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08

D+7

국제미아


브루나이로 가는 페리가 출발하기까지는 아직 30분이나 남았다.

그러나 국경을 이동하는 페리의 선착장 치고는 너무나 고요했던 선착장의 분위기에 나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창구 직원의 호통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되어 선착장의 끝까지 가 보았다.


제셀톤 포인트에서 4번 창구 직원에게 선착장 위치를 물었을 때 일어났던 일이 궁금하다면?

[말레이시아⑧] 아듀 코타키나발루! 브루나이로 향하는 페리 탑승기 을 정독해주세요.

(위 타이틀을 클릭하면 해당 게시글이 새 창으로 띄워집니다.)


가다 보니 어딘가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바로 출입국 심사대였다.



출입국 심사대에 들어가니 출입국 심사관이 나에게 여권을 보여달라고 했다.

나의 여권과 페리 탑승권을 확인한 출입국 심사관은 서둘러 페리에 탑승하라고 손짓을 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선원들은 배를 출항시키기 위해 몹시나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서둘러 캐리어를 끌고 페리를 타기 위해 게이트를 따라 내려갔다.

그러나 그 순간까지도 창구 직원과 출입국 심사관, 그리고 페리의 선원들이

왜 이렇게 하나같이 나를 닦달하고 보채는 걸까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내가 페리에 탑승하자마자

한 선원은 나의 캐리어를 잽싸게 짐칸으로 던져넣고 페리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또다른 선원은 페리의 문이 닫히자 마자

부두에 묶어놓았던 밧줄을 푸르고 선장에게 출항 신호를 건넸다.


페리에 탄지 30초도 지나지 않아서 페리는 뱃고동 소리를 울리며 선착장을 떠났다.


그 시각은 오전 8시 3분이었다.


페리에 들어오니 페리 안에는 수많은 승객들이 앉아서 출항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무언가 잘못 되었음을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빠르게 움직이는 페리의 속도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던 나는 던져지듯이 빈 자리로 앉혀졌다.



그리고 나는 휴대전화 사진첩으로 들어가

브루나이 행 페리의 출항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사진을 다시 확인한 나는 경악했다.



코타키나발루(사진 속 K.K)에서 라부안으로 출발하는 페리의 출항 시간은

오전 8시 30분이 아니라 바로 오전 8시였던 것이다.


그 순간,

온 몸에 소름이 확 돋으며 등골이 오싹해졌다.


생각을 다시 해 보니 코타키나발루에서 출발하여 라부안에 도착하는 시간이 11시 30분이었고,

라부안에서 브루나이로 출발하는 시간이 오후 1시 30분,

그리고 브루나이에 도착하는 시간이 오후 2시 30분이었기 때문에

나는 모든 시간을 30분 단위로 잘못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호스텔에서 5분, 아니 1분이라도 더 여유를 가졌다면

나는 브루나이로 가지 못할 뻔 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상황.


이번 여행의 모든 순간들 중에서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은

단연 이 순간이었다.


오전 8시 30분.



어느덧 페리는 통화권을 이탈하였다.

서서히 고된 여정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오전 8시 45분,


강하게 쏟아내리는 폭우, 창문으로 무섭게 부딪치는 물살,

그리고 좌우로 심하게 요동치는 페리.

게다가 지나치게 빵빵한 에어컨 바람 때문에

시원하다 못해 니트티가 생각날 정도로 추웠던 페리 안.


 


가뜩이나 민소매를 입고 있었던 나로서는 이 순간, 버티기 힘들 정도로 고된 시간이었다.

캐리어에서 긴팔을 꺼내 오고 싶었으나 좌우로 심하게 요동치는 페리 안에서

캐리어를 찾으러 이동하는 것은 도저히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나는 있는 힘껏 몸을 꽉 껴안은 채 이 악물고 에어컨의 추위에 맞섰다.


그러던 그 때,

페리 안에서 입에다 바구니를 대고

오바이트를 하는 첫 번째 승객이 등장했다.


고통스럽게 오바이트를 하는 적나라한 소리가 페리 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그 어느 승객도 그 승객을 질타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순간,

페리 안에 있던 모든 승객들이 배멀미와 힘겹게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멀미를 잘 하지 않는 나도 이 순간만큼은 정말 죽을만큼 힘들었다.

그런데도 끝까지 멀미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멀미를 한 후에 느끼게 될 입 안의 텁텁함을 절대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잠에 들려 노력했다.

목베개를 끼고 잠에 들 수 있는 자세를 찾기 위해 의자 위에서 몇 번이나 몸을 뒤집었다.

그런데 노력을 하면 할수록 잠은 오지 않고 속만 더 메스꺼워졌다.


이 순간,

여행이고 나발이고 그냥 다 때려치우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오전 11시 40분.


어쩌다 보니 잠에 들어 있었다.

깨고 나니 예정된 도착 시간은 이미 넘어가 있었지만

통화권에 다시 들어왔고 페리는 터미널의 근처에 와 있었다.



창밖을 보니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보이고 있었고

페리 안에는 단 한 명도 예외없이 모두가 잠에 들어 있었다.


악천후의 기상과 배멀미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무사히 라부안에 도착한 내게 스스로 대견한 기분이 들었다.


오후 12시.


드디어 지옥같았던 페리에서 탈출했다.

나는 코타키나발루를 출발한지 4시간 만에 라부안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제 이 곳에서 1시간 가량의 시간을 보내다가

1시 30분에 브루나이로 향하는 페리를 한 번 더 타야 브루나이에 도착할 수 있다.


어디에서 시간을 때울까 고민하다가 나는 근처에 라부안 박물관이 있는 것을 보고

라부안 박물관에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라부안 박물관은 박물관이라고 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작은 규모였다.

입장료가 무료여서 그런가.

생각보다 볼 거리가 너무 없어서 그냥 동네 시장 구경하듯이 짧게 구경하다가 바로 나왔다.


터미널로 다시 오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간단하게 한 끼를 때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혹시라도 브루나이로 가는 중에 멀미를 하게 될까봐 제대로 식사를 하기가 두려웠다.


그런데 배고픔에 계속 맞서자니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그냥 한 끼를 때우기로 했다.


폭우 속에서 흔들리는 페리 안에서도 멀미를 참았는데 내가 뭘 못 하겠어?’


그래, 어차피 브루나이로 가는 페리는 이동 시간이 1시간 밖에 되지 않으니

멀미를 참는 건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카야 크림맛 와플과 레인보우 펄이 들어간 페퍼민트 아이스 블렌디드를 먹었다.

와플은 내 입맛과 맞지 않았지만 아이스 블렌디드는 페퍼민트의 향이

멀미와의 싸움으로 인해 잃어버린 생기를 되찾아주는 기분이 들 정도로 향긋하고 시원했다.


오후 1시.


터미널 카운터에서 터미널 이용료를 지불한 후

나는 라부안에서 브루나이로 가는 페리에 탑승하기 위해

수화물 검사와 출국 심사를 진행했다.

(국경은 라부안에서 브루나이를 갈 때 넘기 때문에

코타키나발루에서 라부안으로 갈 때는 수화물 검사를 진행하지 않음.)



페리를 타고 국경을 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선착장에서 수화물 검사를 하고 여권에 출국 허가 도장을 받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배를 타고 나니 선원은 곧바로 출입국 카드를 나눠주었다.

출입국 카드의 작성을 마친 나는 바로 곯아 떨어졌다.


오후 2시 30분.


이번에는 멀미로 인한 불편함 하나 느끼지 않은 채 무사히 선착장에 도착했다.

새로운 나라에 도착했다는 설렘이 터미널 밖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브루나이에서의 여정이 시작된다.


 


브루나이 입국 심사와 수화물 검사를 마친 나는 터미널 밖으로 나와

때마침 대기 중에 있던 33번 버스를 탔다.

33번 버스는 5분 정도 달리다가 모든 승객들을

브루나이 시내의 중심지인 반다르세리베가완까지 갈 수 있는 버스 정류장에 내려준다.


 


브루나이의 첫 이미지는 차분했다.

내가 브루나이에 대해 미리 갖고 있던 이미지가

왕국, 부자, 자연과 같은 카테고리들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평범하게 화창하던 브루나이의 풍경도

괜히 어릴 때 만화 속에서나 보던 왕국의 한적함처럼 느껴지곤 했다.


버스에 있던 안내원은 승객들에게 시내로 가는 37번 버스로 환승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시내로 가지 않고 공항으로 가서 브루나이 유심 카드 구입과 환전을 할 예정이었다.

37번 버스가 공항도 들르냐고 물었더니 안내원이 공항으로 갈 승객은 38번 버스를 타라고 했다.


 


33번 버스에서 내린 나는 38번 버스가 오기까지 기다렸다.

한 15분 정도를 기다리고 나니 정류장에 38번 버스가 도착했다.

기사님은 33번 버스에서 받은 나의 표를 확인하더니 바로 출발하셨다.


그 때, 쭈뼛대는 나의 모습이 불안하기라도 했는지

한 승객이 내게 어디까지 가냐고 물었다.


Where are you going?

(버스 안 승객)

 

I’m going to Brunei international airport.

(영완)


그러자 그 승객은 기사님께 Hey!” 라고 말을 걸더니 캐리어를 들고 있는 나를 가리키며

브루나이 공항에 가는 승객이라며 대신 말을 해 주셨다.


버스는 50분을 달려 브루나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공항 근처가 어딘지, 또 정류장의 위치가 어딘지도 몰라

하차벨을 미처 누르지 못했는데도

기사님께서는 공항에 도착하자 알아서 버스를 세워 내가 내릴 수 있게끔 해 주셨다.



여행을 하다 보면 사소한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정말 많아진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볼 때,

나는 과연 서울 버스 안에서 주저하는 외국인이

목적지까지 안심하고 도착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할 수 있을까.


마음에 여유가 없는 일부 사람들은 그런 시선을 오지랖이라고 해석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들의 용기있게 내민 손이 오지랖이라는 단어로 치부되어 버리는 게 너무 싫다.



두 번의 페리와 두 번의 버스를 타고서야

나는 브루나이 국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순간까지도 나는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백팩에서 노트북을 꺼내 <배틀트립> 방송 영상을 보며

유심 카드를 판매하는 샵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배틀트립> 브루나이 편이 방송된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유심 샵에서 <배틀트립> 방송을 보여주면서 10달러 짜리의 같은 유심 카드를 달라고 하자

해당 유심은 더이상 판매되지 않는 제품이라고 하셨다.


이제 오로지 25달러 짜리 유심 카드만 판매하고 있으며

해당 카드로는 1주일간 브루나이 로컬 전화와 문자,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다.


브루나이 USIM [1주] 25브루나이달러(약 20,000원) / 2019.08 기준

싱가포르 달러와 1:1 통용되어 싱가포르 달러로도 구입 가능(거스름돈은 브루나이 달러)



유심 카드를 구입하면서 이제 브루나이에서의 휴대전화 사용이 자유로워졌다.

이제 울루 템부롱 정글투어의 예약을 한 후,

한국에서 미리 예약한 호텔로 가서 체크인을 하면 된다.


말레이시아에 그랩이 있다면 브루나이에는 다트가 있다.

나는 다트라는 어플을 이용하여 울루 템부롱 정글투어를 예약할 수 있는

더 브루나이 호텔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공항 주변에서는 다트가 잘 잡히지 않는다는 유심 샵 직원의 말에

수강신청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택시를 타고 더 브루나이 호텔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런데 택시비가 너무 비쌌다.

공항에서 더 브루나이 호텔까지 무려 25달러라는 것이다.

다트를 이용하면 7달러 내외로 갈 수 있는 곳을 무려 3배 넘는 가격을 지불하면서 가야 하는 상황.


그러나 일부러 다트를 사용하기 위해 공항 주변까지 걸어서 이동하며

애매한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눈 딱 감고 택시를 이용하여 더 브루나이 호텔까지 가기로 했다.

이것은 내가 브루나이에서 타는 처음이자 마지막 택시였다.



더 브루나이 호텔에 도착한 나는 프론트에서 울루 템부롱 정글 투어를 예약했다.

더 브루나이 호텔에서는 투숙객이 아니어도 울루 템부롱 정글 투어의 예약이 가능하다.


프론트 직원이 정글 투어 예약 날짜를 묻자

나는 그 자리에서 브루나이의 일기예보를 확인한 후

8월 10일 토요일로 예약을 하겠다고 했다.


울루 템부롱 정글 투어는 브루나이에 오는 모든 관광객들의 목적이 되는 일정과도 같다.

그래서 한국에서 어떠한 사전 예약도 하지 않은 내가

너무 대책없는 도박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당장 이틀 뒤의 투어 예약이 가능한 것을 보고

생각만큼 예약 경쟁률이 심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울루 템부롱 국립공원 정글투어(호텔 픽업, 식사(조식, 중식) 포함) [1인] 150브루나이달러(약 130,000원)

더 브루나이 호텔 현지예약 (2019.08 기준)

싱가포르 달러와 1:1 통용되어 싱가포르 달러로도 구입 가능(거스름돈은 브루나이 달러)


유심 카드도 샀고 울루 템부롱 정글 투어의 예약도 큰 탈 없이 마무리되자

어깨 위에 올려져 있던 무거운 짐 하나가 떨어져 내려간 기분이었다.


한시름 마음의 짐을 덜은 나는 편안하게 다트를 불러

브루나이에서 나의 집이 되어 줄 하이어 호텔로 향했다.


 

 


하이어 호텔(조식 불포함) [5박/1인] 106,255원 / 아고다 기준(2019.07 예약)


페리, 버스, 택시까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교통 수단에 몸을 맡긴 하루였다.

이제 좀 두 발 뻗고 침대에 누워 휴식을 좀 취해 볼까 했는데

수강신청 과목을 장바구니에 담아야 한다.


잽싸게 노트북 전원을 켜서 2학기에 수강하고자 하는 과목들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다행히 내가 듣고자 하는 과목들은 많은 사람들이 몰리지 않았다.


이제 수강신청이라는 짐까지 덜었으니 식사를 해야 되겠다.

나는 호텔 라운지에 있던 식당에서 블랙 페퍼 비프 철판덮밥과 파인애플 주스를 먹었다.


 


여행 내내 통통한 쌀로 지어진 밥이 먹고 싶었다.

코타키나발루에서도 종종 밥은 먹었지만 먹었던 모든 밥이 모두 한국의 밥과는 달랐다.

한국의 쌀만큼 통통하지도 않았고 영양가가 없는 것처럼 쌀알이 금방 바스러지곤 했다.

처음에는 그 모든 것을 현지식 음식이라 생각하며 먹었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한식이 그리워지고 김치가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브루나이에 와서 첫 끼가 되어 주었던 이 덮밥이

내가 먹고 싶었던 밥맛과 가장 가까웠다.


나는 양손에 숟가락과 포크를 쥐고 정신없이 덮밥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식당의 바로 옆에 있던 편의점에서

간단한 간식거리를 산 후 방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한 두개의 과자봉지를 집어들고 계산대로 향하는 순간,

나는 미친 대박.” 이란 소리를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내뱉고 말았다.



바로 한국 라면이 보인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손에 쥐고 있던 과자들을 다시 원래 자리에 갖다놓은 후

뭐에 홀리기도 한 사람처럼 신라면과 콜라를 사서 카운터로 향했다.

이 와중에 콜라도 태극기와 비슷한 로고가 새겨진 펩시 콜라를 샀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콜라는 코카콜라밖에 먹지 않았다.)


계산을 마치고 나는 편의점 안에 있던 테이블에서 바로 컵라면을 끓여 먹었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해외여행을 떠날 때,

김치와 김을 챙겨서 여행하는 한국인들을 절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비난하기까지 했다.


아니, 외국 나가서 김치 먹고 김 먹을 거면 대체 뭐하러 외국 나가는 거야? 그냥 한국에 있지.’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나의 엄마는 내게 밥은 먹고 가냐면서

김치와 밥 얘기가 담긴 카카오톡을 보냈다.

그 말에 답답한 기분이 들었던 나는 화가 나서 퉁명스런 말투로 엄마에게 답장을 보냈다.



그런데 엄마 말은 다 맞다고 했다.


집 떠난 지 일주일만에 나는 한식이 그리워 미칠 것만 같았다.

심지어 엄마가 먼저 말을 꺼내지도 않은 컵라면은

내가 알아서 먹지도 않겠다고 해 놓고서

브루나이에 오자마자 바로 하나를 사서 국물까지 뚝딱 해치웠다.


덮밥에 컵라면까지 먹고 나니 세상천지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방으로 올라오니 어느새 브루나이에도 밤이 찾아왔다.

복도 끝 너머로 보이는 황홀하게 빛나는 자메 아스르 하사날 볼키아 모스크가 눈에 띄었다.


브루나이에 왔다는 것이 서서히 실감나기 시작했다.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던 왕국.

왕국이라는 단어에서 전해지는 묘한 아우라와 기류를 서서히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 해가 뜨면

나는 자메 아스르 하사날 볼키아 모스크에 가기로 했다.


그렇게 브루나이에서의 첫 번째 날이 저물었다.




Photo by choi0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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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있을 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걸그룹은

<여자친구>였고,


내가 가장 좋아했던 예능프로그램은

<배틀트립>이었다.


2017년 5월,

바야흐로 상병 시절.


전역 후의 여행을 그저 갈망할 수 밖에 없던 시기에

나는 로이킴, 에디킴, 박재정의 <배틀트립> 브루나이 편을 보게 되었다.


라오스를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은 남자 우정 여행지라는 생각과 함께

처음 들어본 나라 이름으로부터 전해지는 호기심과 설렘에

언젠가는 브루나이에 가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갖게 되었다.




2019년 6월,

퇴사와 여행을 앞두고 있던 시기.


내가 배낭여행지로 골랐던 코타키나발루에서

페리를 타고 브루나이로 갈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나는

여행 일정에 브루나이를 추가하게 되었다.


외국에서 국경을 넘어 또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국경을 넘어가는 기분이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고,

그 처음을 경험할 나라가 내가 동경하던 브루나이가 되어 더 두근거렸다.


주변에서 내게 이번 여행에 어느 나라에 가냐는 질문을 건네면

나는 항상 브루나이를 제일 먼저 언급했다.


그런데 브루나이의 인지도는 생각 그 이상으로 낮았다.

주변에서 브루나이를 알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원래 브루나이의 인지도가 낮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보통 여행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나라가 소개되면

인지도가 상승하며 그 나라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기 때문에

브루나이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 거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것이 더욱 나를 설레게 했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생소한 나라 브루나이에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는 내가 최초로 가게 되었다는 점에 자부심이 들기 시작했다.


빨리 가 보고 싶었던 나라,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경험담을 들려주고 싶었던 나라,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감이 컸던 나라,


지금부터 브루나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Photo by KBS <Battle T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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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oi0wan



2019.08.08

D+7

국제미아


2019년 8월 8일 목요일,

오전 6시.


드디어,

브루나이로 가는 날의 아침이 밝았다.


나는 7시에 호스텔에서 나와 선착장이 되는 제셀톤 포인트까지

그랩 차량을 부르지 않고 걸어서 이동할 것이다.


왜냐하면 코타키나발루에 있는 기간은 총 8일이었지만

내가 구입한 유심 카드는 7일간 이용이 가능한 유심 카드였기 때문에

8일째가 되는 오늘부터는 더이상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 나의 계획이었다.

어차피 8일째 되는 날의 아침 일찍 나는 브루나이로 떠날 예정이었기 때문에

7일 유심 카드를 구입해도 크게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의 마지막 조식을 먹고 호스텔을 나서려고 하니 시간은 7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호스텔에서 제셀톤 포인트까지는 걸어서 가도 여유있게 30분 정도 걸리는 데다가

페리는 8시 30분에 출항을 하니 서두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호스텔에서의 마지막 아침을

조금이라도 더 느긋하게, 한편으로는 더 느리게 시간을 만끽하면서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여유로움을 가지며 움직여 보기로 했다.



오전 7시 20분.


나는 제셀톤 포인트로 출발하기로 했다.

8시 즈음에 제셀톤 포인트에 도착하면

천천히 선착장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간단한 주전부리를 사 들고 페리에 탑승하기로 했다.



안녕~ 코타키나발루!”


나에게 있어서 6박 7일은 너무나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 시기에 라비@사바 호스텔에 있던 투숙객 중에서는

내가 가장 오랫동안 투숙을 하고 있던 사람인지라

호스텔 매니저 부부와 이 곳에서 함께한 각 나라 여행객들,

그리고 깔끔하고 아늑했던 이 곳의 모든 시설까지도 그새 많은 정이 들어버렸다.


호스텔을 나서니 하늘에선 가늘게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나의 몸은 샤워를 한지 채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비와 땀으로 범벅이 되고 말았다.


오전 7시 58분.


나는 배 안에서 먹을 주전부리를 사기에 앞서

브루나이 행 페리 티켓을 구매했던 4번 창구로 가서

내가 탈 페리의 선착장 위치를 먼저 파악하기로 했다.


코타키나발루에서 브루나이로 가는 페리 티켓 구입 방법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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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타이틀을 클릭하면 해당 게시글이 새 창으로 띄워집니다.)


나는 나의 티켓을 발권해 주었던 직원에게 내 티켓을 보여주면서

이제 곧 브루나이로 가는 페리에 탑승할 예정인데

어디에서 페리를 기다리면 되냐고 묻자

직원은 내게 “Now! Go!” 라고 소리쳤다.


직원의 호통에 나는 당황했다.


아직 시간 30분이나 남아있는데 왜 이렇게 보채?’


일단 직원의 말에 따라 서둘러 캐리어를 끌고 선착장 쪽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선착장이 어딘가 허전했다.



국경을 이동하는 페리의 출발을 30분 앞두고 있는 선착장으로 보기엔 너무나 허전했다.

심지어 캐리어를 끌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밖에 없었다.


적적한 선착장의 풍경에 당황하고 말았다.


오전 8시.


어떻게 된 거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참고로 이 상황에서의 나는


유심 카드 기간 만료,

호스텔 체크아웃 완료,

지폐 링깃 전액이 소진(동전만 소액 남아 있었음)된 상태였다.


그리고 심지어 브루나이에 도착하면

2학기 수강신청도 해야 하는 상황.


책에서만 보던,

블로그에서만 보던,


소위 말하는 국제미아가 되 버린 걸까.




……




망했다.

진짜 망했다.


속된 말로 x 됐다.


아니 그런데,

출발하기까지는 아직 30분이 남아 있는데...


대체 무슨 일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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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oi0wan



2019.08.07

D+6

결판의 날


코타키나발루에서 온전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밝았다.

내일이 되면 나는 페리를 타고 브루나이로 넘어간다.


이 얘기인즉슨,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쁠라우띠가 섬 투어 일정을 더이상은 미룰 수 없는,

이 날의 날씨에 나의 스노쿨링과 머드체험 등의

해양 스포츠 일정 여부가 판가름이 나는 결판의 날이 밝은 것이다.


전날 밤, 잠에 들기 직전까지도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며 잠에 들었는데

과연, 나는 무사히 쁠라우띠가 섬에 들어갈 수 있을까.


알람 시간에 맞춰 떠진 눈.

나는 재빠르게 이불 밖으로 나와 창밖을 바라보았다.


 


야속할 정도로 하늘에는 희뿌연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고 이내 강한 빗줄기를 매정하게 뿌리기 시작했다. 


하.. 씨x..


그래도 동남아시아는 스콜성 비가 자주 내리는 편이니 금세 비가 그쳐 다시 해를 띄우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 혼자만의 애처로운 희망고문에 불과할 뿐이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내 생각에는 투어가 취소될 것 같아. 픽업 장소로 나가지 않아도 되지?


(8분동안 아무런 답장이 없자)


우선 나는 호스텔의 픽업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영완)

 

좋은 아침 친구.

아... 오늘 쁠라우띠가 섬 투어는 헤비급 비 때문에 다시 취소되었어.

(도라)

 

이럴 수가... 쁠라우띠가...

(영완)



끝내 나는 코타키나발루에서의 해양 스포츠는 경험하지 못한 채 브루나이로 넘어가게 되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호스텔로 들어와 토스트를 먹으며 오늘의 일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때, 엊그제 탄중아루 비치에서 만나 필리피노 야시장에서의 먹방을 함께한 대니형 일행이 떠올랐다.

만약 형들의 일정에 정해진 계획이 없다면 대니형 일행과 하루를 보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일정을 조율하기 위해 대니형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는데

형들도 오늘 해양 스포츠를 하기 위해 가야섬에 들어가는 일정이셨다고 했다.


현지에서 해양 스포츠를 예약한 나와 달리

형들은 한국에서 미리 여행사를 통해 예약을 하고 온지라

취소를 확정받기까지의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만약 해당 여행사로부터 취소를 확정받으면 형들은 나와 함께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형들은 계속해서 지체되는 취소 확정에 지치기라도 했는지

일단 아침을 먹으며 취소 확정을 기다리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형들은 내게 아침 식사를 함께 하자며 나를 로컬 식당으로 부르셨다.


 


그렇게 이틀 만에 나는 대니형 일행을 이마고 쇼핑몰 주변 로컬 푸드 식당에서 다시 만났다.

형들은 여행사의 늦어지는 대처에 답답해하시며

빠른 취소 확정과 현지에서 환불에 대한 확신을 받은 나를 부러워했다.


그러면서 일행 중의 한 명이던 대이빗 형이

만약에 가야섬 투어가 취소되면 악어나 보러 가실래요? 코타키나발루에 악어 농장 있다고 하던데...라며

악어 농장에 대한 존재를 알려 주셨다.


그런데 아직 형들은 가야섬 일정에 대해서 취소를 확정받은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악어 농장 일정에 섣불리 OK를 하지 않았고

호스텔에서 블로그 작업을 하다가 따로 새로운 일정을 계획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호스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 때, 형들이 드디어 여행사로부터 가야섬 일정에 대한 통보를 받았다.

가야섬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된다고 한다.


그런데 대니형이 내게 자신을 대신해서 가야섬에 갈 의향이 있냐고 물었다.

대니형은 막상 가도 자신이 생각하던 바닷속의 풍경을 보지 못할 것 같다며

가야섬 일정을 자진해서 포기하셨다.


순간 엄청난 고민에 휩싸였다.


그런데 내가 쁠라우띠가 섬에 가기로 했던 이유가

가야섬이나 사피섬에 비해 보다 적게 찾는 관광객의 수와

그로 인해 더 깨끗하게 보존된 섬의 깨끗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쁠라우띠가 섬을 대신하는 일정으로 가야섬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 외에 답변을 전해야 하는 시간적인 상황도 촉박했던지라

나는 대니형에게 가야섬에 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렇게 대니형은 마사지 샵으로, 나는 호스텔로,

제임스 형과 대이빗 형은 가야섬으로 향했다.


대니형과 둘이서 새로운 일정을 계획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대니형과 카카오톡을 나눌수록 대니형은 느긋하게 쉬면서 시간을 보내는 걸

더 선호하시는 편이신 것 같아 혼자서 일정을 계획하기로 했다.


 


호스텔로 돌아온 나는 노트북을 켜고 코타키나발루에서의 당일치기 일정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땅한 장소가 눈에 띄지 않았다.


탄중아루 비치, 필리피노 마켓, 워터프론트몰, 이마고 쇼핑몰, 야외 수영장,

블루 모스크, 핑크 모스크, 반딧불 투어, 스쿠터 질주, 브리즈 비치 클럽, 선데이 마켓...


코타키나발루에서 해양 스포츠를 빼고 할 수 있는 액티비티는 다 한 상황이었다.


그 때, 대이빗 형의 악어 농장 언급이 뇌리를 스쳤다.


검색을 해 보니 악어 농장은 차로 약 40분 정도 걸리는 다소 먼 위치에 있지만

어차피 시간은 오늘도 제약될 것이 없었고,

한국에서 보기 힘든 악어라는 동물을 보면서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열리는 악어쇼에 참석하는 것이

지금의 상황에서 세울 수 있는 최고의 일정일 것 같았다.


악어쇼가 시작되기까지는 약 2시간 30분 정도를 남겨두고 있는 상황.

나는 제셀톤 포인트로 가서 쁠라우띠가 섬 투어의 비용을 환불받은 후

그랩을 이용하여 투아란 악어 농장으로 향했다.



[환불] 쁠라우띠가 섬 투어(스노쿨링, 장비, 호텔 픽업, 식사 포함) 240링깃(약 70,000원)


쁠라우띠가 섬 투어를 현지에서 저렴하게 예약하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말레이시아②] 쁠라우띠가 섬 투어와 브리즈 비치 클럽 바비큐 현지에서 예약하기 편을 정독해주세요.

(위 타이틀을 클릭하면 해당 게시글이 새 창으로 띄워집니다.)


그랩을 타고 투아란 악어 농장으로 향하는 도중,

기사님께서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짚어주셨다.

그것은 바로 투아란 악어 농장에서 제셀톤 포인트로 돌아올 교통편이었다.


투아란은 제셀톤 포인트와 달라. 여기처럼 그랩이 쉽게 잡히지 않을 거야.

(그랩 차량 기사님)

 

왜?

(영완)

 

시내로부터 너무 떨어진 곳이라서 그랩 차량이 거의 없어.

돌아올 교통편에 대한 준비는 되어 있어?

(그랩 차량 기사님)


아니..

(영완)


그러면 내가 투아란 악어 농장에서 돌아갈 때도 널 데려다 줄게.

(그랩 차량 기사님)


정말??

(영완)


물론이지.

(그랩 차량 기사님)


정말 고마워. 난 감동받았어.

악어쇼는 3시부터 시작되니 빠르면 4시, 아무리 늦어도 5시를 넘기지 않을게.

(영완)


알겠어.

(그랩 차량 기사님)


친절하신 그랩 차량의 기사님 덕분에 나는 악어 농장으로 가는 길에

돌아오는 교통편까지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40분 동안 열심히 달린 우리의 차량은 어느덧 투아란 악어 농장에 도착했다.


 


투아란 악어 농장 [1인(성인)] 30링깃(약 8,700원) + 세금 1.8링깃(약 520원)

→ 31.8링깃(약 9,200원) / 2019.08 기준


나른한 시간 오후 2시,

농장에 있던 모든 악어들은 부동자세를 취하거나

유유자적하게 물 위를 헤엄치며 조용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농장의 한적함에 다소 당황했지만

그러면서도 악어가 가끔씩 예고없이 몸을 움직이곤 했다.

크게 움직인 것도 아닌데 악어가 움직일 때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농장 곳곳에 있던 팻말들을 읽어보니 악어들의 평균 나이대가 60~70세였다.

악어들의 유유자적함을 바로 수긍하게 되었다.


악어님들. 편히 계세요. 얌전히 보다 갈게요..


 


그렇게 악어 농장을 둘러보는 도중, 갑자기 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바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악어 농장의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신나는 비트에 비해 너무나 움직임이 없던 악어들의 반응이 다소 민망했다.)


말레이시아에 온 이후 K-POP이 들렸던 적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마고 쇼핑몰에서는 NCT127, 트러블메이커, 티아라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코타키나발루에서의 불금을 즐기기 위해 가야 스트리트 야시장으로 가는 도중,

루카스 일행과 함께 탔던 그랩 차량의 기사님의 휴대전화에는 아이콘의 노래가 세 곡이나 있었다.


NCT127_無限的我(무한적아)

코타키나발루 이마고 쇼핑몰 / 2019.08.05


Trouble Maker(현승, 현아)_Trouble Maker(트러블메이커)

코타키나발루 이마고 쇼핑몰 / 2019.08.05


T-ARA(티아라)_SEXY LOVE

코타키나발루 이마고 쇼핑몰 / 2019.08.07


한국에서 보도하는 K-POP의 해외인기에 대해서 솔직히 과장하는 건 아닐까 싶었는데

이번 여행을 계기로 K-POP의 진실된 해외 인기와 내 나라 한국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악어 농장을 다 둘러보고 나니 어느새 시간은 악어쇼가 시작될 시간과 가까워져 있었다.

서둘러 공연장에 갔더니 나를 악어 농장까지 태워다 준 그랩 기사님이 악어쇼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사님께서도 악어 농장 주변에 있으면 어차피 손님을 태우지 못할 테니

나를 기다리면서 악어 농장을 구경하려고 하시는 것 같았다.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가 기사님께 인사를 건넸다.

기사님의 배려심에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죄송한 마음이 같이 들었다.


 

 


 악어쇼를 보면서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들었다.

보기만 해도 위협적이고 무서운 악어가 있는 물 속에

맨발로 들어가 맨손으로 악어를 유인하는 사육사의 조련에 감탄하면서도


악어를 하나의 생명체로 생각했을 때는

인위적으로 악어를 작대기로 자극하며 물밖으로 유인하는

조련 방법이 꽤나 가학적이라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또, 행여나 돌발적인 상황이 일어나

사육사가 악어에게 물리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싶은 걱정과

인간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정해진 시간마다 억지로 작대기를 맞으며

물밖으로 나와야하는 악어에 대한 걱정이 같이 들었다.


악어쇼가 끝나자 모든 관객들이 박수와 환호로 악어쇼에 화답했다.

나도 박수를 보내긴 했지만 마냥 밝은 얼굴로 악어쇼에 화답할 수는 없었다.


 


악어쇼를 다 보고 악어 농장을 나오면서 나는 일부러 나를 위해

악어 농장에서 시간을 할애해주신 기사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시원한 콜라 한 캔을 사 드렸다.


 


그렇게 쁠라우띠가 섬을 대신해서 악어 농장에서 오늘의 새로운 일정을 소화한 나는

KFC에 들러 간단하게 간식을 먹었다.

메뉴 이름이 기억나진 않지만 치킨에 수프 쏟은 맛이 났다.


맛이 없었다는 얘기다.



간식을 먹으며 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호스텔에 도착했다.

호스텔에 도착하고 나서는 짐 정리를 하면서 내일 아침 브루나이로 떠날 준비를 했다.


 


나는 호스텔 매니저에게 내일 아침 일찍 호스텔을 떠나야 하는

내 상황을 설명하며 얼리 체크아웃을 요청했다.


그렇게 내일을 위한 준비가 얼추 마무리가 되고 나니

나는 호스텔 테라스의 쿠션의자에 누워 코타키나발루에서의 마지막 야경을 눈에 담기로 했다.


그 때, 갑자기 대니형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마고 쇼핑몰의 아래에 매일 저녁마다 라이브 공연이 열리는 바가 있는데

그 곳에서 공연을 보며 같이 맥주를 마시자는 전화였다.

너무나 고마운 제안에 나는 렌즈를 끼지 않은 상태였는데도(나는 렌즈를 빼고 나면 웬만해서 외출을 하지 않는 편이다.)

바로 대니형이 알려준 징 레스토랑 바로 내려갔다.


 


아침 식사를 함께한 이후 다시 만난 형들에게 나는 오늘 하루 일정에 대한 얘기를 물어보았다.

대니형은 마사지 샵에 가서 편하게 마사지를 받은 후 숙소에서 여유있게 쉬면서 시간을 보냈고,

대이빗 형과 제임스 형은 동물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대이빗 형과 제임스 형에게 가야섬에 대한 일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된다고 해서

가야섬에 간 게 아니냐고 물어보니까

가야섬에 가는 배에 타려고 하는 순간, 아주 잠깐동안 내린 비 때문에

그 자리에서 바로 가야섬 일정에 대한 취소를 통보받았다고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형들이랑 악어 농장 같이 다녀올 걸..


형들 일행 중에서 이 날, 결국 최고의 승자는 대니형이었다.


무르익는 분위기 속에 점점 시간이 흘렀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바는 라이브 공연을 시작할 시간이 되어 있었다.



라이브 공연이 시작되었다.

전주가 흘러 나오는데 나와 형들은 모두 놀란 표정을 지은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라이브 가수들이 인디가수 숀의 ‘Way Back Home’을 영어로 개사해서 부르는 것이었다.

코타키나발루에서의 마지막 밤을 코타키나발루에서 친해진 한국인 형들과 한국 노래에 맥주를 마시며 보내게 되었다.


정말,


정말이지 행복했다.


이런 순간은 몇 달 전부터의 계획으로도 실천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 날, 나는 형들에게 나의 명함을 건네주었다.


 


여행을 계기로 금연을 실천하고 있었는데

술이 몇 잔 들어가고 대니형이 밖에 나가 연기를 뿜고 있으니 견디기가 힘들었다.


탄중아루 비치에서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 주었고,

필리피노 야시장에서도 나에게 줄 망고를 제일 먼저 구매해 준 유독 고마운 대니형과

맥주를 마시러 바에 내려갈 때, 나를 부르자는 얘기를 먼저 꺼냈다는 대이빗 형과 제임스 형.


코타키나발루에서 나와 함께한 모두가 뜻깊고 소중한 인연이지만

대니형 일행은 유독 더 기억이 짙게 남는 인연이다.

같은 한국인이었다는 동질감도 이유가 되지만

함께한 즐거운 시간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았기 때문인 것 같다.


한국에 돌아갔을 때,

자주 만나자는 그런 지키지도 못할 빈말은 서로가 하지도 않았지만

언젠가는 꼭, 한국에서 다시 만나 우리는 이 날처럼 다시 한 번 잔을 부딪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반딧불 투어에서 나의 말벗이 되어 주고,

나의 쁠라우띠가 섬 투어 일정을 위해 투어 스케줄을 강행하고 있는 도중에도

나의 카카오톡 문의에 불철주야 답장을 해 주었던 도라.


도라는 내가 브루나이로 떠나기 전, 같이 술을 한 잔 하자고 했었는데

우리는 그 약속을 오늘 실현하기로 했다.


대니형 일행과 헤어진 나는 도라의 퇴근 시간에 맞춰 필리피노 마켓으로 향했다.

도라는 나를 위해 코타키나발루의 현지 안주인 꼴뚜기 꼬치 구이와 생선 구이를 사 주었다.


 


예정보다 꽤 늦어진 도라의 퇴근과

내일 아침 일찍 브루나이로 가는 페리에 탑승해야 하는 나의 상황을 고려하여

결국 술은 마시지 않기로 했지만 도라와 나는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하며

코타키나발루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도라는 나를 제셀톤 포인트에서 처음 봤잖아. 그 때, 첫인상이 어땠어?

(영완)

 

 코타키나발루는 거의 가족끼리 오거나 연인들이 오는 경우가 많아서 좀 놀랐어.

(도라)


아, 혼자라서?

(영완)

 

 응. 왜 혼자 왔지? 싶었어.

(도라)


반딧불 투어에서 다시 만났을 때,

너가이드님께 나를 한국어로 ‘제셀톤 친구’라고 소개해 주었을 때 무척 고마웠어.

(영완)


“(웃음) 그 때 떠오르는 단어가 그냥 제셀톤 친구였어.

(도라)


 


이 날, 나는 한국의 술인 소주를 궁금해 하는 도라에게

입으로 소주병 따는 소리 내는 개인기를 가르쳐 주면서

앞으로 한국인 관광객들을 만나면 이 개인기를 선보여 보라고 했다.


도라는 입으로 내는 똑딱 소리가 꽤나 재미있게 들렸는지

계속 빵 터지면서 다음에 만나게 될 한국인 관광객에게 이 개인기를 선보이겠다고 약속했다.


혹시라도 가이드님께서 이런 거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보면 제셀톤 친구한테 배웠다고 하라 했다.



이제 나는 코타키나발루에서의 모든 일정을 끝마쳤다.


도라와 헤어지고 혼자 호스텔로 돌아오는데

계속 마음 한 편에서 아쉬운 기분이 일렁였다.

아직 누빌 나라가 두 곳이나 남았는데 왜 이렇게 아쉬운 걸까.



이유가 없다.

그냥 끝은 언제나 아쉽다.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기다 보니

내일 아침, 잠에서 깨면 새로운 나라로 이동한다는 설렘과

코타키나발루에서의 끝을 맺고 싶지 않았던 아쉬운 기분이 함께 들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잠에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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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6

D+5

내가 먼저


방을 바꾸면서 침대도 2층으로 옮겨졌다.

2층 침대는 초등학교 때 동생이랑 썼던 때가 마지막이었는데

오랜만에 어릴 때 생각도 나고 좋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도 정해진 일정은 없다.

조식을 먹으며 천천히 오늘의 일정을 어떻게 채워 나갈까 생각해 보았다.

오늘의 조식에는 어제 대니형 일행으로부터 선물받은 달콤한 망고가 함께했다.



쁠라우띠가 섬 투어의 첫 예약이 취소된 이후 다시 잡은 새 예약일은

내가 코타키나발루에 있는 마지막 날이 되었다.


만약 이 날도 비가 오게 되어 예약이 취소되게 되면

나는 코타키나발루에서의 해양 스포츠를 끝내 경험하지 못한 채

브루나이로 가게 되기 때문에 내일로 변경된 예약을 앞당기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도라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다.

혹시라도 취소건이 생겼다면 내가 그 자리를 메꾸고 싶었다.


카카오톡은 8월 5일에 나눈 내용



“안녕, 친구(도라). 내일(8/6) 취소된 예약 있어?

7일도 가능하지만 6일에 갈 수 있다면 나는 6일에 가고 싶어.

만약, 7일에도 비가 오면 다음 날(8/8)에 내가 브루나이로 가야 하기 때문에 불안할 것 같아.”

(영완)


“알겠어 친구. 내가 계획을 확인해 보고 너에게 알려줄게.”

(도라)


“정말 고마워.

(영완)


(1시간 30분 후)


“안녕, 친구. 이미 내 계획을 물어보았어. 내일은 이미 예약이 다 차 있어서 함께할 수 없어.

8월 7일은 괜찮아.”

(도라)


“어쩔 수 없지. 비가 오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8월 7일로 할게. 나중에 셔틀 차량의 번호를 알려 줘.”

(영완)


“알겠어. 만약 8월 7일에도 비가 온다면 우리는 너에게 쁠라우띠가 투어의 비용을 환불해 줄게.

내일 밤, 스케줄이 잡히면 셔틀 차량 번호를 말해 줄게.

(도라)


만약, 내일도 비가 와서 쁠라우띠가 섬에 갈 수 없다고 가정하면

지금까지 나는 코타키나발루에 온 이후 한 번도 해양 스포츠를 즐기지 못한 것이 된다.

그래서 오늘은 혹시 모를 비 내릴 내일을 대비해 쁠라우띠가 섬 투어를 대신할 수 있는 레저를 즐기기로 했다.


그리하여 정해진 오늘의 일정.

바로 호스텔에 있는 야외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 것.


래쉬가드로 수영장에 들어갈 마친 나는 호스텔의 6층에 있는 야외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으로 가는 길이 잘 꾸며져 있었다.

작은 수로에는 잉어들이 많이 있었는데 인공적인 공간에 있는 잉어들의 모습이 무척 신기해서 구경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관리인 분께서 먹이를 잘 챙겨 주시는지 살찐 잉어들이 정말 많았다.


수영장에 도착을 하자 관리인 아저씨께서는 내게 투숙 중인 호스텔의 키를 보여달라고 하셨다.

키를 받으신 아저씨께서는 호스텔의 키에 기재되어 있는 일련번호를 확인하시고 나를 수영장으로 입장시켜 주셨다.


 

 


수영장 시설은 대체적으로 잘 마련되어 있었다.

비록 수영장에서 볼 수 있는 뷰의 반경에 바다가 포함되진 않았지만 호스텔의 가격대에 비하면 그것은 욕심이다.

물의 깊이도 적당했고 내가 좋아하는 썬베드도 구비되어 있었다.


만약, 물놀이에 비중을 크게 두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 규모의 수영장이 아쉬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사람 많고 북적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충분히 만족하면서 수영을 즐길 수 있었다.


내가 방문한 시간대가 오전이었어서 그런지 수영장에는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대다수였다.


 


코타키나발루에 있는 내내 비행기가 이륙하는 모습을 정말 많이 보았다.

공항과 시내가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여행객이라 그런지 나는 잦게 들리던 비행기의 이륙 소리조차도

소음이 아닌 여행의 감성을 북돋아 주는 일상음과 같이 여겼다.


썬베드에 누워 비행기가 날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각 비행기마다 붙혀진 항공사 로고를 계속 눈에 담는 것.


내가 살고 있는 서울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어렸을 때 수영을 배웠던 기억을 떠올려 풀장을 자유롭게 누비며 몇 년 만에 수영 실력(?)을 발휘해 보았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체중이 늘어서 그런지 금세 호흡이 딸렸다.

수영 도중에 가쁘게 숨을 내쉬는 내 자신을 발견하며 나는 착잡한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두 시간 가량이 지났을까.

수영을 하며 급격히 칼로리를 소모시킨 나는 식사를 하기 위해 호스텔을 나섰다.

식사는 호스텔로부터 도보로 약 10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로컬 푸드 식당에서 해결했다.


 

 


오늘의 점심은 해물 볶음밥과 아이스 밀크티.

물놀이 후에 먹어서 그런지 더 맛있었고 다른 때보다 더 허겁지겁 먹었다.


 


맛있게 식사를 하다 보니 주방의 옆에서 접시에 자신이 먹을 음식을 담는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소녀는 나의 주문과 서빙을 담당하는 이 식당의 아르바이트생같았다.

사실 아르바이트생이라고 말하기에도 소녀는 너무나 어려 보였다.


열심히 일을 한 후에 식사를 하려는 이 소녀.

어린 나이에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기특해 보였다.

이 소녀가 든든하게 한 끼를 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햄버거가 좋아서 햄버거 아르바이트를 했었던 내가 맥도날드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후식으로 말레이시아에서만 먹을 수 있는 쳄페닥 맥플러리와 콘파이를 먹었다.



쳄페닥은 태어나서 난생 처음 들어본 열매였다.

두렵지만 과감하게 도전해 보았다.

식감은 찰진 옥수수와 같았는데 향은 망고 비스무리한 향이 나면서 찐득한 시럽 맛이 함께 났다.

타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생소함에 한 번 쯤은 도전해 볼만 하지만 두 번은 찾지 않을 맛이었다.


 


그러나 콘파이는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꽉찬 옥수수 크림과 바삭한 파이의 겉면은 한국에서 판매되던 콘파이와 확연하게 달랐다.

한국 맥도날드에서 콘파이가 재출시된다고 하는데

조만간 맥도날드에 들러서 코타키나발루에서의 콘파이와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보아야겠다.


 


방을 옮긴 이후 한 번쯤은 저 귀여운 쿠션에 등을 대고 잠들고 싶었다.

호스텔로 돌아온 나는 바로 쿠션에 앉아 낮잠을 청했다.



잠에서 깨고 나니 어느새 시간은 저녁과 가까워져 있었고

하늘도 그에 맞게 점점 어둡게 짙어져가고 있었다.


그 때, 수영장에 다시 한 번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두운 밤의 수영장은 가족들과 아이들이 많았던 오전의 수영장과는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밤에 수영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을 계기로 한밤의 수영도 경험해 보고 싶었다.


 

 


밤의 수영장에 도착하자마자 느꼈다.

내가 원하던 수영장의 느낌은 바로 밤이었다는 것을.

적은 사람들과 짙푸른 하늘, 그리고 은은한 조명의 색감까지.


혼자여서 아쉬웠지만 이 순간, 여자친구와 함께 있을 수 있었다면 로맨틱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배영을 하면서 눈 앞에 광활하게 펼쳐져 있던 하늘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오전과 마찬가지로 그 하늘 위로는 수시로 비행기가 이륙을 하고 있었다.



수영을 마치고 나와 썬베드에 누워 물에 젖은 머리와 래쉬가드를 말렸다.

나는 수영장에서 젖은 물을 자연바람에 말리며 선선함을 만끽할 수 있는 순간이

수영보다 더 매력적인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물기가 다 마르면 한 번 더 물 속에 들어가 래쉬가드와 머리를 적셨고

다시 썬베드로 나와서 젖은 물기를 말리는 미련한(?) 행동을 반복했다.


 


오늘은 거의 모든 시간을 수영장에서만 보냈다.

피곤해진 나는 주섬주섬 짐을 챙겨 호스텔로 돌아왔다.


호스텔에 들어가니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던 한 남자 투숙객이 내게 인사를 건넸다.

이 투숙객은 나와 같은 방을 쓰는 투숙객이며 나의아래 층 침대를 쓰고 있다.

우리는 호스텔에 있는 내내 간단하게 아침 인사와 저녁 인사 정도만 주고받았는데

나는 이 투숙객과 인사를 할 때마다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말투와 표정에서 전해지는 사람의 기운이라고 할까.

그 기운이 너무 밝아서 마냥 인사만 나누며 지내기가 아쉬웠던 나는

용기내서 먼저 다가가 한 마디의 말을 덧붙였다.


본 대화는 기초적인 영어 회화와 번역기의 도움을 빌림.


괜찮으면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 와서 나와 식탁에서 같이 먹지 않을래?

(영완)

 

지금?

(아래 층 침대 투숙객)

 

일정이 되지 않거나 불편하면 일부러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된다.

(영완)

 

지금 바로는 어렵고 30분 뒤에 같이 나가자.

(아래 층 침대 투숙객)



그렇게 우리는 이마고 쇼핑몰 근처에 있는 오렌지 편의점에 가서 간단한 주전부리를 사 왔다.


간식을 사러 가면서 나누었던 대화를 통해 나는 그의 이름이 셰디이며, 두바이에서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셰디와 식탁을 함께 하며 나눈 대화를 통해 느낀 것은

셰디가 상대방과 대화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마냥 내가 묻는 형식적인 질문(언제 코타키나발루에 왔는지, 나이가 몇 살인지 등)에만 대답하는 것을 떠나

식탁을 함께하는 상대에게 물어볼 수 있는 따뜻한 질문들을 많이 물어봐 주었다.


그 하나의 예로 긴 여행을 하기 위해 내가 집을 나와있는 동안 가족들에게 연락을 잘 하고 있는지와 같은 질문.

이 질문은 여행을 하는 동안 만났던 외국인 친구들은 물론, 같은 한국인들로부터도 받아본 적 없었던 질문이었다.


이 시간을 통해 나는 셰디는 정말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내가 한국인임을 말했을 때 셰디는

북한(North)에서 왔는지 남한(South)에서 왔는지와 같이 형식적인 질문을 건네는 게 아닌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하면서 나의 나라 한국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자기 형제들의 이름들을 노트에 적기 시작하더니 이 이름을 한글로 적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과연 나는, 처음 보는 외국인 친구에게 너희 나라의 언어를 가르쳐 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솔직하게 그럴 자신은 없다.


 


갑자기 시작된 한글 강의, 셰디는 내게 학생이냐 묻더니 전공과 할 줄 아는 외국어가 있냐고 물었다.

이에 한국어를 제외하면 일본어를 구사할 줄 안다고 하자 셰디는 내게 일본어도 가르쳐 달라고 했다.


형제들의 한글과 가타카나 표기법을 보며 각 언어의 규칙성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셰디의 모습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이름 표기 강의가 끝나자 셰디는 더 어려운 강의를 부탁했다.


Hello? / How are you? / What’ s your name? / Where are you from? 과 같은 기본적인 어휘의

한글과 일본어 표기법과 발음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가르쳐 주는 내가 어려울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영어권 나라 외국인의 입장에서 이 어휘들을

즉석에서 한국어와 일본어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몇 번이나 괜찮겠냐고 되물었지만 셰디는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편한 마음으로 셰디에게 한글과 일본어를 가르쳐 주었고

What’ s your name?과 같은 표현은 K-POP의 노래를 예시로 들며 포미닛의 <이름이 뭐예요?>를 들려주기도 했다.



모든 강의가 끝나자 나는 셰디에게 명함을 선물로 건네주었다.


셰디는 나의 명함을 보고 별자리 디자인이 예쁘다며 칭찬해주었다.

셰디는 답례로 자신의 메일 주소를 알려 주었고,

나는 셰디의 메일 주소로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내 주었다.


 


다 먹은 과자봉지를 치우며 식탁을 정리하고 있을 때,

한 일본인 투숙객이 방에서 나오더니 책을 읽기 위해 식탁에 앉았다.


그 때 셰디는 일본인 투숙객에게 나를 소개하며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친구라고 소개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일본인 투숙객과도 일본어로도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것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학창시절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로부터 상처를 받은 이후

먼저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에 대해 극심한 경계와 거부감이 생겼다.


아무렇지 않은 척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나는 속으로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진 않을까,

혹시나 내가 억지로 붙잡아두고 대화를 이어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함을 항상 안고 눈치 속에서의 대화를 이어간다. 


그래서 가끔씩 점점 정이 깊어지는 친구들에게 과거에 받았던 상처를 고백하

모든 친구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에게 십중팔구 이러한 대답을 한다.


영완아, 너는 말도 잘 하고 사람을 집중하게 하는 그런 화법을 가지고 있어서 너랑 말하면 되게 재미있거든?

그런 너가 먼저 말을 거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몰랐어.


셰디가 건네는 따뜻한 인사,

나는 오로지 그 이유 하나로 말 한 마디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처음으로 함께 담소를 나누자고 제안을 해 보았다.


이 경험 또한,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별 거 아닌 여행객과의 수다에 불과할 수 있지만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큰 도전과도 같았고,

인간 대 인간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온정을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셰디는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넸고,

나는 셰디에게 먼저 담소를 제안했다.


내가 먼저 상대방을 위해 손을 내민다는 것은 나에게 손을 내미는 것과도 같다는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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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바꿋 반딧불 투어를 마치고 호스텔로 돌아가는 길,

도라에게서 카카오톡이 왔다.



“안녕, 친구. 브루나이에 언제 가는지 물어볼 수 있을까?

왜냐하면 당분간 우리 여행사의 쁠라우띠가 섬 투어 예약이 다 차 있어.”

(도라)


“8월 8일 아침에 브루나이로 가. 쁠라우띠가에 내일 갈 수 있을까?

(영완)


“가능하면 8월 7일로 미룰 수 있을까? 왜냐하면 내일(5일)과 6일은 이미 예약이 다 차 있어.

마지막에 알리게 되서 미안해.”

(도라)


“알겠어. 만약 7일에도 비가 오면 환불받을 수 있지?

나는 7일이 마지막 기회(코타키나발루에서의 마지막 날)라 걱정된다.”

(영완)


“알겠어. 8월 7일에 비가 오면 쁠라우띠가의 비용은 환불해줄게. 괜찮아?

(도라)


“좋아.

(영완)


“쁠라우띠가 일정이 끝나면 몇 시야? 아마 오후 4시?

(영완)


“운전 기사가 오전 7시 20분부터 40분 즈음에 너를 픽업하고 제티로 갈 거야.

투어가 끝나고 호텔로 돌아오면 아마 오후 6시 즈음이 될 거야.

(도라)


“알겠어. 고마워, 8월 7일로!

(영완)


“천만에. 만나서 반가워. 8월 7일의 투어에 내가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도라)


“나도 그러길 바라.

(영완)


내가 코타키나발루에서 보낼 날들에 여유가 있었던 지라, 도라는 다시 한 번 쁠라우띠가 섬 투어 날짜를 조율해 주었다.

그 날은 내가 코타키나발루에서 보낼 마지막 날로 결정되었다.


2019.08.05

D+4

라이브 일정의 재미


8월 7일, 쁠라우띠가 섬에 가는 일정을 제외하면 이제 정해진 일정은 아무 것도 없다.

오늘은 어디에 가서 무얼 하면 좋을까.

늘 그랬듯이 일단 조식부터 천천히 먹으며 생각해 보아야 겠다.



조식을 먹으며 나는 이 호스텔이 이마고 쇼핑몰에 있다는 것을 다시금 알아챘다.

이마고 쇼핑몰은 코타키나발루를 대표하는 규모있는 쇼핑몰이다.

오늘은 이 곳을 둘러보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배스킨라빈스.

때마침 주문하던 시간도 해피아워여서 1+1 적용을 받아 싱글 레귤러 사이즈를 하나 더 먹을 수 있었다.


말레이시아 배스킨라빈스 해피아워 [매주 월~금 12PM~3PM] (코타키나발루 이마고 쇼핑몰 기준)

싱글 레귤러 주문 시 싱글 레귤러 한 가지 맛 추가 가능



코튼 캔디 맛과 골드 메달 리본 맛.

골드 메달 리본 맛은 초코와 바닐라, 카라멜이 믹스된 맛이었다.

엄청 달 줄 알았는데 막상 먹어 보니 어느 것 하나 유난히 튀는 것 없이

세 가지의 맛이 은근하게 조화로운 맛을 냈다.


코튼 캔디 맛은 지금도 설명하기가 어렵다.

핑크 캔디와 퍼플 캔디가 믹스된 맛이라고 하는데,

정말 단순하게 한국 배스킨라빈스에 빗대어 설명하자면

이상한 나라의 솜사탕 맛에 퍼플 맛의 색소가 가미된 느낌이었다.


결론은 둘 다 맛있었다.



평소에 쇼핑은 물론 아이쇼핑마저도 즐겨 하는 편이 아닌데,

이마고 쇼핑몰은 정말 내 눈을 사로잡는 상품들이 많았다.



오랜만에 몸 좀 풀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농구 게임도 해 보았다.

내 전에 했던 사람의 기록이 15점이었다.

대체 얼마나 못 던져야 15점이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는 김에 나는 최고 기록인 250점을 깨 보겠다는 야심찬 각오를 갖고 게임을 시작했다.


그러나 결과 135점...

200점도 기록하지 못한 내가 밉다.


 


게임을 마친 나는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오렌지 편의점으로 향했다.

코타키나발루에서는 오렌지 편의점이 눈길 닿는 곳마다 위치하고 있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편의점에 들어가자마자 알바생들은 나의 코디를 보더니

관광객인 것을 알아채고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말을 걸었다.

이내 오렌지 편의점을 곳곳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는 나를 향해

자신들의 모습도 찍어달라며 범상치 않은 텐션으로 포즈를 잡기 시작했다.



앞치마 유니폼까지 벗어던지는 알바생의 미친 텐션에 감동받았다.

갑자기 사장님 오셨으면 볼만 했을 듯.


어쨌거나 관광객을 향해 웃는 얼굴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는 이들의 순수함이 너무 좋았다.



오렌지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나는

바다를 따라 걸으며 필리피노 마켓과 KK플라자에 다녀왔다.

 


필리피노 마켓에서 휠라 힙백을 차고 있던 한 소년이

알 수 없는 말로 친구들에게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귀를 쫑긋 세우고 자세히 듣다 보니

‘Same FILA’ 라는 말이 들렸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내가 신고 있는 신발은 올 해 3월에 출시된 휠라의 신상 러닝화다.


짜식, 너도 휠라 이쁜 거 좀 아는구나?”


휠라 소년 일행은 익살맞은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짓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귀여운 나는 휠라 소년에게 주먹 쥔 하이파이브를 건넸다.


We are same FILA friend.


괜히 샘솟는 휠라 동질감에 다른 친구들하고는 하이파이브 안 하려고 했는데

나머지 친구들도 졸졸 따라와 주먹 쥔 하이파이브를 하고 싶어 하길래

웃으며 모든 친구들과 주먹을 맞대 주었다.



코타키나발루에서 많이 보였던 긴꼬리원숭이 인형.

그리고 아직 진열 정리가 덜 된 듯한 식품 코너.



볼펜 잉크 테스트를 하는 종이에다가 방명록도 적어 보고 태국에서 완전 꽂혔던 딸기맛 환타도 구매했다.

딸기맛 환타는 오랜만에 먹어서인지, 아니면 이 곳이 태국이 아니어서인지

내가 기억하고 있는 맛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이왕 걸어온 김에 제셀톤 포인트에도 들렀다.

나는 4번 창구에서 3일 뒤 브루나이로 갈 페리 티켓을 예매했다.

브루나이로 가는 페리 티켓은 4번 창구에서만 구매할 수 있다.


티켓을 손에 쥐고 나니 비가 와서 쁠라우띠가 섬에 가지 못했던 것이 떠올랐다.

쁠라우띠가는 비 때문에 일정을 늦추거나 환불을 요청할 수 있었지만

브루나이로 가는 배는 환불을 생각할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만 한다.


만약 비가 온다는 이유로 브루나이에 가지 못하면 호텔 예약은 물론

싱가포르 일정, 말레이시아에서의 유심 카드 기간까지 꼬이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끔찍한 건 2학기 수강신청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나는 비가 와도 브루나이에 갈 수 있는지에 대해 확답을 얻고 싶었다.


“Can I take a ferry even if it rains?”


나의 질문에 직원은 대답했다.


“Yes.


브루나이 행 페리 티켓 [1] 63.6링깃(18,500)

코타키나발루라부안(8AM~11.30AM), 라부안브루나이(1.30PM~2.30PM)

라부안에서 브루나이로 갈 때, 라부안에서 별도로 터미널 이용료 5링깃(1,500) 추가 발생 / 2019.08 기준



호스텔로 돌아온 나는 새로운 방을 배정받았다.

호스텔 매니저께선 기존에 내가 쓰던 방이 대청소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풀어놨던 짐을 다시 정리하고 새로운 방으로 옮겨야 하는 게 번거로워서 조금 불만이었는데

새로 배정받은 방은 바다 뷰가 보이는 넓은 창문이 있어서 바로 불만이 수그러들었다.



새로운 침대로 짐을 옮긴 나는 KK플라자에서 사 왔던 딸기맛 환타와 초콜릿을 먹으며 휴식을 가졌다.

행여나 누가 내 환타를 뺏어 먹기라도 할까봐 이름까지 적었다.



휴식을 가지며 나는 호스텔 매니저분께 괜찮은 마사지 샵의 추천을 부탁드렸다.

그러자 매니저분께선 일말의 고민도 없이 티야 마사지 샵을 추천해주셨다.

이마고 쇼핑몰에서도 가까우니 찾아가기 어렵지도 않을 거라고 하셨다.


나는 초콜릿을 다 먹고 나면 티야 마사지 샵으로 가서 발마사지를 받고,

탄중아루 비치에 가서 선셋을 보기로 했다.

탄중아루 비치는 루카스와 중국인 여사친들과 한 번 다녀왔지만,

당시 가야 스트리트 야시장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한 탓에

더 오래 선셋을 보지 못했던 것이 내심 아쉬웠기 때문에

여유있는 오늘의 시간을 빌미로 한 번 더 다녀오기로 했다.



호스텔로부터 걸어서 5분 위치에 있던 티야 마사지 샵. 당일 예약은 밤 10시에 가능하다고 하셨다.

나는 10시로 예약을 잡았고 그 전까지 탄중아루 비치에 가서 선셋을 본 후

필리피노 마켓으로 가서 야시장 먹방을 즐기기로 했다.


우선 나는 탄중아루 비치로 향하기 전,

위즈마 메르데카로 가서 가지고 있던 10만원의 비상금 중 5만원을 추가로 환전하기로 했다.



그랩을 이용하여 탄중아루 비치로 향하는 중, 기사님께서 내게 여행 일정을 물어보셨다.

나는 3주 동안 여행을 다닐 예정이며 다가오는 목요일, 브루나이로 떠난다고 하자

브루나이를 여행지로 정하게 된 이유가 있냐고 또 한 번 질문을 주셨다.


이에 나는 한국의 <배틀 트립>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브루나이를 소개한 방송을 보고

꼭 브루나이에 가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다. 나는 군대에서 <배틀 트립>의 브루나이 편을 굉장히 인상깊게 보았다.





방송에서 브루나이는 남자 우정 여행지로 각광받았다.

사실 나도 브루나이만큼은 유쾌한 친구들과 함께 가고고 싶었는데

이번 나의 여행 일정이 너무나 길었던 데다가 비용과 시간.

또, 우선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장 원했던 나의 여행 이유를 바탕으로 혼자서 브루나이에 가게 되었다.



탄중아루 비치에 도착한 나는 여유롭게 하늘을 바라보며 선셋을 눈에 담았다.

날씨가 흐렸던 탓에 황홀할 정도의 붉은 선셋을 보지 못한 게 약간 아쉬웠다.



그래도 탄중아루 비치는 아름다웠다.

뜨겁게 지는 노을까지 못 보진 않았다.


홀로 비치를 걸으며 선셋을 보다 보니 어느새 배가 허기지기 시작했다.

나는 허기진 배를 채우러 탄중아루 비치의 입구로 갔다.

그 곳에는 즐비하게 줄서있는 길거리 음식들이 관광객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그러던 중, 3층 주스라는 독특한 주스가 눈에 띄었다.

3층 주스를 주문하려고 한 가게로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한국 분이시죠?”


심지어 한국말이었다.



혹시 이제 일정 있으세요?”

(한국인 남자)

 

이따가 10시에 마사지 예약이 되어 있어서 그 전까지 야시장에 잠깐 들를까 했어요.”

(영완)

 

! 야시장이요? 혹시 그럼 그랩 타고 가세요?”

(한국인 남자)

 

, 저 여기서 간단하게 뭐 하나 먹고 바로 그랩 타고 가려구요.”

(영완)

 

, 다른 게 아니라 저희 일행이 2명 더 있는데 핸드폰이 죽어서 그랩을 못 부르고 있었거든요.

저희도 야시장 갈 예정이었는데 괜찮으시면 그랩 불러서 같이 타고 갈 수 있을까 해서요.

차비는 저희가 낼게요.”

(한국인 남자)

 

정말요? 그럼 저야 감사하죠.”

(영완)

 

혹시 숙소가 어디세요?”

(한국인 남자)

 

저는 이마고 쇼핑몰에 있는 호스텔인데 C동이에요.”

(영완)

 

“(놀란 표정을 지으며) 정말요? 저희 이마고 쇼핑몰 A동이에요!”

(한국인 남자)

 

“(빵 터지며) 진짜요? 대박!”

(영완)

 

주스 뭐 드실 거에요? 주스까지 저희가 살게요.”

(한국인 남자)

 

감사해요. 3층 주스 하나 마실게요. 괜찮으시면 야시장 일정에 제가 조인해도 괜찮을까요?

같이 가면 야시장에선 제가 간단하게 식사 한 끼 살게요.”

(영완)

 

좋죠. 그럼 여기서 주스 마시고 저희 같이 야시장으로 가요.”

(한국인 남자)


그들 일행은 스물 여덟 살 2명과 스물 아홉 살 1명으로 다 나보다 형들이었다.

형들은 어렸을 때, 교회에서 만나 20년 넘에 우정을 쌓아온 사이였고

이번에 우정 여행으로 코타키나발루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형들이 사 주신 3층 주스를 마신 후 우리는 그랩을 타고 필리피노 마켓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내내 형들은 내게 연신 감사함을 표현해주셨다.

영완 씨 아니었으면 저희 진짜 답 없을 뻔 했는데 너무 다행이에요.”


필리피노 마켓에 도착하자 나는 형들에게 먹고 싶은 길거리 음식을 고르라고 했다.

그러자 형들은 낮에 웰컴씨푸드를 배부르게 먹은 상태라

지금 음식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며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라고 하셨다.


서로 간의 타협 끝에 우리는 꼬치 구이와 닭날개를 먹기로 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 급식을 먹을 때마다 친구들로부터 항상 듣던 말이 있다.


영완아, 너 진짜 맛있게 먹는다.


나는 그냥 평상시 먹는 대로 먹는 건데 주변에서는 모두가 미리 짜기라도 한 것처럼

내가 음식을 먹을 때마다 항상 맛있게 먹는다는 말을 해 주었다.


필리피노 마켓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형들은 내게 말했다.



“진짜 맛있게 드시네요. 저희 아까 웰컴씨푸드 먹고 와서 진짜 배부른데 닭날개가 또 먹고 싶어지네요.

“먹방 BJ 이런 거 할 생각 없으세요? 진심으로 대박 날 것 같은데...

“BJ 하시면 저희가 바로 구독할게요!


먹방 BJ 추천 또한 정말 많이 받던 제안 중 하나다.

내가 잘 먹긴 하나 보다.

친구들이 아닌 처음 만난 사람들이 내게 먹방 BJ를 권하니 잠시나마 솔깃했다.


용돈벌이 시작해볼까..?’


닭날개 먹방을 끝낸 우리는 필리피노 마켓을 본격적으로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 때, 한 꼬마가 우리에게 망고를 건넸다.


“먹어볼래?



유창한 한국어 실력과 예사롭지 않은 망고 깎는 실력을 보유하고 있는 이 꼬마.

알고 보니 이미 인스타그램에서 한 차례 스타덤에 오른 적이 있던 꼬마였다.



거슬러 줄 잔돈이 없었는지 파이브(5) 링깃’ 대신 오(5) 링깃’을 찾는 이 꼬마..

이런 한국어 대체 어디서 배웠으며 누가 알려준 것일까.


옆에 있던 또다른 한국인 분이 말씀하시길,


“인생 2회 차인 것 같은데 전생에 한국인이었나.


덕분에 형들도 웃고 나도 웃었다.



밤은 더욱 깊어졌고 우리는 왁자지껄 수다를 떨면서 필리피노 마켓에서 티야 마사지 샵까지 걸어왔다.

형들이 마사지를 받고 싶어 해서 같이 티야 마사지 샵에 데리고 갔었는데

이미 예약이 다 차있다고 해서 아쉽게도 같이 마사지를 받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형들은 숙소로 돌아가고,

나는 원래 예정대로 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웠던 우리는 함께 셀카를 찍기로 했다.



형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주기 위해 일행 중 한 명이었던

대니형(탄중아루 비치에서 먼저 내게 말을 건네주신 형)과 카카오톡 아이디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대니형의 카카오톡 프로필뮤직이 콜드플레이의 노래였다.

아까 낮에 만났던 휠라 꼬마처럼 괜히 또 동질감 느껴져서 기분 좋았다.



형들과 헤어진 나는 티야 마사지 샵으로 자리를 옮겼다.

원래 예약 시간보다 조금 빨리 방문한 탓에 대기실에서 조금 기다렸다가 마사지 방으로 이동했다.


 


나는 아로마 테라피 마사지에 발 마사지가 더해진 90분 짜리 마사지를 받았다.

원래는 발 마사지만 받으려 했는데 이왕 받는 김에 전신 마사지도 같이 받고 싶었다.



순식간에 90분이 흘렀다. 마사지가 끝나고 나니 몸이 개운해졌다.

그런데 어딘가 아쉬운 느낌도 들었다.


태국에서 마사지를 받을 때는 몸이 녹는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몸이 조금 풀린다는 느낌 정도에서 그쳤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과 후기를 공유해 보니

같은 마사지샵에서 마사지를 받아도 누가 마사지를 하느냐에 따라서 후기가 천차만별로 나뉜다고 한다.


나를 마사지해주셨던 분이 못 한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태국의 수준까지는 미치지 못했나 보다.


티야 마사지 샵 아로마 테라피 마사지+발 마사지[1인] 118링깃(약 34,000원) / 2019.08 기준




호스텔에 도착하고 나니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어가 있었다.

모든 투숙객들이 곤히 잠에 든 고요한 호스텔에서의 밤.

아무 것도 정해진 것 없던 오늘의 일정도 지내다 보니 어떻게든 채워졌다.

그런데 무계획으로 보낸 하루 치고는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알차고 행복한 기억들로 하루가 채워져 있었다.



나는 과일을 정말 싫어한다.

어느 정도냐면 일단 한여름에 수박을 먹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반응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며 “왜?” 라고 궁금해 하면

렇게 맛없는 음식을 왜 여름의 별미랍시고 먹는지를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학교 그리고 군대에서도 식사 메뉴에 과일이 나오면 한 입도 대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에게 주었고,

어릴 때 집에 부모님의 친구분들이 선물로 과일 세트를 사 오려고

부모님에게 애들 좋아하는 과일 뭐 있어?” 라고 물어보면

부모님은 극구 손사래를 치면서

우리 집 새끼들 과일 사 오면 입에 대지도 않는다.”며

아무 것도 사 오지 말고 제발 빈 손으로 오라고 하실 정도였다.

기껏 돈 들여서 비싼 과일 사 와도 결국엔 우리집에선 버리게 될 거라면서.


그 정도로 과일을 싫어하는 내가 대니형 일행으로부터 그랩을 불러 준 감사함의 대가로 망고를 선물받았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너무나 고마웠다.

그 선물이 과일이라서 그런 걸 넘어

나는 그저 여행이라는 순간에서 행복한 순간을 함께 보냈다고만 생각했는데

형들은 그 순간을 감사하게 생각해서

나에게 말레이시아에서만 받을 수 있는 과일을 선물해 준 것이 몹시 감동적이었다.


망고를 받을 수 있어 너무 기뻤지만

좋은 형들과의 인연이 시작되어서 더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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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던 순간.

블로그에서 브리즈 비치 클럽의 내용을 끝내는 것마저도 아쉬울 정도다.


2019.08.04

D+3

황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


오늘은 쁠라우띠가 섬에 가는 날이다.

쁠라우띠가는 코타키나발루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 불릴 정도로 자연 환경이 깨끗하게 보존되고 있다.

거리도 제셀톤 포인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다른 섬 투어에 비해 가격도 비싸고 찾는 사람들도 적은 편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가야섬이나 사피섬으로 해양 스포츠를 즐기러 간다.)


그런데, 아침부터 잔뜩 낀 먹구름의 상태가 심상치 않더니

머지않아 헤비급 비를 쏟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취소 여부에 대한 연락은 오지 않은 상황.

말레이시아의 기후 특성상 금방 비가 그칠 것을 예상하고 원래 일정대로 투어를 진행하려고 하는 걸까 싶었다.

우선은 예정대로 픽업 시간이었던 7시 20분까지 나는 호스텔 로비로 내려가서 픽업 차량을 기다렸다.

그러면서 나의 예약을 담당했었던 도라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다.



“지금 비가 많이 내려. 쁠라우띠가에 갈 수 있어? 우선, 나는 호스텔 앞의 프론트에서 픽업을 기다리고 있어.”

(영완)


“아니야, 쁠라우띠가는 강한 비로 인해 취소되었어.

(도라)


“어떻게 환불받을 수 있어? 내가 제셀톤 포인트로 가면 돼?”

(영완)


“응, 나중에 사무실에 가면 환불을 주선할게. 그리고 내가 너에게 알려줄게.

(도라)


쁠라우띠가 섬에 들어가지 못해 아쉬웠지만 나는 한국에서 미리 몇 달 전부터 예약을 한 것이 아닌,

현지에서 즉흥적으로 계획을 정해서 움직이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생각만큼 많이 아쉽지 않았다.

픽업장에서 도라와 환불 절차에 대한 카카오톡 대화를 마친 나는 호스텔로 올라왔다.



쁠라우띠가 섬 투어가 취소되어 하루 일정이 펑크나버리고 만 이 날,

나는 호스텔에서 여유롭게 블로그 포스팅을 하면서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쁠라우띠가 섬 투어와 멈바꿋 반딧불 투어를 현지에서 저렴하게 예약하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말레이시아②] 쁠라우띠가 섬 투어와 브리즈 비치 클럽 바비큐 현지에서 예약하기 편을 정독해주세요.

(위 타이틀을 클릭하면 해당 게시글이 새 창으로 띄워집니다.)


서서히 호스텔의 투숙객들이 기상하더니 그쯤 되어서 비도 함께 그쳤다.

투숙객들은 분주히 각자의 일정을 위한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그 때, 나의 맞은편 침대를 쓰는 쿠알라룸푸르 친구가 내게 가야 스트리트에서 열리는 선데이 마켓에 함께 가지 않겠냐고 했다.

그 때만 해도 새로운 일정에 대한 뚜렷한 계획이 잡히지 않은 상황이라

아직 외출에 대한 생각이 없던 나는 그에게 호스텔에서 혼자 블로그를 하며 시간을 보내겠다고 했다.


쿠알라룸푸르 친구는 알겠다며 자신의 중국인 여사친들과 함께 가야 스트리트 선데이 마켓으로 향했다.


그 순간,

나는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터지고 말았다.


선데이 마켓..? 일요일.. 시장? 일요일만 열어..? 오늘...? 일요일????’


조급한 마음에 서둘러 구글에 가야 스트리트 선데이 마켓의 개점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확인해 보니 선데이 마켓은 오후 1시까지만 연다고 한다.


현재 시간 오전 9시.

그리고 오늘은 코타키나발루에서 보내는 유일한 일요일.

오늘 일정의 정답은 선데이 마켓이다.


서둘러 외출 준비를 마치고 나는 그랩을 이용하여 가야 스트리트로 향했다.

가야 스트리트의 주변은 택시와 차량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 순간, 도라에게서 카카오톡이 왔다.



“손님, 아직 반딧불 투어는 갈 수 있다. 갈래?

(도라)


“멈바꿋(지역 이름)?

(영완)


“네.

(도라)


“몇 시에 떠나?

(영완)


“시간이 업데이트되는 대로 알려 줄게. 아마 2시 20분~2시 40분일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작전 팀에서 수송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반딧불 투어를 하고 싶어? 아니면 전액 환불을 원해?”

(도라)


“반딧불 투어는 가겠다. 그러나, 쁠라우띠가의 환불은 원한다. 가능해?

(영완)


“좋아, 작전 팀에게 알려주고 픽업 시간과 자동차 번호도 알려 줄게.

(도라)





선데이 마켓에 다녀온 후, 반딧불 투어를 다녀오면 오늘의 일정이 깔끔하게 정리된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방향으로 벌어지는 상황 전개였는데

카톡 타이밍이며 반딧불 투어 픽업 시간까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나는 선데이 마켓에서 가벼운 식사 한 끼로 나시 고랭을 먹었고

동생에게 선물할 힙백도 하나 샀다.

또, 주전부리를 좋아하는지라 망고 주스와 꼬치도 두어개 사 먹었다.

알차게 펑크난 시간을 때운 나는 이제 반딧불 투어를 떠나기 위해 호스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 때,

선데이 마켓의 입구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상어 가족 노래를 말레이시아에서 듣는데 정말 반가웠다.

저 통통 튀는 텐션 너무 귀여우심.


호스텔로 돌아와서 쿠알라룸푸르 친구를 다시 만났다.

쿠알라룸푸르 친구는 선데이 마켓에서 투숙객들을 위해 다같이 나눠 먹을 마랑’ 이라는 과일을 사 왔다.

이런 정이 너무 좋다.


투숙객들과 다같이 나눠 먹을 간식을 사 올 생각을 왜 나는 미처 하지 못 했을까.

더 멀리 볼 줄 아는 여행러가 되어야 겠다.

마랑을 먹고 나서 나와 쿠알라룸푸르 친구는 명함을 교환했다.

그의 이름은 루카스였다.



알고 보니 루카스는 오늘이 이 곳에서의 마지막 숙박이었던 것이었다.

이 순간은 내가 반딧불 투어를 가기 전, 루카스와 함께 있을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우리는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나는 반딧불을 보러 가기 위해 픽업장으로 내려가 버스를 기다렸다.




나는 버스를 타고 2시간 30분 가량을 열심히 달려 멈바꿋에 도착했다.

멈바꿋에 도착하니 반딧불을 보기 위한 수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가이드의 멘트를 듣자 하니 이 모든 관광객들이 오늘 아침의 폭우로 인해 쁠라우띠가 섬에 가지 못한,

나와 같이 반딧불 투어라도 참가하고자 모인 사람들이었다.


반딧불을 보려면 해가 완전히 지고 난 뒤인 밤이 되어야 한다.

그 전까지의 프로그램은 간식 타임과 맹그로브 숲 투어, 선셋 비치 감상, 그리고 저녁 식사로 채워져 있었다.




입맛이 없어서 간식을 많이 먹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도넛이 제일 맛있었다.

간식 타임이 끝나자 가이드는 승객들을 보트에 태우더니 맹그로브 숲 투어를 시작했다.



이렇게 우거진 밀림을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경이로우면서 신기했다.


밀림은 상상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눈에 담기는 모든 모습들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저 숲 속에는 어떤 동물들이 살고 있을까.

혹시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가이드님 말씀대로 가늠조차 되지 않을 크기의 뱀이 있지는 않을까.


오만 궁금증과 잡생각이 다 들었던 것 같다.




맹그로브 숲 투어를 마치고 보트는 방향을 돌리더니 선셋 비치로 이동했다.

가이드님께서는 날씨가 다소 흐렸던 탓에 원래 볼 수 있는 선셋의 아름다움을 다 보지 못 할 거라고 하셨지만

나는 날씨는 사람의 힘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떠한들 미세먼지 가득한 한국의 하늘보다는 낫겠지. 싶은 생각이었다.


선셋 비치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보트에서 내려 저마다의 일행들과 함께 독특한 포즈들로 사진 타임을 가졌다.

투어에 함께한 가이드들은 관광객들의 인생샷을 반드시 건져 주고야 말겠다는 열정으로 촬영에 힘써 주셨다.

진흙을 맨발로 밟고 다니며 선셋 비치의 재미를 더 다채롭게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덤이었다.

(우측 아래 사진의 경우, 해당 여자 관광객 분들로부터 사진 업데이트 허락을 받았습니다.)



이 날, 유일하게 일행이 없는 홀로 관광객이었던 나는

제셀톤 포인트에서 인연을 맺은 직원 도라의 도움을 받아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도라와 셀카도 함께 찍었다. 알고 보니 나이도 같았던 우리.

사장님 가이드께 도라가 나를 제셀톤 친구’ 라고 소개했는데 우리 진짜 친구였다.



시간이 점점 흐르자 하늘은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탄중아루 비치에서의 선셋보다 멈바꿋에서의 선셋이 훨씬 더 아름다웠고 더 깊게 기억에 남는다.


영롱했던 선셋의 붉은 색으로부터 황홀한 기분을 느꼈다.

눈을 뗄 수 없었고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은 절대 다 담아내지 못하는 그 때의 선셋.

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맑은 날에 보면 더욱 아름답다고 한다.

대체 얼마나 더 아름답다는 걸까.


멈바꿋은 이제 땅거미가 지고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았다.

투어 업체에서 준비해 준 저녁 식사를 먹으며 오늘 일정의 하이라이트인 반딧불 투어의 시작을 기다렸다.



저녁 식사 메뉴가 정말 만족스러웠다.

김치를 포함한 다양한 한식 메뉴들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음식 준비의 정성이 한 눈에 보였다.

(지금 여행 10일 차인데 김치가 너무 먹고 싶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보트에 탑승했다.

가이드들은 관광객들을 위해 열심히 반딧불을 유인해 주었다.


처음에는 반딧불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반딧불의 수는 많아졌다.

모든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며 미소지었고, 감동받았고, 기뻐했다.


핸드폰을 켜는 순간 빛으로 인해 반딧불을 보기 어려워진다고 했다.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쉬웠지만

눈은 인간이 가진 최고의 카메라와도 같다고 했다.

열심히 이 순간을 눈에 담아 오래토록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꼬마전구가 켜진 모습과도 같았다. 그 모습은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의 동심을 자극했다.


가이드 님께서 웃으며 말씀하시길,

“무슨 어른들이 더 좋아해.


반딧불이 내 손에 앉았다.

살포시 손을 쥐어 보았다.

뜨겁지 않을까 싶었지만 뜨겁지 않았다.

계속해서 탄성을 지르며 기뻐했고, 이내 반딧불을 날려주며 인사를 건넸다.


하늘에는 별이 수없이 놓여 있었다.

이렇게 많이 놓여진 별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별 역시 마찬가지로, 아무리 사진을 찍어보아도 제대로 담기지 않아 끝내 촬영을 포기했지만

당시 하늘의 모습을 설명하자면

만약, 지금 떠 있는 모든 별들이 땅으로 떨어진다면 절대 피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늘에는 별, 땅에는 반딧불.

행복했다는 말로 모든 감정이 전해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때, 정말 행복했다.



반딧불 투어를 마치고 호스텔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와 연락을 나눴다.

엄마는 항상 젊은 나이에 해외여행을 다니는 나와 같은 젊은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졸업하고서 전공 맞춘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꼭 우리 엄마 국제선 비행기 한 번 태워드려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호스텔에 도착하자 나의 베개 위에 카드 하나가 놓여 있었다.

바로 루카스가 쓴 카드였다.



머리맡에 놓인 선물을 받아본 적,


아마 유치원 꼬맹이 시절,

산타의 존재를 믿으며 머리맡에 양말을 놓고 잠들었던 때가 마지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곳에서 만난 모든 인연들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여행을 통해서 한 걸음 더 성장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안녕, 영완. 다음에 또 만나자. ^^- 루카스


이 날, 나는 쁠라우띠가에 가서 스노쿨링도 하지 못 했고 니모도 보지 못 했지만

의도치 않게 그보다 더 큰 가치와 행복을 얻었다.


쁠라우띠가에 갈 수 없었던 이 날이 선데이 마켓이 열리던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별과 반딧불을 통해 잊고 지낸 동심을 되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여행에서 만난 인연으로부터 베개맡에 놓인 카드를 선물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정말 행운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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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가야 스트리트 야시장에 도착했다.

거리를 걷는 동안에 방콕의 카오산 로드가 머릿속에서 오버랩되었다.

카오산 로드가 젊음과 열정, 뜨거움이 들끓던 곳이었다면

가야 스트리트는 꼬치 굽는 불 냄새가 그윽하고 길거리 공연마저도 잔잔한,

부담스럽지 않게 흥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느낌의 야시장이었다.



우리는 가야 스트리트를 누비며 팔찌를 샀고 맛있는 식사도 함께 했다.


배부른 몸을 이끌고 숙소인 라바@사바 호스텔로 돌아온 우리는

식탁에 한데 모여 앉아 입가심으로 야시장에서 사 온 사탕수수 주스를 한 컵씩 나눠 마셨다.

생각해보니 식탁에 앉아서 사람들의 눈을 보며 대화를 나눈 것이 꽤나 오래 전의 일이었다.



직장생활 시절,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항상 불 꺼진 거실이 나를 반겼다.

나는 일주일에 절반 이상을 편의점에서 산 인스턴트 식품을 먹으며 저녁 끼니를 때웠고,

<한 끼 줍쇼>와 같이 가족끼리 식사하는 모습이 등장하는 방송을 보면서 외로움을 달랬다.

 

우리는 자라 온 나라, 그리고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지

Good Night.” 인사를 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 순간,

우리는 가족이었다.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2019.08.03

D+2

기적의 연속


아침이 밝았.

 

테라스로부터 보이는 탁 트인 뷰와 화창한 날씨는

아침부터 나의 여행 감성을 애타게 간지럽혔다.



나는 식탁에 앉아 조식을 먹었다.

잼이 네 개나 구비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블루베리 맛 잼이 제일 맛있었다.



오늘 나는 바이크를 렌트해서 블루 모스크와 핑크 모스크에 다녀올 예정이다.

면허를 딴 이후 한국에서 단 한 번도 운전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조금 걱정이 됐지만

두근대는 마음이 그보다 훨씬 더 컸다.



고고 사바 스쿠터 렌탈샵에 도착했다.

어제 내가 환전을 했던 위즈마 메르데카의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고고 사바 바이크 렌트 [1DAY/1인] 55링깃(약 15,000원) / 2019.08 기준 (보증금 200링깃)

1DAY : 렌트 시작 시간으로부터 24시간

ex) 대여시각 : 2019.08.02 AM10:30, 반납시각 : 2019.08.03 AM10:30

만약, 1DAY를 렌트해도 당일 반납을 원하면 폐점 시간인 저녁 7시 전까지 고고 사바로 돌아와 바이크를 반납해야 함.



고고 사바에서는 국제면허증 없이 한국 면허증만 소유하고 있어도 렌트가 가능하다.

그래도 나는 혹시나 하는 상황으로부터 대비하고자 국제면허증을 지참했지만

직원은 나의 한국 면허증만 확인하고 바이크를 렌트해 주었다.



신나는 분위기의 팝송을 크게 틀어놓고 코타키나발루 시내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크게 볼륨 키워놓고 자유롭게 운전할 짬은 아닌가 보다.

질주 시작 10분 만에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노래를 끄고 운전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구글 맵을 켜고 보니 내가 지금 있는 이 곳은 사바 주 청사로 이용 중인 건물, 툰 무스타파 타워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외관만 보면 호텔로 오해받기 좋은 건물이다.



한 15분 정도를 달렸을까.

목적지인 사바 주립 대학교, 한국에서는 소위 핑크 모스크라 불려지는 UMS 모스크에 도착했다.

UMS 모스크는 대학 건물인 만큼 모든 장소가 캠퍼스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 곳에서, 또 한 번 거짓말보다 더 거짓말같은 상황이 일어났다.



어제 나와 일본어로 대화를 이어가면서

코타키나발루에서의 첫 식사를 함께한 중국인 관광객을 이 곳의 입구에서 다시 만났다.


누군가 나를 두고 장난을 치는 것만 같았다.

어제 탄중아루 해변에서 같은 호스텔의 투숙객인 쿠알라룸푸르 친구를 만난 것에 이어

또 한 번, 우연으로부터 온 기적의 만남이 실현되었다.


이러한 만남이 이어질 확률은 대체 얼마나 되는 걸까.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놀랍고 신기하다.



UMS 모스크 입장료 [1인] 5링깃(약 1,500원) / 2019.08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