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와 순두부

내얘기 2019. 3. 3. 10:24

 한 동료의 연차와 예약 없이 당일로 내원한 환자들의 과밀로 인해 오버타임이 나고 말았다. 지칠 대로 지쳐서 물미역이 되어 있는 그 날의 나에게 사수는 같이 퇴근을 하자고 말했다. 이내 사수는 내게 약속이 있는 것이 아니면 같이 저녁을 먹고 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사수는 순두부를 맛있게 하는 식당을 알고 있다며 강남역 센트럴에비뉴의 지하상가로 나를 안내했고, 그렇게 나는 사수와 처음으로 사석에서의 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다.

 

 대화의 화두는 나의 퇴사였다. 나는 학교 복학과 어학 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을 빌미로 근 몇 달간 퇴사를 고민했다. 그러다 몇 주 전, 상사와 실업급여에 대한 내용을 나누던 중, 그것을 왜 궁금해 하냐는 상사의 질문에 나는 앞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이유로 4월 말까지만 현재의 직장에서 근무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밝히게 되었다.

 

 이 날, 나의 사수는 술이 몇 잔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내가 받아들이기엔 심히 과분했던 말들을 수도 없이 건넸다. 사수는 내가 퇴사를 한 이후 새로운 사람이 채용되었을 때, 새로운 사람에게 이 직장에서의 업무들을 새로 가르쳐야 하는 부담보다 정들었던 사람이 떠난다는 현실이 더 부담이라며 나의 퇴사를 말렸다. 그러면서도 나중에 가령 어학 시험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얻게 되었을 때, 결과의 이유가 직장이 되어 버리면 나에게 미안한 제안을 건네 버린 것이 되니 내가 퇴사를 하게 되어도 사수는 그것을 수긍하면서 뒤에서 묵묵히 나의 앞날을 응원해 주는 게 자신의 역할인 것 같다며 빈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지금까지 나는 기존의 동료들이 이루어 놓은 끈끈한 팀워크의 울타리에서 한 명이 탈퇴하려고 할 때, 그저 겉으로 보이는 이탈과 중단이라는 이미지에 얽매여 항상 불화, 퇴출과 같이 부정적인 이유로만 연관지어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나의 퇴사를 두고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사수를 보며 당장의 끝이 영원한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탈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 동료들로부터 응원과 격려를 받으며 끝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행복하게 또는 강하게 만들어 주는지까지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식사만으로 이 시간을 끝맺고 싶지 않아서 사수에게 장소를 옮겨 2차를 이어가자고 권했다. 사수는 내게 전역 후의 금연은 잘 지키고 있냐며, 친구들 만나서 술 마실 때 한 번 쯤은 담배를 핀 적이 있지 않냐며 은밀하게 유도심문을 건넸다. 나는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되어서 술이 들어갈 때는 가끔 한 두 대씩 피는 편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사수는 반전있는 대답에 놀랐는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갖고 있던 담배를 내게 건넸다.

 


<에필로그>


 사수와 순두부 식당에 막 들어갔을 즈음, 사수가 어머니와 통화를 나눌 때였다.


 “엄마, 저 밥 먹고 들어갈게요.”

 “누구랑 먹는데?”

 “, 우리 막내랑 같이 저녁 먹기로 해서.”

 

 나는 막내라는 단어가 너무 좋다. 막내 포지션은 몇 년 만이다.

 

 입사 초기, 부족한 일처리에 대한 꾸지람을 들을 때는 막내라는 이유로 더 호되게 혼나기도 했다.

그러나 동료들과 가까워지고 일처리를 인정받고 난 이후에는 밤새 클럽 갔다가 술 덜 깨서 출근해도

막내라는 이유로 그럴 때다.”, 어린 거 언제 까지 가나 봐라.” 소리 듣는다.

가끔 대담한 말장난을 건네기라도 하면 어디 여섯 살 차이 나는 누나한테!”라며 팔뚝 스매싱 맞기도 한다.

 

 예전에는 하고 싶지 않아서, 이 일에 대한 자신이 서지 않아서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계속해서 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퇴사라는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어서 가슴 한 쪽이 아려오고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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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oi0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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