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2. 시암 앳 시암 호텔 루프탑 인피니티 풀

 우리는 원래 체크인이 가능해지는 오후 2시에 호텔로 돌아와 체크인을 마치고, 저녁이 되기 전까지 루프탑 인피니티 풀에서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다. 그러나 바이크 해프닝으로 인해 호텔에는 330분 즈음에 도착했다. 우리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이 날 아침, 워너원투어 깃발의 정체를 궁금해 하던 한국인 여직원에게 경찰서에 다녀온 해프닝을 구구절절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우리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던 그녀는 벌금 수준에서 멈춰 다행이라며 위로를 해 주더니 이내 예약된 방으로의 안내를 도와주었다.

 

 우리는 예약한 방으로 들어가 래쉬가드로 갈아입고 호텔의 옥상이 되는 26층의 인피니티 풀로 향했다. 인피니티 풀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보인 전경은 입이 귀에 걸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황홀했다. 풀장의 끝이 심플하게 마감되어 있어서 <배틀 트립>의 전파를 탔던 방송 속 자막 그대로 하늘과 바다, 그리고 수영장의 경계가 보이지 않았다. 가뜩이나 우기 시즌이라는 태국의 6월 날씨를 많이 걱정했는데 반전으로 하늘은 몹시나 청명했고,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 생애 처음으로 지상낙원이라는 단어를 몸소 실감했다.


시암 앳 시암 호텔의 루프탑 인피니티 풀의 전경 (파노라마 기능으로 촬영)


루프탑 인피니티 풀의 끝에서 파타야의 뷰를 바라보며 행복해 하는 우리

 

 스마트폰 방수팩을 챙겨온 덕분에 우리는 수중에서 장난치는 모습들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을 망각한 채 놀다보니 어느새 물놀이는 지겨워졌다. 그 때였다. 뉘엿뉘엿 해가 지기 시작했다. 타임 랩스를 촬영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다. 정원이는 이 순간을 카메라보다 눈에 먼저 담고 싶다며 사진 촬영을 부탁하던 내 요청을 거절하고 말없이 선셋에 집중했다. 나는 그 거절이 고마웠다. 되새겨 보니 카메라로 추억을 남기는 것도 좋지만, 카메라 액정을 통해서 행복한 순간을 보는 것보단 현재의 순간을 내 눈에 먼저 담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게 당연한 것 같았다. 10분 가량이 지났을까. 말없이 선셋을 보던 정원이는 충분히 순간을 눈에 담았는지 스마트폰이 들어 있는 방수팩을 꺼내서 그제서야 하늘이 움직이고, 해가 지는 순간을 타임 랩스 기능으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파타야.

네이비 색의 하늘은 한국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더욱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파타야에서의 저녁.


 정원이가 촬영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나는 옆에서 물놀이를 즐기던 세 명의 외국인들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하면서 짧게나마 대화를 나눴다. 외국인들은 내게 말을 건넸다.


 “웨얼 아 유 프롬?”

 “아임 프롬 사우스 오브 코리아.” 


 코리아에서 왔다는 나의 대답에 그들은 휘둥그레 커진 눈으로 나를 격하게 반기기 시작했다.


 “코리아!? 위 아 프롬 터키! ! 브라더! 브라더!”


 그들은 바로 한국과 형제국가 사이인 터키에서 온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주먹 쥔 하이파이브를 요청했다. 나는 개방적인 그들의 인사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의 대화는 1분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짧았지만 리액션은 어느 의형제 못지않을 정도로 격했고 셀카도 여러 장이나 거듭해서 찍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날 서로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공유했다. 이유는 훗날 우리 중 누구 한 명이라도 터키, 혹은 한국을 방문한다면 다시 만나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코리아! 브라더!" 를 연발하며 격하게 환영해 주던 터키 청년들

 

 어느덧 시간은 완전한 저녁이 되었다. 우리는 인피니티 풀의 사이드에 있던 바(Bar)로 가서 칵테일을 주문했다. 바텐더는 썬 베드에서 누워 기다리라고 하더니 칵테일을 만들어 직접 우리에게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젖은 머리 위로, 짙은 남색빛 하늘을 배경으로 칵테일 잔을 높이 들어 부딪쳤다. 이어 칵테일이 한 입 막 들어갔을 찰나에 정원이는 내게 말을 건넸다.


과일이 가득 담겨있던 스위트 칵테일. 

 

 “영완, 직장 생활 하느라 항상 쫓기듯 살아 왔잖아.

나는 네가 그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여유롭게 이 시간을 만끽했으면 좋겠어.”


군생활을 함께한,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할 소중한 친구 정원

 

 정말 이런 친구는 어딜 가도 없다고 단언한다. 놀러와서까지 평상시 나의 일상을 신경 써 주며, 이 시간이 직장 생활 속의 쉼표가 되어 주길 바라 주는 친구는 아마 정원이가 유일무이할 것이다. 이런 인간이 내 군생활의 맞선임으로 있어 주어서, 또 그 인연이 지속되어 먼 나라 태국에까지 함께 올 수 있는 사이가 된 우리의 지금에 감사하며 나는 파타야의 저녁에 흠뻑 빠져들었다.

 

S#13. 홉스 브루하우스

 서두에 말하지 않은 내용이 하나 있다. 이번 여행은 예능프로그램 <배틀 트립><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1>을 철저하게 모방하고 있다. 한 명이 전체적으로 여행을 이끌지 않고, 여행에 함께하는 동행자가 서로의 일정을 같이 계획하는 <배틀 트립>의 콘셉트와 서로의 꿈에 한 명도 열외 없이 동참했던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1> 콘셉트를 결합하여 정원이는 파타야에서의 일정을, 나는 방콕에서의 일정을 계획했고 우리는 서로가 계획한 일정 속에 한 명이 원치 않는 음식이 있어도, 혹은 원치 않는 액티비티가 있어도 빼지 않고 참여하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파타야에서의 일정은 줄곧 정원이의 계획만으로 꾸며지고 있는 것이다.(방콕에서는 나의 계획으로 일정이 진행될 예정이다.)



<배틀 트립>처럼 여행의 일정은 서로가 같이 계획하고,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1>처럼 서로의 꿈에 모두가 동참하는 여행을 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던 워너원투어.

 

 정원이가 파타야의 일정을 계획하면서 먹어 보고 싶은 음식들을 이야기할 때, 내가 가장 궁금했던 음식은 족발튀김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정원이가 파타야에서의 저녁으로 족발튀김과 화덕피자를 제안했다. 나는 단번에 동의했다. 맛있는 족발튀김과 밀맥주로 유명한 정원이의 초이스 홉스 브루하우스는 시암 앳 시암 호텔에서 썽태우로 5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홉스 브루하우스의 외관은 유니크한 엠블럼들로 가득 장식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이 곳은 파타야의 유명 맛집이라는 아우라를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내부는 독일 풍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다. 나는 수많은 맥주 잔, 혹은 다량의 맥주가 담겨 있는 대용량 디스펜서를 서빙하는 직원들의 분주함을 보며 더더욱 홉스 브루하우스에서의 만찬을 기대하게 되었다. 우리는 메인 요리로 족발튀김과 해산물이 듬뿍 토핑된 씨푸드 화덕 피자를, 맥주는 기본 밀맥주로 두 잔을 주문했다.


독일 식 인테리어가 특징인 홉스 브루하우스.

라이브 무대도 있었지만 이 날은 공연이 예정에 없었는지 진행되지 않았다.

 

 족발튀김은 살코기 표면에 붙어있는 바삭한 껍데기 튀김옷이 일품이었다. 그러나 퍽퍽한 살이 많은 부분들을 먹다 보니 금세 질리는 감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는 개인적으로 족발튀김보다 씨푸드 화덕 피자가 더 나았다. 씨푸드 화덕 피자는 흔히 피자에서 맡기 힘든 굴의 향이 독특하고, 피자에 올라가는 치즈 토핑과 굴, 새우의 어우러짐이 자아내는 조화가 꽤나 신선했다. 가뜩이나 해산물까지 통통하게 알차 있었다. 쫄깃했던 식감은 이루 말할 것도 없다.

 

씨푸드 화덕 피자와 족발튀김


 그렇게 파타야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밤을 맞이했다. 정원이는 내가 태국 여행을 제안해 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집에서 허황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거라며 내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 여행을 함께해 준 정원이가 고마웠다. 낯간지럽지만 우리는 이 때가 아니면 고마움을 표현할 순 없을 것 같았는지 서로에게 아낌없이 고마움을 전하며 남은 여행 일정도 성공적으로 흘렀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여러 번 맥주잔을 부딪쳤다.


맛 없이 깔끔하게 목을 타고 넘어갔던 홉스 밀맥주

 

S#14. 워킹 스트리트

 족발튀김과 씨푸드 화덕 피자를 먹고 배가 부른 우리는 소화를 이유로, 또는 파타야의 밤 문화를 느끼고자 워킹 스트리트를 거닐기로 했다. 바이크를 타던 낮에 지나갈 때만 해도 워킹 스트리트는 그저 한적한 거리에 불과할 정도로 조용했는데 어둠이 내려앉자 이 곳은 아주 열정적이고 뜨거운 거리로 변해 있었다. 화려하게 빛나던 네온사인 간판은 눈이 아플 정도로 반짝였고, 호객 행위를 하던 여성들의 의상은 하나같이 도발적이었다. 워킹 스트리트에서 우리는 반가운 한국 브랜드 설빙을 보기도 했고,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무에타이 펍을 보면서 신기해 하기도 했다.


국적, 나이, 성별을 불문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활발함을 이루어 내던 워킹 스트리트

 

 그러나 워킹 스트리트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워킹 스트리트에서는 공공연하고 활발하게 성매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삐끼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했고, 전단지의 사진은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지 않을 정도로 적나라했다. 충격적이었지만 끈질기게 쫓아오는 삐끼들을 거절하는 재미가 꽤나 쏠쏠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재밌었던 게 있다. 그것은 바로 끈질긴 삐끼들의 호객 행위 속에서 수줍음 많은 정원이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워킹 스트리트를 빠져 나온 우리는 내일의 일정을 위해 썽태우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에서는 정원이가 가져 온 블루투스 스피커에 노트북을 연결하여 서로가 원하는 노래를 번갈아가며 틀었다. 우리는 음악을 틀어 놓고 샤워를 하거나, 짐을 정리하거나, 혹은 각자의 스타일에 맞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내가 선곡한 Marie Digby의 Breathing Underwater

 

S#15. 시암 앳 시암 호텔 조식 뷔페

 우리는 이 호텔을 특가로 예약했기 때문에 옵션에 조식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생애 처음 와 본 5성급 호텔에서 조식을 먹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조식 1일권을 별도로 구매하기로 했다. 한 명당 한국 물가로 1만 원 대의 가격밖에 하지 않았던 호텔에서의 조식.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간편한 트레이닝 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호텔 내의 뷔페로 내려갔다.

 

 세팅되어 있던 음식들은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뷔페들의 디너 메뉴 이상의 수준으로 화려했고 메뉴 또한 풍성하게 채워져 있었다. 분명 우리는 조식을 먹고자 왔는데 양식, 일식, 디저트까지 높은 퀄리티로 준비되어 있었고, 브런치에 먹기 좋은 계란으로도 다양한 요리들을 만들고 있었다. 특히 벌꿀은 실제 벌집에서 즉석으로 내리고 있었는데 가공을 거치지 않는 천연 상태의 음식을 제공하는 점을 미루어 보아 음식에 대한 신뢰도 가질 수 있었다.


조식 뷔페의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던 디저트 코너


쌀국수를 즉석에서 만들어 주던 조리사


벌집에서 즉석으로 바로 내리는 꿀. 단지에 꿀이 고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 같다.


전투적으로 시작된 우리의 조식 뷔페 먹방

 

 아침은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늘 그것이 어려웠다. 눈을 뜬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먹는 음식은 잘 들어가지 않는 편인데 이 날은 예외였다. 나는 즉석 쌀국수까지 포함하여 평소 한국에서는 입에 대지도 않는 과일까지 오밀조밀 접시에 가득 담아오더니 순식간에 세 접시를 해치웠다.


평상시의 아침이라면 배가 버거워서 디저트를 먹는 편이 아닌데 이 날은 예외였다.

 

S#16. 발리하이 선착장

 배부른 조식을 먹고 우리는 꼬란 섬으로 들어가 해양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발리하이 선착장으로 향했다. 발리하이 선착장에서는 꼬란 섬의 다양한 해변가로 향하는 배가 즐비하게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코에 닿는 바다 냄새와 드넓은 제방 길. 어릴 적 즐겨했던 게임 <메이플스토리>속 세상을 누비는 듯한 천진난만한 착각을 일부러 가져보기도 했다.

 

 여유 있게 선착장에 도착한 덕분에 우리는 가장 첫 시간에 싸매 비치로 들어가는 배를 탈 수 있었다. 탑승권을 구매하고 나서 우리는 출항 전까지 셀프 비디오에 넣을 장면들을 촬영하면서 여유있게 시간을 보냈다. 셀프비디오의 감독과, 나의 포토그래퍼를 자청한 정원이는 맨땅에 드러누우면서까지 촬영에 대한 열정과 혼신을 쏟아 부었다.


셀프비디오 촬영을 위해 한여름 아스팔트 바닥에 드러누우면서까지 촬영의지를 불태우는 정원


승객들을 배에 태우며 출항을 준비하고 있는 꼬란 섬으로 향하는 배

 

 어느덧 배는 출항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배는 이내 힘차게 뱃고동을 울리더니 바닷바람을 가르며 꼬란 섬로 항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비행기 지연과 여권 분실 사건, 바이크 적발 사건을 잇는 또 하나의 예상 못한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바로 배의 엔진 고장이었다. 갑자기 배가 바다의 한가운데서 멈추더니 재시동을 여러 번 시도하기 시작했다. 파도치는 바다 위에 고립되어 있었음에도 승객들은 배가 좌우로 흔들릴 때마다 웃으며 바이킹을 타는 듯한 리액션을 보였고, 늘 그렇듯 정원이는 침착하게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나였다. 조식으로 뷔페를 세 접시나 먹었던 탓에 몸에서 배멀미의 기운을 보이기 시작했다.

 

 야속하게도 배는 다시 항해를 시작할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타이항공 비행기가 지연되었을 때보다 더한 짜증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비행기의 지연은 한밤중이었기 때문에 계획했던 일정에 크게 지장은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오후에 우리를 픽업하러 올 방콕 행 벨 트래블 버스가 430분에 시암 앳 시암 호텔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우리는 꼬란 섬에서 나오는 배 중에서 가장 빠른 시간의 배인 3시 배를 타고 파타야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이 버스는 정원이가 한국에서부터 예약했던 버스였던 데다가 놓치면 방콕으로 돌아갈 방법을 새로 찾아서 자급자족으로 움직여야만 했다. 그래서 우리는 꼬란 섬에서의 해양 스포츠를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자 일부러 가장 첫 시간의 배인 930분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온 것인데 하필 엔진이 고장 난 탓에 우리가 꼬란 섬에서 보낼 수 있는 제한된 시간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었다.

 

 더 이상 이대로는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나의 판단 아래에 나는 멀미를 억눌러가며 정원이를 통해 선장에게 스피드 보트를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 몸 상태는 점점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기 때문에 배 위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파타야로 다시 돌아오면 너무나 억울할 것 같았다. 이러한 나의 뜻을 전달해야 할 정원이의 입장이 곤란했던 것은 알았지만 미안함을 무릅쓰고 부탁했다. 정원이는 잠시동안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망설였지만 이내 선장에게 가서 나의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나 선장은 정원이에게 새로운 배를 불렀다. 10분 내로 배가 이 곳에 도착할 테니 그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고장난 엔진 때문에 새로 부른 배가 도착할 때까지 고립되어 있던 승객들

 

 나도 정원이도, 이제는 승객들도 모두가 지쳐 있는 상황이다. 나는 배가 올 때까지 바닥에 쭈그려 앉아 거듭해서 마인드 컨트롤을 반복했다. 이 상황에서 내가 더 이상 짜증을 표출하면 정원이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 같았고, 그것은 곧 워너원투어의 실패로 이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구명조끼를 집어 던지며 정리하지 않고 새로운 배로 갈아타려 할 때도 그 행동을 지적했던 정원이의 꾸중을 묵묵히 수긍했다.

 

 새로운 배로 옮겨타자마자 나는 바로 바닥에 쭈그려 앉아 잠을 청했다. 그 때 만큼은 지금이 몇 시인지, 해양 스포츠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들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렇게 잠에 들다가 눈을 떠 보니 시간은 1130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바다 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꼬란 섬 상륙을 코앞에 두고 또 한 번 배가 바다 위에서 멈추었다. 이내 작은 나룻배가 우리 배를 향해 오더니 승객들을 옮겨 태워 꼬란 섬까지 데려다 주었다.

 

S#17. 꼬란 섬

 시간은 12시와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원래대로였다면 1030분에 꼬란 섬에 도착하여 해양 스포츠를 즐기다가 식사를 하고 있었을 시간인데 우리는 이제야 섬에 도착하게 되었다. 나는 감정 표현이 뚜렷한 편이라 원래와 같았으면 밝은 모습을 보이기가 어려웠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나는 3년 전, 오사카 우정 여행을 실패한 이후 감정 표현 절제의 필요성을 배웠고, 이번 여행을 시작하면서도 이 점을 가장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흘러간 시간, 그리고 결국에 3시간밖에 남지 않은 시간만이라도 아쉽지 않게 미친 듯이 놀자고 긍정적으로 마음을 바꿔먹었다.


1시간이면 도착할 꼬란 섬에 2시간 30분이나 걸려 도착했다.

 

 그래서 정원이와 나는 꼬란 섬에서의 식사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꼬란 섬에서만큼은 우리의 슬로건이 먹을 시간에 놀자.” 였다. 꼬란 섬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선착장의 바로 앞에 있던 싸매 비치의 가게에서 제트스키와 패러세일링을 할 수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러자 주인 아주머니께서 싸매 비치에는 패러세일링을 할 수 있는 곳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당황한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지금이 멘붕 상태임을 눈으로 말했다.


* 시간이 제한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파타야에서 꼬란 섬으로 들어갈 때 스피드 보트(20)가 아닌 선착장 배(50)를 탄 이유 : 우리가 떠났던 6월은 태국이 우기일 때였다. 고로, 해양 스포츠의 예약을 미리 해 놓아도 현지에 도착했을 때 비가 오면 스피드 보트를 포함한 모든 해양 스포츠를 이용할 수 없게 된다. 또, 당일 오후에 방콕으로 돌아와야 하는 시간적인 제약을 이유로 우리는 모든 해양 스포츠를 사전에 예약하지 않고 가장 체험해보고 싶었던 해양 스포츠(패러세일링, 제트스키)만 현지에서 흥정을 통해 체험하기로 합의했다. 꼬란 섬에서의 일정을 여유롭게 계획한다면 사전에 한국에서 해양 스포츠를 예약하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그러면 파타야에서 꼬란 섬으로 들어갈 때의 스피드 보트 체험도 그 안에 포함되어 20분 만에 꼬란 섬에 도착할 수 있으며 다양한 해양 스포츠를 패키지(스피드 보트, 제트스키, 스노클링, 시 워킹, 패러세일링, 바나나보트, 점심식사)로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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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01. 인천으로 퇴근하기

 태국에서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어서 몸이 조금 피곤해도 퇴근 후 밤비행기로 출국할 수 있는 일정을 선택했다. 그래서 나는 밤에 인천을 출발하여 익일 새벽에 방콕에 도착하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나는 퇴근과 동시에 인천공항으로 향할 수 있게 출근할 때부터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왔다. 동료들은 하나같이 퇴근 후 나의 일정을 궁금해 하며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퇴근 시간이 되자 나는 늘상 타던 방향이 아닌, 반대 방향의 지하철을 타고 홍대입구 역까지 가서 공항철도로 환승했다. 지하철은 1시간 30분 가량을 달리고서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그 곳에서 나는 미리 공항에 와 있던 정원이를 만났고, 정원이 몰래 준비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워너원투어>라는 로고가 담긴 깃발을 선물하며 이번 여행의 시작을 알렸다. 우리는 이번 여행 내내 이 깃발과 함께 방콕과 파타야를 누빌 예정이다.


KBS <배틀 트립>에서 EXID 솔지, 하니가 오사카 여행 시 들고 떠났던 깃발을 보고 자극을 받아

정원이 몰래 디자인하여 회사에 제작을 의뢰한 워너원투어 깃발.

가운데 로고의 양 쪽에 새겨져 있는 사인은 나와 정원이의 사인이다.

 

 퇴근 후, 바로 공항으로 왔더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말이 아니었다. 머리는 몹시나 헝클어져 있었고 셔츠는 오늘따라 유독 더 주름져 보였다. 그것은 곧 눈엣가시로 여겨졌다. 나는 모처럼의 여행을 이렇게 꼬질한 모양새로 시작하고 싶지 않아서 백팩에 미리 챙겨 온 찢어진 스키니 청바지와 검은색 반팔 이너로 옷을 갈아입고 체크인 카운터로 향했다.


게이트로 향하던 도중 보였던 전신 거울을 보며 찍은 여행 출발 전 우리의 개구진 모습

 

S#02. 지연

 여행의 시작부터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렀다. 방콕 행 비행기가 50분 지연이 된 것이다.(탑승 직전까지도 지연이 이어져 사실상 1시간 30분 가까이 지연되었다.) 그러나 새벽에 도착하는 밤비행기라는 이유로 1시간 정도는 참을 수 있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한편으로는 여유롭게 공항을 구경하면서 식사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연이 마냥 싫지만은 않게 느껴지기도.


아이러니하게도 항상 내가 타는 비행기는 지연이 잦은 것 같다. 기분 탓인 걸까.

 

S#03. 방콕으로

기내로 향하는 통로는 언제 거닐어도 가슴이 설레서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다.

얼마나 비행기를 많이 타야 이 곳을 지나쳐도 아무런 설렘이 들지 않을까.


 외국 항공사는 처음이었다. 타이항공의 기내는 지금껏 내가 타 보았던 국내선 저가항공사의 기내보다 훨씬 넓었다. 타이항공의 기내에는 좌석 스크린이 있어서 방콕으로 향하는 비행기의 내비게이션도 볼 수 있었다. 스크린에는 내비게이션 외에도 영화, 게임 등 다양한 컨텐츠가 있었다. 그 중 K-POP 어플리케이션에서는 원더걸스와 카라의 노래를 들을 수도 있었는데 그 순간, 내가 좋아하는 걸그룹에 대해서 자부심이 들기도 했다. 반면, 다비치의 음악이 J-POP 어플리케이션에 있던 것은 다소 찜찜했다. 비행기가 하늘길에 다다르자 승무원들은 승객들에게 기내식과 음료를 제공했다. 나는 닭요리, 정원이는 생선 요리가 메인 음식이 되는 기내식을 선택했는데 생선 요리가 훨씬 맛있었다. 기내식은 메인 요리 외에도 빵과 버터, 티라미수, 샐러드 등으로 알차게 채워져 있었다. 배부르게 기내식까지 먹고 나니 그제서야 서서히 눈꺼풀이 무거워져 나도 모르는 사이 잠에 들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비행기는 착륙을 시도하고 있었고, 이내 서서히 가슴이 두근거리며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설렘은 금세 짜증으로 변하고 말았다. 비행기가 장비 문제로 인해서 게이트 통로와 연결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비행기는 수완나품 공항의 활주로에 착륙을 하고 나서도 30분이나 출구를 열지 못했다. 기장은 아무런 안내 방송도 없이 승객들을 기내 안에서 대기시키기 바빴고, 나는 미리 예약한 숙소로 바로 간다고 해도 2시간 밖에 잘 수 없다는 상황이 화가 나 서서히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2시간 밖에 잘 수 없다는 사실보다 예약한 숙소에서 2시간 가량밖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더 화가 났다. 그러나 정원이는 이 모든 상황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나를 진정시켰고, 기껏 온 여행이 즐거운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나를 다독였다.


이제껏 저가 항공사의 작은 비행기만 타 보았기 때문에 외국 메인 항공사의 넓은 기내가 매우 신기했다.


하늘 위에서 마시는 레드 와인.

그윽한 향이 무엇인지는 알겠지만 절대 두 번은 찾지 않을 떫은 맛의 와인으로 기억에 남는다.


내가 주문했던 닭요리 기내식. 나무젓가락이 놓여진 곳의 아래에는 완두콩이 가득 있었으나

입맛에 맞지 않아 다 정원이의 기내식으로 옮겨 주었다. 스물을 넘겨도 편식을 고치기가 여간 쉽지 않다.


기존 도착 시간보다 1시간 30분이나 늦게 도착한 방콕.

태국 입국 수속을 진행하기 위해 서둘러 입국심사장으로 향했다.


 끝내, 승무원들은 비행기의 뒷문을 통해 승객들을 하차시켰다. 우리는 내리자마자 선두로 입국 심사장으로 와 빠르게 수속을 마쳤다. 그리고 택시 부스가 있는 1층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택시마저도 바로 탈 수는 없었다. 우리의 목적지가 되는 파니니 레지던스 호텔은 공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단거리 운행을 하는 택시 기사가 공항으로 돌아와야만 택시를 탈 수 있었다. 무덥고 탁한 공기가 감돌던 1층의 택시 부스에서 10분 가량을 기다리고 나서야 우리는 택시에 탑승할 수 있었다. 차창 너머로 보이던 태국어 이정표와 도로 곳곳마다 심심찮게 보이던 작은 불상들. 그것들이 눈에 담기니 그제서야 내가 호흡하고 있는 이 곳이 태국이라는 게 실감나기 시작했다.

 

S#04. 파니니 레지던스 호텔

파니니 레지던스 호텔로 우리를 데려다 주셨던 택시 기사님.


 정원이가 한국에서 미리 예약한 파니니 레지던스 호텔은 방콕의 수완나품 공항의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택시로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프론트 데스크에 있던 여직원은 우리가 이 날의 마지막 체크인 손님이라며 환한 미소로 환영해 주었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그녀는 , 소즈라고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그 말을 듣고 나는 흥분에 찬 목소리로 ! 소주! 아이 라이크 소주! 나 소주 진짜 좋아해요!” 라며 라디오스타에서 홍윤화가 선보이던 뽕딱뻥(소주 병 따는 소리)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자 그녀는 소지섭!” 이라고 말하며 말하려던 단어가 소주가 아니었다는 것을 표현했다. 급격히 민망해진 나는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정원이와 함께 예약된 2층의 방으로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샤워부터 했다. 샤워를 하고 나와 머리를 말리고 나니 어느덧 시간은 새벽 4시를 넘기고 있었다. 당장 8시에 파타야로 향하는 벨 트래블 버스에 탑승해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늦어도 7시에는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를 타야만 했다.(공항으로 향하는 시간은 10분밖에 안 되지만 간단한 아침 식사를 위해서 정원이는 7시에 파니니 레지던스 호텔로 우리를 픽업해 가는 택시를 예약했다.) 서둘러 잠을 청했다. 그리고 아침이 밝았다. 역시 우리는 전우였다. 약속했던 새벽 6시에 칼같이 일어나 파타야로 향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예약한 택시를 타러 가기 위해 방을 나서려 하는 찰나, 여행 시 가장 소름이 돋는다는 상황이 터지고 말았다.


소주가 아닌 소지섭을 말하고 싶었던 파니니 레지던스의 프론트 여직원.

그리고 택시 예약을 진행하고 있는 정원.


모든 것을 누리기엔 아쉬운 호텔이지만, 딱 잠만 자기에는 과분했던 시설의 호텔.

비행기의 지연 탓에 이 호텔에서 3시간만 잘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


아침이 밝았다. 파타야로 향하기 위해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기 전,

문 틈으로 보이는 방 안의 모습이 청명하여 급하게 셔터를 눌렀다.

 

S#05. 여권 분실

 방콕에 온 지 6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정원이가 여권을 잃어버렸다며 캐리어와 가방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심지어 택시가 오기로 예약한 7시까지는 앞으로 15분 가량만을 남기고 있었다. 친구로서 무슨 수를 써 줄 수도 없는 초조한 이 상황과 불안함, 또 시간적 압박이 나를 미치게 하고 있었다. 나는 애써 당황하지 않은 척, 혹은 대수롭지 않다는 척, 무신경한 말투로 어디 있겠지. 네가 어제 체크인할 때, 프론트에서 직원이 여권 복사 했었잖아. 그럼 거기 있겠지. 1층 내려갔다 와 봐.” 라고 툭 말을 던졌다. 그런데 골똘히 생각해 보니 정말로 정원이의 여권은 프론트에 있을 것만 같았다. 지연된 비행기와 30분 이상 기내에서 하차를 기다리던 스트레스로 인해 숙소 입성이 너무나 간절했던 탓이었을까. 체크인 당시에 신분 확인을 위해 예약자인 정원이가 여권을 복사한 이후, 프론트에서 여권을 받지 않고 두고 온 상황만이 이 상황의 정답일 것 같았다. 내 말을 듣고 프론트로 달려 갔던 정원이가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여권 찾았어?"


 내 예상은 적중했다. 여권은 프론트 데스크의 복사기 안에 있었다. 정원이와 프론트 여직원은 서로가 여권을 돌려 받을, 돌려 줄 생각을 잠깐 잊고 있던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예약했던 택시를 타기까지 5분을 남기고서야 여권을 찾을 수 있었고 덕분에 체크아웃도 제 시간에 마칠 수 있었다. 시작부터 짜릿했다. 나는 정원이에게 체크아웃 하고 나서 여권 없는 것을 알아챘으면 어떡할 뻔 했냐.”며 진작 알아채서 다행이었다고 정원이의 놀란 가슴을 안도시켰다.


S#06. 파타야로

 아침부터 거사(?)를 치르고 방콕의 수완나품 공항으로 5시간 만에 돌아왔다. 출발 전, 우리는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파타야로 이동하고자 수완나품 공항의 3층 푸드코트를 활보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는 음식 대기 시간과 촉박했던 파타야 행 버스 픽업 시간 탓에 한국에서 이제는 볼 수 없는 훼미리마트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우리는 곤약 음료와 삼각김밥 등으로 가볍게 끼니를 때웠다. 예상보다 더 간단했던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니 시간은 어느새 버스 탑승 시간에 가까워져 있었다.

 

 벨 트래블 버스는 수완나품 공항의 1층에서 탑승할 수 있었다. 버스 안에는 약소하게나마 화장실도 있었고, 생각보다 승객들이 많지 않아서 조용하게 파타야로 향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우리는 미처 다 취하지 못했던 수면을 충분히 취할 수 있었다. 원래 방콕에서 파타야까지는 버스로 평균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 이 날의 우리는 뻥 뚫렸던 고속도로 덕분에 1시간 3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파타야로 향하는 벨 트래블 버스 안에서 출발 직전에 찍은 티켓 인증샷.

 

S#07. 시암 앳 시암 호텔

 우리는 벨 트래블 버스를 타고 벨 트래블 파타야 스테이션에 내려 시암 앳 시암 호텔로 향하는 승합차로 환승했다. 시암 앳 시암 호텔은 초호화 시설에 비해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5성급 호텔로, 내가 좋아하는 예능프로그램 KBS<배틀 트립>에서 배우 김민교가 극찬하며 소개했던 호텔이다. 시암 앳 시암 호텔은 독특한 네이비 색의 건물 외벽이 눈길을 사로잡으며 하늘과의 경계가 보이지 않는 루프탑 인피니티 풀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배틀트립>에서의 소개 때문에 이 호텔을 고르고 싶었던 욕심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루프탑 인피니티 풀에서 파타야의 뷰를 보고 싶었던 마음이 가장 컸다.


KBS<배틀 트립>에서 김민교가 소개한 5성급 시암 앳 시암 호텔.

이 건물의 옥상에는 루프탑 인피니티 풀이 있으며 독특한 네이비 색 건물 외벽은 해변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시암 앳 시암 호텔에 도착했다. 그런데 로비에서부터 우리를 보며 수군거리는 여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내 한 여직원은 우리를 향해 다가오더니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고 지금 가방에 꽂고 계신 <워너원투어>라는 이 깃발. 어떤 건지 알 수 있을까요? 제 친구가 워너원 진짜 팬이거든요.” 라고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한국인 여직원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워너원이라는 그룹의 파급력이 이렇게나 강하다는 것도 정말 놀라웠다. 정원이는 깃발 속의 워너원은 우리의 이름에서 따 온 투어명이며, 아이돌 그룹 워너원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투어명의 이해를 완료한 한국인 여직원은 이내 로비에 있던 동료들에게 우리의 해명을 전달해 주었다.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프론트 직원은 갈증을 씻겨 줄 하와이안 음료를 대접해 주었다.

 

 얼리 체크인을 하고서 본격적으로 워너원투어를 시작하려고 했으나 시암 앳 시암 호텔은 얼리 체크인이 불가능했다. 현재 시간은 오전 10시인데 체크인은 오후 2시까지부터 가능했다. 파타야에서의 일정을 담당했던 정원이가 곰곰이 계획을 수정하는 동안에 나는 화장실로 가서 콘텍트 렌즈를 착용하고 왔다. 정원이는 나에게 지금은 호텔에 짐만 맡기고 바이크를 빌려 체크인을 하기 전까지 파타야를 누비자고 했다. 나는 그 의견에 찬성했다. 그래서 우리는 썽태우(파타야 식 택시 겸 버스)를 타고 한국의 블로그에서 소개하고 있던 신뢰도 높은 바이크 렌트샵으로 향했다.

 

S#08. 피자헛 앞 바이크 렌트샵

 우리는 썽태우를 타고 5분 정도를 달려 피자헛 앞에 즐비하게 바이크를 나열하고 있던 렌트샵에 도착했다. 우리는 계획한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바이크를 시간 단위로 렌트하고 싶었지만, 렌트샵에서는 하루 단위로만 렌트가 가능하다고 하여 결국 1일 렌트를 하기로 결정했다. 시간적으로 보면 비효율적이긴 하지만 태국의 물가는 그것을 능가할 정도로 저렴했기 때문에 시큰 손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달리는 썽태우 안에서 보이던 파타야 해변의 풍경.

카메라 셔터가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의 순간을 포착하진 못했지만 아쉽지 않다.

왜냐하면 나의 기억 속에는 파타야의 모든 순간이 선명하게 남아있기 때문에.


한국의 블로그에서는 좌측에 보이는 피자헛 앞의 바이크 렌트샵이 믿을만 하다고 추천해 주었다.

뭐라고 딱 설명하긴 어렵지만 수수한 이 거리의 풍경이 어딘가 태국스럽다고 생각되었다.


바이크 렌트 계약서를 작성하시는 아주머니.

제 아무리 신뢰도 높은 렌트샵이라 한들 나는 바이크를 반납하기 직전까지 아주머니를 경계했다.

(나는 외국인 바가지 가격의 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아 아주머니께서 선의로 우리의 워너원투어 깃발을

바이크에 달아 주겠다고 하실 때도 "정원! 나중에 기스 생겼다고 할 수 있어." 라고 한국어로 말하며 거절했다.)


 한국에서 운전을 자주 해 본 적이 없던 나는 정원이를 따라 파타야의 주변을 천천히 돌며 운전 감각을 몸에 익혔다. 서서히 운전 감각이 익숙해질 즈음 나는 정원이에게 OK 사인을 건넸다. 그것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질주를 시작하자는 사인이었다. 정원이를 선두로 하여 나는 파타야의 태양과 바닷바람을 가르며 질주했다. 내 앞에서 달리던 정원이는 커브를 할 때마다 손으로 방향을 지시했고, 나는 그 신호에 순응하며 바이크에 몸을 맡겼다.


바이크를 타고 워킹 스트리트를 지나오니 미국 LA의 '할리우드'와 같은 파타야 간판이 보였다.


파타야 시티 간판을 배경으로 찍은 셀카.

땀에 젖어 갈라진 나의 앞머리를 보니 당시의 푹푹 찌던 찜통 더위가 절로 상기된다. 

 

S#09. 더 스카이 갤러리

 바이크를 타고 파타야를 누비다 보니 서서히 배가 허기지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첫 끼니도 편의점 식품으로 조촐하게 먹었던 지라 파타야에서, 더 크게는 태국에서의 본격적인 첫 식사를 화려하게 시작하고 싶었다. 정원이는 파타야 해변의 뷰를 전망하며 식사를 할 수 있는 더 스카이 갤러리로 나를 안내했다. 우리는 메인 요리로 똠얌꿍과 팟타이를, 음료로는 정원이가 태국에 오면 너무나 마셔 보고 싶었다는 땡모반(수박 슬러시)을 두 잔 주문했다. 테이블과 의자가 하얀 모래알 위에 놓여져 있어 조금씩 흔들리고, 샌들 속으로 모래알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촉감이 더 좋았다. 탁 트인 바다 전망 위로 부딪치는 음료 잔과 간지럽게 불던 선선한 바닷바람,  정말 맛있었던 음식까지. 무엇보다 이 순간을 함께하고 있는 소중한 친구 정원. 바랄 게 뭐 더 있냐는 산이와 레이나의 한 여름밤의 꿀의 가사는 지금을 두고 떠올린 가사가 아닐까 할 정도로 행복했다.


더 스카이 갤러리. 일부 관광객들은 이 글자를 배경으로 단체사진도 찍곤 했다.


바닷바람을 만끽하며 먹었던 태국에서의 첫 식사.

적응되지 않았던 똠얌꿍은 몇 번이나 고개를 갸우뚱하며 먹었지만,

팟타이는 정말 맛있어서 고춧가루와 크런치 땅콩을 함께 곁들여 흡입하듯 먹었다.

 

S#10. 빅 부다 사원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바이크를 타고 파타야의 뷰를 볼 수 있는 빅 부다 사원으로 향했다. 빅 부다 사원은 파타야의 워킹 스트리트 뒤편에 있는 카오 프라땀낙 산의 정상에 위치하고 있어서 해변가 전망을 볼 수 있던 더 스카이 갤러리와는 달리, 파타야의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빅 부다 사원은 입구서부터 사원으로 안내하는 길고 넓은 계단이 압도하는 힘이 강렬하며 그 계단의 끝에 자리잡고 있는 빅 부다는 절로 사람들을 경건하게 만들 정도로 포스가 근엄하다. 작은 불상 앞에는 불상에게 물을 끼얹을 수 있게끔 작은 바가지가 구비되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는 물을 뿌려 주며 복을 기원한다는 태국의 전통에서 구비되어 있던 바가지였다. 우리는 바가지에 물을 담아 내리쬐는 태양빛 아래 앉아있던 작은 불상에게 물을 끼얹어 주었다. 더운 날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의 미소 담긴 물세례를 받는 불상이 잠시나마 부럽다는 미련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태국은 그 정도로 무덥고 습했다.)


빅 부다 사원의 입구.

사원으로 안내하는 길고 넓은 계단에서부터 근엄한 포스가 드러난다.


정원이는 오른손에 쥐고 있는 바가지로

작은 불상에게 물을 끼얹어 주었고 더위가 물러가기를(?) 기원해 주었다.


빅 부다 사원의 끝자락 테라스에서 마주한 파타야의 전경.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건축물과 바다와의 조화.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의 움직임은 분주할 수밖에 없었다.


S#11. 적발

 사원에서 나온 우리는 바이크를 타고 렌트샵으로 돌아가 바이크를 반납하고 호텔로 가서 체크인을 하기로 했다. 20분 가량을 달려 바이크 렌트샵의 주변에 도착했을 즈음, 도로 교통을 정찰하던 한 경찰관이 호루라기를 부르며 우리를 불렀다. 나는 국제면허증과 국내면허증, 여권까지 모두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경찰관의 호출이 너무 무서웠다. 더군다나 나는 영어로 한 마디도 할 수 없는 처지. 나는 정원이에게 의지하며 전개되는 모든 상황을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정원이는 경찰관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더니 나에게 영완아, 국제면허증 보여 달래.” 라고 통역해 주었다. 나는 그 말에 이등병 때의 기상보다 빠른 속도로 국제면허증을 가방에서 꺼내 보였다. 나는 “나 라이센스 있어! 아임 프롬 사우스 오브 코리아!” 라고 되도 않는 영어로 소리쳤지만 경찰관은 매정했다. 나와 정원이의 국제면허증을 압수하더니 면허번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원이에게 무언의 종이를 건네더니 우리에게 인근 경찰서로 가서 벌금을 납부하고 이 곳으로 돌아오기를 지시했다. 경찰관은 벌금 납부 후, 이 곳으로 다시 돌아오면 국제면허증을 돌려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나는 낯선 외국 땅에서 경찰서를 찾아가야 하는 상황과 벌금을 납부하고 돌아왔을 때, 경찰관이 없으면 어떡하나 싶은 불안감에 계속해서 정원이를 닦달하고 쪼아댔다.

 

 그러나 정원이는 군 생활때도 그랬듯, 닦달하는 나와 달리 너무나 침착했다. 경찰관과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 가더니 경찰관에게 가장 가까운 경찰서 위치를 구글 맵에 표시해달라고 요청했다. 파타야에서의 일정을 담당했던 정원이는 내게 사전에 확실하게 조사하지 못해 미안하다면서도 벌금 이상의 조치는 없다며 아기 달래듯 나를 다독였다. 그럼에도 나는 의도치 않은 실수로 외국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치르게 되는 한국인 실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이 계속 떠올라 불안감이 없어지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 하나의 돌발 상황이 일어났다. 구글 맵에서 안내하던 경찰서로 향하던 길이 공사 중이라는 이유로 갈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는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정원이는 침착을 유지했다. 나보다 한 블록을 앞서 질주하더니 경찰서로 갈 수 있는 길을 머릿속으로 계산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경찰서에 도착한 우리는 번호표를 뽑고 차례를 기다렸다.


 정원이는 미안함의 뜻으로 나의 벌금까지 대신하여 납부해 주었다. 벌금을 납부하고 여권을 돌려받기 위해 경찰서를 나오려고 하는데 그 순간 우리를 적발했던 경찰관이 경찰서로 들어오고 있었다. 추측이건대, 경찰관은 도로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경찰서로 복귀하는 것 같았다. 경찰관은 나를 보고 미스터 초이?(Mr. Choi)?” 라고 부르더니 벌금 납부서에 도장을 찍고 오늘의 날짜에 내 사인을 받아내고 나서야 국제면허증을 돌려주었다. 그렇게 우리의 등골 오싹한 상황은 끝맺음을 지었다.

 

 경찰관이 경찰서로 돌아왔기 때문에 우리는 적발된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고를 덜 수 있었지만 만약 우리가 그보다 더 빨리 경찰서에 도착해서 벌금을 납부하고 적발된 곳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면 국제면허증은 벌금을 납부하고도 돌려받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며, 그것은 우리의 골머리를 더욱 썩혔을 것이다.

 

 상황이 종료되고 나서야 정원이는 누가 태국까지 와서 경찰서에 와 보겠냐.”며 얼굴에 미소를 씩 띠었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을 마무리하는 데 큰 공을 써 준 정원이가 웃으며 말을 하니깐 고마우면서도 그제서야 안도가 되어 콧방귀를 뀌며 그러네. 고맙다. 정원아!” 라고 익살맞은 표정으로 회답했다. 당시에는 너무나 무서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유쾌하고 못 말리는 두 남자의 에피소드로 기억에 남는다.


벌금을 납부하고 경찰서에서 나와 면허증을 돌려받은 기념으로 찍은 찡그린 표정의 셀카.

 

* 적발 사유 : (태국 기준) 국제면허증이 있으면 승용차는 운전이 가능하지만 바이크 등의 이륜 차량을 운전하려면 국제면허증에 태국 내의 관공서로부터 별도의 스탬프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이 1종 면허에 2종 면허의 자격까지 포함하여 부여하는 것처럼 국제면허증만 있으면 모든 차량의 운전이 가능한 줄 알았던 것이다. 사전 조사가 미숙했던 과실 탓에 우리는 이 점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경찰관이 우리를 적발했을 때에도 적발된 상황을 의아해 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제면허증을 지참하고 있었기 때문에 벌금 부과 조치에서 그친 것. 혹시라도 태국에 가서 바이크를 운전할 계획이 있다면 반드시 태국 내 관공서로부터 이륜 차량의 운전을 승인하는 스탬프를 받고 나서 운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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