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던 순간.

블로그에서 브리즈 비치 클럽의 내용을 끝내는 것마저도 아쉬울 정도다.


2019.08.04

D+3

황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


오늘은 쁠라우띠가 섬에 가는 날이다.

쁠라우띠가는 코타키나발루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 불릴 정도로 자연 환경이 깨끗하게 보존되고 있다.

거리도 제셀톤 포인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다른 섬 투어에 비해 가격도 비싸고 찾는 사람들도 적은 편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가야섬이나 사피섬으로 해양 스포츠를 즐기러 간다.)


그런데, 아침부터 잔뜩 낀 먹구름의 상태가 심상치 않더니

머지않아 헤비급 비를 쏟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취소 여부에 대한 연락은 오지 않은 상황.

말레이시아의 기후 특성상 금방 비가 그칠 것을 예상하고 원래 일정대로 투어를 진행하려고 하는 걸까 싶었다.

우선은 예정대로 픽업 시간이었던 7시 20분까지 나는 호스텔 로비로 내려가서 픽업 차량을 기다렸다.

그러면서 나의 예약을 담당했었던 도라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다.



“지금 비가 많이 내려. 쁠라우띠가에 갈 수 있어? 우선, 나는 호스텔 앞의 프론트에서 픽업을 기다리고 있어.”

(영완)


“아니야, 쁠라우띠가는 강한 비로 인해 취소되었어.

(도라)


“어떻게 환불받을 수 있어? 내가 제셀톤 포인트로 가면 돼?”

(영완)


“응, 나중에 사무실에 가면 환불을 주선할게. 그리고 내가 너에게 알려줄게.

(도라)


쁠라우띠가 섬에 들어가지 못해 아쉬웠지만 나는 한국에서 미리 몇 달 전부터 예약을 한 것이 아닌,

현지에서 즉흥적으로 계획을 정해서 움직이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생각만큼 많이 아쉽지 않았다.

픽업장에서 도라와 환불 절차에 대한 카카오톡 대화를 마친 나는 호스텔로 올라왔다.



쁠라우띠가 섬 투어가 취소되어 하루 일정이 펑크나버리고 만 이 날,

나는 호스텔에서 여유롭게 블로그 포스팅을 하면서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쁠라우띠가 섬 투어와 멈바꿋 반딧불 투어를 현지에서 저렴하게 예약하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말레이시아②] 쁠라우띠가 섬 투어와 브리즈 비치 클럽 바비큐 현지에서 예약하기 편을 정독해주세요.

(위 타이틀을 클릭하면 해당 게시글이 새 창으로 띄워집니다.)


서서히 호스텔의 투숙객들이 기상하더니 그쯤 되어서 비도 함께 그쳤다.

투숙객들은 분주히 각자의 일정을 위한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그 때, 나의 맞은편 침대를 쓰는 쿠알라룸푸르 친구가 내게 가야 스트리트에서 열리는 선데이 마켓에 함께 가지 않겠냐고 했다.

그 때만 해도 새로운 일정에 대한 뚜렷한 계획이 잡히지 않은 상황이라

아직 외출에 대한 생각이 없던 나는 그에게 호스텔에서 혼자 블로그를 하며 시간을 보내겠다고 했다.


쿠알라룸푸르 친구는 알겠다며 자신의 중국인 여사친들과 함께 가야 스트리트 선데이 마켓으로 향했다.


그 순간,

나는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터지고 말았다.


선데이 마켓..? 일요일.. 시장? 일요일만 열어..? 오늘...? 일요일????’


조급한 마음에 서둘러 구글에 가야 스트리트 선데이 마켓의 개점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확인해 보니 선데이 마켓은 오후 1시까지만 연다고 한다.


현재 시간 오전 9시.

그리고 오늘은 코타키나발루에서 보내는 유일한 일요일.

오늘 일정의 정답은 선데이 마켓이다.


서둘러 외출 준비를 마치고 나는 그랩을 이용하여 가야 스트리트로 향했다.

가야 스트리트의 주변은 택시와 차량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 순간, 도라에게서 카카오톡이 왔다.



“손님, 아직 반딧불 투어는 갈 수 있다. 갈래?

(도라)


“멈바꿋(지역 이름)?

(영완)


“네.

(도라)


“몇 시에 떠나?

(영완)


“시간이 업데이트되는 대로 알려 줄게. 아마 2시 20분~2시 40분일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작전 팀에서 수송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반딧불 투어를 하고 싶어? 아니면 전액 환불을 원해?”

(도라)


“반딧불 투어는 가겠다. 그러나, 쁠라우띠가의 환불은 원한다. 가능해?

(영완)


“좋아, 작전 팀에게 알려주고 픽업 시간과 자동차 번호도 알려 줄게.

(도라)





선데이 마켓에 다녀온 후, 반딧불 투어를 다녀오면 오늘의 일정이 깔끔하게 정리된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방향으로 벌어지는 상황 전개였는데

카톡 타이밍이며 반딧불 투어 픽업 시간까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나는 선데이 마켓에서 가벼운 식사 한 끼로 나시 고랭을 먹었고

동생에게 선물할 힙백도 하나 샀다.

또, 주전부리를 좋아하는지라 망고 주스와 꼬치도 두어개 사 먹었다.

알차게 펑크난 시간을 때운 나는 이제 반딧불 투어를 떠나기 위해 호스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 때,

선데이 마켓의 입구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상어 가족 노래를 말레이시아에서 듣는데 정말 반가웠다.

저 통통 튀는 텐션 너무 귀여우심.


호스텔로 돌아와서 쿠알라룸푸르 친구를 다시 만났다.

쿠알라룸푸르 친구는 선데이 마켓에서 투숙객들을 위해 다같이 나눠 먹을 마랑’ 이라는 과일을 사 왔다.

이런 정이 너무 좋다.


투숙객들과 다같이 나눠 먹을 간식을 사 올 생각을 왜 나는 미처 하지 못 했을까.

더 멀리 볼 줄 아는 여행러가 되어야 겠다.

마랑을 먹고 나서 나와 쿠알라룸푸르 친구는 명함을 교환했다.

그의 이름은 루카스였다.



알고 보니 루카스는 오늘이 이 곳에서의 마지막 숙박이었던 것이었다.

이 순간은 내가 반딧불 투어를 가기 전, 루카스와 함께 있을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우리는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나는 반딧불을 보러 가기 위해 픽업장으로 내려가 버스를 기다렸다.




나는 버스를 타고 2시간 30분 가량을 열심히 달려 멈바꿋에 도착했다.

멈바꿋에 도착하니 반딧불을 보기 위한 수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가이드의 멘트를 듣자 하니 이 모든 관광객들이 오늘 아침의 폭우로 인해 쁠라우띠가 섬에 가지 못한,

나와 같이 반딧불 투어라도 참가하고자 모인 사람들이었다.


반딧불을 보려면 해가 완전히 지고 난 뒤인 밤이 되어야 한다.

그 전까지의 프로그램은 간식 타임과 맹그로브 숲 투어, 선셋 비치 감상, 그리고 저녁 식사로 채워져 있었다.




입맛이 없어서 간식을 많이 먹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도넛이 제일 맛있었다.

간식 타임이 끝나자 가이드는 승객들을 보트에 태우더니 맹그로브 숲 투어를 시작했다.



이렇게 우거진 밀림을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경이로우면서 신기했다.


밀림은 상상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눈에 담기는 모든 모습들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저 숲 속에는 어떤 동물들이 살고 있을까.

혹시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가이드님 말씀대로 가늠조차 되지 않을 크기의 뱀이 있지는 않을까.


오만 궁금증과 잡생각이 다 들었던 것 같다.




맹그로브 숲 투어를 마치고 보트는 방향을 돌리더니 선셋 비치로 이동했다.

가이드님께서는 날씨가 다소 흐렸던 탓에 원래 볼 수 있는 선셋의 아름다움을 다 보지 못 할 거라고 하셨지만

나는 날씨는 사람의 힘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떠한들 미세먼지 가득한 한국의 하늘보다는 낫겠지. 싶은 생각이었다.


선셋 비치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보트에서 내려 저마다의 일행들과 함께 독특한 포즈들로 사진 타임을 가졌다.

투어에 함께한 가이드들은 관광객들의 인생샷을 반드시 건져 주고야 말겠다는 열정으로 촬영에 힘써 주셨다.

진흙을 맨발로 밟고 다니며 선셋 비치의 재미를 더 다채롭게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덤이었다.

(우측 아래 사진의 경우, 해당 여자 관광객 분들로부터 사진 업데이트 허락을 받았습니다.)



이 날, 유일하게 일행이 없는 홀로 관광객이었던 나는

제셀톤 포인트에서 인연을 맺은 직원 도라의 도움을 받아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도라와 셀카도 함께 찍었다. 알고 보니 나이도 같았던 우리.

사장님 가이드께 도라가 나를 제셀톤 친구’ 라고 소개했는데 우리 진짜 친구였다.



시간이 점점 흐르자 하늘은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탄중아루 비치에서의 선셋보다 멈바꿋에서의 선셋이 훨씬 더 아름다웠고 더 깊게 기억에 남는다.


영롱했던 선셋의 붉은 색으로부터 황홀한 기분을 느꼈다.

눈을 뗄 수 없었고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은 절대 다 담아내지 못하는 그 때의 선셋.

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맑은 날에 보면 더욱 아름답다고 한다.

대체 얼마나 더 아름답다는 걸까.


멈바꿋은 이제 땅거미가 지고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았다.

투어 업체에서 준비해 준 저녁 식사를 먹으며 오늘 일정의 하이라이트인 반딧불 투어의 시작을 기다렸다.



저녁 식사 메뉴가 정말 만족스러웠다.

김치를 포함한 다양한 한식 메뉴들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음식 준비의 정성이 한 눈에 보였다.

(지금 여행 10일 차인데 김치가 너무 먹고 싶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보트에 탑승했다.

가이드들은 관광객들을 위해 열심히 반딧불을 유인해 주었다.


처음에는 반딧불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반딧불의 수는 많아졌다.

모든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며 미소지었고, 감동받았고, 기뻐했다.


핸드폰을 켜는 순간 빛으로 인해 반딧불을 보기 어려워진다고 했다.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쉬웠지만

눈은 인간이 가진 최고의 카메라와도 같다고 했다.

열심히 이 순간을 눈에 담아 오래토록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꼬마전구가 켜진 모습과도 같았다. 그 모습은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의 동심을 자극했다.


가이드 님께서 웃으며 말씀하시길,

“무슨 어른들이 더 좋아해.


반딧불이 내 손에 앉았다.

살포시 손을 쥐어 보았다.

뜨겁지 않을까 싶었지만 뜨겁지 않았다.

계속해서 탄성을 지르며 기뻐했고, 이내 반딧불을 날려주며 인사를 건넸다.


하늘에는 별이 수없이 놓여 있었다.

이렇게 많이 놓여진 별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별 역시 마찬가지로, 아무리 사진을 찍어보아도 제대로 담기지 않아 끝내 촬영을 포기했지만

당시 하늘의 모습을 설명하자면

만약, 지금 떠 있는 모든 별들이 땅으로 떨어진다면 절대 피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늘에는 별, 땅에는 반딧불.

행복했다는 말로 모든 감정이 전해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때, 정말 행복했다.



반딧불 투어를 마치고 호스텔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와 연락을 나눴다.

엄마는 항상 젊은 나이에 해외여행을 다니는 나와 같은 젊은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졸업하고서 전공 맞춘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꼭 우리 엄마 국제선 비행기 한 번 태워드려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호스텔에 도착하자 나의 베개 위에 카드 하나가 놓여 있었다.

바로 루카스가 쓴 카드였다.



머리맡에 놓인 선물을 받아본 적,


아마 유치원 꼬맹이 시절,

산타의 존재를 믿으며 머리맡에 양말을 놓고 잠들었던 때가 마지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곳에서 만난 모든 인연들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여행을 통해서 한 걸음 더 성장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안녕, 영완. 다음에 또 만나자. ^^- 루카스


이 날, 나는 쁠라우띠가에 가서 스노쿨링도 하지 못 했고 니모도 보지 못 했지만

의도치 않게 그보다 더 큰 가치와 행복을 얻었다.


쁠라우띠가에 갈 수 없었던 이 날이 선데이 마켓이 열리던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별과 반딧불을 통해 잊고 지낸 동심을 되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여행에서 만난 인연으로부터 베개맡에 놓인 카드를 선물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정말 행운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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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가야 스트리트 야시장에 도착했다.

거리를 걷는 동안에 방콕의 카오산 로드가 머릿속에서 오버랩되었다.

카오산 로드가 젊음과 열정, 뜨거움이 들끓던 곳이었다면

가야 스트리트는 꼬치 굽는 불 냄새가 그윽하고 길거리 공연마저도 잔잔한,

부담스럽지 않게 흥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느낌의 야시장이었다.



우리는 가야 스트리트를 누비며 팔찌를 샀고 맛있는 식사도 함께 했다.


배부른 몸을 이끌고 숙소인 라바@사바 호스텔로 돌아온 우리는

식탁에 한데 모여 앉아 입가심으로 야시장에서 사 온 사탕수수 주스를 한 컵씩 나눠 마셨다.

생각해보니 식탁에 앉아서 사람들의 눈을 보며 대화를 나눈 것이 꽤나 오래 전의 일이었다.



직장생활 시절,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항상 불 꺼진 거실이 나를 반겼다.

나는 일주일에 절반 이상을 편의점에서 산 인스턴트 식품을 먹으며 저녁 끼니를 때웠고,

<한 끼 줍쇼>와 같이 가족끼리 식사하는 모습이 등장하는 방송을 보면서 외로움을 달랬다.

 

우리는 자라 온 나라, 그리고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지

Good Night.” 인사를 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 순간,

우리는 가족이었다.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2019.08.03

D+2

기적의 연속


아침이 밝았.

 

테라스로부터 보이는 탁 트인 뷰와 화창한 날씨는

아침부터 나의 여행 감성을 애타게 간지럽혔다.



나는 식탁에 앉아 조식을 먹었다.

잼이 네 개나 구비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블루베리 맛 잼이 제일 맛있었다.



오늘 나는 바이크를 렌트해서 블루 모스크와 핑크 모스크에 다녀올 예정이다.

면허를 딴 이후 한국에서 단 한 번도 운전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조금 걱정이 됐지만

두근대는 마음이 그보다 훨씬 더 컸다.



고고 사바 스쿠터 렌탈샵에 도착했다.

어제 내가 환전을 했던 위즈마 메르데카의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고고 사바 바이크 렌트 [1DAY/1인] 55링깃(약 15,000원) / 2019.08 기준 (보증금 200링깃)

1DAY : 렌트 시작 시간으로부터 24시간

ex) 대여시각 : 2019.08.02 AM10:30, 반납시각 : 2019.08.03 AM10:30

만약, 1DAY를 렌트해도 당일 반납을 원하면 폐점 시간인 저녁 7시 전까지 고고 사바로 돌아와 바이크를 반납해야 함.



고고 사바에서는 국제면허증 없이 한국 면허증만 소유하고 있어도 렌트가 가능하다.

그래도 나는 혹시나 하는 상황으로부터 대비하고자 국제면허증을 지참했지만

직원은 나의 한국 면허증만 확인하고 바이크를 렌트해 주었다.



신나는 분위기의 팝송을 크게 틀어놓고 코타키나발루 시내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크게 볼륨 키워놓고 자유롭게 운전할 짬은 아닌가 보다.

질주 시작 10분 만에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노래를 끄고 운전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구글 맵을 켜고 보니 내가 지금 있는 이 곳은 사바 주 청사로 이용 중인 건물, 툰 무스타파 타워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외관만 보면 호텔로 오해받기 좋은 건물이다.



한 15분 정도를 달렸을까.

목적지인 사바 주립 대학교, 한국에서는 소위 핑크 모스크라 불려지는 UMS 모스크에 도착했다.

UMS 모스크는 대학 건물인 만큼 모든 장소가 캠퍼스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 곳에서, 또 한 번 거짓말보다 더 거짓말같은 상황이 일어났다.



어제 나와 일본어로 대화를 이어가면서

코타키나발루에서의 첫 식사를 함께한 중국인 관광객을 이 곳의 입구에서 다시 만났다.


누군가 나를 두고 장난을 치는 것만 같았다.

어제 탄중아루 해변에서 같은 호스텔의 투숙객인 쿠알라룸푸르 친구를 만난 것에 이어

또 한 번, 우연으로부터 온 기적의 만남이 실현되었다.


이러한 만남이 이어질 확률은 대체 얼마나 되는 걸까.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놀랍고 신기하다.



UMS 모스크 입장료 [1인] 5링깃(약 1,500원) / 2019.08 기준


UMS 모스크는 정말 아름다웠다.


이런 캠퍼스에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이 곳의 학생들이 부러워졌다.

이 학교에 다니면서 CC도 하지 못하고 졸업을 하게 되면 진짜 안타까울 것 같다.



이 날, 무척 더워서 땀이 등에 한가득 고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학교의 학생인 느낌을 내고 싶어서 돌아다니는 내내 백팩을 메고 다녔다.


그렇게 또 한 번 떠오른 생각,


빨리 학교 가고 싶다.



UMS 모스크를 둘러 본 나는 이제 블루 모스크라 불리는 시티 모스크로 향했다.

블루 모스크로 갈 때는 길을 헤매지 않았다.


푹푹 찌는 더위, 살갗이 타는 과정이 서서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바이크의 속도를 더 올려서 빨리 시티 모스크로 향했다.



스쿠터로 약 15분 정도를 달려 시티 모스크에 도착했다.


시티 모스크는 코타키나발루를 대표하는 이슬람 사원 중 하나다.

멀리서 보아도 사원의 규모를 비롯한 위엄과 압도감이 절로 느껴졌다.

모스크 내부에는 정해진 시간에 한하여 관광객의 입장이 허용된다.

입장할 때는 정해진 복장을 입어야 하며 현장에서 대여가 가능하다.


시티 모스크 입장료 [1인] 5링깃(약 1,500원) 복장 대여 시 5링깃 추가 발생 / 2019.08 기준



엄마.. 나를 왜 한국에서 낳으셨나요..

내가 봐도 인정하게 되는 이 어울림.. 어쩜 이렇게 위화감이 안 느껴지..




새끼가 형 나이를 가지고..



시티 모스크까지 다 둘러본 나는 고고 사바로 돌아가 바이크를 반납하기로 했다.

이제 나는 바이크를 반납하고 나서 더 퍼시픽 수트라 호텔로 향해

오후 6시부터 시작될 브리즈 비치 클럽에서의 바비큐 파티를 즐기면 된다. 그런데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제셀톤 포인트 인근에서 차선 변경을 하지 못해 잘못된 길로 직진을 해 버리고 만 것이다.

심지어 꽤 오랫동안 직진을 한 후에서야 잘못된 길로 왔다는 것을 알아버린 나는

갓길에 바이크를 세우고 구글 맵의 도움을 받으며 다시 위치를 정리했다.



신호와 차선을 몇 번이나 어기고 말았다. 일부 운전자들로부터 경적 등쌀도 맞았지만 다 수긍할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고고 사바를 찾은 나는 렌탈샵에 들어가자마자 땀에 절은 얼굴로 물부터 한 잔 마실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브리즈 비치 클럽 바비큐 파티를 현지에서 예약하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말레이시아②] 쁠라우띠가 섬 투어와 브리즈 비치 클럽 바비큐 현지에서 예약하기 편을 정독해주세요.

(위 타이틀을 클릭하면 해당 게시글이 새 창으로 띄워집니다.)


그리고 저녁 6시, 그랩을 이용하여 브리즈 비치 클럽에 도착한 나는 예약 확인을 하고 자리를 안내받았다.

내 자리는 샐러드바와 가까워 음식을 가지러 가는 것은 편했지만 바다로부터는 다소 먼 위치였다.

그러고 보니 어제 예약을 하면서 바다와 가까운 자리로 부탁한다는 말을 미처 하지 못했다.

직원에게 혹시 자리를 옮길 수 있냐고 물어보았지만 현재 모든 자리가 만석이기 때문에 자리 이동이 어렵다고 했다.


사실 내 자리에서도 선셋과 뷰는 충분히 눈에 담을 수 있었지만

이왕 보는 거, 더 좋은 자리에서 볼 수 있으면 훨씬 좋으니까.




사실 모든 음식이 눈이 휘둥그레 돌아갈 정도로 맛있는 수준의 음식은 아니다.

그러나 선셋과 뷰를 눈에 담으며 바비큐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맛 그 이상의 특별함과 가치를 가져다 준다.



분위기 맛에 먹는다., 분위기에 취한다.는 말을 몸소 느꼈다.

음식은 개인적으로 머쉬룸 수프가 제일 맛있었다.


 



  브리즈 비치 클럽 바비큐 파티 [1인] 75링깃(약 21,000원)

음료 별도(Happy Hour 시간(7PM~9PM)에 일부 음료(맥주, 칵테일 포함) 주문 시 50%할인) / 2019.08 기준


바비큐 파티에서의 만찬을 끝내고 한 켠에 놓여 있던 해먹에 누워

귀에 파도 소리를 담고, 눈에 황홀한 선셋과 하늘을 담는데 감히 내가 이 순간을 만끽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행복했다.


역대 나의 여행 랭킹 중 1위를 차지했던 태국.

태국은 이 순간을 기점으로 1위의 자리를 말레이시아에게 내어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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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1

D-day

소년, 떠나다


퇴사한지 하루만에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캐리어를 끌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의 시작은 진에어와 함께 하기로 했다.


각 항공사 별 탑승권을 모으고 있는데 셀프체크인 제도의 도입으로 인해 컬러탑승권 발급이 어렵다고 한다.

과거에 영화티켓을 모을 때도 어느샌가 모든 티켓이 영수증 발급으로 바뀌어 기분이 언짢았는데

비행기 탑승권까지 흑백탑승권으로밖에 발급되지 않는다고 했을 때는 아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순순히 꼬리를 내리며 포기할 내가 아니다.

나는 수하물을 수속하는 체크인 카운터에서 지상직 승무원의 도움을 받아 컬러탑승권을 발급받았다.

나와 같이 탑승권을 모으고 있을 여행러들을 위해

인천공항에서 국내 저가항공사의 컬러탑승권 발급받는 팁을 공유하고자 한다.


국내 저가항공사 컬러탑승권 발급받는 방법


1.우선, 셀프체크인을 통해 탑승 수속을 마친다.

(진에어의 경우 탑승 수속은 셀프체크인으로밖에 진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2. 흑백탑승권을 발급받는다.

(셀프체크인을 통해서는 오로지 흑백탑승권밖에 발급되지 않는다.)


3. 수하물을 수속한다.


4. 체크인 카운터에서 수하물(캐리어)의 무게를 잴 때,

담당 지상직 승무원에게 흑백탑승권을 보여주며 컬러탑승권의 재발행을 요청한다.


5. 컬러탑승권을 발급받는다.

(이 때, 흑백탑승권은 폐기처분된다.)


※해당 방법은 진에어 체크인 카운터의 헬프 카운터에 계시던 지상직 승무원분께서 말씀해주신 방법이며

탑승권을 모으고 있어서 그런데 재발행 해주시겠어요?”라고 하면 즉석에서 바로 재발행을 해 주신다고 하셨음.

진상을 부리거나 무리한 요구로 컬러탑승권을 받아내는 방법이 아님.


이제는 수하물 수속 후, 캐리어 속의 내용물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수하물을 다시 수속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 즉, 탑승권을 재발행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만 컬러탑승권이 제공된다고 함.


해당 방법은 제주항공(2018.11이용), 진에어(2019.08이용)에서 가능한 방법이며,

타 저가항공사(이스타항공, 에어부산, 에어서울, 티웨이항공)는 이용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장담할 수 없음.



코타키나발루 행 비행기의 내부 정리가 길어지면서 탑승은 원래 예정 시간보다 10분이 늦어졌다.

그러나 전혀 급할 것 없었던 일정 탓에 그러려니 하면서 게이트가 열리기를 기다렸다.



10분이 지나고 탑승 진행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게이트가 열리더니 승객들은 일제히 탑승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제 비행기는 익숙해질 만큼 타 보았다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나는 창가 자리를 포기하지 못한다.

창가 자리는 화장실 가기가 번거롭다? 그게 뭣이 중헌디.



비행기가 이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푸실리 샐러드가 제일 맛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입이 심심하던 찰나였는데 요깃거리로 딱 좋았다.



항상 밤비행기만, 또는 낮비행기만 타 보았는데

낮에 출발해서 한밤중에 도착하는 비행기를 타게 되니

하늘 위의 선셋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세계 3대 선셋 중의 하나를 볼 수 있는 곳이 코타키나발루라는데

코타키나발루는 향하는 하늘길의 선셋마저도 무척이나 장관이었다.



코타키나발루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1>을 다시 보았다.


지겹도록 말하지만,

서로의 꿈을 모두가 함께 이루는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1>의 시놉시스는 언제 되새겨 보아도 감동적이고 아름답다.


나도 내 사람들이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내 한 몸 다 바쳐서 힘을 더해주고 싶고,

나 또한 그들의 힘을 받아 격려받고 나아가면서 내 꿈을 이루고 싶다.



코타키나발루에 도착했다.

비행기는 인천에서 10분 늦게 출발했지만 코타키나발루에 10분 빨리 도착했다.



코타키나발루 공항은 생각 그 이상보다 작았다.

인천공항이 거대한 규모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국제선 도착 게이트를 나오니 수많은 한국 여행사의 가이드들이

저마다 고객들의 이름 적힌 팻말을 들고서 픽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의 시차가 적용되었다.

서울은 자정을 넘겼고, 말레이시아는 자정을 앞두고 있었다.


머지않아 또 떠나게 될 여행에는 더 많은 시차가 적용되는 나라에 가 보고 싶다.



공항으로 마중나온 픽업 차량을 타고 공항 근처에서 하룻밤을 묵을 에미넌트 호텔로 왔다.

(예정보다 비행기가 빨리 도착해서 내가 픽업 차량을 기다린 건 안 비밀..)



에미넌트 호텔은 코타키나발루 공항 근처에서 묵을 수 있는 호텔들 중에 상위권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엄청 화려하고 호화로운 것은 아니지만 공항으로 무료 픽업을 요청할 수도 있는 데다가

시간도 차량으로 1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코타키나발루 노선 특성 상 국내 저가항공사는 밤에 도착하는 항공편이 많은데

이 정도의 옵션을 갖춘 호텔이라면 더 이상 묻고 따질 여지가 없지 않을까 싶다.


에미넌트 호텔(공항 무료 셔틀 요청 포함) [1박/1인] 28,893원 / 아고다 기준(2019.07 예약)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무사히 하룻밤을 보낸 나는 깨끗하게 방 정리를 마쳤고,

체크아웃을 한 후 호텔을 나와 *그랩을 이용하여 메인 베이스캠프인 제셀톤 포인트 근처로 향했다.


그랩 : 코타키나발루 식의 카카오택시 어플.(그러나 택시를 호출하는 어플은 아님.)

근처 차량 매칭 속도도 빠르고 웬만한 장소는 5링깃(1500원)~10링깃(3000원) 선에서 저렴하게 이동할 수 있다.



2019.08.02

D+1

기막힌 인연의 시작



그랩을 이용해서 제셀톤 포인트에 도착했다.

제셀톤 포인트는 해양 스포츠를 예약하거나 섬으로 이동할 수 있는 배편을 예약할 수 있는 곳으로

코타키나발루의 육지와 바다를 잇는 관문과도 같은 곳이다.


물론 나도, 곧 해양 스포츠와 배편을 예약하겠지만 지금은 아침 식사가 우선이다.

코타키나발루에 도착한 이후 첫 식사가 될 지금의 아침 식사는

이 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이펑 락사라는 식당에서 현지식의 로컬 푸드를 먹기로 했다.


처음부터 그랩을 타고 이펑 락사로 이동했으면 편했겠지만,

내 여행 스타일이 힘들어도 걸으면서 주변을 눈에 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에

목적지를 내 발로 직접 찾아가는 재미를 느낀 후에 식사를 하기로 했다.


15분 가량을 걸어 도착한 이펑 락사.

가게로 들어가려는 찰나, 한 중국인 관광객이 내게 말을 걸었다.


처음엔 중국어로 말을 하더니 내가 중국어를 못 한다고 했다.

그러더니 영어로 또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대체 그는 내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역으로 내가 질문을 건넸다.

 

“I’m Korean. I can’t speak Chinese and English.

But I can speak Japanese. You can speak Japanese?”


일본어를 할 수 있냐는 질문이었다.

그러자 그는 혼토데스카?” 라고 대답했다.


한국인과 중국인이 말레이시아에서 만나 일본어로 대화를 하고 있다.


이거 참 기이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그가 내게 묻고 싶었던 것은 이 가게가 유명한 가게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페이스북에서 이 식당을 접했다.

한국에선 이 가게가 로컬 푸드를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고 대답했다.



페이스북 [오즈 트래블_OZ Travel] 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펑 락사 소개 포스트



이펑 락사에서 먹은 코타키나발루에서의 첫 식사.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는지라 직원에게 베스트 메뉴를 달라고 했다.


고수 맛이 강했지만 새로운 맛이라 느끼면서 먹다 보니 나쁘지 않게 받아들여졌고,

음료 또한 신선한 기분으로 먹기에는 괜찮은 맛이었다.



식사를 마친 나는 중국인 관광객과 작별 인사를 하고 위즈마 메르데카로 향해서 환전을 했다.

그리고 제셀톤 포인트로 가서 쁠라우띠가 섬 투어와 멈바꿋 반딧불 투어를 예약할 예정이다 .


 


말레이시아 여행 팁을 전해받는 중에

코타키나발루의 경우 위즈마 메르데카에서 환전을 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아직, 여행 초반이고 가계부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공항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는 정확하게 비교하지 못했지만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날 리는 없는 법, 그렇겠지. 그런가 보다. 라는 마음으로 환전을 했다.


여행 경비 총 100만원.

그 중 10만원은 인천공항 우리은행 창구에서 링깃으로, 50만원은 싱가폴 달러로 환전했다.

나머지 40만원 중 30만원은 코타키나발루 위즈마 메르데카에서 환전했고,

나머지 10만원은 한국 돈 그대로 보관 중에 있다.

이 돈은 나중에 경비가 부족할 시, 추가 환전을 위한 비상금이다.



제셀톤 포인트로 온 나는 14번 창구로 가서 쁠라우띠가 섬 투어와 멈바꿋 반딧불 투어를 예약했다.

코타키나발루 해양 스포츠 섬 투어는 한국에서 미리 예약하는 것보다 현지에서 예약하는 것이 보다 저렴하다.


그러나 나는 가격을 떠나 기상 이변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코타키나발루 현지에 도착해서 일기예보를 확인한 후 해양 스포츠를 예약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았다. 14번 창구에서는 도라’라는 직원이 나의 예약을 도와 주었다.


“8월 2일 토요일, 내일 쁠라우띠가 섬 투어와 반딧불 투어를 예약하고 싶어.

(영완)


“미안해, 아쉽지만 8월 2일은 예약이 다 차 있어. 3일은 어때?

(도라)


“일기예보에서 3일 저녁에 비가 온다고 했다. 비가 와도 반딧불을 볼 수 있어?

(영완)


“윈디(바람)가 많으면 못 봐. 레인(비)는 괜찮아.

(도라)


“알겠어. 하루에 다 가능한 거지?

(영완)


“응, 예약해 줄까?

(도라)


쁠라우띠가 섬 투어(스노쿨링, 장비, 호텔 픽업, 식사 포함) + 멈바꿋 반딧불 투어(식사, 간식 포함) - 1DAY

[1인] 390링깃(약 113,000원) 현장에서 10링깃 할인 → 380링깃(약 110,000원)

제셀톤포인트 14번 창구 도라 기준(2019.08 예약)



쁠라우띠가 섬 투어와 멈바꿋 반딧불 투어 예약을 마치고

코타키나발루에서 지낼 7일의 일정동안 나의 집이 되어 줄 라비@사바 호스텔로 이동했다.


이 때도 역시 걸어서 이동했다.



제셀톤 포인트 앞에 있던 한 가게에서 코코넛 쉐이크를 구매했다.

첫 맛이 정말 시원하고 맛있었는데 먹으면 먹을수록 질리는 맛이었다.

주스가 많이 만들어졌다며 무료로 리필을 해 주셨는데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마음으론 울고 있었다.


걸어가다 보였던 중앙시장에서 만난 한 소녀는 내게 시식을 해 보라며 망고와 람부탄을 건네 주었다.

과일 정말 싫어하는 편인데 이 곳에서 마냥 내 입맛에 맞출 수는 없는 노릇.

모든 것을 도전이라 생각하며 입 안으로 망고와 람부탄을 넣었다.



이렇게 대놓고 관광객 티 내는 사진 또한 무척 싫어하는 편이지만,

막상 랜드마크를 무시하고 지나치려니 아쉬운 기분이 들어서 한 컷 찍었다.



이 곳이 바로 내가 코타키나발루에서 6박을 보낼 라비@사바 호스텔이다.

이마고 쇼핑몰의 아파트 건물에 위치하고 있으며 선셋을 볼 수 있는 테라스와 수영장이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지금까지의 여행에서는 호텔과 게스트하우스만 이용했는데 이렇게 가정집과 같은 호스텔에서 묵게 된 것은 처음이다.

들어가자마자 집 같다.’는 느낌을 바로 받았다.


나는 이 곳을 찾기 위해 이마고 쇼핑몰 주변을 무려 한 시간이나 헤맸다.

한국과 일본, 태국에서도 이렇게까지 길을 헤맸던 적은 없었는데

이 호스텔은 대형 쇼핑몰 건물에 있는 숙소였음에도 불구하고 찾기까지 무척이나 시간이 많이 걸렸다.


호스텔에 도착하고 나니, 이 곳은 일반 호텔처럼 간판이 있는 것이 아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파트 건물의 8층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나 말고도 많은 투숙객들이 이 곳을 쉽게 찾지 못한다고 한다.


라비@사바 호스텔(수영장, 조식 포함) [6박/1인] 294링깃(84,409원) / 부킹닷컴 기준(2019.07 예약)

현지에서 현금결제만 가능



고된 몸을 잠깐 침대에 눕히고 쉬고 있는데 맞은편 침대에 있는 한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Where are you from?”


나는 서울에서 왔다고 대답했고 이에 그는 반갑게 나를 반기며

자기는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서 왔다며 인사를 건넸다.



잠시 침대에 누워서 고단함을 덜어낸 나는 옷을 갈아입고 서둘러 더 퍼시픽 수트라 호텔로 향했다.


더 퍼시픽 수트라 호텔에서는 매주 금, 토, 일요일마다 호텔 내의 브리즈 비치 클럽에서 바비큐 파티가 열린다.

샐러드바 뷔페는 물론, 요리사가 직접 굽는 바비큐가 무한리필로 제공되며 호텔 투숙객이 아니어도 파티에 참가할 수 있다.

그러나 참가하기 위해선 예약이 필요하다.


최근, 한국인 관광객들의 전화 예약이 폭주하여 이제는 이메일과 직접 방문 예약만 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금요일이었던 당일, 토요일과 일요일 중 하루로 브리즈 비치 클럽 바비큐 파티를 예약하기로 했다.



더 퍼시픽 수트라 호텔은 5성급 호텔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정말 아름답고 호화로웠다.

여자친구와 함께 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나는 일요일에 쁠라우띠가 섬 투어와 반딧불 투어 일정이 있기 때문에

브리즈 비치 클럽 바비큐 파티는 토요일밖에 참석할 수 없었다.


나는 직원에게 바로 내일 바비큐 파티에 참석하고 싶은데 예약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직원은 내게 참석 인원 수와 도착할 수 있는 시간대를 묻더니 가능하다고 했다.


당일 저녁 시간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다음 날의 예약이 가능하다니.

생각만큼 예약 경쟁률이 치열한 편은 아닌 것 같다. (2019년 8월 기준)



브리즈 비치 클럽 바비큐 파티의 예약을 마치고 나는 탄중아루 해변으로 향했다.

세계 3대 선셋을 볼 수 있는 곳 중 하나라는 탄중아루 해변에서 나는 코타키나발루의 선셋을 그대로 눈에 담기로 했다.


그런데,


예능이었으면 조작 의혹은 물론, 제작진 입장 표명을 요구할만 한 상황이 벌어졌다.



바로 1시간 전, 호스텔에서 내 맞은편 침대를 쓰는 쿠알라룸푸르 관광객을 만난 것이다.

그는 나를 보더니 반갑게 “Hey!!” 라고 격하게 소리치며 인사해 주었다.

그는 그의 중국인 여사친들과 함께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중국인 여사친들도 나와 같은 호스텔의 투숙객이었으며 남자인 우리와는 방이 달랐다.



그렇게 나는 그들 일행에 조인하여 탄중아루 해변의 선셋을 눈에 담았다.

선셋을 배경으로 사진도 많이 찍고, 밀려오는 파도에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면서 함박웃음도 지었다.




코타키나발루 선셋이 특별한 이유는 해가 지는 과정에서 붉은 빛의 하늘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물감을 풀어 놓은 것 같은 영롱함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 모습은 사진으로도 담아낼 수 없다.

예전에 한 TV 프로그램에서 들은 말인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카메라는 눈이라고 했다.

아무리 잘 나온 사진이라도 사진은 그저 사진일 뿐, 이 말에 공감하고 싶다면 그냥 코타키나발루로 떠나길 바란다.



완전히 해가 저물자 중국인 여사친들은 내게 저녁 식사를 함께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러나 쿠알라룸푸르 친구는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함께하지 못했다.


중국인 여사친들은 불금을 기념하기 위해 가야 스트리트로 가자고 했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불금 기념하며 가슴 설레하는 것은 똑같나 보다.



가야 스트리트로 이동하는 도중에 차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공유했다.

내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던 쿠알라룸푸르 친구는 나와 후권이가 함께 찍은 셀카를 보고 귀엽다고 해 주었다.

그 반응에 궁금증을 갖던 중국인 여사친들도 내 피드 속의 사진을 보더니 격하게 귀엽다는 반응을 보여 주었다.



후권아,, 못 본 지 조금 시간 흘렀네,, 조만간 얼굴 보고 늘 그랬듯 맥주 한 번 조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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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26일,


생애 첫 직장 면접

당시 신분 육군 병장.


아직 전역도 안 한 군인인데 설마 채용하겠어?”


전역 다음 날부터 출근할 수 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201832일,



뜻밖의 합격 통보.


채용담당자는 나의 전역일을 다시 묻더니

출근일날 뵙겠다고 했다.


 

2018312일,



전역,

안양라이프 종료.


애정하는 후임들의 축하를 한 몸에 받으며 위병소를 나섰다.



2018313일,



입사,

치과라이프 시작.


낯설고 혼란스러웠던 매일.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섣불리 직장생활에 발을 들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매일 들었다.


 

2019731일,



1년 5개월의 생애 첫 직장생활 종료.


2학기 복학 결정여부를 더이상 늦출 수 없었던 마지막 휴학기의 끝자락에서

나는 연봉협상을 거절하고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저, 학교 복학해서 졸업하고 싶어요.

 


201981,



퇴사 후부터 2학기 복학 전까지 주어진 3주의 시간.

나는 트래블러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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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개국을 누빌 예정이며, 첫 번째로 누빌 나라는 말레이시아다.


군생활부터 직장생활까지.

 

모든 날들에 떳떳할 정도로 잘 살아왔다고 자부할 순 없지만

누구보다 숨가쁘게 살아왔다고는 말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퇴사 소식을 전하자

과반수 이상은 오랜만에 얼굴이나 한 번 보자며 약속 날짜를 정하자고 했다.

 

그러나 당장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 제안에 빈말 섞인 대답은 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흐지부지 기억도 나지 않는 애매한 대답을 전했다.

 

무엇보다 나만을 위한 시간을 먼저 가지고 싶었다.

 

익숙하지 않은 나라, 흔히들 갈 생각을 하지 못하는 나라,

경비가 비싸도 한 번은 과감하게 소비해서 가 볼만한 나라.

 

내가 퇴사와 복학 사이에 누빌 말레이시아와 브루나이, 싱가포르는

이러한 기준 아래에 정해지게 되었다.

 

생애 처음으로 편도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고,

대부분의 일정은 정하지도 않고, 현지에서의 상황에 맡기기로 한 채

코타키나발루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두렵지만 설레고, 무섭지만 기대된다.

퇴사와 복학 사이에 있는 소년,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하는 나의 이야기가 지금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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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의 당일치기로 양평 드라이브 떠나기

2019.07.07 5PM ~ 10PM / 렌터카 SOCAR 이용


JLPT가 끝나는 날,

동생은 내게 서울 근교로 드라이브를 떠나자는 제안을 했다.

 

철저하게 대중교통에 발걸음을 의존하는 장롱면허 보유자로서

동생의 드라이브 제안은 너무나 반갑고 고마웠다.


 


목적지는 양평으로 결정했다.

서울에서 가기 쉬운 지극히 흔한 드라이브 코스지만

흔하기 때문에 한 번은 경험해보고 싶었고,

우리 형제의 시간적인 상황을 고려했을 때도

인천이나 서해처럼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은 어림도 없었기 때문에

양평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1. 양평 두물머리 핫도그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배우 신현준의 매니저가 핫도그 먹방을 보인 곳.

MBC 예능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이슈에 물타기를 해 보고 싶었고,

막상 이 곳을 거르자니 애매한 시간 저녁 6시에 다른 갈 곳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 두물머리 핫도그를 먹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대기줄을 기다리고 있다. 생각보다 줄은 빨리 줄었다.

(사진과 같은 줄의 대기시간은 10분 정도 소요된다. 순환이 정말 빠르다.)


우리는 주변에 있던 주차장이 만차였기 때문에 주차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동생이 주차장을 찾을 동안 나는 핫도그를 테이크 아웃으로 가져오기로 했고

가져온 핫도그를 차 안에서 먹으며 양수철교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두물머리 연핫도그 주변에 다리 밑 공영주차장이 있는데 그 주차장에 주차 시 무료주차 가능)


그런데 두물머리 핫도그는 무척이나 탁 트인 곳에 있었고

그 곳에서 볼 수 있는 넓은 전경과 연못은 핫도그 테이크 아웃을 강하게 만류하고 있었다.


안 되겠다. 핫도그는 차 안이 아닌 이 곳에서 먹어야 될 것 같았다.

나는 곧바로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서 주차를 마쳤으면 두물머리 핫도그 방향으로 걸어 오라고 말했다.


두물머리 핫도그에 도착한 동생은 레모네이드까지 주문하더니

넓은 두물머리 강과 연못을 눈에 담기 시작했고

산책로를 걸으며 이 곳을 지나쳤으면 정말 아쉬웠을 것 같았다며

눈길이 닿는 곳곳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모든 순간을 눈에 담았다.


방송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핫도그 가게가 이렇게 넓은 모래판 위에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정말 신박한 반전이었다.




두물머리 핫도그 (순한맛, 매운맛) 3000원


도그는 맛있었다.

“핫도그가 거기서 거기지.” 라고 충분히 생각할 법 하지만 연잎 반죽이 들어가서인지

확실히 지금껏 먹어온 일반적인 핫도그와는 묘하게 다른 맛과 은근한 향이 분명히 느껴졌다.

소시지도 통통한 식감이 살아있어 씹는 재미가 있었다.

명랑핫도그만 가도 소스를 듬뿍 뿌려 먹는 편인지라 뿌려진 소스가 적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소스는 충분했다.

핫도그가 이렇게까지나 심도있게 평가할 만한 음식이었나..


2. 양수철교


예전부터 나는 양수철교에 꼭 다녀오고 싶었는데 그 이유로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다리를 장식하고 있는 녹슨 철조물의 모습이 시간이 흐르는 내내 한결같이 다리를 견고하게 지탱해 주는 것 같이 보였다.

나는 그 견고한 철조물 아래에서 자유롭게 뛰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두 번째,

내가 자대배치를 받고 이등병 생활을 시작할 때 생활관 텔레비전에서 가장 많이 보였던 뮤직비디오가

여자친구의 <너 그리고 나>였다.

양수철교는 <너 그리고 나> 뮤직비디오의 촬영지이다.


- 여자친구의 <너 그리고 나>의 뮤직비디오 중, 양수철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멤버들


여자친구의 <너 그리고 나>는 훈련소에서 동기들과 가장 궁금해 했던 노래이자

그 궁금했던 기대감을 충분히 만족시켜 준, 시작되는 전주만 들어도 여전히 설레는 나의 입대곡이다.


(지도에는 양수철교가 등록되어 있지 않아서 양수대교로 대신 첨부)


양수철교에 도착했을 때는 선선한 강바람이 무척이나 강하게 불었다.

나와 동생은 핸드폰을 떨어뜨리진 않을까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으며 다리 위에서 시간을 보냈다.

시간은 어느덧 8시를 넘기고 있었고 우리는 서둘러 서울로 돌아왔다.


사실, 우리 형제는 내가 전역을 할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친한 형제가 아니었다.

서로의 다름에 너무나 질려버려 남보다도 못할 만큼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철저하게 개인의 삶에만 집중하며 시간을 보내왔다.


그러나 점점 바빠지는 일상 때문에 형제로서 집에서 함께할 수 있는 시간들이 줄어들자

서로가 집에 있을 수 있는 시간에는 같이 추억을 만드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동생은 운전을 하면서 “예전에 형이랑 이렇게 어디 다니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라며 현재의 우리 모습을 무척이나 신기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형제는 조만간 경기도를 벗어나 더 멀리 있는 곳,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또 한 번 드라이브를 떠나기로 했다.

그 때는 동생의 도움을 받으며 장롱면허도 탈피하고자 한다.


 

- 노래 들으며 신나게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동생이 길 헤매느라 예민해져서 노래 끈 침묵의 분위기로 집까지 왔다.


양평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

익숙하지 않은 운전 탓에 주유소를 향하는 도중에 몇 번이나 길을 잘못 들었다.

그 결과, 우리는 남양주-구리-서울 루트로 오지 못하고

남양주-양평-남양주-하남-구리-서울 루트로 돌아오게 되었다.

오죽 정신이 없었으면 주유소에서 결제를 마치고 카드도 받지 않은 채 시동을 켜고 주유소를 빠져나왔다.




여행은 이렇게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터져야 재밌는 법.

집에 돌아와서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치며 곱창과 함께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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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추천으로 <트래블러>를 보게 되었다.


긴 말 필요 없고,

그냥 제작진이 대놓고 영완아, 네 취향으로 프로그램 하나 찍었다.” 하는 마음으로 만든 것만 같았다.

 

-


1화에서 쿠바의 한 현지인이 류준열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가 유독 인상깊었다.


 아마 쿠바를 좋아하게 될 거예요.”

 

우리만 해도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고 일컬으며

돈만 있으면 진작에 뜨고도 남았을 거지같은 나라라고 말하곤 한다.

 

나 또한 한국의 그 거지같음을 순순히 인정한다.

 

한국 특유의 고유함은 저편으로 내던져진지 오래고,

인스타감성을 추구하는 보여주기 식의 셀피존과 포토존이 넘쳐나는 자랑 없는 서울에서

22년을 살아 온 사람으로서

자신의 나라를 좋아하게 될 거라고 말하는 현지인의 단언에

쿠바에 대한 환상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외국인 친구에게 한국을 좋아하게 될 거예요.” 라고 말할 수 있는 한국이 되었으면,

그리고 좋아하게 될 거라는 쿠바라는 그 나라에 언젠가 갈 수 있게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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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중앙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의 교정.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과 같은 고딕 양식 건물이었다.

나는 이 곳에서 히잡을 쓴 외국인 여행객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나는 그들 덕분에 이 곳이 드라마 <도깨비>와 여자친구의 <시간을 달려서> 뮤직비디오의 촬영지였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쩐지 낯이 익다 했다.

2. 서울역



하루가 다르게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느끼며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여행러로서 역과 공항의 배경은 항상 파란 하늘이어야 아름다운 풍경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역 고가도로가 철거된 자리에는 서울로 7017이 있었다.

보행길로 다시 태어난 이 곳, 여름밤에 오면 무척 아름다울 것 같았다.

이 곳에서 나는 외국인 가족으로부터 사진 촬영을 부탁받았다.

여행자의 입장에서 이 부탁이 수락될 때, 나는 얼마나 기분이 짜릿한지를 알기 때문에 흔쾌히 부탁을 들어 주었다.



이 가족이 훗날 서울을 기억할 때, 그 기억 속에 내가 조금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영어 울렁증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 왔냐는 흔한 질문조차 건네지 못했다.

정작 그들은 나에게 “Where are you from?”을 건넸는데 말이다.



3.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



홀로 마포대교를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안녕?” 이란 가장 가볍게 건넬 수 있는 말이

가장 큰 위로와 반가움이 된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마냥 행복하게 웃고 싶었다.


 


비록 그린 눈썹이지만 내 눈썹 잘생겼다고 생각해.


-


성인이 된 이후, 나는 항상 서울을 벗어나고 싶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줄곧 자라왔음에도

나는 도시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서울이 가끔씩 질리곤 했다.


그런데 답답한 가슴을 안고 부담없이 한강으로 향할 수 있는 곳이 서울이라는 것을 실감한 이 날,

다시는 내가 자라온, 내가 살고 있는 이 서울을 질책하지 않기로 했다.


안국역에서 서울역으로, 서울역에서 마포대교를 목적지로 정하고 서울을 누비는 유랑자가 있을까.

아마 2019년에는 내가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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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확실하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항상 강원도는 왠지 모르게 낯설었다.

그런 면에 이끌려 기대된 여행은 또 처음이었다.

20181231

그 날은 강릉을 눈에 담아 오기로 했다.

 

20181230일 오후 1050

이번 여행은 잔챙이 시절부터 알고 지내온 영근이와 함께 떠났다.

청량리역에서 만난 우린 서둘러 플랫폼으로 내려가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

자정을 넘겨 새벽까지 달리는 기차는 생애 처음이었다.

처음이 주는 설렘은 언제 느껴도 벅차오르고 짜릿하다.


 


서울살이만 스무 해.

수도권의 지명이 익숙한 나에게

영월과도 같은 낯선 지명은 나를 너무나 두근거리게 해서

기차에서 쪽잠조차 제대로 청할 수 없게 몇 번이나 괴롭혔다.

 

새벽 5.

몸을 녹이기 위해 카페로 향했다.

카페는 해돋이를 보기 위한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주문했던 음료는 한 시간이나 기다리고 나서야 받을 수 있었다.

 

이 정도의 대기면 주문하지 않고 테이블에 앉아만 있어도 되겠네.”


 

 

새벽 620.

출출하고 허기지기 시작했다.

카페를 나와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겨 초당순두부를 먹었다.

평소에 빨간 국물을 좋아하는 나지만 원조를 맛보고자 일부러 하얀 국물의 순두부를 주문했다.

 

몹쓸 짓이었다.

자고로 국물은 빨개야 진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740분에 해가 뜬다는 소식에 우리는 20분부터 정동진 바닷가에 도착해서 일출만을 기다렸다.

새해 첫 일출이 아닌데도 해돋이를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멀리서 보였던 바닷가의 인파는 다슬기가 모여 있는 모습과도 같아 웃음이 났다.


모래사장 위에서 일출을 기다리는데 높게 올라온 파도 때문에 신발이 젖고 말았다.

물에서 놀다가 신발이 젖어본 적은 십 년도 더 됐지만

신발은 언제 젖어도 허탈하고 당황스럽다.

 

얼어버릴 것만 같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해돋이는 놓치지 않았다.

뜨겁고 영롱하게한편으로는 힘차게 솟아오르는 일출의 모습은

웅장한 감동과 강한 울림을 느끼게 해 절로 나를 경건하게 만들었다.


 

 

 

단연 동해바다였다.

푸른 정도를 넘어서 새파랗게 탁 트인 동해바다의 전경은

몇 병의 사이다를 마셨을 때의 시원함보다 더한 짜릿함과 해방감을 가져다 주었다.

사실은 이 비유보다 더한 해방감을 느꼈지만

그 당시의 감정을 대변하는 표현을 찾을 시간에 직접 동해바다를 보러 가는 것이 훨씬 빠를 지도 모르겠다.

 


줄 서서 먹는 음식.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장칼국수는 달랐다.

고추장 맛과 된장 맛을 둘 다 내는 국물의 맛이 굉장히 오묘했다.

동짓날의 팥죽을 대신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묵 고로케호떡 아이스크림,

그리고 닭강정까지.

나는 맛없는 음식은 절대 먹지 않는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맛없는 음식이 없다.


 


바다에서 놀고 싶다면 남해로,

바다를 눈에 담고 싶다면 동해로 가라고 말하고 싶다.

정동진에서 수많은 바다의 모습을 눈에 담았음에도

안목해변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왜 이 해변에 커피거리가 들어섰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땅거미 진 바다,

버스킹 청년,

폭죽놀이에 빠져 있는 어린이,

쌀쌀한 바닷바람,

화려한 네온사인.

 

10분만 더, 5분만 더,

서울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행복한 이 순간이 서울로 인해 얼룩지는 것만 같았다.


 


24시간 만에 우리는 서울로 돌아왔다.

우리는 턱없이 짧은 시간에 탁 트인 자연과 호흡하고 행복의 절정을 느꼈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의 느낌은 시간 여행을 다녀온 것과도 같았다.

 

201811

나는 안양의 일출 아래서 전우들과 결의를 굳게 다지며 새해를 시작했다.

이내 3월에 전역을 했고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앞만 보며 10개월을 달려왔다.


안양에서의 군 생활, 치과에서의 직장생활, 태국 여름휴가, 벽제역 뚜벅이여행, 일본 여행…


그렇게 숨가쁘게 달려온 2018년의 끝은 강릉으로 맺었다.

 

나에게 있어서 이렇게 기승전결이 뚜렷한 해는 2018년이 유일하며 앞으로도 전무 후무할 테다.



Episode

- 멋 좀 부린다고 롱패딩 포기하고 무스탕 입고 떠났다가 매서운 바닷바람에 호되게 당했다.

- 해돋이 보다가 파도 때문에 신발이 젖었다. 기차역 화장실에서 휴지로 발가락 꽁꽁 싸매고 양말 새로 하나 사서 신고 돌아다녔다.

- 한 번은 또 부채길을 걷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파도가 우릴 덮쳤다. 얼굴, 옷 다 젖었다.  2019년 대박 나려나보다.

- 정동진에서 택시가 도저히 잡히지 않아서 쩔쩔매고 있는 도중에 한 아저씨께서 히치하이킹을 자처해 주셨다.

- 동해바다의 여운을 표현하고 싶은데 그에 걸맞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독서 해야겠다.

- 새파란 바다를 보다 보니 태국에서의 패러세일링이 생각났다. 지나간 여름의 추억이 너무 아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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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이 밝았다. 후쿠오카의 아침은 3년 전과 똑같이 평화로웠다. 잠에서 깬 나는 침대에서 저벅저벅 내려와 1층의 라운지에서 조식을 먹었다. 조식 또한 3년 전과 같았다. 3년 전, 나는 유후인으로 떠나기 전,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되는 토스트 조식을 먹은 적이 있었다. 시간의 오버랩을 실감하면서 3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함께 같은 공간에 있는 듯한 기분탓을 느끼며 먹었던 조식 토스트. 괜히 3년 전의 내가 나의 옆자리에 있는 것 같이 느껴졌고 그렇게 느껴진 3년 전의 나는 세 살 어린 동생같았다. 조식을 먹으며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후쿠오카의 일상을 눈에 담았다. 노란 모자 아이들은 웃고 떠들며 친구들과 함께 학교로 향하고 있었고, 샐러리맨들은 검은 가방과 통화 중인 휴대전화를 각각 손에 쥐고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조식을 마친 나는 라운지에 놓여 있던 카드에 방명록을 작성했다. 다 적은 방명록은 라운지 벽의 한 켠에 놓여 있던 게시판 중앙에 붙이며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에서의 1박을 인증했다.


 

▶ 3년 전 게스트하우스 라운지의 조식 배식대

 창밖을 바라보며 먹었던 토스트와 홍차. 이 날의 홍차를 계기로 나는 모든 여행의 아침 때마다 홍차를 마시게 되었다.


 

 

▶ 3년이 지난 지금, 라운지의 조식 배식대에는 건포도가 박힌 모닝빵과 블루베리 잼이 추가되었다.

 모든 여행의 아침에서 그랬듯 홍차는 빠지지 않았고 여유롭게 토스트를 먹으며 창밖으로 보이는 후쿠오카의 아침을 고이 눈에 담았다.

 라운지의 벽 한 면에는 수많은 여행객들이 각자의 필체로 작성한 개성있는 방명록 카드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 여행객들이 남긴 수많은 발자취에 나의 흔적도 살포시 남겨놓았다.


 조식을 마친 나는 체크아웃을 위해 방으로 올라와 침대와 짐을 정리했다. 빠르게 정리를 마친 나는 프론트 데스크로 내려와 공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짐 보관을 부탁하고 자전거를 렌탈했다.(개인적인 부탁이 아닌 원래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되는 짐 보관 서비스다.) 사실은 교통 패스권을 구입했던 여행사 여행박사의 라운지가 있는 캐널시티로 가서 무료 자전거를 렌탈할 예정이었지만 짧은 여행 일정과 게스트하우스에서도 자전거 렌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캐널시티로 이동하는 시간을 없애고 게스트하우스의 자전거를 렌탈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자전거를 주행하는 라이딩 영상을 담기 위해 고릴라 삼각대에 미러리스 카메라를 결합하여 자전거에 고정했다. 목적지는 자전거로 20분 거리에 위치한 오호리 공원이다. 자전거를 렌탈해 준 직원 사쿠라는 오호리 공원으로 향하는 거리가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어 보는 재미가 더해질 거라 말했다.


 

▶ 짐 정리를 마치고 도미토리룸을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쓰레기통에는 내가 버린 쓰레기들로 꽉차 있다.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에서 빌린 200엔 자전거

 

 자전거를 타고 오랜만에 일본 거리를 누볐다. 귀에 담기는 까마귀 우는 소리와 횡단보도를 건널 때 들리는 차임 벨 소리와 안내 음성. 사소하게 다른 한국과의 차이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후쿠오카의 풍경을 오감으로 느끼며 목적지인 오호리 공원에 가까워져 갈 즈음, 주변 건물과 거리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쿠라의 말대로 오호리 공원으로 향하는 길거리는 일반적인 일본의 거리와 많이 달랐다. 거리는 묘하게 서구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정갈한 일본 특유의 분위기와 감성은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흩날리는 낙엽까지. 날씨는 화창했던 전날과 달리 다소 쌀쌀했지만 이 거리의 매력에 심취하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나는 오호리 공원에 도착해 있었다.


  

▶ 일본에서의 자전거 라이딩 영상을 담기 위해 미러리스 카메라가 결합된 고릴라 삼각대를 단단히 핸들에 고정시켰다.

 오호리 공원에 가까워지자 서서히 길거리의 풍경은 서구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오호리 공원의 자전거 도로를 달리며 순간을 즐기고 있는 도중, 나는 유모차를 끌고 있는 한 남성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그는 혼신을 다해 몇 번이나 연속 촬영 기능으로 나를 찍어 주더니 이 중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르라고 했다. 가볍게 한 두 장의 사진 정도만 찍고 싶었는데 너무나 열심히 찍어 주었던 그의 정성에 괜히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나는 사진 촬영을 계기로 그에게 불편하지 않다면 공원에서 아이와 함께 셋이 시간을 보내도 괜찮은지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30분 뒤, 공원의 뒷문에서 아내와 만나기로 했다며 흔쾌히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여덟 번째 처음’ _ 키와미야 함바그 먹기


 오호리 공원에서 하카타로 돌아온 나는 자전거를 반납하고 점심 식사를 하러 키와미야 함바그로 향했다. 사실 키와미야 함바그는 이제 한국에서도 흔히 먹을 수 있는 후쿠오카의 명물이 되었다. 그러나 3년 전 후쿠오카에 왔을 때, 몇 번이나 키와미야 함바그 앞을 지나면서도 길게 서있는 줄에 놀라 끝내 맛보지도 못하고 냄새만 맡은 채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 큰 한이 된 나는 이번 여행을 빌미로 꼭 후쿠오카 본토에서의 키와미야 함바그를 맛보고 한국에 돌아오고 싶었다.

 

 나는 오픈 시간인 11시에 맞춰 줄을 서기 위해 서둘러 자전거를 반납하고 키와미야 함바그에 왔지만 의도치 않게 시간은 1시간이나 지체되어 모두가 점심을 먹고자 하는 12시에 키와미야 함바그에 도착하고 말았다. 그래도 나는 가게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 순간 펼쳐진 한국인 관광객들과의 눈치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덕분에 같은 횡단보도를 건넌 한국인들의 사이에서는 선두로 대기 줄에 합류하게 되었다. 직원은 대기 중인 손님들에게 미리 메뉴판을 보여주며 메뉴를 고르게 했다. 고민도 없이 나는 라지 사이즈의 햄버그 스테이크를 주문했고 세트를 추가해서 사이드로 나오는 밥과 샐러드, 된장국을 무한리필로 먹었다. , 키와미야 함바그에 어울린다는 알코올 음료 키와미야 소다까지 같이 주문해서 제대로 일본에서의 여덟 번째 처음을 실현했다.


 

 

▶ 후쿠오카의 소문난 맛집 키와미야 함바그

 함바그를 먹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나는 15분 정도를 기다리고 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먹음직스러운 키와미야 함바그의 라지 세트. 함바그를 구울 수 있는 돌판은 열기가 떨어지면 몇 번이나 새로 달궈진 돌판으로 교체를 해 주신다.

▶ 빈 그릇 인증샷. 아주 깔끔하게 키와미야 함바그 먹방을 끝마쳤다.

 

 이 순간, 나는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켜서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키와미야 함바그 먹방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협소한 가게 내부와 분주한 직원들의 움직임 때문에 라이브 방송은 5분 만에 종료를 하게 되었다. 그냥 나는 마음 편하게 카메라를 끄고 식사에 집중하기로 했다. 키와미야 함바그의 맛은 나의 엄지를 절로 치켜들게끔 했고 몇 번이나 감탄사를 내뱉으며 먹게 할 정도로 맛있었고 맛있었다. 뜨겁게 달궈진 돌판 위에서 익혀지고 있는 함바그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구워지는 소리 또한 일품이었다. 한 입의 함바그에 촉촉이 스며든 육즙은 말할 것도 없고, 고슬고슬한 쌀밥과 한 젓가락의 샐러드는 키와미야 함바그와 최고의 궁합을 자랑했다.

 

일곱 번째 처음’ _ 셀프 스냅촬영하기 <Day>


 키와미야 함바그로 행복한 점심 식사를 마친 나는 공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낮을 배경으로 하는 셀프 스냅촬영을 진행하기로 했다. 나는 관광객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후쿠오카의 리얼한 로케이션을 찾아내기 위해 가 보지 않은 후쿠오카의 지하철역에 무작위로 내리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대담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건 나의 일본어 실력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믿는 도끼에 제대로 발등을 찍히고 말았다. 지하철 노선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탓에 내가 소지하고 있는 교통 패스권으로는 갈 수 없는 지하철역까지 오고 말아 버렸다. 별도로 금액을 지불하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문제는 하카타로 돌아갈 시간을 맞추는 것이 어려워지고 말았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늘은 점점 더 까맣게 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이내 가는 빗방울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당황하지 않을 거라 자신했지만 당황을 하고 말았다. 아니, 당황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임시방편으로 편의점에 들어가 비를 피하기로 했다. 그 와중에도 계란 샌드위치와 이로하스는 포기할 수 없었다.


 

 

▶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탑승한 지하철. 종점에 가까워져서인지 열차 안에는 승객들이 거의 없었다.

 빈 열차 안에서 맞은편 의자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몇 번이나 찍었던 셀프 스냅

 교통 패스권을 소지하고 있었음에도 패스권이 허용하지 않는 범위의 전철역까지 와 버려서 추가로 표를 구매해야 했다.

▶ 비를 피하기 위해 들어갔던 편의점에서 구매한 계란 샌드위치와 복숭아 맛 이로하스

 

 생각보다 비는 금세 그쳤다. 그러나 나에게 우산은 없고 지하철을 잘못 타며 허비해 버린 시간과 언제 다시 비가 내릴지 모를 불안함에 셀프 스냅촬영은 전날 밤의 촬영으로 만족하고 하카타로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온 나는 공항으로 향하기까지 애매하게 남아 있던 1시간 동안 사쿠라와 담소를 나누었다. 2주 후의 한국 여행을 앞두고 있는 사쿠라는 내게 서울 여행 추천지를 물어보았다. 나는 서울에서만 20년을 넘게 살아왔지만 외국인이 만족할 만한 서울의 명소를 추천해 주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사쿠라의 질문은 단순했지만 어딘가 전공 과제와도 같이 중요한 핵심을 내재하고 있었다. 끝내 나는 과거에 친구들과 한복을 입고 경복궁에서 스냅촬영을 했던 기억을 떠올려 경복궁을 소개해 주었다. 그러자 사쿠라는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더니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전통미를 담고 있는 북촌에 가 보고 싶었다며 북촌에 갈 때 경복궁을 같이 들르겠다고 말했다. 사쿠라는 한강 공원에서 열리는 밤도깨비 야시장에도 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올 해의 밤도깨비 야시장은 기간이 종료되어 나는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고 전했다.


내가 한국에 돌아온 이후 한국으로 여행을 온 사쿠라는 내가 알려준 경복궁에 다녀 왔다며 연락을 주었다.

그녀는 경복궁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감동이었다며 나의 추천 스팟을 만족해 주었다.


 한국 여행에 대한 대화가 끝나자 이제는 내가 사쿠라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내가 진심으로 궁금했던 것은 바로 K-POP 인기의 과장되지 않는 리얼한 실태였다. 일본에 진출한 수많은 한국의 아이돌들이 과연 정말 일본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일까. 한국 방송에서 보도되는 뉴스 헤드라인과 기사 타이틀을 보면 모든 가수들에게 최초’, ‘매진을 비롯한 일본 열도 열풍’, ‘오리콘 차트 1’, ‘성공적인 데뷔’, ‘최대 규모의 공연와 같은 수식어가 붙곤 한다. 이것은 과장일까, 진실일까. 나는 사쿠라에게 솔직한 대답을 부탁했다.



 영완 

 “8년 전, 일본에 카라와 소녀시대가 데뷔를 하며 일본 내에서 국민적인 인지도를 얻으며 성공했다고 한다. 당시 나는 중학생이었고 일본어가 능숙하지 않아서 일본 현지에서의 실제 인기를 전해 들을 수 없었다. 또, 카라와 소녀시대가 일본에서 성공한 이후 수많은 한국의 아이돌 그룹이 일본 데뷔를 시도했다. 한국에서는 모든 아이돌 그룹이 일본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고 보도한다. 나는 한국인이지만 그런 보도에 대해 솔직히 의문이 든다. 사쿠라는 많은 한국 아이돌 그룹이 일본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하는가?


 사쿠라 

 “카라와 소녀시대는 진짜였다. 카라가 제일 먼저 일본에 데뷔했는데 그 때의 붐은 정말 최고였다. 그 이후 소녀시대가 데뷔를 했는데 카라의 영향이 소녀시대에도 끼쳐 두 팀 다 절정의 인기를 보였다. 나는 카라와 소녀시대의 일본 곡을 알고 있다. 최근에는 트와이스가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데 나는 트와이스의 곡을 들어본 적이 없다. 트와이스가 아직 카라와 소녀시대만큼의 성공을 거둔 건 아닌 것 같고 점점 인기를 얻어가며 성장하고 있는 중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K-POP에 열광하는 일부 마니아들은 트와이스를 포함한 수많은 아이돌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영완

 “개인적으로 일본어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카라의 전 멤버 강지영의 현지 인기와 일본어 실력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강지영은 나의 롤모델이다.


 사쿠라

 “지영의 일본 활동이 활발하지는 않다. 그러나 카라가 워낙 대단했기 때문에 지영의 신곡이 발매되거나 드라마 출연이 결정되면 뉴스에 헤드라인으로 꼭 보도가 된다. 지영의 일본어는 일본인이 들어도 완벽하다. 마치 김영아(일본에서 활동 중인 한국 모델, 과거 MBC ‘논스톱출연)와 같다. 카라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지영을 일본인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사쿠라와의 수다가 길게 이어지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공항으로 향할 시간과 가까워져 있었다. 나는 미셸과 사쿠라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짧았던 후쿠오카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공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항으로 향하는 내내 나는 비행기가 지연되기를 바랐다. 나는 단 한 시간만이라도 일본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을 늘리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순간들을 눈과 머리에 담고 싶었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다. 비행기는 예정보다 45분이나 지연되었다. 수하물 수속과 일본 출국 수속까지 마친 나는 탑승동으로 들어와 일본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마음껏 즐겼다. 그러던 중, 또 한 번의 지연 공지가 내려졌다. 비행기는 45분 지연에서 30분이 더 지연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탑승 게이트까지 변경되어 인천 행 비행기에 탑승할 승객들은 서둘러 다른 게이트로 이동해 달라고 안내방송이 몇 번이나 송출되었다. 덕분에 나는 공항을 더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저녁 645분에 탑승을 시작할 인천 행 비행기는 8시가 되서야 탑승을 시작했고 탑승을 하고 나서도 관제탑으로부터 이륙 대기를 지시받아 활주로에서 15분간 다른 비행기의 이륙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렇게 이륙의 지체가 좋았던 적은 없었다. 저녁 820, 비행기는 드디어 하늘길에 올랐다.


 

 

▶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확인된 6시 45분 인천 행 비행기의 지연 공지. 속으로 대박을 몇 번이나 외쳤다.

 동료인 미영 선생님이 출국 전 날, 생일선물이라며 자신의 신용카드로 만 원대의 식사를 한 끼를 하고 오라고 해 주셨다.

 게이트가 열릴 때까지 명란이 들어간 삼각김밥과 맥주를 마시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 탑승이 시작된 인천 행 비행기. 밤의 활주로에 있는 비행기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워 가히 판타지스럽기까지 했다.

 

 1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비행기는 인천에 무사히 착륙했다. 비행기가 인천에 도착하자마자 창가에는 무섭게 빗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나중에 친구들을 통해 듣기를, 내가 일본에 있는 이틀 동안 서울에는 계속 강한 비가 내렸다고 한다.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온 나는 리무진 공항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캐리어를 풀고 짐을 정리하고 나니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출근까지는 앞으로 7시간 가량 남아있는 상태.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짐 정리는 나중으로 미루고 서둘러 잠자리를 청했다. 다음 날, 짧은 만큼 알찼던 여행 일정 탓에 다소 피곤한 몸으로 업무에 임하게 되었지만 그만큼 강렬했던 일본에서의 기억들은 피로보다 더 큰 활력이 되어 주어 큰 탈 없이 업무를 마칠 수 있게 해 주었다.


 

▶ 인천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창가에는 빗방울이 거세게 맺혔다.

 여행의 일정이 짧아 선물을 줄 대상들을 가족과 동료들로만 한정했는데 캐리어를 열고 보니 선물들은 나의 짐 못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이번 여행은 지금껏 떠났던 여행 중에서 가장 짧은 일정이었고 가장 적은 비용으로 다녀 온 여행이었다. 그러나 오로지 나 자신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섬세한 테마들로 여행을 가득 채운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본에서 맞은 스물 두 번째 생일, 두 번째 후쿠오카, 그리고 여덟 개의 처음’. 처음이 사람에게 가져다 주는 순수함과 설렘을 잊지 않고 싶어졌다. 사람을 순수하게 하면서도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 그것은 유일무이 여행 뿐이다. 나는 이번 생일 여행을 통해 얻은 여행의 순수함을 오랫동안 간직해서 더 많은 나라에 발자국을 남길 것이다. 다음 여행이 또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머지않아 떠날 것은 확실하다. 다음에는 어느 나라에, 어느 도시에 다녀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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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미하노유 온천 옆에는 하카타 포트타워 전망대가 있었다. 3년 전 후쿠오카에 왔을 때, 모모치 해변을 구경하며 들렀던 후쿠오카 타워에서 후쿠오카의 야경을 눈에 담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 집중하고 있는 이번 여행에선 일부러 도시를 내려다보는 일정을 넣지 않았다. 그러나 떡하니 온천 옆에 있던 하카타 포트타워를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으며 막상 도시 전경을 내려다보지 않고 한국에 돌아가자니 못내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여행을 하면서 타워에 오른다는 것은 흔하지만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흔해서 필요하다. 하카타 포트타워는 후쿠오카 타워만큼 웅장하고 거대한 규모의 타워는 아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도시를 내려다보기엔 충분했고, 입장료도 무료인 데다가 사람들도 많이 오가지 않아서 편하게 도시를 조망할 수 있었다.


 

▶ 하카타 포트타워에서 내려다 본 맑은 하늘 아래 후쿠오카

▶▶ 포트타워에서 내려오자 보였던 해질녘 노을 풍경


 하카타 포트타워에서 홀로 후쿠오카를 찾은 한국인 관광객을 만났다. 그는 내게 맞은편에 있는 완간 시장에 들러 초밥을 먹을 것을 권유했다. 완간 시장에서의 초밥은 부두 앞에 있는 시장이라 해산물의 질도 싱싱하고 가격 또한 저렴하여 웬만한 맛집에서 먹는 것보다 만족스러울 것이라 단언했다. 원래 나는 타워에서 내려오자마자 저녁에 열릴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생일파티를 위해 서둘러 돈키호테로 향해 갖가지 맥주들을 살 예정이었는데 그의 말 한 마디에 계획에도 없던 완간 시장에 들르게 되었다. 완간 시장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보였던 초밥의 행렬은 나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눈에 보이는 대로 모든 초밥을 골라 담아 맛을 보고 싶었지만 이번 여행의 테마는 처음이다. 그동안 많은 순간을 함께 했던 초밥에 이번 여행을 과하게 소비할 수는 없었다. 고민 끝에 나는 제일 맛있어 보이는 초밥 여섯 개와 한정 세일로 판매 중이었던 참치뱃살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계산했다. 계산을 마친 나는 바로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초밥 먹방을 시작했다. 말은 필요치 않았다. 타워가 여행에 흔하지만 필요했듯이, 초밥 또한 일본 여행에선 흔하지만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참치 뱃살의 고소함과 부드러운 식감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초밥 위 사시미의 두께와 쫄깃한 식감도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맛집에서 먹어본 초밥의 퀄리티와는 확연히 달랐다.


 

▶ 완간시장으로 들어오자마자 보였던 골라담는 97엔 초밥 뷔페

▶▶ 장어의 길이와 사시미의 두께, 그리고 참치뱃살의 고소함과 식감까지. 작지만 알찼던 내가 고른 초밥 세트

 

 온천과 초밥 미식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나는 게스트하우스의 주방에서 어묵 파티를 준비 중이던 미셸과 마주했다. 나는 미셸에게 돈키호테 면세점에 들러 이따가 파티 때 마실 맥주를 사서 돌아오겠다고 했다. 미셸은 알겠다며 8시부터 파티가 시작될 예정이니 늦지 않게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달라고 말했다. 지하철을 타고 돈키호테 면세점에 도착한 나는 맥주를 포함한 가족들과 동료들에게 줄 선물을 쇼핑했다.

 

 올 해 쉰을 넘긴 고지식한 나의 아빠는 처음으로 나에게 아들, 일본에서 파는 무슨 카레가 있대. 카톡으로 사진 보내줄 테니깐 그거 있으면 몇 개 사 와.”라고 선물을 요청하셨다. 3년 전만해도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일본을 가!” 하며 청춘들의 배낭여행을 곱지 못한 시선으로 보던 나의 아빠가 이제는 좋을 때다. 잘 놀다 와.” 라며 선물을 사 달라고 카톡으로 사진까지 다 보내신다. 그리고 나와 너무 닮은 나의 엄마는 언제나 그랬듯이 일본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오라며 동전 파스를 사 달라고 하셨다. 치과 동료들에게 줄 선물로는 할로윈 시즌을 기념하며 출시된 카라멜 푸딩 맛의 킷캣 초콜릿으로 정했다. 짧게 떠난 여행이라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사지 않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쇼핑카트에는 기념품이 한아름 담겨 있었다.


 

▶ 돈키호테에서 가족과 동료, 그리고 나에게 줄 선물들을 쇼핑하고 있다.

▶▶ 양 손에 쇼핑거리를 한가득 손에 쥐고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

 

다섯 번째 처음’ _ 일본 빵집에서 생일 케이크 사기


 그동안의 생일은 항상 평범한 일상 속에서 챙기는 기념일이었기 때문에 케이크를 고르는 장소는 항상 서울이었고, 서울 안에서도 흔하게 눈에 보이는 프랜차이즈 빵집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일본의 빵집에서 나의 생일 케이크를 산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묘한 기분을 느끼게끔 했다. 돈키호테에서 쇼핑을 마친 나는 생일 케이크를 사기 위해 하카타 역 지하상가로 향했다.


 나는 그 곳에서 다양한 빵집의 쇼케이스를 보며 케이크를 고를 수 있었다. 어떤 케이크를 살까 고민하는 도중 한 직원이 시식 홍보 중인 케이크가 있다며 치즈 케이크 한 조각을 내게 건넸다. 치즈 케이크는 맛있었지만 개인적으로 크림이 들어간 케이크를 좋아해서 다른 케이크를 구매하고 싶었다. 그 때, 홍보 중인 치즈 케이크의 아래 쇼케이스에 딸기 크림이 들어간 치즈 케이크가 눈에 띄었다. 나는 직원에게 지금 먹은 치즈 케이크가 아닌 딸기 크림이 들어간 치즈 케이크를 구매하겠다고 말했다.


 직원은 밝은 미소로 딸기 크림이 들어간 치즈 케이크를 쇼케이스에서 꺼냈다. 그러더니 내게 펜과 종이를 건네며 데코레이션 초콜릿에 적을 문구 내용을 작성해 달라고 했다. 그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한국 빵집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순간을 경험했다. 일본에서는 케이크를 구매할 때, 추가의 비용 발생 없이 데코레이션 초콜릿 위에 고객이 원하는 문구를 즉석에서 작성해 준다고 한다. 그것은 곧 세상에 단 하나뿐인 케이크가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어떤 문구를 부탁할까 고민했지만 끝내 독특한 문구를 떠올리지 못했다. 결국엔 평범한 문구로 부탁했지만 나는 빵집의 세심한 정성에 감동받아 기분 좋은 마음으로 케이크를 손에 쥐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 데코레이션 초콜릿에 문구를 작성하고 있는 직원

▶▶ 맛있는 치즈케이크를 판매하고 있는 하카타 역 지하상가의 아카이후센

 

여섯 번째 처음’ _ 게스트하우스에서 파티하기

 

 2018117일 저녁 8.

 

 드디어 2주 전부터 계획된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어묵 파티가 시작되었다. 미셸은 버너 위에 냄비를 올리고 본격적으로 어묵 전골을 끓이기 시작했다. 이 날, 어느 장기 투숙객은 유부 주머니를 직접 만드는 음식 솜씨를 보이기도 했다. 전골은 어묵을 포함한 무와 곤약, 두부, 유부 등으로 알차게 채워져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의 투숙객은 서서히 주방으로 모여들었고, 모인 이들은 하나같이 어묵 전골이 끓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 순간이 마치 코타츠에 둘러 앉아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짱구네 가족과 무척 닮아 보였다.


짱구는 못말려 NEW 에피소드 <겨울엔 뜨끈한 전골이 최고예요> 편 中


오늘의 파티를 위해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준비한 어묵 전골 재료들


 투숙객들은 미셸과 게스트하우스 직원들이 함께 준비한 어묵 전골을 먹으며 소소하게 담소를 나누었다. 전골이 지겨워질 즈음에는 토스트기에 모찌를 구워 먹으면서 파티를 이어갔다. 토스트기 안에서 부풀어 오른 모찌를 먹는 것 또한 일본에서 내가 겪은 또 하나의 처음이었다. 어묵 파티는 내가 하카타 역 지하상가에서 사 온 생일 케이크를 먹으며 마무리가 되었다. 지극히 나의 취향으로 고른 케이크였기 때문에 모두의 입맛에 맞을까 고민했지만 케이크를 맛본 모든 이들은 정말 맛있었다며 케이크에 대한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 어묵 파티가 열리고 있는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

 게스트하우스의 내부에는 오늘의 파티를 알리는 포스터가 곳곳마다 붙여져 있었다.

▶▶ 감자와 다시마를 넣어 어묵 전골의 육수를 우려내고 있다.

▶▶ 주방에서 끓이던 냄비를 테이블의 버너 위로 옮겼다. 재료가 풍성하게 넣고 나니 제법 전골의 모양이 난다.

 

 

 

▶ 파티가 열리는 주방의 한켠에선 수제로 코팅된 카드들이 오늘의 날짜를 알리고 있었다.

 하카타 역 지하상가의 아카이후센에서 사 온 나의 생일케이크

▶▶ 일본어가 적힌 초콜릿 데코레이션이 주는 감동의 여운은 정말 촉촉했다.

▶▶ 파티를 함께한 모든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금세 바닥을 보인 딸기 케이크


 파티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게스트하우스의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라이토가 나에게 카카오톡 아이디를 물었다. 나는 주저없이 아이디를 알려 주었다. ‘받침이 어려워서 한국어가 어렵다는 라이토는 나와 연락을 하고 지내고 싶다며 훗날 서울에 오게 될 때, 반드시 나에게 연락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태국 여행때도 느꼈지만 여행을 통해 맺는 인연만큼 매력적인 인연의 시작은 없다고 생각한다.

 

 밤 10, 파티를 함께 했던 모든 이들이 뒷정리를 함께하며 주방을 청소했다. 그 때, 라이토의 여자친구가 라운지에서 라이토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궁금해 하는 여자친구에게 라이토는 허물없이 나를 소개해 주었다.

 

 “그는 영완. 나의 한국 친구야.”

 

 외국인을 통해 내가 친구로 소개받는다는 것은 무척 행복했다. 내가 생각하는 친구의 정의는 항상 변함없는 위치에서 나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 존재였다. 그 존재는 나의 가까이에 있어야만 가능할 줄 알았다. 그러나 바다 건너 일본에서 두 시간 가량밖에 함께 하지 않았음에도 내가 누군가의 친구로 불려졌다는 것은 행운과도 같았다. 여행은 그렇다. 모험심을 자극하며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허물없이 누군가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설렘을 느끼게끔 하는 면에선 나를 순수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일곱 번째 처음’ _ 셀프 스냅촬영하기 <Night>


 어둠이 내려앉았다. 이제 2시간가량 남아있는 생일의 시간동안 나는 게스트하우스 주변의 밤길을 걸으며 배부른 몸을 소화시키고, 혼자서 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셀프 스냅 촬영을 진행할 예정이다. 나는 편하게 옷을 갈아입고 고릴라 삼각대와 미러리스 카메라를 챙겼다. 모두가 잠에 든 시간이었기 때문인지 게스트하우스의 주변은 잠에 든 아기처럼 고요했고, 선선하게 부는 강바람도 얌전하게 살갗에 닿아 절로 나를 콧노래를 부르게 했다.


 

▶ 아무도 다니지 않던 횡단보도를 건너며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주차된 차 하나 없는 텅 빈 주차장 담벼락에 앉아 사진을 찍고 있다. 벽이 폭이 생각보다 좁아 처음에 사진을 찍을 때 앉다가 뒤로 넘어질 뻔 했다.

▶▶ 재활용 종이수거함 앞에서 한국으로부터 걸려온 후권이의 전화를 받고 있다.


 카메라에 타이머를 설정하고 혼자서 자연스러운 포즈를 짓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색했지만 생각보다 주변 사람들은 나의 행동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금의 순간을 민망함에 무너져 아무런 사진도 남기지 못하면 훗날이 되었을 때 지금을 너무나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뻔뻔해지기로 했다. 지금부터 촬영할 스냅의 주제는 <홀로인 밤>이다. 나는 홀로를 표현하기 위해서 최대한 한적하고 음침한 공간을 찾아 사람들이 사진 속에 나오지 않게 했고, 어두움과 그리움, 또는 외로움을 드러낼 수 있는 을 표현하기 위해선 최대한 웃지 않는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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