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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이 밝았다. 후쿠오카의 아침은 3년 전과 똑같이 평화로웠다. 잠에서 깬 나는 침대에서 저벅저벅 내려와 1층의 라운지에서 조식을 먹었다. 조식 또한 3년 전과 같았다. 3년 전, 나는 유후인으로 떠나기 전,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되는 토스트 조식을 먹은 적이 있었다. 시간의 오버랩을 실감하면서 3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함께 같은 공간에 있는 듯한 기분탓을 느끼며 먹었던 조식 토스트. 괜히 3년 전의 내가 나의 옆자리에 있는 것 같이 느껴졌고 그렇게 느껴진 3년 전의 나는 세 살 어린 동생같았다. 조식을 먹으며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후쿠오카의 일상을 눈에 담았다. 노란 모자 아이들은 웃고 떠들며 친구들과 함께 학교로 향하고 있었고, 샐러리맨들은 검은 가방과 통화 중인 휴대전화를 각각 손에 쥐고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조식을 마친 나는 라운지에 놓여 있던 카드에 방명록을 작성했다. 다 적은 방명록은 라운지 벽의 한 켠에 놓여 있던 게시판 중앙에 붙이며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에서의 1박을 인증했다.


 

▶ 3년 전 게스트하우스 라운지의 조식 배식대

 창밖을 바라보며 먹었던 토스트와 홍차. 이 날의 홍차를 계기로 나는 모든 여행의 아침 때마다 홍차를 마시게 되었다.


 

 

▶ 3년이 지난 지금, 라운지의 조식 배식대에는 건포도가 박힌 모닝빵과 블루베리 잼이 추가되었다.

 모든 여행의 아침에서 그랬듯 홍차는 빠지지 않았고 여유롭게 토스트를 먹으며 창밖으로 보이는 후쿠오카의 아침을 고이 눈에 담았다.

 라운지의 벽 한 면에는 수많은 여행객들이 각자의 필체로 작성한 개성있는 방명록 카드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 여행객들이 남긴 수많은 발자취에 나의 흔적도 살포시 남겨놓았다.


 조식을 마친 나는 체크아웃을 위해 방으로 올라와 침대와 짐을 정리했다. 빠르게 정리를 마친 나는 프론트 데스크로 내려와 공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짐 보관을 부탁하고 자전거를 렌탈했다.(개인적인 부탁이 아닌 원래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되는 짐 보관 서비스다.) 사실은 교통 패스권을 구입했던 여행사 여행박사의 라운지가 있는 캐널시티로 가서 무료 자전거를 렌탈할 예정이었지만 짧은 여행 일정과 게스트하우스에서도 자전거 렌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캐널시티로 이동하는 시간을 없애고 게스트하우스의 자전거를 렌탈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자전거를 주행하는 라이딩 영상을 담기 위해 고릴라 삼각대에 미러리스 카메라를 결합하여 자전거에 고정했다. 목적지는 자전거로 20분 거리에 위치한 오호리 공원이다. 자전거를 렌탈해 준 직원 사쿠라는 오호리 공원으로 향하는 거리가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어 보는 재미가 더해질 거라 말했다.


 

▶ 짐 정리를 마치고 도미토리룸을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쓰레기통에는 내가 버린 쓰레기들로 꽉차 있다.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에서 빌린 200엔 자전거

 

 자전거를 타고 오랜만에 일본 거리를 누볐다. 귀에 담기는 까마귀 우는 소리와 횡단보도를 건널 때 들리는 차임 벨 소리와 안내 음성. 사소하게 다른 한국과의 차이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후쿠오카의 풍경을 오감으로 느끼며 목적지인 오호리 공원에 가까워져 갈 즈음, 주변 건물과 거리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쿠라의 말대로 오호리 공원으로 향하는 길거리는 일반적인 일본의 거리와 많이 달랐다. 거리는 묘하게 서구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정갈한 일본 특유의 분위기와 감성은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흩날리는 낙엽까지. 날씨는 화창했던 전날과 달리 다소 쌀쌀했지만 이 거리의 매력에 심취하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나는 오호리 공원에 도착해 있었다.


  

▶ 일본에서의 자전거 라이딩 영상을 담기 위해 미러리스 카메라가 결합된 고릴라 삼각대를 단단히 핸들에 고정시켰다.

 오호리 공원에 가까워지자 서서히 길거리의 풍경은 서구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오호리 공원의 자전거 도로를 달리며 순간을 즐기고 있는 도중, 나는 유모차를 끌고 있는 한 남성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그는 혼신을 다해 몇 번이나 연속 촬영 기능으로 나를 찍어 주더니 이 중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르라고 했다. 가볍게 한 두 장의 사진 정도만 찍고 싶었는데 너무나 열심히 찍어 주었던 그의 정성에 괜히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나는 사진 촬영을 계기로 그에게 불편하지 않다면 공원에서 아이와 함께 셋이 시간을 보내도 괜찮은지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30분 뒤, 공원의 뒷문에서 아내와 만나기로 했다며 흔쾌히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여덟 번째 처음’ _ 키와미야 함바그 먹기


 오호리 공원에서 하카타로 돌아온 나는 자전거를 반납하고 점심 식사를 하러 키와미야 함바그로 향했다. 사실 키와미야 함바그는 이제 한국에서도 흔히 먹을 수 있는 후쿠오카의 명물이 되었다. 그러나 3년 전 후쿠오카에 왔을 때, 몇 번이나 키와미야 함바그 앞을 지나면서도 길게 서있는 줄에 놀라 끝내 맛보지도 못하고 냄새만 맡은 채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 큰 한이 된 나는 이번 여행을 빌미로 꼭 후쿠오카 본토에서의 키와미야 함바그를 맛보고 한국에 돌아오고 싶었다.

 

 나는 오픈 시간인 11시에 맞춰 줄을 서기 위해 서둘러 자전거를 반납하고 키와미야 함바그에 왔지만 의도치 않게 시간은 1시간이나 지체되어 모두가 점심을 먹고자 하는 12시에 키와미야 함바그에 도착하고 말았다. 그래도 나는 가게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 순간 펼쳐진 한국인 관광객들과의 눈치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덕분에 같은 횡단보도를 건넌 한국인들의 사이에서는 선두로 대기 줄에 합류하게 되었다. 직원은 대기 중인 손님들에게 미리 메뉴판을 보여주며 메뉴를 고르게 했다. 고민도 없이 나는 라지 사이즈의 햄버그 스테이크를 주문했고 세트를 추가해서 사이드로 나오는 밥과 샐러드, 된장국을 무한리필로 먹었다. , 키와미야 함바그에 어울린다는 알코올 음료 키와미야 소다까지 같이 주문해서 제대로 일본에서의 여덟 번째 처음을 실현했다.


 

 

▶ 후쿠오카의 소문난 맛집 키와미야 함바그

 함바그를 먹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나는 15분 정도를 기다리고 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먹음직스러운 키와미야 함바그의 라지 세트. 함바그를 구울 수 있는 돌판은 열기가 떨어지면 몇 번이나 새로 달궈진 돌판으로 교체를 해 주신다.

▶ 빈 그릇 인증샷. 아주 깔끔하게 키와미야 함바그 먹방을 끝마쳤다.

 

 이 순간, 나는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켜서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키와미야 함바그 먹방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협소한 가게 내부와 분주한 직원들의 움직임 때문에 라이브 방송은 5분 만에 종료를 하게 되었다. 그냥 나는 마음 편하게 카메라를 끄고 식사에 집중하기로 했다. 키와미야 함바그의 맛은 나의 엄지를 절로 치켜들게끔 했고 몇 번이나 감탄사를 내뱉으며 먹게 할 정도로 맛있었고 맛있었다. 뜨겁게 달궈진 돌판 위에서 익혀지고 있는 함바그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구워지는 소리 또한 일품이었다. 한 입의 함바그에 촉촉이 스며든 육즙은 말할 것도 없고, 고슬고슬한 쌀밥과 한 젓가락의 샐러드는 키와미야 함바그와 최고의 궁합을 자랑했다.

 

일곱 번째 처음’ _ 셀프 스냅촬영하기 <Day>


 키와미야 함바그로 행복한 점심 식사를 마친 나는 공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낮을 배경으로 하는 셀프 스냅촬영을 진행하기로 했다. 나는 관광객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후쿠오카의 리얼한 로케이션을 찾아내기 위해 가 보지 않은 후쿠오카의 지하철역에 무작위로 내리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대담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건 나의 일본어 실력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믿는 도끼에 제대로 발등을 찍히고 말았다. 지하철 노선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탓에 내가 소지하고 있는 교통 패스권으로는 갈 수 없는 지하철역까지 오고 말아 버렸다. 별도로 금액을 지불하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문제는 하카타로 돌아갈 시간을 맞추는 것이 어려워지고 말았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늘은 점점 더 까맣게 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이내 가는 빗방울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당황하지 않을 거라 자신했지만 당황을 하고 말았다. 아니, 당황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임시방편으로 편의점에 들어가 비를 피하기로 했다. 그 와중에도 계란 샌드위치와 이로하스는 포기할 수 없었다.


 

 

▶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탑승한 지하철. 종점에 가까워져서인지 열차 안에는 승객들이 거의 없었다.

 빈 열차 안에서 맞은편 의자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몇 번이나 찍었던 셀프 스냅

 교통 패스권을 소지하고 있었음에도 패스권이 허용하지 않는 범위의 전철역까지 와 버려서 추가로 표를 구매해야 했다.

▶ 비를 피하기 위해 들어갔던 편의점에서 구매한 계란 샌드위치와 복숭아 맛 이로하스

 

 생각보다 비는 금세 그쳤다. 그러나 나에게 우산은 없고 지하철을 잘못 타며 허비해 버린 시간과 언제 다시 비가 내릴지 모를 불안함에 셀프 스냅촬영은 전날 밤의 촬영으로 만족하고 하카타로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온 나는 공항으로 향하기까지 애매하게 남아 있던 1시간 동안 사쿠라와 담소를 나누었다. 2주 후의 한국 여행을 앞두고 있는 사쿠라는 내게 서울 여행 추천지를 물어보았다. 나는 서울에서만 20년을 넘게 살아왔지만 외국인이 만족할 만한 서울의 명소를 추천해 주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사쿠라의 질문은 단순했지만 어딘가 전공 과제와도 같이 중요한 핵심을 내재하고 있었다. 끝내 나는 과거에 친구들과 한복을 입고 경복궁에서 스냅촬영을 했던 기억을 떠올려 경복궁을 소개해 주었다. 그러자 사쿠라는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더니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전통미를 담고 있는 북촌에 가 보고 싶었다며 북촌에 갈 때 경복궁을 같이 들르겠다고 말했다. 사쿠라는 한강 공원에서 열리는 밤도깨비 야시장에도 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올 해의 밤도깨비 야시장은 기간이 종료되어 나는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고 전했다.


내가 한국에 돌아온 이후 한국으로 여행을 온 사쿠라는 내가 알려준 경복궁에 다녀 왔다며 연락을 주었다.

그녀는 경복궁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감동이었다며 나의 추천 스팟을 만족해 주었다.


 한국 여행에 대한 대화가 끝나자 이제는 내가 사쿠라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내가 진심으로 궁금했던 것은 바로 K-POP 인기의 과장되지 않는 리얼한 실태였다. 일본에 진출한 수많은 한국의 아이돌들이 과연 정말 일본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일까. 한국 방송에서 보도되는 뉴스 헤드라인과 기사 타이틀을 보면 모든 가수들에게 최초’, ‘매진을 비롯한 일본 열도 열풍’, ‘오리콘 차트 1’, ‘성공적인 데뷔’, ‘최대 규모의 공연와 같은 수식어가 붙곤 한다. 이것은 과장일까, 진실일까. 나는 사쿠라에게 솔직한 대답을 부탁했다.



 영완 

 “8년 전, 일본에 카라와 소녀시대가 데뷔를 하며 일본 내에서 국민적인 인지도를 얻으며 성공했다고 한다. 당시 나는 중학생이었고 일본어가 능숙하지 않아서 일본 현지에서의 실제 인기를 전해 들을 수 없었다. 또, 카라와 소녀시대가 일본에서 성공한 이후 수많은 한국의 아이돌 그룹이 일본 데뷔를 시도했다. 한국에서는 모든 아이돌 그룹이 일본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고 보도한다. 나는 한국인이지만 그런 보도에 대해 솔직히 의문이 든다. 사쿠라는 많은 한국 아이돌 그룹이 일본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하는가?


 사쿠라 

 “카라와 소녀시대는 진짜였다. 카라가 제일 먼저 일본에 데뷔했는데 그 때의 붐은 정말 최고였다. 그 이후 소녀시대가 데뷔를 했는데 카라의 영향이 소녀시대에도 끼쳐 두 팀 다 절정의 인기를 보였다. 나는 카라와 소녀시대의 일본 곡을 알고 있다. 최근에는 트와이스가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데 나는 트와이스의 곡을 들어본 적이 없다. 트와이스가 아직 카라와 소녀시대만큼의 성공을 거둔 건 아닌 것 같고 점점 인기를 얻어가며 성장하고 있는 중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K-POP에 열광하는 일부 마니아들은 트와이스를 포함한 수많은 아이돌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영완

 “개인적으로 일본어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카라의 전 멤버 강지영의 현지 인기와 일본어 실력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강지영은 나의 롤모델이다.


 사쿠라

 “지영의 일본 활동이 활발하지는 않다. 그러나 카라가 워낙 대단했기 때문에 지영의 신곡이 발매되거나 드라마 출연이 결정되면 뉴스에 헤드라인으로 꼭 보도가 된다. 지영의 일본어는 일본인이 들어도 완벽하다. 마치 김영아(일본에서 활동 중인 한국 모델, 과거 MBC ‘논스톱출연)와 같다. 카라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지영을 일본인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사쿠라와의 수다가 길게 이어지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공항으로 향할 시간과 가까워져 있었다. 나는 미셸과 사쿠라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짧았던 후쿠오카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공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항으로 향하는 내내 나는 비행기가 지연되기를 바랐다. 나는 단 한 시간만이라도 일본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을 늘리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순간들을 눈과 머리에 담고 싶었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다. 비행기는 예정보다 45분이나 지연되었다. 수하물 수속과 일본 출국 수속까지 마친 나는 탑승동으로 들어와 일본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마음껏 즐겼다. 그러던 중, 또 한 번의 지연 공지가 내려졌다. 비행기는 45분 지연에서 30분이 더 지연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탑승 게이트까지 변경되어 인천 행 비행기에 탑승할 승객들은 서둘러 다른 게이트로 이동해 달라고 안내방송이 몇 번이나 송출되었다. 덕분에 나는 공항을 더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저녁 645분에 탑승을 시작할 인천 행 비행기는 8시가 되서야 탑승을 시작했고 탑승을 하고 나서도 관제탑으로부터 이륙 대기를 지시받아 활주로에서 15분간 다른 비행기의 이륙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렇게 이륙의 지체가 좋았던 적은 없었다. 저녁 820, 비행기는 드디어 하늘길에 올랐다.


 

 

▶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확인된 6시 45분 인천 행 비행기의 지연 공지. 속으로 대박을 몇 번이나 외쳤다.

 동료인 미영 선생님이 출국 전 날, 생일선물이라며 자신의 신용카드로 만 원대의 식사를 한 끼를 하고 오라고 해 주셨다.

 게이트가 열릴 때까지 명란이 들어간 삼각김밥과 맥주를 마시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 탑승이 시작된 인천 행 비행기. 밤의 활주로에 있는 비행기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워 가히 판타지스럽기까지 했다.

 

 1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비행기는 인천에 무사히 착륙했다. 비행기가 인천에 도착하자마자 창가에는 무섭게 빗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나중에 친구들을 통해 듣기를, 내가 일본에 있는 이틀 동안 서울에는 계속 강한 비가 내렸다고 한다.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온 나는 리무진 공항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캐리어를 풀고 짐을 정리하고 나니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출근까지는 앞으로 7시간 가량 남아있는 상태.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짐 정리는 나중으로 미루고 서둘러 잠자리를 청했다. 다음 날, 짧은 만큼 알찼던 여행 일정 탓에 다소 피곤한 몸으로 업무에 임하게 되었지만 그만큼 강렬했던 일본에서의 기억들은 피로보다 더 큰 활력이 되어 주어 큰 탈 없이 업무를 마칠 수 있게 해 주었다.


 

▶ 인천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창가에는 빗방울이 거세게 맺혔다.

 여행의 일정이 짧아 선물을 줄 대상들을 가족과 동료들로만 한정했는데 캐리어를 열고 보니 선물들은 나의 짐 못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이번 여행은 지금껏 떠났던 여행 중에서 가장 짧은 일정이었고 가장 적은 비용으로 다녀 온 여행이었다. 그러나 오로지 나 자신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섬세한 테마들로 여행을 가득 채운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본에서 맞은 스물 두 번째 생일, 두 번째 후쿠오카, 그리고 여덟 개의 처음’. 처음이 사람에게 가져다 주는 순수함과 설렘을 잊지 않고 싶어졌다. 사람을 순수하게 하면서도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 그것은 유일무이 여행 뿐이다. 나는 이번 생일 여행을 통해 얻은 여행의 순수함을 오랫동안 간직해서 더 많은 나라에 발자국을 남길 것이다. 다음 여행이 또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머지않아 떠날 것은 확실하다. 다음에는 어느 나라에, 어느 도시에 다녀올까.


 Photo by choi0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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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처음’ _ 공항에서 노숙하기


 누구에게나 노숙이라는 단어로부터 전해지는 어감과 이미지는 선호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노숙을 경험하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다. 공항이 좋아서. 모든 여행의 시작이 이루어지는 공항, 늘 체크인과 출입국 심사만을 경험했던 이 공간에서 지구촌 사람들의 설렘 가득한 기운을 느끼며 잠들고 싶었고, 공항 곳곳을 누비고 관찰하면서 공항의 매력에 빠져들고 싶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되었다. 나는 퇴근 직후,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바로 공항으로 왔기 때문에 누적된 피로가 상당했다. 그래서 업무 시간에 짬을 내어 미리 조사해 둔 인천공항 노숙 명당으로 빨리 가서 신발을 벗고 잠에 들고 싶었다. 그러나 명당의 이름값은 위대하여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았다. 쿠션형 의자가 비치되어 있어 노숙 명당으로 손꼽히는 F카운터 옆 의자에는 이미 모든 여행객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휴대폰 충전기를 끼고 있는 의자에는 F카운터를 비롯한 모든 카운터가 여행객들로 붐볐다. 그러나 공항 노숙을 포기할 순 없다. 같은 층을 세 번이나 왕복하며 물색한 끝에 나는 B카운터 옆의 의자로 향했다. 비록 쿠션형 의자는 아니었지만 남아있던 자리들 중에서는 휴대폰 충전기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자리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시차가 다른 세계 각지로부터 출발하여 인천에 도착하고, 인천을 경유할 테니 나는 꼭두새벽이 되어도 인천공항의 활기가 넘칠 줄 알았다. 그러나 자정이 넘어가면서 인천공항도 서서히 감기는 점심시간의 눈꺼풀처럼 고요해지기 시작했다. 노숙은 시작됐다. 나는 신발을 벗고 준비해 온 담요를 꺼내 덮어 잠자리를 청했다. 그러나 나는 피로가 극도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불편했던 자세 때문에 도저히 잠에 들지 못했다. 몇 번을 뒤척이다가 1시를 겨우 넘기고서야 잠에 들었지만 그마저도 얕게 잠들어 2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했다.


B카운터 옆의 의자에 앉아서 노숙 중인 나의 모습

 

 새벽 3, B카운터 의자에서의 노숙을 끝내기로 결정했다. 나는 부랴부랴 짐을 싸서 공항의 1층으로 내려와 포켓와이파이를 수령했고, 더 편히 누울 수 있는 자리를 찾아 공항을 누비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노숙판을 벌이고 있어서 비어있는 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끝내 나는 다시 B카운터로 돌아와 다시 한 번 잠을 청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나는 5시 즈음이 돼서야 다시 잠에서 깼고, 체크인을 하기 전까지 공항 밖으로 나가 새벽 공기를 쐬며 얕게 남은 졸음을 떨쳐냈다.


 새벽에 맡는 비 온 뒤의 냄새는 오래간만이었다.

그 장소가 공항이었기 때문에 이 순간은 더 매력적이었다.

 

 117, 이 날 수도권에는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되었다. 그러나 잠깐 내린 새벽비 덕분에 조금이나마 정화된 찬 공기를 맡으며 인천공항에서의 아침을 맞았다.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비행기가 지연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짧은 여행 일정이기 때문에 출발을 할 때만큼은 제발 비행기가 지연되지 않기를 바랐다.

 

 수하물 수속과 출국심사를 마친 나는 공항 도착 8시간 만에 탑승동으로 들어와 던킨도너츠에서 케이준 또띠아를 먹으며 탑승을 기다렸다. 그 때, 군 생활을 할 때 나의 맞후임이었던 재철이로부터 생일 축하 연락을 받았다. 117, 자신의 입대일이자 맞선임인 나의 생일인 이 날을 어떻게 잊냐며 새벽부터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군 생활 당시, 나와 재철이의 사이에는 ‘117외에도 겹치는 평행이론이 너무나 많았다. 하마터면 재철이가 다른 사람의 후임이 될 뻔 했던 해프닝이 있긴 하지만 결국엔 나의 후임으로 맞이하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다시 한 번 강하게 들었다.


 

 

일본 출국 전, 게이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던킨도너츠에서 먹었던 케이준 또띠아 샌드위치

▶▶ 아침이 밝았다. 이번에도 항공사 로고가 가장 예쁜 제주항공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기로 결정했다.

▶▶▶ 시작된 탑승수속. 날씨 탓에 지연을 걱정했지만 제시간에 게이트가 오픈되어 정말 기뻤다.

▶▶▶▶ 미세먼지로 인해 최악의 오염 수치를 기록했던 이 날의 대기. 활주로의 풍경은 항상 맑았으면 좋겠다.


 710, 탑승이 시작되었다. 역대급의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인해 비행기가 지연되는 불상사가 일어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비행기는 정확히 730분에 이륙했다. 비행기가 지면을 떠나 활주로를 뜨기 시작할 때, 나도 모르게 조용히 미소가 지어졌다. 이 미소는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앞에서 보였던 미소와 달리 너무나 자연스럽게 지어졌다. 비행기가 하늘길에 다다랐을 때, 창밖에는 물감을 푸른 것처럼 파란 하늘의 풍경이 펼쳐졌다. 설레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행기 밖 풍경은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고 몇 번을 보아도 아름답다. 풍경에 넋이 나가 있다 보니 어느새 나는 잠에 들어 있었고 잠에서 깨고 나니 또 어느새 비행기는 착륙을 시도하고 있었다. 시간은 1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후쿠오카는 무척이나 맑고 청명했다. 제일 먼저 비행기에서 내린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공항을 빠져 나왔다.


 

▶ 비행기는 활주로를 떠난지 10분도 되지 않아서 이렇게나 맑은 하늘길을 날기 시작했다.

▶▶ 1시간을 날아서 후쿠오카에 도착한 비행기

 

두 번째 처음’ / 택시 탑승하기


 후쿠오카는 공항으로부터 시내인 하카타까지 지하철로 5분밖에 걸리지 않아 초보 배낭여행자도 쉽게 여행할 수 있는 대표적인 도시다. 그러나 나는 오늘 지하철을 타지 않고 택시로 이동할 것이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게 되면 무려 지하철 요금의 8배나 되는 비용이 발생하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택시는 일본에서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택시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나를 하카타까지 데려다 줄 기사님과의 대화는 그 덤이다.


 

▶ 입국 심사장으로 가는 도중, 셔틀버스 안에서 찍은 맑은 후쿠오카의 하늘. 맞은편 버스의 'Welcome to Japan'이 나를 향해 인사를 하는 것만 같다.

▶▶ 택시를 타고 기사님과 대화를 나누며 하카타 역으로 향하는 중

 

 기사님께서는 나의 일본어 실력에 놀라면서 그동안 한국 관광객에게 묻지 못했던 어려운(?) 질문들을 묻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로 최근 한국과 북한의 분위기가 평화적으로 조성되었는데 머지않아 한반도가 통일을 이룰 것 같은지를 물어 보셨고, 두 번째로 일본도 저출산 문제로 인해 청년의 수가 부족하다며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오는 많은 젊은이들이 일본의 상공업 발전에 큰 역할을 해 주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마지막으로 만 나이 계산법에 대한 말씀해 주셨다. 생일을 기준으로 나이를 세는 일본과 달리 신년을 기준으로 나이를 세는 한국의 계산법이 재미있다며 과거에도 일본에선 지금의 한국식 계산법으로 나이를 셌다고 말씀해 주셨다. 자유롭게 오고 가는 대화 속에 하카타에 도착한 나는 기사님께 일본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생일을 축하받으며 기분 좋게 두 번째 처음을 완수했다.


 

 지금까진 사실 무난하게 후쿠오카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무난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샤워다. 원래는 노숙을 마치고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24시간 무료 샤워장에서 샤워를 한 후 비행기에 탑승할 예정이었는데 샤워장의 청소 시간과 맞물려 샤워를 하지 못한 채 후쿠오카에 도착하게 되었다. 퇴근을 하고 집에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샤워를 한지도 하루가 넘었고, 체크인까지는 앞으로 5시간 가량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원래는 후쿠오카에 도착하자마자 명란 덮밥을 먹을 예정이었지만 샤워가 다급한 처지이기 때문에 온천 일정과 명란 덮밥 일정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내가 예약한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는 체크인을 하기 전에 짐만 맡기는 것이 가능했다. 서둘러 짐을 맡기고 바로 온천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원래 여행 일정>

하카타 도착 게스트하우스에 짐 맡기기

<배틀트립> 방송 맛집 멘타이쥬에서 명란 덮밥 먹기 나미하노유 온천 가기

 

<변경 여행 일정>

하카타 도착 게스트하우스에 짐 맡기기

나미하노유 온천 가기 <배틀트립> 방송 맛집 멘타이쥬에서 명란 덮밥 먹기

 

 하카타 역은 규모가 큰 편이라 3년 전에 왔을 때도 제자리 걸음을 하며 주변 일대를 헤매곤 했다. 이번에는 헤매지 않을 거라 자신했지만 결국엔 시민들에게 스미마셍.” 하면서 길을 묻고 말았다. 시민들의 도움과 3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게스트하우스의 프론트에 있는 직원에게 체크인은 규정대로 오후 3시에 하겠다면서 짐만 먼저 프론트에 맡겨도 되냐고 물었다. 직원은 내게 여권을 보여 달라고 하더니 오늘 생일이시네요. 축하합니다.” 라고 하며 지금 비어 있는 침대가 있으니 지금 바로 체크인을 해 주겠다고 했다. 직원은 자신이 내게 파티 요청 메일에 답장을 보낸 미셸이라며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에서의 1박을 환영해 주었다.


 

▶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로 향하는 길

▶▶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룸 2층 침대의 내부, 내가 후쿠오카에서의 하룻밤을 지낼 공간이다.

 

 미셸이 5시간이나 체크인을 빨리 허가해 준 덕분에 나는 굳이 온천에 가지 않고도 게스트하우스의 욕실에서 샤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사전에 계획했던 일정도 그대로 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서둘러 도미토리 룸에 캐리어를 놓고, 욕실에서 샤워를 했다. 개운하게 샤워를 끝내고 간단히 화장을 하려는 순간, 그 때였다.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났다. 세면대 거울을 보면서 왼쪽 눈에 렌즈를 끼려던 찰나에 렌즈가 떨어진 것이다. 세면대를 통틀어 거울 주변, 세면장의 바닥까지 손바닥으로 짚어가며 렌즈를 찾았지만 렌즈는 짚이지 않았다. 1박의 짧은 여행이었기 때문에 여분 렌즈는 가져오지도 않았던 데다가 렌즈는 오른쪽 눈에만 끼어져 있어서 시야가 무척이나 어지럽게 보였다. 세면장을 드나드는 여행객들은 내게 무슨 일이 있냐며 물었지만 나는 렌즈를 찾는 데 여념이 없어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끝내 렌즈 찾기를 포기하기로 했다. 렌즈를 찾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간 다른 일정을 소화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밤에 렌즈를 뺐을 때 낄 대용으로 챙겨 온 까만 뿔테 안경을 끼고 여행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썩 맘에 드는 코디는 아니지만 지금 그런 걸 가릴 처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 처음’ _ 명란 음식 먹기


 지난 여름, 정원이와 함께 떠난 태국에서 <워너원투어>의 큰 기반이 되어 준 나의 인생 예능 KBS <배틀 트립>의 도움은 이번에도 빠지지 않았다. 군 생활 때, 배우 양정아와 윤해영이 출연했던 후쿠오카 편 방송분을 보고서야 후쿠오카가 명란으로 유명한 곳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나중에 후쿠오카에 가게 될 때, 명란 덮밥을 꼭 먹어 보겠다는 위시리스트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번 여행을 통해 실현하게 되었다.






 나는 텐진 역에서 시민과 구글 지도의 도움을 받아 <배틀 트립>에 방영된 명란 덮밥 맛집 멘타이쥬에 도착했다. 방송에서 보았던 그대로 독특한 외관 건축 인테리어는 멀리서 보아도 시선을 집중시켰고, 덕분에 내가 찾는 식당이었다는 것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식사 시간대에 찾으면 대기 줄이 상당하다는 후기가 많아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대기 줄은 없었다. 나는 바로 식당으로 들어가 직원의 안내에 따라 맛을 고르고 2층에 있는 테이블로 자리를 안내받았다.


 

 

▶ 텐진 역에서 내려 멘타이쥬로 향하는 도중에 찍은 아날로그 감성의 일본 횡단보도

▶▶ 공원을 빠져나오자마자 보였던 멘타이쥬. 외관만 보면 마치 박물관을 닮은 것 같다.

▶▶▶ 후쿠오카에서의 첫 식사, 츠케멘과 명란 덮밥

▶▶▶▶ 남김없이 두 음식을 먹음으로써 일본에서의 두 번째 '처음' 명란 음식 먹기 이행 완료

 

 나는 츠케멘과 명란 덮밥이 같이 나오는 세트 메뉴를 주문했다. 명란 덮밥은 밥에 아무런 간도 되어 있지 않은 게 아쉬웠다. 그래서 명란 자체의 짠맛은 무엇인지 알 수 있었지만 명란 덮밥으로서의 맛을 인지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츠케멘이 더 좋았다. 물론 입맛에도 맞았다. 라멘의 국물보다도 면의 익힘 정도가 제일 마음에 들었으며 국물은 굉장히 깊은 맛을 담고 있었다. 그동안 익숙했던 인스턴트 라면과는 확실히 달랐다. 츠케멘의 특제 추가 스프는 면을 다 먹고 남은 국물에 추가해서 맛의 변화를 감미하는 용도로 음식과 같이 나왔다. 이 스프를 국물에 추가하니 짠맛의 정도가 급격히 얕아졌고, 원래 국물의 맛에서 전혀 다른 맛을 내는 게 정말 매력적이었다. 한국에서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만약,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음식이 유행하면 그 과정에서 맛이 변질될 우려가 있는데다가 무엇보다 누구나 알게 되는, 누구나 먹을 수 있는 흔한 맛이 되어 버리는 게 싫었다. 맛있는 음식은 아무 곳에서나 쉽게 먹을 수 있게 대중화되지 않아야 하며, 그것이 곧 희소성이고 조리사의 자부심을 뒷받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네 번째 처음’ _ 온천 가기


 일본을 찾았던 지난 네 번 동안 단 한 번도 온천을 간 적이 없었던 것이 나조차도 놀라웠다. 지인들로부터 일본 여행과 관련하여 연락을 받으면 십중팔구 온천을 물었고, 나는 유일하게 온천에만 가 본 적이 없었다며 대답을 해 주지 못했다. 일본과 온천의 관계는 실과 바늘과 같아 빼놓지 않고 생각되는 카테고리 중 하나인데 왜 나는 그동안 온천에 갈 생각은 해 보지 못했는지 의아했다. 아마, 혼자 떠난 여행이 많아서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가족이나 친구, 여자친구와 함께 일본에 갔다면 빼놓지 않고 온천에 들렀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짧은 일정 안에서 후쿠오카 교외로 나가 온천을 즐기고 오기란 쉽지 않다. 온천을 하려면 도심에서 시골 마을로 이동하는 시간까지 고려해야 하는 데다가 이동 시간이 오래 걸려 숙박을 료칸에서 해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료칸에서 숙박을 하게 되면 또 다른 처음의 리스트였던 게스트하우스에서 파티하기는 실현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나는 사전에 하카타 시내 안에서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을 열심히 찾았다. 후쿠오카는 항구 도시라서 분명히 도심지에도 관광객들이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을 것 같았다. 예상은 적중했다. 하카타 시내 안에는 무려 세 개의 온천이 있었다. 위치, 시간, 온천의 특성 등 모든 것을 고려한 끝에 나는 텐진 역에서 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는 하카타 부두 옆의 나미하노유 온천에서 생애 첫 일본 온천을 경험하기로 결정했다.


 

 

▶ 텐진 솔라리아 스테이지 역 앞에서 20번 버스를 타고 하카타 부두로 향하는 도중에 찍은 하카타 시내의 모습

▶▶ 나미하노유 온천 남탕 앞에서. 나중에 듣기를, 나미하노유 온천은 주기적으로 남탕와 여탕을 바꾸어 관리한다고 한다.

▶▶▶ 온천 입탕 전, 락카룸 열쇠와 함께 인증샷을 남기며 세 번째 '처음' 일본 온천 체험하기 이행 준비

▶▶▶▶ 탕으로 향하는 나미하노유 온천의 정갈한 내부 모습

 

 나미하노유 온천은 도심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해수 온천이라 온천탕의 물이 바닷물이었다. 그것이 내가 하카타 시내 안 세 개의 온천 중에서 나미하노유 온천을 고른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실제로 온천탕의 물에선 짠맛이 났고, 온천 내부도 정갈하고 아담하게 일본 전통식 스타일로 꾸며져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더해졌다. , 탕의 입구에선 다양한 기념품과 유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절로 어릴 적 보았던 일본 영화가 떠올랐다. 나의 기억 속 일본 영화 주인공들은 항상 온천을 하고 나오면 병에 담긴 우유를 마시며 탁구를 치곤 했다. 탁구대가 세팅되어 있지 않아서 탁구는 실현하지 못했지만 가득한 음료들을 보니 나중에 개운하게 온천을 마치고 나와서 가장 맛있어 보이는 음료를 마시며 온천을 마무리짓고 싶어졌다.

 

 온천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노천탕의 썬베드에 누워서 바깥 풍경을 보는 것이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오른쪽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 왼쪽에서는 태양이 내리쬐어 절로 눈이 찡그려졌다. 햇살과 바람이 동시에 나의 몸에 닿아서 간질이는 공기의 기운이 너무나 좋아서 나는 탕 안에 있다가도 몇 번이나 다시 나와 썬베드에 누웠다. 사실은 일본에 오기 전 온천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소 추운 날씨를 원했다. 그러나 후쿠오카는 남쪽에 있어서 11월 치고 다소 따뜻한 날씨를 보였다. 그래서 괜히 덥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따스함과 선선함의 콜라보레이션을 정통으로 만끽할 수 있었고 지금도 가장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주어 최근의 가장 큰 활력이 되어 주고 있다.

 

 온천을 마치고 나온 나는 레몬 크림빵과 플레인 요구르트를 사서 먹었다. 이 순간, 바랄 건 더 없다. 만약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 속의 마코토에게 주어졌던 타임 리프 능력이 나에게도 있었다면 나는 주저없이 이 순간을 몇 번이나 되돌렸을 것이다.


 

 

▶ 온천을 마치고 나오면 바로 보이는 다양한 기념품과 주전부리들

▶▶ 온천의 피날레를 장식할 음료는 플레인 요구르트로 결정했다.

▶▶▶ 가장 맛있어 보였던 레몬 크림빵과 플레인 요구르트

▶▶▶▶ 나미하노유 온천을 등지고 있는 하카타 포트타워. 입장료가 무료라서 온천 후 가볍게 전망대에 올라가 풍경을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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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logue

 사회인으로 본격적인 첫 발을 내딛었던 때도 어느덧 8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전역을 하고 사회인이 되면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면서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보단 해야 할 것들이 더 많았고 좋은 기회가 다가와도 결국엔 지금 내게 닥친 현실들을 이유로 언제 올 지도 모르는 나중이란 시기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에게 사회가 암묵적으로 정해준 길(대졸 학력, 필수 스펙 토익, 안정적인 직장생활 등)을 걷지 않고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나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는데 끝내 나도 삭막한 현실 앞에서 무너져가고 있었다.

 

가을 날씨가 점점 겨울 날씨로 변해가는 때가 오면 너 태어났을 때가 떠올라.”

 

 우리 아빠가 매년 가을마다 하는 단골 대사다. 겨울이 다가온다는 것은 내 생일이 다가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한 해의 끝이 다가오는 사인이기도 하다. 나는 직장생활의 쳇바퀴에 들어서면서 소중한 기회들을 너무나 많이 흘려보내며 겨울까지 살아온 것 같았다. 그래서 겨울의 길목에 들어서는 나의 이번 생일에는 꼭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결코 쉽지는 않았다. 당직 근무일과 올 해 나의 생일이 맞물려 또 한 번 소중한 기회를 미루어야 할 상황에 닥쳤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나는 친한 동료에게 당직 근무 변경을 부탁했다. 흔쾌히 나의 당직 근무와 바꾸어 준 동료 덕분에 나는 직장 휴무일을 활용하여 생일을 포함하는 13일의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연차를 활용하여 6일 퇴근 직후부터 8일 밤까지의 시간을 얻은 이번 여행

원래 8일은 나의 당직 근무일이었는데 은지 선생님이 바꾸어 주신 덕분에 여행이 가능했다.

 

 그래도 13일은 짧다. 그러나 쉽게 오는 기회 또한 아니다. 그래서 불만을 갖지 않기로 했다. 짧은 기간 안에 해외를 느끼고 만지며 내가 자유롭게 회화를 할 수 있는 외국. 답은 정해져 있다. 나는 26개월 만에 다섯 번째 일본 여행을 계획했다. 도시는 인천에서 비행 시간이 가장 짧으며 공항으로부터 시내까지도 무려 지하철로 5분밖에 걸리지 않는 후쿠오카로 결정했다. 후쿠오카는 무려 3년 만의 재방문이다.

 

 전역 후 첫 일본, 해외에서 맞는 첫 생일.

 

 이번 여행 또한 처음이 많다. 그래서 이번 여행의 테마는 처음으로 정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해 본 적이 없는 처음을 느끼고 돌아오는 것이 목표였다. 여행을 결심한 직후에는 일본에서의 처음을 찾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지만 생각에 잠기어 그동안의 여행 리뷰를 되새겨보니 금세 처음 리스트를 채울 수 있었다.

 

* 이번 여행에서 실현하고 올 처음리스트 *

공항에서 노숙하기, 게스트하우스에서 파티하기, 명란 음식 먹기, 키와미야 함바그 먹기,

온천 가기혼자서 스냅촬영하기, 택시 탑승하기, 일본 빵집에서 생일 케이크 사기

 

 이번 여행은 소중한 기회실현과 동시에 나에게 주는 생일선물이다. 나는 그 날, 그 곳에서 행복해야 할 나를 위해 철저하게 사전 조사를 거듭했다. 게스트하우스 파티를 실현하기 위해선 3년 전에 묵었던 게스트하우스로 전화를 걸어 파티 예정 일정과 신청 가능 여부를 묻기도 했고, 짧은 여행 기간 안에 일본 온천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선 하카타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온천을 조사하며 해당 온천의 예약, 할인 여부까지 꼼꼼하게 조사했다.


  

▶ 게스트하우스에 숙박 예약을 하면서 별도 요청 사항으로 11월 7일에 파티 가능 여부를 여쭈었다.

▶▶ 예약을 확인하고 파티 요청을 수락해 주신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


게스트하우스에서는 겨울의 길목에 들어서는 지금의 시즌에 걸맞는 음식으로 어묵 파티를 테마로 정해 주셨고,

키아오라 버짓스테이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나의 생일과 파티 일정을 공지해 주었다.


 사전 조사를 할 때, 가장 많은 검색이 필요했던 것은 일본 빵집에서 케이크를 사는 것이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일본 여행을 갔을 때마다 한국의 파리바게트’, ‘뚜레주르’와 같은 빵집을 본 기억이 없었고, 일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 또한 빵집을 여행 일정으론 넣지 않기 때문에 블로그에 아무리 검색을 해도 빵집 위치를 찾기란 꽤나 어려웠다. 물론, 빵집이 어딘가에는 있겠지만 후쿠오카에 도착했을 때, 빵집을 찾느라 시간을 할애하면 너무나 아까울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묵을 게스트하우스로부터 가장 가까운 빵집을 찾기 위해서 구글 위성맵과 현재 후쿠오카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워홀러들의 블로그를 무척이나 파헤쳤다.

 

 116일 저녁 7, 퇴근과 동시에 생일의 전야가 시작되었다.

 

 나는 대학 친구 종원이와 강남역에서 생일 전야 식사를 함께 하며 가볍게 맥주를 즐기기로 했다. 우리의 맥주가 끝나면 나는 공항으로 발걸음을 옮겨 본격적으로 내가 정한 처음’ 들을 이행할 예정이다. 그 첫 번째 처음’은 바로 공항 노숙. 종원이는 잠이 많은 나에게 깊은 잠에 빠져 비행기를 놓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길 바라 주며 1차에서 가볍게 식사를 마치고 신논현역으로 배웅해 주었다.


엄마가 생일선물로 보내주신 족발 기프티콘으로 종원이와 함께 먹은 강남역에서의 족발


 

 그렇게 나는 9호선 급행 열차와 공항철도선 열차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 공항철도선 지하철을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중

▶▶ 여행의 시작을 기념하며 찍은 공항철도선 지하철 탑승 인증샷


 5th JAPAN, AGAIN FUKUOKA

 슬레이트는 내려졌다.  짧지만 강렬할 다섯 번째 일본여행기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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