을 하기로 했다.


(캄퐁 아에르에 도착하기 전,

내가 어느 블로그에서 보았던 최고의 협상은 20브루나이달러에 1시간 30분 투어로,

투어 내용은 수상가옥 마을 구경과 맹그로브 숲에서 긴꼬리원숭이를 보는 것이었다.)

* 긴꼬리원숭이는 긴 코를 갖고 있어서 한국에서는 코주부원숭이라고도 불린다.


몇 시간 정도의 투어를 원해?

(보트 기사님)

 

“나는 1시간 30분의 투어를 원해. 얼마야?

(영완)


1시간 30분이면 40달러. 싱가포르 달러도 가능해.

맹그로브 숲에 가면 긴꼬리원숭이도 볼 수 있어.

빅 노즈 (코주부) 몽키! 몽키!

(보트 기사님)

 

“너무 비싸. 20달러 어때?

(영완)


20? 20달러는 곤란해.

(보트 기사님)

 

“그럼 25달러.

(영완)


그러면 1시간 30분에 30달러. 긴꼬리원숭이도 볼 수 있게 해 줄게.

(보트 기사님)

 

(흥정이 쉽지 않자 다른 블로그에서의 협상 후기도 읽어보기 위해 보트 기사님께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함.)

음... 잠깐만 시간을 줄 수 있겠어?”

(영완)


알겠어.

(보트 기사님)


(3분 뒤)


“(마지막 딜) 1시간 30분에 긴꼬리원숭이 보장. 25달러! 어때?

(영완)


안 돼. 25달러면 1시간만. 그래도 긴꼬리원숭이를 볼 수 있게 해 줄게.

그러나 30달러면 1시간 30분. 마찬가지로 긴꼬리원숭이는 볼 수 있어. 이 이상은 안 돼.

(보트 기사님)


계속해서 흥정이 길어지다 보니 어느새 나는 나에게 불만이 생기고 있었다.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 하나로 기껏 동경하던 브루나이까지 왔는데

겨우 5달러를 아끼겠다고 선착장 앞에서 길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내가 너무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급하게 내가 제안한 흥정을 파기시키고

보트 기사님이 제안한 30달러에 1시간 30분 협상을 체결하기로 했다.


“알겠어. 30달러에 1시간 30분.

대신 긴꼬리 원숭이 꼭 볼 수 있게 해 줘야 해.”

(영완)


OK. 내 보트에 타.

(보트 기사님)


캄퐁 아에르 수상가옥 마을+맹그로브 숲(긴꼬리원숭이 관람 포함)투어 [1인] 30브루나이달러(약 26,000원)

가이드와의 협상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 평균 20~40브루나이달러 내외

싱가포르 달러와 1:1 통용되어 싱가포르 달러로도 구입 가능(거스름돈은 브루나이 달러)


보트는 빠른 속도로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한적하고 넓게 트인 강 위를 달리다 보니 짜릿한 해방감이 들면서

가만히 있기만 해도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아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보트에 타기 전, 나는 기사님께서 보트 운전만 해 주시는 줄 알았는데 가이드의 역할도 같이 해 주셨다.

정말 그 어떤 가이드보다 책임감있게 가이드를 해 주셨다.


마을에 대한 설명과 보트를 타고 내릴 수 있는 제티의 위치,

그 외에 보트에서 보이던 브루나이 곳곳의 건물들에 대한 설명도 빠짐없이 알려 주셨다.


 


수상마을을 보는 내내

강 위에 있는 이 마을의 평범한 일상에 대한 궁금증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장을 보러 가기 위해 보트를 타고 육지로 나가는 생활이 평범한 일상일 테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창 밖으로 보이는 강의 모습도 평범한 풍경일 테다.

행여나 폭우가 내릴 때, 집이 침수될 걱정은 들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2호선 지하철을 타고 강남역으로 향하던 나의 평범한 일상과 비교하면

이들이 지내고 있는 평범한 일상은 나와 전혀 다른 세상 사람들의 일상처럼 생각되었다.


이런 마을에서 일상을 보내면 어떤 기분일까.


 


수상가옥 마을을 지나자 어느새 나의 시야에는 짙은 녹색만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트가 물살을 가르면 가를수록 더욱 울창해지는 양쪽의 풀숲과 늪지대의 눅눅한 풀냄새가 나를 반겨주었다.


낯선 광경과 낯선 감정.

지금까지 시골에서만 겪어본 자연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자연이었다.


브루나이의 자연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아니라

인간의 손이 닿을 수가 없는 곳 같았다.


극도의 위압감을 뿜어내던 맹그로브 숲의 자연에 나는 절로 숙연해지고 침착해졌다.


 


그리고 맹그로브숲 속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기사님의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바로, 긴꼬리원숭이를 찾기 위해서였다.


정적 속, 띄엄띄엄 새 소리만 들리던 울창한 숲 속에서

열심히 가이드를 해 주시던 기사님은 한 마디의 말도 없이 매서운 눈빛으로 숲 전체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행여나 엔진 소리 때문에 긴꼬리원숭이가 나타나지 않을까봐 보트의 속도도 최대로 낮추어주셨다.


그러나, 긴꼬리원숭이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기사님이 말씀하셨다.


“Try again?

(보트 기사님)


Yes.

(영완)


기사님께선 맹그로브 숲 일대를 한 번만 더 천천히 돌아보자고 하셨다.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그렇게 10분 가량을 또 천천히 달리며 보트 기사님은 나와 함께

맹그로브 숲 일대를 샅샅이 물색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긴꼬리원숭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기사님이 또 한 번 물어보았다.


“Try again?


나는 이번에도 Yes.”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세 번째 시도에도 긴꼬리원숭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긴꼬리원숭이를 보여주겠다는 기사님의 호언장담에 30달러 협상을 체결했는데

긴꼬리원숭이를 보지 못해 선착장으로 돌아가면 재협상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긴꼬리원숭이를 보지 못한 게 

의 문제지 기사님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답답한 갈등만이 계속되고 있었다.


세 번째 시도 끝에도 긴꼬리원숭이가 나타나지 않자

기사님은 원숭이들이 자고 있는 것 같다며 이만 선착장으로 돌아가자고 하셨다.

이에 나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선착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던 그 때,


“Hey! Hey! Hey! Hey! Hey! Hey! Hey! Hey!


갑자기 기사님이 작은 목소리로 나를 향해 다급하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기사님이 가리키던 손 끝을 바라보았는데


이럴 수가.


스무 마리 가까이 되는 긴꼬리원숭이들이 나무를 타면서 숲 속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탄성을 내질러 버렸다.


기뻐하는 나의 모습을 본 기사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나와 함께 덩달아 웃음을 지었다.


 

 


 기사님께서는 내가 긴꼬리원숭이를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나무의 바로 앞까지 보트를 끌고 들어가 주셨다.


덕분에 나는 긴꼬리원숭이들의 개구진 얼굴까지 제대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인근에 있던 다른 보트들도 긴꼬리원숭이를 찾아 헤매는 건 마찬가지였나보다.

나의 보트 기사님께서는 다른 보트 기사님들에게 손짓을 하며

지금 여기에 긴꼬리원숭이들이 있다고 가르쳐주었다.


내 기사님이 다른 기사님들에게 긴꼬리원숭이가 있는 장소를 알려주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선착장에서 이 기사님의 보트를 선택해서 타길 잘했다는 생각이 마구 들기 시작했다.


긴꼬리원숭이들이 시야에서 벗어나자 나는 함박웃음을 지은 얼굴로

기사님께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기사님의 사기를 최대로 북돋아 주었다.


기분좋은 마음으로 맹그로브 숲을 빠져나와 다시 수상가옥 마을 주변으로 향하는데

기사님께서 갑자기 어느 다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셨다.



이 다리는 브루나이에서 판매하는 생수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다리인데

기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 다리는 한국 기업이 지었다고 한다.


나중에 인터넷에 찾아보니 실제로 이 순가이 브루나이 대교는 한국의 대림산업에서 지은 다리로

문재인 대통령이 동남아시아의 3개국을 순방할 때 방문한 적이 있던 다리였다.


 


수상가옥 마을에 내린 나는 기사님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마을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걸어다니는 내내 눈 안에 담겼던 모든 모습들은 궁금증의 대상이 되어 주었다.


수상가옥 마을에서 선착장으로 올 때는 보트로만 올 수 있다.

마을 안에 있는 아무 제티에 가서 기다리다 보면 기사님이 보트를 태워 주시는데

이 때 보트 탑승 비용으로 1달러(약 870원)를 지불해야 한다.


캄퐁 아에르 수상가옥 마을과 맹그로브 숲 투어를 마치고 나니

가격 때문에 1시간 투어를 선택하지 않은 게 정말 현명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협상에서 이기려고 1시간 짜리 투어를 선택했다면 긴꼬리원숭이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나중에 호텔로 돌아와서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도 보다 보니 긴꼬리원숭이를 보기 위해서

두세 번씩 맹그로브 숲을 다시 도는 건 비일비재한 경우였다.


만약, 브루나이에 가서 울창한 맹그로브 숲 속에 있는 긴꼬리원숭이를 보고 싶다면

기왕 여행하는 김에 안전하게 1시간 30분짜리 투어를 골라

긴꼬리원숭이를 볼 시간을 버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팁을 전하고 싶다.


캄퐁 아에르 선착장에 도착한 나는 호텔로 돌어가서 쉬는 시간을 갖다가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의 개방 시간에 맞춰 다시 나오기로 했다.


 


여행 일정 동안 상대방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시간을 컨트롤하며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혼자 떠나는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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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던 순간.

블로그에서 브리즈 비치 클럽의 내용을 끝내는 것마저도 아쉬울 정도다.


2019.08.04

D+3

황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


오늘은 쁠라우띠가 섬에 가는 날이다.

쁠라우띠가는 코타키나발루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 불릴 정도로 자연 환경이 깨끗하게 보존되고 있다.

거리도 제셀톤 포인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다른 섬 투어에 비해 가격도 비싸고 찾는 사람들도 적은 편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가야섬이나 사피섬으로 해양 스포츠를 즐기러 간다.)


그런데, 아침부터 잔뜩 낀 먹구름의 상태가 심상치 않더니

머지않아 헤비급 비를 쏟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취소 여부에 대한 연락은 오지 않은 상황.

말레이시아의 기후 특성상 금방 비가 그칠 것을 예상하고 원래 일정대로 투어를 진행하려고 하는 걸까 싶었다.

우선은 예정대로 픽업 시간이었던 7시 20분까지 나는 호스텔 로비로 내려가서 픽업 차량을 기다렸다.

그러면서 나의 예약을 담당했었던 도라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다.



“지금 비가 많이 내려. 쁠라우띠가에 갈 수 있어? 우선, 나는 호스텔 앞의 프론트에서 픽업을 기다리고 있어.”

(영완)


“아니야, 쁠라우띠가는 강한 비로 인해 취소되었어.

(도라)


“어떻게 환불받을 수 있어? 내가 제셀톤 포인트로 가면 돼?”

(영완)


“응, 나중에 사무실에 가면 환불을 주선할게. 그리고 내가 너에게 알려줄게.

(도라)


쁠라우띠가 섬에 들어가지 못해 아쉬웠지만 나는 한국에서 미리 몇 달 전부터 예약을 한 것이 아닌,

현지에서 즉흥적으로 계획을 정해서 움직이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생각만큼 많이 아쉽지 않았다.

픽업장에서 도라와 환불 절차에 대한 카카오톡 대화를 마친 나는 호스텔로 올라왔다.



쁠라우띠가 섬 투어가 취소되어 하루 일정이 펑크나버리고 만 이 날,

나는 호스텔에서 여유롭게 블로그 포스팅을 하면서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쁠라우띠가 섬 투어와 멈바꿋 반딧불 투어를 현지에서 저렴하게 예약하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말레이시아②] 쁠라우띠가 섬 투어와 브리즈 비치 클럽 바비큐 현지에서 예약하기 편을 정독해주세요.

(위 타이틀을 클릭하면 해당 게시글이 새 창으로 띄워집니다.)


서서히 호스텔의 투숙객들이 기상하더니 그쯤 되어서 비도 함께 그쳤다.

투숙객들은 분주히 각자의 일정을 위한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그 때, 나의 맞은편 침대를 쓰는 쿠알라룸푸르 친구가 내게 가야 스트리트에서 열리는 선데이 마켓에 함께 가지 않겠냐고 했다.

그 때만 해도 새로운 일정에 대한 뚜렷한 계획이 잡히지 않은 상황이라

아직 외출에 대한 생각이 없던 나는 그에게 호스텔에서 혼자 블로그를 하며 시간을 보내겠다고 했다.


쿠알라룸푸르 친구는 알겠다며 자신의 중국인 여사친들과 함께 가야 스트리트 선데이 마켓으로 향했다.


그 순간,

나는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터지고 말았다.


선데이 마켓..? 일요일.. 시장? 일요일만 열어..? 오늘...? 일요일????’


조급한 마음에 서둘러 구글에 가야 스트리트 선데이 마켓의 개점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확인해 보니 선데이 마켓은 오후 1시까지만 연다고 한다.


현재 시간 오전 9시.

그리고 오늘은 코타키나발루에서 보내는 유일한 일요일.

오늘 일정의 정답은 선데이 마켓이다.


서둘러 외출 준비를 마치고 나는 그랩을 이용하여 가야 스트리트로 향했다.

가야 스트리트의 주변은 택시와 차량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 순간, 도라에게서 카카오톡이 왔다.



“손님, 아직 반딧불 투어는 갈 수 있다. 갈래?

(도라)


“멈바꿋(지역 이름)?

(영완)


“네.

(도라)


“몇 시에 떠나?

(영완)


“시간이 업데이트되는 대로 알려 줄게. 아마 2시 20분~2시 40분일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작전 팀에서 수송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반딧불 투어를 하고 싶어? 아니면 전액 환불을 원해?”

(도라)


“반딧불 투어는 가겠다. 그러나, 쁠라우띠가의 환불은 원한다. 가능해?

(영완)


“좋아, 작전 팀에게 알려주고 픽업 시간과 자동차 번호도 알려 줄게.

(도라)





선데이 마켓에 다녀온 후, 반딧불 투어를 다녀오면 오늘의 일정이 깔끔하게 정리된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방향으로 벌어지는 상황 전개였는데

카톡 타이밍이며 반딧불 투어 픽업 시간까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나는 선데이 마켓에서 가벼운 식사 한 끼로 나시 고랭을 먹었고

동생에게 선물할 힙백도 하나 샀다.

또, 주전부리를 좋아하는지라 망고 주스와 꼬치도 두어개 사 먹었다.

알차게 펑크난 시간을 때운 나는 이제 반딧불 투어를 떠나기 위해 호스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 때,

선데이 마켓의 입구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상어 가족 노래를 말레이시아에서 듣는데 정말 반가웠다.

저 통통 튀는 텐션 너무 귀여우심.


호스텔로 돌아와서 쿠알라룸푸르 친구를 다시 만났다.

쿠알라룸푸르 친구는 선데이 마켓에서 투숙객들을 위해 다같이 나눠 먹을 마랑’ 이라는 과일을 사 왔다.

이런 정이 너무 좋다.


투숙객들과 다같이 나눠 먹을 간식을 사 올 생각을 왜 나는 미처 하지 못 했을까.

더 멀리 볼 줄 아는 여행러가 되어야 겠다.

마랑을 먹고 나서 나와 쿠알라룸푸르 친구는 명함을 교환했다.

그의 이름은 루카스였다.



알고 보니 루카스는 오늘이 이 곳에서의 마지막 숙박이었던 것이었다.

이 순간은 내가 반딧불 투어를 가기 전, 루카스와 함께 있을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우리는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나는 반딧불을 보러 가기 위해 픽업장으로 내려가 버스를 기다렸다.




나는 버스를 타고 2시간 30분 가량을 열심히 달려 멈바꿋에 도착했다.

멈바꿋에 도착하니 반딧불을 보기 위한 수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가이드의 멘트를 듣자 하니 이 모든 관광객들이 오늘 아침의 폭우로 인해 쁠라우띠가 섬에 가지 못한,

나와 같이 반딧불 투어라도 참가하고자 모인 사람들이었다.


반딧불을 보려면 해가 완전히 지고 난 뒤인 밤이 되어야 한다.

그 전까지의 프로그램은 간식 타임과 맹그로브 숲 투어, 선셋 비치 감상, 그리고 저녁 식사로 채워져 있었다.




입맛이 없어서 간식을 많이 먹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도넛이 제일 맛있었다.

간식 타임이 끝나자 가이드는 승객들을 보트에 태우더니 맹그로브 숲 투어를 시작했다.



이렇게 우거진 밀림을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경이로우면서 신기했다.


밀림은 상상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눈에 담기는 모든 모습들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저 숲 속에는 어떤 동물들이 살고 있을까.

혹시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가이드님 말씀대로 가늠조차 되지 않을 크기의 뱀이 있지는 않을까.


오만 궁금증과 잡생각이 다 들었던 것 같다.




맹그로브 숲 투어를 마치고 보트는 방향을 돌리더니 선셋 비치로 이동했다.

가이드님께서는 날씨가 다소 흐렸던 탓에 원래 볼 수 있는 선셋의 아름다움을 다 보지 못 할 거라고 하셨지만

나는 날씨는 사람의 힘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떠한들 미세먼지 가득한 한국의 하늘보다는 낫겠지. 싶은 생각이었다.


선셋 비치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보트에서 내려 저마다의 일행들과 함께 독특한 포즈들로 사진 타임을 가졌다.

투어에 함께한 가이드들은 관광객들의 인생샷을 반드시 건져 주고야 말겠다는 열정으로 촬영에 힘써 주셨다.

진흙을 맨발로 밟고 다니며 선셋 비치의 재미를 더 다채롭게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덤이었다.

(우측 아래 사진의 경우, 해당 여자 관광객 분들로부터 사진 업데이트 허락을 받았습니다.)



이 날, 유일하게 일행이 없는 홀로 관광객이었던 나는

제셀톤 포인트에서 인연을 맺은 직원 도라의 도움을 받아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도라와 셀카도 함께 찍었다. 알고 보니 나이도 같았던 우리.

사장님 가이드께 도라가 나를 제셀톤 친구’ 라고 소개했는데 우리 진짜 친구였다.



시간이 점점 흐르자 하늘은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탄중아루 비치에서의 선셋보다 멈바꿋에서의 선셋이 훨씬 더 아름다웠고 더 깊게 기억에 남는다.


영롱했던 선셋의 붉은 색으로부터 황홀한 기분을 느꼈다.

눈을 뗄 수 없었고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은 절대 다 담아내지 못하는 그 때의 선셋.

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맑은 날에 보면 더욱 아름답다고 한다.

대체 얼마나 더 아름답다는 걸까.


멈바꿋은 이제 땅거미가 지고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았다.

투어 업체에서 준비해 준 저녁 식사를 먹으며 오늘 일정의 하이라이트인 반딧불 투어의 시작을 기다렸다.



저녁 식사 메뉴가 정말 만족스러웠다.

김치를 포함한 다양한 한식 메뉴들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음식 준비의 정성이 한 눈에 보였다.

(지금 여행 10일 차인데 김치가 너무 먹고 싶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보트에 탑승했다.

가이드들은 관광객들을 위해 열심히 반딧불을 유인해 주었다.


처음에는 반딧불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반딧불의 수는 많아졌다.

모든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며 미소지었고, 감동받았고, 기뻐했다.


핸드폰을 켜는 순간 빛으로 인해 반딧불을 보기 어려워진다고 했다.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쉬웠지만

눈은 인간이 가진 최고의 카메라와도 같다고 했다.

열심히 이 순간을 눈에 담아 오래토록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꼬마전구가 켜진 모습과도 같았다. 그 모습은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의 동심을 자극했다.


가이드 님께서 웃으며 말씀하시길,

“무슨 어른들이 더 좋아해.


반딧불이 내 손에 앉았다.

살포시 손을 쥐어 보았다.

뜨겁지 않을까 싶었지만 뜨겁지 않았다.

계속해서 탄성을 지르며 기뻐했고, 이내 반딧불을 날려주며 인사를 건넸다.


하늘에는 별이 수없이 놓여 있었다.

이렇게 많이 놓여진 별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별 역시 마찬가지로, 아무리 사진을 찍어보아도 제대로 담기지 않아 끝내 촬영을 포기했지만

당시 하늘의 모습을 설명하자면

만약, 지금 떠 있는 모든 별들이 땅으로 떨어진다면 절대 피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늘에는 별, 땅에는 반딧불.

행복했다는 말로 모든 감정이 전해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때, 정말 행복했다.



반딧불 투어를 마치고 호스텔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와 연락을 나눴다.

엄마는 항상 젊은 나이에 해외여행을 다니는 나와 같은 젊은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졸업하고서 전공 맞춘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꼭 우리 엄마 국제선 비행기 한 번 태워드려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호스텔에 도착하자 나의 베개 위에 카드 하나가 놓여 있었다.

바로 루카스가 쓴 카드였다.



머리맡에 놓인 선물을 받아본 적,


아마 유치원 꼬맹이 시절,

산타의 존재를 믿으며 머리맡에 양말을 놓고 잠들었던 때가 마지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곳에서 만난 모든 인연들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여행을 통해서 한 걸음 더 성장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안녕, 영완. 다음에 또 만나자. ^^- 루카스


이 날, 나는 쁠라우띠가에 가서 스노쿨링도 하지 못 했고 니모도 보지 못 했지만

의도치 않게 그보다 더 큰 가치와 행복을 얻었다.


쁠라우띠가에 갈 수 없었던 이 날이 선데이 마켓이 열리던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별과 반딧불을 통해 잊고 지낸 동심을 되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여행에서 만난 인연으로부터 베개맡에 놓인 카드를 선물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정말 행운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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