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34.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 조식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즐거운 여행을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이 빨리 갈 거라고 예상은 했다. 그러나 태국에서의 마지막 날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나는 우리의 마지막 날 일정에 체크아웃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일정을 단출하게 세웠다. 그 이유는 마지막 날의 체크아웃은 곧 공항에 도착하기 전까지 캐리어를 직접 이끌고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체크아웃은 낮 12시까지로 제한하고 있었다. 우리가 오늘 탑승할 인천행 비행기는 밤 1030분 이륙으로, 그 전까지 갈 곳은 단 두 곳뿐이었다. 고로, 오늘은 그 어느 날보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워너원투어>의 일정 중, 처음으로 기상시간을 정하지 않고 늦잠을 잤다. 그래도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의 조식은 먹어 보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830분에는 1층의 라운지로 내려와 조식을 먹었다.


 나는 3년 전, 일본 후쿠오카로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 게스트하우스의 라운지에서 화창하게 비치는 햇빛을 눈부셔 하며 조식 토스트를 먹은 적이 있다. 그 때, 토스트와 함께 마셨던 홍차가 생애 첫 홍차였다. 그 뒤로 여행을 떠날 때마다 아침에 홍차를 마시는 것은 내가 치르는 일종의 의식이 되었다. 그 의식이 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직접 구운 토스트 빵과 조식 옵션으로 제공되는 수박, 스크램블 에그, 그리고 홍차를 마시며 태국에서의 마지막 아침식사를 기억에 담았다.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조식

 

 찐빵 속에 앙꼬가 없으면 허전하듯 토스트에 딸기 잼이 없으면 어딘가 허전하다. 그런데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의 조식에 딸기 잼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한참동안 잼을 찾으며 딸기 잼 토스트를 먹고 싶어 했지만 라운지 직원이 잼은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대신 버터와 케찹, 핫 소스가 있다고 했다. 그래. 없으면 없는 대로, 오히려 익숙했던 맛에서 벗어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S#35. 카오산 로드

 식사를 마친 정원이가 갑자기 게스트하우스의 밖으로 나가더니 카오산 로드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갑자기 왜 혼자 나가냐고 묻자 정원이는 반박할 수 없는 대답을 했다.

 

 “그냥 발걸음이 이끌렸어.”

 

 나는 그 기분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아니,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정원이를 따라 같이 카오산 로드를 구경했다. 우리는 고작 이틀밖에 이곳에 있지 않았지만 이제야 조금 이 길이 익숙해지고, 이제야 조금 이곳의 감성을 알 것 같았다.


말도 없이 갑자기 게스트하우스의 밖으로 나가더니 카오산 로드를 누비기 시작하는 정원

 

 우리는 어둠이 내리지 않은 순간에 카오산 로드를 구경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덕분에 시야도 밝아진 걸까. 정원이는 밤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구석진 골목길로 들어가더니 미로 찾기와 같은 모험을 강행했다. 나는 그런 정원이를 뒤따라갔다. 처음에는 골목 안을 헤매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어느새 나는 골목 안의 운치에 빠져 정원이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카오산 로드의 뒷골목을 찍고 있는 나


 고양이를 좋아하는 정원이는 고양이가 보일 때마다 쓰다듬어 주곤 했다.

나는 그런 정원이에게 손을 씻기 전까지 절대 나를 터치하지 말라고 했다.

 

S#36. 짜뚜짝 공원

 여유롭게 게스트하우스의 체크아웃을 마치고 우리는 짜뚜짝 공원으로 향했다. 카오산 로드에서 짜뚜짝 공원은 꽤 시간이 걸리는 위치에 있었다. 가뜩이나 이제는 손에 캐리어를 쥐고 있는 상황. 대중교통보다는 택시가 나을 것 같다는 판단 아래에 우리는 택시를 찾아 카오산 로드를 방황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택시기사들은 우리가 이미 다녀온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까지 저렴한 가격에 태워다 주겠다며 호객행위를 걸어왔다. 우리는 그들의 말에 위 원트 고 짜뚜짝 파크, 미터기 온!” 이라 대답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기사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 곳까지는 가지 않는다며 승차를 거부했다. 그러던 중, 한 기사님이 우리의 미터기 온을 승낙했다. 심지어 짜뚜짝 공원에도 간다고 하셨다. 그러나 트래픽 잼 시간대임을 고려해서 일반 도로가 아닌 고가 도로로 가겠다고 하시며 톨게이트 비용만 잘 챙겨 달라고 하셨다.(태국에서는 택시를 이용하여 톨게이트를 지날 때, 톨게이트 비용을 운임과는 별도로 기사에게 지불해야 한다.)


짜뚜짝 공원까지 정상 미터기를 켜고 모셔다 주신 기사님

(미터기를 켜도 20바트씩 올라가면 조작된 미터기이다. 2바트씩 올라가야 정상 미터기이다.)


태국에서 처음 만난 미터기를 켜고 운전해주신 기사님과 함께

 

 20분 가량을 달려 도착한 짜뚜짝 공원. 그런데 습하고 흐린 날씨 탓에 공원을 찾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통행을 제한하고 있는 구역도 있어서 우리는 짜뚜짝 공원의 안에 있는 호수까지 가 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입구 주변에 있는 넓은 잔디밭에서 파노라마 사진을 찍거나 우거진 풀숲 안에서 설정샷을 찍으며 짜뚜짝 공원을 즐겼다. 또, 여름의 풀밭에서 찍은 우리의 병사 시절 단체 사진을 가져온 나는 정원이에게 지금의 순간과 단체 사진을 하나의 사진에 담아 보자고 제안했다. 그 말에 정원이는 벤치의 틈에 단체 사진을 꼽더니 짜뚜짝 공원을 배경 삼아서 분위기있는 사진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사실 짜뚜짝 공원은 여느 공원과 크게 다를 것 없이 드넓은 잔디밭과 다양한 식물들이 심어져 있는 흔한(?) 공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곳에 오고 싶었던 이유는 태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야자수 나무들이 공원에 심어져 있는 모습이 궁금했으며여유롭게 공원에서 쉼을 만끽하는 태국인들의 모습을 눈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공원의 제한적인 상황과 날씨 탓에 이 점을 만족하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쉬웠다. 그러나 여름 풀밭을 배경으로 과거의 1생활관을 상기시킬 수 있던 것은 계획했던 일정보다 더한 만족감과 뿌듯함을 가져다 주었다.


우거진 풀숲에서 찍은 설정샷. 이름하여 '숨은 영완 찾기'


짜뚜짝 공원의 잔디밭


나와 정원이가 막내 라인이던 때의 시설 1생활관.

전날 밤, 영상통화를 걸었던 종희형, 승호형, 김하사님, 재현이형이 선임이던 시절(2016.07)


선임이던 형들이 모두 전역하고 정원이가 분대장이던 시절의 시설 1생활관.

나는 정원이의 뒤를 이어 분대장 이임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2017.09)

 

S#37. 베스트 비프 뷔페

 우리는 이번 여행 내내 <배틀 트립>의 방콕, 파타야 편에 출연하며 태국의 매력을 소개했던 배우 김민교의 추천 스팟(꼬란 섬, 시암 앳 시암 호텔, 담넌 사두억 수상 시장 등)을 정말 많이 다녀왔다. 우리가 지금부터 향할 베스트 비프 뷔페도 김민교의 추천 스팟에 해당되는 여러 장소 중에 한 곳이다. 우리는 이곳을 워너원투어 대장정의 마지막 일정으로 결정했다. 이유를 말하자면 베스트 비프 뷔페에서의 식사를 태국에서의 마지막 만찬으로 장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베스트 비프 뷔페는 BTS의 온눗역 2번 출구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야외 테라스형 뷔페로, 고기와 해산물, 맥주와 음료를 439바트(한화 약 15,000)에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 베스트 비프 뷔페는 오후 4시부터 영업을 시작하지만 영업 시작과 동시에 웨이팅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4시보다 빨리 이곳에 도착하기로 했다.


비가 내리던 온눗역. 이 곳에서 10분을 걸어가면 베스트 비프 뷔페가 있다.

 

 우리는 베스트 비프 뷔페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위해 게스트하우스에서 조식을 먹은 이후, 맥도날드 파인애플 파이와 길거리에서 파는 음료수 한 잔을 나누어 먹은 걸 빼고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우리는 배고픔과 캐리어를 같이 이끌고 짜뚜짝 공원이 있는 모칫역에서 40분 가량을 달려 온눗역에 도착했다. 온눗역에 도착하자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행히 시로코 스카이바에서 만났던 정도의 굵은 빗줄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우산을 쓰지 않기에는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우리의 손에는 캐리어가 있다. 전철역 한구석에서 짐 정리가 끝난 캐리어를 열어 우비를 꺼내 입고 뷔페까지 가느냐. 아니면 빗속을 뚫고 지금의 옷차림으로 빠르게 뷔페까지 가느냐. 습한 공기와 등골에 맺혀있는 땀방울. 그리고 태국에 올 때보다 무거워진 캐리어의 무게.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고민 끝에 우리는 후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10분 가량을 걸어 베스트 비프 뷔페에 도착했더니 시간은 오후 3시를 갓 넘기고 있었던 데다가 웨이팅을 하고 있는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 이 날의 첫 번째 손님은 우리였던 것이다. 영업을 시작하기까지는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지만 오히려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아 우리는 여유롭게 벤치에 앉아 땀을 식히면서 영업이 시작되기까지를 기다렸다.


<배틀 트립> 외에 <원나잇푸드트립>에서도 소개된 방콕의 인기 맛집 '베스트 비프 뷔페'


베스트 비프 뷔페가 오픈하기까지 기다리며 찍은 셀카

 

 오후 4시가 되었다. 비는 그쳤지만 하늘이 맑게 개지는 않았다. 우리는 1차적으로 뷔페와 음료, 맥주까지 무제한 리필이 가능한 풀코스로 2인을 주문했고, 2차로 음식을 주문했다. 직원이 보여준 메뉴판에는 돼지의 간과 혀 등 한국에서도 쉽게 접하지 못했던 음식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다. 우리는 잠시 동안 고민하더니 모든 메뉴들을 한 접시씩 주문하기로 결정했다.

 

 “디스 원, 디스 원, 디스 원, 디스 원

 

 모든 주문을 마치자 직원은 맥주와 음료를 가져다주더니 직접 잔에 따라주었다. 직원은 다른 손님들을 응대하다가도 우리의 잔이 비어있거나 콜라에 얼음이 녹아있으면 잽싸게 우리의 테이블로 와서 빈 잔에 맥주를 채워주고, 콜라에 얼음을 넣어주었다. 서비스에 감탄한 정원이는 직원의 손에 팁을 쥐어주기도 했다.


주문과 동시에 제일 먼저 나온 창 맥주와 이스트콜라


 

녹는 버터를 기름 삼아 고소하게 구워지고 있는 고기들과

그물 석쇠 위에서 본연의 색을 잃어가며 빨갛게 익어가고 있는 해산물들

 

 베스트 비프 뷔페에서는 음식만큼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것이 바로 버터다. 이곳에서 버터는 고기를 먹기 전 프라이팬 불판을 칠하는 용도로 이용된다. 그래서 베스트 비프 뷔페에서 먹는 고기는 버터 향과 풍미가 더해져 다른 곳에서 먹던 고기보다 훨씬 고소했다. 반면 해산물에는 버터를 닿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화로 하나를 새로 주문하여 버터를 칠할 수 없는 그물 석쇠 위에 올려서 해산물을 구웠다. (화로 추가 시 비용 발생)


시원했던 맥주와 고소했던 고기, 그리고 맛있었던 해산물까지.

태국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베스트 비프 뷔페에서 먹기로 한 건 잘 내린 결정인 것 같다.

 

 정신없이 음식을 입에 넣었다. 우리는 빠짐없이 모든 음식들을 맛보기 위해서 전 메뉴를 한 접시씩 주문했지만 먹다 보니 그것도 너무나 많은 양이었다.(어떤 메뉴는 구워 보지도 못하고 남겼다.) 그러나 우리는 아쉽지 않을 정도로 원없이 뷔페를 즐겼다. 식사를 마치고 한 숨 고른 우리는 맥주와 음료를 채워주던 서비스 만점의 직원에게 우리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줄 것을 부탁했다. 직원은 그 부탁에 흔쾌히 응해 주셨다.


 베스트 비프 뷔페를 끝으로 태국에서의 모든 일정을 끝마친 사진 속의 우리는 태국에서의 46일동안 줄곧 그래왔듯, 워너원투어의 깃발을 들고 있었고 표정은 당연지사 웃는 얼굴이었다.


<워너원투어>의 대장정. 그 끝을 장식한 베스트 비프 뷔페에서.

 

S#38. 수완나품 공항

 식사를 마친 우리는 공항철도선을 타고 수완나품 공항으로 왔다. 언제나 그렇듯 공항은 항상 분주하고 정신없다. 그리고 두 가지의 감정을 느끼게끔 한다. 설레거나, 아쉽거나. 지금의 우리는 아쉬움이다. 인천에서 태국으로 올 때만 해도 갑작스럽게 지연된 비행기를 보며 질책하고 짜증을 냈는데, 지금은 지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너무나 간절했다.


지연 없이 제 시간에 출발하는 타이항공의 인천행 TG688 비행기

 

 “정원, 비행기 지연 안 되나? 여기 더 남아있고 싶은데…….”

 

 그러나 이럴 때는 꼭 모든 상황이 철두철미하게 흘러간다. 비행기는 지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체크인 카운터에서는 제 시간보다 빠른 시간부터 탑승 수속을 시작했다.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공항에서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면세점을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수하물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밟았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요기베라의 말은 여전히 참을 증명하는 명제였다. 나는 출국 심사장에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쳤다. 출국 심사원은 나의 여권과 탑승권을 검토하더니 출국 카드를 제출하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도 도통 모르겠는 태국어와 그 이상으로 더 모르겠는 영어. 그리고 내 뒤에서 줄줄이 출국 수속을 기다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 나는 출국 심사원이 말하는 출국 카드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리액션을 보였다. 그러자 그는 태국 입국 시 받은 출국 카드의 샘플을 보여주면서 이러한 카드를 제출하라고 말했다. 당황한 나머지 나는 옆의 줄에서 출국 심사를 기다리던 정원이에게 SOS를 요청했다. 그러자 정원이는 나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내가 태국 도착했을 때 말했었는데 이거(출국 카드) 나중에 한국 돌아올 때 꼭 필요하니깐 잃어버리지 않게 잘 보관하라고 했었잖아.”

 

 그러나 나는 지금도 정원이가 그런 말을 했던 게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추측이건대 방콕에 도착했을 당시, 지연된 비행기로 인한 짜증과 태국에 처음 닿았다는 설렘이 합쳐져 정원이의 공지를 귀담아서 듣지 않았던 것 같다. 이내 정원이는 서 있던 줄로부터 이탈해 출국 심사장의 입구를 지키던 승무원에게 가서 출국 카드 양식을 새로 받아왔다. 그러더니 나에게 다시 출국 카드를 작성해서 심사원에게 제출하라고 말했다. 만약, 정원이가 나보다 출국 심사를 먼저 마쳐서 이미 심사장을 빠져나간 뒤였다면 나는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했을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출국 심사를 마칠 수 있던 나는 심사장을 나오자마자 정원이에게 사과를 했다.

 

 “정원, 너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아 미안해. 앞으론 너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는 최영완이 될게.”

 

 그러나 정원이는 괜찮다고 했다. 오히려 파니니 레지던스 호텔에서 있었던 여권 해프닝과 방콕으로 올 때, 기내에서 잃어버린 정원이의 볼펜을 찾아 준 나의 전례를 들면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며 나의 태도를 포용해주었다.


집에 돌아와서 짐 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백팩 앞주머니에 있던 출국 카드

 

 이어 우리는 하루 내내 빗속에서 캐리어를 끌고 다니느라 땀에 젖은 몸을 씻기 위해서 수완나품 공항 내의 미라클 라운지로 갔다. 그곳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온 우리는 출출하게 허기진 배를 채우고자 푸드코트로 발걸음을 옮겨 똠얌꿍과 해물 볶음밥을 먹었다. 우리는 식사까지 마쳤음에도 수하물 수속을 빨리 마친 탓에 여전히 탑승까지의 시간이 꽤 남아있었다. 그래서 면세점을 둘러보면서 미처 다 사지 못했던 기념품을 구매하기로 했다. 나는 이번 여행을 떠날 수 있게 5일이라는 긴 휴가를 제공해준 생애 첫 직장에 감사하는 마음과 아직도 많이 부족한 나라는 막내 신입사원의 일솜씨를 크게 내색 없이 받아주시는 고마운 동료들에게 지금보다 더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마음을 함께 담아 선물할 초콜릿과 말린 망고를 한가득 샀다.


수완나품 공항에서 먹은 마지막 식사.

볶음밥은 너무나 맛있었지만 똠얌꿍이 적응되기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

 

 시간은 어느덧 1030분에 가까워져 있었다. 우리는 탑승장으로 발걸음을 옮겨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거짓말과 과장을 하나도 보태지 않고 나는 이번 여행이 꿈같았다고 말할 수 있다. 줄곧 말했듯이 우리는 우기인 시기에 태국에 왔지만 메인이 되는 일정을 소화할 때 단 한 번도 빗방울을 만나지 않았고, 일부러 계획하려고 해도 계획할 수 없는 기적적인 인연들도 많이 맺고 돌아왔다. 나의 인스타그램 속 태국 여행 게시글을 보고 좋아요를 눌러준 배우 김민교를 비롯하여 시암 앳 시암 호텔에서 만난 터키 청년들과 동갑내기 한국인 여직원, 또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대만 공군 팡야와 방콕에서의 일정을 깔끔하게 정리해 준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의 여직원과 그의 한국인 남자친구까지. 이 외에도 너무나 많은 인연들이 우리의 여행에 함께해 주었고 덕분에 다채롭게 워너원투어를 장식할 수 있었다. 진짜 꿈속에서도 이런 사람들을 만나서 이러한 에피소드를 만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번 여행은 꿈보다도 더 꿈같았.


내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파타야 시암 앳 시암 호텔 게시글에 '좋아요'를 눌러준 배우 김민교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나와 정원이는 빗방울이 맺힌 비행기 창문을 배경으로 네 장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각자 두 장의 사진을 나누어 갖기로 했다. 폴라로이드 사진이 갖고 있는 잔잔한 필름 감성과 사진 속으로 보이는 우리의 표정들을 보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군대에서 만난 선후임의 인연이라는 관계를 뛰어넘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청춘이라는 시기에 여행이라는 순간을 함께하며 평생의 안주거리를 만든 사이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그 안주거리도 평범한 여행이 아닌, 우리가 이루고자 했던 목적과 독특했던 기획들이 있었기 때문에 남들이 갖고 있는 여행 안주거리와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륙 전 기내에서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과 우리의 모든 여정을 함께한 <워너원투어> 깃발

 

S#39. 인천 공항

동이 트는 새벽, 어느덧 비행기는 한국의 영공에 진입했고 인천 도착을 얼마 남기지 않고 있었다.


 비행기는 6시간동안 하늘길을 날았지만, 도중에 시차가 적용되어 우리는 새벽 6시에 인천에 도착했다. 인천에 도착하고 나니 한국은 축구로 대동단결되어 있었다. 속출하는 기사들을 보니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피파 랭킹의 1위를 달리고 있는 독일을 2:0으로 이겼다고 한다. 그 역사적인 순간에 우리는 비행기의 안에 있어서 축구를 보며 열광하지 못했지만 아쉽지 않았다. 그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알 것이다. 방금 읽은 안주거리내용만 읽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아쉬운 인사를 나누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인천공항 리무진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온 나는 집에 오자마자 밀린 빨래를 돌렸고, 일요일 아침의 기상보다 귀찮은 여행 후의 짐 정리를 시작했다. 

 

S#-. 일상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내가 어제까지 아무리 꿈같았던 여행을 다녀왔다고 해도 신은 나에게 내일의 출근을 위해서 여행 후유증을 떨칠 수 있는 시간 따위를 주지 않는다.

 

 슬랙스 정장 바지와 파란색 셔츠, 그리고 까만 넥타이. 마지막으로 왼쪽 귀에 꽂는 무전기 이어폰까지.

 

 6일 만에 직장으로 복귀한 나는 동료들에게 면세점에서 샀던 선물을 건네며 고마움을 전했다. 동료들은 고맙다며 인증샷을 찍기도 했고 잘 먹었다는 메시지를 보내주기도 했다. 나는 고마워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이것이 부족한 나의 일솜씨에 대한 뇌물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처음 입사했을 때보다 주어진 업무에 더 성실하게 임할 수 있게 되었다.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에서 샀던 말린 호박을 다 먹고 인증샷을 보내주신 진료실의 새솔 선생님

 

 나는 오늘도 치과 데스크에 앉아서 내원하는 환자들의 예약 접수와 수납을 돕고, 일본인 환자들의 진료 통역을 이행하며 생애 첫 직장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이번 주가 지나면 워너원투어는 어느덧 한 달 전의 과거가 되고 만다. 그러나 몇 달, 아니 몇 년이 지나도 워너원투어는 나의 일상이 고단해질 때 피로회복제보다 더한 역할이 되어 주어 그 피로를 덜어줄 것이다.

 

 1생활관 영(0)완&정원(1), 그리고 영완(WAN)과 정원(ONE)이 원하던(WANNA) <WANNAONE TOUR>

 

 이 투어명을 기반으로 한 시즌2의 여행이 멀지 않은 시간 내에 다시 한 번 실행될 수 있기를 바라며 [방콕&파타야] 우리가 원하던 WANNAONE TOUR 포스트는 여기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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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너원투어가 벌써 4일 차에 접어들었다.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과 위험한 기찻길에 가는 오늘의 일정은 우리만의 일정이 아닌 다른 한국인 여행객들과 함께 떠나는 패키지투어 일정이었기 때문에 다른 날들보다 더 시간관리에 신경을 기울였다. 하필 또 집합 시간은 아침 7시 50분까지였다. 고로, 이 날은 워너원투어의 일정 중에서 제일 빨리 일어나야만 했던 날이었다사실 나는 자유여행을 선호하기 때문에 패키지 여행상품은 지금까지 이용해본 적도 없었고, 이용할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지만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이 방콕의 교외에 위치하고 있는 데다가 교통편도 마땅치 않아서 자유여행으로 떠나기에는 너무나 많은 부담들이 동반되어야 했다. 그래서 결국 패키지 여행상품을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심지어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은 낮 12시까지만 운영하고 있어 9시까지는 이 곳에 도착해야 수상시장의 활기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방콕에서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까지 소요되는 이동 시간과 시장의 운영 시간 등 여러 가지 점을 미루어 보아 이 일정만큼은 패키지 여행상품을 통해서 가는 것이 더 이득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속 역으로 출발하기 전, 카오산 로드에서 찍은 서로의 독사진

 

 우리가 이용했던 <몽키트래블>의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위험한 기찻길 반나절투어 상품은 750분까지 아속 역 5번 출구 에 있는 로빈슨 백화점 앞 맥도날드로 모이라고 공지했다. 우리는 어젯밤 게스트하우스 여직원의 한국인 남자친구가 말해주었던 조언을 바탕으로 하여 630분에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730분경 아속 역에 도착하는 가정을 세웠다. 우리는 시암 역까지는 택시의 도움을 받았고 시암 역부터 아속 역까지는 방콕의 지상철인 BTS의 도움을 받았다.

 

 우리를 시암 역까지 데려다 준 택시기사의 유쾌함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택시기사는 한국 여성들에 대해 굉장히 선의적인 시선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대표 걸그룹 트와이스의 존재를 그에게 알려 주었다. 나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트와이스의 히트곡 ‘TT’와 함께 TT댄스를 알려주며 택시 안을 채우던 식상한 라디오 음성을 한순간에 트와이스의 ‘TT’로 바꿔버렸다. 그 시간에 아마 방콕에서 제일 시끄러운 택시는 우리가 타고 있던 택시였을 것이다. 기사님의 웃는 미소를 보다 보니 언뜻 명품 배우 황정민의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우리는 기사님에게 황정민을 닮았다며 사진을 보여주었지만 그는 황정민이 훨씬 잘생겼다며 우리의 칭찬을 부끄러워 했다.


한국 여성과 트와이스의 매력에 푹 빠진 택시기사님과 함께.

 

S#26. 아속 역

 기사님이 시암 역에 내려주신 이후 우리는 BTS(방콕의 지상철)를 타고 네 정거장을 거쳐 아속 역에 도착했다. 아속 역에 도착하자 시간은 우리가 가정했던 730분에 정확히 맞아떨어져 있었다.(게스트하우스 여직원의 남자친구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함을 전한다.) 우리는 맥도날드 앞에서 패키지 투어 여행객들을 기다리던 태국인 가이드를 만나 예약 확인 절차를 마치고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으로 출발하기 전까지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아침 식사는 우리들의 집합 장소가 되었던 맥도날드였다. 나는 맥모닝 세트를 먹되, 음료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선 판매하지 않는 딸기 맛 환타로 변경해서 먹었다.


방콕의 BTS를 처음으로 탑승하게 된 시암 역 전경.


출근 시간의 트래픽 잼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차들은 거북이 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아침 식사로 맥모닝을 먹고 있는 정원


내가 주문한 맥모닝 세트와 딸기 맛 환타.

딸기 맛 환타가 국내에 도입된다면 나는 맥도날드의 수입을 더 올려줄 수 있다.

 

S#27.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

 아속 역에서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까지는 차로 약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됐다. 우리는 그 시간동안 수면을 취하며 아침 일찍 나오느라 피로해진 체력을 보충했다.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에 도착하자 태국인 가이드는 우리 두 명과 네 명의 한국인 여행객을 한 팀으로 묶어서 같은 보트에 태워 주었다.


담넌 사두억 수상 시장의 강 위에 있는 수상가옥



강 내부로 접어들자 본격적으로 펼쳐진 즐비한 상점들과 배 위의 먹거리


승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돼지고기 꼬치구이.

승객들은 음식보다도 배 위에서 음식이 만들어지는 광경이 더 신기한 듯 보인다.

 

 나는 어릴 때부터 누군가가 태국을 제시하면 항상 과일 담긴 나룻배가 다니는 강이 떠올랐다. 그 이미지를 가장 많이 반영하고 있는 곳은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번 여행지로 태국을 결정했을 때,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은 꼭 가 보고 싶은 곳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수상시장의 강물은 지저분했고 쓰레기가 적지 않게 강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환상이 약간 깨지긴 했지만 강 위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던 전통 수상 가옥들과 태국식 전통이 담겨있던 소박한 먹거리는 충분히 나를 만족시켜 주었다.


 나는 바나나튀김을 판매하던 보트가 눈에 띄었다. 상인을 향해 바나나튀김 한 봉지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내가 타고 있던 보트와 거리가 꽤나 멀어 다른 보트에서 사 먹겠다고 눈치를 보내고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상인은 나를 놓치지 않았다. 즉석에서 바나나튀김을 봉지에 담더니 긴 막대기를 이용하여 나와 같은 보트에 탄 다른 여행객에게 배달해 주어 나에게 전달할 것을 부탁했다. 그래서 보트에 탄 다른 승객들은 내가 상인에게 지불해야 할 돈까지 받아서 상인에게 전달해 주었다. 얼떨결에 승객들은 나와 상인의 사이에서 배달의 역할을 해 주고 있었다. 그것이 고마웠던 정원이는 같은 보트에 탄 승객들과 함께 바나나튀김을 나눠 먹자고 제안했다. 나는 그 의견에 찬성했다. 승객들은 우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맛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정말 맛있었다. 바나나의 부드럽고 단 맛이 겉의 바삭한 튀김옷과 조화를 이루어 내는 맛이 절로 감탄을 불렀다. 매번 바나나는 껍질을 까서 먹을 줄만 알았는데 바나나도 요리로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보트 위에서 한국인 여행객들과 나누어 먹었던 바나나튀김.

비주얼은 치킨의 닭 목처럼 생겼다.


뱀을 만져보는 정원.

만지는 것은 무료지만 사진을 찍는 것은 돈을 내야 했던 이 상점의 규칙..;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돈을 지불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깎아서 지불하는 재미가 있던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


 보트에서 내린 후, 가이드는 모든 여행객들에게 위험한 기찻길로 이동하기 전까지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을 걸으며 둘러볼 수 있는 시간으로 20분을 주었다. 이 때 정원이는 여동생에게 줄 태국의 향신료 가루와 말린 과일 세트를 구매했고, 나는 직장 동료들에게 선물할 말린 과일 세트와 애주가인 아버지에게 드릴 술잔을 구매했다. 술잔을 구매할 때는 상인이 한 잔당 100바트를 제시했다. 그러나 같은 상점에 있던 한국인 여행객이 나에게 절대 이 가격에 사지 말라며 따끔하게(?) 지침을 주었다.

 

 “이거 그냥 반값에 달라 하세요. 충분히 깎을 수 있어요.”(한국인 여행객)

 

 물론 태국에서는 충분히 흥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상인들과 유쾌한 대화를 나누며 즐겁게 흥정을 해 보고 싶었지만 막상 흥정을 하려니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이 답답했는지 한국인 여행객은 이내 나를 대신하여 상인에게 흥정을 시도하고 있었다.

 

 “(나에게) 이거 잔 두 개 사실 거죠?”(한국인 여행객)

 “.”(영완)

 

 한국인 여행객은 가게 안에 있던 계산기에 30을 쳐서 상인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상인은 이 가격으론 절대 줄 수 없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한국인 여행객은 50을 쳐서 상인에게 보여주었다.

 

 “50! But 1+1.” (한국인 여행객)

 

 눈치를 살피던 상인은 끝내 흥정을 받아들였다. 덕분에 나는 100바트에 태국 국기와 코끼리가 그려진 술잔 2개를 구매할 수 있었다. 저렴한 가격에 술잔을 살 수 있었던 건 좋았지만 내가 직접 흥정에 시도하지 못한 게 다소 아쉬웠다. 만약 다음에 태국을 다시 오게 된다면 그 때는 절대 주저하지 않으며 당당하게 흥정에 시도할 것이다.


지금은 우리 집의 접시 건조대에 자리를 잡은 두 개의 술잔

 

S#28. 위험한 기찻길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예능프로그램 <짠내투어>에서 위험한 기찻길을 다녀간 이후 위험한 기찻길은 한국 관광객들의 사이에서 태국여행 시 꼭 가 봐야 할 명소로 급부상했다. 더군다나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에서 차로 10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여행사에서는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과 위험한 기찻길을 묶어서 관광할 수 있게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도 그 여행 상품을 구매하여 위험한 기찻길을 같이 구경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위험한 기찻길도 <짠내투어>의 방송을 타기 전부터, 더 나아가서는 10년도 더 된 예전부터 이곳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 지금의 내가 <배틀트립><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1>을 좋아하던 그 이상으로 즐겨본 예능프로그램 <스펀지>에서 이곳을 소개하는 방송을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10년 전부터 기약되지 않던 훗날에 태국을 가게 된다면 꼭 이곳에 가 보고 싶었다. 그렇게 강산도 바뀐다는 10년이 흘러 스물 하나가 된 나는 거짓말처럼 태국을 가게 되었다. 강산은 변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태국의 위험한 기찻길은 변하지 않았다. 폐역이 증가하는 추세와 달리 위험한 기찻길은 10년 전 TV에서 보았던 같은 장소에 그대로 위치하고 있었다.


기찻길 위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위험한 기찻길의 매끌렁 시장

 

 위험한 기찻길은 실제로 기차가 다니는 기찻길의 위에 평범한 재래시장이 자리를 잡고 있어 이름 그대로 위험한기찻길임을 느낄 수 있다. 이 기찻길을 달리는 기차는 시장이 있는 매끌렁 역을 출발하여 방콕까지 매일 운행한다. 평상시에는 여느 시장과 다를 것 없이 장사를 이어 가다가 기차가 들어올 때면 상인들은 분주하게 천막을 걷어서 공간을 마련하고, 내놓은 물건들을 가게 안으로 들이기 시작한다. 이 위험하고 아찔한 움직임은 매일같이 반복된다.

 

 가이드는 패키지 투어의 관광객들에게 시장을 자유롭게 구경하다가 11시에 매끌렁 역으로 모이라고 했다. 가이드는 매끌렁 역에 모두 모이면 매끌렁 역에서 한 정거장 위치에 있는 랫 야이 역까지 향하는 기차표를 나눠줄 거라 했다. 시장을 거닐며 구경을 마친 우리는 시간에 맞춰 매끌렁 역에 도착했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기차표를 주었고 기차표를 받자 저 멀리서 기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시장 위의 기찻길을 달리며 들어오는 기차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한 관광객들의 처절한 셔터질이 꽤나 장관이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사람 냄새 물씬 풍기던 평범한 재래시장


 "너도 워너원투어의 동료가 되지 않겠나?"


 시장을 나오면 바로 보이는 매끌렁 역. 관광객들은 하나같이 기차가 들어오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기차 안은 매우 복고적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교실의 천장에 붙어 있던 선풍기가 푹푹 찌는 기차 안에서 열심히 회전하고 있었지만 결국 열기 섞인 바람으로 변질되어 더운 바람만이 기차를 채우고 있었다. 쉴 새 없이 손으로 부채질을 하다 보니 어느새 기차는 경적을 울리고 운행을 시작했다. 차창 너머로 보인 소박한 시골 풍경은 서울 생활이 익숙한 나에게 여유를 선사하며 마음이 편안해 지는 듯한 기분탓을 전해 주었다.


 푹푹 찌는 기차 안에서. 천장에 선풍기가 붙어있었지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창문을 열고 바깥을 보니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보다 가깝게 시장이 있었다.

이 위험한 기찻길에서 인명사고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 매우 놀랍다. 


 기차는 시장을 양보하기 위해 천천히 달렸고, 시장은 기차를 양보하기 위해 물건을 가게  안으로 들여놓았다.

나는 이 풍경이 서로를 위하며 배려하는 모습처럼도 보여서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매끌렁 시장을 빠져나오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기차.

창 밖으로 보였던 꾸밈없고 소박했던 시골 풍경은 지금도 너무 그립다.

 

S#29. 로빈슨 백화점 푸드코트

 랫 야이 역에 도착한 관광객들은 그 곳에서 패키지투어 승합차를 타고 처음 모였던 아속 역으로 돌아왔다. 배가 고파진 우리는 패키지투어의 집합 장소가 되었던 아속 역 로빈슨 백화점의 지하에서 푸드코트 음식을 먹기로 했다. 나는 볶음밥을 골랐고, 정원이는 쌀국수를 골랐다. 푸드코트 음식은 예상 외로 고퀄리티였다. 놀란 우리는 감탄을 금치 못하며 허겁지겁 식사를 이어갔다. 정원이는 이제야 태국 음식이 어떤 음식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라며 태국의 요리에 사용되는 향신료들의 맛과 향을 궁금해했다. 물론 나 또한 그랬다.


 한국의 여느 태국 음식 전문점보다 맛있었던 로빈슨 백화점 푸드코트에서의 한 끼

 

S#30. 왓 포 사원

 아침부터 숨 가쁘게 움직였다. 더위와 피로, 이대로 일정을 강행하다간 지칠 것만 같아서 우리는 왓 포 사원으로 떠나기 전,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잠깐의 쉬는 시간을 가졌다. 땀을 많이 흘린 나는 샤워를 했고, 정원이는 침대에 누워 짧은 휴식을 취했다.

 

 우리는 툭툭을 타고 왓 포 사원으로 향했다. 왓 포 사원은 누워있는 불상(와불상)이 있는 사원으로 유명하며 그 불상의 크기 또한 거대하여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닿는 방콕의 대표 사원이다. 왓 포 사원에서는 입장권을 구입할 때, 프리 워터 티켓이 입장권에 같이 붙여져 발행된다. 이것은 11회 이용에 한정되는 티켓으로 입장권을 뜯지 않고 왓 포 사원을 둘러보면 사원의 끝에 위치한 프리 워터 천막에서 한 병의 생수병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나는 뚜렷한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정원이는 불교 신자다. 우리는 불상을 모시는 공간이 보일 때마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 관리인에게 절을 하는 방법을 물어 불상에게 인사를 드렸다. 나는 모든 것이 신기해서 절을 드릴 때에도 미소를 지으며 즐거운 모습으로 사원을 누볐지만 정원이는 나와 달리 몹시 진지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정원이에게 불교에 대한 신앙심을 물었다. 그러자 정원이는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듯 그저 태국과 이 사원에서 갖출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워너원투어 깃발도 함께 한 왓 포 사원


불상을 모시고 있던 작은 방


왓 포 사원의 핫플레이스, 누워있는 불상(와불상).

누워있는 불상의 모습을 카메라에 다 담아내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불상이 너무나도 거대했다.


와불상이 있는 사원을 나오자 있던 프리 워터 부스

 

 왓 포 사원을 모두 둘러보고 나오려고 하던 찰나에 우리는 리포터를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 촬영 팀을 볼 수 있었다. PD는 리포터가 서 있는 곳을 기점으로 왓 포 사원의 주변을 카메라에 담았는데 나와 정원이는 우연히 그 옆에 서 있었다. 그 때였다. 카메라가 워너원투어의 깃발을 들고 있는 나의 모습을 원샷으로 잡았다.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뮤직뱅크 엔딩 속의 홍진경처럼 촬영되는 순간에 집중하면서 깐족대기 시작했다.


왓 포 사원을 소개하고 있는 리포터와 그 장면을 촬영 중인 PD들


 시선을 강탈하며 카메라를 홀리고 있는 <뮤직뱅크> 엔딩 속의 홍진경

 

S#31. 왓 아룬 사원

 왓 아룬 사원에 가기 위해서는 왓 포 사원을 나와 인근의 선착장에서 수상보트를 타야 한다. 우리는 4바트밖에 하지 않는 저렴한 편도 탑승비를 지불하고 왓 아룬 사원에 내렸다. 우리는 왓 아룬 사원의 웅장한 규모와 경이로운 자태에 한참동안 넋이 나갔다. 태국어로 아룬은 새벽을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 왓 아룬 사원은 새벽 동이 틀 때의 풍경이 제일 장관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일정 상 새벽에는 이곳을 들를 수 없어서 오후 늦게라도 이곳에 들러 왓 아룬 사원의 정취를 만끽했다.


왓 포 사원의 근처에 있던 선착장에서 수상보트를 타고 왓 아룬 사원으로 향하는 중


왓 아룬 사원의 성벽에 앉아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길고양이


하얗고 웅장했던 왓 아룬 사원

낮에 봐도 그 정취가 대단했는데 새벽에 보면 얼마나 경이로울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왓 아룬 사원은 사원보다는 고대 유적지와 같은 이미지가 훨씬 강하게 느껴졌다. 드넓은 사원의 크기와 하얀 외벽을 채우고 있던 문양 패턴이 내가 생각하는 사원의 이미지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 사원까지 안내하는 정원의 나무 조경도 깔끔하게 되어 있어 이곳에서 살면 진짜 왕이 된 기분이 들 것 같다는 초등학생다운 생각도 절로 들었다.


왓 아룬 사원을 나오기 전에 같이 찍은 우리의 셀카

 

 내가 태국을 누비며 찍은 사진들 중에서는 왓 아룬 사원에서 찍은 사진이 제일 잘 나왔다. 어느 곳에서 어떤 각도로 찍어도 수많은 계단과 문양 패턴들이 조화를 이루어 전신 사진은 전신 사진대로, 착석 사진은 착석 사진대로 그 분위기를 잘 표현하고 있었다.

 

S#32. 시로코 스카이바

 식상하지만 여행의 마지막 날 밤은 야경과 함께하기로 했다. (바늘 가는 데 실 따라가듯이 여행의 마지막 날 밤에 야경이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방콕에서의 일정을 담당했던 나는 64층의 루프탑에서 한 눈에 방콕을 내려다볼 수 있는 시로코 스카이바로 정원이를 안내했다. 시로코 스카이바는 지나치게 캐주얼한 의상은 입장을 제한하고 있어서 스카이바로 가기 전 우리는 게스트하우스에 들러 옷을 갈아입었다.


툭툭을 타고 시로코 스카이바로 향하는 중이다.

이 툭툭을 운전하던 기사는 스피드를 즐길 줄 아는 기사였다. 우리도 그 스피드를 같이 즐겼다.

 

 그런데 오랜만에(?)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 순간, 기상이 악화되면 바로 영업을 중단한다는 시로코 스카이바의 공지사항이 떠올랐다. 64층 전경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야경을 코앞에 두고 비를 맞이하다니. 방콕 버스 사건 이후로 나의 다급 모드가 다시 되돌아왔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침착을 유지했다. 왜냐하면 비는 매우 소량으로 찔끔찔끔 떨어지고 있었던 데다가 우산을 쓰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은 지금 내리는 이 비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시로코 스카이바 건물에 도착하자 태국의 전통의상을 입은 여직원들은 우리를 64층의 스카이바로 안내해 주었다. 다행히 스카이바는 영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스카이바에 다다르자 사람들은 말끔하게 수트와 원피스를 입고서 칵테일을 마시거나 연주자의 음악에 심취하며 저마다의 취향대로 방콕의 야경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 호화스러운 시로코 스카이바의 모습에 나와 정원이는 서울에 올라온 시골쥐마냥 절로 어색하게 주위를 살피며 여직원의 안내를 따라갔다. 여직원은 메뉴판을 보여주더니 우리에게 칵테일만 마실 것인지, 식사와 칵테일을 함께할 것인지를 물었다. 그런데 가격이 상당한 고가였다. 제일 저렴한 칵테일이 한 잔에 2,300바트(한화 8만 원)에 달했다. 여행에 가서 돈을 아끼면 한국에 돌아왔을 때 후회한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이 가격은 선뜻 구매를 결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쌌다우리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다음 날의 남은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 곳에서 모든 경비를 탕진하기가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기껏 온 스카이바에서 가격을 주저하며 돌아가기엔 너무 아쉬워서 칵테일 한 잔만 기분 좋게 마시기로 했다.

 

 여직원은 칵테일이 나오기까지 우리에게 야경이 보이는 테라스로 안내하며 카메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여직원은 사진을 찍어주는 성의가 여느 포토그래퍼 저리가라 할 정도로 지극정성이었다. 손전등을 활용하며 조명까지 조절해 주었고 포즈 제안도 열정적으로 제시해 주었다. 사진 촬영이 끝나자 우리는 방콕의 야경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확실히 고가의 값은 하는 수준의 시설과 야경이었다. 야경이 보이는 높이는 지금껏 보아 온 어느 곳의 야경과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았고, 그 덕에 눈에 담기는 시야의 범위도 절로 넓어질 수밖에 없었다. 칵테일 잔을 부딪치며 이번 여행의 모든 순간을 파노라마 사진처럼 떠올리려고 하는 찰나에 우려했던 걱정이 현실로 벌어지고 말았다.


시로코 스카이바에서 주문한 칵테일


카메라에 장소의 여운을 제대로 담지 못한 건 시로코 스카이바가 유일하다.

사진으로 보면 여느 야경과 별 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 내려다 보는 시로코에서의 야경은

일반 야경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높이를 자랑하며 높이로부터 느껴지는 중압감이 압도적이다.

 

 갑자기 스콜(열대 지방에서 내리는 짧은 시간 안에 강하게 퍼붓는 소나기)이 내리기 시작했다. 스카이바는 공지대로 그 순간 모든 영업을 중단했고 야경을 관람하던 손님들을 실내 라운지로 이동시켰다. 아쉬움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물론, 우기인 시기에 비해 우리의 여행 일정동안 한 번도 비를 만나지 못한 것은 고마운 기적과도 같았으나 이번 여행에서 가장 초호화 시설을 누리고 있는 지금의 일정에서 비를 만나 신비로운 방콕의 야경을 10분도 채 눈에 담지 못한 것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끝내 우리는 실내 라운지에서 유리창 너머로 방콕의 야경을 보며 칵테일을 마셨다.


갑작스러운 비로 인해 실내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우리는 성공적이었던 우정 여행과 태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자축하며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던 1생활관의 모든 전우들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워너원투어를 자랑했다. 우리는 훗날, 1생활관 전우들이 완전체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하는 버킷리스트를 마음에 새겼다. 그 날이 서른이 되기 전에는 꼭 실현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막내이던 시절을 기준으로 했을 때

병장이던 종희형, 상병이던 승호형, 일병이던 김하사님과 재현이형.

그리고 같이 이등병이던 워너원투어의 정원이와 나.

 

S#33.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

 갑작스러운 스콜 탓에 우리는 예상보다 빨리 시로코 스카이바에서 내려와 택시를 타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게스트하우스의 여직원은 스카이바에서 금방 돌아온 우리를 맞이하면서도 덩달아 같이 아쉬워 해주었다. 정원이와 나는 간단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게스트하우스의 라운지로 내려와 소박한 뒤풀이를 이어가기로 했다. 뒤풀이의 메뉴는 컵라면, 과자, 음료수. 이제야 뭔가 우리다운(?) 느낌이 난다. 그래도 비 오는 창밖 너머의 운치있는 방콕을 바라보며 컵라면을 먹을 수 있는 기회도 흔치는 않다고 생각했다.


게스트하우스의 라운지에서 컵라면과 과자들로 뒤풀이를 이어가고 있는 우리

 

 뒤풀이를 마친 우리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기로 했다. 그런데 시로코 스카이바의 야경을 보고 왔음에도, 우리 나름의 뒤풀이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이대로 잠에 들기엔 너무나 아쉬웠다. 그래서 나는 정원이에게 오랜만의 일탈을 제안했다. 그것은 바로 담배였다. 우리는 흡연의 컨트롤이 가능한 흔치 않은 흡연 성향을 갖고 있어 이렇게 담배를 태워도 몇 달간을 금연 상태로 지낼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군 생활을 하면서도 흡연의 여부를 서로만 알고 있었다. (군대 안에서도 다른 전우들이나 간부들은 우리의 흡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의 밖으로 나온 우리는 천막 아래에 놓여 있던 의자에 앉아 오랜만에 담배에 불을 붙였다. 우리는 서로에게 여운이 되는 노래들을 번갈아가며 틀었고, 그 노래들과 비 그친 방콕의 밤 풍경을 배경 삼아 워너원투어의 마지막 밤을 물들였다. 그 순간, 남자친구를 통해서 우리에게 아속 역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게스트하우스의 여직원이 간식을 선물해 주었다. 이유는 어제 우리가 선물했던 불닭볶음면과 음료수에 대한 보답이라고 했다. 도움을 받은 쪽은 오히려 우리였는데 그녀는 우리에게 선물까지 챙겨주었다. 우리는 서로가 코쿤 캅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훈훈하게 이 시간을 장식했다.


 

우리의 방콕 뒤풀이는 5개월 만의 맞담배로 마무리를 했고,

우리의 막막했던 방콕 일정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이름 모를 한국인 남자친구의 그녀와 함께.


그녀가 우리에게 선물해 준 통새우마요 삼각김밥

 

 그 시간 속에서 정원이는 사람과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의 문화에 완전히 반했다. 정원이는 직원에게 누군가 방콕으로 여행을 간다고 하면 이 게스트하우스를 소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앞으로 본인의 여행에 있어서도 게스트하우스를 자주 이용하게 될 것 같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번외. 비 오는 우기의 태국

 

 마비’ 라는 하나의 단어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 갑자기 비가 내리면 천막을 치며 가게를 정비하는 한국과 달리 태국에서는 배수가 원활하지 않은 도로의 특성 상 대다수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땅에 고인 빗물을 퍼내기 시작한다. 일부 건물에서는 옥상에서 지하로 빗물이 흐를 수 있도록 파이프를 붙여 놓기도 했다.


 택시는 미터기를 키지 않으며 급격히 정체되는 도로 상황을 이유로 기사가 부르는 가격에 승객들이 탈 수 있게 호객행위를 한다. 우리는 기본 택시 가격 치고는 비싼 가격을 제시하는 기사의 행술에 타지 않겠다고 말하며 호객행위로부터 빠져 나왔지만 기사는 모든 택시가 마찬가지일 거라며 우리를 끈질기게 포섭했다. 끝내, 우리는 흥정을 시도했고 기사는 이내 흥정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열대 지방과 동남아시아에서 내리는 비는 스콜의 뜻에 걸맞게 짧은 시간동안 많은 양의 비를 퍼붓다가도 금세 그친다. 우리도 생각보다 비가 금방 그쳐서 게스트하우스에 다시 돌아왔을 때, 시로코에서 더 긴 시간을 있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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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oi0wan




 꼬란 섬에 올 때, 사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따웬 비치로 향한다. 왜냐하면 따웬 비치에는 대부분의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해양 스포츠가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만큼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다. 우리는 그것을 피해 한적하게 해양 스포츠를 즐기고자 싸매 비치로 왔지만 정작 싸매 비치에서는 패러세일링이 가능한 장소가 없다는 것을 이 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고민을 하던 도중, 우리를 지켜보던 오토바이 택시기사가 말을 걸어 오더니 솔깃한 제안을 건넸다.

 

 그는 싸매 비치에서 패러세일링과 제트스키의 이용이 가능한 해변까지 200바트만 받고 태워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가 패러세일링과 제트스키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달콤한 내용에 비해 요구하는 가격이 너무나 저렴해서 미덥지 않은 구석도 있었지만 그것을 꼼꼼하게 짚고 따지기에는 꼬란 섬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다. 그래서 그냥 그를 믿기로 했다. 우리는 즉석에서 200바트를 지불하고 그의 오토바이에 몸을 실었다. 10분 가량을 달려 우리는 그가 데려다 준 해변가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딘가 찜찜했다.

 

S#19. 따웬 비치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아 오지 않으려 했던 따웬 비치


 시끄러운 호객 행위 소리와 싸매 비치에 비하면 한여름의 해운대 인파를 연상시키는 수많은 사람들이 해양스포츠를 즐기고 있던 이 곳. 그렇다. 이 곳은 우리가 오지 않으려 했던 따웬 비치였다. 우리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패러세일링과 제트스키는 확실히 체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은 패러세일링부터 체험하기로 했다. 오토바이 택시기사는 우리를 이끌고 장사꾼에게 가더니 패러세일링 두 바퀴를 1000바트에 제안했다. 사전에 조사하고 온 가격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바가지 가격이었다. 나는 흥정을 시도했다. 그러나 장사꾼은 완강했다. 깊은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이 돈에 패러세일링을 하고 돌아가느냐, 하지 않고 돌아가느냐. 그러나 솔직히 하지 않았을 때 아쉬운 쪽은 우리였다. 그래, 태국 물가가 워낙 저렴해서 다른 부분에서 많이 소비하지 않았으니 패러세일링이 원래 이 가격이었다고 생각하며 우리는 1000바트에 두 바퀴를 합의했다.

 

 그러나 우리는 사전 예약 없이 즉석에서 해양 스포츠를 구매했기 때문에 다른 이용자들이 어느 정도 모였을 때 패러세일링을 하러 출발할 수 있었다. 그래서 보트 위에서 다른 이용자들이 오기까지 기다렸다. ,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니. 더군다나 바가지 가격에 당한 탓에 정원이의 표정도 어딘가 떨떠름해 보여 나는 정원이의 표정을 주시하며 우기인데 비 안 온 게 어디야~ 이왕 하는 거 재밌게 해 보자!”라고 오버를 떨며 얼굴에 미소를 되찾아 주었다. 이윽고 중국인 관광객 세 명이 우리가 타고 있던 보트에 탑승했다. 그제서야 패러세일링 보트는 바다 한가운데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안전 장비를 착용하고 순서대로 번갈아가며 패러세일링을 체험했다. 모든 불평과 불만은 이 순간 잊혀져 버렸다. 차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이 떠오르는 낙하산 풍선을 메고 하늘을 날고 있으니 봄 소풍에 놀러 온 어린 아이마냥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보트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정원이는 하늘 위의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시그널을 보냈다. 하늘과 바다 사이를 날고 있다 보니 인간은 자연의 범위 안에서 너무나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의 패러세일링이 끝나자 다음 차례로 정원이가 하늘을 향해 낙하산을 메고 날아갔다. 나는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주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그런데 그 때, 보트에 함께 탄 장사꾼들이 핸드폰을 달라며 사진을 대신 찍어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폴라로이드 사진까지 찍어주겠다는 제안을 했는데 모든 것에는 돈이 따라야 했다. 부담되는 가격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핸드폰으로 찍는 사진까지 억제하며 돈을 달라고 하니 표정이 찌푸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했다. 행복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 아쉬웠지만 정원이가 전날, 루프탑 인피니티 풀에서 말했던 것처럼 행복한 순간을 눈에 먼저 담겠다고 했던 말을 받아들여 우리는 비록 패러세일링의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어도 행복했던 당시의 기분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자위하며 패러세일링을 마쳤다.

 

 패러세일링을 마치고 따웬 비치의 백사장으로 돌아왔다. 오토바이 택시기사는 바로 제트스키를 타러 가자며 우리를 안내했다. 그 때였다. 정원이의 표정에 다시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이유를 막론하고 패러세일링을 즐겁게 체험한 건 사실이지만 중국인이 너무 많아 오지 않으려 했던 이 따웬 비치에서 또 한 번 바가지 가격에 당하면서까지 제트스키를 타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정원이의 뜻이었다. 이어 제트스키마저도 따웬 비치에서 하고 돌아가면 후회할 것 같다는 정원이의 의사를 받아들여 우리는 오토바이 택시기사에게 다른 해변으로 태워다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우리는 오토바이 택시기사와 가벼운 실랑이가 붙고 말았다.

 

 “우리는 따웬 비치에 오지 않으려 했다. 제트스키가 가능한 다른 해안가로 우리를 데려다 줘.” (정원)

 “너희가 패러세일링을 하러 간 사이에 이미 제트스키의 흥정과 구매를 마쳤다. 그럴 수 없다.” (오토바이 택시기사)

 “부탁이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 해양 스포츠를 즐기고 싶다.” (정원)

 “XX(확실한 뜻은 모르겠지만 말투나 당시 대화의 분위기가 태국어로 욕을 하는 듯 했다.)” (오토바이 택시기사)

 “……” (정원, 영완)

 “따라 와.” (오토바이 택시기사)

 

 우리는 끝내 오토바이 택시기사에게 티엔 비치로 데려다 줄 것을 부탁했다. 대신에 그는 티엔 비치에서의 해양 스포츠는 알선해 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 뜻에 동의했다. 가볍게나마 실랑이가 있던 탓에 우리는 정적된 분위기 속에서 티엔 비치에 도착하게 되었다. 솔직히 우리도 오고 싶지 않았던 따웬 비치에서 패러세일링을 하게 되어 예상 못한 손해를 보았지만 그러면서도 싸매 비치에서의 계약을 먼저 파기한 것이 미안해서 우리는 오토바이 택시기사에게 티엔 비치로 데려다 준 150바트의 비용에 50바트의 팁을 더해서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S#20. 티엔 비치

 티엔 비치는 따웬 비치와 비교하면 오버를 조금 더해 무인도 수준으로 한적했다. 그래서인지 따웬 비치의 바다보다 더 깨끗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티엔 비치 표지판

 

 이어 나는 정원이에게 챙겨 온 군복을 래쉬가드의 위에 입자고 제안했다. 나는 꼬란 섬에 입성하기 전, 정원이에게 잊지 않고 군복을 챙기라고 신신당부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에서 짐을 챙길 때부터 군복을 꼭 챙기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 이유는 바다에서 청춘의 이미지를 부각시킬 수 있는 수단과, 군대에서 만난 우리의 인연을 표현할 수 있는 건 군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색이라면 생색인데 아마 외국의 해변에서 군복을 입고 거닐 생각은 아이디어 뱅크인 내가 아니면 쉽게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웃음)


 한적한 티엔 비치에서 군복으로 환복한 후 찍은 경례샷


 군복 기획은 내가 생각했지만 정말 감탄스러운 기획이라 생각한다. (뿌듯V)

 

 그래서 우리는 티엔 비치에 도착한 이후 래쉬가드 위에 군복 상의를 입고 해변을 거닐었다. 그런데 아무리 걸어도 제트스키를 할 수 있을 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바다 위에 보이던 보트들도 어린이들이 단체로 탑승하는 바나나보트 정도였다. 엔진 고장으로 인한 시간 지연과 패러세일링 대기까지. 그런 와중에 제트스키를 위해서 언제까지 티엔 비치를 기약없이 걸을 수만도 없다. 우리는 긴급 회의에 들어갔다. 짧은 회의 끝에 우리는 좋은 방안을 도출했다. 그것은 바로 선착장이 있는 싸매 비치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싸매 비치에는 패러세일링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을 뿐, 제트스키는 이용할 수 있었고 우리에게 패러세일링을 할 수 없다고 알려주신 아주머니에게 가면 얼굴도 트였기 때문에 제트스키를 대여하는 게 지금보다 더 수월할 것 같았다. 게다가 파타야로 나가는 선착장까지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어서 시간에 쫓길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이 상황에선 이것만이 정답이었다. 우리는 티엔 비치에서 만난 오토바이 택시기사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싸매 비치로 돌아왔다.

 

S#21. 싸매 비치

 싸매 비치는 티엔 비치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돌아오는 데 오토바이로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싸매 비치로 돌아온 우리는 싸매 비치에서 패러세일링을 할 수 없다고 알려주신 아주머니를 찾아가 제트스키를 대여했다. 나는 워낙에 운전이 미숙한 편이라 제트스키를 운전하다 보면 어딘가에 부딪쳐 수리비를 물어주어야 할 상황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정원이에게 네가 운전하는 제트스키의 뒤에 같이 탈게.”라고 했지만 정원이는 거절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제트스키의 운전을 해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운전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며 다그쳤다.

 

 걱정스러웠지만 나는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1>처럼 서로의 계획에 열외 없이 참여하기로 약속했던 순간을 되새기며 끝내 제트스키를 운전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안전 요원에게 운전 교육을 받으며 서서히 운전 감각을 몸에 익혔다. 간략했던 교육이 끝나고 우리는 30분 동안 마음껏 싸매 비치 바닷가를 누볐다파도가 치는 방향과 제트스키의 질주 방향이 어긋날 때는 마찰력이 발생하여 제트스키가 공중으로 붕 뜨곤 했는데 그 때의 쾌감이 정말 짜릿했다. 만약, 이 곳이 인파가 들끓던 따웬 비치였다면 절대 이러한 속도감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토바이 택시기사와의 약속을 파기하면서까지 따웬 비치에서 제트스키를 타지 않게 고집을 부려 준 정원이가 너무 고마웠다.


 두려웠지만 용기내어 운전했던 제트스키.

다음에 타게 될 때는 더 빠른 속도를 내며 탈 수 있을 것 같다.

 

 제트스키를 체험했던 30분이 이렇게 짧은지 미처 몰랐었다. 약속했던 시간이 다 되자 싸매 비치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파타야로 돌아가는 배를 탈 때가 되면 알려줄 테니 그 때까지 싸매 비치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라며 고글 물안경과 썬 베드를 서비스로 제공해 주셨다. 폭풍 서비스에 감탄한 나는 내가 태국인이었으면 당신을 사랑했을 거야.” 라는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띄웠다.


 썬 베드에 누워 땡모반을 마시던 정원이는 꼬란 섬에 들어올 때, 나의 컨디션이 너무 나빠 보여서 재밌게 놀지 못 할 줄 알았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나도 사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시간이 턱없이 부족할 것 같아서 해양 스포츠를 제대로 즐길 수 없을 줄 알았다. 물론, 바가지 가격에 당하기도 하고 조식 뷔페 이후로 제대로 된 식사조차 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예상과 달리 너무나 즐겁게 꼬란 섬에서의 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썬 베드에 누워 파타야로 나가기 전까지 여유를 만끽하는 우리

 

 어느덧 파타야로 돌아갈 시간과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챙겨온 짐을 들고 선착장으로 향하려는 찰나, 우리는 싸매 비치 아주머니께서 박보검이 출연하는 한국 드라마를 보고 계시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 순간을 지나칠 수 없었다. 우리는 연예가중계의 리포터(?)로 빙의하여 박보검 사랑해요.(외국인의 어색한 한국인 말투로)” 라는 멘트를 가르쳐 주었고 이내 함께 손 하트 포즈를 지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당연히 사진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우리는 "박보검 사랑해요~"를 말하고 있는 중이다.

 

S#22. 발리하이 선착장(시암 앳 시암 호텔 체크아웃)

 짧은 시간밖에 있지 못했지만 강렬했던 그 곳, 꼬란 섬을 나오며.


 3시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파타야로 돌아가는 배를 타고 350분에 선착장에 내려서 호텔로 돌아와 체크아웃을 마친 이후, 430분에 방콕으로 향하는 벨 트래블 버스를 타는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그 얘기인즉슨, 이번에도 엔진이 고장나는 불상사가 벌어진다면 방콕으로 향하는 모든 일정이 죽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출발 직전, 선장에게 의심을 담은 눈초리로 엔진 오케이?” 라고 물어 보았다. 선장은 당당하게 괜찮다고 말했다. 안도감을 얻은 우리는 배의 2층으로 올라가 해먹 의자에 누워 잠시 눈을 붙였다. 눈을 떠 보니 시간은 340분이었다. 서서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파타야에 도착하기로 공지한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배는 여전히 육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해를 이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원이는 이런 초조한 나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단잠에 빠져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오전부터 멀미로 고생하는 나를 케어해 주던 모습이 떠올라 곤히 잠에 든 정원이를 깨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정원이를 깨워 닦달한다고 해서 배가 빨리 가는 것도 아닌 데다가 배가 선착장에 도착하기까지는 그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어서 나는 정원이가 깨지 않게 조용히 2층에서 내려와 선장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서툰 영어로 앞으로 육지에 도착하기까지 남은 시간을 물었다.

 

 “어.. 저기요. 워킹 스트리트. 지금부터 텐 미닛?” (영완)

 “. 피프틴 미닛.” (선장)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오케이.” (영완)

 

 2층으로 다시 올라가자 정원이는 부시시 잠에서 깬 모습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핸드폰 속 시계와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선착장을 번갈아 보며 초조함에 쫓기고 있었다. 그러나 정원이는 여전히 평화로웠다.

 

 우리는 예정된 시간보다 10분 가량 늦게 발리하이 선착장에 도착했다. 택시든 썽태우든 일단 교통 수단을 타려면 선착장의 긴 제방 길을 나와야 했는데 다급했던 탓인지 제방 길은 아침에 비해서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나는 정원이를 따돌리고 혼자서 제방 길을 뛰어나와 택시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일단 나라도 택시를 타면 기사가 뒤쫓아 오는 정원이를 태워서 호텔까지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보며 덩달아 조급해진 정원이는 그제서야 나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운이 좋게 택시는 바로 잡을 수 있었으나 문제는 꽉 막힌 도로였다. 현재 시간 오후 410. 그리고 방콕 행 벨 트래블 버스가 출발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20. 시간에 맞춰서 호텔에 도착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가늠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다. 택시는 속도를 내나 싶으면 금세 신호에 걸려 몇 분을 도로 위에 멈춰 있는 미칠 듯한 밀당을 반복했다. 조급해 하는 나를 보며 정원이는 예약한 버스가 아닌 다른 버스로도 충분히 방콕까지 갈 수 있다고 달랬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벨 트래블 버스를 타면 방콕에서 묵을 우리의 게스트하우스 주변까지 데려다 주는데, 우리가 다른 버스를 새로 타고 방콕으로 오려면 버스를 새로 찾아 보아야 하는 데다가, 방콕에 도착했다고 한들 게스트하우스까지 오는 시간을 또 할애해야 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게스트하우스에는 오늘의 밤중에나 도착할 것 같았다.


꽉 막힌 도로 위의 택시 안. 나는 이 순간이 태국 여행 일정 중에서 제일 촉박했고 예민했다.

 

 미칠 듯한 긴장감이 감도는 택시 안에서 나는 정원이에게 또 한 번의 부탁을 요청했다.

 

 “정원, 너 호텔에 전화해서 한국인 여직원 바꿔 달라 해 줘. 그 여직원이 전화 받으면 우리 지금 멀리서 오는 게 아니고 호텔 근처에서 택시를 타고 가고 있는 중이니까 버스 기사에게 조금만 기다렸다가 출발해 달라고 부탁해 줘.”

 

 나는 버스를 놓치면 놓치더라도 일단 해 볼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동원해 보고 싶었다. 정원이는 바로 호텔로 전화를 걸어 침착하게 우리의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나 영어의 한계에 부딪쳤다. 당황한 정원이는 한국인 여직원을 바꿔 달라 했고 전화를 건네받은 한국인 여직원은 알겠다며 우리에게 최대한 빨리 호텔로 돌아올 것을 요구했다.

 

 택시는 430분까지 고작 2분을 남기고서 호텔에 도착했다. 방콕으로 향할 승객들은 서둘러 기사에게 짐을 이송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한국인 여직원에게 더 빨리 올 수 있었는데 배가 지연되서 지금에서야 왔다며 버스가 떠나기까지의 시간을 벌어다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런데, 또 돌발 상황이 일어났다. 내가 전날 이용했던 세탁 서비스의 비용이 납부되지 않아서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프론트 데스크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시간은 430분을 지났고 정원이를 포함한 방콕으로 떠날 승객들이 승합차 안에서 나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나는 프론트 데스크에서 얼마나 걸릴지도 모를 시간을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 아침에 체크아웃 할 때 돌려받은 보증금에서 세탁 서비스 비용 제외하고 받아서 돈 낸 상황이에요. 빨리 확인 부탁드릴게요.”

 

 덩달아 조급해진 듯한 한국인 여직원은 나와 세탁 서비스 직원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통역해 주며 빠르게 이 상황이 정리될 수 있게 도와주었다. 5분 가량이 지났었나. 직원은 드디어 비용 납부가 확인되었다며 내가 맡겼던 세탁물을 돌려주었다.

 

 나와 정원이는 승합차 안에 타고 있던 승객들에게 늦어서 죄송하다며 사과를 연신 반복했다. 감사하게도 승합차에 타고 있던 관광객들은 한국인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이해해 주었고 도리어 밝은 얼굴로 정말 괜찮아요.” 라며 우리를 위로해 주었다.


벨 트래블 버스를 타고 파타야에서 방콕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차가 막히는 반대편 차도의 상황이 매우 혐오스럽다.

 

 금세 벨 트래블 파타야 스테이션에 도착한 우리는 승합차에서 벨 트래블 버스로 환승하여 방콕으로 돌아왔는데 파타야로 향할 때와는 달리 시간이 3시간이나 걸렸다. (이렇게나 시간이 걸렸는데 만약 버스를 놓쳐서 우리끼리 방콕으로 왔을 걸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기 그지없다.)

 

S#23.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

 벨 트래블 파타야 스테이션.

트렁크가 열려 있는 가운데의 차량이 우리를 이비스 호텔까지 데려다 줄 승합차다.


 3시간을 달려 벨 트래블 방콕 스테이션에 도착한 우리는 그 곳에서 승합차로 다시 환승하여 방콕의 이비스 호텔까지 왔다. 벨 트래블 서비스가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로는 픽업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아서 우리는 그나마 가장 인근에 위치하고 있던 이비스 호텔에 내려 툭툭(방콕 식 대중교통)을 타고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까지 찾아갔다.


방콕 입성. 승합차를 타고 이비스 호텔로 향하는 중.

 

 배낭여행객들의 성지라 불리는 방콕 카오산 로드의 뒤편에 위치하고 있던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는 심플한 나무 캡슐 형태로 2층 침대를 이루고 있었고, 조식 서비스와 라운지 이용 서비스까지 모두 제공하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가 처음이었던 정원이는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으며 방에 들어올 때마다 오픈된 마인드로 투숙객에게 인사를 건네며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는 게스트하우스의 개방적인 문화에 흠뻑 빠져 게스트하우스의 이용 경험이 많은 나보다 먼저 대만에서 온 여행객과 친구가 되기도 했다.


우리가 이틀 밤을 묵을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


정원이는 2층의 3번 침대에서, 나는 1층의 4번 침대에서 자기로 했다.


은은한 조명과 아늑했던 공간, 베개가 높아 다소 불편했지만 무척 푹신했다.

 

S#24. 방콕 카오산 로드

 이제껏 그랬듯이 오늘 하루도 너무나 알찼다. 그러나 식사를 한 기억은 12시간 전의 호텔 조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사히 방콕 카오산 로드에 도착한 우리는 가벼운 복장으로 갈아입고 저녁 식사로 카오산 로드의 길거리 음식을 섭렵하기로 결정했다.

 

 카오산 로드의 거리는 가렌드와 만국기가 곳곳마다 눈에 띄어 전 세계 배낭여행객들이 모인다는 카오산 로드의 슬로건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고 있었다. 우리의 길거리 음식 먹방은 코코넛 아이스크림으로 그 시작을 알렸다. 이어 팟타이와 망고 밥, 꼬치 구이와 웃음 가스 풍선, 그리고 태국의 맥도날드에서만 판매한다는 콘 파이와 파인애플 파이를 먹으며 전투적으로 음식들을 입에 넣었다.


전 세계의 배낭여행객이 모인다는 성지, 방콕 카오산 로드.


 

 

<배틀 트립>의 김민교가 강추하던 태국 여행 필수 먹방 메뉴 코코넛 아이스크림,

태국식 면발과 함께 볶아진 닭고기와 계란, 고명은 땅콩 크런치와 고춧가루 뿐인데 환상적인 맛을 내던 팟타이,

질게 지어진 밥과 말랑한 망고의 조화가 의외로 괜찮아서 놀랐다. 토핑된 소스는 망고 밥의 풍미를 더하고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도 맥도날드에만 한 달에 10만 원 이상을 소비하는 자칭 맥도날드 매니아.

태국에서만 판매하는 콘 파이 파인애플 파이를 먹지 않고 돌아갈 수 없었다.

음료도 한국에서는 마실 수 없는 딸기 맛 환타로 주문했다.

 

 팟타이를 먹을 때가 기억이 난다. 우리가 팟타이를 구매한 포장마차의 맞은 편에 있던 작은 라이브 카페에서는 정원이가 좋아하는 밴드 가수들의 곡들을 연이어 라이브로 연주하고 있었다. 우리는 팟타이를 먹으면서도 공연을 하고 있는 라이브 가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거나 박수를 치는 둥 적극적으로 공연에 회답했다. 그 곳에서 감동을 정통으로 받은 정원이의 표정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한참동안 넋이 나가 있던 정원이는 내게 고등학생 시절, 밴드 동아리의 멤버였던 시기를 회상하며 당시 자주 듣던 곡들을 내게 소개해 주었다. 팟타이와 음악이 함께 감동으로 하나되어 즐거운 방콕에서의 밤을 선물해 준 카오산 로드. 이렇게 무르익는 방콕에서의 분위기가 어제 있던 파타야와는 새삼 달랐다.

 

 먹방을 마치고 슬슬 배가 불러오고 있었다. 우리는 태국 여행 시 모두가 손꼽는 위시리스트, 발 마사지를 받기 위해 마사지 샵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정원이가 누군가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 곳에서 정원이와 인사를 주고받는 상대가 과연 누굴까 했는데 상대는 다름 아닌 정원이와 친구가 된 같은 게스트하우스의 대만 여행객이었다. 그 순간을 계기로 나와 정원, 대만 여행객은 서로 통성명을 가졌다. 대만 여행객의 이름은 팡야였다. 팡야는 특별한 계획이 없으면 자신과 일정을 함께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우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OK!”를 외쳤다. 그렇게 우리는 팡야와 함께 발 마사지 샵으로 향했다.

 

 발 마사지 샵은 정말 신선했다. 단순히 마사지만 해주는 줄 알았는데 발부터 직접 씻겨주더니 마사지사들은 저마다의 다양한 스킬로 우리의 피로를 풀어주었다. 정원이는 발이 너무 아팠는지 팔을 배배 꼬아 고통을 참고 있음을 온 몸으로 드러냈고 나는 아재(?) 마냥 동굴 깊이 파고 들어가는 목소리로 감탄하는 신음을 계속해서 내뱉었다. 그에 반해 비지니스 상 태국을 자주 방문하는 팡야는 한결같이 웃는 표정으로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우리들의 발 마사지를 해 주시며 즐거운 말동무가 되어 주셨던 케이 마사지 샵의 마사지사 분들

 

 팡야가 우리에게 어떻게 알게 된 사이냐고 묻자 우리는 군대에서 만난 인연이라 말했다. 그러자 팡야는 자신도 군인이라면서 제복을 입고 있는 본인의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보여주었다. 팡야의 말을 들어보니 그는 대만의 공군이었다. 팡야와 우리 사이에 닿는 인연의 소재가 너무나 유사한 점이 많아서 서로가 서로에게 놀라는 모습을 감출 수 없었다.

 

 발 마사지를 마치고 거리에 나온 팡야는 우리와 시간을 더 보내고 싶은 눈치를 보였다. 나와 정원이도 팡야와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싶었으나 우리는 내일 아침 일찍부터 담넌 사두억 수상 시장을 가기 위해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팡야에게 미안한 대답을 전하며 같이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자고 했다.

 

S#25.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온 나는 정원이에게 한 가지 사실을 고백했다.

 

 “정원, 내가 내일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을 가기 위해서 반나절 여행사 서비스와 버스는 다 예약을 했는데, 집합 장소로 모이는 역까지 가는 과정은 미처 조사하지 못했어.”

 

 그래서 나는 정원이가 챙겨 온 노트북을 빌려 내일 아침 우리의 이동 루트를 조사할 예정이었는데 의도치 않게 팡야에게 수상 시장으로 향하는 여행자들의 집합 장소, 아속 역까지 가는 방법을 묻게 되었다. 팡야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지만 모든 말들이 영어였기 때문에 나는 서서히 집중도가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정원이는 차근차근 대화를 이어 가며 팡야의 대답을 번역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에 달하고 말았다. 끝내, 팡야는 라운지에서 남자친구와 영상통화를 하고 있던 게스트하우스의 여직원에게 우리를 맡겼다. 여직원은 우리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서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남자친구와 영상통화를 하며 끼고 있던 양 쪽의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누어 우리에게 건넸다.


 막막했던 다음 날 아침 일정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준 게스트하우스 여직원과 그의 한국인 남자친구

 

 이어폰을 받고 보니 스마트폰 속의 남자가 익숙한 언어로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렇다. 영상 속의 남자는 한국인이었다. 남자는 게스트하우스 여직원의 한국인 남자친구였고 태국 여행의 베테랑이었다. 우리와 대화를 시작한 그는 출근 시간의 교통 정체를 피해 빠르게 아속 역까지 갈 수 있는 꿀팁을 알려주며 우리의 전우애를 응원해 주었다. 게스트하우스의 여직원 덕분에, 아니 예상치 못했던 그녀의 한국인 남자친구 덕분에 우리는 막막했던 당장 내일의 아침 일정을 말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여직원에게 고마움의 성의로 게스트하우스의 앞에 있던 세븐일레븐으로 향해 코리안 스타일 스파이시 라면이랍시고 불닭볶음면과 음료수를 선물해 주었다. 사실, 고마움도 고마움이지만 그녀에게 한국인 남자친구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으며 어떻게 이러한 우연이 가능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여행이 더 나아가서는 게스트하우스가 선사하는 무언의 인간적인 매력에 점점 더 매료되고 있었다.


* 게스트하우스 여직원의 한국인 남자친구가 말해 준 방콕의 교통체증 피하는 법 : 태국은 한국처럼 차선의 수가 많지도, 폭이 넓지도 않아서 출근 시간(6~9) 대의 도로는 마비 상태(트래픽 잼)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대중 교통 이용을 추천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택시나 자가용을 이용해야 한다면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간의 여유를 30분에서 1시간으로 잡으라고 했다. 그리고 카오산 로드 주변에는 지하철 역이 없어서 대부분 수상보트를 타고 선착장이 있는 사판탁신 역까지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거리상으로 봤을 경우 사판탁신 역까지 가서 방콕 시내를 누비는 것보다 택시나 툭툭(방콕 식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파야타이 역이나 시암 역(두 역이 방콕의 대표 역으로 보면 된다.)에서 일정을 시작하는 것이 거리 단축과 시간 절약에 훨씬 이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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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2. 시암 앳 시암 호텔 루프탑 인피니티 풀

 우리는 원래 체크인이 가능해지는 오후 2시에 호텔로 돌아와 체크인을 마치고, 저녁이 되기 전까지 루프탑 인피니티 풀에서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다. 그러나 바이크 해프닝으로 인해 호텔에는 330분 즈음에 도착했다. 우리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이 날 아침, 워너원투어 깃발의 정체를 궁금해 하던 한국인 여직원에게 경찰서에 다녀온 해프닝을 구구절절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우리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던 그녀는 벌금 수준에서 멈춰 다행이라며 위로를 해 주더니 이내 예약된 방으로의 안내를 도와주었다.

 

 우리는 예약한 방으로 들어가 래쉬가드로 갈아입고 호텔의 옥상이 되는 26층의 인피니티 풀로 향했다. 인피니티 풀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보인 전경은 입이 귀에 걸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황홀했다. 풀장의 끝이 심플하게 마감되어 있어서 <배틀 트립>의 전파를 탔던 방송 속 자막 그대로 하늘과 바다, 그리고 수영장의 경계가 보이지 않았다. 가뜩이나 우기 시즌이라는 태국의 6월 날씨를 많이 걱정했는데 반전으로 하늘은 몹시나 청명했고,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 생애 처음으로 지상낙원이라는 단어를 몸소 실감했다.


시암 앳 시암 호텔의 루프탑 인피니티 풀의 전경 (파노라마 기능으로 촬영)


루프탑 인피니티 풀의 끝에서 파타야의 뷰를 바라보며 행복해 하는 우리

 

 스마트폰 방수팩을 챙겨온 덕분에 우리는 수중에서 장난치는 모습들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을 망각한 채 놀다보니 어느새 물놀이는 지겨워졌다. 그 때였다. 뉘엿뉘엿 해가 지기 시작했다. 타임 랩스를 촬영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다. 정원이는 이 순간을 카메라보다 눈에 먼저 담고 싶다며 사진 촬영을 부탁하던 내 요청을 거절하고 말없이 선셋에 집중했다. 나는 그 거절이 고마웠다. 되새겨 보니 카메라로 추억을 남기는 것도 좋지만, 카메라 액정을 통해서 행복한 순간을 보는 것보단 현재의 순간을 내 눈에 먼저 담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게 당연한 것 같았다. 10분 가량이 지났을까. 말없이 선셋을 보던 정원이는 충분히 순간을 눈에 담았는지 스마트폰이 들어 있는 방수팩을 꺼내서 그제서야 하늘이 움직이고, 해가 지는 순간을 타임 랩스 기능으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파타야.

네이비 색의 하늘은 한국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더욱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파타야에서의 저녁.


 정원이가 촬영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나는 옆에서 물놀이를 즐기던 세 명의 외국인들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하면서 짧게나마 대화를 나눴다. 외국인들은 내게 말을 건넸다.


 “웨얼 아 유 프롬?”

 “아임 프롬 사우스 오브 코리아.” 


 코리아에서 왔다는 나의 대답에 그들은 휘둥그레 커진 눈으로 나를 격하게 반기기 시작했다.


 “코리아!? 위 아 프롬 터키! ! 브라더! 브라더!”


 그들은 바로 한국과 형제국가 사이인 터키에서 온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주먹 쥔 하이파이브를 요청했다. 나는 개방적인 그들의 인사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의 대화는 1분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짧았지만 리액션은 어느 의형제 못지않을 정도로 격했고 셀카도 여러 장이나 거듭해서 찍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날 서로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공유했다. 이유는 훗날 우리 중 누구 한 명이라도 터키, 혹은 한국을 방문한다면 다시 만나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코리아! 브라더!" 를 연발하며 격하게 환영해 주던 터키 청년들

 

 어느덧 시간은 완전한 저녁이 되었다. 우리는 인피니티 풀의 사이드에 있던 바(Bar)로 가서 칵테일을 주문했다. 바텐더는 썬 베드에서 누워 기다리라고 하더니 칵테일을 만들어 직접 우리에게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젖은 머리 위로, 짙은 남색빛 하늘을 배경으로 칵테일 잔을 높이 들어 부딪쳤다. 이어 칵테일이 한 입 막 들어갔을 찰나에 정원이는 내게 말을 건넸다.


과일이 가득 담겨있던 스위트 칵테일. 

 

 “영완, 직장 생활 하느라 항상 쫓기듯 살아 왔잖아.

나는 네가 그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여유롭게 이 시간을 만끽했으면 좋겠어.”


군생활을 함께한,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할 소중한 친구 정원

 

 정말 이런 친구는 어딜 가도 없다고 단언한다. 놀러와서까지 평상시 나의 일상을 신경 써 주며, 이 시간이 직장 생활 속의 쉼표가 되어 주길 바라 주는 친구는 아마 정원이가 유일무이할 것이다. 이런 인간이 내 군생활의 맞선임으로 있어 주어서, 또 그 인연이 지속되어 먼 나라 태국에까지 함께 올 수 있는 사이가 된 우리의 지금에 감사하며 나는 파타야의 저녁에 흠뻑 빠져들었다.

 

S#13. 홉스 브루하우스

 서두에 말하지 않은 내용이 하나 있다. 이번 여행은 예능프로그램 <배틀 트립><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1>을 철저하게 모방하고 있다. 한 명이 전체적으로 여행을 이끌지 않고, 여행에 함께하는 동행자가 서로의 일정을 같이 계획하는 <배틀 트립>의 콘셉트와 서로의 꿈에 한 명도 열외 없이 동참했던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1> 콘셉트를 결합하여 정원이는 파타야에서의 일정을, 나는 방콕에서의 일정을 계획했고 우리는 서로가 계획한 일정 속에 한 명이 원치 않는 음식이 있어도, 혹은 원치 않는 액티비티가 있어도 빼지 않고 참여하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파타야에서의 일정은 줄곧 정원이의 계획만으로 꾸며지고 있는 것이다.(방콕에서는 나의 계획으로 일정이 진행될 예정이다.)



<배틀 트립>처럼 여행의 일정은 서로가 같이 계획하고,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1>처럼 서로의 꿈에 모두가 동참하는 여행을 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던 워너원투어.

 

 정원이가 파타야의 일정을 계획하면서 먹어 보고 싶은 음식들을 이야기할 때, 내가 가장 궁금했던 음식은 족발튀김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정원이가 파타야에서의 저녁으로 족발튀김과 화덕피자를 제안했다. 나는 단번에 동의했다. 맛있는 족발튀김과 밀맥주로 유명한 정원이의 초이스 홉스 브루하우스는 시암 앳 시암 호텔에서 썽태우로 5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홉스 브루하우스의 외관은 유니크한 엠블럼들로 가득 장식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이 곳은 파타야의 유명 맛집이라는 아우라를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내부는 독일 풍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다. 나는 수많은 맥주 잔, 혹은 다량의 맥주가 담겨 있는 대용량 디스펜서를 서빙하는 직원들의 분주함을 보며 더더욱 홉스 브루하우스에서의 만찬을 기대하게 되었다. 우리는 메인 요리로 족발튀김과 해산물이 듬뿍 토핑된 씨푸드 화덕 피자를, 맥주는 기본 밀맥주로 두 잔을 주문했다.


독일 식 인테리어가 특징인 홉스 브루하우스.

라이브 무대도 있었지만 이 날은 공연이 예정에 없었는지 진행되지 않았다.

 

 족발튀김은 살코기 표면에 붙어있는 바삭한 껍데기 튀김옷이 일품이었다. 그러나 퍽퍽한 살이 많은 부분들을 먹다 보니 금세 질리는 감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는 개인적으로 족발튀김보다 씨푸드 화덕 피자가 더 나았다. 씨푸드 화덕 피자는 흔히 피자에서 맡기 힘든 굴의 향이 독특하고, 피자에 올라가는 치즈 토핑과 굴, 새우의 어우러짐이 자아내는 조화가 꽤나 신선했다. 가뜩이나 해산물까지 통통하게 알차 있었다. 쫄깃했던 식감은 이루 말할 것도 없다.

 

씨푸드 화덕 피자와 족발튀김


 그렇게 파타야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밤을 맞이했다. 정원이는 내가 태국 여행을 제안해 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집에서 허황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거라며 내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 여행을 함께해 준 정원이가 고마웠다. 낯간지럽지만 우리는 이 때가 아니면 고마움을 표현할 순 없을 것 같았는지 서로에게 아낌없이 고마움을 전하며 남은 여행 일정도 성공적으로 흘렀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여러 번 맥주잔을 부딪쳤다.


맛 없이 깔끔하게 목을 타고 넘어갔던 홉스 밀맥주

 

S#14. 워킹 스트리트

 족발튀김과 씨푸드 화덕 피자를 먹고 배가 부른 우리는 소화를 이유로, 또는 파타야의 밤 문화를 느끼고자 워킹 스트리트를 거닐기로 했다. 바이크를 타던 낮에 지나갈 때만 해도 워킹 스트리트는 그저 한적한 거리에 불과할 정도로 조용했는데 어둠이 내려앉자 이 곳은 아주 열정적이고 뜨거운 거리로 변해 있었다. 화려하게 빛나던 네온사인 간판은 눈이 아플 정도로 반짝였고, 호객 행위를 하던 여성들의 의상은 하나같이 도발적이었다. 워킹 스트리트에서 우리는 반가운 한국 브랜드 설빙을 보기도 했고,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무에타이 펍을 보면서 신기해 하기도 했다.


국적, 나이, 성별을 불문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활발함을 이루어 내던 워킹 스트리트

 

 그러나 워킹 스트리트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워킹 스트리트에서는 공공연하고 활발하게 성매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삐끼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했고, 전단지의 사진은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지 않을 정도로 적나라했다. 충격적이었지만 끈질기게 쫓아오는 삐끼들을 거절하는 재미가 꽤나 쏠쏠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재밌었던 게 있다. 그것은 바로 끈질긴 삐끼들의 호객 행위 속에서 수줍음 많은 정원이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워킹 스트리트를 빠져 나온 우리는 내일의 일정을 위해 썽태우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에서는 정원이가 가져 온 블루투스 스피커에 노트북을 연결하여 서로가 원하는 노래를 번갈아가며 틀었다. 우리는 음악을 틀어 놓고 샤워를 하거나, 짐을 정리하거나, 혹은 각자의 스타일에 맞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내가 선곡한 Marie Digby의 Breathing Underwater

 

S#15. 시암 앳 시암 호텔 조식 뷔페

 우리는 이 호텔을 특가로 예약했기 때문에 옵션에 조식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생애 처음 와 본 5성급 호텔에서 조식을 먹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조식 1일권을 별도로 구매하기로 했다. 한 명당 한국 물가로 1만 원 대의 가격밖에 하지 않았던 호텔에서의 조식.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간편한 트레이닝 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호텔 내의 뷔페로 내려갔다.

 

 세팅되어 있던 음식들은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뷔페들의 디너 메뉴 이상의 수준으로 화려했고 메뉴 또한 풍성하게 채워져 있었다. 분명 우리는 조식을 먹고자 왔는데 양식, 일식, 디저트까지 높은 퀄리티로 준비되어 있었고, 브런치에 먹기 좋은 계란으로도 다양한 요리들을 만들고 있었다. 특히 벌꿀은 실제 벌집에서 즉석으로 내리고 있었는데 가공을 거치지 않는 천연 상태의 음식을 제공하는 점을 미루어 보아 음식에 대한 신뢰도 가질 수 있었다.


조식 뷔페의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던 디저트 코너


쌀국수를 즉석에서 만들어 주던 조리사


벌집에서 즉석으로 바로 내리는 꿀. 단지에 꿀이 고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 같다.


전투적으로 시작된 우리의 조식 뷔페 먹방

 

 아침은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늘 그것이 어려웠다. 눈을 뜬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먹는 음식은 잘 들어가지 않는 편인데 이 날은 예외였다. 나는 즉석 쌀국수까지 포함하여 평소 한국에서는 입에 대지도 않는 과일까지 오밀조밀 접시에 가득 담아오더니 순식간에 세 접시를 해치웠다.


평상시의 아침이라면 배가 버거워서 디저트를 먹는 편이 아닌데 이 날은 예외였다.

 

S#16. 발리하이 선착장

 배부른 조식을 먹고 우리는 꼬란 섬으로 들어가 해양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발리하이 선착장으로 향했다. 발리하이 선착장에서는 꼬란 섬의 다양한 해변가로 향하는 배가 즐비하게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코에 닿는 바다 냄새와 드넓은 제방 길. 어릴 적 즐겨했던 게임 <메이플스토리>속 세상을 누비는 듯한 천진난만한 착각을 일부러 가져보기도 했다.

 

 여유 있게 선착장에 도착한 덕분에 우리는 가장 첫 시간에 싸매 비치로 들어가는 배를 탈 수 있었다. 탑승권을 구매하고 나서 우리는 출항 전까지 셀프 비디오에 넣을 장면들을 촬영하면서 여유있게 시간을 보냈다. 셀프비디오의 감독과, 나의 포토그래퍼를 자청한 정원이는 맨땅에 드러누우면서까지 촬영에 대한 열정과 혼신을 쏟아 부었다.


셀프비디오 촬영을 위해 한여름 아스팔트 바닥에 드러누우면서까지 촬영의지를 불태우는 정원


승객들을 배에 태우며 출항을 준비하고 있는 꼬란 섬으로 향하는 배

 

 어느덧 배는 출항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배는 이내 힘차게 뱃고동을 울리더니 바닷바람을 가르며 꼬란 섬로 항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비행기 지연과 여권 분실 사건, 바이크 적발 사건을 잇는 또 하나의 예상 못한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바로 배의 엔진 고장이었다. 갑자기 배가 바다의 한가운데서 멈추더니 재시동을 여러 번 시도하기 시작했다. 파도치는 바다 위에 고립되어 있었음에도 승객들은 배가 좌우로 흔들릴 때마다 웃으며 바이킹을 타는 듯한 리액션을 보였고, 늘 그렇듯 정원이는 침착하게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나였다. 조식으로 뷔페를 세 접시나 먹었던 탓에 몸에서 배멀미의 기운을 보이기 시작했다.

 

 야속하게도 배는 다시 항해를 시작할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타이항공 비행기가 지연되었을 때보다 더한 짜증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비행기의 지연은 한밤중이었기 때문에 계획했던 일정에 크게 지장은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오후에 우리를 픽업하러 올 방콕 행 벨 트래블 버스가 430분에 시암 앳 시암 호텔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우리는 꼬란 섬에서 나오는 배 중에서 가장 빠른 시간의 배인 3시 배를 타고 파타야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이 버스는 정원이가 한국에서부터 예약했던 버스였던 데다가 놓치면 방콕으로 돌아갈 방법을 새로 찾아서 자급자족으로 움직여야만 했다. 그래서 우리는 꼬란 섬에서의 해양 스포츠를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자 일부러 가장 첫 시간의 배인 930분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온 것인데 하필 엔진이 고장 난 탓에 우리가 꼬란 섬에서 보낼 수 있는 제한된 시간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었다.

 

 더 이상 이대로는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나의 판단 아래에 나는 멀미를 억눌러가며 정원이를 통해 선장에게 스피드 보트를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 몸 상태는 점점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기 때문에 배 위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파타야로 다시 돌아오면 너무나 억울할 것 같았다. 이러한 나의 뜻을 전달해야 할 정원이의 입장이 곤란했던 것은 알았지만 미안함을 무릅쓰고 부탁했다. 정원이는 잠시동안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망설였지만 이내 선장에게 가서 나의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나 선장은 정원이에게 새로운 배를 불렀다. 10분 내로 배가 이 곳에 도착할 테니 그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고장난 엔진 때문에 새로 부른 배가 도착할 때까지 고립되어 있던 승객들

 

 나도 정원이도, 이제는 승객들도 모두가 지쳐 있는 상황이다. 나는 배가 올 때까지 바닥에 쭈그려 앉아 거듭해서 마인드 컨트롤을 반복했다. 이 상황에서 내가 더 이상 짜증을 표출하면 정원이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 같았고, 그것은 곧 워너원투어의 실패로 이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구명조끼를 집어 던지며 정리하지 않고 새로운 배로 갈아타려 할 때도 그 행동을 지적했던 정원이의 꾸중을 묵묵히 수긍했다.

 

 새로운 배로 옮겨타자마자 나는 바로 바닥에 쭈그려 앉아 잠을 청했다. 그 때 만큼은 지금이 몇 시인지, 해양 스포츠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들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렇게 잠에 들다가 눈을 떠 보니 시간은 1130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바다 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꼬란 섬 상륙을 코앞에 두고 또 한 번 배가 바다 위에서 멈추었다. 이내 작은 나룻배가 우리 배를 향해 오더니 승객들을 옮겨 태워 꼬란 섬까지 데려다 주었다.

 

S#17. 꼬란 섬

 시간은 12시와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원래대로였다면 1030분에 꼬란 섬에 도착하여 해양 스포츠를 즐기다가 식사를 하고 있었을 시간인데 우리는 이제야 섬에 도착하게 되었다. 나는 감정 표현이 뚜렷한 편이라 원래와 같았으면 밝은 모습을 보이기가 어려웠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나는 3년 전, 오사카 우정 여행을 실패한 이후 감정 표현 절제의 필요성을 배웠고, 이번 여행을 시작하면서도 이 점을 가장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흘러간 시간, 그리고 결국에 3시간밖에 남지 않은 시간만이라도 아쉽지 않게 미친 듯이 놀자고 긍정적으로 마음을 바꿔먹었다.


1시간이면 도착할 꼬란 섬에 2시간 30분이나 걸려 도착했다.

 

 그래서 정원이와 나는 꼬란 섬에서의 식사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꼬란 섬에서만큼은 우리의 슬로건이 먹을 시간에 놀자.” 였다. 꼬란 섬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선착장의 바로 앞에 있던 싸매 비치의 가게에서 제트스키와 패러세일링을 할 수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러자 주인 아주머니께서 싸매 비치에는 패러세일링을 할 수 있는 곳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당황한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지금이 멘붕 상태임을 눈으로 말했다.


* 시간이 제한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파타야에서 꼬란 섬으로 들어갈 때 스피드 보트(20)가 아닌 선착장 배(50)를 탄 이유 : 우리가 떠났던 6월은 태국이 우기일 때였다. 고로, 해양 스포츠의 예약을 미리 해 놓아도 현지에 도착했을 때 비가 오면 스피드 보트를 포함한 모든 해양 스포츠를 이용할 수 없게 된다. 또, 당일 오후에 방콕으로 돌아와야 하는 시간적인 제약을 이유로 우리는 모든 해양 스포츠를 사전에 예약하지 않고 가장 체험해보고 싶었던 해양 스포츠(패러세일링, 제트스키)만 현지에서 흥정을 통해 체험하기로 합의했다. 꼬란 섬에서의 일정을 여유롭게 계획한다면 사전에 한국에서 해양 스포츠를 예약하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그러면 파타야에서 꼬란 섬으로 들어갈 때의 스피드 보트 체험도 그 안에 포함되어 20분 만에 꼬란 섬에 도착할 수 있으며 다양한 해양 스포츠를 패키지(스피드 보트, 제트스키, 스노클링, 시 워킹, 패러세일링, 바나나보트, 점심식사)로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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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01. 인천으로 퇴근하기

 태국에서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어서 몸이 조금 피곤해도 퇴근 후 밤비행기로 출국할 수 있는 일정을 선택했다. 그래서 나는 밤에 인천을 출발하여 익일 새벽에 방콕에 도착하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나는 퇴근과 동시에 인천공항으로 향할 수 있게 출근할 때부터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왔다. 동료들은 하나같이 퇴근 후 나의 일정을 궁금해 하며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퇴근 시간이 되자 나는 늘상 타던 방향이 아닌, 반대 방향의 지하철을 타고 홍대입구 역까지 가서 공항철도로 환승했다. 지하철은 1시간 30분 가량을 달리고서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그 곳에서 나는 미리 공항에 와 있던 정원이를 만났고, 정원이 몰래 준비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워너원투어>라는 로고가 담긴 깃발을 선물하며 이번 여행의 시작을 알렸다. 우리는 이번 여행 내내 이 깃발과 함께 방콕과 파타야를 누빌 예정이다.


KBS <배틀 트립>에서 EXID 솔지, 하니가 오사카 여행 시 들고 떠났던 깃발을 보고 자극을 받아

정원이 몰래 디자인하여 회사에 제작을 의뢰한 워너원투어 깃발.

가운데 로고의 양 쪽에 새겨져 있는 사인은 나와 정원이의 사인이다.

 

 퇴근 후, 바로 공항으로 왔더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말이 아니었다. 머리는 몹시나 헝클어져 있었고 셔츠는 오늘따라 유독 더 주름져 보였다. 그것은 곧 눈엣가시로 여겨졌다. 나는 모처럼의 여행을 이렇게 꼬질한 모양새로 시작하고 싶지 않아서 백팩에 미리 챙겨 온 찢어진 스키니 청바지와 검은색 반팔 이너로 옷을 갈아입고 체크인 카운터로 향했다.


게이트로 향하던 도중 보였던 전신 거울을 보며 찍은 여행 출발 전 우리의 개구진 모습

 

S#02. 지연

 여행의 시작부터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렀다. 방콕 행 비행기가 50분 지연이 된 것이다.(탑승 직전까지도 지연이 이어져 사실상 1시간 30분 가까이 지연되었다.) 그러나 새벽에 도착하는 밤비행기라는 이유로 1시간 정도는 참을 수 있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한편으로는 여유롭게 공항을 구경하면서 식사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연이 마냥 싫지만은 않게 느껴지기도.


아이러니하게도 항상 내가 타는 비행기는 지연이 잦은 것 같다. 기분 탓인 걸까.

 

S#03. 방콕으로

기내로 향하는 통로는 언제 거닐어도 가슴이 설레서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다.

얼마나 비행기를 많이 타야 이 곳을 지나쳐도 아무런 설렘이 들지 않을까.


 외국 항공사는 처음이었다. 타이항공의 기내는 지금껏 내가 타 보았던 국내선 저가항공사의 기내보다 훨씬 넓었다. 타이항공의 기내에는 좌석 스크린이 있어서 방콕으로 향하는 비행기의 내비게이션도 볼 수 있었다. 스크린에는 내비게이션 외에도 영화, 게임 등 다양한 컨텐츠가 있었다. 그 중 K-POP 어플리케이션에서는 원더걸스와 카라의 노래를 들을 수도 있었는데 그 순간, 내가 좋아하는 걸그룹에 대해서 자부심이 들기도 했다. 반면, 다비치의 음악이 J-POP 어플리케이션에 있던 것은 다소 찜찜했다. 비행기가 하늘길에 다다르자 승무원들은 승객들에게 기내식과 음료를 제공했다. 나는 닭요리, 정원이는 생선 요리가 메인 음식이 되는 기내식을 선택했는데 생선 요리가 훨씬 맛있었다. 기내식은 메인 요리 외에도 빵과 버터, 티라미수, 샐러드 등으로 알차게 채워져 있었다. 배부르게 기내식까지 먹고 나니 그제서야 서서히 눈꺼풀이 무거워져 나도 모르는 사이 잠에 들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비행기는 착륙을 시도하고 있었고, 이내 서서히 가슴이 두근거리며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설렘은 금세 짜증으로 변하고 말았다. 비행기가 장비 문제로 인해서 게이트 통로와 연결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비행기는 수완나품 공항의 활주로에 착륙을 하고 나서도 30분이나 출구를 열지 못했다. 기장은 아무런 안내 방송도 없이 승객들을 기내 안에서 대기시키기 바빴고, 나는 미리 예약한 숙소로 바로 간다고 해도 2시간 밖에 잘 수 없다는 상황이 화가 나 서서히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2시간 밖에 잘 수 없다는 사실보다 예약한 숙소에서 2시간 가량밖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더 화가 났다. 그러나 정원이는 이 모든 상황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나를 진정시켰고, 기껏 온 여행이 즐거운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나를 다독였다.


이제껏 저가 항공사의 작은 비행기만 타 보았기 때문에 외국 메인 항공사의 넓은 기내가 매우 신기했다.


하늘 위에서 마시는 레드 와인.

그윽한 향이 무엇인지는 알겠지만 절대 두 번은 찾지 않을 떫은 맛의 와인으로 기억에 남는다.


내가 주문했던 닭요리 기내식. 나무젓가락이 놓여진 곳의 아래에는 완두콩이 가득 있었으나

입맛에 맞지 않아 다 정원이의 기내식으로 옮겨 주었다. 스물을 넘겨도 편식을 고치기가 여간 쉽지 않다.


기존 도착 시간보다 1시간 30분이나 늦게 도착한 방콕.

태국 입국 수속을 진행하기 위해 서둘러 입국심사장으로 향했다.


 끝내, 승무원들은 비행기의 뒷문을 통해 승객들을 하차시켰다. 우리는 내리자마자 선두로 입국 심사장으로 와 빠르게 수속을 마쳤다. 그리고 택시 부스가 있는 1층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택시마저도 바로 탈 수는 없었다. 우리의 목적지가 되는 파니니 레지던스 호텔은 공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단거리 운행을 하는 택시 기사가 공항으로 돌아와야만 택시를 탈 수 있었다. 무덥고 탁한 공기가 감돌던 1층의 택시 부스에서 10분 가량을 기다리고 나서야 우리는 택시에 탑승할 수 있었다. 차창 너머로 보이던 태국어 이정표와 도로 곳곳마다 심심찮게 보이던 작은 불상들. 그것들이 눈에 담기니 그제서야 내가 호흡하고 있는 이 곳이 태국이라는 게 실감나기 시작했다.

 

S#04. 파니니 레지던스 호텔

파니니 레지던스 호텔로 우리를 데려다 주셨던 택시 기사님.


 정원이가 한국에서 미리 예약한 파니니 레지던스 호텔은 방콕의 수완나품 공항의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택시로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프론트 데스크에 있던 여직원은 우리가 이 날의 마지막 체크인 손님이라며 환한 미소로 환영해 주었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그녀는 , 소즈라고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그 말을 듣고 나는 흥분에 찬 목소리로 ! 소주! 아이 라이크 소주! 나 소주 진짜 좋아해요!” 라며 라디오스타에서 홍윤화가 선보이던 뽕딱뻥(소주 병 따는 소리)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자 그녀는 소지섭!” 이라고 말하며 말하려던 단어가 소주가 아니었다는 것을 표현했다. 급격히 민망해진 나는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정원이와 함께 예약된 2층의 방으로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샤워부터 했다. 샤워를 하고 나와 머리를 말리고 나니 어느덧 시간은 새벽 4시를 넘기고 있었다. 당장 8시에 파타야로 향하는 벨 트래블 버스에 탑승해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늦어도 7시에는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를 타야만 했다.(공항으로 향하는 시간은 10분밖에 안 되지만 간단한 아침 식사를 위해서 정원이는 7시에 파니니 레지던스 호텔로 우리를 픽업해 가는 택시를 예약했다.) 서둘러 잠을 청했다. 그리고 아침이 밝았다. 역시 우리는 전우였다. 약속했던 새벽 6시에 칼같이 일어나 파타야로 향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예약한 택시를 타러 가기 위해 방을 나서려 하는 찰나, 여행 시 가장 소름이 돋는다는 상황이 터지고 말았다.


소주가 아닌 소지섭을 말하고 싶었던 파니니 레지던스의 프론트 여직원.

그리고 택시 예약을 진행하고 있는 정원.


모든 것을 누리기엔 아쉬운 호텔이지만, 딱 잠만 자기에는 과분했던 시설의 호텔.

비행기의 지연 탓에 이 호텔에서 3시간만 잘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


아침이 밝았다. 파타야로 향하기 위해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기 전,

문 틈으로 보이는 방 안의 모습이 청명하여 급하게 셔터를 눌렀다.

 

S#05. 여권 분실

 방콕에 온 지 6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정원이가 여권을 잃어버렸다며 캐리어와 가방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심지어 택시가 오기로 예약한 7시까지는 앞으로 15분 가량만을 남기고 있었다. 친구로서 무슨 수를 써 줄 수도 없는 초조한 이 상황과 불안함, 또 시간적 압박이 나를 미치게 하고 있었다. 나는 애써 당황하지 않은 척, 혹은 대수롭지 않다는 척, 무신경한 말투로 어디 있겠지. 네가 어제 체크인할 때, 프론트에서 직원이 여권 복사 했었잖아. 그럼 거기 있겠지. 1층 내려갔다 와 봐.” 라고 툭 말을 던졌다. 그런데 골똘히 생각해 보니 정말로 정원이의 여권은 프론트에 있을 것만 같았다. 지연된 비행기와 30분 이상 기내에서 하차를 기다리던 스트레스로 인해 숙소 입성이 너무나 간절했던 탓이었을까. 체크인 당시에 신분 확인을 위해 예약자인 정원이가 여권을 복사한 이후, 프론트에서 여권을 받지 않고 두고 온 상황만이 이 상황의 정답일 것 같았다. 내 말을 듣고 프론트로 달려 갔던 정원이가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여권 찾았어?"


 내 예상은 적중했다. 여권은 프론트 데스크의 복사기 안에 있었다. 정원이와 프론트 여직원은 서로가 여권을 돌려 받을, 돌려 줄 생각을 잠깐 잊고 있던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예약했던 택시를 타기까지 5분을 남기고서야 여권을 찾을 수 있었고 덕분에 체크아웃도 제 시간에 마칠 수 있었다. 시작부터 짜릿했다. 나는 정원이에게 체크아웃 하고 나서 여권 없는 것을 알아챘으면 어떡할 뻔 했냐.”며 진작 알아채서 다행이었다고 정원이의 놀란 가슴을 안도시켰다.


S#06. 파타야로

 아침부터 거사(?)를 치르고 방콕의 수완나품 공항으로 5시간 만에 돌아왔다. 출발 전, 우리는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파타야로 이동하고자 수완나품 공항의 3층 푸드코트를 활보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는 음식 대기 시간과 촉박했던 파타야 행 버스 픽업 시간 탓에 한국에서 이제는 볼 수 없는 훼미리마트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우리는 곤약 음료와 삼각김밥 등으로 가볍게 끼니를 때웠다. 예상보다 더 간단했던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니 시간은 어느새 버스 탑승 시간에 가까워져 있었다.

 

 벨 트래블 버스는 수완나품 공항의 1층에서 탑승할 수 있었다. 버스 안에는 약소하게나마 화장실도 있었고, 생각보다 승객들이 많지 않아서 조용하게 파타야로 향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우리는 미처 다 취하지 못했던 수면을 충분히 취할 수 있었다. 원래 방콕에서 파타야까지는 버스로 평균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 이 날의 우리는 뻥 뚫렸던 고속도로 덕분에 1시간 3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파타야로 향하는 벨 트래블 버스 안에서 출발 직전에 찍은 티켓 인증샷.

 

S#07. 시암 앳 시암 호텔

 우리는 벨 트래블 버스를 타고 벨 트래블 파타야 스테이션에 내려 시암 앳 시암 호텔로 향하는 승합차로 환승했다. 시암 앳 시암 호텔은 초호화 시설에 비해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5성급 호텔로, 내가 좋아하는 예능프로그램 KBS<배틀 트립>에서 배우 김민교가 극찬하며 소개했던 호텔이다. 시암 앳 시암 호텔은 독특한 네이비 색의 건물 외벽이 눈길을 사로잡으며 하늘과의 경계가 보이지 않는 루프탑 인피니티 풀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배틀트립>에서의 소개 때문에 이 호텔을 고르고 싶었던 욕심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루프탑 인피니티 풀에서 파타야의 뷰를 보고 싶었던 마음이 가장 컸다.


KBS<배틀 트립>에서 김민교가 소개한 5성급 시암 앳 시암 호텔.

이 건물의 옥상에는 루프탑 인피니티 풀이 있으며 독특한 네이비 색 건물 외벽은 해변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시암 앳 시암 호텔에 도착했다. 그런데 로비에서부터 우리를 보며 수군거리는 여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내 한 여직원은 우리를 향해 다가오더니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고 지금 가방에 꽂고 계신 <워너원투어>라는 이 깃발. 어떤 건지 알 수 있을까요? 제 친구가 워너원 진짜 팬이거든요.” 라고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한국인 여직원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워너원이라는 그룹의 파급력이 이렇게나 강하다는 것도 정말 놀라웠다. 정원이는 깃발 속의 워너원은 우리의 이름에서 따 온 투어명이며, 아이돌 그룹 워너원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투어명의 이해를 완료한 한국인 여직원은 이내 로비에 있던 동료들에게 우리의 해명을 전달해 주었다.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프론트 직원은 갈증을 씻겨 줄 하와이안 음료를 대접해 주었다.

 

 얼리 체크인을 하고서 본격적으로 워너원투어를 시작하려고 했으나 시암 앳 시암 호텔은 얼리 체크인이 불가능했다. 현재 시간은 오전 10시인데 체크인은 오후 2시까지부터 가능했다. 파타야에서의 일정을 담당했던 정원이가 곰곰이 계획을 수정하는 동안에 나는 화장실로 가서 콘텍트 렌즈를 착용하고 왔다. 정원이는 나에게 지금은 호텔에 짐만 맡기고 바이크를 빌려 체크인을 하기 전까지 파타야를 누비자고 했다. 나는 그 의견에 찬성했다. 그래서 우리는 썽태우(파타야 식 택시 겸 버스)를 타고 한국의 블로그에서 소개하고 있던 신뢰도 높은 바이크 렌트샵으로 향했다.

 

S#08. 피자헛 앞 바이크 렌트샵

 우리는 썽태우를 타고 5분 정도를 달려 피자헛 앞에 즐비하게 바이크를 나열하고 있던 렌트샵에 도착했다. 우리는 계획한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바이크를 시간 단위로 렌트하고 싶었지만, 렌트샵에서는 하루 단위로만 렌트가 가능하다고 하여 결국 1일 렌트를 하기로 결정했다. 시간적으로 보면 비효율적이긴 하지만 태국의 물가는 그것을 능가할 정도로 저렴했기 때문에 시큰 손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달리는 썽태우 안에서 보이던 파타야 해변의 풍경.

카메라 셔터가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의 순간을 포착하진 못했지만 아쉽지 않다.

왜냐하면 나의 기억 속에는 파타야의 모든 순간이 선명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한국의 블로그에서는 좌측에 보이는 피자헛 앞의 바이크 렌트샵이 믿을만 하다고 추천해 주었다.

뭐라고 딱 설명하긴 어렵지만 수수한 이 거리의 풍경이 어딘가 태국스럽다고 생각되었다.


바이크 렌트 계약서를 작성하시는 아주머니.

제 아무리 신뢰도 높은 렌트샵이라 한들 나는 바이크를 반납하기 직전까지 아주머니를 경계했다.

(나는 외국인 바가지 가격의 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아 아주머니께서 선의로 우리의 워너원투어 깃발을

바이크에 달아 주겠다고 하실 때도 "정원! 나중에 기스 생겼다고 할 수 있어." 라고 한국어로 말하며 거절했다.)


 한국에서 운전을 자주 해 본 적이 없던 나는 정원이를 따라 파타야의 주변을 천천히 돌며 운전 감각을 몸에 익혔다. 서서히 운전 감각이 익숙해질 즈음 나는 정원이에게 OK 사인을 건넸다. 그것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질주를 시작하자는 사인이었다. 정원이를 선두로 하여 나는 파타야의 태양과 바닷바람을 가르며 질주했다. 내 앞에서 달리던 정원이는 커브를 할 때마다 손으로 방향을 지시했고, 나는 그 신호에 순응하며 바이크에 몸을 맡겼다.


바이크를 타고 워킹 스트리트를 지나오니 미국 LA의 '할리우드'와 같은 파타야 간판이 보였다.


파타야 시티 간판을 배경으로 찍은 셀카.

땀에 젖어 갈라진 나의 앞머리를 보니 당시의 푹푹 찌던 찜통 더위가 절로 상기된다. 

 

S#09. 더 스카이 갤러리

 바이크를 타고 파타야를 누비다 보니 서서히 배가 허기지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첫 끼니도 편의점 식품으로 조촐하게 먹었던 지라 파타야에서, 더 크게는 태국에서의 본격적인 첫 식사를 화려하게 시작하고 싶었다. 정원이는 파타야 해변의 뷰를 전망하며 식사를 할 수 있는 더 스카이 갤러리로 나를 안내했다. 우리는 메인 요리로 똠얌꿍과 팟타이를, 음료로는 정원이가 태국에 오면 너무나 마셔 보고 싶었다는 땡모반(수박 슬러시)을 두 잔 주문했다. 테이블과 의자가 하얀 모래알 위에 놓여져 있어 조금씩 흔들리고, 샌들 속으로 모래알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촉감이 더 좋았다. 탁 트인 바다 전망 위로 부딪치는 음료 잔과 간지럽게 불던 선선한 바닷바람,  정말 맛있었던 음식까지. 무엇보다 이 순간을 함께하고 있는 소중한 친구 정원. 바랄 게 뭐 더 있냐는 산이와 레이나의 한 여름밤의 꿀의 가사는 지금을 두고 떠올린 가사가 아닐까 할 정도로 행복했다.


더 스카이 갤러리. 일부 관광객들은 이 글자를 배경으로 단체사진도 찍곤 했다.


바닷바람을 만끽하며 먹었던 태국에서의 첫 식사.

적응되지 않았던 똠얌꿍은 몇 번이나 고개를 갸우뚱하며 먹었지만,

팟타이는 정말 맛있어서 고춧가루와 크런치 땅콩을 함께 곁들여 흡입하듯 먹었다.

 

S#10. 빅 부다 사원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바이크를 타고 파타야의 뷰를 볼 수 있는 빅 부다 사원으로 향했다. 빅 부다 사원은 파타야의 워킹 스트리트 뒤편에 있는 카오 프라땀낙 산의 정상에 위치하고 있어서 해변가 전망을 볼 수 있던 더 스카이 갤러리와는 달리, 파타야의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빅 부다 사원은 입구서부터 사원으로 안내하는 길고 넓은 계단이 압도하는 힘이 강렬하며 그 계단의 끝에 자리잡고 있는 빅 부다는 절로 사람들을 경건하게 만들 정도로 포스가 근엄하다. 작은 불상 앞에는 불상에게 물을 끼얹을 수 있게끔 작은 바가지가 구비되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는 물을 뿌려 주며 복을 기원한다는 태국의 전통에서 구비되어 있던 바가지였다. 우리는 바가지에 물을 담아 내리쬐는 태양빛 아래 앉아있던 작은 불상에게 물을 끼얹어 주었다. 더운 날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의 미소 담긴 물세례를 받는 불상이 잠시나마 부럽다는 미련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태국은 그 정도로 무덥고 습했다.)


빅 부다 사원의 입구.

사원으로 안내하는 길고 넓은 계단에서부터 근엄한 포스가 드러난다.


정원이는 오른손에 쥐고 있는 바가지로

작은 불상에게 물을 끼얹어 주었고 더위가 물러가기를(?) 기원해 주었다.


빅 부다 사원의 끝자락 테라스에서 마주한 파타야의 전경.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건축물과 바다와의 조화.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의 움직임은 분주할 수밖에 없었다.


S#11. 적발

 사원에서 나온 우리는 바이크를 타고 렌트샵으로 돌아가 바이크를 반납하고 호텔로 가서 체크인을 하기로 했다. 20분 가량을 달려 바이크 렌트샵의 주변에 도착했을 즈음, 도로 교통을 정찰하던 한 경찰관이 호루라기를 부르며 우리를 불렀다. 나는 국제면허증과 국내면허증, 여권까지 모두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경찰관의 호출이 너무 무서웠다. 더군다나 나는 영어로 한 마디도 할 수 없는 처지. 나는 정원이에게 의지하며 전개되는 모든 상황을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정원이는 경찰관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더니 나에게 영완아, 국제면허증 보여 달래.” 라고 통역해 주었다. 나는 그 말에 이등병 때의 기상보다 빠른 속도로 국제면허증을 가방에서 꺼내 보였다. 나는 “나 라이센스 있어! 아임 프롬 사우스 오브 코리아!” 라고 되도 않는 영어로 소리쳤지만 경찰관은 매정했다. 나와 정원이의 국제면허증을 압수하더니 면허번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원이에게 무언의 종이를 건네더니 우리에게 인근 경찰서로 가서 벌금을 납부하고 이 곳으로 돌아오기를 지시했다. 경찰관은 벌금 납부 후, 이 곳으로 다시 돌아오면 국제면허증을 돌려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나는 낯선 외국 땅에서 경찰서를 찾아가야 하는 상황과 벌금을 납부하고 돌아왔을 때, 경찰관이 없으면 어떡하나 싶은 불안감에 계속해서 정원이를 닦달하고 쪼아댔다.

 

 그러나 정원이는 군 생활때도 그랬듯, 닦달하는 나와 달리 너무나 침착했다. 경찰관과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 가더니 경찰관에게 가장 가까운 경찰서 위치를 구글 맵에 표시해달라고 요청했다. 파타야에서의 일정을 담당했던 정원이는 내게 사전에 확실하게 조사하지 못해 미안하다면서도 벌금 이상의 조치는 없다며 아기 달래듯 나를 다독였다. 그럼에도 나는 의도치 않은 실수로 외국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치르게 되는 한국인 실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이 계속 떠올라 불안감이 없어지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 하나의 돌발 상황이 일어났다. 구글 맵에서 안내하던 경찰서로 향하던 길이 공사 중이라는 이유로 갈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는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정원이는 침착을 유지했다. 나보다 한 블록을 앞서 질주하더니 경찰서로 갈 수 있는 길을 머릿속으로 계산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경찰서에 도착한 우리는 번호표를 뽑고 차례를 기다렸다.


 정원이는 미안함의 뜻으로 나의 벌금까지 대신하여 납부해 주었다. 벌금을 납부하고 여권을 돌려받기 위해 경찰서를 나오려고 하는데 그 순간 우리를 적발했던 경찰관이 경찰서로 들어오고 있었다. 추측이건대, 경찰관은 도로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경찰서로 복귀하는 것 같았다. 경찰관은 나를 보고 미스터 초이?(Mr. Choi)?” 라고 부르더니 벌금 납부서에 도장을 찍고 오늘의 날짜에 내 사인을 받아내고 나서야 국제면허증을 돌려주었다. 그렇게 우리의 등골 오싹한 상황은 끝맺음을 지었다.

 

 경찰관이 경찰서로 돌아왔기 때문에 우리는 적발된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고를 덜 수 있었지만 만약 우리가 그보다 더 빨리 경찰서에 도착해서 벌금을 납부하고 적발된 곳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면 국제면허증은 벌금을 납부하고도 돌려받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며, 그것은 우리의 골머리를 더욱 썩혔을 것이다.

 

 상황이 종료되고 나서야 정원이는 누가 태국까지 와서 경찰서에 와 보겠냐.”며 얼굴에 미소를 씩 띠었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을 마무리하는 데 큰 공을 써 준 정원이가 웃으며 말을 하니깐 고마우면서도 그제서야 안도가 되어 콧방귀를 뀌며 그러네. 고맙다. 정원아!” 라고 익살맞은 표정으로 회답했다. 당시에는 너무나 무서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유쾌하고 못 말리는 두 남자의 에피소드로 기억에 남는다.


벌금을 납부하고 경찰서에서 나와 면허증을 돌려받은 기념으로 찍은 찡그린 표정의 셀카.

 

* 적발 사유 : (태국 기준) 국제면허증이 있으면 승용차는 운전이 가능하지만 바이크 등의 이륜 차량을 운전하려면 국제면허증에 태국 내의 관공서로부터 별도의 스탬프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이 1종 면허에 2종 면허의 자격까지 포함하여 부여하는 것처럼 국제면허증만 있으면 모든 차량의 운전이 가능한 줄 알았던 것이다. 사전 조사가 미숙했던 과실 탓에 우리는 이 점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경찰관이 우리를 적발했을 때에도 적발된 상황을 의아해 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제면허증을 지참하고 있었기 때문에 벌금 부과 조치에서 그친 것. 혹시라도 태국에 가서 바이크를 운전할 계획이 있다면 반드시 태국 내 관공서로부터 이륜 차량의 운전을 승인하는 스탬프를 받고 나서 운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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