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유성

영화꼬집기 2019. 5. 6. 10:29


 시골에서 전학온 여학생과 잘생긴 담임 선생님, 그리고 모든 여학생들이 바라는 얼짱 남학생. 벌써부터 각 배역의 컨셉들이 진부하기 짝이 없다. <한낮의 유성>에는 학원 로맨스물에서 늘상 다루던 클리셰가 전부 담겨있다. 그럼에도 <한낮의 유성>에 집중하게 된 이유는 요사노 스즈키(나가노 메이)가 사랑에 임하는 태도였다.

 

 스즈키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시시오 선생),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마무라 다이키)과 삼각관계에 얽히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마무라를 좋아하는 친구 네코타 유유카(야마모토 마이카)와도 얽혀 시골에서 도쿄로 전학을 오게 됨과 동시에 사랑과 우정으로부터. , 학창시절에 접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정서로부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의도치 않았던 전학 신고식(?)을 겪는다.

 

 “이런 게 사랑이면 하지 말 걸 그랬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즈키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침착하게 추스르고 고민하면서 시시오 선생과 마무라, 심지어 마무라를 좋아하는 유유카에게도 솔직한 대답을 전한다. 자칫하면 그저 나의 고백을 거절한 여자’, ‘질투가 나는 재수없는 여자로 전락할 뻔한 경우임에도 스즈키의 솔직한 대답에 상대들은 도리어 스즈키를 향해 더욱 마음을 열게 된다. 스즈키의 진솔한 대답은 오히려 스즈키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게 연결고리가 되어준 것이다.

 

 그 대답들의 이유가 되는 스즈키의 마음도 무척이나 아름답다. 단순히 사랑과 우정을 뛰어넘어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사람을 대하게 되면 주변에 적이 생길 걱정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있던 적도 나의 아군으로 바뀔 것만 같았다. 실제로 영화 속에선 유유카가 이런 케이스에 해당된다.

 

 외국 영화를 볼 때, 나는 유독 한국 네티즌들의 평점을 깊게 관철하는 경향이 있다. 타국의 정서가 한국 관객들에게는 어떻게 다가왔을지, 괴리감이 느껴지진 않았을까. 혹은 한국에서도 사랑받을 수 있는 작품일까. 등 이런 고민들의 대답을 찾기 위함이 그 이유다. <한낮의 유성>의 한국 네티즌 평점을 봤는데 정말 네티즌들의 수준이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스크롤을 내리기가 두려웠다.

 

남자 주인공의 얼굴이 각이 졌다.’

여자 주인공의 마음이 너무 오락가락해서 짜증이 났다.’

 

 감상으로 인한 여운도, 그 여운을 표현하는 것도 자유지만 우리와 다른 외모라는 이유로 남자 주인공을 비난하고 여자 주인공이 고민하는 과정을 오락가락이라는 한 단어로 치부시켜 짜증을 유발했다는 댓글은 정말 고구마 다섯 개 정도를 물 없이 연속으로 먹은 기분을 들게 했다. 아직 우리나라는 멀었다.

 

 보는 내내 너무나 행복했다. 뱃속에서 나비가 나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초속 5센티미터>를 뛰어넘는 로맨스 영화는 없을 거라 단언했는데 그 신념이 깨지고 말았다. 오늘을 기준으로, 내 인생의 베스트 로맨스 영화는 <한낮의 유성>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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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oi0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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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94, 통역잔혹

내얘기 2019. 4. 11. 15:36

 감기에 걸려본 게 아마 전역 이후론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번 감기는 정말 길게 이어졌다. 오늘로 6일째 골골댔다. 아까 오전에 일본인 환자의 사랑니 발치 치료를 통역하는 도중이었다. 원장님께서 편하게 사랑니를 발치할 수 있게 환자에게 턱을 숙이고 입을 크게 벌려줄 것을 몇 번이나 전달했지만 환자는 불안하고 무서웠는지 계속해서 턱을 올리고 양팔을 올리는 등 위험한 반사반응을 보였다. 원장님은 예민해진 상태. 그리고 환자 또한 불안해진 상태. 환자는 이내 싱코큐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치료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싱코큐의 뜻은 심호흡. 아까 입을 크게 벌려달라고 할 때마다 불편함을 호소했던 것을 토대로 나는 원장님께 환자가 호흡을 힘들어한다고 전달했다. 원장님은 알고 있다며 숨 쉬는 게 어떻게 불편하냐고 물어 달라 하셨고, 나는 곧바로 그 의미를 환자에게 전달했으나 환자는 ?” 라고 답했다. 아찔하고 긴박함이 들끓던 진료실의 공기가 순식간에 바람 빠지는 풍선 마냥 매가리 없게 흐르기 시작했다. 이른바 갑분싸’. 원장님은 고개를 돌리며 나지막이 한마디 하셨다.


 “현호 불러 와.”


 현호는 일본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나의 사수다. 사수가 곧바로 진료실로 들어오더니 환자와 대화하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제발 사수와도 말이 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사수가 진료실로 들어와서 모든 상황을 단번에 정리하게 되면 그만큼 나의 무능함이 극대화될 것 같았다. 이곳에서의 직장생활이 벌써 1년이나 지났는데 내가 아직도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은 도저히 자신에게 용납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수도 제발 이 환자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길 바랐다. 그러나 사수는 금세 원장님에게 환자의 의사를 전달했다. “환자분이 잇몸을 절개해서 치아를 뽑는다고 들었는데 지금 잇몸을 절개하고 있는 게 맞는지 궁금해 하신다.” 그 순간, 모든 상황은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그러자 나는 한순간에 머릿속이 새하얘지면서 눈앞의 모든 것이 뿌옇게 보이기 시작했고 혈압이 급격히 오르면서 온 몸에서 피가 빨려나가는 듯한 아주 이상한 느낌이 몸 전체를 휘갈기기 시작했다. 이내 다리에 힘까지 풀렸다. 당시 더 이상 내가 정신을 다잡지 않으면 그 순간 발치가 진행되는 환자의 얼굴 위로 몸이 쓰러질 것만 같았다. 나는 어떻게든 정신줄을 부여잡으며 발치가 끝나는 순간까지 남은 통역을 진행했다. 내가 환자에게 젠부 오와리마시따.(전부 끝났습니다.)” 라는 말을 건넴과 동시에 나는 마라톤이라도 뛰다 온 사람 마냥 양 손으로 무릎을 부여잡으며 허리를 숙이고 거칠게 호흡했다.


 나는 몸을 비틀거리며 직원실로 들어왔고 책상에 양 손을 짚고서 식은땀을 흘렸다. 동료들은 갑자기 왜 그러냐며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동료들은 내게 휴게실에 가서 누워 있다 오라며 나를 달랬지만 근무 시간에 쉬기 위해 누워 있는 행동 또한 나 자신에게 용납되지 않아서 나는 어떻게든 인포메이션 데스크를 지키려 했다. 그러나 실장님의 지시가 강하셨고, 나 또한 더 이상 고집을 부릴 힘이 남아있지 않아서 말없이 물리치료실로 들어가 잠에 들었다. 그렇게 점심시간까지 반납하고 두 시간이나 잠에 들었다. 나는 잠에 들면서도 나의 부족한 일본어 실력 탓에 발치를 진행하던 원장님과 치위생사 스태프, 환자, 사수가 고생한 것이 미안해서 계속해서 내 자신을 질책하고 괴롭혔다. 심리적인 스트레스로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을 느껴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두 시간 뒤, 잠에서 깨어나 비몽사몽한 상태로 휴게실에서 동료가 사 온 김밥을 먹으며 정신을 회복하는 도중이었다. 치위생사 동료들은 내가 지속되는 감기 탓에 기운을 잃은 걸로 보고 내과에 가서 수액이라도 맞고 오라고 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김밥을 먹었다. 오후가 되고 정신이 돌아왔을 때, 나는 사수에게 찾아가 하구키(잇몸) 외의 다른 잇몸이란 단어를 물어보며 아까의 내 입장을 털어놓았다. 솔직히 아직도 망설이면서 통역하냐고 혼날 줄 알았는데 사수는 이렇게 또 하나를 배워간다고 생각하라며 도리어 나를 달래주었다.


 그 때, 한 동료가 말했다. “그래도 동생 김밥은 현호가 사 가야겠다고 하더라~” 그게 무슨 말인지 순간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 말을 다시 되물었더니 동료는 내가 먹은 김밥을 사 온 사람이 바로 내 사수였다고 말해 주면서 왜 너는 이런 거 이해하는 게 한 템포 느리냐며 웃으며 다그쳤다. 나중에 다른 동료에게 물어보니 오늘 점심은 분식집에서 먹지도 않았다고 했다. 얼마 전, 사수 생일선물로 모히또 담배 한 보루를 사 드렸는데 오늘로 다 피웠다고 했다. 조만간 사수 책상에다가 또 한 보루를 리필해 놓아야겠다


 오늘은 입사한 지 394일째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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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oi0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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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의문의 존재가 등장한다. 시한부 삶 속에서 나의 하루 수명을 연장해 주는 대신 한 가지를 세상에서 없애 주겠다는 다소 기괴스러운 조건을 제안한다. 나도 모르게 내 자신을 영화에 대입해 보았다. 나의 눈에는 영화가 재생되고 있는 노트북 옆에서 열심히 불을 밝히고 있는 향초가 눈에 들어왔다. 이내 영화 속에서 의문의 존재가 말을 이어간다.

 

 “세상에 없어져도 그만인 것은 널렸어. 트럼프 카드? 루빅스 큐브?”

 

 묵묵히 영화에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향초 정도는 세상에서 없어져 버려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의문의 존재가 제안했던 사라짐은 사라지는 존재와 이어지는 추억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이었고 그것을 알게 되자 나는 향초가 사라져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한 내 자신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전화가 사라졌을 때에는 항상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로 교감했던 첫사랑의 추억이 전화와 함께 사라졌고, 영화가 사라졌을 때에는 비디오 갤러리에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을 추천해 주는 친구와의 추억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주인공의 수명은 하루씩 연장되었다. 이러한 패턴의 전개가 반복되자 나는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을 지키느냐, 나의 목숨을 지키느냐. 이 두 가지의 명제를 두고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의문의 존재는 주인공에게 자신의 목숨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말했고, 주인공도 그 말에는 공감하는 듯 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 어떤 것이 사라진다고 해도 큰 쇼크는 받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의문의 존재가 제안한 대상들이 사라질 때마다 주인공은 점점 패닉 상태에 빠져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 했다. 이번에는 무엇이 사라지게 될까. 나는 의문의 존재가 어떤 것을 사라지게 할지에 대한 궁금함보다 무엇의 사라짐으로 인해 같이 사라질 예상치 못했던 어느 추억이 얼마나 주인공을 더욱 괴롭게 만들지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말았다. 그 순간, 차라리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꼭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해야만 하는 걸까. 무엇을 얻기 위해선 무엇을 잃어야만 한다는 대사가 모든 상황에 해당되지는 않는 것 같으면서도 뾰족한 예시를 들기에는 딱히 떠오르는 소재가 없어서 답답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형언하기 어려운 먹먹함과 따뜻함이 동시에 떠올라 계속해서 내 눈 앞에 이상한 신기루를 일게 하였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하룻밤의 꿈과도 같았다.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어젯밤 꾸었던 꿈의 모든 서사가 떠오르진 않아도 꿈속에선 확실한 여정이 펼쳐졌던 것처럼 말이다. 만약 몽환이라는 명사를 동사화할 수 있다면 꼭 이 영화를 근거로 해야만 되겠다.


 주인공의 엄마는 사람이 고양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고 고양이가 사람의 곁에 있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엄마는 생을 마감하기 전주인공에게 양배추(고양이 이름)를 잘 키워달라고 부탁하기보다 양배추에게 아들의 곁에 있어 달라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사라짐을 토대로 느낀 것이 있었는지 주인공은 의문의 존재가 고양이를 없애겠다고 할 때, 자신의 남은 수명을 인지하고 있으니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죽을 수 있다며 고양이를 없애지 말아달라고 했다고양이가 사라진다는 것은 죽기 직전까지도 아들을 위하는 일에 힘쓰고 싶었던 나의 엄마가 사라지는 것과도 같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의문의 존재가 영화를 없애겠다고 말할 때는 주인공이 갈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의문의 존재는 영화가 사라진다고 해서 누가 죽는 것도 아니고, 예술이 물과 음식보다 중요하냐며 주인공을 다그쳤다. 끝내 주인공은 목숨의 중요함에 설득되어 영화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영화가 사라지자 주인공이 있던 세상에서 영화와 연결된 관계들에는 절망이 초래되고 말았다. 주인공의 친구 츠타야, 그의 눈물이 그것을 대변했다. 주인공에게 어울리는 영화를 찾아주는 것.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며 눈물을 쏟았다. 그렇다. 무언가가 사라진다고 해서 세상의 전체가 역변하진 않는다. 그러나 전체가 아닌 내가 있던 세상에서 그것과 이어진 관계들에는 분명한 다름이 발생했다. 나중에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때에도 세상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늘 그렇듯 아침이 되면 해가 뜰 테고, 저녁이 되면 달이 뜰 테다. 그러나 내가 존재했던 세상만큼은 이 세상의 전체와 다르리라 믿고 싶다.(주인공의 내레이션에도 등장하는 구절이다.)

 

 일본 영화는 이렇게 괴상한 타이틀과 주제를 가지고 사람의 감정을 깊게 파고 들어오는 점에서 아주 강세를 보인다. 이것도 재주다. 영화가 끝나자 나는 향초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향초가 사라지면 나에게 생일 선물로 향초를 선물했던 민지가 사라질 테고, 민지가 사라져 버리면 우진이까지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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