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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처음’ _ 공항에서 노숙하기


 누구에게나 노숙이라는 단어로부터 전해지는 어감과 이미지는 선호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노숙을 경험하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다. 공항이 좋아서. 모든 여행의 시작이 이루어지는 공항, 늘 체크인과 출입국 심사만을 경험했던 이 공간에서 지구촌 사람들의 설렘 가득한 기운을 느끼며 잠들고 싶었고, 공항 곳곳을 누비고 관찰하면서 공항의 매력에 빠져들고 싶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되었다. 나는 퇴근 직후,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바로 공항으로 왔기 때문에 누적된 피로가 상당했다. 그래서 업무 시간에 짬을 내어 미리 조사해 둔 인천공항 노숙 명당으로 빨리 가서 신발을 벗고 잠에 들고 싶었다. 그러나 명당의 이름값은 위대하여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았다. 쿠션형 의자가 비치되어 있어 노숙 명당으로 손꼽히는 F카운터 옆 의자에는 이미 모든 여행객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휴대폰 충전기를 끼고 있는 의자에는 F카운터를 비롯한 모든 카운터가 여행객들로 붐볐다. 그러나 공항 노숙을 포기할 순 없다. 같은 층을 세 번이나 왕복하며 물색한 끝에 나는 B카운터 옆의 의자로 향했다. 비록 쿠션형 의자는 아니었지만 남아있던 자리들 중에서는 휴대폰 충전기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자리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시차가 다른 세계 각지로부터 출발하여 인천에 도착하고, 인천을 경유할 테니 나는 꼭두새벽이 되어도 인천공항의 활기가 넘칠 줄 알았다. 그러나 자정이 넘어가면서 인천공항도 서서히 감기는 점심시간의 눈꺼풀처럼 고요해지기 시작했다. 노숙은 시작됐다. 나는 신발을 벗고 준비해 온 담요를 꺼내 덮어 잠자리를 청했다. 그러나 나는 피로가 극도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불편했던 자세 때문에 도저히 잠에 들지 못했다. 몇 번을 뒤척이다가 1시를 겨우 넘기고서야 잠에 들었지만 그마저도 얕게 잠들어 2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했다.


B카운터 옆의 의자에 앉아서 노숙 중인 나의 모습

 

 새벽 3, B카운터 의자에서의 노숙을 끝내기로 결정했다. 나는 부랴부랴 짐을 싸서 공항의 1층으로 내려와 포켓와이파이를 수령했고, 더 편히 누울 수 있는 자리를 찾아 공항을 누비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노숙판을 벌이고 있어서 비어있는 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끝내 나는 다시 B카운터로 돌아와 다시 한 번 잠을 청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나는 5시 즈음이 돼서야 다시 잠에서 깼고, 체크인을 하기 전까지 공항 밖으로 나가 새벽 공기를 쐬며 얕게 남은 졸음을 떨쳐냈다.


 새벽에 맡는 비 온 뒤의 냄새는 오래간만이었다.

그 장소가 공항이었기 때문에 이 순간은 더 매력적이었다.

 

 117, 이 날 수도권에는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되었다. 그러나 잠깐 내린 새벽비 덕분에 조금이나마 정화된 찬 공기를 맡으며 인천공항에서의 아침을 맞았다.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비행기가 지연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짧은 여행 일정이기 때문에 출발을 할 때만큼은 제발 비행기가 지연되지 않기를 바랐다.

 

 수하물 수속과 출국심사를 마친 나는 공항 도착 8시간 만에 탑승동으로 들어와 던킨도너츠에서 케이준 또띠아를 먹으며 탑승을 기다렸다. 그 때, 군 생활을 할 때 나의 맞후임이었던 재철이로부터 생일 축하 연락을 받았다. 117, 자신의 입대일이자 맞선임인 나의 생일인 이 날을 어떻게 잊냐며 새벽부터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군 생활 당시, 나와 재철이의 사이에는 ‘117외에도 겹치는 평행이론이 너무나 많았다. 하마터면 재철이가 다른 사람의 후임이 될 뻔 했던 해프닝이 있긴 하지만 결국엔 나의 후임으로 맞이하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다시 한 번 강하게 들었다.


 

 

일본 출국 전, 게이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던킨도너츠에서 먹었던 케이준 또띠아 샌드위치

▶▶ 아침이 밝았다. 이번에도 항공사 로고가 가장 예쁜 제주항공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기로 결정했다.

▶▶▶ 시작된 탑승수속. 날씨 탓에 지연을 걱정했지만 제시간에 게이트가 오픈되어 정말 기뻤다.

▶▶▶▶ 미세먼지로 인해 최악의 오염 수치를 기록했던 이 날의 대기. 활주로의 풍경은 항상 맑았으면 좋겠다.


 710, 탑승이 시작되었다. 역대급의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인해 비행기가 지연되는 불상사가 일어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비행기는 정확히 730분에 이륙했다. 비행기가 지면을 떠나 활주로를 뜨기 시작할 때, 나도 모르게 조용히 미소가 지어졌다. 이 미소는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앞에서 보였던 미소와 달리 너무나 자연스럽게 지어졌다. 비행기가 하늘길에 다다랐을 때, 창밖에는 물감을 푸른 것처럼 파란 하늘의 풍경이 펼쳐졌다. 설레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행기 밖 풍경은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고 몇 번을 보아도 아름답다. 풍경에 넋이 나가 있다 보니 어느새 나는 잠에 들어 있었고 잠에서 깨고 나니 또 어느새 비행기는 착륙을 시도하고 있었다. 시간은 1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후쿠오카는 무척이나 맑고 청명했다. 제일 먼저 비행기에서 내린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공항을 빠져 나왔다.


 

▶ 비행기는 활주로를 떠난지 10분도 되지 않아서 이렇게나 맑은 하늘길을 날기 시작했다.

▶▶ 1시간을 날아서 후쿠오카에 도착한 비행기

 

두 번째 처음’ / 택시 탑승하기


 후쿠오카는 공항으로부터 시내인 하카타까지 지하철로 5분밖에 걸리지 않아 초보 배낭여행자도 쉽게 여행할 수 있는 대표적인 도시다. 그러나 나는 오늘 지하철을 타지 않고 택시로 이동할 것이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게 되면 무려 지하철 요금의 8배나 되는 비용이 발생하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택시는 일본에서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택시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나를 하카타까지 데려다 줄 기사님과의 대화는 그 덤이다.


 

▶ 입국 심사장으로 가는 도중, 셔틀버스 안에서 찍은 맑은 후쿠오카의 하늘. 맞은편 버스의 'Welcome to Japan'이 나를 향해 인사를 하는 것만 같다.

▶▶ 택시를 타고 기사님과 대화를 나누며 하카타 역으로 향하는 중

 

 기사님께서는 나의 일본어 실력에 놀라면서 그동안 한국 관광객에게 묻지 못했던 어려운(?) 질문들을 묻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로 최근 한국과 북한의 분위기가 평화적으로 조성되었는데 머지않아 한반도가 통일을 이룰 것 같은지를 물어 보셨고, 두 번째로 일본도 저출산 문제로 인해 청년의 수가 부족하다며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오는 많은 젊은이들이 일본의 상공업 발전에 큰 역할을 해 주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마지막으로 만 나이 계산법에 대한 말씀해 주셨다. 생일을 기준으로 나이를 세는 일본과 달리 신년을 기준으로 나이를 세는 한국의 계산법이 재미있다며 과거에도 일본에선 지금의 한국식 계산법으로 나이를 셌다고 말씀해 주셨다. 자유롭게 오고 가는 대화 속에 하카타에 도착한 나는 기사님께 일본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생일을 축하받으며 기분 좋게 두 번째 처음을 완수했다.


 

 지금까진 사실 무난하게 후쿠오카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무난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샤워다. 원래는 노숙을 마치고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24시간 무료 샤워장에서 샤워를 한 후 비행기에 탑승할 예정이었는데 샤워장의 청소 시간과 맞물려 샤워를 하지 못한 채 후쿠오카에 도착하게 되었다. 퇴근을 하고 집에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샤워를 한지도 하루가 넘었고, 체크인까지는 앞으로 5시간 가량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원래는 후쿠오카에 도착하자마자 명란 덮밥을 먹을 예정이었지만 샤워가 다급한 처지이기 때문에 온천 일정과 명란 덮밥 일정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내가 예약한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는 체크인을 하기 전에 짐만 맡기는 것이 가능했다. 서둘러 짐을 맡기고 바로 온천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원래 여행 일정>

하카타 도착 게스트하우스에 짐 맡기기

<배틀트립> 방송 맛집 멘타이쥬에서 명란 덮밥 먹기 나미하노유 온천 가기

 

<변경 여행 일정>

하카타 도착 게스트하우스에 짐 맡기기

나미하노유 온천 가기 <배틀트립> 방송 맛집 멘타이쥬에서 명란 덮밥 먹기

 

 하카타 역은 규모가 큰 편이라 3년 전에 왔을 때도 제자리 걸음을 하며 주변 일대를 헤매곤 했다. 이번에는 헤매지 않을 거라 자신했지만 결국엔 시민들에게 스미마셍.” 하면서 길을 묻고 말았다. 시민들의 도움과 3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게스트하우스의 프론트에 있는 직원에게 체크인은 규정대로 오후 3시에 하겠다면서 짐만 먼저 프론트에 맡겨도 되냐고 물었다. 직원은 내게 여권을 보여 달라고 하더니 오늘 생일이시네요. 축하합니다.” 라고 하며 지금 비어 있는 침대가 있으니 지금 바로 체크인을 해 주겠다고 했다. 직원은 자신이 내게 파티 요청 메일에 답장을 보낸 미셸이라며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에서의 1박을 환영해 주었다.


 

▶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로 향하는 길

▶▶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룸 2층 침대의 내부, 내가 후쿠오카에서의 하룻밤을 지낼 공간이다.

 

 미셸이 5시간이나 체크인을 빨리 허가해 준 덕분에 나는 굳이 온천에 가지 않고도 게스트하우스의 욕실에서 샤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사전에 계획했던 일정도 그대로 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서둘러 도미토리 룸에 캐리어를 놓고, 욕실에서 샤워를 했다. 개운하게 샤워를 끝내고 간단히 화장을 하려는 순간, 그 때였다.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났다. 세면대 거울을 보면서 왼쪽 눈에 렌즈를 끼려던 찰나에 렌즈가 떨어진 것이다. 세면대를 통틀어 거울 주변, 세면장의 바닥까지 손바닥으로 짚어가며 렌즈를 찾았지만 렌즈는 짚이지 않았다. 1박의 짧은 여행이었기 때문에 여분 렌즈는 가져오지도 않았던 데다가 렌즈는 오른쪽 눈에만 끼어져 있어서 시야가 무척이나 어지럽게 보였다. 세면장을 드나드는 여행객들은 내게 무슨 일이 있냐며 물었지만 나는 렌즈를 찾는 데 여념이 없어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끝내 렌즈 찾기를 포기하기로 했다. 렌즈를 찾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간 다른 일정을 소화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밤에 렌즈를 뺐을 때 낄 대용으로 챙겨 온 까만 뿔테 안경을 끼고 여행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썩 맘에 드는 코디는 아니지만 지금 그런 걸 가릴 처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 처음’ _ 명란 음식 먹기


 지난 여름, 정원이와 함께 떠난 태국에서 <워너원투어>의 큰 기반이 되어 준 나의 인생 예능 KBS <배틀 트립>의 도움은 이번에도 빠지지 않았다. 군 생활 때, 배우 양정아와 윤해영이 출연했던 후쿠오카 편 방송분을 보고서야 후쿠오카가 명란으로 유명한 곳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나중에 후쿠오카에 가게 될 때, 명란 덮밥을 꼭 먹어 보겠다는 위시리스트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번 여행을 통해 실현하게 되었다.






 나는 텐진 역에서 시민과 구글 지도의 도움을 받아 <배틀 트립>에 방영된 명란 덮밥 맛집 멘타이쥬에 도착했다. 방송에서 보았던 그대로 독특한 외관 건축 인테리어는 멀리서 보아도 시선을 집중시켰고, 덕분에 내가 찾는 식당이었다는 것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식사 시간대에 찾으면 대기 줄이 상당하다는 후기가 많아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대기 줄은 없었다. 나는 바로 식당으로 들어가 직원의 안내에 따라 맛을 고르고 2층에 있는 테이블로 자리를 안내받았다.


 

 

▶ 텐진 역에서 내려 멘타이쥬로 향하는 도중에 찍은 아날로그 감성의 일본 횡단보도

▶▶ 공원을 빠져나오자마자 보였던 멘타이쥬. 외관만 보면 마치 박물관을 닮은 것 같다.

▶▶▶ 후쿠오카에서의 첫 식사, 츠케멘과 명란 덮밥

▶▶▶▶ 남김없이 두 음식을 먹음으로써 일본에서의 두 번째 '처음' 명란 음식 먹기 이행 완료

 

 나는 츠케멘과 명란 덮밥이 같이 나오는 세트 메뉴를 주문했다. 명란 덮밥은 밥에 아무런 간도 되어 있지 않은 게 아쉬웠다. 그래서 명란 자체의 짠맛은 무엇인지 알 수 있었지만 명란 덮밥으로서의 맛을 인지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츠케멘이 더 좋았다. 물론 입맛에도 맞았다. 라멘의 국물보다도 면의 익힘 정도가 제일 마음에 들었으며 국물은 굉장히 깊은 맛을 담고 있었다. 그동안 익숙했던 인스턴트 라면과는 확실히 달랐다. 츠케멘의 특제 추가 스프는 면을 다 먹고 남은 국물에 추가해서 맛의 변화를 감미하는 용도로 음식과 같이 나왔다. 이 스프를 국물에 추가하니 짠맛의 정도가 급격히 얕아졌고, 원래 국물의 맛에서 전혀 다른 맛을 내는 게 정말 매력적이었다. 한국에서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만약,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음식이 유행하면 그 과정에서 맛이 변질될 우려가 있는데다가 무엇보다 누구나 알게 되는, 누구나 먹을 수 있는 흔한 맛이 되어 버리는 게 싫었다. 맛있는 음식은 아무 곳에서나 쉽게 먹을 수 있게 대중화되지 않아야 하며, 그것이 곧 희소성이고 조리사의 자부심을 뒷받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네 번째 처음’ _ 온천 가기


 일본을 찾았던 지난 네 번 동안 단 한 번도 온천을 간 적이 없었던 것이 나조차도 놀라웠다. 지인들로부터 일본 여행과 관련하여 연락을 받으면 십중팔구 온천을 물었고, 나는 유일하게 온천에만 가 본 적이 없었다며 대답을 해 주지 못했다. 일본과 온천의 관계는 실과 바늘과 같아 빼놓지 않고 생각되는 카테고리 중 하나인데 왜 나는 그동안 온천에 갈 생각은 해 보지 못했는지 의아했다. 아마, 혼자 떠난 여행이 많아서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가족이나 친구, 여자친구와 함께 일본에 갔다면 빼놓지 않고 온천에 들렀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짧은 일정 안에서 후쿠오카 교외로 나가 온천을 즐기고 오기란 쉽지 않다. 온천을 하려면 도심에서 시골 마을로 이동하는 시간까지 고려해야 하는 데다가 이동 시간이 오래 걸려 숙박을 료칸에서 해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료칸에서 숙박을 하게 되면 또 다른 처음의 리스트였던 게스트하우스에서 파티하기는 실현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나는 사전에 하카타 시내 안에서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을 열심히 찾았다. 후쿠오카는 항구 도시라서 분명히 도심지에도 관광객들이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을 것 같았다. 예상은 적중했다. 하카타 시내 안에는 무려 세 개의 온천이 있었다. 위치, 시간, 온천의 특성 등 모든 것을 고려한 끝에 나는 텐진 역에서 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는 하카타 부두 옆의 나미하노유 온천에서 생애 첫 일본 온천을 경험하기로 결정했다.


 

 

▶ 텐진 솔라리아 스테이지 역 앞에서 20번 버스를 타고 하카타 부두로 향하는 도중에 찍은 하카타 시내의 모습

▶▶ 나미하노유 온천 남탕 앞에서. 나중에 듣기를, 나미하노유 온천은 주기적으로 남탕와 여탕을 바꾸어 관리한다고 한다.

▶▶▶ 온천 입탕 전, 락카룸 열쇠와 함께 인증샷을 남기며 세 번째 '처음' 일본 온천 체험하기 이행 준비

▶▶▶▶ 탕으로 향하는 나미하노유 온천의 정갈한 내부 모습

 

 나미하노유 온천은 도심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해수 온천이라 온천탕의 물이 바닷물이었다. 그것이 내가 하카타 시내 안 세 개의 온천 중에서 나미하노유 온천을 고른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실제로 온천탕의 물에선 짠맛이 났고, 온천 내부도 정갈하고 아담하게 일본 전통식 스타일로 꾸며져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더해졌다. , 탕의 입구에선 다양한 기념품과 유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절로 어릴 적 보았던 일본 영화가 떠올랐다. 나의 기억 속 일본 영화 주인공들은 항상 온천을 하고 나오면 병에 담긴 우유를 마시며 탁구를 치곤 했다. 탁구대가 세팅되어 있지 않아서 탁구는 실현하지 못했지만 가득한 음료들을 보니 나중에 개운하게 온천을 마치고 나와서 가장 맛있어 보이는 음료를 마시며 온천을 마무리짓고 싶어졌다.

 

 온천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노천탕의 썬베드에 누워서 바깥 풍경을 보는 것이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오른쪽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 왼쪽에서는 태양이 내리쬐어 절로 눈이 찡그려졌다. 햇살과 바람이 동시에 나의 몸에 닿아서 간질이는 공기의 기운이 너무나 좋아서 나는 탕 안에 있다가도 몇 번이나 다시 나와 썬베드에 누웠다. 사실은 일본에 오기 전 온천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소 추운 날씨를 원했다. 그러나 후쿠오카는 남쪽에 있어서 11월 치고 다소 따뜻한 날씨를 보였다. 그래서 괜히 덥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따스함과 선선함의 콜라보레이션을 정통으로 만끽할 수 있었고 지금도 가장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주어 최근의 가장 큰 활력이 되어 주고 있다.

 

 온천을 마치고 나온 나는 레몬 크림빵과 플레인 요구르트를 사서 먹었다. 이 순간, 바랄 건 더 없다. 만약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 속의 마코토에게 주어졌던 타임 리프 능력이 나에게도 있었다면 나는 주저없이 이 순간을 몇 번이나 되돌렸을 것이다.


 

 

▶ 온천을 마치고 나오면 바로 보이는 다양한 기념품과 주전부리들

▶▶ 온천의 피날레를 장식할 음료는 플레인 요구르트로 결정했다.

▶▶▶ 가장 맛있어 보였던 레몬 크림빵과 플레인 요구르트

▶▶▶▶ 나미하노유 온천을 등지고 있는 하카타 포트타워. 입장료가 무료라서 온천 후 가볍게 전망대에 올라가 풍경을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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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34.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 조식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즐거운 여행을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이 빨리 갈 거라고 예상은 했다. 그러나 태국에서의 마지막 날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나는 우리의 마지막 날 일정에 체크아웃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일정을 단출하게 세웠다. 그 이유는 마지막 날의 체크아웃은 곧 공항에 도착하기 전까지 캐리어를 직접 이끌고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체크아웃은 낮 12시까지로 제한하고 있었다. 우리가 오늘 탑승할 인천행 비행기는 밤 1030분 이륙으로, 그 전까지 갈 곳은 단 두 곳뿐이었다. 고로, 오늘은 그 어느 날보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워너원투어>의 일정 중, 처음으로 기상시간을 정하지 않고 늦잠을 잤다. 그래도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의 조식은 먹어 보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830분에는 1층의 라운지로 내려와 조식을 먹었다.


 나는 3년 전, 일본 후쿠오카로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 게스트하우스의 라운지에서 화창하게 비치는 햇빛을 눈부셔 하며 조식 토스트를 먹은 적이 있다. 그 때, 토스트와 함께 마셨던 홍차가 생애 첫 홍차였다. 그 뒤로 여행을 떠날 때마다 아침에 홍차를 마시는 것은 내가 치르는 일종의 의식이 되었다. 그 의식이 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직접 구운 토스트 빵과 조식 옵션으로 제공되는 수박, 스크램블 에그, 그리고 홍차를 마시며 태국에서의 마지막 아침식사를 기억에 담았다.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조식

 

 찐빵 속에 앙꼬가 없으면 허전하듯 토스트에 딸기 잼이 없으면 어딘가 허전하다. 그런데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의 조식에 딸기 잼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한참동안 잼을 찾으며 딸기 잼 토스트를 먹고 싶어 했지만 라운지 직원이 잼은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대신 버터와 케찹, 핫 소스가 있다고 했다. 그래. 없으면 없는 대로, 오히려 익숙했던 맛에서 벗어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S#35. 카오산 로드

 식사를 마친 정원이가 갑자기 게스트하우스의 밖으로 나가더니 카오산 로드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갑자기 왜 혼자 나가냐고 묻자 정원이는 반박할 수 없는 대답을 했다.

 

 “그냥 발걸음이 이끌렸어.”

 

 나는 그 기분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아니,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정원이를 따라 같이 카오산 로드를 구경했다. 우리는 고작 이틀밖에 이곳에 있지 않았지만 이제야 조금 이 길이 익숙해지고, 이제야 조금 이곳의 감성을 알 것 같았다.


말도 없이 갑자기 게스트하우스의 밖으로 나가더니 카오산 로드를 누비기 시작하는 정원

 

 우리는 어둠이 내리지 않은 순간에 카오산 로드를 구경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덕분에 시야도 밝아진 걸까. 정원이는 밤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구석진 골목길로 들어가더니 미로 찾기와 같은 모험을 강행했다. 나는 그런 정원이를 뒤따라갔다. 처음에는 골목 안을 헤매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어느새 나는 골목 안의 운치에 빠져 정원이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카오산 로드의 뒷골목을 찍고 있는 나


 고양이를 좋아하는 정원이는 고양이가 보일 때마다 쓰다듬어 주곤 했다.

나는 그런 정원이에게 손을 씻기 전까지 절대 나를 터치하지 말라고 했다.

 

S#36. 짜뚜짝 공원

 여유롭게 게스트하우스의 체크아웃을 마치고 우리는 짜뚜짝 공원으로 향했다. 카오산 로드에서 짜뚜짝 공원은 꽤 시간이 걸리는 위치에 있었다. 가뜩이나 이제는 손에 캐리어를 쥐고 있는 상황. 대중교통보다는 택시가 나을 것 같다는 판단 아래에 우리는 택시를 찾아 카오산 로드를 방황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택시기사들은 우리가 이미 다녀온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까지 저렴한 가격에 태워다 주겠다며 호객행위를 걸어왔다. 우리는 그들의 말에 위 원트 고 짜뚜짝 파크, 미터기 온!” 이라 대답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기사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 곳까지는 가지 않는다며 승차를 거부했다. 그러던 중, 한 기사님이 우리의 미터기 온을 승낙했다. 심지어 짜뚜짝 공원에도 간다고 하셨다. 그러나 트래픽 잼 시간대임을 고려해서 일반 도로가 아닌 고가 도로로 가겠다고 하시며 톨게이트 비용만 잘 챙겨 달라고 하셨다.(태국에서는 택시를 이용하여 톨게이트를 지날 때, 톨게이트 비용을 운임과는 별도로 기사에게 지불해야 한다.)


짜뚜짝 공원까지 정상 미터기를 켜고 모셔다 주신 기사님

(미터기를 켜도 20바트씩 올라가면 조작된 미터기이다. 2바트씩 올라가야 정상 미터기이다.)


태국에서 처음 만난 미터기를 켜고 운전해주신 기사님과 함께

 

 20분 가량을 달려 도착한 짜뚜짝 공원. 그런데 습하고 흐린 날씨 탓에 공원을 찾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통행을 제한하고 있는 구역도 있어서 우리는 짜뚜짝 공원의 안에 있는 호수까지 가 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입구 주변에 있는 넓은 잔디밭에서 파노라마 사진을 찍거나 우거진 풀숲 안에서 설정샷을 찍으며 짜뚜짝 공원을 즐겼다. 또, 여름의 풀밭에서 찍은 우리의 병사 시절 단체 사진을 가져온 나는 정원이에게 지금의 순간과 단체 사진을 하나의 사진에 담아 보자고 제안했다. 그 말에 정원이는 벤치의 틈에 단체 사진을 꼽더니 짜뚜짝 공원을 배경 삼아서 분위기있는 사진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사실 짜뚜짝 공원은 여느 공원과 크게 다를 것 없이 드넓은 잔디밭과 다양한 식물들이 심어져 있는 흔한(?) 공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곳에 오고 싶었던 이유는 태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야자수 나무들이 공원에 심어져 있는 모습이 궁금했으며여유롭게 공원에서 쉼을 만끽하는 태국인들의 모습을 눈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공원의 제한적인 상황과 날씨 탓에 이 점을 만족하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쉬웠다. 그러나 여름 풀밭을 배경으로 과거의 1생활관을 상기시킬 수 있던 것은 계획했던 일정보다 더한 만족감과 뿌듯함을 가져다 주었다.


우거진 풀숲에서 찍은 설정샷. 이름하여 '숨은 영완 찾기'


짜뚜짝 공원의 잔디밭


나와 정원이가 막내 라인이던 때의 시설 1생활관.

전날 밤, 영상통화를 걸었던 종희형, 승호형, 김하사님, 재현이형이 선임이던 시절(2016.07)


선임이던 형들이 모두 전역하고 정원이가 분대장이던 시절의 시설 1생활관.

나는 정원이의 뒤를 이어 분대장 이임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2017.09)

 

S#37. 베스트 비프 뷔페

 우리는 이번 여행 내내 <배틀 트립>의 방콕, 파타야 편에 출연하며 태국의 매력을 소개했던 배우 김민교의 추천 스팟(꼬란 섬, 시암 앳 시암 호텔, 담넌 사두억 수상 시장 등)을 정말 많이 다녀왔다. 우리가 지금부터 향할 베스트 비프 뷔페도 김민교의 추천 스팟에 해당되는 여러 장소 중에 한 곳이다. 우리는 이곳을 워너원투어 대장정의 마지막 일정으로 결정했다. 이유를 말하자면 베스트 비프 뷔페에서의 식사를 태국에서의 마지막 만찬으로 장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베스트 비프 뷔페는 BTS의 온눗역 2번 출구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야외 테라스형 뷔페로, 고기와 해산물, 맥주와 음료를 439바트(한화 약 15,000)에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 베스트 비프 뷔페는 오후 4시부터 영업을 시작하지만 영업 시작과 동시에 웨이팅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4시보다 빨리 이곳에 도착하기로 했다.


비가 내리던 온눗역. 이 곳에서 10분을 걸어가면 베스트 비프 뷔페가 있다.

 

 우리는 베스트 비프 뷔페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위해 게스트하우스에서 조식을 먹은 이후, 맥도날드 파인애플 파이와 길거리에서 파는 음료수 한 잔을 나누어 먹은 걸 빼고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우리는 배고픔과 캐리어를 같이 이끌고 짜뚜짝 공원이 있는 모칫역에서 40분 가량을 달려 온눗역에 도착했다. 온눗역에 도착하자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행히 시로코 스카이바에서 만났던 정도의 굵은 빗줄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우산을 쓰지 않기에는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우리의 손에는 캐리어가 있다. 전철역 한구석에서 짐 정리가 끝난 캐리어를 열어 우비를 꺼내 입고 뷔페까지 가느냐. 아니면 빗속을 뚫고 지금의 옷차림으로 빠르게 뷔페까지 가느냐. 습한 공기와 등골에 맺혀있는 땀방울. 그리고 태국에 올 때보다 무거워진 캐리어의 무게.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고민 끝에 우리는 후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10분 가량을 걸어 베스트 비프 뷔페에 도착했더니 시간은 오후 3시를 갓 넘기고 있었던 데다가 웨이팅을 하고 있는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 이 날의 첫 번째 손님은 우리였던 것이다. 영업을 시작하기까지는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지만 오히려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아 우리는 여유롭게 벤치에 앉아 땀을 식히면서 영업이 시작되기까지를 기다렸다.


<배틀 트립> 외에 <원나잇푸드트립>에서도 소개된 방콕의 인기 맛집 '베스트 비프 뷔페'


베스트 비프 뷔페가 오픈하기까지 기다리며 찍은 셀카

 

 오후 4시가 되었다. 비는 그쳤지만 하늘이 맑게 개지는 않았다. 우리는 1차적으로 뷔페와 음료, 맥주까지 무제한 리필이 가능한 풀코스로 2인을 주문했고, 2차로 음식을 주문했다. 직원이 보여준 메뉴판에는 돼지의 간과 혀 등 한국에서도 쉽게 접하지 못했던 음식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다. 우리는 잠시 동안 고민하더니 모든 메뉴들을 한 접시씩 주문하기로 결정했다.

 

 “디스 원, 디스 원, 디스 원, 디스 원

 

 모든 주문을 마치자 직원은 맥주와 음료를 가져다주더니 직접 잔에 따라주었다. 직원은 다른 손님들을 응대하다가도 우리의 잔이 비어있거나 콜라에 얼음이 녹아있으면 잽싸게 우리의 테이블로 와서 빈 잔에 맥주를 채워주고, 콜라에 얼음을 넣어주었다. 서비스에 감탄한 정원이는 직원의 손에 팁을 쥐어주기도 했다.


주문과 동시에 제일 먼저 나온 창 맥주와 이스트콜라


 

녹는 버터를 기름 삼아 고소하게 구워지고 있는 고기들과

그물 석쇠 위에서 본연의 색을 잃어가며 빨갛게 익어가고 있는 해산물들

 

 베스트 비프 뷔페에서는 음식만큼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것이 바로 버터다. 이곳에서 버터는 고기를 먹기 전 프라이팬 불판을 칠하는 용도로 이용된다. 그래서 베스트 비프 뷔페에서 먹는 고기는 버터 향과 풍미가 더해져 다른 곳에서 먹던 고기보다 훨씬 고소했다. 반면 해산물에는 버터를 닿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화로 하나를 새로 주문하여 버터를 칠할 수 없는 그물 석쇠 위에 올려서 해산물을 구웠다. (화로 추가 시 비용 발생)


시원했던 맥주와 고소했던 고기, 그리고 맛있었던 해산물까지.

태국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베스트 비프 뷔페에서 먹기로 한 건 잘 내린 결정인 것 같다.

 

 정신없이 음식을 입에 넣었다. 우리는 빠짐없이 모든 음식들을 맛보기 위해서 전 메뉴를 한 접시씩 주문했지만 먹다 보니 그것도 너무나 많은 양이었다.(어떤 메뉴는 구워 보지도 못하고 남겼다.) 그러나 우리는 아쉽지 않을 정도로 원없이 뷔페를 즐겼다. 식사를 마치고 한 숨 고른 우리는 맥주와 음료를 채워주던 서비스 만점의 직원에게 우리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줄 것을 부탁했다. 직원은 그 부탁에 흔쾌히 응해 주셨다.


 베스트 비프 뷔페를 끝으로 태국에서의 모든 일정을 끝마친 사진 속의 우리는 태국에서의 46일동안 줄곧 그래왔듯, 워너원투어의 깃발을 들고 있었고 표정은 당연지사 웃는 얼굴이었다.


<워너원투어>의 대장정. 그 끝을 장식한 베스트 비프 뷔페에서.

 

S#38. 수완나품 공항

 식사를 마친 우리는 공항철도선을 타고 수완나품 공항으로 왔다. 언제나 그렇듯 공항은 항상 분주하고 정신없다. 그리고 두 가지의 감정을 느끼게끔 한다. 설레거나, 아쉽거나. 지금의 우리는 아쉬움이다. 인천에서 태국으로 올 때만 해도 갑작스럽게 지연된 비행기를 보며 질책하고 짜증을 냈는데, 지금은 지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너무나 간절했다.


지연 없이 제 시간에 출발하는 타이항공의 인천행 TG688 비행기

 

 “정원, 비행기 지연 안 되나? 여기 더 남아있고 싶은데…….”

 

 그러나 이럴 때는 꼭 모든 상황이 철두철미하게 흘러간다. 비행기는 지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체크인 카운터에서는 제 시간보다 빠른 시간부터 탑승 수속을 시작했다.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공항에서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면세점을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수하물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밟았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요기베라의 말은 여전히 참을 증명하는 명제였다. 나는 출국 심사장에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쳤다. 출국 심사원은 나의 여권과 탑승권을 검토하더니 출국 카드를 제출하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도 도통 모르겠는 태국어와 그 이상으로 더 모르겠는 영어. 그리고 내 뒤에서 줄줄이 출국 수속을 기다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 나는 출국 심사원이 말하는 출국 카드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리액션을 보였다. 그러자 그는 태국 입국 시 받은 출국 카드의 샘플을 보여주면서 이러한 카드를 제출하라고 말했다. 당황한 나머지 나는 옆의 줄에서 출국 심사를 기다리던 정원이에게 SOS를 요청했다. 그러자 정원이는 나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내가 태국 도착했을 때 말했었는데 이거(출국 카드) 나중에 한국 돌아올 때 꼭 필요하니깐 잃어버리지 않게 잘 보관하라고 했었잖아.”

 

 그러나 나는 지금도 정원이가 그런 말을 했던 게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추측이건대 방콕에 도착했을 당시, 지연된 비행기로 인한 짜증과 태국에 처음 닿았다는 설렘이 합쳐져 정원이의 공지를 귀담아서 듣지 않았던 것 같다. 이내 정원이는 서 있던 줄로부터 이탈해 출국 심사장의 입구를 지키던 승무원에게 가서 출국 카드 양식을 새로 받아왔다. 그러더니 나에게 다시 출국 카드를 작성해서 심사원에게 제출하라고 말했다. 만약, 정원이가 나보다 출국 심사를 먼저 마쳐서 이미 심사장을 빠져나간 뒤였다면 나는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했을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출국 심사를 마칠 수 있던 나는 심사장을 나오자마자 정원이에게 사과를 했다.

 

 “정원, 너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아 미안해. 앞으론 너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는 최영완이 될게.”

 

 그러나 정원이는 괜찮다고 했다. 오히려 파니니 레지던스 호텔에서 있었던 여권 해프닝과 방콕으로 올 때, 기내에서 잃어버린 정원이의 볼펜을 찾아 준 나의 전례를 들면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며 나의 태도를 포용해주었다.


집에 돌아와서 짐 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백팩 앞주머니에 있던 출국 카드

 

 이어 우리는 하루 내내 빗속에서 캐리어를 끌고 다니느라 땀에 젖은 몸을 씻기 위해서 수완나품 공항 내의 미라클 라운지로 갔다. 그곳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온 우리는 출출하게 허기진 배를 채우고자 푸드코트로 발걸음을 옮겨 똠얌꿍과 해물 볶음밥을 먹었다. 우리는 식사까지 마쳤음에도 수하물 수속을 빨리 마친 탓에 여전히 탑승까지의 시간이 꽤 남아있었다. 그래서 면세점을 둘러보면서 미처 다 사지 못했던 기념품을 구매하기로 했다. 나는 이번 여행을 떠날 수 있게 5일이라는 긴 휴가를 제공해준 생애 첫 직장에 감사하는 마음과 아직도 많이 부족한 나라는 막내 신입사원의 일솜씨를 크게 내색 없이 받아주시는 고마운 동료들에게 지금보다 더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마음을 함께 담아 선물할 초콜릿과 말린 망고를 한가득 샀다.


수완나품 공항에서 먹은 마지막 식사.

볶음밥은 너무나 맛있었지만 똠얌꿍이 적응되기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

 

 시간은 어느덧 1030분에 가까워져 있었다. 우리는 탑승장으로 발걸음을 옮겨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거짓말과 과장을 하나도 보태지 않고 나는 이번 여행이 꿈같았다고 말할 수 있다. 줄곧 말했듯이 우리는 우기인 시기에 태국에 왔지만 메인이 되는 일정을 소화할 때 단 한 번도 빗방울을 만나지 않았고, 일부러 계획하려고 해도 계획할 수 없는 기적적인 인연들도 많이 맺고 돌아왔다. 나의 인스타그램 속 태국 여행 게시글을 보고 좋아요를 눌러준 배우 김민교를 비롯하여 시암 앳 시암 호텔에서 만난 터키 청년들과 동갑내기 한국인 여직원, 또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대만 공군 팡야와 방콕에서의 일정을 깔끔하게 정리해 준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의 여직원과 그의 한국인 남자친구까지. 이 외에도 너무나 많은 인연들이 우리의 여행에 함께해 주었고 덕분에 다채롭게 워너원투어를 장식할 수 있었다. 진짜 꿈속에서도 이런 사람들을 만나서 이러한 에피소드를 만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번 여행은 꿈보다도 더 꿈같았.


내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파타야 시암 앳 시암 호텔 게시글에 '좋아요'를 눌러준 배우 김민교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나와 정원이는 빗방울이 맺힌 비행기 창문을 배경으로 네 장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각자 두 장의 사진을 나누어 갖기로 했다. 폴라로이드 사진이 갖고 있는 잔잔한 필름 감성과 사진 속으로 보이는 우리의 표정들을 보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군대에서 만난 선후임의 인연이라는 관계를 뛰어넘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청춘이라는 시기에 여행이라는 순간을 함께하며 평생의 안주거리를 만든 사이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그 안주거리도 평범한 여행이 아닌, 우리가 이루고자 했던 목적과 독특했던 기획들이 있었기 때문에 남들이 갖고 있는 여행 안주거리와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륙 전 기내에서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과 우리의 모든 여정을 함께한 <워너원투어> 깃발

 

S#39. 인천 공항

동이 트는 새벽, 어느덧 비행기는 한국의 영공에 진입했고 인천 도착을 얼마 남기지 않고 있었다.


 비행기는 6시간동안 하늘길을 날았지만, 도중에 시차가 적용되어 우리는 새벽 6시에 인천에 도착했다. 인천에 도착하고 나니 한국은 축구로 대동단결되어 있었다. 속출하는 기사들을 보니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피파 랭킹의 1위를 달리고 있는 독일을 2:0으로 이겼다고 한다. 그 역사적인 순간에 우리는 비행기의 안에 있어서 축구를 보며 열광하지 못했지만 아쉽지 않았다. 그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알 것이다. 방금 읽은 안주거리내용만 읽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아쉬운 인사를 나누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인천공항 리무진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온 나는 집에 오자마자 밀린 빨래를 돌렸고, 일요일 아침의 기상보다 귀찮은 여행 후의 짐 정리를 시작했다. 

 

S#-. 일상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내가 어제까지 아무리 꿈같았던 여행을 다녀왔다고 해도 신은 나에게 내일의 출근을 위해서 여행 후유증을 떨칠 수 있는 시간 따위를 주지 않는다.

 

 슬랙스 정장 바지와 파란색 셔츠, 그리고 까만 넥타이. 마지막으로 왼쪽 귀에 꽂는 무전기 이어폰까지.

 

 6일 만에 직장으로 복귀한 나는 동료들에게 면세점에서 샀던 선물을 건네며 고마움을 전했다. 동료들은 고맙다며 인증샷을 찍기도 했고 잘 먹었다는 메시지를 보내주기도 했다. 나는 고마워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이것이 부족한 나의 일솜씨에 대한 뇌물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처음 입사했을 때보다 주어진 업무에 더 성실하게 임할 수 있게 되었다.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에서 샀던 말린 호박을 다 먹고 인증샷을 보내주신 진료실의 새솔 선생님

 

 나는 오늘도 치과 데스크에 앉아서 내원하는 환자들의 예약 접수와 수납을 돕고, 일본인 환자들의 진료 통역을 이행하며 생애 첫 직장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이번 주가 지나면 워너원투어는 어느덧 한 달 전의 과거가 되고 만다. 그러나 몇 달, 아니 몇 년이 지나도 워너원투어는 나의 일상이 고단해질 때 피로회복제보다 더한 역할이 되어 주어 그 피로를 덜어줄 것이다.

 

 1생활관 영(0)완&정원(1), 그리고 영완(WAN)과 정원(ONE)이 원하던(WANNA) <WANNAONE TOUR>

 

 이 투어명을 기반으로 한 시즌2의 여행이 멀지 않은 시간 내에 다시 한 번 실행될 수 있기를 바라며 [방콕&파타야] 우리가 원하던 WANNAONE TOUR 포스트는 여기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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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너원투어가 벌써 4일 차에 접어들었다.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과 위험한 기찻길에 가는 오늘의 일정은 우리만의 일정이 아닌 다른 한국인 여행객들과 함께 떠나는 패키지투어 일정이었기 때문에 다른 날들보다 더 시간관리에 신경을 기울였다. 하필 또 집합 시간은 아침 7시 50분까지였다. 고로, 이 날은 워너원투어의 일정 중에서 제일 빨리 일어나야만 했던 날이었다사실 나는 자유여행을 선호하기 때문에 패키지 여행상품은 지금까지 이용해본 적도 없었고, 이용할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지만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이 방콕의 교외에 위치하고 있는 데다가 교통편도 마땅치 않아서 자유여행으로 떠나기에는 너무나 많은 부담들이 동반되어야 했다. 그래서 결국 패키지 여행상품을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심지어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은 낮 12시까지만 운영하고 있어 9시까지는 이 곳에 도착해야 수상시장의 활기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방콕에서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까지 소요되는 이동 시간과 시장의 운영 시간 등 여러 가지 점을 미루어 보아 이 일정만큼은 패키지 여행상품을 통해서 가는 것이 더 이득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속 역으로 출발하기 전, 카오산 로드에서 찍은 서로의 독사진

 

 우리가 이용했던 <몽키트래블>의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위험한 기찻길 반나절투어 상품은 750분까지 아속 역 5번 출구 에 있는 로빈슨 백화점 앞 맥도날드로 모이라고 공지했다. 우리는 어젯밤 게스트하우스 여직원의 한국인 남자친구가 말해주었던 조언을 바탕으로 하여 630분에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730분경 아속 역에 도착하는 가정을 세웠다. 우리는 시암 역까지는 택시의 도움을 받았고 시암 역부터 아속 역까지는 방콕의 지상철인 BTS의 도움을 받았다.

 

 우리를 시암 역까지 데려다 준 택시기사의 유쾌함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택시기사는 한국 여성들에 대해 굉장히 선의적인 시선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대표 걸그룹 트와이스의 존재를 그에게 알려 주었다. 나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트와이스의 히트곡 ‘TT’와 함께 TT댄스를 알려주며 택시 안을 채우던 식상한 라디오 음성을 한순간에 트와이스의 ‘TT’로 바꿔버렸다. 그 시간에 아마 방콕에서 제일 시끄러운 택시는 우리가 타고 있던 택시였을 것이다. 기사님의 웃는 미소를 보다 보니 언뜻 명품 배우 황정민의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우리는 기사님에게 황정민을 닮았다며 사진을 보여주었지만 그는 황정민이 훨씬 잘생겼다며 우리의 칭찬을 부끄러워 했다.


한국 여성과 트와이스의 매력에 푹 빠진 택시기사님과 함께.

 

S#26. 아속 역

 기사님이 시암 역에 내려주신 이후 우리는 BTS(방콕의 지상철)를 타고 네 정거장을 거쳐 아속 역에 도착했다. 아속 역에 도착하자 시간은 우리가 가정했던 730분에 정확히 맞아떨어져 있었다.(게스트하우스 여직원의 남자친구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함을 전한다.) 우리는 맥도날드 앞에서 패키지 투어 여행객들을 기다리던 태국인 가이드를 만나 예약 확인 절차를 마치고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으로 출발하기 전까지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아침 식사는 우리들의 집합 장소가 되었던 맥도날드였다. 나는 맥모닝 세트를 먹되, 음료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선 판매하지 않는 딸기 맛 환타로 변경해서 먹었다.


방콕의 BTS를 처음으로 탑승하게 된 시암 역 전경.


출근 시간의 트래픽 잼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차들은 거북이 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아침 식사로 맥모닝을 먹고 있는 정원


내가 주문한 맥모닝 세트와 딸기 맛 환타.

딸기 맛 환타가 국내에 도입된다면 나는 맥도날드의 수입을 더 올려줄 수 있다.

 

S#27.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

 아속 역에서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까지는 차로 약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됐다. 우리는 그 시간동안 수면을 취하며 아침 일찍 나오느라 피로해진 체력을 보충했다.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에 도착하자 태국인 가이드는 우리 두 명과 네 명의 한국인 여행객을 한 팀으로 묶어서 같은 보트에 태워 주었다.


담넌 사두억 수상 시장의 강 위에 있는 수상가옥



강 내부로 접어들자 본격적으로 펼쳐진 즐비한 상점들과 배 위의 먹거리


승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돼지고기 꼬치구이.

승객들은 음식보다도 배 위에서 음식이 만들어지는 광경이 더 신기한 듯 보인다.

 

 나는 어릴 때부터 누군가가 태국을 제시하면 항상 과일 담긴 나룻배가 다니는 강이 떠올랐다. 그 이미지를 가장 많이 반영하고 있는 곳은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번 여행지로 태국을 결정했을 때,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은 꼭 가 보고 싶은 곳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수상시장의 강물은 지저분했고 쓰레기가 적지 않게 강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환상이 약간 깨지긴 했지만 강 위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던 전통 수상 가옥들과 태국식 전통이 담겨있던 소박한 먹거리는 충분히 나를 만족시켜 주었다.


 나는 바나나튀김을 판매하던 보트가 눈에 띄었다. 상인을 향해 바나나튀김 한 봉지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내가 타고 있던 보트와 거리가 꽤나 멀어 다른 보트에서 사 먹겠다고 눈치를 보내고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상인은 나를 놓치지 않았다. 즉석에서 바나나튀김을 봉지에 담더니 긴 막대기를 이용하여 나와 같은 보트에 탄 다른 여행객에게 배달해 주어 나에게 전달할 것을 부탁했다. 그래서 보트에 탄 다른 승객들은 내가 상인에게 지불해야 할 돈까지 받아서 상인에게 전달해 주었다. 얼떨결에 승객들은 나와 상인의 사이에서 배달의 역할을 해 주고 있었다. 그것이 고마웠던 정원이는 같은 보트에 탄 승객들과 함께 바나나튀김을 나눠 먹자고 제안했다. 나는 그 의견에 찬성했다. 승객들은 우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맛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정말 맛있었다. 바나나의 부드럽고 단 맛이 겉의 바삭한 튀김옷과 조화를 이루어 내는 맛이 절로 감탄을 불렀다. 매번 바나나는 껍질을 까서 먹을 줄만 알았는데 바나나도 요리로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보트 위에서 한국인 여행객들과 나누어 먹었던 바나나튀김.

비주얼은 치킨의 닭 목처럼 생겼다.


뱀을 만져보는 정원.

만지는 것은 무료지만 사진을 찍는 것은 돈을 내야 했던 이 상점의 규칙..;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돈을 지불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깎아서 지불하는 재미가 있던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


 보트에서 내린 후, 가이드는 모든 여행객들에게 위험한 기찻길로 이동하기 전까지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을 걸으며 둘러볼 수 있는 시간으로 20분을 주었다. 이 때 정원이는 여동생에게 줄 태국의 향신료 가루와 말린 과일 세트를 구매했고, 나는 직장 동료들에게 선물할 말린 과일 세트와 애주가인 아버지에게 드릴 술잔을 구매했다. 술잔을 구매할 때는 상인이 한 잔당 100바트를 제시했다. 그러나 같은 상점에 있던 한국인 여행객이 나에게 절대 이 가격에 사지 말라며 따끔하게(?) 지침을 주었다.

 

 “이거 그냥 반값에 달라 하세요. 충분히 깎을 수 있어요.”(한국인 여행객)

 

 물론 태국에서는 충분히 흥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상인들과 유쾌한 대화를 나누며 즐겁게 흥정을 해 보고 싶었지만 막상 흥정을 하려니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이 답답했는지 한국인 여행객은 이내 나를 대신하여 상인에게 흥정을 시도하고 있었다.

 

 “(나에게) 이거 잔 두 개 사실 거죠?”(한국인 여행객)

 “.”(영완)

 

 한국인 여행객은 가게 안에 있던 계산기에 30을 쳐서 상인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상인은 이 가격으론 절대 줄 수 없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한국인 여행객은 50을 쳐서 상인에게 보여주었다.

 

 “50! But 1+1.” (한국인 여행객)

 

 눈치를 살피던 상인은 끝내 흥정을 받아들였다. 덕분에 나는 100바트에 태국 국기와 코끼리가 그려진 술잔 2개를 구매할 수 있었다. 저렴한 가격에 술잔을 살 수 있었던 건 좋았지만 내가 직접 흥정에 시도하지 못한 게 다소 아쉬웠다. 만약 다음에 태국을 다시 오게 된다면 그 때는 절대 주저하지 않으며 당당하게 흥정에 시도할 것이다.


지금은 우리 집의 접시 건조대에 자리를 잡은 두 개의 술잔

 

S#28. 위험한 기찻길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예능프로그램 <짠내투어>에서 위험한 기찻길을 다녀간 이후 위험한 기찻길은 한국 관광객들의 사이에서 태국여행 시 꼭 가 봐야 할 명소로 급부상했다. 더군다나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에서 차로 10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여행사에서는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과 위험한 기찻길을 묶어서 관광할 수 있게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도 그 여행 상품을 구매하여 위험한 기찻길을 같이 구경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위험한 기찻길도 <짠내투어>의 방송을 타기 전부터, 더 나아가서는 10년도 더 된 예전부터 이곳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 지금의 내가 <배틀트립><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1>을 좋아하던 그 이상으로 즐겨본 예능프로그램 <스펀지>에서 이곳을 소개하는 방송을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10년 전부터 기약되지 않던 훗날에 태국을 가게 된다면 꼭 이곳에 가 보고 싶었다. 그렇게 강산도 바뀐다는 10년이 흘러 스물 하나가 된 나는 거짓말처럼 태국을 가게 되었다. 강산은 변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태국의 위험한 기찻길은 변하지 않았다. 폐역이 증가하는 추세와 달리 위험한 기찻길은 10년 전 TV에서 보았던 같은 장소에 그대로 위치하고 있었다.


기찻길 위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위험한 기찻길의 매끌렁 시장

 

 위험한 기찻길은 실제로 기차가 다니는 기찻길의 위에 평범한 재래시장이 자리를 잡고 있어 이름 그대로 위험한기찻길임을 느낄 수 있다. 이 기찻길을 달리는 기차는 시장이 있는 매끌렁 역을 출발하여 방콕까지 매일 운행한다. 평상시에는 여느 시장과 다를 것 없이 장사를 이어 가다가 기차가 들어올 때면 상인들은 분주하게 천막을 걷어서 공간을 마련하고, 내놓은 물건들을 가게 안으로 들이기 시작한다. 이 위험하고 아찔한 움직임은 매일같이 반복된다.

 

 가이드는 패키지 투어의 관광객들에게 시장을 자유롭게 구경하다가 11시에 매끌렁 역으로 모이라고 했다. 가이드는 매끌렁 역에 모두 모이면 매끌렁 역에서 한 정거장 위치에 있는 랫 야이 역까지 향하는 기차표를 나눠줄 거라 했다. 시장을 거닐며 구경을 마친 우리는 시간에 맞춰 매끌렁 역에 도착했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기차표를 주었고 기차표를 받자 저 멀리서 기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시장 위의 기찻길을 달리며 들어오는 기차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한 관광객들의 처절한 셔터질이 꽤나 장관이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사람 냄새 물씬 풍기던 평범한 재래시장


 "너도 워너원투어의 동료가 되지 않겠나?"


 시장을 나오면 바로 보이는 매끌렁 역. 관광객들은 하나같이 기차가 들어오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기차 안은 매우 복고적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교실의 천장에 붙어 있던 선풍기가 푹푹 찌는 기차 안에서 열심히 회전하고 있었지만 결국 열기 섞인 바람으로 변질되어 더운 바람만이 기차를 채우고 있었다. 쉴 새 없이 손으로 부채질을 하다 보니 어느새 기차는 경적을 울리고 운행을 시작했다. 차창 너머로 보인 소박한 시골 풍경은 서울 생활이 익숙한 나에게 여유를 선사하며 마음이 편안해 지는 듯한 기분탓을 전해 주었다.


 푹푹 찌는 기차 안에서. 천장에 선풍기가 붙어있었지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창문을 열고 바깥을 보니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보다 가깝게 시장이 있었다.

이 위험한 기찻길에서 인명사고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 매우 놀랍다. 


 기차는 시장을 양보하기 위해 천천히 달렸고, 시장은 기차를 양보하기 위해 물건을 가게  안으로 들여놓았다.

나는 이 풍경이 서로를 위하며 배려하는 모습처럼도 보여서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매끌렁 시장을 빠져나오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기차.

창 밖으로 보였던 꾸밈없고 소박했던 시골 풍경은 지금도 너무 그립다.

 

S#29. 로빈슨 백화점 푸드코트

 랫 야이 역에 도착한 관광객들은 그 곳에서 패키지투어 승합차를 타고 처음 모였던 아속 역으로 돌아왔다. 배가 고파진 우리는 패키지투어의 집합 장소가 되었던 아속 역 로빈슨 백화점의 지하에서 푸드코트 음식을 먹기로 했다. 나는 볶음밥을 골랐고, 정원이는 쌀국수를 골랐다. 푸드코트 음식은 예상 외로 고퀄리티였다. 놀란 우리는 감탄을 금치 못하며 허겁지겁 식사를 이어갔다. 정원이는 이제야 태국 음식이 어떤 음식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라며 태국의 요리에 사용되는 향신료들의 맛과 향을 궁금해했다. 물론 나 또한 그랬다.


 한국의 여느 태국 음식 전문점보다 맛있었던 로빈슨 백화점 푸드코트에서의 한 끼

 

S#30. 왓 포 사원

 아침부터 숨 가쁘게 움직였다. 더위와 피로, 이대로 일정을 강행하다간 지칠 것만 같아서 우리는 왓 포 사원으로 떠나기 전,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잠깐의 쉬는 시간을 가졌다. 땀을 많이 흘린 나는 샤워를 했고, 정원이는 침대에 누워 짧은 휴식을 취했다.

 

 우리는 툭툭을 타고 왓 포 사원으로 향했다. 왓 포 사원은 누워있는 불상(와불상)이 있는 사원으로 유명하며 그 불상의 크기 또한 거대하여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닿는 방콕의 대표 사원이다. 왓 포 사원에서는 입장권을 구입할 때, 프리 워터 티켓이 입장권에 같이 붙여져 발행된다. 이것은 11회 이용에 한정되는 티켓으로 입장권을 뜯지 않고 왓 포 사원을 둘러보면 사원의 끝에 위치한 프리 워터 천막에서 한 병의 생수병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나는 뚜렷한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정원이는 불교 신자다. 우리는 불상을 모시는 공간이 보일 때마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 관리인에게 절을 하는 방법을 물어 불상에게 인사를 드렸다. 나는 모든 것이 신기해서 절을 드릴 때에도 미소를 지으며 즐거운 모습으로 사원을 누볐지만 정원이는 나와 달리 몹시 진지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정원이에게 불교에 대한 신앙심을 물었다. 그러자 정원이는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듯 그저 태국과 이 사원에서 갖출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워너원투어 깃발도 함께 한 왓 포 사원


불상을 모시고 있던 작은 방


왓 포 사원의 핫플레이스, 누워있는 불상(와불상).

누워있는 불상의 모습을 카메라에 다 담아내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불상이 너무나도 거대했다.


와불상이 있는 사원을 나오자 있던 프리 워터 부스

 

 왓 포 사원을 모두 둘러보고 나오려고 하던 찰나에 우리는 리포터를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 촬영 팀을 볼 수 있었다. PD는 리포터가 서 있는 곳을 기점으로 왓 포 사원의 주변을 카메라에 담았는데 나와 정원이는 우연히 그 옆에 서 있었다. 그 때였다. 카메라가 워너원투어의 깃발을 들고 있는 나의 모습을 원샷으로 잡았다.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뮤직뱅크 엔딩 속의 홍진경처럼 촬영되는 순간에 집중하면서 깐족대기 시작했다.


왓 포 사원을 소개하고 있는 리포터와 그 장면을 촬영 중인 PD들


 시선을 강탈하며 카메라를 홀리고 있는 <뮤직뱅크> 엔딩 속의 홍진경

 

S#31. 왓 아룬 사원

 왓 아룬 사원에 가기 위해서는 왓 포 사원을 나와 인근의 선착장에서 수상보트를 타야 한다. 우리는 4바트밖에 하지 않는 저렴한 편도 탑승비를 지불하고 왓 아룬 사원에 내렸다. 우리는 왓 아룬 사원의 웅장한 규모와 경이로운 자태에 한참동안 넋이 나갔다. 태국어로 아룬은 새벽을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 왓 아룬 사원은 새벽 동이 틀 때의 풍경이 제일 장관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일정 상 새벽에는 이곳을 들를 수 없어서 오후 늦게라도 이곳에 들러 왓 아룬 사원의 정취를 만끽했다.


왓 포 사원의 근처에 있던 선착장에서 수상보트를 타고 왓 아룬 사원으로 향하는 중


왓 아룬 사원의 성벽에 앉아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길고양이


하얗고 웅장했던 왓 아룬 사원

낮에 봐도 그 정취가 대단했는데 새벽에 보면 얼마나 경이로울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왓 아룬 사원은 사원보다는 고대 유적지와 같은 이미지가 훨씬 강하게 느껴졌다. 드넓은 사원의 크기와 하얀 외벽을 채우고 있던 문양 패턴이 내가 생각하는 사원의 이미지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 사원까지 안내하는 정원의 나무 조경도 깔끔하게 되어 있어 이곳에서 살면 진짜 왕이 된 기분이 들 것 같다는 초등학생다운 생각도 절로 들었다.


왓 아룬 사원을 나오기 전에 같이 찍은 우리의 셀카

 

 내가 태국을 누비며 찍은 사진들 중에서는 왓 아룬 사원에서 찍은 사진이 제일 잘 나왔다. 어느 곳에서 어떤 각도로 찍어도 수많은 계단과 문양 패턴들이 조화를 이루어 전신 사진은 전신 사진대로, 착석 사진은 착석 사진대로 그 분위기를 잘 표현하고 있었다.

 

S#32. 시로코 스카이바

 식상하지만 여행의 마지막 날 밤은 야경과 함께하기로 했다. (바늘 가는 데 실 따라가듯이 여행의 마지막 날 밤에 야경이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방콕에서의 일정을 담당했던 나는 64층의 루프탑에서 한 눈에 방콕을 내려다볼 수 있는 시로코 스카이바로 정원이를 안내했다. 시로코 스카이바는 지나치게 캐주얼한 의상은 입장을 제한하고 있어서 스카이바로 가기 전 우리는 게스트하우스에 들러 옷을 갈아입었다.


툭툭을 타고 시로코 스카이바로 향하는 중이다.

이 툭툭을 운전하던 기사는 스피드를 즐길 줄 아는 기사였다. 우리도 그 스피드를 같이 즐겼다.

 

 그런데 오랜만에(?)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 순간, 기상이 악화되면 바로 영업을 중단한다는 시로코 스카이바의 공지사항이 떠올랐다. 64층 전경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야경을 코앞에 두고 비를 맞이하다니. 방콕 버스 사건 이후로 나의 다급 모드가 다시 되돌아왔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침착을 유지했다. 왜냐하면 비는 매우 소량으로 찔끔찔끔 떨어지고 있었던 데다가 우산을 쓰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은 지금 내리는 이 비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시로코 스카이바 건물에 도착하자 태국의 전통의상을 입은 여직원들은 우리를 64층의 스카이바로 안내해 주었다. 다행히 스카이바는 영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스카이바에 다다르자 사람들은 말끔하게 수트와 원피스를 입고서 칵테일을 마시거나 연주자의 음악에 심취하며 저마다의 취향대로 방콕의 야경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 호화스러운 시로코 스카이바의 모습에 나와 정원이는 서울에 올라온 시골쥐마냥 절로 어색하게 주위를 살피며 여직원의 안내를 따라갔다. 여직원은 메뉴판을 보여주더니 우리에게 칵테일만 마실 것인지, 식사와 칵테일을 함께할 것인지를 물었다. 그런데 가격이 상당한 고가였다. 제일 저렴한 칵테일이 한 잔에 2,300바트(한화 8만 원)에 달했다. 여행에 가서 돈을 아끼면 한국에 돌아왔을 때 후회한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이 가격은 선뜻 구매를 결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쌌다우리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다음 날의 남은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 곳에서 모든 경비를 탕진하기가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기껏 온 스카이바에서 가격을 주저하며 돌아가기엔 너무 아쉬워서 칵테일 한 잔만 기분 좋게 마시기로 했다.

 

 여직원은 칵테일이 나오기까지 우리에게 야경이 보이는 테라스로 안내하며 카메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여직원은 사진을 찍어주는 성의가 여느 포토그래퍼 저리가라 할 정도로 지극정성이었다. 손전등을 활용하며 조명까지 조절해 주었고 포즈 제안도 열정적으로 제시해 주었다. 사진 촬영이 끝나자 우리는 방콕의 야경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확실히 고가의 값은 하는 수준의 시설과 야경이었다. 야경이 보이는 높이는 지금껏 보아 온 어느 곳의 야경과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았고, 그 덕에 눈에 담기는 시야의 범위도 절로 넓어질 수밖에 없었다. 칵테일 잔을 부딪치며 이번 여행의 모든 순간을 파노라마 사진처럼 떠올리려고 하는 찰나에 우려했던 걱정이 현실로 벌어지고 말았다.


시로코 스카이바에서 주문한 칵테일


카메라에 장소의 여운을 제대로 담지 못한 건 시로코 스카이바가 유일하다.

사진으로 보면 여느 야경과 별 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 내려다 보는 시로코에서의 야경은

일반 야경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높이를 자랑하며 높이로부터 느껴지는 중압감이 압도적이다.

 

 갑자기 스콜(열대 지방에서 내리는 짧은 시간 안에 강하게 퍼붓는 소나기)이 내리기 시작했다. 스카이바는 공지대로 그 순간 모든 영업을 중단했고 야경을 관람하던 손님들을 실내 라운지로 이동시켰다. 아쉬움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물론, 우기인 시기에 비해 우리의 여행 일정동안 한 번도 비를 만나지 못한 것은 고마운 기적과도 같았으나 이번 여행에서 가장 초호화 시설을 누리고 있는 지금의 일정에서 비를 만나 신비로운 방콕의 야경을 10분도 채 눈에 담지 못한 것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끝내 우리는 실내 라운지에서 유리창 너머로 방콕의 야경을 보며 칵테일을 마셨다.


갑작스러운 비로 인해 실내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우리는 성공적이었던 우정 여행과 태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자축하며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던 1생활관의 모든 전우들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워너원투어를 자랑했다. 우리는 훗날, 1생활관 전우들이 완전체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하는 버킷리스트를 마음에 새겼다. 그 날이 서른이 되기 전에는 꼭 실현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막내이던 시절을 기준으로 했을 때

병장이던 종희형, 상병이던 승호형, 일병이던 김하사님과 재현이형.

그리고 같이 이등병이던 워너원투어의 정원이와 나.

 

S#33.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

 갑작스러운 스콜 탓에 우리는 예상보다 빨리 시로코 스카이바에서 내려와 택시를 타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게스트하우스의 여직원은 스카이바에서 금방 돌아온 우리를 맞이하면서도 덩달아 같이 아쉬워 해주었다. 정원이와 나는 간단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게스트하우스의 라운지로 내려와 소박한 뒤풀이를 이어가기로 했다. 뒤풀이의 메뉴는 컵라면, 과자, 음료수. 이제야 뭔가 우리다운(?) 느낌이 난다. 그래도 비 오는 창밖 너머의 운치있는 방콕을 바라보며 컵라면을 먹을 수 있는 기회도 흔치는 않다고 생각했다.


게스트하우스의 라운지에서 컵라면과 과자들로 뒤풀이를 이어가고 있는 우리

 

 뒤풀이를 마친 우리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기로 했다. 그런데 시로코 스카이바의 야경을 보고 왔음에도, 우리 나름의 뒤풀이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이대로 잠에 들기엔 너무나 아쉬웠다. 그래서 나는 정원이에게 오랜만의 일탈을 제안했다. 그것은 바로 담배였다. 우리는 흡연의 컨트롤이 가능한 흔치 않은 흡연 성향을 갖고 있어 이렇게 담배를 태워도 몇 달간을 금연 상태로 지낼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군 생활을 하면서도 흡연의 여부를 서로만 알고 있었다. (군대 안에서도 다른 전우들이나 간부들은 우리의 흡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의 밖으로 나온 우리는 천막 아래에 놓여 있던 의자에 앉아 오랜만에 담배에 불을 붙였다. 우리는 서로에게 여운이 되는 노래들을 번갈아가며 틀었고, 그 노래들과 비 그친 방콕의 밤 풍경을 배경 삼아 워너원투어의 마지막 밤을 물들였다. 그 순간, 남자친구를 통해서 우리에게 아속 역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게스트하우스의 여직원이 간식을 선물해 주었다. 이유는 어제 우리가 선물했던 불닭볶음면과 음료수에 대한 보답이라고 했다. 도움을 받은 쪽은 오히려 우리였는데 그녀는 우리에게 선물까지 챙겨주었다. 우리는 서로가 코쿤 캅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훈훈하게 이 시간을 장식했다.


 

우리의 방콕 뒤풀이는 5개월 만의 맞담배로 마무리를 했고,

우리의 막막했던 방콕 일정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이름 모를 한국인 남자친구의 그녀와 함께.


그녀가 우리에게 선물해 준 통새우마요 삼각김밥

 

 그 시간 속에서 정원이는 사람과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의 문화에 완전히 반했다. 정원이는 직원에게 누군가 방콕으로 여행을 간다고 하면 이 게스트하우스를 소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앞으로 본인의 여행에 있어서도 게스트하우스를 자주 이용하게 될 것 같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번외. 비 오는 우기의 태국

 

 마비’ 라는 하나의 단어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 갑자기 비가 내리면 천막을 치며 가게를 정비하는 한국과 달리 태국에서는 배수가 원활하지 않은 도로의 특성 상 대다수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땅에 고인 빗물을 퍼내기 시작한다. 일부 건물에서는 옥상에서 지하로 빗물이 흐를 수 있도록 파이프를 붙여 놓기도 했다.


 택시는 미터기를 키지 않으며 급격히 정체되는 도로 상황을 이유로 기사가 부르는 가격에 승객들이 탈 수 있게 호객행위를 한다. 우리는 기본 택시 가격 치고는 비싼 가격을 제시하는 기사의 행술에 타지 않겠다고 말하며 호객행위로부터 빠져 나왔지만 기사는 모든 택시가 마찬가지일 거라며 우리를 끈질기게 포섭했다. 끝내, 우리는 흥정을 시도했고 기사는 이내 흥정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열대 지방과 동남아시아에서 내리는 비는 스콜의 뜻에 걸맞게 짧은 시간동안 많은 양의 비를 퍼붓다가도 금세 그친다. 우리도 생각보다 비가 금방 그쳐서 게스트하우스에 다시 돌아왔을 때, 시로코에서 더 긴 시간을 있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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