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11

D+10

짠내투어


브루나이에서의 메인 일정이었던 울루 템부롱 정글투어가 끝나니

일정에 대한 부담감이 사르르 녹아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나 울루 템부롱 정글투어가 브루나이의 메인 일정이 될 수는 있어도

브루나이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전세계에 딱 두 곳밖에 없다는 7성급 호텔!

(국제적으로 호텔은 최대 5성급까지로만 구분하고 있음. 7성급은 일종의 마케팅을 위한 용법.)


하나는 모두가 알고 있는,

가 본 적은 없어도 외관은 너무나 익숙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두바이의 버즈 알 아랍 호텔.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더 엠파이어 호텔이라는 곳인데 그 호텔이 바로 브루나이에 있다.


여행 전, 사실은 더 엠파이어 호텔을 두고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언제 다시 올 지 모르는 브루나이에 기왕 가는 거, 더 엠파이어 호텔에서 하룻밤이라도 묵을까.

아니면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서 투숙하진 못해도 구경만이라도 하며 대리만족을 할까.


끝내 나는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는 쪽으로 결정을 지었지만

막상 7성급 호텔을 무시하고 브루나이를 떠나자니 아무래도 성이 차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더 엠파이어 호텔에 가기로 했다.


더 엠파이어 호텔에서 할 수 있는 활동거리를 찾아보는 도중,

딱 두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수영장과 애프터눈티.


그러나 수영장은 이미 코타키나발루에 있을 때 다녀왔기 때문에 스킵하고

애프터눈티를 먹으며 호텔 전경을 눈에 담을 수 있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더 엠파이어 호텔의 애프터눈티는 한화 약 2만 원의 가격으로

샌드위치와 케이크, 스콘과 같은 디저트와 커피, 차를 무한리필로 즐길 수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을 해 보니

애프터눈티는 평일과 주말을 불문하고 매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호텔 로비에서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더 엠파이어 호텔의 [Dining] 탭을 클릭하면 [Lobby Lounge] 항목에 애프터눈티와 관련한 설명을 읽을 수 있다.


The perfect place to unwind with a selection of refreshments throughout the day and traditional English High Tea in the afternoon.

On weekends a tempting high tea buffet with mouth watering pastries and cakes are featured.

Take-away cakes and bread may also be ordered through the Lobby Lounge.


하루 종일 다양한 다과와 오후의 전통적인 잉글리쉬 티와 함께 ​​휴식을 취하기에 완벽한 장소입니다.

주말에는 입에 물을 바르는 패스트리와 케이크가 담긴 유혹적인 차 뷔페가 제공됩니다.

테이크 아웃 케이크와 빵도 로비 라운지를 통해 주문할 수 있습니다.


Operating Hours:

Daily Afternoon Tea from 2 pm to 6 pm


운영 시간:

오후 2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일 애프터눈티

 

Reservation:
Please call 241 8888 ext. 75008


예약 :
241 8888 내선으로 전화하십시오. 75008


현재 시각 오전 10시.


내가 투숙하고 있는 하이어 호텔에서 더 엠파이어 호텔까지는

걸어서 4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에 위치하고 있지만 차를 타고 가면 25분만에 도착할 수 있다.


나는 걸어서 가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두 가지의 선택지 중 하나를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무모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 실감하지만

이 때는 물가가 비싸다는 싱가포르에서의 일정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어차피 시간 남고, 어차피 할 게 없는 브루나이에서 사소한 풍경 한 장면이라도

더 눈에 담고자 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걸어서 더 엠파이어 호텔까지 가기로 했다.


먼저 호텔 1층에 있는 식당에서 철판덮밥으로 아침을 해결한 후

짠내를 풀풀 풍기며 4시간이나 걸리는 호텔로의 여정을 출발했다.


 


호텔을 떠난지 정확히 10분 만에 나는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에 땀범벅이 되고 말았다.

앞으로 3시간 50분이나 걸어야 하는데 벌써부터 선크림이 땀에 녹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더 엠파이어 호텔로 향하면서 가동 야시장을 지나가게 됐는데

엊그제 정신없이 팬케이크와 파파존 버거를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 한 40분 정도를 걸었을 때,

땀을 뻘뻘 흘리며 차도 끝자락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나를 보고 한 경찰관이 나를 보고 손짓했다.

태국에서도 바이크를 타다가 경찰에 적발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브루나이에서 경찰에 적발되고 말았다.



아무래도 외국인 혼자 텅 빈 차도 위를 혼자서 걸어가는 모습이

평범하게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니 경찰관은 나를 향해 국적을 물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

(경찰)


“나는 한국에서 왔어.

(영완)


“(땀을 흘리는 나를 보고) 괜찮아?

(경찰)


“매우 더워. 그러나 괜찮아.

(영완)


“대체 어디에 가는 거야?

(경찰)


“나는 더 엠파이어 호텔로 가고 있어.

(영완)


“걸어서?

(경찰)


“응. 걸어서 갈 거야.

(영완)


“그럼 이 길을 쭉 따라서 가다가 큰 길이 나오면 우회전을 해.

그러면 더 엠파이어 호텔로 갈 수 있어.

(경찰)


“......?????

(영완)


“좋은 여행이 되기를.

(경찰)


“...고마워.

(영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대화가 흘렀다.

경찰은 차가 빠르게 달리는 차도 위를 무방비 상태로 걸어다니면 위험하다는 경고나

날씨가 더우니 다트를 불러서 차량을 통해 이동하라는 조치도 없이

걸어서 3시간 여정을 걸어야 하는 나의 여정을 오히려 응원해주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물이라도 한 잔 얻어먹고 나올 걸 그랬다.

그래도 골치아픈 상황에 연루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며 마저 호텔로 향하기로 했다.


그렇게 10분 가량을 더 걸었을 즈음, 눈 앞에 쇼핑몰 건물이 보였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에어컨 바람을 쐬며 쉬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데

매정하게도 쇼핑몰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쇼핑몰 주변에 최대한 햇빛이 비치지 않는 바닥에 주저앉아 체력을 보충했다.


 


그런데 이 더위 속에서 계속 걸어서 가다보면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짠내는 여기까지만 풍기기로 결정했다.

간단하게 간식을 먹으며 배를 채운 후 그냥 다트로 차량을 불러 편하게 엠파이어 호텔까지 가기로 했다.


 


나는 쇼핑몰 주변에 있던 한 슈퍼에서 오렌지 크림빵과 콜라를 사서 먹은 후

사람 한 명 없는 쇼핑몰 바닥에 주저앉아 유유자적 시간을 흘려보냈다.


더위로 나간 멘탈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할 때, 나는 다트를 실행해서 차량을 불렀다.

그런데 콜을 받고 온 다트 운전자가 아침에 내가 호텔 1층 식당에서 철판덮밥을 먹을 때

바로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남자였던 것이다.


심지어 기사님이 나를 먼저 알아봐 주었다.

나는 속사포처럼 미치고 무모했던 나의 여정기를 들려주며 엠파이어 호텔로 가 달라고 말했다.



기사님은 호탕하게 웃으면시 엠파이어 호텔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리니

에어컨 바람을 쐬며 잠깐 눈이라도 붙이라며 나를 편하게 대해 주셨다.



 드디어 더 엠파이어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의 로비는 호화로운 느낌보다 고즈넉한 느낌이 더 강했다.



그냥 보았으면 몰랐겠지만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모든 금색이 실제 금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더 엠파이어 호텔 안에 있는 내 자신이 괜히 주눅이 들었다.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있는 프론트 직원의 도움으로

애프터눈티 로비에서 나는 애프터눈티 입장을 문의했다.


 



현재 시각 오후 1시 50분


“애프터눈티 입장을 하고 싶어요.

(영완)


“예약을 하셨나요?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아니요. 예약은 하지 않았어요. 2시부터 애프터눈티 타임이 열린다고 해서 왔어요.

(영완)


“이 호텔에서 투숙하고 있나요?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아니요.

(영완)


“몇 분이시죠?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저 혼자에요.

(영완)


“우선 지금 바로는 입장할 수 없어요. 예약이 다 차 있어요.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당황) 네??

(영완)


“오후 2시와 3시까지 모든 예약이 다 차 있어요.

만약, 이용을 원하시면 오후 4시부터 예약을 도와드릴 수 있어요.”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저 한 명인데... 어떻게 지금 바로는 안 될까요...?

(영완)


“죄송합니다. 현재로서는 모든 테이블이 다 예약석이에요.

그래서 예약은 4시부터 도와드릴 수 있어요. 예약을 진행해 드릴까요?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네, 일단 그렇게 해 주세요.

(영완)


“혹시 이 호텔에 계속 계실 건가요?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네.

(영완)


“혹시 지금 사용하는 핸드폰으로 브루나이 현지 전화를 할 수 있나요?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네.

(영완)


“전화번호를 알려주시겠어요?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로비 직원이 나의 전화번호를 예약자 명단에 기재함)


“만약 4시보다 빠른 시간에 빈 테이블이 생긴다면 제가 바로 전화를 드릴게요.

그러면 바로 이 로비로 와 주세요.”

(애프터눈티 로비 직원)


“진짜요?? 감사합니다.

(영완)


애프터눈티 테이블로 바로 입장할 수는 없었지만 이것도 어떻게 보면 괜찮게 전개된 상황이라 생각되었다.

덕분에 나는 여유있게 호텔 곳곳을 누비며 7성급 호텔의 뷰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애프터눈티는 식사가 아닌 디저트 개념이기 때문에 4시가 되기 전에 전화가 올 거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게 예약을 마친 나는 호텔 밖으로 나가 야외 수영장과 해변가를 걸어다녔다.


 

 


잔잔한 파도소리와 소리없이 얌전한 리조트.

전세를 낸 기분이라는 게 이런 기분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이 여유로운 감성을 파괴하는 것은 바로 더위였다.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 한 시간을 걸어오며 누적된 피로가 아직 완전히 가시지는 않아서

더이상 호텔 곳곳을 누비는 건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바다와 제일 가까운 벤치로 가서 드러누워 낮잠을 잤다.



그러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바로 애프터눈티 로비에서 걸려온 전화였으며

빈 테이블이 생겼으니 지금 바로 로비로 오라는 전화였다.


시간은 오후 3시밖에 되지 않았다.

기존 예약 시간보다 1시간이나 빨리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정말 좋았다.


 


테이블에 자리를 잡자 웨이터 분께서 잔에 스파클링 포도주스를 따라 주셨다.

이 스파클링 포도주스도 무한리필이며 잔이 비면 홀에 있는 웨이터 분들이 알아서 주스를 새로 따라 주신다.

톡 쏘는 자극적인 탄산은 아니었지만 시원했던 짙은 과일맛이 묘하게 중독성 있었다.

나는 커피와 차도 몇 번이나 다른 메뉴로 리필을 해서 마셨지만

그 어떤 음료보다도 나는 이 스파클링 포도주스가 제일 맛있었다.


몇 병 사서 한국으로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있었다.


 

 


기본 : 스파클링 포도주스

차 :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다즐링, 얼그레이, 캐모마일, 그린, 자스민, 페퍼민트

커피 :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카푸치노, 에스프레소


*주황색으로 색칠된 글씨가 리필할 때마다 주문했던 음료입니다.


먼저 디저트에 대한 얘기부터 하자면 디저트는 단연 케이크 종류(3층 접시)가 최고였다.

태어나서 이렇게 부드러운 케익 시트와 크림은 처음이었다.

3층 접시에 있던 케이크들은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모든 조각케이크가 입 안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았다.


그 탓인지 샌드위치 종류(2층 접시)가 평범하게 느껴졌고

스콘(1층 접시)은 전반적으로 퍽퍽해서 자주 손이 가는 맛은 아니었다.


그리고 차는 페퍼민트 차가 정말 맛있었다.

맛있었다는 표현보다는 깔끔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지도 모르겠다.

향긋하고 깨끗한 향이 입 안에 감돌 때의 그 시원한 느낌이 지금도 인상적이다.

계속되는 디저트 먹방에 입이 조금씩 물리는 느낌이 들 때 모금씩 마시면 금세 입이 개운해졌다.


한 가지 팁을 전하자면 음료를 리필할 때(스파클링 포도주스 제외)는

미리 리필을 주문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음료를 만드는 데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라 잔이 비었을 때 음료를 새로 리필 주문하면

디저트를 먹다가 느낄 갈증의 타이밍이 음료가 나올 때까지의 타이밍과 안 맞을 수 있다.



디저트를 먹으며 차를 마시는 데 로비 한 켠에서 피아노 연주와 한 소녀의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포함한 많은 관객들이 찬사를 보내는 공연이었다.


생각해보니 아이가 주인공인 공연을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무리 기억을 되새겨 봐도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니 아이가 주인공인 공연은 브루나이에서 본 것이 처음같았다.


소녀의 목소리와 음색은 정말 청아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피아노 선율도 무척 감미로웠다.


음악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았던 순간.


더 엠파이어 호텔에서의 애프터눈티가 더욱 특별한 이유다.


더 엠파이어 호텔 애프터눈티(디저트, 음료 무한리필) [1인] 24.2브루나이달러 (약 21,000원) / 2019.08 기준

싱가포르달러와 1:1 통용되어 싱가포르 달러로도 구입 가능(거스름돈은 브루나이 달러)



그렇게 배부르게 디저트 먹방을 끝내고 나는 하이어 호텔로 돌아갔다.

하이어 호텔로 다시 돌아갈 때는 처음부터 깔끔하게 다트를 이용해서 갔다.


 


하이어 호텔의 방으로 돌아온 나는 쉬는 시간을 가지며 해가 질 때를 기다렸다.

해가 지면 나는 엊그제 미처 보지 못했던 술탄 모스크의 야경을 보러 갈 것이다.


 

 


모스크의 야경을 보러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섰는데

해가 지는 하늘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계 3대 선셋을 볼 수 있다는 코타키나발루에서 본 하늘보다 훨씬 예뻤다.

짧은 시간마다 변하는 하늘의 모습이 신기해서 몇 걸음 걷다가 뒤돌아 하늘보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아예 뒤로 걸어가면서 하늘을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보정 하나 하지 않은 사진인데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황홀한 풍경에 넋이 나가 모스크로 가는 길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모스크에 도착하니 어느새 하늘은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고풍스럽게 빛을 내뿜는 술탄 모스크의 모습은 무척 위엄있어 보였다.


 


코타키나발루의 시티 모스크에 갔을 때 가장 아쉬웠던 것이

강에 모스크의 모습이 선명하게 비춰지지 않은 것이었다.


블로그나 사진에서 보았던 것처럼 강에 비춰진 모스크의 모습이 꼭 보고 싶었는데

그 소원은 브루나이에서 이룰 수 있었다.

황금색의 술탄 모스크가 어둠이 내린 강에 그대로 비추어져

데칼코마니와 같은 모습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으며 주변에 있던 모든 관광객들은 홀린 듯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이 곳에서 나와 같은 혼자 브루나이에 온 필리핀 남자 관광객을 만났다.

우리는 서로의 포토그래퍼가 되어 주며 사진을 찍어 주었고 많은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는 JTBC에서 방영된 드라마 <미스티>를 굉장히 재밌게 보았다며

한국 드라마에 대한 호평을 아끼지 않았는데

내가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원활하게 대화를 이어가기가 어려웠다.


그렇지만 만나는 외국인 관광객마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호의적이며

물어보지도 않은 한국 드라마와 K-POP 가수들을 언급하는 걸 보면서

내 나라 한국의 위상이 결코 낮지 않다는 것을 여러번 실감할 수 있었다.



술탄 모스크의 야경은 아름답다는 느낌보다

몽환적이고 신비스러운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그만큼 이슬람은 낯설고 신기했다.


모스크 주변을 돌아다니는데 스피커 방송으로 기도문을 읊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모스크의 위엄과 압도가 한층 더 강해지는 순간이었다.


 


술탄 모스크의 야경을 다 보고 호텔로 돌아온 나는 빨래를 돌리러 코인빨래방으로 갔다.

코인빨래방은 하이어 호텔의 로비 옆에 있으며 늦은 시간까지도 이용할 수 있다.


다음 날 아침이 아닌 이 날의 늦은 밤에 굳이 빨래를 돌린 이유는

싱가포르로 출국하기까지는 앞으로 이틀밖에 남지 않았는데

혹시라도 빨래가 다 마르지 않을 우려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부지런히 움직여서 여유롭게 빨래를 말리고 싶었다.

.

 

 


하이어 호텔 셀프 코인빨래방(14KG, 건조기능 선택X) [1회] 4브루나이달러 (약 3,500원) / 2019.08 기준

환급기에 금액을 넣은 후 환급받은 코인을 세탁기에 투입하면 세탁기가 작동됨(세제는 자동으로 나옴)


코인빨래방의 TV 모니터에 나오던 <겨울왕국>을 보며 빨래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엘사의 노래를 듣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세탁이 끝난 빨래를 들고 방으로 돌아오니 옷걸이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방 밖의 복도 난간에 널어 놓자니 불안해서

방 곳곳을 물색하며 옷을 걸 수 있을만한 모든 곳에 세탁물을 널어놓았다.

그러다 보니 안전고리에도 바지를 널게 되었다.


정말 열악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브루나이에서의 하루는 또 한 번 저물었고

그렇게 나는 또 새로운 하루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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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에 도착한 나는 낮잠을 자며 체력을 보충했다.


2시간 뒤,


잠에서 깬 나는 브루나이의 상징과도 같은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에 가기 위해 다시 호텔을 나섰다.


이번에도 모스크로 갈 때는 오전처럼 걸어서 움직였다.


 


그러나 모스크로 곧장 향하지는 않았다.


시간표처럼 정해진 대로만 일정을 소화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의자가 보이면 앉아서 쉬었다 가기도 하고 전봇대에 카메라를 걸어놓고 스냅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20분이면 올 모스크를

이 곳 저 곳 들려가며 오느라 1시간에 걸쳐 오게 되었다.


 

파랗지 않은 흐린 하늘이 다소 아쉬웠지만

모스크는 하늘과는 별개로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맑은 하늘 아래의 모스크를 보지 못해서 그런지

나는 밤이 되었을 때 모스크의 야경이 더욱 보고 싶어졌다.



모스크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발을 씻어야 한다.

모스크의 입구를 기준으로 좌측에 세족대가 있는데 나는 그 곳에서 시원한 물로 깨끗이 발을 씻었다.


 


복장을 갖춰 입은 후 모스크에 들어가려고 하는 찰나,

한 관리인 분께서 오늘 모스크 내에서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입장할 수 있는 구역이 한정되어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아쉽긴 했지만 모스크의 입장이 완전히 제한되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나마 조금은 안도할 수 있었다.


대신, 모스크의 중앙 홀의 사진 촬영을 허가해 주겠다고 하셨다.

원래 모스크 내부는 어떠한 이유로도 사진을 촬영할 수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블로그나 SNS에 사진을 게시해도 되냐고 물었는데

이 부분도 흔쾌히 동의를 해 주셨다.


 


이번 여행을 통해 매번 느낀 점은

브루나이에서의 사제복을, 코타키나발루에서의 이슬람 복장을 입은

나의 모습에서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통이면 낯설 법도 하고 어울리지 않을 법도 한데

이번 여행 동안 예절 겸 체험으로 입어 보았던 모든 복장은 내게 찰떡(?)같이 어울렸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내 사진을 본 주변 사람들도 모두가 그런 반응을 보였다.


 

 


모스크를 둘러보고 나오니 야경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밤이 깊어질 때까지 모스크의 주변을 돌아다니며

브루나이의 일상적인 모습들을 담기 시작했지만

생각 그 이상으로 브루나이는 심심하고 한적한 나라다.


이런 표현을 쓰고 싶진 않지만 나쁘게 표현하면 뭐 하나 할 게 없는 나라다.


느린 시간도 여행의 미학이라 생각하며 느끼기에

브루나이는 너무나 조용하고 차분한 나라였다.


그래서 나는 일정을 바꾸기로 했다.


모스크의 야경은 브루나이에 있는 동안에 하루로 날짜를 다시 정해서 오기로 하고

이제는 하루 종일 걸어서 모스크를 오가느라 많은 시간동안 굶주렸던 나를 위해

가동 야시장으로 가서 맛있는 야시장 음식을 먹으며 포만감을 느끼기로 했다.



천천히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하늘을 보고 걸으며 나는 가동 야시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가동 야시장까지 걸어서 가는 길은 꽤 험난했다.


가동 야시장으로 가기 위해선 원형차도를 건너야만 하는데

이 원형차도에는 보행자를 위한 신호등도 횡단보도도 없다.


오로지 눈치 하나로만 차도를 건너야만 하는데

그 때, 나는 차도 앞에서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는 한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 소녀는 나와 같이 가동 야시장에 가고 있던 참이었다.

그리고 겁에 질린 표정에 대한 이유는 나의 예상대로 횡단보도 건너기를 무서워하고 있던 것이었다.


 


나는 소녀에게 같이 가동 야시장까지 가자고 했다.

그리고 차가 달리지 않는 순간, 내가 빠르게 차도를 건널 테니

그 때, 바로 나를 따라서 차도를 건너라고 했다.


낯선 나라에서 내가 선두가 되어 누군가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입장이 된 게 처음이었다.

나, 그리고 소녀도 안전하게 이 차도를 건너야 한다.

그러나 매정하게도 많은 차들을 빠른 속도로 차도 위를 달렸고

우리는 한없이 차가 달리지 않을 때를 기다리면서 차도를 주시했다.


그래도 우리는 안전하게 차도를 건너 가동 야시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가동 야시장에서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다.







가동 야시장은 실내에 마련된 야시장이었기 때문에

연기가 자욱하고 불냄새가 야시장 안을 가득 메우고 있음에도

일반적인 야시장과 비교하면 훨씬 깔끔하고 쾌적한 분위기를 보였다.


<배틀트립>에 방송되었을 때가 야시장이 생긴지 두 달 정도 되었을 때라고 하는데,

지금으로 계산하면 거의 2년 정도가 지난 셈이다.


그럼에도 가동 야시장은 방송에서 보았던 것 그대로 깔끔하고 정돈된 모습이었다.


가동 야시장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으로 로이킴이 추천했던 파파존 버거.

사실 나도 <배틀트립> 방송을 보면서 파파존 버거의 맛이 제일 궁금했다.

마요네즈가 들어가면 다 맛있다는 에디킴의 말에도 공감이 가고,

비주얼적으로 봐도 제일 맛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가동 야시장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파파존 버거를 목놓아 말하며 찾아다녔다.

한참을 찾아다닌 끝에 파파존 버거를 발견한 나는 비프 파파존 버거와

맞은 편에서 판매하던 브루나이 전통 팬케이크를 같이 구입했다.

(파파존 버거를 주문할 때, 비프와 치킨 중 토핑을 고를 수 있다.

치킨은 먹어보지 않았지만 사장님께서 인기있는 메뉴는 비프라고 하셨고

실제로도 비프가 파파존 버거에 더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음.)


 

 


먹킷리스트 쇼핑을 마친 나와 소녀는 빈 테이블로 자리를 잡고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소녀는 배가 많이 고프지는 않다고 해서 나보다는 적게 먹었지만

브루나이 전통 팬케이크는 정말 맛있다고 해 주었다.


 


소녀는 브루나이 전통 팬케이크를 픽(Pick)했지만

나의 픽은 로이킴과 같이 파파존 버거다.

칠리소스와 마요네즈가 계란 지단에 어울려 내는 맛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파파존 버거가 만약 한국에 들어온다면

아마 핫도그와 샌드위치를 대신할 수 있다는 수식어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반면 브루나이 전통 팬케이크는 퍽퍽한 식감이 아쉬웠다.

크림이나 잼이 조금만 더 들어갔으면 훨씬 더 부드럽고 달콤한 맛을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소녀의 집이 있어서 우리는 귀가도 함께 하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에도 원형차도는 피할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손을 맞잡고 빠르게 원형차도를 뛰어 건넜다.


 

 


이번 여행 기간동안 들어갈 수 없었던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는

밤이 되자 더욱 위엄있고 웅장해 보였다.


끝내 내가 모스크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일지는 모르겠는데

밤하늘 아래에 독보적으로 밝게 빛나던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의 풍채는

마치 아무나 이 곳에 들어올 수 없다는 아우라를 풍기는 것 같기도 했다.

그 기분탓에 호텔로 향하는 내내 모스크에 대한 궁금증과 신비감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었다.


 


이 날 하룻동안 정말 많이 걸어다녔다.

몸도 발도 무척이나 피로한 상태였다.


호텔에 도착하면 나는 곧바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단잠에 들기로 했다.



호텔에 도착했더니 문턱 아래에 게스트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종이를 펼쳐 보니 울루 템부롱 정글 투어의 픽업 안내 메시지였다.


드디어 내일,


내가 브루나이에 온 목적이자

이번 브루나이 여행의 메인 일정이 되는

울루 템부롱 국립공원으로 정글 투어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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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9

D+8

가는 날이 장날


이슬람의 상징인 모스크.

이슬람교의 왕국인 브루나이에 와서 모스크 투어를 가지 않을 수 없다.

브루나이에는 대표적인 모스크가 딱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어젯밤 호텔의 복도에서 보았던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고

또 다른 하나는 브루나이를 상징하는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다.


오늘 나는 이 두 모스크에 걸어서 다녀올 예정이다.


땡볕 더위 속에서 다트 차량을 부르지 않고 굳이 걸어서 이동하는 이유는 경비를 절약하기 위함이었다.


인천공항에서 환전해 온 50만원 상당의 싱가포르 달러는 

브루나이에서 다 쓰지 않고 싱가포르에서도 쓸 예정이었던 데다가

싱가포르의 물가가 워낙 비싸다는 얘기가 자자했기 때문에

나는 애초부터 이번 여행을 계획할 때 경비 절약은

체류 기간이 제일 짧은 브루나이에서 하는 것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먼저 호텔에서 육안으로도 보이는 거리에 있는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로 향했다.


 

 


브루나이의 모스크는 코타키나발루에서 보았던 모스크와는 풍채부터가 달랐다.

코타키나발루에서 다녀왔던 UMS 모스크와 시티 모스크는 관광지의 이미지가 더 강했던 것에 비해

브루나이의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는 실제 왕의 저택에 들어온 것 같은,

모스크라는 단어를 정의하고 있는 듯한 고결한 아우라가 모스크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분수마저도 평화로워 보였던 정원을 지나 모스크의 앞에 도착한 나는

이제 복장을 입고 모스크 내부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기도 행사가 있어서 모스크를 개방하지 않는다는 공지가 적혀져 있었다.

그런데 모스를 개방하지 않는 것보다 더 아쉬웠던 것은 바로 폐쇄 기간이었다.

내가 브루나이에 있는 8월 12일까지 모스크가 개방하지 않는다는 소식에

어떤 날에, 어떻게 시간을 내서라도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에는

끝내 들어가지 못한다는 팩트가 나를 너무나 아쉽게 했다.



브루나이에서 맞이한 첫 아침의 첫 번째 일정에서부터 아쉬운 소식을 접한 나는

그렇게 쓸쓸히 모스크를 빠져나왔다.



그렇지만 이렇게 셀카라도 찍으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그리고 너무 아쉬워하지 말기로 했다.

이러한 상황 또한 계획없이 움직이는 배낭여행의 묘미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또 다른 모스크인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까지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면

그건 정말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을 것 같았다.


갑자기 불안감에 휩싸인 나는

원래 오후에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갈 예정이었던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에 지금 당장 가 보기로 했다.


 


몇 백년의 시간에 걸쳐 자라온 건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두꺼웠던 줄기의 나무를 지나,

횡단보도의 타이머가 전혀 맞지 않아 당황했던 고장난 신호등도 지나

브루나이의 상징,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에 도착했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안고 천천히 모스크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다행히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는 개방을 하고 있었다.


금요일이었던 당시, 나는 개장 시간(오후 4시 30분~5시 30분)에 맞춰 다시 모스크에 오기로 하고

이제 계속 걷느라 허기진 배를 채우러 모스크 주변의 식당을 찾아 나섰다.



계속 걸어다니며 먹거리를 찾아 다닌 나는

반다르세리베가완 터미널 앞에서 판매하는 브루나이 현지식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노란 밥의 색깔에 이끌려 특별한 맛을 기대하고 샀지만

특별한 맛은 개뿔. 니 맛도 내 맛도 없는 맛이었다.

허기진 배, 여행 경비 절약한다고 먹었으니 망정이지

어디 식당에서 음식 주문했는데 이런 맛 나왔으면 정말 열받았을 지도 모를 맛이었다.


그나저나 식사를 하다보니 이제 오늘의 일정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는 일단 갈 수 없고,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는 오후 4시 30분부터 입장할 수 있는 상황.


현재시각 오전 11시 30분.

다섯 시간동안 대체 어떻게 시간을 채워야 할까.


고민하며 인터넷을 검색하는 도중에

나는 현재 내가 있는 위치로부터 멀지 않은 거리에

캄퐁 아에르 수상가옥 마을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캄퐁 아에르 수상가옥 마을을 구경하기 위해선

수상보트를 타고 브루나이 강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선착장에서 가이드 기사님과 협상만 잘 이루어지면

무려 20달러(약 17,000원)의 가격으로 수상가옥 마을과 맹그로브 숲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걸음을 재촉하여 캄퐁 아에르 선착장에 도착했다.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수많은 보트들은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렇다. 호객행위가 시작된 것이다.

각 보트 안의 기사님들은 열심히 나를 부르며 손짓했지만

나는 원래 성격이 이 곳 저 곳 간보지 않고 한 우물만 제대로 파는 성격인지라

나와 제일 가까운 위치에 있던 보트의 기사님하고만 협상을 하기로 했다.


(캄퐁 아에르에 도착하기 전,

내가 어느 블로그에서 보았던 최고의 협상은 20브루나이달러에 1시간 30분 투어로,

투어 내용은 수상가옥 마을 구경과 맹그로브 숲에서 긴꼬리원숭이를 보는 것이었다.)

* 긴꼬리원숭이는 긴 코를 갖고 있어서 한국에서는 코주부원숭이라고도 불린다.


몇 시간 정도의 투어를 원해?

(보트 기사님)

 

“나는 1시간 30분의 투어를 원해. 얼마야?

(영완)


1시간 30분이면 40달러. 싱가포르 달러도 가능해.

맹그로브 숲에 가면 긴꼬리원숭이도 볼 수 있어.

빅 노즈 (코주부) 몽키! 몽키!

(보트 기사님)

 

“너무 비싸. 20달러 어때?

(영완)


20? 20달러는 곤란해.

(보트 기사님)

 

“그럼 25달러.

(영완)


그러면 1시간 30분에 30달러. 긴꼬리원숭이도 볼 수 있게 해 줄게.

(보트 기사님)

 

(흥정이 쉽지 않자 다른 블로그에서의 협상 후기도 읽어보기 위해 보트 기사님께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함.)

음... 잠깐만 시간을 줄 수 있겠어?”

(영완)


알겠어.

(보트 기사님)


(3분 뒤)


“(마지막 딜) 1시간 30분에 긴꼬리원숭이 보장. 25달러! 어때?

(영완)


안 돼. 25달러면 1시간만. 그래도 긴꼬리원숭이를 볼 수 있게 해 줄게.

그러나 30달러면 1시간 30분. 마찬가지로 긴꼬리원숭이는 볼 수 있어. 이 이상은 안 돼.

(보트 기사님)


계속해서 흥정이 길어지다 보니 어느새 나는 나에게 불만이 생기고 있었다.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 하나로 기껏 동경하던 브루나이까지 왔는데

겨우 5달러를 아끼겠다고 선착장 앞에서 길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내가 너무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급하게 내가 제안한 흥정을 파기시키고

보트 기사님이 제안한 30달러에 1시간 30분 협상을 체결하기로 했다.


“알겠어. 30달러에 1시간 30분.

대신 긴꼬리 원숭이 꼭 볼 수 있게 해 줘야 해.”

(영완)


OK. 내 보트에 타.

(보트 기사님)


캄퐁 아에르 수상가옥 마을+맹그로브 숲(긴꼬리원숭이 관람 포함)투어 [1인] 30브루나이달러(약 26,000원)

가이드와의 협상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 평균 20~40브루나이달러 내외

싱가포르 달러와 1:1 통용되어 싱가포르 달러로도 구입 가능(거스름돈은 브루나이 달러)


보트는 빠른 속도로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한적하고 넓게 트인 강 위를 달리다 보니 짜릿한 해방감이 들면서

가만히 있기만 해도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아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보트에 타기 전, 나는 기사님께서 보트 운전만 해 주시는 줄 알았는데 가이드의 역할도 같이 해 주셨다.

정말 그 어떤 가이드보다 책임감있게 가이드를 해 주셨다.


마을에 대한 설명과 보트를 타고 내릴 수 있는 제티의 위치,

그 외에 보트에서 보이던 브루나이 곳곳의 건물들에 대한 설명도 빠짐없이 알려 주셨다.


 


수상마을을 보는 내내

강 위에 있는 이 마을의 평범한 일상에 대한 궁금증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장을 보러 가기 위해 보트를 타고 육지로 나가는 생활이 평범한 일상일 테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창 밖으로 보이는 강의 모습도 평범한 풍경일 테다.

행여나 폭우가 내릴 때, 집이 침수될 걱정은 들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2호선 지하철을 타고 강남역으로 향하던 나의 평범한 일상과 비교하면

이들이 지내고 있는 평범한 일상은 나와 전혀 다른 세상 사람들의 일상처럼 생각되었다.


이런 마을에서 일상을 보내면 어떤 기분일까.


 


수상가옥 마을을 지나자 어느새 나의 시야에는 짙은 녹색만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트가 물살을 가르면 가를수록 더욱 울창해지는 양쪽의 풀숲과 늪지대의 눅눅한 풀냄새가 나를 반겨주었다.


낯선 광경과 낯선 감정.

지금까지 시골에서만 겪어본 자연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자연이었다.


브루나이의 자연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아니라

인간의 손이 닿을 수가 없는 곳 같았다.


극도의 위압감을 뿜어내던 맹그로브 숲의 자연에 나는 절로 숙연해지고 침착해졌다.


 


그리고 맹그로브숲 속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기사님의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바로, 긴꼬리원숭이를 찾기 위해서였다.


정적 속, 띄엄띄엄 새 소리만 들리던 울창한 숲 속에서

열심히 가이드를 해 주시던 기사님은 한 마디의 말도 없이 매서운 눈빛으로 숲 전체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행여나 엔진 소리 때문에 긴꼬리원숭이가 나타나지 않을까봐 보트의 속도도 최대로 낮추어주셨다.


그러나, 긴꼬리원숭이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기사님이 말씀하셨다.


“Try again?

(보트 기사님)


Yes.

(영완)


기사님께선 맹그로브 숲 일대를 한 번만 더 천천히 돌아보자고 하셨다.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그렇게 10분 가량을 또 천천히 달리며 보트 기사님은 나와 함께

맹그로브 숲 일대를 샅샅이 물색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긴꼬리원숭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기사님이 또 한 번 물어보았다.


“Try again?


나는 이번에도 Yes.”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세 번째 시도에도 긴꼬리원숭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긴꼬리원숭이를 보여주겠다는 기사님의 호언장담에 30달러 협상을 체결했는데

긴꼬리원숭이를 보지 못해 선착장으로 돌아가면 재협상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긴꼬리원숭이를 보지 못한 게 

의 문제지 기사님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답답한 갈등만이 계속되고 있었다.


세 번째 시도 끝에도 긴꼬리원숭이가 나타나지 않자

기사님은 원숭이들이 자고 있는 것 같다며 이만 선착장으로 돌아가자고 하셨다.

이에 나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선착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던 그 때,


“Hey! Hey! Hey! Hey! Hey! Hey! Hey! Hey!


갑자기 기사님이 작은 목소리로 나를 향해 다급하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기사님이 가리키던 손 끝을 바라보았는데


이럴 수가.


스무 마리 가까이 되는 긴꼬리원숭이들이 나무를 타면서 숲 속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탄성을 내질러 버렸다.


기뻐하는 나의 모습을 본 기사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나와 함께 덩달아 웃음을 지었다.


 

 


 기사님께서는 내가 긴꼬리원숭이를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나무의 바로 앞까지 보트를 끌고 들어가 주셨다.


덕분에 나는 긴꼬리원숭이들의 개구진 얼굴까지 제대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인근에 있던 다른 보트들도 긴꼬리원숭이를 찾아 헤매는 건 마찬가지였나보다.

나의 보트 기사님께서는 다른 보트 기사님들에게 손짓을 하며

지금 여기에 긴꼬리원숭이들이 있다고 가르쳐주었다.


내 기사님이 다른 기사님들에게 긴꼬리원숭이가 있는 장소를 알려주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선착장에서 이 기사님의 보트를 선택해서 타길 잘했다는 생각이 마구 들기 시작했다.


긴꼬리원숭이들이 시야에서 벗어나자 나는 함박웃음을 지은 얼굴로

기사님께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기사님의 사기를 최대로 북돋아 주었다.


기분좋은 마음으로 맹그로브 숲을 빠져나와 다시 수상가옥 마을 주변으로 향하는데

기사님께서 갑자기 어느 다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셨다.



이 다리는 브루나이에서 판매하는 생수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다리인데

기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 다리는 한국 기업이 지었다고 한다.


나중에 인터넷에 찾아보니 실제로 이 순가이 브루나이 대교는 한국의 대림산업에서 지은 다리로

문재인 대통령이 동남아시아의 3개국을 순방할 때 방문한 적이 있던 다리였다.


 


수상가옥 마을에 내린 나는 기사님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마을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걸어다니는 내내 눈 안에 담겼던 모든 모습들은 궁금증의 대상이 되어 주었다.


수상가옥 마을에서 선착장으로 올 때는 보트로만 올 수 있다.

마을 안에 있는 아무 제티에 가서 기다리다 보면 기사님이 보트를 태워 주시는데

이 때 보트 탑승 비용으로 1달러(약 870원)를 지불해야 한다.


캄퐁 아에르 수상가옥 마을과 맹그로브 숲 투어를 마치고 나니

가격 때문에 1시간 투어를 선택하지 않은 게 정말 현명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협상에서 이기려고 1시간 짜리 투어를 선택했다면 긴꼬리원숭이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나중에 호텔로 돌아와서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도 보다 보니 긴꼬리원숭이를 보기 위해서

두세 번씩 맹그로브 숲을 다시 도는 건 비일비재한 경우였다.


만약, 브루나이에 가서 울창한 맹그로브 숲 속에 있는 긴꼬리원숭이를 보고 싶다면

기왕 여행하는 김에 안전하게 1시간 30분짜리 투어를 골라

긴꼬리원숭이를 볼 시간을 버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팁을 전하고 싶다.


캄퐁 아에르 선착장에 도착한 나는 호텔로 돌어가서 쉬는 시간을 갖다가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의 개방 시간에 맞춰 다시 나오기로 했다.


 


여행 일정 동안 상대방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시간을 컨트롤하며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혼자 떠나는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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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8

D+7

국제미아


2019년 8월 8일 목요일,

오전 6시.


드디어,

브루나이로 가는 날의 아침이 밝았다.


나는 7시에 호스텔에서 나와 선착장이 되는 제셀톤 포인트까지

그랩 차량을 부르지 않고 걸어서 이동할 것이다.


왜냐하면 코타키나발루에 있는 기간은 총 8일이었지만

내가 구입한 유심 카드는 7일간 이용이 가능한 유심 카드였기 때문에

8일째가 되는 오늘부터는 더이상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 나의 계획이었다.

어차피 8일째 되는 날의 아침 일찍 나는 브루나이로 떠날 예정이었기 때문에

7일 유심 카드를 구입해도 크게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의 마지막 조식을 먹고 호스텔을 나서려고 하니 시간은 7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호스텔에서 제셀톤 포인트까지는 걸어서 가도 여유있게 30분 정도 걸리는 데다가

페리는 8시 30분에 출항을 하니 서두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호스텔에서의 마지막 아침을

조금이라도 더 느긋하게, 한편으로는 더 느리게 시간을 만끽하면서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여유로움을 가지며 움직여 보기로 했다.



오전 7시 20분.


나는 제셀톤 포인트로 출발하기로 했다.

8시 즈음에 제셀톤 포인트에 도착하면

천천히 선착장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간단한 주전부리를 사 들고 페리에 탑승하기로 했다.



안녕~ 코타키나발루!”


나에게 있어서 6박 7일은 너무나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 시기에 라비@사바 호스텔에 있던 투숙객 중에서는

내가 가장 오랫동안 투숙을 하고 있던 사람인지라

호스텔 매니저 부부와 이 곳에서 함께한 각 나라 여행객들,

그리고 깔끔하고 아늑했던 이 곳의 모든 시설까지도 그새 많은 정이 들어버렸다.


호스텔을 나서니 하늘에선 가늘게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나의 몸은 샤워를 한지 채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비와 땀으로 범벅이 되고 말았다.


오전 7시 58분.


나는 배 안에서 먹을 주전부리를 사기에 앞서

브루나이 행 페리 티켓을 구매했던 4번 창구로 가서

내가 탈 페리의 선착장 위치를 먼저 파악하기로 했다.


코타키나발루에서 브루나이로 가는 페리 티켓 구입 방법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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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독해주세요.

(위 타이틀을 클릭하면 해당 게시글이 새 창으로 띄워집니다.)


나는 나의 티켓을 발권해 주었던 직원에게 내 티켓을 보여주면서

이제 곧 브루나이로 가는 페리에 탑승할 예정인데

어디에서 페리를 기다리면 되냐고 묻자

직원은 내게 “Now! Go!” 라고 소리쳤다.


직원의 호통에 나는 당황했다.


아직 시간 30분이나 남아있는데 왜 이렇게 보채?’


일단 직원의 말에 따라 서둘러 캐리어를 끌고 선착장 쪽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선착장이 어딘가 허전했다.



국경을 이동하는 페리의 출발을 30분 앞두고 있는 선착장으로 보기엔 너무나 허전했다.

심지어 캐리어를 끌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밖에 없었다.


적적한 선착장의 풍경에 당황하고 말았다.


오전 8시.


어떻게 된 거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참고로 이 상황에서의 나는


유심 카드 기간 만료,

호스텔 체크아웃 완료,

지폐 링깃 전액이 소진(동전만 소액 남아 있었음)된 상태였다.


그리고 심지어 브루나이에 도착하면

2학기 수강신청도 해야 하는 상황.


책에서만 보던,

블로그에서만 보던,


소위 말하는 국제미아가 되 버린 걸까.




……




망했다.

진짜 망했다.


속된 말로 x 됐다.


아니 그런데,

출발하기까지는 아직 30분이 남아 있는데...


대체 무슨 일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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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7

D+6

결판의 날


코타키나발루에서 온전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밝았다.

내일이 되면 나는 페리를 타고 브루나이로 넘어간다.


이 얘기인즉슨,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쁠라우띠가 섬 투어 일정을 더이상은 미룰 수 없는,

이 날의 날씨에 나의 스노쿨링과 머드체험 등의

해양 스포츠 일정 여부가 판가름이 나는 결판의 날이 밝은 것이다.


전날 밤, 잠에 들기 직전까지도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며 잠에 들었는데

과연, 나는 무사히 쁠라우띠가 섬에 들어갈 수 있을까.


알람 시간에 맞춰 떠진 눈.

나는 재빠르게 이불 밖으로 나와 창밖을 바라보았다.


 


야속할 정도로 하늘에는 희뿌연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고 이내 강한 빗줄기를 매정하게 뿌리기 시작했다. 


하.. 씨x..


그래도 동남아시아는 스콜성 비가 자주 내리는 편이니 금세 비가 그쳐 다시 해를 띄우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 혼자만의 애처로운 희망고문에 불과할 뿐이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내 생각에는 투어가 취소될 것 같아. 픽업 장소로 나가지 않아도 되지?


(8분동안 아무런 답장이 없자)


우선 나는 호스텔의 픽업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영완)

 

좋은 아침 친구.

아... 오늘 쁠라우띠가 섬 투어는 헤비급 비 때문에 다시 취소되었어.

(도라)

 

이럴 수가... 쁠라우띠가...

(영완)



끝내 나는 코타키나발루에서의 해양 스포츠는 경험하지 못한 채 브루나이로 넘어가게 되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호스텔로 들어와 토스트를 먹으며 오늘의 일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때, 엊그제 탄중아루 비치에서 만나 필리피노 야시장에서의 먹방을 함께한 대니형 일행이 떠올랐다.

만약 형들의 일정에 정해진 계획이 없다면 대니형 일행과 하루를 보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일정을 조율하기 위해 대니형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는데

형들도 오늘 해양 스포츠를 하기 위해 가야섬에 들어가는 일정이셨다고 했다.


현지에서 해양 스포츠를 예약한 나와 달리

형들은 한국에서 미리 여행사를 통해 예약을 하고 온지라

취소를 확정받기까지의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만약 해당 여행사로부터 취소를 확정받으면 형들은 나와 함께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형들은 계속해서 지체되는 취소 확정에 지치기라도 했는지

일단 아침을 먹으며 취소 확정을 기다리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형들은 내게 아침 식사를 함께 하자며 나를 로컬 식당으로 부르셨다.


 


그렇게 이틀 만에 나는 대니형 일행을 이마고 쇼핑몰 주변 로컬 푸드 식당에서 다시 만났다.

형들은 여행사의 늦어지는 대처에 답답해하시며

빠른 취소 확정과 현지에서 환불에 대한 확신을 받은 나를 부러워했다.


그러면서 일행 중의 한 명이던 대이빗 형이

만약에 가야섬 투어가 취소되면 악어나 보러 가실래요? 코타키나발루에 악어 농장 있다고 하던데...라며

악어 농장에 대한 존재를 알려 주셨다.


그런데 아직 형들은 가야섬 일정에 대해서 취소를 확정받은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악어 농장 일정에 섣불리 OK를 하지 않았고

호스텔에서 블로그 작업을 하다가 따로 새로운 일정을 계획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호스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 때, 형들이 드디어 여행사로부터 가야섬 일정에 대한 통보를 받았다.

가야섬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된다고 한다.


그런데 대니형이 내게 자신을 대신해서 가야섬에 갈 의향이 있냐고 물었다.

대니형은 막상 가도 자신이 생각하던 바닷속의 풍경을 보지 못할 것 같다며

가야섬 일정을 자진해서 포기하셨다.


순간 엄청난 고민에 휩싸였다.


그런데 내가 쁠라우띠가 섬에 가기로 했던 이유가

가야섬이나 사피섬에 비해 보다 적게 찾는 관광객의 수와

그로 인해 더 깨끗하게 보존된 섬의 깨끗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쁠라우띠가 섬을 대신하는 일정으로 가야섬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 외에 답변을 전해야 하는 시간적인 상황도 촉박했던지라

나는 대니형에게 가야섬에 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렇게 대니형은 마사지 샵으로, 나는 호스텔로,

제임스 형과 대이빗 형은 가야섬으로 향했다.


대니형과 둘이서 새로운 일정을 계획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대니형과 카카오톡을 나눌수록 대니형은 느긋하게 쉬면서 시간을 보내는 걸

더 선호하시는 편이신 것 같아 혼자서 일정을 계획하기로 했다.


 


호스텔로 돌아온 나는 노트북을 켜고 코타키나발루에서의 당일치기 일정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땅한 장소가 눈에 띄지 않았다.


탄중아루 비치, 필리피노 마켓, 워터프론트몰, 이마고 쇼핑몰, 야외 수영장,

블루 모스크, 핑크 모스크, 반딧불 투어, 스쿠터 질주, 브리즈 비치 클럽, 선데이 마켓...


코타키나발루에서 해양 스포츠를 빼고 할 수 있는 액티비티는 다 한 상황이었다.


그 때, 대이빗 형의 악어 농장 언급이 뇌리를 스쳤다.


검색을 해 보니 악어 농장은 차로 약 40분 정도 걸리는 다소 먼 위치에 있지만

어차피 시간은 오늘도 제약될 것이 없었고,

한국에서 보기 힘든 악어라는 동물을 보면서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열리는 악어쇼에 참석하는 것이

지금의 상황에서 세울 수 있는 최고의 일정일 것 같았다.


악어쇼가 시작되기까지는 약 2시간 30분 정도를 남겨두고 있는 상황.

나는 제셀톤 포인트로 가서 쁠라우띠가 섬 투어의 비용을 환불받은 후

그랩을 이용하여 투아란 악어 농장으로 향했다.



[환불] 쁠라우띠가 섬 투어(스노쿨링, 장비, 호텔 픽업, 식사 포함) 240링깃(약 70,000원)


쁠라우띠가 섬 투어를 현지에서 저렴하게 예약하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말레이시아②] 쁠라우띠가 섬 투어와 브리즈 비치 클럽 바비큐 현지에서 예약하기 편을 정독해주세요.

(위 타이틀을 클릭하면 해당 게시글이 새 창으로 띄워집니다.)


그랩을 타고 투아란 악어 농장으로 향하는 도중,

기사님께서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짚어주셨다.

그것은 바로 투아란 악어 농장에서 제셀톤 포인트로 돌아올 교통편이었다.


투아란은 제셀톤 포인트와 달라. 여기처럼 그랩이 쉽게 잡히지 않을 거야.

(그랩 차량 기사님)

 

왜?

(영완)

 

시내로부터 너무 떨어진 곳이라서 그랩 차량이 거의 없어.

돌아올 교통편에 대한 준비는 되어 있어?

(그랩 차량 기사님)


아니..

(영완)


그러면 내가 투아란 악어 농장에서 돌아갈 때도 널 데려다 줄게.

(그랩 차량 기사님)


정말??

(영완)


물론이지.

(그랩 차량 기사님)


정말 고마워. 난 감동받았어.

악어쇼는 3시부터 시작되니 빠르면 4시, 아무리 늦어도 5시를 넘기지 않을게.

(영완)


알겠어.

(그랩 차량 기사님)


친절하신 그랩 차량의 기사님 덕분에 나는 악어 농장으로 가는 길에

돌아오는 교통편까지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40분 동안 열심히 달린 우리의 차량은 어느덧 투아란 악어 농장에 도착했다.


 


투아란 악어 농장 [1인(성인)] 30링깃(약 8,700원) + 세금 1.8링깃(약 520원)

→ 31.8링깃(약 9,200원) / 2019.08 기준


나른한 시간 오후 2시,

농장에 있던 모든 악어들은 부동자세를 취하거나

유유자적하게 물 위를 헤엄치며 조용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농장의 한적함에 다소 당황했지만

그러면서도 악어가 가끔씩 예고없이 몸을 움직이곤 했다.

크게 움직인 것도 아닌데 악어가 움직일 때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농장 곳곳에 있던 팻말들을 읽어보니 악어들의 평균 나이대가 60~70세였다.

악어들의 유유자적함을 바로 수긍하게 되었다.


악어님들. 편히 계세요. 얌전히 보다 갈게요..


 


그렇게 악어 농장을 둘러보는 도중, 갑자기 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바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악어 농장의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신나는 비트에 비해 너무나 움직임이 없던 악어들의 반응이 다소 민망했다.)


말레이시아에 온 이후 K-POP이 들렸던 적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마고 쇼핑몰에서는 NCT127, 트러블메이커, 티아라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코타키나발루에서의 불금을 즐기기 위해 가야 스트리트 야시장으로 가는 도중,

루카스 일행과 함께 탔던 그랩 차량의 기사님의 휴대전화에는 아이콘의 노래가 세 곡이나 있었다.


NCT127_無限的我(무한적아)

코타키나발루 이마고 쇼핑몰 / 2019.08.05


Trouble Maker(현승, 현아)_Trouble Maker(트러블메이커)

코타키나발루 이마고 쇼핑몰 / 2019.08.05


T-ARA(티아라)_SEXY LOVE

코타키나발루 이마고 쇼핑몰 / 2019.08.07


한국에서 보도하는 K-POP의 해외인기에 대해서 솔직히 과장하는 건 아닐까 싶었는데

이번 여행을 계기로 K-POP의 진실된 해외 인기와 내 나라 한국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악어 농장을 다 둘러보고 나니 어느새 시간은 악어쇼가 시작될 시간과 가까워져 있었다.

서둘러 공연장에 갔더니 나를 악어 농장까지 태워다 준 그랩 기사님이 악어쇼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사님께서도 악어 농장 주변에 있으면 어차피 손님을 태우지 못할 테니

나를 기다리면서 악어 농장을 구경하려고 하시는 것 같았다.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가 기사님께 인사를 건넸다.

기사님의 배려심에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죄송한 마음이 같이 들었다.


 

 


 악어쇼를 보면서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들었다.

보기만 해도 위협적이고 무서운 악어가 있는 물 속에

맨발로 들어가 맨손으로 악어를 유인하는 사육사의 조련에 감탄하면서도


악어를 하나의 생명체로 생각했을 때는

인위적으로 악어를 작대기로 자극하며 물밖으로 유인하는

조련 방법이 꽤나 가학적이라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또, 행여나 돌발적인 상황이 일어나

사육사가 악어에게 물리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싶은 걱정과

인간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정해진 시간마다 억지로 작대기를 맞으며

물밖으로 나와야하는 악어에 대한 걱정이 같이 들었다.


악어쇼가 끝나자 모든 관객들이 박수와 환호로 악어쇼에 화답했다.

나도 박수를 보내긴 했지만 마냥 밝은 얼굴로 악어쇼에 화답할 수는 없었다.


 


악어쇼를 다 보고 악어 농장을 나오면서 나는 일부러 나를 위해

악어 농장에서 시간을 할애해주신 기사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시원한 콜라 한 캔을 사 드렸다.


 


그렇게 쁠라우띠가 섬을 대신해서 악어 농장에서 오늘의 새로운 일정을 소화한 나는

KFC에 들러 간단하게 간식을 먹었다.

메뉴 이름이 기억나진 않지만 치킨에 수프 쏟은 맛이 났다.


맛이 없었다는 얘기다.



간식을 먹으며 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호스텔에 도착했다.

호스텔에 도착하고 나서는 짐 정리를 하면서 내일 아침 브루나이로 떠날 준비를 했다.


 


나는 호스텔 매니저에게 내일 아침 일찍 호스텔을 떠나야 하는

내 상황을 설명하며 얼리 체크아웃을 요청했다.


그렇게 내일을 위한 준비가 얼추 마무리가 되고 나니

나는 호스텔 테라스의 쿠션의자에 누워 코타키나발루에서의 마지막 야경을 눈에 담기로 했다.


그 때, 갑자기 대니형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마고 쇼핑몰의 아래에 매일 저녁마다 라이브 공연이 열리는 바가 있는데

그 곳에서 공연을 보며 같이 맥주를 마시자는 전화였다.

너무나 고마운 제안에 나는 렌즈를 끼지 않은 상태였는데도(나는 렌즈를 빼고 나면 웬만해서 외출을 하지 않는 편이다.)

바로 대니형이 알려준 징 레스토랑 바로 내려갔다.


 


아침 식사를 함께한 이후 다시 만난 형들에게 나는 오늘 하루 일정에 대한 얘기를 물어보았다.

대니형은 마사지 샵에 가서 편하게 마사지를 받은 후 숙소에서 여유있게 쉬면서 시간을 보냈고,

대이빗 형과 제임스 형은 동물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대이빗 형과 제임스 형에게 가야섬에 대한 일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된다고 해서

가야섬에 간 게 아니냐고 물어보니까

가야섬에 가는 배에 타려고 하는 순간, 아주 잠깐동안 내린 비 때문에

그 자리에서 바로 가야섬 일정에 대한 취소를 통보받았다고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형들이랑 악어 농장 같이 다녀올 걸..


형들 일행 중에서 이 날, 결국 최고의 승자는 대니형이었다.


무르익는 분위기 속에 점점 시간이 흘렀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바는 라이브 공연을 시작할 시간이 되어 있었다.



라이브 공연이 시작되었다.

전주가 흘러 나오는데 나와 형들은 모두 놀란 표정을 지은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라이브 가수들이 인디가수 숀의 ‘Way Back Home’을 영어로 개사해서 부르는 것이었다.

코타키나발루에서의 마지막 밤을 코타키나발루에서 친해진 한국인 형들과 한국 노래에 맥주를 마시며 보내게 되었다.


정말,


정말이지 행복했다.


이런 순간은 몇 달 전부터의 계획으로도 실천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 날, 나는 형들에게 나의 명함을 건네주었다.


 


여행을 계기로 금연을 실천하고 있었는데

술이 몇 잔 들어가고 대니형이 밖에 나가 연기를 뿜고 있으니 견디기가 힘들었다.


탄중아루 비치에서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 주었고,

필리피노 야시장에서도 나에게 줄 망고를 제일 먼저 구매해 준 유독 고마운 대니형과

맥주를 마시러 바에 내려갈 때, 나를 부르자는 얘기를 먼저 꺼냈다는 대이빗 형과 제임스 형.


코타키나발루에서 나와 함께한 모두가 뜻깊고 소중한 인연이지만

대니형 일행은 유독 더 기억이 짙게 남는 인연이다.

같은 한국인이었다는 동질감도 이유가 되지만

함께한 즐거운 시간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았기 때문인 것 같다.


한국에 돌아갔을 때,

자주 만나자는 그런 지키지도 못할 빈말은 서로가 하지도 않았지만

언젠가는 꼭, 한국에서 다시 만나 우리는 이 날처럼 다시 한 번 잔을 부딪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반딧불 투어에서 나의 말벗이 되어 주고,

나의 쁠라우띠가 섬 투어 일정을 위해 투어 스케줄을 강행하고 있는 도중에도

나의 카카오톡 문의에 불철주야 답장을 해 주었던 도라.


도라는 내가 브루나이로 떠나기 전, 같이 술을 한 잔 하자고 했었는데

우리는 그 약속을 오늘 실현하기로 했다.


대니형 일행과 헤어진 나는 도라의 퇴근 시간에 맞춰 필리피노 마켓으로 향했다.

도라는 나를 위해 코타키나발루의 현지 안주인 꼴뚜기 꼬치 구이와 생선 구이를 사 주었다.


 


예정보다 꽤 늦어진 도라의 퇴근과

내일 아침 일찍 브루나이로 가는 페리에 탑승해야 하는 나의 상황을 고려하여

결국 술은 마시지 않기로 했지만 도라와 나는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하며

코타키나발루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도라는 나를 제셀톤 포인트에서 처음 봤잖아. 그 때, 첫인상이 어땠어?

(영완)

 

 코타키나발루는 거의 가족끼리 오거나 연인들이 오는 경우가 많아서 좀 놀랐어.

(도라)


아, 혼자라서?

(영완)

 

 응. 왜 혼자 왔지? 싶었어.

(도라)


반딧불 투어에서 다시 만났을 때,

너가이드님께 나를 한국어로 ‘제셀톤 친구’라고 소개해 주었을 때 무척 고마웠어.

(영완)


“(웃음) 그 때 떠오르는 단어가 그냥 제셀톤 친구였어.

(도라)


 


이 날, 나는 한국의 술인 소주를 궁금해 하는 도라에게

입으로 소주병 따는 소리 내는 개인기를 가르쳐 주면서

앞으로 한국인 관광객들을 만나면 이 개인기를 선보여 보라고 했다.


도라는 입으로 내는 똑딱 소리가 꽤나 재미있게 들렸는지

계속 빵 터지면서 다음에 만나게 될 한국인 관광객에게 이 개인기를 선보이겠다고 약속했다.


혹시라도 가이드님께서 이런 거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보면 제셀톤 친구한테 배웠다고 하라 했다.



이제 나는 코타키나발루에서의 모든 일정을 끝마쳤다.


도라와 헤어지고 혼자 호스텔로 돌아오는데

계속 마음 한 편에서 아쉬운 기분이 일렁였다.

아직 누빌 나라가 두 곳이나 남았는데 왜 이렇게 아쉬운 걸까.



이유가 없다.

그냥 끝은 언제나 아쉽다.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기다 보니

내일 아침, 잠에서 깨면 새로운 나라로 이동한다는 설렘과

코타키나발루에서의 끝을 맺고 싶지 않았던 아쉬운 기분이 함께 들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잠에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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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6

D+5

내가 먼저


방을 바꾸면서 침대도 2층으로 옮겨졌다.

2층 침대는 초등학교 때 동생이랑 썼던 때가 마지막이었는데

오랜만에 어릴 때 생각도 나고 좋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도 정해진 일정은 없다.

조식을 먹으며 천천히 오늘의 일정을 어떻게 채워 나갈까 생각해 보았다.

오늘의 조식에는 어제 대니형 일행으로부터 선물받은 달콤한 망고가 함께했다.



쁠라우띠가 섬 투어의 첫 예약이 취소된 이후 다시 잡은 새 예약일은

내가 코타키나발루에 있는 마지막 날이 되었다.


만약 이 날도 비가 오게 되어 예약이 취소되게 되면

나는 코타키나발루에서의 해양 스포츠를 끝내 경험하지 못한 채

브루나이로 가게 되기 때문에 내일로 변경된 예약을 앞당기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도라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다.

혹시라도 취소건이 생겼다면 내가 그 자리를 메꾸고 싶었다.


카카오톡은 8월 5일에 나눈 내용



“안녕, 친구(도라). 내일(8/6) 취소된 예약 있어?

7일도 가능하지만 6일에 갈 수 있다면 나는 6일에 가고 싶어.

만약, 7일에도 비가 오면 다음 날(8/8)에 내가 브루나이로 가야 하기 때문에 불안할 것 같아.”

(영완)


“알겠어 친구. 내가 계획을 확인해 보고 너에게 알려줄게.”

(도라)


“정말 고마워.

(영완)


(1시간 30분 후)


“안녕, 친구. 이미 내 계획을 물어보았어. 내일은 이미 예약이 다 차 있어서 함께할 수 없어.

8월 7일은 괜찮아.”

(도라)


“어쩔 수 없지. 비가 오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8월 7일로 할게. 나중에 셔틀 차량의 번호를 알려 줘.”

(영완)


“알겠어. 만약 8월 7일에도 비가 온다면 우리는 너에게 쁠라우띠가 투어의 비용을 환불해 줄게.

내일 밤, 스케줄이 잡히면 셔틀 차량 번호를 말해 줄게.

(도라)


만약, 내일도 비가 와서 쁠라우띠가 섬에 갈 수 없다고 가정하면

지금까지 나는 코타키나발루에 온 이후 한 번도 해양 스포츠를 즐기지 못한 것이 된다.

그래서 오늘은 혹시 모를 비 내릴 내일을 대비해 쁠라우띠가 섬 투어를 대신할 수 있는 레저를 즐기기로 했다.


그리하여 정해진 오늘의 일정.

바로 호스텔에 있는 야외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 것.


래쉬가드로 수영장에 들어갈 마친 나는 호스텔의 6층에 있는 야외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으로 가는 길이 잘 꾸며져 있었다.

작은 수로에는 잉어들이 많이 있었는데 인공적인 공간에 있는 잉어들의 모습이 무척 신기해서 구경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관리인 분께서 먹이를 잘 챙겨 주시는지 살찐 잉어들이 정말 많았다.


수영장에 도착을 하자 관리인 아저씨께서는 내게 투숙 중인 호스텔의 키를 보여달라고 하셨다.

키를 받으신 아저씨께서는 호스텔의 키에 기재되어 있는 일련번호를 확인하시고 나를 수영장으로 입장시켜 주셨다.


 

 


수영장 시설은 대체적으로 잘 마련되어 있었다.

비록 수영장에서 볼 수 있는 뷰의 반경에 바다가 포함되진 않았지만 호스텔의 가격대에 비하면 그것은 욕심이다.

물의 깊이도 적당했고 내가 좋아하는 썬베드도 구비되어 있었다.


만약, 물놀이에 비중을 크게 두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 규모의 수영장이 아쉬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사람 많고 북적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충분히 만족하면서 수영을 즐길 수 있었다.


내가 방문한 시간대가 오전이었어서 그런지 수영장에는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대다수였다.


 


코타키나발루에 있는 내내 비행기가 이륙하는 모습을 정말 많이 보았다.

공항과 시내가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여행객이라 그런지 나는 잦게 들리던 비행기의 이륙 소리조차도

소음이 아닌 여행의 감성을 북돋아 주는 일상음과 같이 여겼다.


썬베드에 누워 비행기가 날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각 비행기마다 붙혀진 항공사 로고를 계속 눈에 담는 것.


내가 살고 있는 서울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어렸을 때 수영을 배웠던 기억을 떠올려 풀장을 자유롭게 누비며 몇 년 만에 수영 실력(?)을 발휘해 보았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체중이 늘어서 그런지 금세 호흡이 딸렸다.

수영 도중에 가쁘게 숨을 내쉬는 내 자신을 발견하며 나는 착잡한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두 시간 가량이 지났을까.

수영을 하며 급격히 칼로리를 소모시킨 나는 식사를 하기 위해 호스텔을 나섰다.

식사는 호스텔로부터 도보로 약 10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로컬 푸드 식당에서 해결했다.


 

 


오늘의 점심은 해물 볶음밥과 아이스 밀크티.

물놀이 후에 먹어서 그런지 더 맛있었고 다른 때보다 더 허겁지겁 먹었다.


 


맛있게 식사를 하다 보니 주방의 옆에서 접시에 자신이 먹을 음식을 담는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소녀는 나의 주문과 서빙을 담당하는 이 식당의 아르바이트생같았다.

사실 아르바이트생이라고 말하기에도 소녀는 너무나 어려 보였다.


열심히 일을 한 후에 식사를 하려는 이 소녀.

어린 나이에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기특해 보였다.

이 소녀가 든든하게 한 끼를 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햄버거가 좋아서 햄버거 아르바이트를 했었던 내가 맥도날드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후식으로 말레이시아에서만 먹을 수 있는 쳄페닥 맥플러리와 콘파이를 먹었다.



쳄페닥은 태어나서 난생 처음 들어본 열매였다.

두렵지만 과감하게 도전해 보았다.

식감은 찰진 옥수수와 같았는데 향은 망고 비스무리한 향이 나면서 찐득한 시럽 맛이 함께 났다.

타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생소함에 한 번 쯤은 도전해 볼만 하지만 두 번은 찾지 않을 맛이었다.


 


그러나 콘파이는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꽉찬 옥수수 크림과 바삭한 파이의 겉면은 한국에서 판매되던 콘파이와 확연하게 달랐다.

한국 맥도날드에서 콘파이가 재출시된다고 하는데

조만간 맥도날드에 들러서 코타키나발루에서의 콘파이와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보아야겠다.


 


방을 옮긴 이후 한 번쯤은 저 귀여운 쿠션에 등을 대고 잠들고 싶었다.

호스텔로 돌아온 나는 바로 쿠션에 앉아 낮잠을 청했다.



잠에서 깨고 나니 어느새 시간은 저녁과 가까워져 있었고

하늘도 그에 맞게 점점 어둡게 짙어져가고 있었다.


그 때, 수영장에 다시 한 번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두운 밤의 수영장은 가족들과 아이들이 많았던 오전의 수영장과는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밤에 수영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을 계기로 한밤의 수영도 경험해 보고 싶었다.


 

 


밤의 수영장에 도착하자마자 느꼈다.

내가 원하던 수영장의 느낌은 바로 밤이었다는 것을.

적은 사람들과 짙푸른 하늘, 그리고 은은한 조명의 색감까지.


혼자여서 아쉬웠지만 이 순간, 여자친구와 함께 있을 수 있었다면 로맨틱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배영을 하면서 눈 앞에 광활하게 펼쳐져 있던 하늘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오전과 마찬가지로 그 하늘 위로는 수시로 비행기가 이륙을 하고 있었다.



수영을 마치고 나와 썬베드에 누워 물에 젖은 머리와 래쉬가드를 말렸다.

나는 수영장에서 젖은 물을 자연바람에 말리며 선선함을 만끽할 수 있는 순간이

수영보다 더 매력적인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물기가 다 마르면 한 번 더 물 속에 들어가 래쉬가드와 머리를 적셨고

다시 썬베드로 나와서 젖은 물기를 말리는 미련한(?) 행동을 반복했다.


 


오늘은 거의 모든 시간을 수영장에서만 보냈다.

피곤해진 나는 주섬주섬 짐을 챙겨 호스텔로 돌아왔다.


호스텔에 들어가니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던 한 남자 투숙객이 내게 인사를 건넸다.

이 투숙객은 나와 같은 방을 쓰는 투숙객이며 나의아래 층 침대를 쓰고 있다.

우리는 호스텔에 있는 내내 간단하게 아침 인사와 저녁 인사 정도만 주고받았는데

나는 이 투숙객과 인사를 할 때마다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말투와 표정에서 전해지는 사람의 기운이라고 할까.

그 기운이 너무 밝아서 마냥 인사만 나누며 지내기가 아쉬웠던 나는

용기내서 먼저 다가가 한 마디의 말을 덧붙였다.


본 대화는 기초적인 영어 회화와 번역기의 도움을 빌림.


괜찮으면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 와서 나와 식탁에서 같이 먹지 않을래?

(영완)

 

지금?

(아래 층 침대 투숙객)

 

일정이 되지 않거나 불편하면 일부러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된다.

(영완)

 

지금 바로는 어렵고 30분 뒤에 같이 나가자.

(아래 층 침대 투숙객)



그렇게 우리는 이마고 쇼핑몰 근처에 있는 오렌지 편의점에 가서 간단한 주전부리를 사 왔다.


간식을 사러 가면서 나누었던 대화를 




통해 나는 그의 이름이 셰디이며, 두바이에서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셰디와 식탁을 함께 하며 나눈 대화를 통해 느낀 것은

셰디가 상대방과 대화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마냥 내가 묻는 형식적인 질문(언제 코타키나발루에 왔는지, 나이가 몇 살인지 등)에만 대답하는 것을 떠나

식탁을 함께하는 상대에게 물어볼 수 있는 따뜻한 질문들을 많이 물어봐 주었다.


그 하나의 예로 긴 여행을 하기 위해 내가 집을 나와있는 동안 가족들에게 연락을 잘 하고 있는지와 같은 질문.

이 질문은 여행을 하는 동안 만났던 외국인 친구들은 물론, 같은 한국인들로부터도 받아본 적 없었던 질문이었다.


이 시간을 통해 나는 셰디는 정말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내가 한국인임을 말했을 때 셰디는

북한(North)에서 왔는지 남한(South)에서 왔는지와 같이 형식적인 질문을 건네는 게 아닌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하면서 나의 나라 한국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자기 형제들의 이름들을 노트에 적기 시작하더니 이 이름을 한글로 적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과연 나는, 처음 보는 외국인 친구에게 너희 나라의 언어를 가르쳐 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솔직하게 그럴 자신은 없다.


 


갑자기 시작된 한글 강의, 셰디는 내게 학생이냐 묻더니 전공과 할 줄 아는 외국어가 있냐고 물었다.

이에 한국어를 제외하면 일본어를 구사할 줄 안다고 하자 셰디는 내게 일본어도 가르쳐 달라고 했다.


형제들의 한글과 가타카나 표기법을 보며 각 언어의 규칙성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셰디의 모습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이름 표기 강의가 끝나자 셰디는 더 어려운 강의를 부탁했다.


Hello? / How are you? / What’ s your name? / Where are you from? 과 같은 기본적인 어휘의

한글과 일본어 표기법과 발음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가르쳐 주는 내가 어려울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영어권 나라 외국인의 입장에서 이 어휘들을

즉석에서 한국어와 일본어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몇 번이나 괜찮겠냐고 되물었지만 셰디는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편한 마음으로 셰디에게 한글과 일본어를 가르쳐 주었고

What’ s your name?과 같은 표현은 K-POP의 노래를 예시로 들며 포미닛의 <이름이 뭐예요?>를 들려주기도 했다.



모든 강의가 끝나자 나는 셰디에게 명함을 선물로 건네주었다.


셰디는 나의 명함을 보고 별자리 디자인이 예쁘다며 칭찬해주었다.

셰디는 답례로 자신의 메일 주소를 알려 주었고,

나는 셰디의 메일 주소로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내 주었다.


 


다 먹은 과자봉지를 치우며 식탁을 정리하고 있을 때,

한 일본인 투숙객이 방에서 나오더니 책을 읽기 위해 식탁에 앉았다.


그 때 셰디는 일본인 투숙객에게 나를 소개하며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친구라고 소개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일본인 투숙객과도 일본어로도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나는 사람들과 대화 나누는 것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학창시절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로부터 상처를 받은 이후

먼저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에 대해 극심한 경계와 거부감이 생겼다.


아무렇지 않은 척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나는 속으로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진 않을까,

혹시나 내가 억지로 붙잡아두고 대화를 이어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함을 항상 안고 눈치 속에서의 대화를 이어간다. 


그래서 가끔씩 점점 정이 깊어지는 친구들에게 과거에 받았던 상처를 고백하

모든 친구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에게 십중팔구 이러한 대답을 한다.


영완아, 너는 말도 잘 하고 사람을 집중하게 하는 그런 화법을 가지고 있어서 너랑 말하면 되게 재미있거든?

그런 너가 먼저 말을 거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몰랐어.


셰디가 건네는 따뜻한 인사,

나는 오로지 그 이유 하나로 말 한 마디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처음으로 함께 담소를 나누자고 제안을 해 보았다.


이 경험 또한,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별 거 아닌 여행객과의 수다에 불과할 수 있지만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큰 도전과도 같았고,

인간 대 인간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온정을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셰디는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넸고,

나는 셰디에게 먼저 담소를 제안했다.


내가 먼저 상대방을 위해 손을 내민다는 것은 나에게 손을 내미는 것과도 같다는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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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1

D-day

소년, 떠나다


퇴사한지 하루만에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캐리어를 끌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의 시작은 진에어와 함께 하기로 했다.


각 항공사 별 탑승권을 모으고 있는데 셀프체크인 제도의 도입으로 인해 컬러탑승권 발급이 어렵다고 한다.

과거에 영화티켓을 모을 때도 어느샌가 모든 티켓이 영수증 발급으로 바뀌어 기분이 언짢았는데

비행기 탑승권까지 흑백탑승권으로밖에 발급되지 않는다고 했을 때는 아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순순히 꼬리를 내리며 포기할 내가 아니다.

나는 수하물을 수속하는 체크인 카운터에서 지상직 승무원의 도움을 받아 컬러탑승권을 발급받았다.

나와 같이 탑승권을 모으고 있을 여행러들을 위해

인천공항에서 국내 저가항공사의 컬러탑승권 발급받는 팁을 공유하고자 한다.


국내 저가항공사 컬러탑승권 발급받는 방법


1.우선, 셀프체크인을 통해 탑승 수속을 마친다.

(진에어의 경우 탑승 수속은 셀프체크인으로밖에 진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2. 흑백탑승권을 발급받는다.

(셀프체크인을 통해서는 오로지 흑백탑승권밖에 발급되지 않는다.)


3. 수하물을 수속한다.


4. 체크인 카운터에서 수하물(캐리어)의 무게를 잴 때,

담당 지상직 승무원에게 흑백탑승권을 보여주며 컬러탑승권의 재발행을 요청한다.


5. 컬러탑승권을 발급받는다.

(이 때, 흑백탑승권은 폐기처분된다.)


※해당 방법은 진에어 체크인 카운터의 헬프 카운터에 계시던 지상직 승무원분께서 말씀해주신 방법이며

탑승권을 모으고 있어서 그런데 재발행 해주시겠어요?”라고 하면 즉석에서 바로 재발행을 해 주신다고 하셨음.

진상을 부리거나 무리한 요구로 컬러탑승권을 받아내는 방법이 아님.


이제는 수하물 수속 후, 캐리어 속의 내용물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수하물을 다시 수속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 즉, 탑승권을 재발행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만 컬러탑승권이 제공된다고 함.


해당 방법은 제주항공(2018.11이용), 진에어(2019.08이용)에서 가능한 방법이며,

타 저가항공사(이스타항공, 에어부산, 에어서울, 티웨이항공)는 이용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장담할 수 없음.



코타키나발루 행 비행기의 내부 정리가 길어지면서 탑승은 원래 예정 시간보다 10분이 늦어졌다.

그러나 전혀 급할 것 없었던 일정 탓에 그러려니 하면서 게이트가 열리기를 기다렸다.



10분이 지나고 탑승 진행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게이트가 열리더니 승객들은 일제히 탑승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제 비행기는 익숙해질 만큼 타 보았다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나는 창가 자리를 포기하지 못한다.

창가 자리는 화장실 가기가 번거롭다? 그게 뭣이 중헌디.



비행기가 이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푸실리 샐러드가 제일 맛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입이 심심하던 찰나였는데 요깃거리로 딱 좋았다.



항상 밤비행기만, 또는 낮비행기만 타 보았는데

낮에 출발해서 한밤중에 도착하는 비행기를 타게 되니

하늘 위의 선셋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세계 3대 선셋 중의 하나를 볼 수 있는 곳이 코타키나발루라는데

코타키나발루는 향하는 하늘길의 선셋마저도 무척이나 장관이었다.



코타키나발루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1>을 다시 보았다.


지겹도록 말하지만,

서로의 꿈을 모두가 함께 이루는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1>의 시놉시스는 언제 되새겨 보아도 감동적이고 아름답다.


나도 내 사람들이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내 한 몸 다 바쳐서 힘을 더해주고 싶고,

나 또한 그들의 힘을 받아 격려받고 나아가면서 내 꿈을 이루고 싶다.



코타키나발루에 도착했다.

비행기는 인천에서 10분 늦게 출발했지만 코타키나발루에 10분 빨리 도착했다.



코타키나발루 공항은 생각 그 이상보다 작았다.

인천공항이 거대한 규모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국제선 도착 게이트를 나오니 수많은 한국 여행사의 가이드들이

저마다 고객들의 이름 적힌 팻말을 들고서 픽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의 시차가 적용되었다.

서울은 자정을 넘겼고, 말레이시아는 자정을 앞두고 있었다.


머지않아 또 떠나게 될 여행에는 더 많은 시차가 적용되는 나라에 가 보고 싶다.



공항으로 마중나온 픽업 차량을 타고 공항 근처에서 하룻밤을 묵을 에미넌트 호텔로 왔다.

(예정보다 비행기가 빨리 도착해서 내가 픽업 차량을 기다린 건 안 비밀..)



에미넌트 호텔은 코타키나발루 공항 근처에서 묵을 수 있는 호텔들 중에 상위권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엄청 화려하고 호화로운 것은 아니지만 공항으로 무료 픽업을 요청할 수도 있는 데다가

시간도 차량으로 1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코타키나발루 노선 특성 상 국내 저가항공사는 밤에 도착하는 항공편이 많은데

이 정도의 옵션을 갖춘 호텔이라면 더 이상 묻고 따질 여지가 없지 않을까 싶다.


에미넌트 호텔(공항 무료 셔틀 요청 포함) [1박/1인] 28,893원 / 아고다 기준(2019.07 예약)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무사히 하룻밤을 보낸 나는 깨끗하게 방 정리를 마쳤고,

체크아웃을 한 후 호텔을 나와 *그랩을 이용하여 메인 베이스캠프인 제셀톤 포인트 근처로 향했다.


그랩 : 코타키나발루 식의 카카오택시 어플.(그러나 택시를 호출하는 어플은 아님.)

근처 차량 매칭 속도도 빠르고 웬만한 장소는 5링깃(1500원)~10링깃(3000원) 선에서 저렴하게 이동할 수 있다.



2019.08.02

D+1

기막힌 인연의 시작



그랩을 이용해서 제셀톤 포인트에 도착했다.

제셀톤 포인트는 해양 스포츠를 예약하거나 섬으로 이동할 수 있는 배편을 예약할 수 있는 곳으로

코타키나발루의 육지와 바다를 잇는 관문과도 같은 곳이다.


물론 나도, 곧 해양 스포츠와 배편을 예약하겠지만 지금은 아침 식사가 우선이다.

코타키나발루에 도착한 이후 첫 식사가 될 지금의 아침 식사는

이 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이펑 락사라는 식당에서 현지식의 로컬 푸드를 먹기로 했다.


처음부터 그랩을 타고 이펑 락사로 이동했으면 편했겠지만,

내 여행 스타일이 힘들어도 걸으면서 주변을 눈에 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에

목적지를 내 발로 직접 찾아가는 재미를 느낀 후에 식사를 하기로 했다.


15분 가량을 걸어 도착한 이펑 락사.

가게로 들어가려는 찰나, 한 중국인 관광객이 내게 말을 걸었다.


처음엔 중국어로 말을 하더니 내가 중국어를 못 한다고 했다.

그러더니 영어로 또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대체 그는 내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역으로 내가 질문을 건넸다.

 

“I’m Korean. I can’t speak Chinese and English.

But I can speak Japanese. You can speak Japanese?”


일본어를 할 수 있냐는 질문이었다.

그러자 그는 혼토데스카?” 라고 대답했다.


한국인과 중국인이 말레이시아에서 만나 일본어로 대화를 하고 있다.


이거 참 기이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그가 내게 묻고 싶었던 것은 이 가게가 유명한 가게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페이스북에서 이 식당을 접했다.

한국에선 이 가게가 로컬 푸드를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고 대답했다.



페이스북 [오즈 트래블_OZ Travel] 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펑 락사 소개 포스트



이펑 락사에서 먹은 코타키나발루에서의 첫 식사.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는지라 직원에게 베스트 메뉴를 달라고 했다.


고수 맛이 강했지만 새로운 맛이라 느끼면서 먹다 보니 나쁘지 않게 받아들여졌고,

음료 또한 신선한 기분으로 먹기에는 괜찮은 맛이었다.



식사를 마친 나는 중국인 관광객과 작별 인사를 하고 위즈마 메르데카로 향해서 환전을 했다.

그리고 제셀톤 포인트로 가서 쁠라우띠가 섬 투어와 멈바꿋 반딧불 투어를 예약할 예정이다 .


 


말레이시아 여행 팁을 전해받는 중에

코타키나발루의 경우 위즈마 메르데카에서 환전을 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아직, 여행 초반이고 가계부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공항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는 정확하게 비교하지 못했지만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날 리는 없는 법, 그렇겠지. 그런가 보다. 라는 마음으로 환전을 했다.


여행 경비 총 100만원.

그 중 10만원은 인천공항 우리은행 창구에서 링깃으로, 50만원은 싱가폴 달러로 환전했다.

나머지 40만원 중 30만원은 코타키나발루 위즈마 메르데카에서 환전했고,

나머지 10만원은 한국 돈 그대로 보관 중에 있다.

이 돈은 나중에 경비가 부족할 시, 추가 환전을 위한 비상금이다.



제셀톤 포인트로 온 나는 14번 창구로 가서 쁠라우띠가 섬 투어와 멈바꿋 반딧불 투어를 예약했다.

코타키나발루 해양 스포츠 섬 투어는 한국에서 미리 예약하는 것보다 현지에서 예약하는 것이 보다 저렴하다.


그러나 나는 가격을 떠나 기상 이변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코타키나발루 현지에 도착해서 일기예보를 확인한 후 해양 스포츠를 예약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았다. 14번 창구에서는 도라’라는 직원이 나의 예약을 도와 주었다.


“8월 2일 토요일, 내일 쁠라우띠가 섬 투어와 반딧불 투어를 예약하고 싶어.

(영완)


“미안해, 아쉽지만 8월 2일은 예약이 다 차 있어. 3일은 어때?

(도라)


“일기예보에서 3일 저녁에 비가 온다고 했다. 비가 와도 반딧불을 볼 수 있어?

(영완)


“윈디(바람)가 많으면 못 봐. 레인(비)는 괜찮아.

(도라)


“알겠어. 하루에 다 가능한 거지?

(영완)


“응, 예약해 줄까?

(도라)


쁠라우띠가 섬 투어(스노쿨링, 장비, 호텔 픽업, 식사 포함) + 멈바꿋 반딧불 투어(식사, 간식 포함) - 1DAY

[1인] 390링깃(약 113,000원) 현장에서 10링깃 할인 → 380링깃(약 110,000원)

제셀톤포인트 14번 창구 도라 기준(2019.08 예약)



쁠라우띠가 섬 투어와 멈바꿋 반딧불 투어 예약을 마치고

코타키나발루에서 지낼 7일의 일정동안 나의 집이 되어 줄 라비@사바 호스텔로 이동했다.


이 때도 역시 걸어서 이동했다.



제셀톤 포인트 앞에 있던 한 가게에서 코코넛 쉐이크를 구매했다.

첫 맛이 정말 시원하고 맛있었는데 먹으면 먹을수록 질리는 맛이었다.

주스가 많이 만들어졌다며 무료로 리필을 해 주셨는데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마음으론 울고 있었다.


걸어가다 보였던 중앙시장에서 만난 한 소녀는 내게 시식을 해 보라며 망고와 람부탄을 건네 주었다.

과일 정말 싫어하는 편인데 이 곳에서 마냥 내 입맛에 맞출 수는 없는 노릇.

모든 것을 도전이라 생각하며 입 안으로 망고와 람부탄을 넣었다.



이렇게 대놓고 관광객 티 내는 사진 또한 무척 싫어하는 편이지만,

막상 랜드마크를 무시하고 지나치려니 아쉬운 기분이 들어서 한 컷 찍었다.



이 곳이 바로 내가 코타키나발루에서 6박을 보낼 라비@사바 호스텔이다.

이마고 쇼핑몰의 아파트 건물에 위치하고 있으며 선셋을 볼 수 있는 테라스와 수영장이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지금까지의 여행에서는 호텔과 게스트하우스만 이용했는데 이렇게 가정집과 같은 호스텔에서 묵게 된 것은 처음이다.

들어가자마자 집 같다.’는 느낌을 바로 받았다.


나는 이 곳을 찾기 위해 이마고 쇼핑몰 주변을 무려 한 시간이나 헤맸다.

한국과 일본, 태국에서도 이렇게까지 길을 헤맸던 적은 없었는데

이 호스텔은 대형 쇼핑몰 건물에 있는 숙소였음에도 불구하고 찾기까지 무척이나 시간이 많이 걸렸다.


호스텔에 도착하고 나니, 이 곳은 일반 호텔처럼 간판이 있는 것이 아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파트 건물의 8층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나 말고도 많은 투숙객들이 이 곳을 쉽게 찾지 못한다고 한다.


라비@사바 호스텔(수영장, 조식 포함) [6박/1인] 294링깃(84,409원) / 부킹닷컴 기준(2019.07 예약)

현지에서 현금결제만 가능



고된 몸을 잠깐 침대에 눕히고 쉬고 있는데 맞은편 침대에 있는 한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Where are you from?”


나는 서울에서 왔다고 대답했고 이에 그는 반갑게 나를 반기며

자기는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서 왔다며 인사를 건넸다.



잠시 침대에 누워서 고단함을 덜어낸 나는 옷을 갈아입고 서둘러 더 퍼시픽 수트라 호텔로 향했다.


더 퍼시픽 수트라 호텔에서는 매주 금, 토, 일요일마다 호텔 내의 브리즈 비치 클럽에서 바비큐 파티가 열린다.

샐러드바 뷔페는 물론, 요리사가 직접 굽는 바비큐가 무한리필로 제공되며 호텔 투숙객이 아니어도 파티에 참가할 수 있다.

그러나 참가하기 위해선 예약이 필요하다.


최근, 한국인 관광객들의 전화 예약이 폭주하여 이제는 이메일과 직접 방문 예약만 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금요일이었던 당일, 토요일과 일요일 중 하루로 브리즈 비치 클럽 바비큐 파티를 예약하기로 했다.



더 퍼시픽 수트라 호텔은 5성급 호텔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정말 아름답고 호화로웠다.

여자친구와 함께 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나는 일요일에 쁠라우띠가 섬 투어와 반딧불 투어 일정이 있기 때문에

브리즈 비치 클럽 바비큐 파티는 토요일밖에 참석할 수 없었다.


나는 직원에게 바로 내일 바비큐 파티에 참석하고 싶은데 예약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직원은 내게 참석 인원 수와 도착할 수 있는 시간대를 묻더니 가능하다고 했다.


당일 저녁 시간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다음 날의 예약이 가능하다니.

생각만큼 예약 경쟁률이 치열한 편은 아닌 것 같다. (2019년 8월 기준)



브리즈 비치 클럽 바비큐 파티의 예약을 마치고 나는 탄중아루 해변으로 향했다.

세계 3대 선셋을 볼 수 있는 곳 중 하나라는 탄중아루 해변에서 나는 코타키나발루의 선셋을 그대로 눈에 담기로 했다.


그런데,


예능이었으면 조작 의혹은 물론, 제작진 입장 표명을 요구할만 한 상황이 벌어졌다.



바로 1시간 전, 호스텔에서 내 맞은편 침대를 쓰는 쿠알라룸푸르 관광객을 만난 것이다.

그는 나를 보더니 반갑게 “Hey!!” 라고 격하게 소리치며 인사해 주었다.

그는 그의 중국인 여사친들과 함께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중국인 여사친들도 나와 같은 호스텔의 투숙객이었으며 남자인 우리와는 방이 달랐다.



그렇게 나는 그들 일행에 조인하여 탄중아루 해변의 선셋을 눈에 담았다.

선셋을 배경으로 사진도 많이 찍고, 밀려오는 파도에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면서 함박웃음도 지었다.




코타키나발루 선셋이 특별한 이유는 해가 지는 과정에서 붉은 빛의 하늘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물감을 풀어 놓은 것 같은 영롱함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 모습은 사진으로도 담아낼 수 없다.

예전에 한 TV 프로그램에서 들은 말인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카메라는 눈이라고 했다.

아무리 잘 나온 사진이라도 사진은 그저 사진일 뿐, 이 말에 공감하고 싶다면 그냥 코타키나발루로 떠나길 바란다.



완전히 해가 저물자 중국인 여사친들은 내게 저녁 식사를 함께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러나 쿠알라룸푸르 친구는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함께하지 못했다.


중국인 여사친들은 불금을 기념하기 위해 가야 스트리트로 가자고 했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불금 기념하며 가슴 설레하는 것은 똑같나 보다.



가야 스트리트로 이동하는 도중에 차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공유했다.

내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던 쿠알라룸푸르 친구는 나와 후권이가 함께 찍은 셀카를 보고 귀엽다고 해 주었다.

그 반응에 궁금증을 갖던 중국인 여사친들도 내 피드 속의 사진을 보더니 격하게 귀엽다는 반응을 보여 주었다.



후권아,, 못 본 지 조금 시간 흘렀네,, 조만간 얼굴 보고 늘 그랬듯 맥주 한 번 조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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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26일,


생애 첫 직장 면접

당시 신분 육군 병장.


아직 전역도 안 한 군인인데 설마 채용하겠어?”


전역 다음 날부터 출근할 수 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201832일,



뜻밖의 합격 통보.


채용담당자는 나의 전역일을 다시 묻더니

출근일날 뵙겠다고 했다.


 

2018312일,



전역,

안양라이프 종료.


애정하는 후임들의 축하를 한 몸에 받으며 위병소를 나섰다.



2018313일,



입사,

치과라이프 시작.


낯설고 혼란스러웠던 매일.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섣불리 직장생활에 발을 들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매일 들었다.


 

2019731일,



1년 5개월의 생애 첫 직장생활 종료.


2학기 복학 결정여부를 더이상 늦출 수 없었던 마지막 휴학기의 끝자락에서

나는 연봉협상을 거절하고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저, 학교 복학해서 졸업하고 싶어요.

 


201981,



퇴사 후부터 2학기 복학 전까지 주어진 3주의 시간.

나는 트래블러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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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개국을 누빌 예정이며, 첫 번째로 누빌 나라는 말레이시아다.


군생활부터 직장생활까지.

 

모든 날들에 떳떳할 정도로 잘 살아왔다고 자부할 순 없지만

누구보다 숨가쁘게 살아왔다고는 말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퇴사 소식을 전하자

과반수 이상은 오랜만에 얼굴이나 한 번 보자며 약속 날짜를 정하자고 했다.

 

그러나 당장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 제안에 빈말 섞인 대답은 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흐지부지 기억도 나지 않는 애매한 대답을 전했다.

 

무엇보다 나만을 위한 시간을 먼저 가지고 싶었다.

 

익숙하지 않은 나라, 흔히들 갈 생각을 하지 못하는 나라,

경비가 비싸도 한 번은 과감하게 소비해서 가 볼만한 나라.

 

내가 퇴사와 복학 사이에 누빌 말레이시아와 브루나이, 싱가포르는

이러한 기준 아래에 정해지게 되었다.

 

생애 처음으로 편도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고,

대부분의 일정은 정하지도 않고, 현지에서의 상황에 맡기기로 한 채

코타키나발루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두렵지만 설레고, 무섭지만 기대된다.

퇴사와 복학 사이에 있는 소년,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하는 나의 이야기가 지금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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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이 밝았다. 후쿠오카의 아침은 3년 전과 똑같이 평화로웠다. 잠에서 깬 나는 침대에서 저벅저벅 내려와 1층의 라운지에서 조식을 먹었다. 조식 또한 3년 전과 같았다. 3년 전, 나는 유후인으로 떠나기 전,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되는 토스트 조식을 먹은 적이 있었다. 시간의 오버랩을 실감하면서 3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함께 같은 공간에 있는 듯한 기분탓을 느끼며 먹었던 조식 토스트. 괜히 3년 전의 내가 나의 옆자리에 있는 것 같이 느껴졌고 그렇게 느껴진 3년 전의 나는 세 살 어린 동생같았다. 조식을 먹으며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후쿠오카의 일상을 눈에 담았다. 노란 모자 아이들은 웃고 떠들며 친구들과 함께 학교로 향하고 있었고, 샐러리맨들은 검은 가방과 통화 중인 휴대전화를 각각 손에 쥐고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조식을 마친 나는 라운지에 놓여 있던 카드에 방명록을 작성했다. 다 적은 방명록은 라운지 벽의 한 켠에 놓여 있던 게시판 중앙에 붙이며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에서의 1박을 인증했다.


 

▶ 3년 전 게스트하우스 라운지의 조식 배식대

 창밖을 바라보며 먹었던 토스트와 홍차. 이 날의 홍차를 계기로 나는 모든 여행의 아침 때마다 홍차를 마시게 되었다.


 

 

▶ 3년이 지난 지금, 라운지의 조식 배식대에는 건포도가 박힌 모닝빵과 블루베리 잼이 추가되었다.

 모든 여행의 아침에서 그랬듯 홍차는 빠지지 않았고 여유롭게 토스트를 먹으며 창밖으로 보이는 후쿠오카의 아침을 고이 눈에 담았다.

 라운지의 벽 한 면에는 수많은 여행객들이 각자의 필체로 작성한 개성있는 방명록 카드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 여행객들이 남긴 수많은 발자취에 나의 흔적도 살포시 남겨놓았다.


 조식을 마친 나는 체크아웃을 위해 방으로 올라와 침대와 짐을 정리했다. 빠르게 정리를 마친 나는 프론트 데스크로 내려와 공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짐 보관을 부탁하고 자전거를 렌탈했다.(개인적인 부탁이 아닌 원래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되는 짐 보관 서비스다.) 사실은 교통 패스권을 구입했던 여행사 여행박사의 라운지가 있는 캐널시티로 가서 무료 자전거를 렌탈할 예정이었지만 짧은 여행 일정과 게스트하우스에서도 자전거 렌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캐널시티로 이동하는 시간을 없애고 게스트하우스의 자전거를 렌탈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자전거를 주행하는 라이딩 영상을 담기 위해 고릴라 삼각대에 미러리스 카메라를 결합하여 자전거에 고정했다. 목적지는 자전거로 20분 거리에 위치한 오호리 공원이다. 자전거를 렌탈해 준 직원 사쿠라는 오호리 공원으로 향하는 거리가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어 보는 재미가 더해질 거라 말했다.


 

▶ 짐 정리를 마치고 도미토리룸을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쓰레기통에는 내가 버린 쓰레기들로 꽉차 있다.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에서 빌린 200엔 자전거

 

 자전거를 타고 오랜만에 일본 거리를 누볐다. 귀에 담기는 까마귀 우는 소리와 횡단보도를 건널 때 들리는 차임 벨 소리와 안내 음성. 사소하게 다른 한국과의 차이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후쿠오카의 풍경을 오감으로 느끼며 목적지인 오호리 공원에 가까워져 갈 즈음, 주변 건물과 거리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쿠라의 말대로 오호리 공원으로 향하는 길거리는 일반적인 일본의 거리와 많이 달랐다. 거리는 묘하게 서구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정갈한 일본 특유의 분위기와 감성은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흩날리는 낙엽까지. 날씨는 화창했던 전날과 달리 다소 쌀쌀했지만 이 거리의 매력에 심취하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나는 오호리 공원에 도착해 있었다.


  

▶ 일본에서의 자전거 라이딩 영상을 담기 위해 미러리스 카메라가 결합된 고릴라 삼각대를 단단히 핸들에 고정시켰다.

 오호리 공원에 가까워지자 서서히 길거리의 풍경은 서구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오호리 공원의 자전거 도로를 달리며 순간을 즐기고 있는 도중, 나는 유모차를 끌고 있는 한 남성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그는 혼신을 다해 몇 번이나 연속 촬영 기능으로 나를 찍어 주더니 이 중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르라고 했다. 가볍게 한 두 장의 사진 정도만 찍고 싶었는데 너무나 열심히 찍어 주었던 그의 정성에 괜히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나는 사진 촬영을 계기로 그에게 불편하지 않다면 공원에서 아이와 함께 셋이 시간을 보내도 괜찮은지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30분 뒤, 공원의 뒷문에서 아내와 만나기로 했다며 흔쾌히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여덟 번째 처음’ _ 키와미야 함바그 먹기


 오호리 공원에서 하카타로 돌아온 나는 자전거를 반납하고 점심 식사를 하러 키와미야 함바그로 향했다. 사실 키와미야 함바그는 이제 한국에서도 흔히 먹을 수 있는 후쿠오카의 명물이 되었다. 그러나 3년 전 후쿠오카에 왔을 때, 몇 번이나 키와미야 함바그 앞을 지나면서도 길게 서있는 줄에 놀라 끝내 맛보지도 못하고 냄새만 맡은 채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 큰 한이 된 나는 이번 여행을 빌미로 꼭 후쿠오카 본토에서의 키와미야 함바그를 맛보고 한국에 돌아오고 싶었다.

 

 나는 오픈 시간인 11시에 맞춰 줄을 서기 위해 서둘러 자전거를 반납하고 키와미야 함바그에 왔지만 의도치 않게 시간은 1시간이나 지체되어 모두가 점심을 먹고자 하는 12시에 키와미야 함바그에 도착하고 말았다. 그래도 나는 가게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 순간 펼쳐진 한국인 관광객들과의 눈치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덕분에 같은 횡단보도를 건넌 한국인들의 사이에서는 선두로 대기 줄에 합류하게 되었다. 직원은 대기 중인 손님들에게 미리 메뉴판을 보여주며 메뉴를 고르게 했다. 고민도 없이 나는 라지 사이즈의 햄버그 스테이크를 주문했고 세트를 추가해서 사이드로 나오는 밥과 샐러드, 된장국을 무한리필로 먹었다. , 키와미야 함바그에 어울린다는 알코올 음료 키와미야 소다까지 같이 주문해서 제대로 일본에서의 여덟 번째 처음을 실현했다.


 

 

▶ 후쿠오카의 소문난 맛집 키와미야 함바그

 함바그를 먹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나는 15분 정도를 기다리고 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먹음직스러운 키와미야 함바그의 라지 세트. 함바그를 구울 수 있는 돌판은 열기가 떨어지면 몇 번이나 새로 달궈진 돌판으로 교체를 해 주신다.

▶ 빈 그릇 인증샷. 아주 깔끔하게 키와미야 함바그 먹방을 끝마쳤다.

 

 이 순간, 나는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켜서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키와미야 함바그 먹방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협소한 가게 내부와 분주한 직원들의 움직임 때문에 라이브 방송은 5분 만에 종료를 하게 되었다. 그냥 나는 마음 편하게 카메라를 끄고 식사에 집중하기로 했다. 키와미야 함바그의 맛은 나의 엄지를 절로 치켜들게끔 했고 몇 번이나 감탄사를 내뱉으며 먹게 할 정도로 맛있었고 맛있었다. 뜨겁게 달궈진 돌판 위에서 익혀지고 있는 함바그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구워지는 소리 또한 일품이었다. 한 입의 함바그에 촉촉이 스며든 육즙은 말할 것도 없고, 고슬고슬한 쌀밥과 한 젓가락의 샐러드는 키와미야 함바그와 최고의 궁합을 자랑했다.

 

일곱 번째 처음’ _ 셀프 스냅촬영하기 <Day>


 키와미야 함바그로 행복한 점심 식사를 마친 나는 공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낮을 배경으로 하는 셀프 스냅촬영을 진행하기로 했다. 나는 관광객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후쿠오카의 리얼한 로케이션을 찾아내기 위해 가 보지 않은 후쿠오카의 지하철역에 무작위로 내리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대담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건 나의 일본어 실력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믿는 도끼에 제대로 발등을 찍히고 말았다. 지하철 노선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탓에 내가 소지하고 있는 교통 패스권으로는 갈 수 없는 지하철역까지 오고 말아 버렸다. 별도로 금액을 지불하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문제는 하카타로 돌아갈 시간을 맞추는 것이 어려워지고 말았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늘은 점점 더 까맣게 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이내 가는 빗방울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당황하지 않을 거라 자신했지만 당황을 하고 말았다. 아니, 당황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임시방편으로 편의점에 들어가 비를 피하기로 했다. 그 와중에도 계란 샌드위치와 이로하스는 포기할 수 없었다.


 

 

▶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탑승한 지하철. 종점에 가까워져서인지 열차 안에는 승객들이 거의 없었다.

 빈 열차 안에서 맞은편 의자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몇 번이나 찍었던 셀프 스냅

 교통 패스권을 소지하고 있었음에도 패스권이 허용하지 않는 범위의 전철역까지 와 버려서 추가로 표를 구매해야 했다.

▶ 비를 피하기 위해 들어갔던 편의점에서 구매한 계란 샌드위치와 복숭아 맛 이로하스

 

 생각보다 비는 금세 그쳤다. 그러나 나에게 우산은 없고 지하철을 잘못 타며 허비해 버린 시간과 언제 다시 비가 내릴지 모를 불안함에 셀프 스냅촬영은 전날 밤의 촬영으로 만족하고 하카타로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온 나는 공항으로 향하기까지 애매하게 남아 있던 1시간 동안 사쿠라와 담소를 나누었다. 2주 후의 한국 여행을 앞두고 있는 사쿠라는 내게 서울 여행 추천지를 물어보았다. 나는 서울에서만 20년을 넘게 살아왔지만 외국인이 만족할 만한 서울의 명소를 추천해 주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사쿠라의 질문은 단순했지만 어딘가 전공 과제와도 같이 중요한 핵심을 내재하고 있었다. 끝내 나는 과거에 친구들과 한복을 입고 경복궁에서 스냅촬영을 했던 기억을 떠올려 경복궁을 소개해 주었다. 그러자 사쿠라는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더니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전통미를 담고 있는 북촌에 가 보고 싶었다며 북촌에 갈 때 경복궁을 같이 들르겠다고 말했다. 사쿠라는 한강 공원에서 열리는 밤도깨비 야시장에도 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올 해의 밤도깨비 야시장은 기간이 종료되어 나는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고 전했다.


내가 한국에 돌아온 이후 한국으로 여행을 온 사쿠라는 내가 알려준 경복궁에 다녀 왔다며 연락을 주었다.

그녀는 경복궁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감동이었다며 나의 추천 스팟을 만족해 주었다.


 한국 여행에 대한 대화가 끝나자 이제는 내가 사쿠라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내가 진심으로 궁금했던 것은 바로 K-POP 인기의 과장되지 않는 리얼한 실태였다. 일본에 진출한 수많은 한국의 아이돌들이 과연 정말 일본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일까. 한국 방송에서 보도되는 뉴스 헤드라인과 기사 타이틀을 보면 모든 가수들에게 최초’, ‘매진을 비롯한 일본 열도 열풍’, ‘오리콘 차트 1’, ‘성공적인 데뷔’, ‘최대 규모의 공연와 같은 수식어가 붙곤 한다. 이것은 과장일까, 진실일까. 나는 사쿠라에게 솔직한 대답을 부탁했다.



 영완 

 “8년 전, 일본에 카라와 소녀시대가 데뷔를 하며 일본 내에서 국민적인 인지도를 얻으며 성공했다고 한다. 당시 나는 중학생이었고 일본어가 능숙하지 않아서 일본 현지에서의 실제 인기를 전해 들을 수 없었다. 또, 카라와 소녀시대가 일본에서 성공한 이후 수많은 한국의 아이돌 그룹이 일본 데뷔를 시도했다. 한국에서는 모든 아이돌 그룹이 일본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고 보도한다. 나는 한국인이지만 그런 보도에 대해 솔직히 의문이 든다. 사쿠라는 많은 한국 아이돌 그룹이 일본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하는가?


 사쿠라 

 “카라와 소녀시대는 진짜였다. 카라가 제일 먼저 일본에 데뷔했는데 그 때의 붐은 정말 최고였다. 그 이후 소녀시대가 데뷔를 했는데 카라의 영향이 소녀시대에도 끼쳐 두 팀 다 절정의 인기를 보였다. 나는 카라와 소녀시대의 일본 곡을 알고 있다. 최근에는 트와이스가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데 나는 트와이스의 곡을 들어본 적이 없다. 트와이스가 아직 카라와 소녀시대만큼의 성공을 거둔 건 아닌 것 같고 점점 인기를 얻어가며 성장하고 있는 중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K-POP에 열광하는 일부 마니아들은 트와이스를 포함한 수많은 아이돌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영완

 “개인적으로 일본어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카라의 전 멤버 강지영의 현지 인기와 일본어 실력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강지영은 나의 롤모델이다.


 사쿠라

 “지영의 일본 활동이 활발하지는 않다. 그러나 카라가 워낙 대단했기 때문에 지영의 신곡이 발매되거나 드라마 출연이 결정되면 뉴스에 헤드라인으로 꼭 보도가 된다. 지영의 일본어는 일본인이 들어도 완벽하다. 마치 김영아(일본에서 활동 중인 한국 모델, 과거 MBC ‘논스톱출연)와 같다. 카라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지영을 일본인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사쿠라와의 수다가 길게 이어지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공항으로 향할 시간과 가까워져 있었다. 나는 미셸과 사쿠라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짧았던 후쿠오카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공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항으로 향하는 내내 나는 비행기가 지연되기를 바랐다. 나는 단 한 시간만이라도 일본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을 늘리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순간들을 눈과 머리에 담고 싶었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다. 비행기는 예정보다 45분이나 지연되었다. 수하물 수속과 일본 출국 수속까지 마친 나는 탑승동으로 들어와 일본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마음껏 즐겼다. 그러던 중, 또 한 번의 지연 공지가 내려졌다. 비행기는 45분 지연에서 30분이 더 지연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탑승 게이트까지 변경되어 인천 행 비행기에 탑승할 승객들은 서둘러 다른 게이트로 이동해 달라고 안내방송이 몇 번이나 송출되었다. 덕분에 나는 공항을 더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저녁 645분에 탑승을 시작할 인천 행 비행기는 8시가 되서야 탑승을 시작했고 탑승을 하고 나서도 관제탑으로부터 이륙 대기를 지시받아 활주로에서 15분간 다른 비행기의 이륙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렇게 이륙의 지체가 좋았던 적은 없었다. 저녁 820, 비행기는 드디어 하늘길에 올랐다.


 

 

▶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확인된 6시 45분 인천 행 비행기의 지연 공지. 속으로 대박을 몇 번이나 외쳤다.

 동료인 미영 선생님이 출국 전 날, 생일선물이라며 자신의 신용카드로 만 원대의 식사를 한 끼를 하고 오라고 해 주셨다.

 게이트가 열릴 때까지 명란이 들어간 삼각김밥과 맥주를 마시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 탑승이 시작된 인천 행 비행기. 밤의 활주로에 있는 비행기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워 가히 판타지스럽기까지 했다.

 

 1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비행기는 인천에 무사히 착륙했다. 비행기가 인천에 도착하자마자 창가에는 무섭게 빗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나중에 친구들을 통해 듣기를, 내가 일본에 있는 이틀 동안 서울에는 계속 강한 비가 내렸다고 한다.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온 나는 리무진 공항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캐리어를 풀고 짐을 정리하고 나니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출근까지는 앞으로 7시간 가량 남아있는 상태.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짐 정리는 나중으로 미루고 서둘러 잠자리를 청했다. 다음 날, 짧은 만큼 알찼던 여행 일정 탓에 다소 피곤한 몸으로 업무에 임하게 되었지만 그만큼 강렬했던 일본에서의 기억들은 피로보다 더 큰 활력이 되어 주어 큰 탈 없이 업무를 마칠 수 있게 해 주었다.


 

▶ 인천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창가에는 빗방울이 거세게 맺혔다.

 여행의 일정이 짧아 선물을 줄 대상들을 가족과 동료들로만 한정했는데 캐리어를 열고 보니 선물들은 나의 짐 못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이번 여행은 지금껏 떠났던 여행 중에서 가장 짧은 일정이었고 가장 적은 비용으로 다녀 온 여행이었다. 그러나 오로지 나 자신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섬세한 테마들로 여행을 가득 채운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본에서 맞은 스물 두 번째 생일, 두 번째 후쿠오카, 그리고 여덟 개의 처음’. 처음이 사람에게 가져다 주는 순수함과 설렘을 잊지 않고 싶어졌다. 사람을 순수하게 하면서도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 그것은 유일무이 여행 뿐이다. 나는 이번 생일 여행을 통해 얻은 여행의 순수함을 오랫동안 간직해서 더 많은 나라에 발자국을 남길 것이다. 다음 여행이 또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머지않아 떠날 것은 확실하다. 다음에는 어느 나라에, 어느 도시에 다녀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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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미하노유 온천 옆에는 하카타 포트타워 전망대가 있었다. 3년 전 후쿠오카에 왔을 때, 모모치 해변을 구경하며 들렀던 후쿠오카 타워에서 후쿠오카의 야경을 눈에 담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 집중하고 있는 이번 여행에선 일부러 도시를 내려다보는 일정을 넣지 않았다. 그러나 떡하니 온천 옆에 있던 하카타 포트타워를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으며 막상 도시 전경을 내려다보지 않고 한국에 돌아가자니 못내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여행을 하면서 타워에 오른다는 것은 흔하지만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흔해서 필요하다. 하카타 포트타워는 후쿠오카 타워만큼 웅장하고 거대한 규모의 타워는 아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도시를 내려다보기엔 충분했고, 입장료도 무료인 데다가 사람들도 많이 오가지 않아서 편하게 도시를 조망할 수 있었다.


 

▶ 하카타 포트타워에서 내려다 본 맑은 하늘 아래 후쿠오카

▶▶ 포트타워에서 내려오자 보였던 해질녘 노을 풍경


 하카타 포트타워에서 홀로 후쿠오카를 찾은 한국인 관광객을 만났다. 그는 내게 맞은편에 있는 완간 시장에 들러 초밥을 먹을 것을 권유했다. 완간 시장에서의 초밥은 부두 앞에 있는 시장이라 해산물의 질도 싱싱하고 가격 또한 저렴하여 웬만한 맛집에서 먹는 것보다 만족스러울 것이라 단언했다. 원래 나는 타워에서 내려오자마자 저녁에 열릴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생일파티를 위해 서둘러 돈키호테로 향해 갖가지 맥주들을 살 예정이었는데 그의 말 한 마디에 계획에도 없던 완간 시장에 들르게 되었다. 완간 시장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보였던 초밥의 행렬은 나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눈에 보이는 대로 모든 초밥을 골라 담아 맛을 보고 싶었지만 이번 여행의 테마는 처음이다. 그동안 많은 순간을 함께 했던 초밥에 이번 여행을 과하게 소비할 수는 없었다. 고민 끝에 나는 제일 맛있어 보이는 초밥 여섯 개와 한정 세일로 판매 중이었던 참치뱃살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계산했다. 계산을 마친 나는 바로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초밥 먹방을 시작했다. 말은 필요치 않았다. 타워가 여행에 흔하지만 필요했듯이, 초밥 또한 일본 여행에선 흔하지만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참치 뱃살의 고소함과 부드러운 식감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초밥 위 사시미의 두께와 쫄깃한 식감도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맛집에서 먹어본 초밥의 퀄리티와는 확연히 달랐다.


 

▶ 완간시장으로 들어오자마자 보였던 골라담는 97엔 초밥 뷔페

▶▶ 장어의 길이와 사시미의 두께, 그리고 참치뱃살의 고소함과 식감까지. 작지만 알찼던 내가 고른 초밥 세트

 

 온천과 초밥 미식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나는 게스트하우스의 주방에서 어묵 파티를 준비 중이던 미셸과 마주했다. 나는 미셸에게 돈키호테 면세점에 들러 이따가 파티 때 마실 맥주를 사서 돌아오겠다고 했다. 미셸은 알겠다며 8시부터 파티가 시작될 예정이니 늦지 않게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달라고 말했다. 지하철을 타고 돈키호테 면세점에 도착한 나는 맥주를 포함한 가족들과 동료들에게 줄 선물을 쇼핑했다.

 

 올 해 쉰을 넘긴 고지식한 나의 아빠는 처음으로 나에게 아들, 일본에서 파는 무슨 카레가 있대. 카톡으로 사진 보내줄 테니깐 그거 있으면 몇 개 사 와.”라고 선물을 요청하셨다. 3년 전만해도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일본을 가!” 하며 청춘들의 배낭여행을 곱지 못한 시선으로 보던 나의 아빠가 이제는 좋을 때다. 잘 놀다 와.” 라며 선물을 사 달라고 카톡으로 사진까지 다 보내신다. 그리고 나와 너무 닮은 나의 엄마는 언제나 그랬듯이 일본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오라며 동전 파스를 사 달라고 하셨다. 치과 동료들에게 줄 선물로는 할로윈 시즌을 기념하며 출시된 카라멜 푸딩 맛의 킷캣 초콜릿으로 정했다. 짧게 떠난 여행이라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사지 않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쇼핑카트에는 기념품이 한아름 담겨 있었다.


 

▶ 돈키호테에서 가족과 동료, 그리고 나에게 줄 선물들을 쇼핑하고 있다.

▶▶ 양 손에 쇼핑거리를 한가득 손에 쥐고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

 

다섯 번째 처음’ _ 일본 빵집에서 생일 케이크 사기


 그동안의 생일은 항상 평범한 일상 속에서 챙기는 기념일이었기 때문에 케이크를 고르는 장소는 항상 서울이었고, 서울 안에서도 흔하게 눈에 보이는 프랜차이즈 빵집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일본의 빵집에서 나의 생일 케이크를 산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묘한 기분을 느끼게끔 했다. 돈키호테에서 쇼핑을 마친 나는 생일 케이크를 사기 위해 하카타 역 지하상가로 향했다.


 나는 그 곳에서 다양한 빵집의 쇼케이스를 보며 케이크를 고를 수 있었다. 어떤 케이크를 살까 고민하는 도중 한 직원이 시식 홍보 중인 케이크가 있다며 치즈 케이크 한 조각을 내게 건넸다. 치즈 케이크는 맛있었지만 개인적으로 크림이 들어간 케이크를 좋아해서 다른 케이크를 구매하고 싶었다. 그 때, 홍보 중인 치즈 케이크의 아래 쇼케이스에 딸기 크림이 들어간 치즈 케이크가 눈에 띄었다. 나는 직원에게 지금 먹은 치즈 케이크가 아닌 딸기 크림이 들어간 치즈 케이크를 구매하겠다고 말했다.


 직원은 밝은 미소로 딸기 크림이 들어간 치즈 케이크를 쇼케이스에서 꺼냈다. 그러더니 내게 펜과 종이를 건네며 데코레이션 초콜릿에 적을 문구 내용을 작성해 달라고 했다. 그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한국 빵집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순간을 경험했다. 일본에서는 케이크를 구매할 때, 추가의 비용 발생 없이 데코레이션 초콜릿 위에 고객이 원하는 문구를 즉석에서 작성해 준다고 한다. 그것은 곧 세상에 단 하나뿐인 케이크가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어떤 문구를 부탁할까 고민했지만 끝내 독특한 문구를 떠올리지 못했다. 결국엔 평범한 문구로 부탁했지만 나는 빵집의 세심한 정성에 감동받아 기분 좋은 마음으로 케이크를 손에 쥐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 데코레이션 초콜릿에 문구를 작성하고 있는 직원

▶▶ 맛있는 치즈케이크를 판매하고 있는 하카타 역 지하상가의 아카이후센

 

여섯 번째 처음’ _ 게스트하우스에서 파티하기

 

 2018117일 저녁 8.

 

 드디어 2주 전부터 계획된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어묵 파티가 시작되었다. 미셸은 버너 위에 냄비를 올리고 본격적으로 어묵 전골을 끓이기 시작했다. 이 날, 어느 장기 투숙객은 유부 주머니를 직접 만드는 음식 솜씨를 보이기도 했다. 전골은 어묵을 포함한 무와 곤약, 두부, 유부 등으로 알차게 채워져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의 투숙객은 서서히 주방으로 모여들었고, 모인 이들은 하나같이 어묵 전골이 끓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 순간이 마치 코타츠에 둘러 앉아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짱구네 가족과 무척 닮아 보였다.


짱구는 못말려 NEW 에피소드 <겨울엔 뜨끈한 전골이 최고예요> 편 中


오늘의 파티를 위해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준비한 어묵 전골 재료들


 투숙객들은 미셸과 게스트하우스 직원들이 함께 준비한 어묵 전골을 먹으며 소소하게 담소를 나누었다. 전골이 지겨워질 즈음에는 토스트기에 모찌를 구워 먹으면서 파티를 이어갔다. 토스트기 안에서 부풀어 오른 모찌를 먹는 것 또한 일본에서 내가 겪은 또 하나의 처음이었다. 어묵 파티는 내가 하카타 역 지하상가에서 사 온 생일 케이크를 먹으며 마무리가 되었다. 지극히 나의 취향으로 고른 케이크였기 때문에 모두의 입맛에 맞을까 고민했지만 케이크를 맛본 모든 이들은 정말 맛있었다며 케이크에 대한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 어묵 파티가 열리고 있는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

 게스트하우스의 내부에는 오늘의 파티를 알리는 포스터가 곳곳마다 붙여져 있었다.

▶▶ 감자와 다시마를 넣어 어묵 전골의 육수를 우려내고 있다.

▶▶ 주방에서 끓이던 냄비를 테이블의 버너 위로 옮겼다. 재료가 풍성하게 넣고 나니 제법 전골의 모양이 난다.

 

 

 

▶ 파티가 열리는 주방의 한켠에선 수제로 코팅된 카드들이 오늘의 날짜를 알리고 있었다.

 하카타 역 지하상가의 아카이후센에서 사 온 나의 생일케이크

▶▶ 일본어가 적힌 초콜릿 데코레이션이 주는 감동의 여운은 정말 촉촉했다.

▶▶ 파티를 함께한 모든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금세 바닥을 보인 딸기 케이크


 파티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게스트하우스의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라이토가 나에게 카카오톡 아이디를 물었다. 나는 주저없이 아이디를 알려 주었다. ‘받침이 어려워서 한국어가 어렵다는 라이토는 나와 연락을 하고 지내고 싶다며 훗날 서울에 오게 될 때, 반드시 나에게 연락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태국 여행때도 느꼈지만 여행을 통해 맺는 인연만큼 매력적인 인연의 시작은 없다고 생각한다.

 

 밤 10, 파티를 함께 했던 모든 이들이 뒷정리를 함께하며 주방을 청소했다. 그 때, 라이토의 여자친구가 라운지에서 라이토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궁금해 하는 여자친구에게 라이토는 허물없이 나를 소개해 주었다.

 

 “그는 영완. 나의 한국 친구야.”

 

 외국인을 통해 내가 친구로 소개받는다는 것은 무척 행복했다. 내가 생각하는 친구의 정의는 항상 변함없는 위치에서 나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 존재였다. 그 존재는 나의 가까이에 있어야만 가능할 줄 알았다. 그러나 바다 건너 일본에서 두 시간 가량밖에 함께 하지 않았음에도 내가 누군가의 친구로 불려졌다는 것은 행운과도 같았다. 여행은 그렇다. 모험심을 자극하며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허물없이 누군가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설렘을 느끼게끔 하는 면에선 나를 순수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일곱 번째 처음’ _ 셀프 스냅촬영하기 <Night>


 어둠이 내려앉았다. 이제 2시간가량 남아있는 생일의 시간동안 나는 게스트하우스 주변의 밤길을 걸으며 배부른 몸을 소화시키고, 혼자서 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셀프 스냅 촬영을 진행할 예정이다. 나는 편하게 옷을 갈아입고 고릴라 삼각대와 미러리스 카메라를 챙겼다. 모두가 잠에 든 시간이었기 때문인지 게스트하우스의 주변은 잠에 든 아기처럼 고요했고, 선선하게 부는 강바람도 얌전하게 살갗에 닿아 절로 나를 콧노래를 부르게 했다.


 

▶ 아무도 다니지 않던 횡단보도를 건너며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주차된 차 하나 없는 텅 빈 주차장 담벼락에 앉아 사진을 찍고 있다. 벽이 폭이 생각보다 좁아 처음에 사진을 찍을 때 앉다가 뒤로 넘어질 뻔 했다.

▶▶ 재활용 종이수거함 앞에서 한국으로부터 걸려온 후권이의 전화를 받고 있다.


 카메라에 타이머를 설정하고 혼자서 자연스러운 포즈를 짓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색했지만 생각보다 주변 사람들은 나의 행동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금의 순간을 민망함에 무너져 아무런 사진도 남기지 못하면 훗날이 되었을 때 지금을 너무나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뻔뻔해지기로 했다. 지금부터 촬영할 스냅의 주제는 <홀로인 밤>이다. 나는 홀로를 표현하기 위해서 최대한 한적하고 음침한 공간을 찾아 사람들이 사진 속에 나오지 않게 했고, 어두움과 그리움, 또는 외로움을 드러낼 수 있는 을 표현하기 위해선 최대한 웃지 않는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Photo by choi0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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