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10

D+9

정글에서의 초대


정글 투어 당일,


미러리스 카메라를 들고 투어에 참가하면 일정 소화가 불편할 것 같아서 카메라는 호텔에 놓고 정글로 향했습니다.

또, 눈으로 담고 싶었던 장면들이 많았던 만큼 사진 촬영에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에피소드에 비해 사진들이 다소 부족합니다. 이로 인해 가독성이 떨어질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화창한 토요일 아침,

오늘 나의 일정이 정글로 가는 것을 하늘은 예견이라도 했는지

전날과 달리 무척이나 파랗고 많은 뭉게구름을 보였다.


나는 전날 가동 야시장에서 먹다 남긴 팬케이크와 펩시 콜라로 아침식사를 대신해서 때웠고

픽업 시간보다 10분 빨리 호텔 로비로 내려와 픽업 차량을 기다렸다.


 


그러나 픽업 차량은 오지 않았다.


게다가 시간은 7시 30분을 서서히 넘기고 있었다.

7시 15분까지 하이어 호텔 로비로 데리러 오겠다는 메시지를 받았음에도

로비 앞으로는 어떤 차량도 도착해있지 않았다.


서서히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찰나,

한 대의 대형버스가 도착했다.


그런데, 이 버스는 단체 중국인들을 태우는 버스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버스에서 내리는 중국인 가이드에게

나의 픽업 메시지를 보여주며 목적지를 물었다.


그 순간, 나보다 호텔 로비에 먼저 나와있던 히잡을 쓴 여성이

나와 중국인 가이드의 쪽으로 오더니 픽업 메시지를 확인해 주었다.


그러더니 그녀가 말했다.

 

Follow me. It was you.(나를 따라오면 돼요. 계속 로비 앞에 있었던 너였구나.)


히잡을 쓰고 있던 이 여성이 바로 나의 픽업 담당 가이드였던 것이었다.

그 순간, 픽업 차량이 호텔 로비 앞에 도착했고 나는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울루 템부롱 국립공원으로 가는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버스에는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두 명의 남자 관광객만이 앉아 있었다.


쭈뼛쭈뼛 눈인사를 하며 빈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찰나,

남자 관광객들이 나에게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아닌 진짜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브루나이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이 투어는 사전에 여행사를 통해 예약한 것이 아닌,

현지에서 예약을 한 브루나이 관광객(국적 불문)들로만 구성된 투어였기 때문에

한국인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은 더욱 희박했다.


한국인 형들과 나를 태운 버스는

또다른 투어 참가자들을 태우기 위해 다음 호텔로 향했다.


버스는 그 곳에서 여섯 명의 참가자들을 더 태웠고,

가이드는 이렇게 모인 총 아홉 명의 참가자가 

오늘 울루 템부롱 정글투어를 함께할 인원들이라고 하셨다.


브루나이 현지에서 울루 템부롱 정글투어를 저렴하게 예약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브루나이②] 브루나이 페리 탑승기와 울루 템부롱 정글투어 현지 예약 방법 을 정독해주세요.

(위 타이틀을 클릭하면 해당 게시글이 새 창으로 띄워집니다.)


 


버스는 스피드 보트를 탈 수 있는 선착장에 참가자들을 내려 주었다.


이제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 곳에서 스피드 보트를 타고 템부롱 지역에 도착한 후,

버스와 롱 보트를 한 번씩 더 타야 울루 템부롱 국립공원에 도착할 수 있다.

(스피드 보트에 탑승하는 순간부터 픽업 담당 가이드와는 헤어지게 된다.)



스피드 보트를 타며 템부롱으로 가는 도중에는 말레이시아의 국경을 넘나들기 때문에

비행기가 착륙했을 때 받아볼 수 있는 입국 문자도 자동으로 수신된다.


 


왼쪽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스피드 보트는

좌측의 브루나이와 우측의 말레이시아의 경계가 되는 강을 넘나들며 템부롱으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국경에 들어왔기 때문에 로밍을 할 수 있다는 문자메시지도 받아볼 수 있다.



50분 가량 스피드 보트를 타고 도착한 템부롱.

보트 안에서 꿀잠을 잔 덕분에 개운한 발걸음으로 보트에서 내릴 수 있었다.


템부롱에 도착하니 정글 투어 담당 가이드들이 참가자들을 맞이해 주었다.

가이드들은 본격적인 정글 투어 시작 전, 참가자들을 데리고 조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으로 향하는 내내 문명과 인간의 위대함에 감탄했다.


템부롱에 오기 위해선 스피드 보트를 통해서만 올 수 있는데,

과거에는 대체 어떠한 교통 수단을 통해 이 곳에 사람들이 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과

이 곳에 있는 차량 정비소, 식당 등에서 필요한 자원들은

도대체 어떻게 조달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끊이지 않았다.


템부롱에 오는 길이 험난해서였는지

나는 템부롱을 거니는 내내 이 곳을 아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어느 시골마을처럼 여겼다.


 

 


조식은 페스츄리 빵과 콜라(음료 선택 가능)였다.

소스는 왼쪽에 있는 하얀 소스가 제일 맛있었고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제일 인기가 좋았다.

연유 맛이 나는 달콤한 맛의 소스였는데 페스츄리와 궁합이 제일 잘 맞았다.


조식을 처음 받았을 때, 다소 빈약해 보여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데

먹다 보니 맛도 있었고 은근히 배가 금방 차서

나를 포함한 한국인 형들, 그리고 여섯 명의 외국인 참가자들까지 모두 맛있게 먹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가이드는 모든 참가자들에게 생수병을 하나씩 나눠 주었다.

이제 롱 보트를 타고 정글까지 가야 한다.

롱 보트의 최대 탑승 인원은 3~4명인데 가이드는 이 날 참가자 수가 총 9명이었기 때문에

3명씩 팀원을 구성해서 보트에 탑승하라고 했다.


나는 주저없이 2명의 한국인 형들과 함께 보트를 타기로 했고,

형들도 내게 함께 보트를 타고 정글까지 들어가자고 해 주셨다.



롱 보트의 뒤에서는 기사님이 열심히 시동을 걸어 보트를 운전해 주시고,

앞에서는 조수가 강의 수심이 얕아지는 곳에서 열심히 작대기를 이용하여 돌을 치워준다.

작대기로도 돌이 움직이지 않을 때는 보트에서 내려 손수 보트를 끌기도 했다.


보트 앞에서 열심히 작대기를 저으며 돌을 치우는 조수를 보고 있으니

편하게 앉아서 가는 내가 괜히 미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또 한 번 보트를 50분 가량 탔다.

보트를 타는 내내 보이던 템부롱의 자연 경관은 나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한국에서 본 적 없는 이름 모를 새들이 눈 앞에서 날아다니고

하늘과 숲, 그리고 강. 오로지 자연만을 상징하는 매체들이

눈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오늘의 날씨가 맑아서, 템부롱에서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보트를 타는 내내 또 한 번 들었던 생각은

이렇게까지 깊이 숨어있는 이 공간은 도대체 누구에 의해 발견됐으며,

그 옛날에는 어떤 수단을 통해서 이 곳까지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


그렇게 템부롱에 대한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어느새 보트는 울루 템부롱 국립공원 앞에 도착해 있었다.



브루나이에서 만나는 한국어 인사말. 어서오세요.’

정글이라는 신비한 곳에서 읽게 되니 더욱 반가웠다.



보트에서 내리자 가이드들은 방문 기념 방명록을 작성해달라고 하셨다.

방명록에는 이름과 국적, 나이를 기재하는 공간이 있었다.


Yeongwan Choi, Korea, 22


혹시나 해서 방명록을 한 장 앞으로 들춰 봤는데 내가 제일 어린 나이였다.

괜히 자부심이 흘러넘치는 순간이었다.


 


방명록을 적고 나면 본격적인 정글 트레킹이 시작된다.

참가자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라는 부심이 생긴 나는 정글 완주에 대한 의욕을 안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트레킹 코스는 생각만큼 힘들지 않았다.


트레킹 계단을 한 번에 올라가지 않고

중간에 쉬어갈 수 있는 정자를 네 번이나 들리며 올라가기 때문에 체력적인 부담이 적다.


솔직히 나는 정자를 네 번씩이나 들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같이 동행했던 한국인 형들은 정자가 나오면 땀에 젖은 손수건을 쥐어 짜가며 휴식을 가졌고,

일부 외국인 참가자들은 뒤처지기까지 해서 팀이 나누어지기도 했다.


정자에서 쉴 때마다 제일 쌩쌩하던 나를 향해 가이드가 나이를 물었다.

스물 둘이라고 하자 가이드는 스물 하나라며 더 밝게 나를 대해 주었다.

또래 나이대의 참가자를 만나서인지 나도 가이드도 서로가 지치지 않아 하며 트레킹을 할 수 있었다.


그 때, 동행하던 한국인 형 중 한 분이 말을 꺼냈다.


올라가는 것도 올라가는 건데 내려올 땐 어떡하냐. 무릎 나갈 거 같은..”


그래도 올라갈 때보단 내려갈 때가 훨씬 부담이 덜하지 않겠냐고 말하자 한국인 형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어려서 그래. 어려서. 라고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막내 취급에 기분이 좋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트레킹 코스는 힘들지 않았습니다...)


 

 


트레킹을 하다 보면 어릴 적 만화에서나 보던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이 외나무다리는 안전상의 이유로 한 번에 다섯 명 이상 건널 수가 없다.


나는 제일 먼저 다리를 건너게 되었는데 다리를 건널 때는 정말 무서웠다.

그래도 최대한 아찔한 순간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살짝쿵 다리의 옆과 밑을 보았지만

핸드폰을 떨어뜨릴 것만 같아 경직된 표정으로 침착하고 빠르게 앞만 보며 걸어갔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트레킹 계단과 외나무다리를 건너다 보니

어느새 정글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캐노피 타워 가까이까지 와 있었다.


목적지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가이드의 안내에

더 의욕이 샘솟았던 나는 빠르게 계단을 올라 캐노피 타워 앞에 도착했다.



그렇게 나와 한국인 형들은 캐노피 타워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캐노피 타워도 외나무다리처럼 안전상의 문제로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이 오를 수가 없어서

가이드는 한 사람 당 3층의 간격으로 오를 것을 권장했다.


먼저 광주에 사는 형이 선두로 캐노피 타워를 오르고,

그 다음이 나, 그리고 그 뒤로 가양동에 사는 형이 오르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캐노피 타워를 오르기 시작하는데

손잡이 기둥을 잡고 올라갈 때마다 캐노피 타워는 삐그덕 소리를 내며 조금씩 흔들렸다.

(무너질 것 같은 불안한 소리와 들림이 아닌 캐노피 타워가 전체적으로 힘을 받고 있는 듯한 소리와 흔들림이었습니다.

캐노피 타워는 절대적으로 안전하게 지어진 철탑입니다.)


형들과 나는 계속해서 비명 아닌 비명을 지르며 캐노피 타워를 올랐다.

나는 최대한 두려움을 벗어내고자 타워 밑을 보려하지 않고 바로 눈 앞에 보이는

계단만을 주시하며 성큼성큼 타워를 올랐다.


그 때, 빠른 속도로 올라온 나와 같은 층에서 만난 광주 형이

나에게 선두 자리를 내어 주시며 먼저 올라가라고 하셨다.



캐노피 타워 위에 올라서서 보이는 전경은 압권이었다.

울창하게 자란 밀림 나무들은 브로콜리처럼 빼곡하게 숲속을 채우고 있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데다가 새가 맑게 지저귀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하늘과 숲만 보면서 새 소리를 들은 경험은 생애 처음이었다.

감탄사 이외에는 그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숲 속에 나 홀로 우뚝 선 느낌, 대자연의 중앙에 놓여진 느낌,

외국이라는 개념을 떠나 다른 세상 위에 혼자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캐노피 타워는 1번부터 5번까지 있는데, 1번, 4번, 5번의 뷰가 제일 훌륭하다.

실제로 가이드도 1번, 4번, 5번의 뷰를 추천해주신다.







원래는 나도 로이킴과 에디킴, 박재정처럼 우정여행으로 브루나이에 오고 싶었던지라

혼자서 정글 투어를 오게 된 게 내심 아쉬웠는데

정말 운이 좋게 두 명의 한국인 형들을 만날 수 있어 <배틀트립>의 에로박처럼

3인 1조로 울루 템부롱 정글투어를 완주할 수 있었다.

덕분에 자유롭게 사진 촬영을 부탁드릴 수 있었고, 보트도 딱 셋이서 탈 수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 정글을 완주했을 때의 느낀 짜릿한 성취감을 한국어로 소통하면서

감정을 공감할 수 있었던 점이 형들을 만나게 되어 가장 감사한 순간이었다.


 


캐노피 타워에서 내려온 후 모든 투어 참가자들은 보트를 타고

정글 속에 숨겨진 계곡으로 들어가 닥터피쉬 체험을 했다.





피로한 발을 계곡물에 담그고 있다 보면

수많은 닥터피쉬들이 다가와 발을 물어뜯는다.


닥터피쉬가 발을 뜯는 느낌이 처음에는 생소해서 소리를 지르며 계곡물을 빠져나오곤 했다.

그런데 금세 적응이 되었고 어느새 나는 닥터피쉬들에게 편하게 내 발을 내어 주고 있었다.



이제 점심식사를 할 시간이다.


깊은 숲 속 정글까지 오느라 축적된 피로와 정글에서 소모한 칼로리를

한 번에 보상받을 수 있는 세상 가장 행복한 시간.


참가자들은 마찬가지로 보트를 타고 숲 속의 식당으로 향했다.



메뉴는 고슬고슬한 쌀밥에 간장 양념 닭찜과 닭강정, 야채절임이었고

디저트로 파인애플이 준비되어 있었다.

모든 음식은 뷔페식으로 자율적으로 떠서 먹을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쉬운 다양한 메뉴의 호화로운 뷔페는 아니었지만

정글 트레킹을 마치고 숲 속의 오두막에서 먹는 닭찜과 닭강정은

그 어느 뷔페에서의 한 끼보다 맛있었고 든든했다.


 


식사를 마치고 모든 참가자들은 오두막에서 잠시 눈을 붙이며 낮잠에 들었다.

나는 식사 직후에 바로 누으면 소화가 잘 되지 않는 편이라

원래 절대 식사 후에 바로 눕는 편이 아닌데 이 날은 예외로 바로 누워

숲 속의 소리를 들으며 낮잠에 들기로 했다.


나중에 형들 얘기를 들어보니

형들은 내가 불편해 보이는 자세로 코도 안 골고 잘 잤다며 신기해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무사히 울루 템부롱 정글 투어를 마치고 나는 브루나이 시내로 돌아왔다.

이제 브루나이를 떠나 발리로 향하실 형들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다시 혼자의 몸이 되어 호텔로 돌아왔다.


하룻동안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집에 혼자가 되어 돌아오는 것은

직장이든 여행이든 아쉽고 섭섭하다.


울루 템부롱 국립공원과

이 날 정글투어를 함께한 한국인 형들과 또래 가이드 친구들.

그리고 투어에 참가했던 여섯 명의 외국인들까지.


이들의 기억 속에 이 날의 기억이 오랫동안 남아 있기를.

그리고 그 기억 속에 나도 오랫동안 남아 있기를.

그리고 나는 말하지 않아도 그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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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8

D+7

국제미아


브루나이로 가는 페리가 출발하기까지는 아직 30분이나 남았다.

그러나 국경을 이동하는 페리의 선착장 치고는 너무나 고요했던 선착장의 분위기에 나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창구 직원의 호통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되어 선착장의 끝까지 가 보았다.


제셀톤 포인트에서 4번 창구 직원에게 선착장 위치를 물었을 때 일어났던 일이 궁금하다면?

[말레이시아⑧] 아듀 코타키나발루! 브루나이로 향하는 페리 탑승기 을 정독해주세요.

(위 타이틀을 클릭하면 해당 게시글이 새 창으로 띄워집니다.)


가다 보니 어딘가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바로 출입국 심사대였다.



출입국 심사대에 들어가니 출입국 심사관이 나에게 여권을 보여달라고 했다.

나의 여권과 페리 탑승권을 확인한 출입국 심사관은 서둘러 페리에 탑승하라고 손짓을 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선원들은 배를 출항시키기 위해 몹시나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서둘러 캐리어를 끌고 페리를 타기 위해 게이트를 따라 내려갔다.

그러나 그 순간까지도 창구 직원과 출입국 심사관, 그리고 페리의 선원들이

왜 이렇게 하나같이 나를 닦달하고 보채는 걸까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내가 페리에 탑승하자마자

한 선원은 나의 캐리어를 잽싸게 짐칸으로 던져넣고 페리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또다른 선원은 페리의 문이 닫히자 마자

부두에 묶어놓았던 밧줄을 푸르고 선장에게 출항 신호를 건넸다.


페리에 탄지 30초도 지나지 않아서 페리는 뱃고동 소리를 울리며 선착장을 떠났다.


그 시각은 오전 8시 3분이었다.


페리에 들어오니 페리 안에는 수많은 승객들이 앉아서 출항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무언가 잘못 되었음을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빠르게 움직이는 페리의 속도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던 나는 던져지듯이 빈 자리로 앉혀졌다.



그리고 나는 휴대전화 사진첩으로 들어가

브루나이 행 페리의 출항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사진을 다시 확인한 나는 경악했다.



코타키나발루(사진 속 K.K)에서 라부안으로 출발하는 페리의 출항 시간은

오전 8시 30분이 아니라 바로 오전 8시였던 것이다.


그 순간,

온 몸에 소름이 확 돋으며 등골이 오싹해졌다.


생각을 다시 해 보니 코타키나발루에서 출발하여 라부안에 도착하는 시간이 11시 30분이었고,

라부안에서 브루나이로 출발하는 시간이 오후 1시 30분,

그리고 브루나이에 도착하는 시간이 오후 2시 30분이었기 때문에

나는 모든 시간을 30분 단위로 잘못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호스텔에서 5분, 아니 1분이라도 더 여유를 가졌다면

나는 브루나이로 가지 못할 뻔 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상황.


이번 여행의 모든 순간들 중에서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은

단연 이 순간이었다.


오전 8시 30분.



어느덧 페리는 통화권을 이탈하였다.

서서히 고된 여정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오전 8시 45분,


강하게 쏟아내리는 폭우, 창문으로 무섭게 부딪치는 물살,

그리고 좌우로 심하게 요동치는 페리.

게다가 지나치게 빵빵한 에어컨 바람 때문에

시원하다 못해 니트티가 생각날 정도로 추웠던 페리 안.


 


가뜩이나 민소매를 입고 있었던 나로서는 이 순간, 버티기 힘들 정도로 고된 시간이었다.

캐리어에서 긴팔을 꺼내 오고 싶었으나 좌우로 심하게 요동치는 페리 안에서

캐리어를 찾으러 이동하는 것은 도저히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나는 있는 힘껏 몸을 꽉 껴안은 채 이 악물고 에어컨의 추위에 맞섰다.


그러던 그 때,

페리 안에서 입에다 바구니를 대고

오바이트를 하는 첫 번째 승객이 등장했다.


고통스럽게 오바이트를 하는 적나라한 소리가 페리 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그 어느 승객도 그 승객을 질타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순간,

페리 안에 있던 모든 승객들이 배멀미와 힘겹게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멀미를 잘 하지 않는 나도 이 순간만큼은 정말 죽을만큼 힘들었다.

그런데도 끝까지 멀미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멀미를 한 후에 느끼게 될 입 안의 텁텁함을 절대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잠에 들려 노력했다.

목베개를 끼고 잠에 들 수 있는 자세를 찾기 위해 의자 위에서 몇 번이나 몸을 뒤집었다.

그런데 노력을 하면 할수록 잠은 오지 않고 속만 더 메스꺼워졌다.


이 순간,

여행이고 나발이고 그냥 다 때려치우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오전 11시 40분.


어쩌다 보니 잠에 들어 있었다.

깨고 나니 예정된 도착 시간은 이미 넘어가 있었지만

통화권에 다시 들어왔고 페리는 터미널의 근처에 와 있었다.



창밖을 보니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보이고 있었고

페리 안에는 단 한 명도 예외없이 모두가 잠에 들어 있었다.


악천후의 기상과 배멀미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무사히 라부안에 도착한 내게 스스로 대견한 기분이 들었다.


오후 12시.


드디어 지옥같았던 페리에서 탈출했다.

나는 코타키나발루를 출발한지 4시간 만에 라부안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제 이 곳에서 1시간 가량의 시간을 보내다가

1시 30분에 브루나이로 향하는 페리를 한 번 더 타야 브루나이에 도착할 수 있다.


어디에서 시간을 때울까 고민하다가 나는 근처에 라부안 박물관이 있는 것을 보고

라부안 박물관에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라부안 박물관은 박물관이라고 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작은 규모였다.

입장료가 무료여서 그런가.

생각보다 볼 거리가 너무 없어서 그냥 동네 시장 구경하듯이 짧게 구경하다가 바로 나왔다.


터미널로 다시 오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간단하게 한 끼를 때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혹시라도 브루나이로 가는 중에 멀미를 하게 될까봐 제대로 식사를 하기가 두려웠다.


그런데 배고픔에 계속 맞서자니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그냥 한 끼를 때우기로 했다.


폭우 속에서 흔들리는 페리 안에서도 멀미를 참았는데 내가 뭘 못 하겠어?’


그래, 어차피 브루나이로 가는 페리는 이동 시간이 1시간 밖에 되지 않으니

멀미를 참는 건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카야 크림맛 와플과 레인보우 펄이 들어간 페퍼민트 아이스 블렌디드를 먹었다.

와플은 내 입맛과 맞지 않았지만 아이스 블렌디드는 페퍼민트의 향이

멀미와의 싸움으로 인해 잃어버린 생기를 되찾아주는 기분이 들 정도로 향긋하고 시원했다.


오후 1시.


터미널 카운터에서 터미널 이용료를 지불한 후

나는 라부안에서 브루나이로 가는 페리에 탑승하기 위해

수하물 검사와 출국 심사를 진행했다.

(국경은 라부안에서 브루나이를 갈 때 넘기 때문에

코타키나발루에서 라부안으로 갈 때는 수하물 검사를 진행하지 않음.)



페리를 타고 국경을 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선착장에서 수하물 검사를 하고 여권에 출국 허가 도장을 받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배를 타고 나니 선원은 곧바로 출입국 카드를 나눠주었다.

출입국 카드의 작성을 마친 나는 바로 곯아 떨어졌다.


오후 2시 30분.


이번에는 멀미로 인한 불편함 하나 느끼지 않은 채 무사히 선착장에 도착했다.

새로운 나라에 도착했다는 설렘이 터미널 밖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브루나이에서의 여정이 시작된다.


 


브루나이 입국 심사와 수하물 검사를 마친 나는 터미널 밖으로 나와

때마침 대기 중에 있던 33번 버스를 탔다.

33번 버스는 5분 정도 달리다가 모든 승객들을

브루나이 시내의 중심지인 반다르세리베가완까지 갈 수 있는 버스 정류장에 내려준다.


 


브루나이의 첫 이미지는 차분했다.

내가 브루나이에 대해 미리 갖고 있던 이미지가

왕국, 부자, 자연과 같은 카테고리들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평범하게 화창하던 브루나이의 풍경도

괜히 어릴 때 만화 속에서나 보던 왕국의 한적함처럼 느껴지곤 했다.


버스에 있던 안내원은 승객들에게 시내로 가는 37번 버스로 환승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시내로 가지 않고 공항으로 가서 브루나이 유심 카드 구입과 환전을 할 예정이었다.

37번 버스가 공항도 들르냐고 물었더니 안내원이 공항으로 갈 승객은 38번 버스를 타라고 했다.


 


33번 버스에서 내린 나는 38번 버스가 오기까지 기다렸다.

한 15분 정도를 기다리고 나니 정류장에 38번 버스가 도착했다.

기사님은 33번 버스에서 받은 나의 표를 확인하더니 바로 출발하셨다.


그 때, 쭈뼛대는 나의 모습이 불안하기라도 했는지

한 승객이 내게 어디까지 가냐고 물었다.


Where are you going?

(버스 안 승객)

 

I’m going to Brunei international airport.

(영완)


그러자 그 승객은 기사님께 Hey!” 라고 말을 걸더니 캐리어를 들고 있는 나를 가리키며

브루나이 공항에 가는 승객이라며 대신 말을 해 주셨다.


버스는 50분을 달려 브루나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공항 근처가 어딘지, 또 정류장의 위치가 어딘지도 몰라

하차벨을 미처 누르지 못했는데도

기사님께서는 공항에 도착하자 알아서 버스를 세워 내가 내릴 수 있게끔 해 주셨다.



여행을 하다 보면 사소한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정말 많아진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볼 때,

나는 과연 서울 버스 안에서 주저하는 외국인이

목적지까지 안심하고 도착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할 수 있을까.


마음에 여유가 없는 일부 사람들은 그런 시선을 오지랖이라고 해석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들의 용기있게 내민 손이 오지랖이라는 단어로 치부되어 버리는 게 너무 싫다.



두 번의 페리와 두 번의 버스를 타고서야

나는 브루나이 국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순간까지도 나는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백팩에서 노트북을 꺼내 <배틀트립> 방송 영상을 보며

유심 카드를 판매하는 샵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배틀트립> 브루나이 편이 방송된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유심 샵에서 <배틀트립> 방송을 보여주면서 10달러 짜리의 같은 유심 카드를 달라고 하자

해당 유심은 더이상 판매되지 않는 제품이라고 하셨다.


이제 오로지 25달러 짜리 유심 카드만 판매하고 있으며

해당 카드로는 1주일간 브루나이 로컬 전화와 문자,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다.


브루나이 USIM [1주] 25브루나이달러(약 20,000원) / 2019.08 기준

싱가포르 달러와 1:1 통용되어 싱가포르 달러로도 구입 가능(거스름돈은 브루나이 달러)



유심 카드를 구입하면서 이제 브루나이에서의 휴대전화 사용이 자유로워졌다.

이제 울루 템부롱 정글투어의 예약을 한 후,

한국에서 미리 예약한 호텔로 가서 체크인을 하면 된다.


말레이시아에 그랩이 있다면 브루나이에는 다트가 있다.

나는 다트라는 어플을 이용하여 울루 템부롱 정글투어를 예약할 수 있는

더 브루나이 호텔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공항 주변에서는 다트가 잘 잡히지 않는다는 유심 샵 직원의 말에

수강신청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택시를 타고 더 브루나이 호텔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런데 택시비가 너무 비쌌다.

공항에서 더 브루나이 호텔까지 무려 25달러라는 것이다.

다트를 이용하면 7달러 내외로 갈 수 있는 곳을 무려 3배 넘는 가격을 지불하면서 가야 하는 상황.


그러나 일부러 다트를 사용하기 위해 공항 주변까지 걸어서 이동하며

애매한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눈 딱 감고 택시를 이용하여 더 브루나이 호텔까지 가기로 했다.

이것은 내가 브루나이에서 타는 처음이자 마지막 택시였다.



더 브루나이 호텔에 도착한 나는 프론트에서 울루 템부롱 정글 투어를 예약했다.

더 브루나이 호텔에서는 투숙객이 아니어도 울루 템부롱 정글 투어의 예약이 가능하다.


프론트 직원이 정글 투어 예약 날짜를 묻자

나는 그 자리에서 브루나이의 일기예보를 확인한 후

8월 10일 토요일로 예약을 하겠다고 했다.


울루 템부롱 정글 투어는 브루나이에 오는 모든 관광객들의 목적이 되는 일정과도 같다.

그래서 한국에서 어떠한 사전 예약도 하지 않은 내가

너무 대책없는 도박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당장 이틀 뒤의 투어 예약이 가능한 것을 보고

생각만큼 예약 경쟁률이 심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울루 템부롱 국립공원 정글투어(호텔 픽업, 식사(조식, 중식) 포함) [1인] 150브루나이달러(약 130,000원)

더 브루나이 호텔 현지예약 (2019.08 기준)

싱가포르 달러와 1:1 통용되어 싱가포르 달러로도 구입 가능(거스름돈은 브루나이 달러)


유심 카드도 샀고 울루 템부롱 정글 투어의 예약도 큰 탈 없이 마무리되자

어깨 위에 올려져 있던 무거운 짐 하나가 떨어져 내려간 기분이었다.


한시름 마음의 짐을 덜은 나는 편안하게 다트를 불러

브루나이에서 나의 집이 되어 줄 하이어 호텔로 향했다.


 

 


하이어 호텔(조식 불포함) [5박/1인] 106,255원 / 아고다 기준(2019.07 예약)


페리, 버스, 택시까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교통 수단에 몸을 맡긴 하루였다.

이제 좀 두 발 뻗고 침대에 누워 휴식을 좀 취해 볼까 했는데

수강신청 과목을 장바구니에 담아야 한다.


잽싸게 노트북 전원을 켜서 2학기에 수강하고자 하는 과목들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다행히 내가 듣고자 하는 과목들은 많은 사람들이 몰리지 않았다.


이제 수강신청이라는 짐까지 덜었으니 식사를 해야 되겠다.

나는 호텔 라운지에 있던 식당에서 블랙 페퍼 비프 철판덮밥과 파인애플 주스를 먹었다.


 


여행 내내 통통한 쌀로 지어진 밥이 먹고 싶었다.

코타키나발루에서도 종종 밥은 먹었지만 먹었던 모든 밥이 모두 한국의 밥과는 달랐다.

한국의 쌀만큼 통통하지도 않았고 영양가가 없는 것처럼 쌀알이 금방 바스러지곤 했다.

처음에는 그 모든 것을 현지식 음식이라 생각하며 먹었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한식이 그리워지고 김치가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브루나이에 와서 첫 끼가 되어 주었던 이 덮밥이

내가 먹고 싶었던 밥맛과 가장 가까웠다.


나는 양손에 숟가락과 포크를 쥐고 정신없이 덮밥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식당의 바로 옆에 있던 편의점에서

간단한 간식거리를 산 후 방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한 두개의 과자봉지를 집어들고 계산대로 향하는 순간,

나는 미친 대박.” 이란 소리를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내뱉고 말았다.



바로 한국 라면이 보인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손에 쥐고 있던 과자들을 다시 원래 자리에 갖다놓은 후

뭐에 홀리기도 한 사람처럼 신라면과 콜라를 사서 카운터로 향했다.

이 와중에 콜라도 태극기와 비슷한 로고가 새겨진 펩시 콜라를 샀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콜라는 코카콜라밖에 먹지 않았다.)


계산을 마치고 나는 편의점 안에 있던 테이블에서 바로 컵라면을 끓여 먹었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해외여행을 떠날 때,

김치와 김을 챙겨서 여행하는 한국인들을 절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비난하기까지 했다.


아니, 외국 나가서 김치 먹고 김 먹을 거면 대체 뭐하러 외국 나가는 거야? 그냥 한국에 있지.’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나의 엄마는 내게 밥은 먹고 가냐면서

김치와 밥 얘기가 담긴 카카오톡을 보냈다.

그 말에 답답한 기분이 들었던 나는 화가 나서 퉁명스런 말투로 엄마에게 답장을 보냈다.



그런데 엄마 말은 다 맞다고 했다.


집 떠난 지 일주일만에 나는 한식이 그리워 미칠 것만 같았다.

심지어 엄마가 먼저 말을 꺼내지도 않은 컵라면은

내가 알아서 먹지도 않겠다고 해 놓고서

브루나이에 오자마자 바로 하나를 사서 국물까지 뚝딱 해치웠다.


덮밥에 컵라면까지 먹고 나니 세상천지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방으로 올라오니 어느새 브루나이에도 밤이 찾아왔다.

복도 끝 너머로 보이는 황홀하게 빛나는 자메 아스르 하사날 볼키아 모스크가 눈에 띄었다.


브루나이에 왔다는 것이 서서히 실감나기 시작했다.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던 왕국.

왕국이라는 단어에서 전해지는 묘한 아우라와 기류를 서서히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 해가 뜨면

나는 자메 아스르 하사날 볼키아 모스크에 가기로 했다.


그렇게 브루나이에서의 첫 번째 날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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