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일본여행, In Tokyo [만개한 벚꽃의 일본]

2016.03.30~2016.04.02

신주쿠


 도쿄를 찾는 젊은 여행객들이 꼭 들른다는 신주쿠는 일본 특유의 옛스러운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넘쳐흐르는 생기만큼은 도쿄의 심장이라는 신주쿠의 수식어를 제대로 실감케 할 수 있을 정도로 활발하고 뜨겁다. 수많은 철도들이 다니고 비즈니스, 패션, 유흥의 메카가 되는 신주쿠. 도쿄의 젊음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면 당당하게 신주쿠로 향하라. 그러나 신주쿠에서는 극심한 호객 행위가 빈번하며 가부키쵸 등에서 발생하는 관광객들의 피해가 잦은 편이니 소지품과 신변 보호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며 지나치게 음산한 곳에는 호기심에라도 발을 들이지 않는 것을 당부한다.

※ 실제로 비행기가 일본에 도착하면 외교부로부터 신주쿠에서의 호객 행위 주의를 당부하는 문자메시지가 발송된다.




활발함이 넘치는 신주쿠의 정오 모습


도쿄의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모스버거

타나시


 일본 서민들의 평범한 삶의 모습을 가장 솔직하게 구경할 수 있는 타나시는 도쿄의 중심지로부터 서쪽으로 향하는 세이부 신주쿠 선 전철을 타고 약 20분 가량을 달려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적은 것이 한편으로는 당연지사. 타나시에는 특별한 관광 명소도 없고 이 곳을 소개하고 있는 안내소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타나시로 하여금 방문객의 흥미를 가장 유발시키고 있는 요소를 꼽자면 한국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유명 일본 애니메이션 아따맘마(あたしンち)’의 실제 모티브가 되는 동네라는 점이다. 실제로 타나시 역과 전철 역사로 이어져 있는 리빙백화점을 돌아다니다 보면 아따맘마 속의 배경이 되는 장소들을 군데군데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 곁에는 마치 아리와 동동이가 함께 동행하고 있는 듯한 순수한 동심의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타나시 속의 아따맘마를 더 많이 발견하고 싶다면 타나시로 향하는 전철이 타나시에 도착하기 전까지 아따맘마의 오프닝 영상을 유심히 반복해서 보는 건 어떨까.


매일같이 엄마가 쇼핑을 하는 타나시 역의 리빙백화점


 





 













타나시에서 나에게 길을 알려준 남매들.

후타코타마가와


 우리말로 전원도시선을 의미하는 도큐 전철의 덴엔토시센’. 그 출발역이 되는 시부야 역에서 급행으로 두 정거장을 지나면 한가로운 타마 강 리버사이드와 마주할 수 있는 후타코타마가와 역에 도착할 수 있다. 나는 타마 강을 따라 드넓게 펼쳐진 초록빛 잔디 위에서 친구들과 함께 원반을 던지고 놀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소년들 일행과 던져진 낚싯대의 반응을 묵묵하게 기다리고 있는 노년들, 또 강을 바라보며 트럼펫을 연주하고 있는 신사와 산책 나온 젊은 여성들을 보며 그저 친환경적인 도쿄의 오후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후타코타마가와 역을 경유하는 전철의 노선 이름 덴엔토시센의 참의미를 곱씹으며 이해할 수 있었다. 탁 트인 타마 강 리버사이드의 전경을 바라보면서 잔디 위를 걷다 보면 답답한 잿빛 도시로부터 벗어난 듯한 일종의 해방감 덕분에 괜히 타마 강을 따라 달리기가 하고 싶어지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보고 싶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 타마 강 리버사이드에서는 그것이 곧 자연스러운 감각의 반응일 테니깐 말이다.





타마 강 리버사이드에서 저마다의 오후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우에노


 3일 차의 일정을 마치고 베이스캠프인 우에노로 돌아온 나는 저녁을 먹기 위해 숙소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규카츠 식당을 찾았다. 규카츠는 다소 비싼 값을 지불하고 먹어야 하는 음식이었지만 일부러 아끼지 않고 꽃등심 부위로 주문해서 명품 규카츠의 맛을 느끼고자 했다. 내가 먹은 규카츠 식당에서는 주문한 규카츠가 주문과 동시에 기름에 들어가 겉에만 살짝 튀겨진 뒤 커팅되기까지의 모든 조리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오픈형 키친이었다. 이는 명실상부 음식에 대한 조리사의 강한 자부심과 장인 정신을 근엄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이어 가지런히 정리되어 세팅된 샐러드와 된장국, 그리고 고슬고슬한 밥가지. 아마 일본 음식이 화려하거나 세련되지 않아도 단연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들만의 섬세함과 정갈함이 전통저럼 지켜져 와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독보적인 일본스러움을 분명하게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가 싶다. 규카츠는 맛 또한 일품이었다. 바삭한 튀김옷과 쫄깃한 소고기 살의 환상적인 조화. 매일 식사시간이 되면 이 곳은 웨이팅 타임이 걸려 오랜 기다림의 끝에서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일본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만점이다. 이 날의 나는 저녁을 먹기에는 다소 이른 오후 5시 경에 이 곳을 찾았다. 그래서 웨이팅도 없었고 식당 내부도 한산했다. "이 곳에 가면 이 음식을 꼭 먹어야 해!" 패턴의 여행사 스타일 여행을 선호하진 않는다. 그러나 규카츠는 예외로 분류하고 싶다. 체인점이라 도쿄 중심지 곳곳에 많은 지점들이 자리하고 있으니 도쿄를 방문한다면 규카츠의 맛을 꼭 느껴 보았으면 좋겠다.


내 눈 앞에서 직접 규카츠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아오나 규카츠


도쿄 여행 일정 중에서 가장 사전의 기대가 컸던 규카츠


후식으로 먹은 배스킨라빈스. 일본에서는 봄 시즌을 맞아 사쿠라(벚꽃) 맛 아이스크림을 출시했다.

Episode



· 나는 일본에 올 때마다 성인의 기준이 되는 나이가 헷갈렸다. 한국에서는 신년이 시작됨과 동시에 법적으로 성인으로 인정받지만 일본에서는 그 기분을 명확하게 알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면세점에서 술을 구매할 때에는 늘 혼동이 찾아왔다. 우에노 돈키호테에서 호로요이를 살 때였다. "저는 일본에서 술을 살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러더니 점원은 "96년 11월 생이면 아슬아슬하게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지금 여권이 없으시니 숙소에 가셔서 다시 가지고 돌아오시면 계산해드리겠습니다." 라는 직원의 말에 번거롭지만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가 여권을 가지고 다시 면세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직원은 퇴근을 했는지 보이지 않았고 다른 알바생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 계산대를 대신하고 있었다. 1시간도 지나지 않은 방금 전의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여권을 보여주었더니 그는 "죄송합니다만 당신은 일본에서 법적으로 미성년자입니다."라며 방금 전의 직원이 말한 실수에 대해 연신 사과하며 술 구매가 불가능하다는 의사를 거듭했다. 교통비와 낭비된 시간에 화가 난 나는 직원 교육과 술을 판매하고 있는 면세점에서 미성년자와 성인의 기준조차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면세점 직원들의 서비스 수준과 태도를 날카롭게 지적하였고 방금 전의 직원으로부터 책임을 듣고 싶다며 호출을 부탁했다. 그러나 그들은 죄송하다는 사과만 거듭할 뿐 그 직원에 대한 호출과 언급을 자제하고 있었다. 우에노 점 돈키호테. 다음에 도쿄를 찾아도 숙소로 우에노 주변은 검색조차 하지 않을 것.


· 나는 일본에 올 때마다 거짓말처럼 딱 들어맞는 징크스가 있다. 바로 날씨 징크스. 오사카와 후쿠오카에서도 마지막 날과 그 하루 전 날의 날씨는 곡 비가 내리거나 흐리곤 했다. 다행히 이번 도쿄에서는 내가 머무르는 동안에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벚꽃을 기대하고 간 일본에서 흐린 날을 맞이한 것은 비가 내리는 것 만큼이나 아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의 그 아쉬움은 후타코타마가와의 타마 강 리버사이드에서 절정에 달했다. 눈부신 태양 아래에서 화창한 봄날씨를 만끽하며 오후를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눈에 담고 싶었던 기대와 달리 먹구름 탓인지 이 곳을 찾은 사람들의 수는 현저히 적었고 그 적은 사람들 중에서도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을 찾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당분간은 해외여행을 계획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이번의 도쿄에 대한 기대치는 다른 그 어느 도시를 찾을 때보다 더했는데 아쉬움이 너무 깊다. 머지않아 훗날, 내가 다음의 일본에 방문할 때에는 그 징크스로부터 탈피할 수 있었으면.


· 아따맘마의 배경을 찾고자 타나시 마을의 이곳저곳을 누비던 도중, 나는 조용한 공터에서 놀고 있는 어느 어린 남매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아따맘마의 배경이 되는 곳을 물어보며 길안내의 도움을 받고 있었는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가 보이는 듯한 신기루처럼 이 아이들이 갑자기 아리와 동동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대화가 끝나자 나도 모르게 무심코 "너희들을 이 곳에서 만나니 마치 미깡(아리)과 유즈히코(동동)를 보는 기분이 들어." 라고 하였다. 그러자 아이들은 부끄러운 듯 웃으면서 몸을 배배 꼬고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아이들의 어머니가 오셨다. 아이들은 우리가 길을 알려드린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며 나를 소개해주었다. 그렇게 나와 남매,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 이렇게 넷은 타나시 마을에서 긴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소소한 시간을 함께 보냈다. 따뜻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 애니메이션 아따맘마. 그리고 그 배경이 되는 곳 타나시. 지극히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던 타나시에서 만난 이 가족은 아마 내가 찾고 있던 실제 아따맘마의 가족을 만나게 됐던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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