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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이 밝았다. 후쿠오카의 아침은 3년 전과 똑같이 평화로웠다. 잠에서 깬 나는 침대에서 저벅저벅 내려와 1층의 라운지에서 조식을 먹었다. 조식 또한 3년 전과 같았다. 3년 전, 나는 유후인으로 떠나기 전,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되는 토스트 조식을 먹은 적이 있었다. 시간의 오버랩을 실감하면서 3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함께 같은 공간에 있는 듯한 기분탓을 느끼며 먹었던 조식 토스트. 괜히 3년 전의 내가 나의 옆자리에 있는 것 같이 느껴졌고 그렇게 느껴진 3년 전의 나는 세 살 어린 동생같았다. 조식을 먹으며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후쿠오카의 일상을 눈에 담았다. 노란 모자 아이들은 웃고 떠들며 친구들과 함께 학교로 향하고 있었고, 샐러리맨들은 검은 가방과 통화 중인 휴대전화를 각각 손에 쥐고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조식을 마친 나는 라운지에 놓여 있던 카드에 방명록을 작성했다. 다 적은 방명록은 라운지 벽의 한 켠에 놓여 있던 게시판 중앙에 붙이며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에서의 1박을 인증했다.


 

▶ 3년 전 게스트하우스 라운지의 조식 배식대

 창밖을 바라보며 먹었던 토스트와 홍차. 이 날의 홍차를 계기로 나는 모든 여행의 아침 때마다 홍차를 마시게 되었다.


 

 

▶ 3년이 지난 지금, 라운지의 조식 배식대에는 건포도가 박힌 모닝빵과 블루베리 잼이 추가되었다.

 모든 여행의 아침에서 그랬듯 홍차는 빠지지 않았고 여유롭게 토스트를 먹으며 창밖으로 보이는 후쿠오카의 아침을 고이 눈에 담았다.

 라운지의 벽 한 면에는 수많은 여행객들이 각자의 필체로 작성한 개성있는 방명록 카드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 여행객들이 남긴 수많은 발자취에 나의 흔적도 살포시 남겨놓았다.


 조식을 마친 나는 체크아웃을 위해 방으로 올라와 침대와 짐을 정리했다. 빠르게 정리를 마친 나는 프론트 데스크로 내려와 공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짐 보관을 부탁하고 자전거를 렌탈했다.(개인적인 부탁이 아닌 원래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되는 짐 보관 서비스다.) 사실은 교통 패스권을 구입했던 여행사 여행박사의 라운지가 있는 캐널시티로 가서 무료 자전거를 렌탈할 예정이었지만 짧은 여행 일정과 게스트하우스에서도 자전거 렌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캐널시티로 이동하는 시간을 없애고 게스트하우스의 자전거를 렌탈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자전거를 주행하는 라이딩 영상을 담기 위해 고릴라 삼각대에 미러리스 카메라를 결합하여 자전거에 고정했다. 목적지는 자전거로 20분 거리에 위치한 오호리 공원이다. 자전거를 렌탈해 준 직원 사쿠라는 오호리 공원으로 향하는 거리가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어 보는 재미가 더해질 거라 말했다.


 

▶ 짐 정리를 마치고 도미토리룸을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쓰레기통에는 내가 버린 쓰레기들로 꽉차 있다.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에서 빌린 200엔 자전거

 

 자전거를 타고 오랜만에 일본 거리를 누볐다. 귀에 담기는 까마귀 우는 소리와 횡단보도를 건널 때 들리는 차임 벨 소리와 안내 음성. 사소하게 다른 한국과의 차이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후쿠오카의 풍경을 오감으로 느끼며 목적지인 오호리 공원에 가까워져 갈 즈음, 주변 건물과 거리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쿠라의 말대로 오호리 공원으로 향하는 길거리는 일반적인 일본의 거리와 많이 달랐다. 거리는 묘하게 서구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정갈한 일본 특유의 분위기와 감성은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흩날리는 낙엽까지. 날씨는 화창했던 전날과 달리 다소 쌀쌀했지만 이 거리의 매력에 심취하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나는 오호리 공원에 도착해 있었다.


  

▶ 일본에서의 자전거 라이딩 영상을 담기 위해 미러리스 카메라가 결합된 고릴라 삼각대를 단단히 핸들에 고정시켰다.

 오호리 공원에 가까워지자 서서히 길거리의 풍경은 서구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오호리 공원의 자전거 도로를 달리며 순간을 즐기고 있는 도중, 나는 유모차를 끌고 있는 한 남성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그는 혼신을 다해 몇 번이나 연속 촬영 기능으로 나를 찍어 주더니 이 중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르라고 했다. 가볍게 한 두 장의 사진 정도만 찍고 싶었는데 너무나 열심히 찍어 주었던 그의 정성에 괜히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나는 사진 촬영을 계기로 그에게 불편하지 않다면 공원에서 아이와 함께 셋이 시간을 보내도 괜찮은지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30분 뒤, 공원의 뒷문에서 아내와 만나기로 했다며 흔쾌히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여덟 번째 처음’ _ 키와미야 함바그 먹기


 오호리 공원에서 하카타로 돌아온 나는 자전거를 반납하고 점심 식사를 하러 키와미야 함바그로 향했다. 사실 키와미야 함바그는 이제 한국에서도 흔히 먹을 수 있는 후쿠오카의 명물이 되었다. 그러나 3년 전 후쿠오카에 왔을 때, 몇 번이나 키와미야 함바그 앞을 지나면서도 길게 서있는 줄에 놀라 끝내 맛보지도 못하고 냄새만 맡은 채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 큰 한이 된 나는 이번 여행을 빌미로 꼭 후쿠오카 본토에서의 키와미야 함바그를 맛보고 한국에 돌아오고 싶었다.

 

 나는 오픈 시간인 11시에 맞춰 줄을 서기 위해 서둘러 자전거를 반납하고 키와미야 함바그에 왔지만 의도치 않게 시간은 1시간이나 지체되어 모두가 점심을 먹고자 하는 12시에 키와미야 함바그에 도착하고 말았다. 그래도 나는 가게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 순간 펼쳐진 한국인 관광객들과의 눈치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덕분에 같은 횡단보도를 건넌 한국인들의 사이에서는 선두로 대기 줄에 합류하게 되었다. 직원은 대기 중인 손님들에게 미리 메뉴판을 보여주며 메뉴를 고르게 했다. 고민도 없이 나는 라지 사이즈의 햄버그 스테이크를 주문했고 세트를 추가해서 사이드로 나오는 밥과 샐러드, 된장국을 무한리필로 먹었다. , 키와미야 함바그에 어울린다는 알코올 음료 키와미야 소다까지 같이 주문해서 제대로 일본에서의 여덟 번째 처음을 실현했다.


 

 

▶ 후쿠오카의 소문난 맛집 키와미야 함바그

 함바그를 먹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나는 15분 정도를 기다리고 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먹음직스러운 키와미야 함바그의 라지 세트. 함바그를 구울 수 있는 돌판은 열기가 떨어지면 몇 번이나 새로 달궈진 돌판으로 교체를 해 주신다.

▶ 빈 그릇 인증샷. 아주 깔끔하게 키와미야 함바그 먹방을 끝마쳤다.

 

 이 순간, 나는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켜서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키와미야 함바그 먹방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협소한 가게 내부와 분주한 직원들의 움직임 때문에 라이브 방송은 5분 만에 종료를 하게 되었다. 그냥 나는 마음 편하게 카메라를 끄고 식사에 집중하기로 했다. 키와미야 함바그의 맛은 나의 엄지를 절로 치켜들게끔 했고 몇 번이나 감탄사를 내뱉으며 먹게 할 정도로 맛있었고 맛있었다. 뜨겁게 달궈진 돌판 위에서 익혀지고 있는 함바그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구워지는 소리 또한 일품이었다. 한 입의 함바그에 촉촉이 스며든 육즙은 말할 것도 없고, 고슬고슬한 쌀밥과 한 젓가락의 샐러드는 키와미야 함바그와 최고의 궁합을 자랑했다.

 

일곱 번째 처음’ _ 셀프 스냅촬영하기 <Day>


 키와미야 함바그로 행복한 점심 식사를 마친 나는 공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낮을 배경으로 하는 셀프 스냅촬영을 진행하기로 했다. 나는 관광객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후쿠오카의 리얼한 로케이션을 찾아내기 위해 가 보지 않은 후쿠오카의 지하철역에 무작위로 내리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대담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건 나의 일본어 실력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믿는 도끼에 제대로 발등을 찍히고 말았다. 지하철 노선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탓에 내가 소지하고 있는 교통 패스권으로는 갈 수 없는 지하철역까지 오고 말아 버렸다. 별도로 금액을 지불하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문제는 하카타로 돌아갈 시간을 맞추는 것이 어려워지고 말았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늘은 점점 더 까맣게 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이내 가는 빗방울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당황하지 않을 거라 자신했지만 당황을 하고 말았다. 아니, 당황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임시방편으로 편의점에 들어가 비를 피하기로 했다. 그 와중에도 계란 샌드위치와 이로하스는 포기할 수 없었다.


 

 

▶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탑승한 지하철. 종점에 가까워져서인지 열차 안에는 승객들이 거의 없었다.

 빈 열차 안에서 맞은편 의자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몇 번이나 찍었던 셀프 스냅

 교통 패스권을 소지하고 있었음에도 패스권이 허용하지 않는 범위의 전철역까지 와 버려서 추가로 표를 구매해야 했다.

▶ 비를 피하기 위해 들어갔던 편의점에서 구매한 계란 샌드위치와 복숭아 맛 이로하스

 

 생각보다 비는 금세 그쳤다. 그러나 나에게 우산은 없고 지하철을 잘못 타며 허비해 버린 시간과 언제 다시 비가 내릴지 모를 불안함에 셀프 스냅촬영은 전날 밤의 촬영으로 만족하고 하카타로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온 나는 공항으로 향하기까지 애매하게 남아 있던 1시간 동안 사쿠라와 담소를 나누었다. 2주 후의 한국 여행을 앞두고 있는 사쿠라는 내게 서울 여행 추천지를 물어보았다. 나는 서울에서만 20년을 넘게 살아왔지만 외국인이 만족할 만한 서울의 명소를 추천해 주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사쿠라의 질문은 단순했지만 어딘가 전공 과제와도 같이 중요한 핵심을 내재하고 있었다. 끝내 나는 과거에 친구들과 한복을 입고 경복궁에서 스냅촬영을 했던 기억을 떠올려 경복궁을 소개해 주었다. 그러자 사쿠라는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더니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전통미를 담고 있는 북촌에 가 보고 싶었다며 북촌에 갈 때 경복궁을 같이 들르겠다고 말했다. 사쿠라는 한강 공원에서 열리는 밤도깨비 야시장에도 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올 해의 밤도깨비 야시장은 기간이 종료되어 나는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고 전했다.


내가 한국에 돌아온 이후 한국으로 여행을 온 사쿠라는 내가 알려준 경복궁에 다녀 왔다며 연락을 주었다.

그녀는 경복궁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감동이었다며 나의 추천 스팟을 만족해 주었다.


 한국 여행에 대한 대화가 끝나자 이제는 내가 사쿠라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내가 진심으로 궁금했던 것은 바로 K-POP 인기의 과장되지 않는 리얼한 실태였다. 일본에 진출한 수많은 한국의 아이돌들이 과연 정말 일본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일까. 한국 방송에서 보도되는 뉴스 헤드라인과 기사 타이틀을 보면 모든 가수들에게 최초’, ‘매진을 비롯한 일본 열도 열풍’, ‘오리콘 차트 1’, ‘성공적인 데뷔’, ‘최대 규모의 공연와 같은 수식어가 붙곤 한다. 이것은 과장일까, 진실일까. 나는 사쿠라에게 솔직한 대답을 부탁했다.



 영완 

 “8년 전, 일본에 카라와 소녀시대가 데뷔를 하며 일본 내에서 국민적인 인지도를 얻으며 성공했다고 한다. 당시 나는 중학생이었고 일본어가 능숙하지 않아서 일본 현지에서의 실제 인기를 전해 들을 수 없었다. 또, 카라와 소녀시대가 일본에서 성공한 이후 수많은 한국의 아이돌 그룹이 일본 데뷔를 시도했다. 한국에서는 모든 아이돌 그룹이 일본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고 보도한다. 나는 한국인이지만 그런 보도에 대해 솔직히 의문이 든다. 사쿠라는 많은 한국 아이돌 그룹이 일본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하는가?


 사쿠라 

 “카라와 소녀시대는 진짜였다. 카라가 제일 먼저 일본에 데뷔했는데 그 때의 붐은 정말 최고였다. 그 이후 소녀시대가 데뷔를 했는데 카라의 영향이 소녀시대에도 끼쳐 두 팀 다 절정의 인기를 보였다. 나는 카라와 소녀시대의 일본 곡을 알고 있다. 최근에는 트와이스가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데 나는 트와이스의 곡을 들어본 적이 없다. 트와이스가 아직 카라와 소녀시대만큼의 성공을 거둔 건 아닌 것 같고 점점 인기를 얻어가며 성장하고 있는 중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K-POP에 열광하는 일부 마니아들은 트와이스를 포함한 수많은 아이돌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영완

 “개인적으로 일본어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카라의 전 멤버 강지영의 현지 인기와 일본어 실력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강지영은 나의 롤모델이다.


 사쿠라

 “지영의 일본 활동이 활발하지는 않다. 그러나 카라가 워낙 대단했기 때문에 지영의 신곡이 발매되거나 드라마 출연이 결정되면 뉴스에 헤드라인으로 꼭 보도가 된다. 지영의 일본어는 일본인이 들어도 완벽하다. 마치 김영아(일본에서 활동 중인 한국 모델, 과거 MBC ‘논스톱출연)와 같다. 카라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지영을 일본인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사쿠라와의 수다가 길게 이어지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공항으로 향할 시간과 가까워져 있었다. 나는 미셸과 사쿠라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짧았던 후쿠오카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공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항으로 향하는 내내 나는 비행기가 지연되기를 바랐다. 나는 단 한 시간만이라도 일본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을 늘리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순간들을 눈과 머리에 담고 싶었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다. 비행기는 예정보다 45분이나 지연되었다. 수하물 수속과 일본 출국 수속까지 마친 나는 탑승동으로 들어와 일본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마음껏 즐겼다. 그러던 중, 또 한 번의 지연 공지가 내려졌다. 비행기는 45분 지연에서 30분이 더 지연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탑승 게이트까지 변경되어 인천 행 비행기에 탑승할 승객들은 서둘러 다른 게이트로 이동해 달라고 안내방송이 몇 번이나 송출되었다. 덕분에 나는 공항을 더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저녁 645분에 탑승을 시작할 인천 행 비행기는 8시가 되서야 탑승을 시작했고 탑승을 하고 나서도 관제탑으로부터 이륙 대기를 지시받아 활주로에서 15분간 다른 비행기의 이륙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렇게 이륙의 지체가 좋았던 적은 없었다. 저녁 820, 비행기는 드디어 하늘길에 올랐다.


 

 

▶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확인된 6시 45분 인천 행 비행기의 지연 공지. 속으로 대박을 몇 번이나 외쳤다.

 동료인 미영 선생님이 출국 전 날, 생일선물이라며 자신의 신용카드로 만 원대의 식사를 한 끼를 하고 오라고 해 주셨다.

 게이트가 열릴 때까지 명란이 들어간 삼각김밥과 맥주를 마시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 탑승이 시작된 인천 행 비행기. 밤의 활주로에 있는 비행기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워 가히 판타지스럽기까지 했다.

 

 1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비행기는 인천에 무사히 착륙했다. 비행기가 인천에 도착하자마자 창가에는 무섭게 빗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나중에 친구들을 통해 듣기를, 내가 일본에 있는 이틀 동안 서울에는 계속 강한 비가 내렸다고 한다.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온 나는 리무진 공항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캐리어를 풀고 짐을 정리하고 나니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출근까지는 앞으로 7시간 가량 남아있는 상태.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짐 정리는 나중으로 미루고 서둘러 잠자리를 청했다. 다음 날, 짧은 만큼 알찼던 여행 일정 탓에 다소 피곤한 몸으로 업무에 임하게 되었지만 그만큼 강렬했던 일본에서의 기억들은 피로보다 더 큰 활력이 되어 주어 큰 탈 없이 업무를 마칠 수 있게 해 주었다.


 

▶ 인천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창가에는 빗방울이 거세게 맺혔다.

 여행의 일정이 짧아 선물을 줄 대상들을 가족과 동료들로만 한정했는데 캐리어를 열고 보니 선물들은 나의 짐 못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이번 여행은 지금껏 떠났던 여행 중에서 가장 짧은 일정이었고 가장 적은 비용으로 다녀 온 여행이었다. 그러나 오로지 나 자신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섬세한 테마들로 여행을 가득 채운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본에서 맞은 스물 두 번째 생일, 두 번째 후쿠오카, 그리고 여덟 개의 처음’. 처음이 사람에게 가져다 주는 순수함과 설렘을 잊지 않고 싶어졌다. 사람을 순수하게 하면서도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 그것은 유일무이 여행 뿐이다. 나는 이번 생일 여행을 통해 얻은 여행의 순수함을 오랫동안 간직해서 더 많은 나라에 발자국을 남길 것이다. 다음 여행이 또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머지않아 떠날 것은 확실하다. 다음에는 어느 나라에, 어느 도시에 다녀올까.


 Photo by choi0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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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미하노유 온천 옆에는 하카타 포트타워 전망대가 있었다. 3년 전 후쿠오카에 왔을 때, 모모치 해변을 구경하며 들렀던 후쿠오카 타워에서 후쿠오카의 야경을 눈에 담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 집중하고 있는 이번 여행에선 일부러 도시를 내려다보는 일정을 넣지 않았다. 그러나 떡하니 온천 옆에 있던 하카타 포트타워를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으며 막상 도시 전경을 내려다보지 않고 한국에 돌아가자니 못내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여행을 하면서 타워에 오른다는 것은 흔하지만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흔해서 필요하다. 하카타 포트타워는 후쿠오카 타워만큼 웅장하고 거대한 규모의 타워는 아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도시를 내려다보기엔 충분했고, 입장료도 무료인 데다가 사람들도 많이 오가지 않아서 편하게 도시를 조망할 수 있었다.


 

▶ 하카타 포트타워에서 내려다 본 맑은 하늘 아래 후쿠오카

▶▶ 포트타워에서 내려오자 보였던 해질녘 노을 풍경


 하카타 포트타워에서 홀로 후쿠오카를 찾은 한국인 관광객을 만났다. 그는 내게 맞은편에 있는 완간 시장에 들러 초밥을 먹을 것을 권유했다. 완간 시장에서의 초밥은 부두 앞에 있는 시장이라 해산물의 질도 싱싱하고 가격 또한 저렴하여 웬만한 맛집에서 먹는 것보다 만족스러울 것이라 단언했다. 원래 나는 타워에서 내려오자마자 저녁에 열릴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생일파티를 위해 서둘러 돈키호테로 향해 갖가지 맥주들을 살 예정이었는데 그의 말 한 마디에 계획에도 없던 완간 시장에 들르게 되었다. 완간 시장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보였던 초밥의 행렬은 나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눈에 보이는 대로 모든 초밥을 골라 담아 맛을 보고 싶었지만 이번 여행의 테마는 처음이다. 그동안 많은 순간을 함께 했던 초밥에 이번 여행을 과하게 소비할 수는 없었다. 고민 끝에 나는 제일 맛있어 보이는 초밥 여섯 개와 한정 세일로 판매 중이었던 참치뱃살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계산했다. 계산을 마친 나는 바로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초밥 먹방을 시작했다. 말은 필요치 않았다. 타워가 여행에 흔하지만 필요했듯이, 초밥 또한 일본 여행에선 흔하지만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참치 뱃살의 고소함과 부드러운 식감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초밥 위 사시미의 두께와 쫄깃한 식감도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맛집에서 먹어본 초밥의 퀄리티와는 확연히 달랐다.


 

▶ 완간시장으로 들어오자마자 보였던 골라담는 97엔 초밥 뷔페

▶▶ 장어의 길이와 사시미의 두께, 그리고 참치뱃살의 고소함과 식감까지. 작지만 알찼던 내가 고른 초밥 세트

 

 온천과 초밥 미식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나는 게스트하우스의 주방에서 어묵 파티를 준비 중이던 미셸과 마주했다. 나는 미셸에게 돈키호테 면세점에 들러 이따가 파티 때 마실 맥주를 사서 돌아오겠다고 했다. 미셸은 알겠다며 8시부터 파티가 시작될 예정이니 늦지 않게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달라고 말했다. 지하철을 타고 돈키호테 면세점에 도착한 나는 맥주를 포함한 가족들과 동료들에게 줄 선물을 쇼핑했다.

 

 올 해 쉰을 넘긴 고지식한 나의 아빠는 처음으로 나에게 아들, 일본에서 파는 무슨 카레가 있대. 카톡으로 사진 보내줄 테니깐 그거 있으면 몇 개 사 와.”라고 선물을 요청하셨다. 3년 전만해도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일본을 가!” 하며 청춘들의 배낭여행을 곱지 못한 시선으로 보던 나의 아빠가 이제는 좋을 때다. 잘 놀다 와.” 라며 선물을 사 달라고 카톡으로 사진까지 다 보내신다. 그리고 나와 너무 닮은 나의 엄마는 언제나 그랬듯이 일본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오라며 동전 파스를 사 달라고 하셨다. 치과 동료들에게 줄 선물로는 할로윈 시즌을 기념하며 출시된 카라멜 푸딩 맛의 킷캣 초콜릿으로 정했다. 짧게 떠난 여행이라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사지 않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쇼핑카트에는 기념품이 한아름 담겨 있었다.


 

▶ 돈키호테에서 가족과 동료, 그리고 나에게 줄 선물들을 쇼핑하고 있다.

▶▶ 양 손에 쇼핑거리를 한가득 손에 쥐고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

 

다섯 번째 처음’ _ 일본 빵집에서 생일 케이크 사기


 그동안의 생일은 항상 평범한 일상 속에서 챙기는 기념일이었기 때문에 케이크를 고르는 장소는 항상 서울이었고, 서울 안에서도 흔하게 눈에 보이는 프랜차이즈 빵집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일본의 빵집에서 나의 생일 케이크를 산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묘한 기분을 느끼게끔 했다. 돈키호테에서 쇼핑을 마친 나는 생일 케이크를 사기 위해 하카타 역 지하상가로 향했다.


 나는 그 곳에서 다양한 빵집의 쇼케이스를 보며 케이크를 고를 수 있었다. 어떤 케이크를 살까 고민하는 도중 한 직원이 시식 홍보 중인 케이크가 있다며 치즈 케이크 한 조각을 내게 건넸다. 치즈 케이크는 맛있었지만 개인적으로 크림이 들어간 케이크를 좋아해서 다른 케이크를 구매하고 싶었다. 그 때, 홍보 중인 치즈 케이크의 아래 쇼케이스에 딸기 크림이 들어간 치즈 케이크가 눈에 띄었다. 나는 직원에게 지금 먹은 치즈 케이크가 아닌 딸기 크림이 들어간 치즈 케이크를 구매하겠다고 말했다.


 직원은 밝은 미소로 딸기 크림이 들어간 치즈 케이크를 쇼케이스에서 꺼냈다. 그러더니 내게 펜과 종이를 건네며 데코레이션 초콜릿에 적을 문구 내용을 작성해 달라고 했다. 그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한국 빵집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순간을 경험했다. 일본에서는 케이크를 구매할 때, 추가의 비용 발생 없이 데코레이션 초콜릿 위에 고객이 원하는 문구를 즉석에서 작성해 준다고 한다. 그것은 곧 세상에 단 하나뿐인 케이크가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어떤 문구를 부탁할까 고민했지만 끝내 독특한 문구를 떠올리지 못했다. 결국엔 평범한 문구로 부탁했지만 나는 빵집의 세심한 정성에 감동받아 기분 좋은 마음으로 케이크를 손에 쥐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 데코레이션 초콜릿에 문구를 작성하고 있는 직원

▶▶ 맛있는 치즈케이크를 판매하고 있는 하카타 역 지하상가의 아카이후센

 

여섯 번째 처음’ _ 게스트하우스에서 파티하기

 

 2018117일 저녁 8.

 

 드디어 2주 전부터 계획된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어묵 파티가 시작되었다. 미셸은 버너 위에 냄비를 올리고 본격적으로 어묵 전골을 끓이기 시작했다. 이 날, 어느 장기 투숙객은 유부 주머니를 직접 만드는 음식 솜씨를 보이기도 했다. 전골은 어묵을 포함한 무와 곤약, 두부, 유부 등으로 알차게 채워져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의 투숙객은 서서히 주방으로 모여들었고, 모인 이들은 하나같이 어묵 전골이 끓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 순간이 마치 코타츠에 둘러 앉아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짱구네 가족과 무척 닮아 보였다.


짱구는 못말려 NEW 에피소드 <겨울엔 뜨끈한 전골이 최고예요> 편 中


오늘의 파티를 위해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준비한 어묵 전골 재료들


 투숙객들은 미셸과 게스트하우스 직원들이 함께 준비한 어묵 전골을 먹으며 소소하게 담소를 나누었다. 전골이 지겨워질 즈음에는 토스트기에 모찌를 구워 먹으면서 파티를 이어갔다. 토스트기 안에서 부풀어 오른 모찌를 먹는 것 또한 일본에서 내가 겪은 또 하나의 처음이었다. 어묵 파티는 내가 하카타 역 지하상가에서 사 온 생일 케이크를 먹으며 마무리가 되었다. 지극히 나의 취향으로 고른 케이크였기 때문에 모두의 입맛에 맞을까 고민했지만 케이크를 맛본 모든 이들은 정말 맛있었다며 케이크에 대한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 어묵 파티가 열리고 있는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

 게스트하우스의 내부에는 오늘의 파티를 알리는 포스터가 곳곳마다 붙여져 있었다.

▶▶ 감자와 다시마를 넣어 어묵 전골의 육수를 우려내고 있다.

▶▶ 주방에서 끓이던 냄비를 테이블의 버너 위로 옮겼다. 재료가 풍성하게 넣고 나니 제법 전골의 모양이 난다.

 

 

 

▶ 파티가 열리는 주방의 한켠에선 수제로 코팅된 카드들이 오늘의 날짜를 알리고 있었다.

 하카타 역 지하상가의 아카이후센에서 사 온 나의 생일케이크

▶▶ 일본어가 적힌 초콜릿 데코레이션이 주는 감동의 여운은 정말 촉촉했다.

▶▶ 파티를 함께한 모든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금세 바닥을 보인 딸기 케이크


 파티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게스트하우스의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라이토가 나에게 카카오톡 아이디를 물었다. 나는 주저없이 아이디를 알려 주었다. ‘받침이 어려워서 한국어가 어렵다는 라이토는 나와 연락을 하고 지내고 싶다며 훗날 서울에 오게 될 때, 반드시 나에게 연락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태국 여행때도 느꼈지만 여행을 통해 맺는 인연만큼 매력적인 인연의 시작은 없다고 생각한다.

 

 밤 10, 파티를 함께 했던 모든 이들이 뒷정리를 함께하며 주방을 청소했다. 그 때, 라이토의 여자친구가 라운지에서 라이토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궁금해 하는 여자친구에게 라이토는 허물없이 나를 소개해 주었다.

 

 “그는 영완. 나의 한국 친구야.”

 

 외국인을 통해 내가 친구로 소개받는다는 것은 무척 행복했다. 내가 생각하는 친구의 정의는 항상 변함없는 위치에서 나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 존재였다. 그 존재는 나의 가까이에 있어야만 가능할 줄 알았다. 그러나 바다 건너 일본에서 두 시간 가량밖에 함께 하지 않았음에도 내가 누군가의 친구로 불려졌다는 것은 행운과도 같았다. 여행은 그렇다. 모험심을 자극하며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허물없이 누군가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설렘을 느끼게끔 하는 면에선 나를 순수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일곱 번째 처음’ _ 셀프 스냅촬영하기 <Night>


 어둠이 내려앉았다. 이제 2시간가량 남아있는 생일의 시간동안 나는 게스트하우스 주변의 밤길을 걸으며 배부른 몸을 소화시키고, 혼자서 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셀프 스냅 촬영을 진행할 예정이다. 나는 편하게 옷을 갈아입고 고릴라 삼각대와 미러리스 카메라를 챙겼다. 모두가 잠에 든 시간이었기 때문인지 게스트하우스의 주변은 잠에 든 아기처럼 고요했고, 선선하게 부는 강바람도 얌전하게 살갗에 닿아 절로 나를 콧노래를 부르게 했다.


 

▶ 아무도 다니지 않던 횡단보도를 건너며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주차된 차 하나 없는 텅 빈 주차장 담벼락에 앉아 사진을 찍고 있다. 벽이 폭이 생각보다 좁아 처음에 사진을 찍을 때 앉다가 뒤로 넘어질 뻔 했다.

▶▶ 재활용 종이수거함 앞에서 한국으로부터 걸려온 후권이의 전화를 받고 있다.


 카메라에 타이머를 설정하고 혼자서 자연스러운 포즈를 짓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색했지만 생각보다 주변 사람들은 나의 행동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금의 순간을 민망함에 무너져 아무런 사진도 남기지 못하면 훗날이 되었을 때 지금을 너무나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뻔뻔해지기로 했다. 지금부터 촬영할 스냅의 주제는 <홀로인 밤>이다. 나는 홀로를 표현하기 위해서 최대한 한적하고 음침한 공간을 찾아 사람들이 사진 속에 나오지 않게 했고, 어두움과 그리움, 또는 외로움을 드러낼 수 있는 을 표현하기 위해선 최대한 웃지 않는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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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logue

 사회인으로 본격적인 첫 발을 내딛었던 때도 어느덧 8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전역을 하고 사회인이 되면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면서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보단 해야 할 것들이 더 많았고 좋은 기회가 다가와도 결국엔 지금 내게 닥친 현실들을 이유로 언제 올 지도 모르는 나중이란 시기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에게 사회가 암묵적으로 정해준 길(대졸 학력, 필수 스펙 토익, 안정적인 직장생활 등)을 걷지 않고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나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는데 끝내 나도 삭막한 현실 앞에서 무너져가고 있었다.

 

가을 날씨가 점점 겨울 날씨로 변해가는 때가 오면 너 태어났을 때가 떠올라.”

 

 우리 아빠가 매년 가을마다 하는 단골 대사다. 겨울이 다가온다는 것은 내 생일이 다가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한 해의 끝이 다가오는 사인이기도 하다. 나는 직장생활의 쳇바퀴에 들어서면서 소중한 기회들을 너무나 많이 흘려보내며 겨울까지 살아온 것 같았다. 그래서 겨울의 길목에 들어서는 나의 이번 생일에는 꼭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결코 쉽지는 않았다. 당직 근무일과 올 해 나의 생일이 맞물려 또 한 번 소중한 기회를 미루어야 할 상황에 닥쳤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나는 친한 동료에게 당직 근무 변경을 부탁했다. 흔쾌히 나의 당직 근무와 바꾸어 준 동료 덕분에 나는 직장 휴무일을 활용하여 생일을 포함하는 13일의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연차를 활용하여 6일 퇴근 직후부터 8일 밤까지의 시간을 얻은 이번 여행

원래 8일은 나의 당직 근무일이었는데 은지 선생님이 바꾸어 주신 덕분에 여행이 가능했다.

 

 그래도 13일은 짧다. 그러나 쉽게 오는 기회 또한 아니다. 그래서 불만을 갖지 않기로 했다. 짧은 기간 안에 해외를 느끼고 만지며 내가 자유롭게 회화를 할 수 있는 외국. 답은 정해져 있다. 나는 26개월 만에 다섯 번째 일본 여행을 계획했다. 도시는 인천에서 비행 시간이 가장 짧으며 공항으로부터 시내까지도 무려 지하철로 5분밖에 걸리지 않는 후쿠오카로 결정했다. 후쿠오카는 무려 3년 만의 재방문이다.

 

 전역 후 첫 일본, 해외에서 맞는 첫 생일.

 

 이번 여행 또한 처음이 많다. 그래서 이번 여행의 테마는 처음으로 정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해 본 적이 없는 처음을 느끼고 돌아오는 것이 목표였다. 여행을 결심한 직후에는 일본에서의 처음을 찾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지만 생각에 잠기어 그동안의 여행 리뷰를 되새겨보니 금세 처음 리스트를 채울 수 있었다.

 

* 이번 여행에서 실현하고 올 처음리스트 *

공항에서 노숙하기, 게스트하우스에서 파티하기, 명란 음식 먹기, 키와미야 함바그 먹기,

온천 가기혼자서 스냅촬영하기, 택시 탑승하기, 일본 빵집에서 생일 케이크 사기

 

 이번 여행은 소중한 기회실현과 동시에 나에게 주는 생일선물이다. 나는 그 날, 그 곳에서 행복해야 할 나를 위해 철저하게 사전 조사를 거듭했다. 게스트하우스 파티를 실현하기 위해선 3년 전에 묵었던 게스트하우스로 전화를 걸어 파티 예정 일정과 신청 가능 여부를 묻기도 했고, 짧은 여행 기간 안에 일본 온천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선 하카타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온천을 조사하며 해당 온천의 예약, 할인 여부까지 꼼꼼하게 조사했다.


  

▶ 게스트하우스에 숙박 예약을 하면서 별도 요청 사항으로 11월 7일에 파티 가능 여부를 여쭈었다.

▶▶ 예약을 확인하고 파티 요청을 수락해 주신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


게스트하우스에서는 겨울의 길목에 들어서는 지금의 시즌에 걸맞는 음식으로 어묵 파티를 테마로 정해 주셨고,

키아오라 버짓스테이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나의 생일과 파티 일정을 공지해 주었다.


 사전 조사를 할 때, 가장 많은 검색이 필요했던 것은 일본 빵집에서 케이크를 사는 것이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일본 여행을 갔을 때마다 한국의 파리바게트’, ‘뚜레주르’와 같은 빵집을 본 기억이 없었고, 일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 또한 빵집을 여행 일정으론 넣지 않기 때문에 블로그에 아무리 검색을 해도 빵집 위치를 찾기란 꽤나 어려웠다. 물론, 빵집이 어딘가에는 있겠지만 후쿠오카에 도착했을 때, 빵집을 찾느라 시간을 할애하면 너무나 아까울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묵을 게스트하우스로부터 가장 가까운 빵집을 찾기 위해서 구글 위성맵과 현재 후쿠오카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워홀러들의 블로그를 무척이나 파헤쳤다.

 

 116일 저녁 7, 퇴근과 동시에 생일의 전야가 시작되었다.

 

 나는 대학 친구 종원이와 강남역에서 생일 전야 식사를 함께 하며 가볍게 맥주를 즐기기로 했다. 우리의 맥주가 끝나면 나는 공항으로 발걸음을 옮겨 본격적으로 내가 정한 처음’ 들을 이행할 예정이다. 그 첫 번째 처음’은 바로 공항 노숙. 종원이는 잠이 많은 나에게 깊은 잠에 빠져 비행기를 놓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길 바라 주며 1차에서 가볍게 식사를 마치고 신논현역으로 배웅해 주었다.


엄마가 생일선물로 보내주신 족발 기프티콘으로 종원이와 함께 먹은 강남역에서의 족발


 

 그렇게 나는 9호선 급행 열차와 공항철도선 열차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 공항철도선 지하철을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중

▶▶ 여행의 시작을 기념하며 찍은 공항철도선 지하철 탑승 인증샷


 5th JAPAN, AGAIN FUKUOKA

 슬레이트는 내려졌다.  짧지만 강렬할 다섯 번째 일본여행기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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