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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내추럴

소년 2020. 1. 22. 12:49


 나는 한국인이지만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항상 썸과 밀당이 있고, 연애라는 카테고리를 제외하면 드라마가 이어지지 않는 느낌이다. 드라마는 예술을 표현하는 작품의 일종이다. 한국은 이것에 막장까지 붙여 버린다. 뜬금없는 전개로 개연성을 무시한 채 작품의 끝을 내버리는 드라마는 막장이라는 단어로 포장되고 그렇게 성의없이 완성된 드라마는 막장 드라마라는 하나의 콘텐츠가 되어 대중들에게 전달된다. 그런데 그마저도 대중들은 그것이 재미랍시고 소비하고 즐긴다.

 

 반면, 일본 드라마는 그렇지 않다. 나의 취향에 맞지 않거나 재미없는 드라마는 있을지언정 최소 막장은 없다. 그것은 내가 일본 드라마를 소비하는 이유가 된다. <고쿠센>, <마이보스 마이히어로>는 코미디 학원물로 드라마의 장르에 집중하며 확실한 웃음을 보장한다. 그리고 일본 드라마의 특징인 교훈까지 확실하게 전달한다. 휴머니즘 스토리텔링의 <야마다 타로 이야기>, 사람을 향해 좋아하는 감정을 섬세하게 풀어내고 있는 멜로 드라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적어도 내가 보았던 일본 드라마만큼은 어느 것 하나 갑작스럽거나 뜬금없는 전개로 이어지는 드라마가 없었다. 모두 교훈을 담고 있었고 장르에 충실했고 스토리가 탄탄했다.

 

 그 때문인지 나는 일본 드라마에 기대하고 있는 어느 정도의 눈높이가 있었다. <언내추럴>은 그 눈높이를 극대치로 높여 주었다. 지난 도쿄 여행 때, 나는 여행메이트였던 후권이로부터 요네즈 켄시의 ‘LEMON’이라는 노래를 소개받았다. ‘LEMON’은 유튜브에서 5억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고,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은 모두 아는 유명한 노래였다. 이어 나는 ‘LEMON’이 드라마 <언내추럴>OST임을 알게 되는데 이것은 나의 <언내추럴> 정주행의 시작이 된다.

 

 <언내추럴>은 법의학 수사 드라마로 전반적으로 회색 색감을 연상케 하는 어두운 드라마다. 부자연스러운 사인의 죽음을 가진 시체는 이 드라마 속의 주 배경이 되는 UDI라보 연구소로 이송되며 UDI라보에 소속되어 있는 법의학자들은 시체를 부검하며 시체의 부자연스러운 죽음의 진상을 규명한다. 그 과정 속에 외면할 수 없는 사회적 현실(바이러스의 전파, 학교 내 10대들의 집단 따돌림, 부부 살인, 직장 내 초과근무, 여성 차별 등)을 담담하게 풀어내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물음표를 던진다. 이 물음표에 대한 공허함과 먹먹함이 깊어지자 나는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흘린 눈물이 여섯 번이 넘는다. 무거운 가삿말이 특징인 OST, 요네즈 켄시의 ‘LEMON’이 재생되는 순간도 눈물샘이 열리는 시점에 한 몫을 했다.

 

 또, <언내추럴>은 일본 드라마 특유의 오버스러운 연기가 전혀 없다. 일본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주인공들의 연기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라 단언한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실제와 연기를 혼동할 수 없을 정도로 법의학에 집중하며 극 속에서 벌어지는 안타까운 상황에 분개하거나 속상해한다. 이사하라 사토미. 그녀의 연기력과 배역에 녹아드는 집중력. 그리고 <언내추럴>의 출연을 결정했을 캐스팅 수락의 안목까지 감히 박수쳐 본다. 그녀는 천재다.

 

 그리고 부검을 하는 과정에서, 사건의 진상을 다시 파악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생물학적 용어들이 <언내추럴>을 더욱 집중하게 한다. 사실 일반인들은 뭐가 뭔지도 모를 용어들이지만 그 용어들을 침착하게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연구하는 과정이 <언내추럴>의 수준이, 더 나아가서는 일본 드라마의 수준이 이렇게까지나 높아졌나 싶을 정도의 극찬을 나오게 한다.

 

 UDI 라보 연구소에 각자의 사연을 지니고 있는 캐릭터의 콘셉트마저도 성공적이다. 콘셉트 속에 들어있는 복선을 잘 활용하며 동료애에 대한 내용을 잘 풀어낸다. 이들의 동료애가 특별한 이유는 이들이 법의학자들이기 때문이다. 법의학자는 시체의 왜곡된 죽음을 사실대로 규명해야 하며, 이들에게 모든 심정을 걸고 있는 유가족들에게 앞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찾아 알려주어야 하기 때문에 책임의 무게가 유독 무겁다. 왜 이 시체는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을까. 절망적인 질문에 마침표를 내야 하는 법의학자. 그 속에서도 절망할 시간이 있으면 맛있는 거 먹고 잘래.” 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미스미 선생(이사하라 사토미)의 캐릭터는 호감도를 더욱 이끌어 냈다.

 

 <언내추럴>을 보고 듣는 ‘LEMON’이 확실히 다르다. 나는 사람들에게 그 차이를 전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LEMON’을 추천해 준 후권이에게 <언내추럴>의 시청을 적극 추천했다. 2020년이 지나기 전에 <언내추럴>을 뛰어넘는 일본 드라마를 접할 수 있을까 싶다.



Posted by choi0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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