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그저 스무 살을 학점에 치여 지내고 싶지 않았던 생각과 더해 대학이라는 나와 정서가 맞지 않는 공간 속에서 진행되는 나의 매일.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야만 하는 아까웠던 등록금. 심지어 그 등록금이 부모님의 몇 년간의 노고와 교환된다는 아까운 공식은 끝내 나를 갑작스러운 휴학으로 이끌었고 이후 시간은 흐르고 흘러 반 년이 지나 3월이 되었다. 그저 평범한 삶을 원하셨던 부모님께서는 휴학을 앞둔 내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셨을 때 나는 여행을 다니고 싶다는 말을 제일 먼저 했었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일본으로 떠났다. 나는 흔히 하는 여행을 하고 오지 않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과거의 날들 중 나 자신을 오랫동안 돌보지 않고 지나치게 남을 위해 살아오며 허비한 시간들이 많다고 느꼈던 당시. 일체 관광지를 찾아다니지 않으며 바닷가에서 교복 입고 졸업사진을 찍고 있는 세 살 남짓 어려 보이는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지난 날의 나를 회상하거나 빨간 란도셀을 메고 하교하는 초등학생들과 같이 길을 걸으며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넓고 얕았던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이 깊어지며 나 자신을 더 사랑해주고 싶었다는 생각이 매일같이 이어지자 나는 주변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혼자 뷔페에 가서 당당하게 먹고 싶은 음식을 다 갖춰놓고 먹거나 혼자 VIP좌석의 뮤지컬을 예매해서 일행 없이 중앙의 자리에서 뮤지컬을 관람하는 등 혼자만의 시간을 극도로 늘리며 여유로운 나날들을 만끽했다. 이후 틈틈히 일본어 공부도 하고 잡지도 읽으면서 에디터로서의 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 티스토리 블로그 개설의 이유가 되었다.


 연말부터는 평범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마음도 차분해질 만큼 차분해졌고 적응된 휴학기. 그리고 서서히 준비해야 할 입대. 모든 것이 생각대로 순순하게 풀리고 있을 즈음. 매년 2월마다 일어난 우리 집 징크스는 올 해도 피해가지 못했는지 갑자기 아버지의 몸에 암으로 의심되는 변화를 가지고 왔다. 극도로 뒤숭숭해지고 수전이 멈추지 않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 안에서 일어난 비즈니스에서의 갈등. 그러나 그것을 절대 티낼 수 없는 고등학교 동아리 MT 등의 밝아야만 하는 일정이 약속되어 있는 상황에서 나는 마치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는 심정으로 혼자 떠날 여행을 다시 한 번 계획했다. 그런데 출국 20일을 앞둔 엊그제까지만 해도 아버지의 허락이 분명하지 않았던 데다가 앞당겨진 출국 일정, 그리고 아버지의 종합 소견이 나오지 않아 어쩌면 간절히 고대하던 도쿄여행을 무산시켜야만 했던 상황이 닥치고 말았다. 그러나 다행히 암이 아닌 복용하시던 약의 부작용으로 판정난 아버지의 몸 상태가 지금은 호전되는 중이라는 대학 병원의 소견과 아버지로부터의 허락은 도쿄여행을 17일 앞두고 있는 날에서야 받을 수 있었고 그제서야 나는 마음의 짐을 한시름 덜어내고 간만에 웃으며 도쿄여행 때 입을 옷들을 쇼핑할 수 있었다.


 이번의 여행 전에 드는 생각이 다른 때와는 어딘가 다르다.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었던 지난 일본여행에 비해 이번의 여행지인 도쿄만큼은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과 기분이 끊이질 않았다. 지금도 떠올리기 싫은 불안했던 한 달 전의 나와 우리 집 상황. 그것은 혼자 떠나는 여행만이 나를 치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출국까지는 앞으로 17일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제서야 설렌다고 말할 수 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기분으로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될 것 같은 도쿄여행.


 수고했어.


 그리고 곧 마주하자, 3월의 도쿄 - 


Posted by choi0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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