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 도착한 나는 낮잠을 자며 체력을 보충했다.


2시간 뒤,


잠에서 깬 나는 브루나이의 상징과도 같은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에 가기 위해 다시 호텔을 나섰다.


이번에도 모스크로 갈 때는 오전처럼 걸어서 움직였다.


 


그러나 모스크로 곧장 향하지는 않았다.


시간표처럼 정해진 대로만 일정을 소화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의자가 보이면 앉아서 쉬었다 가기도 하고 전봇대에 카메라를 걸어놓고 스냅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20분이면 올 모스크를

이 곳 저 곳 들려가며 오느라 1시간에 걸쳐 오게 되었다.


 

파랗지 않은 흐린 하늘이 다소 아쉬웠지만

모스크는 하늘과는 별개로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맑은 하늘 아래의 모스크를 보지 못해서 그런지

나는 밤이 되었을 때 모스크의 야경이 더욱 보고 싶어졌다.



모스크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발을 씻어야 한다.

모스크의 입구를 기준으로 좌측에 세족대가 있는데 나는 그 곳에서 시원한 물로 깨끗이 발을 씻었다.


 


복장을 갖춰 입은 후 모스크에 들어가려고 하는 찰나,

한 관리인 분께서 오늘 모스크 내에서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입장할 수 있는 구역이 한정되어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아쉽긴 했지만 모스크의 입장이 완전히 제한되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나마 조금은 안도할 수 있었다.


대신, 모스크의 중앙 홀의 사진 촬영을 허가해 주겠다고 하셨다.

원래 모스크 내부는 어떠한 이유로도 사진을 촬영할 수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블로그나 SNS에 사진을 게시해도 되냐고 물었는데

이 부분도 흔쾌히 동의를 해 주셨다.


 


이번 여행을 통해 매번 느낀 점은

브루나이에서의 사제복을, 코타키나발루에서의 이슬람 복장을 입은

나의 모습에서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통이면 낯설 법도 하고 어울리지 않을 법도 한데

이번 여행 동안 예절 겸 체험으로 입어 보았던 모든 복장은 내게 찰떡(?)같이 어울렸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내 사진을 본 주변 사람들도 모두가 그런 반응을 보였다.


 

 


모스크를 둘러보고 나오니 야경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밤이 깊어질 때까지 모스크의 주변을 돌아다니며

브루나이의 일상적인 모습들을 담기 시작했지만

생각 그 이상으로 브루나이는 심심하고 한적한 나라다.


이런 표현을 쓰고 싶진 않지만 나쁘게 표현하면 뭐 하나 할 게 없는 나라다.


느린 시간도 여행의 미학이라 생각하며 느끼기에

브루나이는 너무나 조용하고 차분한 나라였다.


그래서 나는 일정을 바꾸기로 했다.


모스크의 야경은 브루나이에 있는 동안에 하루로 날짜를 다시 정해서 오기로 하고

이제는 하루 종일 걸어서 모스크를 오가느라 많은 시간동안 굶주렸던 나를 위해

가동 야시장으로 가서 맛있는 야시장 음식을 먹으며 포만감을 느끼기로 했다.



천천히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하늘을 보고 걸으며 나는 가동 야시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가동 야시장까지 걸어서 가는 길은 꽤 험난했다.


가동 야시장으로 가기 위해선 원형차도를 건너야만 하는데

이 원형차도에는 보행자를 위한 신호등도 횡단보도도 없다.


오로지 눈치 하나로만 차도를 건너야만 하는데

그 때, 나는 차도 앞에서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는 한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 소녀는 나와 같이 가동 야시장에 가고 있던 참이었다.

그리고 겁에 질린 표정에 대한 이유는 나의 예상대로 횡단보도 건너기를 무서워하고 있던 것이었다.


 


나는 소녀에게 같이 가동 야시장까지 가자고 했다.

그리고 차가 달리지 않는 순간, 내가 빠르게 차도를 건널 테니

그 때, 바로 나를 따라서 차도를 건너라고 했다.


낯선 나라에서 내가 선두가 되어 누군가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입장이 된 게 처음이었다.

나, 그리고 소녀도 안전하게 이 차도를 건너야 한다.

그러나 매정하게도 많은 차들을 빠른 속도로 차도 위를 달렸고

우리는 한없이 차가 달리지 않을 때를 기다리면서 차도를 주시했다.


그래도 우리는 안전하게 차도를 건너 가동 야시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가동 야시장에서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다.







가동 야시장은 실내에 마련된 야시장이었기 때문에

연기가 자욱하고 불냄새가 야시장 안을 가득 메우고 있음에도

일반적인 야시장과 비교하면 훨씬 깔끔하고 쾌적한 분위기를 보였다.


<배틀트립>에 방송되었을 때가 야시장이 생긴지 두 달 정도 되었을 때라고 하는데,

지금으로 계산하면 거의 2년 정도가 지난 셈이다.


그럼에도 가동 야시장은 방송에서 보았던 것 그대로 깔끔하고 정돈된 모습이었다.


가동 야시장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으로 로이킴이 추천했던 파파존 버거.

사실 나도 <배틀트립> 방송을 보면서 파파존 버거의 맛이 제일 궁금했다.

마요네즈가 들어가면 다 맛있다는 에디킴의 말에도 공감이 가고,

비주얼적으로 봐도 제일 맛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가동 야시장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파파존 버거를 목놓아 말하며 찾아다녔다.

한참을 찾아다닌 끝에 파파존 버거를 발견한 나는 비프 파파존 버거와

맞은 편에서 판매하던 브루나이 전통 팬케이크를 같이 구입했다.

(파파존 버거를 주문할 때, 비프와 치킨 중 토핑을 고를 수 있다.

치킨은 먹어보지 않았지만 사장님께서 인기있는 메뉴는 비프라고 하셨고

실제로도 비프가 파파존 버거에 더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음.)


 

 


먹킷리스트 쇼핑을 마친 나와 소녀는 빈 테이블로 자리를 잡고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소녀는 배가 많이 고프지는 않다고 해서 나보다는 적게 먹었지만

브루나이 전통 팬케이크는 정말 맛있다고 해 주었다.


 


소녀는 브루나이 전통 팬케이크를 픽(Pick)했지만

나의 픽은 로이킴과 같이 파파존 버거다.

칠리소스와 마요네즈가 계란 지단에 어울려 내는 맛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파파존 버거가 만약 한국에 들어온다면

아마 핫도그와 샌드위치를 대신할 수 있다는 수식어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반면 브루나이 전통 팬케이크는 퍽퍽한 식감이 아쉬웠다.

크림이나 잼이 조금만 더 들어갔으면 훨씬 더 부드럽고 달콤한 맛을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소녀의 집이 있어서 우리는 귀가도 함께 하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에도 원형차도는 피할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손을 맞잡고 빠르게 원형차도를 뛰어 건넜다.


 

 


이번 여행 기간동안 들어갈 수 없었던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는

밤이 되자 더욱 위엄있고 웅장해 보였다.


끝내 내가 모스크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일지는 모르겠는데

밤하늘 아래에 독보적으로 밝게 빛나던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의 풍채는

마치 아무나 이 곳에 들어올 수 없다는 아우라를 풍기는 것 같기도 했다.

그 기분탓에 호텔로 향하는 내내 모스크에 대한 궁금증과 신비감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었다.


 


이 날 하룻동안 정말 많이 걸어다녔다.

몸도 발도 무척이나 피로한 상태였다.


호텔에 도착하면 나는 곧바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단잠에 들기로 했다.



호텔에 도착했더니 문턱 아래에 게스트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종이를 펼쳐 보니 울루 템부롱 정글 투어의 픽업 안내 메시지였다.


드디어 내일,


내가 브루나이에 온 목적이자

이번 브루나이 여행의 메인 일정이 되는

울루 템부롱 국립공원으로 정글 투어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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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9

D+8

가는 날이 장날


이슬람의 상징인 모스크.

이슬람교의 왕국인 브루나이에 와서 모스크 투어를 가지 않을 수 없다.

브루나이에는 대표적인 모스크가 딱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어젯밤 호텔의 복도에서 보았던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고

또 다른 하나는 브루나이를 상징하는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다.


오늘 나는 이 두 모스크에 걸어서 다녀올 예정이다.


땡볕 더위 속에서 다트 차량을 부르지 않고 굳이 걸어서 이동하는 이유는 경비를 절약하기 위함이었다.


인천공항에서 환전해 온 50만원 상당의 싱가포르 달러는 

브루나이에서 다 쓰지 않고 싱가포르에서도 쓸 예정이었던 데다가

싱가포르의 물가가 워낙 비싸다는 얘기가 자자했기 때문에

나는 애초부터 이번 여행을 계획할 때 경비 절약은

체류 기간이 제일 짧은 브루나이에서 하는 것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먼저 호텔에서 육안으로도 보이는 거리에 있는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로 향했다.


 

 


브루나이의 모스크는 코타키나발루에서 보았던 모스크와는 풍채부터가 달랐다.

코타키나발루에서 다녀왔던 UMS 모스크와 시티 모스크는 관광지의 이미지가 더 강했던 것에 비해

브루나이의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는 실제 왕의 저택에 들어온 것 같은,

모스크라는 단어를 정의하고 있는 듯한 고결한 아우라가 모스크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분수마저도 평화로워 보였던 정원을 지나 모스크의 앞에 도착한 나는

이제 복장을 입고 모스크 내부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기도 행사가 있어서 모스크를 개방하지 않는다는 공지가 적혀져 있었다.

그런데 모스를 개방하지 않는 것보다 더 아쉬웠던 것은 바로 폐쇄 기간이었다.

내가 브루나이에 있는 8월 12일까지 모스크가 개방하지 않는다는 소식에

어떤 날에, 어떻게 시간을 내서라도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에는

끝내 들어가지 못한다는 팩트가 나를 너무나 아쉽게 했다.



브루나이에서 맞이한 첫 아침의 첫 번째 일정에서부터 아쉬운 소식을 접한 나는

그렇게 쓸쓸히 모스크를 빠져나왔다.



그렇지만 이렇게 셀카라도 찍으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그리고 너무 아쉬워하지 말기로 했다.

이러한 상황 또한 계획없이 움직이는 배낭여행의 묘미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또 다른 모스크인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까지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면

그건 정말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을 것 같았다.


갑자기 불안감에 휩싸인 나는

원래 오후에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갈 예정이었던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에 지금 당장 가 보기로 했다.


 


몇 백년의 시간에 걸쳐 자라온 건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두꺼웠던 줄기의 나무를 지나,

횡단보도의 타이머가 전혀 맞지 않아 당황했던 고장난 신호등도 지나

브루나이의 상징,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에 도착했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안고 천천히 모스크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다행히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는 개방을 하고 있었다.


금요일이었던 당시, 나는 개장 시간(오후 4시 30분~5시 30분)에 맞춰 다시 모스크에 오기로 하고

이제 계속 걷느라 허기진 배를 채우러 모스크 주변의 식당을 찾아 나섰다.



계속 걸어다니며 먹거리를 찾아 다닌 나는

반다르세리베가완 터미널 앞에서 판매하는 브루나이 현지식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노란 밥의 색깔에 이끌려 특별한 맛을 기대하고 샀지만

특별한 맛은 개뿔. 니 맛도 내 맛도 없는 맛이었다.

허기진 배, 여행 경비 절약한다고 먹었으니 망정이지

어디 식당에서 음식 주문했는데 이런 맛 나왔으면 정말 열받았을 지도 모를 맛이었다.


그나저나 식사를 하다보니 이제 오늘의 일정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자메 아스르 하사닐 볼키아 모스크는 일단 갈 수 없고,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는 오후 4시 30분부터 입장할 수 있는 상황.


현재시각 오전 11시 30분.

다섯 시간동안 대체 어떻게 시간을 채워야 할까.


고민하며 인터넷을 검색하는 도중에

나는 현재 내가 있는 위치로부터 멀지 않은 거리에

캄퐁 아에르 수상가옥 마을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캄퐁 아에르 수상가옥 마을을 구경하기 위해선

수상보트를 타고 브루나이 강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선착장에서 가이드 기사님과 협상만 잘 이루어지면

무려 20달러(약 17,000원)의 가격으로 수상가옥 마을과 맹그로브 숲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걸음을 재촉하여 캄퐁 아에르 선착장에 도착했다.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수많은 보트들은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렇다. 호객행위가 시작된 것이다.

각 보트 안의 기사님들은 열심히 나를 부르며 손짓했지만

나는 원래 성격이 이 곳 저 곳 간보지 않고 한 우물만 제대로 파는 성격인지라

나와 제일 가까운 위치에 있던 보트의 기사님하고만 협상을 하기로 했다.


(캄퐁 아에르에 도착하기 전,

내가 어느 블로그에서 보았던 최고의 협상은 20브루나이달러에 1시간 30분 투어로,

투어 내용은 수상가옥 마을 구경과 맹그로브 숲에서 긴꼬리원숭이를 보는 것이었다.)

* 긴꼬리원숭이는 긴 코를 갖고 있어서 한국에서는 코주부원숭이라고도 불린다.


몇 시간 정도의 투어를 원해?

(보트 기사님)

 

“나는 1시간 30분의 투어를 원해. 얼마야?

(영완)


1시간 30분이면 40달러. 싱가포르 달러도 가능해.

맹그로브 숲에 가면 긴꼬리원숭이도 볼 수 있어.

빅 노즈 (코주부) 몽키! 몽키!

(보트 기사님)

 

“너무 비싸. 20달러 어때?

(영완)


20? 20달러는 곤란해.

(보트 기사님)

 

“그럼 25달러.

(영완)


그러면 1시간 30분에 30달러. 긴꼬리원숭이도 볼 수 있게 해 줄게.

(보트 기사님)

 

(흥정이 쉽지 않자 다른 블로그에서의 협상 후기도 읽어보기 위해 보트 기사님께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함.)

음... 잠깐만 시간을 줄 수 있겠어?”

(영완)


알겠어.

(보트 기사님)


(3분 뒤)


“(마지막 딜) 1시간 30분에 긴꼬리원숭이 보장. 25달러! 어때?

(영완)


안 돼. 25달러면 1시간만. 그래도 긴꼬리원숭이를 볼 수 있게 해 줄게.

그러나 30달러면 1시간 30분. 마찬가지로 긴꼬리원숭이는 볼 수 있어. 이 이상은 안 돼.

(보트 기사님)


계속해서 흥정이 길어지다 보니 어느새 나는 나에게 불만이 생기고 있었다.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 하나로 기껏 동경하던 브루나이까지 왔는데

겨우 5달러를 아끼겠다고 선착장 앞에서 길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내가 너무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급하게 내가 제안한 흥정을 파기시키고

보트 기사님이 제안한 30달러에 1시간 30분 협상을 체결하기로 했다.


“알겠어. 30달러에 1시간 30분.

대신 긴꼬리 원숭이 꼭 볼 수 있게 해 줘야 해.”

(영완)


OK. 내 보트에 타.

(보트 기사님)


캄퐁 아에르 수상가옥 마을+맹그로브 숲(긴꼬리원숭이 관람 포함)투어 [1인] 30브루나이달러(약 26,000원)

가이드와의 협상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 평균 20~40브루나이달러 내외

싱가포르 달러와 1:1 통용되어 싱가포르 달러로도 구입 가능(거스름돈은 브루나이 달러)


보트는 빠른 속도로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한적하고 넓게 트인 강 위를 달리다 보니 짜릿한 해방감이 들면서

가만히 있기만 해도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아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보트에 타기 전, 나는 기사님께서 보트 운전만 해 주시는 줄 알았는데 가이드의 역할도 같이 해 주셨다.

정말 그 어떤 가이드보다 책임감있게 가이드를 해 주셨다.


마을에 대한 설명과 보트를 타고 내릴 수 있는 제티의 위치,

그 외에 보트에서 보이던 브루나이 곳곳의 건물들에 대한 설명도 빠짐없이 알려 주셨다.


 


수상마을을 보는 내내

강 위에 있는 이 마을의 평범한 일상에 대한 궁금증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장을 보러 가기 위해 보트를 타고 육지로 나가는 생활이 평범한 일상일 테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창 밖으로 보이는 강의 모습도 평범한 풍경일 테다.

행여나 폭우가 내릴 때, 집이 침수될 걱정은 들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2호선 지하철을 타고 강남역으로 향하던 나의 평범한 일상과 비교하면

이들이 지내고 있는 평범한 일상은 나와 전혀 다른 세상 사람들의 일상처럼 생각되었다.


이런 마을에서 일상을 보내면 어떤 기분일까.


 


수상가옥 마을을 지나자 어느새 나의 시야에는 짙은 녹색만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트가 물살을 가르면 가를수록 더욱 울창해지는 양쪽의 풀숲과 늪지대의 눅눅한 풀냄새가 나를 반겨주었다.


낯선 광경과 낯선 감정.

지금까지 시골에서만 겪어본 자연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자연이었다.


브루나이의 자연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아니라

인간의 손이 닿을 수가 없는 곳 같았다.


극도의 위압감을 뿜어내던 맹그로브 숲의 자연에 나는 절로 숙연해지고 침착해졌다.


 


그리고 맹그로브숲 속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기사님의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바로, 긴꼬리원숭이를 찾기 위해서였다.


정적 속, 띄엄띄엄 새 소리만 들리던 울창한 숲 속에서

열심히 가이드를 해 주시던 기사님은 한 마디의 말도 없이 매서운 눈빛으로 숲 전체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행여나 엔진 소리 때문에 긴꼬리원숭이가 나타나지 않을까봐 보트의 속도도 최대로 낮추어주셨다.


그러나, 긴꼬리원숭이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기사님이 말씀하셨다.


“Try again?

(보트 기사님)


Yes.

(영완)


기사님께선 맹그로브 숲 일대를 한 번만 더 천천히 돌아보자고 하셨다.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그렇게 10분 가량을 또 천천히 달리며 보트 기사님은 나와 함께

맹그로브 숲 일대를 샅샅이 물색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긴꼬리원숭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기사님이 또 한 번 물어보았다.


“Try again?


나는 이번에도 Yes.”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세 번째 시도에도 긴꼬리원숭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긴꼬리원숭이를 보여주겠다는 기사님의 호언장담에 30달러 협상을 체결했는데

긴꼬리원숭이를 보지 못해 선착장으로 돌아가면 재협상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긴꼬리원숭이를 보지 못한 게 

의 문제지 기사님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답답한 갈등만이 계속되고 있었다.


세 번째 시도 끝에도 긴꼬리원숭이가 나타나지 않자

기사님은 원숭이들이 자고 있는 것 같다며 이만 선착장으로 돌아가자고 하셨다.

이에 나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선착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던 그 때,


“Hey! Hey! Hey! Hey! Hey! Hey! Hey! Hey!


갑자기 기사님이 작은 목소리로 나를 향해 다급하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기사님이 가리키던 손 끝을 바라보았는데


이럴 수가.


스무 마리 가까이 되는 긴꼬리원숭이들이 나무를 타면서 숲 속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탄성을 내질러 버렸다.


기뻐하는 나의 모습을 본 기사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나와 함께 덩달아 웃음을 지었다.


 

 


 기사님께서는 내가 긴꼬리원숭이를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나무의 바로 앞까지 보트를 끌고 들어가 주셨다.


덕분에 나는 긴꼬리원숭이들의 개구진 얼굴까지 제대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인근에 있던 다른 보트들도 긴꼬리원숭이를 찾아 헤매는 건 마찬가지였나보다.

나의 보트 기사님께서는 다른 보트 기사님들에게 손짓을 하며

지금 여기에 긴꼬리원숭이들이 있다고 가르쳐주었다.


내 기사님이 다른 기사님들에게 긴꼬리원숭이가 있는 장소를 알려주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선착장에서 이 기사님의 보트를 선택해서 타길 잘했다는 생각이 마구 들기 시작했다.


긴꼬리원숭이들이 시야에서 벗어나자 나는 함박웃음을 지은 얼굴로

기사님께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기사님의 사기를 최대로 북돋아 주었다.


기분좋은 마음으로 맹그로브 숲을 빠져나와 다시 수상가옥 마을 주변으로 향하는데

기사님께서 갑자기 어느 다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셨다.



이 다리는 브루나이에서 판매하는 생수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다리인데

기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 다리는 한국 기업이 지었다고 한다.


나중에 인터넷에 찾아보니 실제로 이 순가이 브루나이 대교는 한국의 대림산업에서 지은 다리로

문재인 대통령이 동남아시아의 3개국을 순방할 때 방문한 적이 있던 다리였다.


 


수상가옥 마을에 내린 나는 기사님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마을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걸어다니는 내내 눈 안에 담겼던 모든 모습들은 궁금증의 대상이 되어 주었다.


수상가옥 마을에서 선착장으로 올 때는 보트로만 올 수 있다.

마을 안에 있는 아무 제티에 가서 기다리다 보면 기사님이 보트를 태워 주시는데

이 때 보트 탑승 비용으로 1달러(약 870원)를 지불해야 한다.


캄퐁 아에르 수상가옥 마을과 맹그로브 숲 투어를 마치고 나니

가격 때문에 1시간 투어를 선택하지 않은 게 정말 현명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협상에서 이기려고 1시간 짜리 투어를 선택했다면 긴꼬리원숭이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나중에 호텔로 돌아와서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도 보다 보니 긴꼬리원숭이를 보기 위해서

두세 번씩 맹그로브 숲을 다시 도는 건 비일비재한 경우였다.


만약, 브루나이에 가서 울창한 맹그로브 숲 속에 있는 긴꼬리원숭이를 보고 싶다면

기왕 여행하는 김에 안전하게 1시간 30분짜리 투어를 골라

긴꼬리원숭이를 볼 시간을 버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팁을 전하고 싶다.


캄퐁 아에르 선착장에 도착한 나는 호텔로 돌어가서 쉬는 시간을 갖다가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의 개방 시간에 맞춰 다시 나오기로 했다.


 


여행 일정 동안 상대방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시간을 컨트롤하며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혼자 떠나는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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