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의문의 존재가 등장한다. 시한부 삶 속에서 나의 하루 수명을 연장해 주는 대신 한 가지를 세상에서 없애 주겠다는 다소 기괴스러운 조건을 제안한다. 나도 모르게 내 자신을 영화에 대입해 보았다. 나의 눈에는 영화가 재생되고 있는 노트북 옆에서 열심히 불을 밝히고 있는 향초가 눈에 들어왔다. 이내 영화 속에서 의문의 존재가 말을 이어간다.

 

 “세상에 없어져도 그만인 것은 널렸어. 트럼프 카드? 루빅스 큐브?”

 

 묵묵히 영화에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향초 정도는 세상에서 없어져 버려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의문의 존재가 제안했던 사라짐은 사라지는 존재와 이어지는 추억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이었고 그것을 알게 되자 나는 향초가 사라져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한 내 자신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전화가 사라졌을 때에는 항상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로 교감했던 첫사랑의 추억이 전화와 함께 사라졌고, 영화가 사라졌을 때에는 비디오 갤러리에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을 추천해 주는 친구와의 추억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주인공의 수명은 하루씩 연장되었다. 이러한 패턴의 전개가 반복되자 나는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을 지키느냐, 나의 목숨을 지키느냐. 이 두 가지의 명제를 두고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의문의 존재는 주인공에게 자신의 목숨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말했고, 주인공도 그 말에는 공감하는 듯 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 어떤 것이 사라진다고 해도 큰 쇼크는 받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의문의 존재가 제안한 대상들이 사라질 때마다 주인공은 점점 패닉 상태에 빠져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 했다. 이번에는 무엇이 사라지게 될까. 나는 의문의 존재가 어떤 것을 사라지게 할지에 대한 궁금함보다 무엇의 사라짐으로 인해 같이 사라질 예상치 못했던 어느 추억이 얼마나 주인공을 더욱 괴롭게 만들지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말았다. 그 순간, 차라리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꼭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해야만 하는 걸까. 무엇을 얻기 위해선 무엇을 잃어야만 한다는 대사가 모든 상황에 해당되지는 않는 것 같으면서도 뾰족한 예시를 들기에는 딱히 떠오르는 소재가 없어서 답답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형언하기 어려운 먹먹함과 따뜻함이 동시에 떠올라 계속해서 내 눈 앞에 이상한 신기루를 일게 하였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하룻밤의 꿈과도 같았다.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어젯밤 꾸었던 꿈의 모든 서사가 떠오르진 않아도 꿈속에선 확실한 여정이 펼쳐졌던 것처럼 말이다. 만약 몽환이라는 명사를 동사화할 수 있다면 꼭 이 영화를 근거로 해야만 되겠다.


 주인공의 엄마는 사람이 고양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고 고양이가 사람의 곁에 있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엄마는 생을 마감하기 전주인공에게 양배추(고양이 이름)를 잘 키워달라고 부탁하기보다 양배추에게 아들의 곁에 있어 달라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사라짐을 토대로 느낀 것이 있었는지 주인공은 의문의 존재가 고양이를 없애겠다고 할 때, 자신의 남은 수명을 인지하고 있으니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죽을 수 있다며 고양이를 없애지 말아달라고 했다고양이가 사라진다는 것은 죽기 직전까지도 아들을 위하는 일에 힘쓰고 싶었던 나의 엄마가 사라지는 것과도 같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의문의 존재가 영화를 없애겠다고 말할 때는 주인공이 갈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의문의 존재는 영화가 사라진다고 해서 누가 죽는 것도 아니고, 예술이 물과 음식보다 중요하냐며 주인공을 다그쳤다. 끝내 주인공은 목숨의 중요함에 설득되어 영화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영화가 사라지자 주인공이 있던 세상에서 영화와 연결된 관계들에는 절망이 초래되고 말았다. 주인공의 친구 츠타야, 그의 눈물이 그것을 대변했다. 주인공에게 어울리는 영화를 찾아주는 것.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며 눈물을 쏟았다. 그렇다. 무언가가 사라진다고 해서 세상의 전체가 역변하진 않는다. 그러나 전체가 아닌 내가 있던 세상에서 그것과 이어진 관계들에는 분명한 다름이 발생했다. 나중에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때에도 세상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늘 그렇듯 아침이 되면 해가 뜰 테고, 저녁이 되면 달이 뜰 테다. 그러나 내가 존재했던 세상만큼은 이 세상의 전체와 다르리라 믿고 싶다.(주인공의 내레이션에도 등장하는 구절이다.)

 

 일본 영화는 이렇게 괴상한 타이틀과 주제를 가지고 사람의 감정을 깊게 파고 들어오는 점에서 아주 강세를 보인다. 이것도 재주다. 영화가 끝나자 나는 향초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향초가 사라지면 나에게 생일 선물로 향초를 선물했던 민지가 사라질 테고, 민지가 사라져 버리면 우진이까지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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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와 순두부

내얘기 2019. 3. 3. 10:24

 한 동료의 연차와 예약 없이 당일로 내원한 환자들의 과밀로 인해 오버타임이 나고 말았다. 지칠 대로 지쳐서 물미역이 되어 있는 그 날의 나에게 사수는 같이 퇴근을 하자고 말했다. 이내 사수는 내게 약속이 있는 것이 아니면 같이 저녁을 먹고 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사수는 순두부를 맛있게 하는 식당을 알고 있다며 강남역 센트럴에비뉴의 지하상가로 나를 안내했고, 그렇게 나는 사수와 처음으로 사석에서의 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다.

 

 대화의 화두는 나의 퇴사였다. 나는 학교 복학과 어학 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을 빌미로 근 몇 달간 퇴사를 고민했다. 그러다 몇 주 전, 상사와 실업급여에 대한 내용을 나누던 중, 그것을 왜 궁금해 하냐는 상사의 질문에 나는 앞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이유로 4월 말까지만 현재의 직장에서 근무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밝히게 되었다.

 

 이 날, 나의 사수는 술이 몇 잔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내가 받아들이기엔 심히 과분했던 말들을 수도 없이 건넸다. 사수는 내가 퇴사를 한 이후 새로운 사람이 채용되었을 때, 새로운 사람에게 이 직장에서의 업무들을 새로 가르쳐야 하는 부담보다 정들었던 사람이 떠난다는 현실이 더 부담이라며 나의 퇴사를 말렸다. 그러면서도 나중에 가령 어학 시험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얻게 되었을 때, 결과의 이유가 직장이 되어 버리면 나에게 미안한 제안을 건네 버린 것이 되니 내가 퇴사를 하게 되어도 사수는 그것을 수긍하면서 뒤에서 묵묵히 나의 앞날을 응원해 주는 게 자신의 역할인 것 같다며 빈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지금까지 나는 기존의 동료들이 이루어 놓은 끈끈한 팀워크의 울타리에서 한 명이 탈퇴하려고 할 때, 그저 겉으로 보이는 이탈과 중단이라는 이미지에 얽매여 항상 불화, 퇴출과 같이 부정적인 이유로만 연관지어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나의 퇴사를 두고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사수를 보며 당장의 끝이 영원한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탈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 동료들로부터 응원과 격려를 받으며 끝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행복하게 또는 강하게 만들어 주는지까지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식사만으로 이 시간을 끝맺고 싶지 않아서 사수에게 장소를 옮겨 2차를 이어가자고 권했다. 사수는 내게 전역 후의 금연은 잘 지키고 있냐며, 친구들 만나서 술 마실 때 한 번 쯤은 담배를 핀 적이 있지 않냐며 은밀하게 유도심문을 건넸다. 나는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되어서 술이 들어갈 때는 가끔 한 두 대씩 피는 편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사수는 반전있는 대답에 놀랐는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갖고 있던 담배를 내게 건넸다.

 


<에필로그>


 사수와 순두부 식당에 막 들어갔을 즈음, 사수가 어머니와 통화를 나눌 때였다.


 “엄마, 저 밥 먹고 들어갈게요.”

 “누구랑 먹는데?”

 “, 우리 막내랑 같이 저녁 먹기로 해서.”

 

 나는 막내라는 단어가 너무 좋다. 막내 포지션은 몇 년 만이다.

 

 입사 초기, 부족한 일처리에 대한 꾸지람을 들을 때는 막내라는 이유로 더 호되게 혼나기도 했다.

그러나 동료들과 가까워지고 일처리를 인정받고 난 이후에는 밤새 클럽 갔다가 술 덜 깨서 출근해도

막내라는 이유로 그럴 때다.”, 어린 거 언제 까지 가나 봐라.” 소리 듣는다.

가끔 대담한 말장난을 건네기라도 하면 어디 여섯 살 차이 나는 누나한테!”라며 팔뚝 스매싱 맞기도 한다.

 

 예전에는 하고 싶지 않아서, 이 일에 대한 자신이 서지 않아서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계속해서 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퇴사라는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어서 가슴 한 쪽이 아려오고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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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중앙고등학교

 


 중앙고등학교의 교정.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과 같은 고딕 양식 건물이었다.

나는 이 곳에서 히잡을 쓴 외국인 여행객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나는 그들 덕분에 이 곳이 드라마 <도깨비>와 여자친구의 <시간을 달려서> 뮤직비디오의 촬영지였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쩐지 낯이 익다 했다.

2. 서울역



하루가 다르게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느끼며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여행러로서 역과 공항의 배경은 항상 파란 하늘이어야 아름다운 풍경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역 고가도로가 철거된 자리에는 서울로 7017이 있었다.

보행길로 다시 태어난 이 곳, 여름밤에 오면 무척 아름다울 것 같았다.

이 곳에서 나는 외국인 가족으로부터 사진 촬영을 부탁받았다.

여행자의 입장에서 이 부탁이 수락될 때, 나는 얼마나 기분이 짜릿한지를 알기 때문에 흔쾌히 부탁을 들어 주었다.



이 가족이 훗날 서울을 기억할 때, 그 기억 속에 내가 조금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영어 울렁증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 왔냐는 흔한 질문조차 건네지 못했다.

정작 그들은 나에게 “Where are you from?”을 건넸는데 말이다.



3.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



홀로 마포대교를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안녕?” 이란 가장 가볍게 건넬 수 있는 말이

가장 큰 위로와 반가움이 된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마냥 행복하게 웃고 싶었다.


 


비록 그린 눈썹이지만 내 눈썹 잘생겼다고 생각해.


-


성인이 된 이후, 나는 항상 서울을 벗어나고 싶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줄곧 자라왔음에도

나는 도시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서울이 가끔씩 질리곤 했다.


그런데 답답한 가슴을 안고 부담없이 한강으로 향할 수 있는 곳이 서울이라는 것을 실감한 이 날,

다시는 내가 자라온, 내가 살고 있는 이 서울을 질책하지 않기로 했다.


안국역에서 서울역으로, 서울역에서 마포대교를 목적지로 정하고 서울을 누비는 유랑자가 있을까.

아마 2019년에는 내가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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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확실하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항상 강원도는 왠지 모르게 낯설었다.

그런 면에 이끌려 기대된 여행은 또 처음이었다.

20181231

그 날은 강릉을 눈에 담아 오기로 했다.

 

20181230일 오후 1050

이번 여행은 잔챙이 시절부터 알고 지내온 영근이와 함께 떠났다.

청량리역에서 만난 우린 서둘러 플랫폼으로 내려가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

자정을 넘겨 새벽까지 달리는 기차는 생애 처음이었다.

처음이 주는 설렘은 언제 느껴도 벅차오르고 짜릿하다.


 


서울살이만 스무 해.

수도권의 지명이 익숙한 나에게

영월과도 같은 낯선 지명은 나를 너무나 두근거리게 해서

기차에서 쪽잠조차 제대로 청할 수 없게 몇 번이나 괴롭혔다.

 

새벽 5.

몸을 녹이기 위해 카페로 향했다.

카페는 해돋이를 보기 위한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주문했던 음료는 한 시간이나 기다리고 나서야 받을 수 있었다.

 

이 정도의 대기면 주문하지 않고 테이블에 앉아만 있어도 되겠네.”


 

 

새벽 620.

출출하고 허기지기 시작했다.

카페를 나와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겨 초당순두부를 먹었다.

평소에 빨간 국물을 좋아하는 나지만 원조를 맛보고자 일부러 하얀 국물의 순두부를 주문했다.

 

몹쓸 짓이었다.

자고로 국물은 빨개야 진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740분에 해가 뜬다는 소식에 우리는 20분부터 정동진 바닷가에 도착해서 일출만을 기다렸다.

새해 첫 일출이 아닌데도 해돋이를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멀리서 보였던 바닷가의 인파는 다슬기가 모여 있는 모습과도 같아 웃음이 났다.


모래사장 위에서 일출을 기다리는데 높게 올라온 파도 때문에 신발이 젖고 말았다.

물에서 놀다가 신발이 젖어본 적은 십 년도 더 됐지만

신발은 언제 젖어도 허탈하고 당황스럽다.

 

얼어버릴 것만 같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해돋이는 놓치지 않았다.

뜨겁고 영롱하게한편으로는 힘차게 솟아오르는 일출의 모습은

웅장한 감동과 강한 울림을 느끼게 해 절로 나를 경건하게 만들었다.


 

 

 

단연 동해바다였다.

푸른 정도를 넘어서 새파랗게 탁 트인 동해바다의 전경은

몇 병의 사이다를 마셨을 때의 시원함보다 더한 짜릿함과 해방감을 가져다 주었다.

사실은 이 비유보다 더한 해방감을 느꼈지만

그 당시의 감정을 대변하는 표현을 찾을 시간에 직접 동해바다를 보러 가는 것이 훨씬 빠를 지도 모르겠다.

 


줄 서서 먹는 음식.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장칼국수는 달랐다.

고추장 맛과 된장 맛을 둘 다 내는 국물의 맛이 굉장히 오묘했다.

동짓날의 팥죽을 대신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묵 고로케호떡 아이스크림,

그리고 닭강정까지.

나는 맛없는 음식은 절대 먹지 않는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맛없는 음식이 없다.


 


바다에서 놀고 싶다면 남해로,

바다를 눈에 담고 싶다면 동해로 가라고 말하고 싶다.

정동진에서 수많은 바다의 모습을 눈에 담았음에도

안목해변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왜 이 해변에 커피거리가 들어섰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땅거미 진 바다,

버스킹 청년,

폭죽놀이에 빠져 있는 어린이,

쌀쌀한 바닷바람,

화려한 네온사인.

 

10분만 더, 5분만 더,

서울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행복한 이 순간이 서울로 인해 얼룩지는 것만 같았다.


 


24시간 만에 우리는 서울로 돌아왔다.

우리는 턱없이 짧은 시간에 탁 트인 자연과 호흡하고 행복의 절정을 느꼈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의 느낌은 시간 여행을 다녀온 것과도 같았다.

 

201811

나는 안양의 일출 아래서 전우들과 결의를 굳게 다지며 새해를 시작했다.

이내 3월에 전역을 했고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앞만 보며 10개월을 달려왔다.


안양에서의 군 생활, 치과에서의 직장생활, 태국 여름휴가, 벽제역 뚜벅이여행, 일본 여행…


그렇게 숨가쁘게 달려온 2018년의 끝은 강릉으로 맺었다.

 

나에게 있어서 이렇게 기승전결이 뚜렷한 해는 2018년이 유일하며 앞으로도 전무 후무할 테다.



Episode

- 멋 좀 부린다고 롱패딩 포기하고 무스탕 입고 떠났다가 매서운 바닷바람에 호되게 당했다.

- 해돋이 보다가 파도 때문에 신발이 젖었다. 기차역 화장실에서 휴지로 발가락 꽁꽁 싸매고 양말 새로 하나 사서 신고 돌아다녔다.

- 한 번은 또 부채길을 걷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파도가 우릴 덮쳤다. 얼굴, 옷 다 젖었다.  2019년 대박 나려나보다.

- 정동진에서 택시가 도저히 잡히지 않아서 쩔쩔매고 있는 도중에 한 아저씨께서 히치하이킹을 자처해 주셨다.

- 동해바다의 여운을 표현하고 싶은데 그에 걸맞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독서 해야겠다.

- 새파란 바다를 보다 보니 태국에서의 패러세일링이 생각났다. 지나간 여름의 추억이 너무 아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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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이 밝았다. 후쿠오카의 아침은 3년 전과 똑같이 평화로웠다. 잠에서 깬 나는 침대에서 저벅저벅 내려와 1층의 라운지에서 조식을 먹었다. 조식 또한 3년 전과 같았다. 3년 전, 나는 유후인으로 떠나기 전,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되는 토스트 조식을 먹은 적이 있었다. 시간의 오버랩을 실감하면서 3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함께 같은 공간에 있는 듯한 기분탓을 느끼며 먹었던 조식 토스트. 괜히 3년 전의 내가 나의 옆자리에 있는 것 같이 느껴졌고 그렇게 느껴진 3년 전의 나는 세 살 어린 동생같았다. 조식을 먹으며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후쿠오카의 일상을 눈에 담았다. 노란 모자 아이들은 웃고 떠들며 친구들과 함께 학교로 향하고 있었고, 샐러리맨들은 검은 가방과 통화 중인 휴대전화를 각각 손에 쥐고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조식을 마친 나는 라운지에 놓여 있던 카드에 방명록을 작성했다. 다 적은 방명록은 라운지 벽의 한 켠에 놓여 있던 게시판 중앙에 붙이며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에서의 1박을 인증했다.


 

▶ 3년 전 게스트하우스 라운지의 조식 배식대

 창밖을 바라보며 먹었던 토스트와 홍차. 이 날의 홍차를 계기로 나는 모든 여행의 아침 때마다 홍차를 마시게 되었다.


 

 

▶ 3년이 지난 지금, 라운지의 조식 배식대에는 건포도가 박힌 모닝빵과 블루베리 잼이 추가되었다.

 모든 여행의 아침에서 그랬듯 홍차는 빠지지 않았고 여유롭게 토스트를 먹으며 창밖으로 보이는 후쿠오카의 아침을 고이 눈에 담았다.

 라운지의 벽 한 면에는 수많은 여행객들이 각자의 필체로 작성한 개성있는 방명록 카드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 여행객들이 남긴 수많은 발자취에 나의 흔적도 살포시 남겨놓았다.


 조식을 마친 나는 체크아웃을 위해 방으로 올라와 침대와 짐을 정리했다. 빠르게 정리를 마친 나는 프론트 데스크로 내려와 공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짐 보관을 부탁하고 자전거를 렌탈했다.(개인적인 부탁이 아닌 원래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되는 짐 보관 서비스다.) 사실은 교통 패스권을 구입했던 여행사 여행박사의 라운지가 있는 캐널시티로 가서 무료 자전거를 렌탈할 예정이었지만 짧은 여행 일정과 게스트하우스에서도 자전거 렌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캐널시티로 이동하는 시간을 없애고 게스트하우스의 자전거를 렌탈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자전거를 주행하는 라이딩 영상을 담기 위해 고릴라 삼각대에 미러리스 카메라를 결합하여 자전거에 고정했다. 목적지는 자전거로 20분 거리에 위치한 오호리 공원이다. 자전거를 렌탈해 준 직원 사쿠라는 오호리 공원으로 향하는 거리가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어 보는 재미가 더해질 거라 말했다.


 

▶ 짐 정리를 마치고 도미토리룸을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쓰레기통에는 내가 버린 쓰레기들로 꽉차 있다.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에서 빌린 200엔 자전거

 

 자전거를 타고 오랜만에 일본 거리를 누볐다. 귀에 담기는 까마귀 우는 소리와 횡단보도를 건널 때 들리는 차임 벨 소리와 안내 음성. 사소하게 다른 한국과의 차이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후쿠오카의 풍경을 오감으로 느끼며 목적지인 오호리 공원에 가까워져 갈 즈음, 주변 건물과 거리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쿠라의 말대로 오호리 공원으로 향하는 길거리는 일반적인 일본의 거리와 많이 달랐다. 거리는 묘하게 서구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정갈한 일본 특유의 분위기와 감성은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흩날리는 낙엽까지. 날씨는 화창했던 전날과 달리 다소 쌀쌀했지만 이 거리의 매력에 심취하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나는 오호리 공원에 도착해 있었다.


  

▶ 일본에서의 자전거 라이딩 영상을 담기 위해 미러리스 카메라가 결합된 고릴라 삼각대를 단단히 핸들에 고정시켰다.

 오호리 공원에 가까워지자 서서히 길거리의 풍경은 서구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오호리 공원의 자전거 도로를 달리며 순간을 즐기고 있는 도중, 나는 유모차를 끌고 있는 한 남성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그는 혼신을 다해 몇 번이나 연속 촬영 기능으로 나를 찍어 주더니 이 중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르라고 했다. 가볍게 한 두 장의 사진 정도만 찍고 싶었는데 너무나 열심히 찍어 주었던 그의 정성에 괜히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나는 사진 촬영을 계기로 그에게 불편하지 않다면 공원에서 아이와 함께 셋이 시간을 보내도 괜찮은지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30분 뒤, 공원의 뒷문에서 아내와 만나기로 했다며 흔쾌히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여덟 번째 처음’ _ 키와미야 함바그 먹기


 오호리 공원에서 하카타로 돌아온 나는 자전거를 반납하고 점심 식사를 하러 키와미야 함바그로 향했다. 사실 키와미야 함바그는 이제 한국에서도 흔히 먹을 수 있는 후쿠오카의 명물이 되었다. 그러나 3년 전 후쿠오카에 왔을 때, 몇 번이나 키와미야 함바그 앞을 지나면서도 길게 서있는 줄에 놀라 끝내 맛보지도 못하고 냄새만 맡은 채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 큰 한이 된 나는 이번 여행을 빌미로 꼭 후쿠오카 본토에서의 키와미야 함바그를 맛보고 한국에 돌아오고 싶었다.

 

 나는 오픈 시간인 11시에 맞춰 줄을 서기 위해 서둘러 자전거를 반납하고 키와미야 함바그에 왔지만 의도치 않게 시간은 1시간이나 지체되어 모두가 점심을 먹고자 하는 12시에 키와미야 함바그에 도착하고 말았다. 그래도 나는 가게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 순간 펼쳐진 한국인 관광객들과의 눈치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덕분에 같은 횡단보도를 건넌 한국인들의 사이에서는 선두로 대기 줄에 합류하게 되었다. 직원은 대기 중인 손님들에게 미리 메뉴판을 보여주며 메뉴를 고르게 했다. 고민도 없이 나는 라지 사이즈의 햄버그 스테이크를 주문했고 세트를 추가해서 사이드로 나오는 밥과 샐러드, 된장국을 무한리필로 먹었다. , 키와미야 함바그에 어울린다는 알코올 음료 키와미야 소다까지 같이 주문해서 제대로 일본에서의 여덟 번째 처음을 실현했다.


 

 

▶ 후쿠오카의 소문난 맛집 키와미야 함바그

 함바그를 먹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나는 15분 정도를 기다리고 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먹음직스러운 키와미야 함바그의 라지 세트. 함바그를 구울 수 있는 돌판은 열기가 떨어지면 몇 번이나 새로 달궈진 돌판으로 교체를 해 주신다.

▶ 빈 그릇 인증샷. 아주 깔끔하게 키와미야 함바그 먹방을 끝마쳤다.

 

 이 순간, 나는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켜서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키와미야 함바그 먹방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협소한 가게 내부와 분주한 직원들의 움직임 때문에 라이브 방송은 5분 만에 종료를 하게 되었다. 그냥 나는 마음 편하게 카메라를 끄고 식사에 집중하기로 했다. 키와미야 함바그의 맛은 나의 엄지를 절로 치켜들게끔 했고 몇 번이나 감탄사를 내뱉으며 먹게 할 정도로 맛있었고 맛있었다. 뜨겁게 달궈진 돌판 위에서 익혀지고 있는 함바그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구워지는 소리 또한 일품이었다. 한 입의 함바그에 촉촉이 스며든 육즙은 말할 것도 없고, 고슬고슬한 쌀밥과 한 젓가락의 샐러드는 키와미야 함바그와 최고의 궁합을 자랑했다.

 

일곱 번째 처음’ _ 셀프 스냅촬영하기 <Day>


 키와미야 함바그로 행복한 점심 식사를 마친 나는 공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낮을 배경으로 하는 셀프 스냅촬영을 진행하기로 했다. 나는 관광객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후쿠오카의 리얼한 로케이션을 찾아내기 위해 가 보지 않은 후쿠오카의 지하철역에 무작위로 내리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대담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건 나의 일본어 실력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믿는 도끼에 제대로 발등을 찍히고 말았다. 지하철 노선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탓에 내가 소지하고 있는 교통 패스권으로는 갈 수 없는 지하철역까지 오고 말아 버렸다. 별도로 금액을 지불하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문제는 하카타로 돌아갈 시간을 맞추는 것이 어려워지고 말았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늘은 점점 더 까맣게 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이내 가는 빗방울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당황하지 않을 거라 자신했지만 당황을 하고 말았다. 아니, 당황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임시방편으로 편의점에 들어가 비를 피하기로 했다. 그 와중에도 계란 샌드위치와 이로하스는 포기할 수 없었다.


 

 

▶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탑승한 지하철. 종점에 가까워져서인지 열차 안에는 승객들이 거의 없었다.

 빈 열차 안에서 맞은편 의자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몇 번이나 찍었던 셀프 스냅

 교통 패스권을 소지하고 있었음에도 패스권이 허용하지 않는 범위의 전철역까지 와 버려서 추가로 표를 구매해야 했다.

▶ 비를 피하기 위해 들어갔던 편의점에서 구매한 계란 샌드위치와 복숭아 맛 이로하스

 

 생각보다 비는 금세 그쳤다. 그러나 나에게 우산은 없고 지하철을 잘못 타며 허비해 버린 시간과 언제 다시 비가 내릴지 모를 불안함에 셀프 스냅촬영은 전날 밤의 촬영으로 만족하고 하카타로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온 나는 공항으로 향하기까지 애매하게 남아 있던 1시간 동안 사쿠라와 담소를 나누었다. 2주 후의 한국 여행을 앞두고 있는 사쿠라는 내게 서울 여행 추천지를 물어보았다. 나는 서울에서만 20년을 넘게 살아왔지만 외국인이 만족할 만한 서울의 명소를 추천해 주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사쿠라의 질문은 단순했지만 어딘가 전공 과제와도 같이 중요한 핵심을 내재하고 있었다. 끝내 나는 과거에 친구들과 한복을 입고 경복궁에서 스냅촬영을 했던 기억을 떠올려 경복궁을 소개해 주었다. 그러자 사쿠라는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더니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전통미를 담고 있는 북촌에 가 보고 싶었다며 북촌에 갈 때 경복궁을 같이 들르겠다고 말했다. 사쿠라는 한강 공원에서 열리는 밤도깨비 야시장에도 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올 해의 밤도깨비 야시장은 기간이 종료되어 나는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고 전했다.


내가 한국에 돌아온 이후 한국으로 여행을 온 사쿠라는 내가 알려준 경복궁에 다녀 왔다며 연락을 주었다.

그녀는 경복궁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감동이었다며 나의 추천 스팟을 만족해 주었다.


 한국 여행에 대한 대화가 끝나자 이제는 내가 사쿠라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내가 진심으로 궁금했던 것은 바로 K-POP 인기의 과장되지 않는 리얼한 실태였다. 일본에 진출한 수많은 한국의 아이돌들이 과연 정말 일본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일까. 한국 방송에서 보도되는 뉴스 헤드라인과 기사 타이틀을 보면 모든 가수들에게 최초’, ‘매진을 비롯한 일본 열도 열풍’, ‘오리콘 차트 1’, ‘성공적인 데뷔’, ‘최대 규모의 공연와 같은 수식어가 붙곤 한다. 이것은 과장일까, 진실일까. 나는 사쿠라에게 솔직한 대답을 부탁했다.



 영완 

 “8년 전, 일본에 카라와 소녀시대가 데뷔를 하며 일본 내에서 국민적인 인지도를 얻으며 성공했다고 한다. 당시 나는 중학생이었고 일본어가 능숙하지 않아서 일본 현지에서의 실제 인기를 전해 들을 수 없었다. 또, 카라와 소녀시대가 일본에서 성공한 이후 수많은 한국의 아이돌 그룹이 일본 데뷔를 시도했다. 한국에서는 모든 아이돌 그룹이 일본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고 보도한다. 나는 한국인이지만 그런 보도에 대해 솔직히 의문이 든다. 사쿠라는 많은 한국 아이돌 그룹이 일본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하는가?


 사쿠라 

 “카라와 소녀시대는 진짜였다. 카라가 제일 먼저 일본에 데뷔했는데 그 때의 붐은 정말 최고였다. 그 이후 소녀시대가 데뷔를 했는데 카라의 영향이 소녀시대에도 끼쳐 두 팀 다 절정의 인기를 보였다. 나는 카라와 소녀시대의 일본 곡을 알고 있다. 최근에는 트와이스가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데 나는 트와이스의 곡을 들어본 적이 없다. 트와이스가 아직 카라와 소녀시대만큼의 성공을 거둔 건 아닌 것 같고 점점 인기를 얻어가며 성장하고 있는 중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K-POP에 열광하는 일부 마니아들은 트와이스를 포함한 수많은 아이돌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영완

 “개인적으로 일본어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카라의 전 멤버 강지영의 현지 인기와 일본어 실력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강지영은 나의 롤모델이다.


 사쿠라

 “지영의 일본 활동이 활발하지는 않다. 그러나 카라가 워낙 대단했기 때문에 지영의 신곡이 발매되거나 드라마 출연이 결정되면 뉴스에 헤드라인으로 꼭 보도가 된다. 지영의 일본어는 일본인이 들어도 완벽하다. 마치 김영아(일본에서 활동 중인 한국 모델, 과거 MBC ‘논스톱출연)와 같다. 카라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지영을 일본인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사쿠라와의 수다가 길게 이어지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공항으로 향할 시간과 가까워져 있었다. 나는 미셸과 사쿠라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짧았던 후쿠오카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공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항으로 향하는 내내 나는 비행기가 지연되기를 바랐다. 나는 단 한 시간만이라도 일본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을 늘리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순간들을 눈과 머리에 담고 싶었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다. 비행기는 예정보다 45분이나 지연되었다. 수하물 수속과 일본 출국 수속까지 마친 나는 탑승동으로 들어와 일본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마음껏 즐겼다. 그러던 중, 또 한 번의 지연 공지가 내려졌다. 비행기는 45분 지연에서 30분이 더 지연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탑승 게이트까지 변경되어 인천 행 비행기에 탑승할 승객들은 서둘러 다른 게이트로 이동해 달라고 안내방송이 몇 번이나 송출되었다. 덕분에 나는 공항을 더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저녁 645분에 탑승을 시작할 인천 행 비행기는 8시가 되서야 탑승을 시작했고 탑승을 하고 나서도 관제탑으로부터 이륙 대기를 지시받아 활주로에서 15분간 다른 비행기의 이륙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렇게 이륙의 지체가 좋았던 적은 없었다. 저녁 820, 비행기는 드디어 하늘길에 올랐다.


 

 

▶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확인된 6시 45분 인천 행 비행기의 지연 공지. 속으로 대박을 몇 번이나 외쳤다.

 동료인 미영 선생님이 출국 전 날, 생일선물이라며 자신의 신용카드로 만 원대의 식사를 한 끼를 하고 오라고 해 주셨다.

 게이트가 열릴 때까지 명란이 들어간 삼각김밥과 맥주를 마시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 탑승이 시작된 인천 행 비행기. 밤의 활주로에 있는 비행기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워 가히 판타지스럽기까지 했다.

 

 1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비행기는 인천에 무사히 착륙했다. 비행기가 인천에 도착하자마자 창가에는 무섭게 빗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나중에 친구들을 통해 듣기를, 내가 일본에 있는 이틀 동안 서울에는 계속 강한 비가 내렸다고 한다.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온 나는 리무진 공항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캐리어를 풀고 짐을 정리하고 나니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출근까지는 앞으로 7시간 가량 남아있는 상태.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짐 정리는 나중으로 미루고 서둘러 잠자리를 청했다. 다음 날, 짧은 만큼 알찼던 여행 일정 탓에 다소 피곤한 몸으로 업무에 임하게 되었지만 그만큼 강렬했던 일본에서의 기억들은 피로보다 더 큰 활력이 되어 주어 큰 탈 없이 업무를 마칠 수 있게 해 주었다.


 

▶ 인천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창가에는 빗방울이 거세게 맺혔다.

 여행의 일정이 짧아 선물을 줄 대상들을 가족과 동료들로만 한정했는데 캐리어를 열고 보니 선물들은 나의 짐 못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이번 여행은 지금껏 떠났던 여행 중에서 가장 짧은 일정이었고 가장 적은 비용으로 다녀 온 여행이었다. 그러나 오로지 나 자신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섬세한 테마들로 여행을 가득 채운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본에서 맞은 스물 두 번째 생일, 두 번째 후쿠오카, 그리고 여덟 개의 처음’. 처음이 사람에게 가져다 주는 순수함과 설렘을 잊지 않고 싶어졌다. 사람을 순수하게 하면서도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 그것은 유일무이 여행 뿐이다. 나는 이번 생일 여행을 통해 얻은 여행의 순수함을 오랫동안 간직해서 더 많은 나라에 발자국을 남길 것이다. 다음 여행이 또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머지않아 떠날 것은 확실하다. 다음에는 어느 나라에, 어느 도시에 다녀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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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미하노유 온천 옆에는 하카타 포트타워 전망대가 있었다. 3년 전 후쿠오카에 왔을 때, 모모치 해변을 구경하며 들렀던 후쿠오카 타워에서 후쿠오카의 야경을 눈에 담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 집중하고 있는 이번 여행에선 일부러 도시를 내려다보는 일정을 넣지 않았다. 그러나 떡하니 온천 옆에 있던 하카타 포트타워를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으며 막상 도시 전경을 내려다보지 않고 한국에 돌아가자니 못내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여행을 하면서 타워에 오른다는 것은 흔하지만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흔해서 필요하다. 하카타 포트타워는 후쿠오카 타워만큼 웅장하고 거대한 규모의 타워는 아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도시를 내려다보기엔 충분했고, 입장료도 무료인 데다가 사람들도 많이 오가지 않아서 편하게 도시를 조망할 수 있었다.


 

▶ 하카타 포트타워에서 내려다 본 맑은 하늘 아래 후쿠오카

▶▶ 포트타워에서 내려오자 보였던 해질녘 노을 풍경


 하카타 포트타워에서 홀로 후쿠오카를 찾은 한국인 관광객을 만났다. 그는 내게 맞은편에 있는 완간 시장에 들러 초밥을 먹을 것을 권유했다. 완간 시장에서의 초밥은 부두 앞에 있는 시장이라 해산물의 질도 싱싱하고 가격 또한 저렴하여 웬만한 맛집에서 먹는 것보다 만족스러울 것이라 단언했다. 원래 나는 타워에서 내려오자마자 저녁에 열릴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생일파티를 위해 서둘러 돈키호테로 향해 갖가지 맥주들을 살 예정이었는데 그의 말 한 마디에 계획에도 없던 완간 시장에 들르게 되었다. 완간 시장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보였던 초밥의 행렬은 나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눈에 보이는 대로 모든 초밥을 골라 담아 맛을 보고 싶었지만 이번 여행의 테마는 처음이다. 그동안 많은 순간을 함께 했던 초밥에 이번 여행을 과하게 소비할 수는 없었다. 고민 끝에 나는 제일 맛있어 보이는 초밥 여섯 개와 한정 세일로 판매 중이었던 참치뱃살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계산했다. 계산을 마친 나는 바로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초밥 먹방을 시작했다. 말은 필요치 않았다. 타워가 여행에 흔하지만 필요했듯이, 초밥 또한 일본 여행에선 흔하지만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참치 뱃살의 고소함과 부드러운 식감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초밥 위 사시미의 두께와 쫄깃한 식감도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맛집에서 먹어본 초밥의 퀄리티와는 확연히 달랐다.


 

▶ 완간시장으로 들어오자마자 보였던 골라담는 97엔 초밥 뷔페

▶▶ 장어의 길이와 사시미의 두께, 그리고 참치뱃살의 고소함과 식감까지. 작지만 알찼던 내가 고른 초밥 세트

 

 온천과 초밥 미식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나는 게스트하우스의 주방에서 어묵 파티를 준비 중이던 미셸과 마주했다. 나는 미셸에게 돈키호테 면세점에 들러 이따가 파티 때 마실 맥주를 사서 돌아오겠다고 했다. 미셸은 알겠다며 8시부터 파티가 시작될 예정이니 늦지 않게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달라고 말했다. 지하철을 타고 돈키호테 면세점에 도착한 나는 맥주를 포함한 가족들과 동료들에게 줄 선물을 쇼핑했다.

 

 올 해 쉰을 넘긴 고지식한 나의 아빠는 처음으로 나에게 아들, 일본에서 파는 무슨 카레가 있대. 카톡으로 사진 보내줄 테니깐 그거 있으면 몇 개 사 와.”라고 선물을 요청하셨다. 3년 전만해도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일본을 가!” 하며 청춘들의 배낭여행을 곱지 못한 시선으로 보던 나의 아빠가 이제는 좋을 때다. 잘 놀다 와.” 라며 선물을 사 달라고 카톡으로 사진까지 다 보내신다. 그리고 나와 너무 닮은 나의 엄마는 언제나 그랬듯이 일본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오라며 동전 파스를 사 달라고 하셨다. 치과 동료들에게 줄 선물로는 할로윈 시즌을 기념하며 출시된 카라멜 푸딩 맛의 킷캣 초콜릿으로 정했다. 짧게 떠난 여행이라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사지 않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쇼핑카트에는 기념품이 한아름 담겨 있었다.


 

▶ 돈키호테에서 가족과 동료, 그리고 나에게 줄 선물들을 쇼핑하고 있다.

▶▶ 양 손에 쇼핑거리를 한가득 손에 쥐고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

 

다섯 번째 처음’ _ 일본 빵집에서 생일 케이크 사기


 그동안의 생일은 항상 평범한 일상 속에서 챙기는 기념일이었기 때문에 케이크를 고르는 장소는 항상 서울이었고, 서울 안에서도 흔하게 눈에 보이는 프랜차이즈 빵집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일본의 빵집에서 나의 생일 케이크를 산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묘한 기분을 느끼게끔 했다. 돈키호테에서 쇼핑을 마친 나는 생일 케이크를 사기 위해 하카타 역 지하상가로 향했다.


 나는 그 곳에서 다양한 빵집의 쇼케이스를 보며 케이크를 고를 수 있었다. 어떤 케이크를 살까 고민하는 도중 한 직원이 시식 홍보 중인 케이크가 있다며 치즈 케이크 한 조각을 내게 건넸다. 치즈 케이크는 맛있었지만 개인적으로 크림이 들어간 케이크를 좋아해서 다른 케이크를 구매하고 싶었다. 그 때, 홍보 중인 치즈 케이크의 아래 쇼케이스에 딸기 크림이 들어간 치즈 케이크가 눈에 띄었다. 나는 직원에게 지금 먹은 치즈 케이크가 아닌 딸기 크림이 들어간 치즈 케이크를 구매하겠다고 말했다.


 직원은 밝은 미소로 딸기 크림이 들어간 치즈 케이크를 쇼케이스에서 꺼냈다. 그러더니 내게 펜과 종이를 건네며 데코레이션 초콜릿에 적을 문구 내용을 작성해 달라고 했다. 그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한국 빵집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순간을 경험했다. 일본에서는 케이크를 구매할 때, 추가의 비용 발생 없이 데코레이션 초콜릿 위에 고객이 원하는 문구를 즉석에서 작성해 준다고 한다. 그것은 곧 세상에 단 하나뿐인 케이크가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어떤 문구를 부탁할까 고민했지만 끝내 독특한 문구를 떠올리지 못했다. 결국엔 평범한 문구로 부탁했지만 나는 빵집의 세심한 정성에 감동받아 기분 좋은 마음으로 케이크를 손에 쥐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 데코레이션 초콜릿에 문구를 작성하고 있는 직원

▶▶ 맛있는 치즈케이크를 판매하고 있는 하카타 역 지하상가의 아카이후센

 

여섯 번째 처음’ _ 게스트하우스에서 파티하기

 

 2018117일 저녁 8.

 

 드디어 2주 전부터 계획된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어묵 파티가 시작되었다. 미셸은 버너 위에 냄비를 올리고 본격적으로 어묵 전골을 끓이기 시작했다. 이 날, 어느 장기 투숙객은 유부 주머니를 직접 만드는 음식 솜씨를 보이기도 했다. 전골은 어묵을 포함한 무와 곤약, 두부, 유부 등으로 알차게 채워져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의 투숙객은 서서히 주방으로 모여들었고, 모인 이들은 하나같이 어묵 전골이 끓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 순간이 마치 코타츠에 둘러 앉아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짱구네 가족과 무척 닮아 보였다.


짱구는 못말려 NEW 에피소드 <겨울엔 뜨끈한 전골이 최고예요> 편 中


오늘의 파티를 위해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준비한 어묵 전골 재료들


 투숙객들은 미셸과 게스트하우스 직원들이 함께 준비한 어묵 전골을 먹으며 소소하게 담소를 나누었다. 전골이 지겨워질 즈음에는 토스트기에 모찌를 구워 먹으면서 파티를 이어갔다. 토스트기 안에서 부풀어 오른 모찌를 먹는 것 또한 일본에서 내가 겪은 또 하나의 처음이었다. 어묵 파티는 내가 하카타 역 지하상가에서 사 온 생일 케이크를 먹으며 마무리가 되었다. 지극히 나의 취향으로 고른 케이크였기 때문에 모두의 입맛에 맞을까 고민했지만 케이크를 맛본 모든 이들은 정말 맛있었다며 케이크에 대한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 어묵 파티가 열리고 있는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

 게스트하우스의 내부에는 오늘의 파티를 알리는 포스터가 곳곳마다 붙여져 있었다.

▶▶ 감자와 다시마를 넣어 어묵 전골의 육수를 우려내고 있다.

▶▶ 주방에서 끓이던 냄비를 테이블의 버너 위로 옮겼다. 재료가 풍성하게 넣고 나니 제법 전골의 모양이 난다.

 

 

 

▶ 파티가 열리는 주방의 한켠에선 수제로 코팅된 카드들이 오늘의 날짜를 알리고 있었다.

 하카타 역 지하상가의 아카이후센에서 사 온 나의 생일케이크

▶▶ 일본어가 적힌 초콜릿 데코레이션이 주는 감동의 여운은 정말 촉촉했다.

▶▶ 파티를 함께한 모든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금세 바닥을 보인 딸기 케이크


 파티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게스트하우스의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라이토가 나에게 카카오톡 아이디를 물었다. 나는 주저없이 아이디를 알려 주었다. ‘받침이 어려워서 한국어가 어렵다는 라이토는 나와 연락을 하고 지내고 싶다며 훗날 서울에 오게 될 때, 반드시 나에게 연락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태국 여행때도 느꼈지만 여행을 통해 맺는 인연만큼 매력적인 인연의 시작은 없다고 생각한다.

 

 밤 10, 파티를 함께 했던 모든 이들이 뒷정리를 함께하며 주방을 청소했다. 그 때, 라이토의 여자친구가 라운지에서 라이토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궁금해 하는 여자친구에게 라이토는 허물없이 나를 소개해 주었다.

 

 “그는 영완. 나의 한국 친구야.”

 

 외국인을 통해 내가 친구로 소개받는다는 것은 무척 행복했다. 내가 생각하는 친구의 정의는 항상 변함없는 위치에서 나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 존재였다. 그 존재는 나의 가까이에 있어야만 가능할 줄 알았다. 그러나 바다 건너 일본에서 두 시간 가량밖에 함께 하지 않았음에도 내가 누군가의 친구로 불려졌다는 것은 행운과도 같았다. 여행은 그렇다. 모험심을 자극하며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허물없이 누군가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설렘을 느끼게끔 하는 면에선 나를 순수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일곱 번째 처음’ _ 셀프 스냅촬영하기 <Night>


 어둠이 내려앉았다. 이제 2시간가량 남아있는 생일의 시간동안 나는 게스트하우스 주변의 밤길을 걸으며 배부른 몸을 소화시키고, 혼자서 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셀프 스냅 촬영을 진행할 예정이다. 나는 편하게 옷을 갈아입고 고릴라 삼각대와 미러리스 카메라를 챙겼다. 모두가 잠에 든 시간이었기 때문인지 게스트하우스의 주변은 잠에 든 아기처럼 고요했고, 선선하게 부는 강바람도 얌전하게 살갗에 닿아 절로 나를 콧노래를 부르게 했다.


 

▶ 아무도 다니지 않던 횡단보도를 건너며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주차된 차 하나 없는 텅 빈 주차장 담벼락에 앉아 사진을 찍고 있다. 벽이 폭이 생각보다 좁아 처음에 사진을 찍을 때 앉다가 뒤로 넘어질 뻔 했다.

▶▶ 재활용 종이수거함 앞에서 한국으로부터 걸려온 후권이의 전화를 받고 있다.


 카메라에 타이머를 설정하고 혼자서 자연스러운 포즈를 짓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색했지만 생각보다 주변 사람들은 나의 행동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금의 순간을 민망함에 무너져 아무런 사진도 남기지 못하면 훗날이 되었을 때 지금을 너무나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뻔뻔해지기로 했다. 지금부터 촬영할 스냅의 주제는 <홀로인 밤>이다. 나는 홀로를 표현하기 위해서 최대한 한적하고 음침한 공간을 찾아 사람들이 사진 속에 나오지 않게 했고, 어두움과 그리움, 또는 외로움을 드러낼 수 있는 을 표현하기 위해선 최대한 웃지 않는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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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처음’ _ 공항에서 노숙하기


 누구에게나 노숙이라는 단어로부터 전해지는 어감과 이미지는 선호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노숙을 경험하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다. 공항이 좋아서. 모든 여행의 시작이 이루어지는 공항, 늘 체크인과 출입국 심사만을 경험했던 이 공간에서 지구촌 사람들의 설렘 가득한 기운을 느끼며 잠들고 싶었고, 공항 곳곳을 누비고 관찰하면서 공항의 매력에 빠져들고 싶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되었다. 나는 퇴근 직후,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바로 공항으로 왔기 때문에 누적된 피로가 상당했다. 그래서 업무 시간에 짬을 내어 미리 조사해 둔 인천공항 노숙 명당으로 빨리 가서 신발을 벗고 잠에 들고 싶었다. 그러나 명당의 이름값은 위대하여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았다. 쿠션형 의자가 비치되어 있어 노숙 명당으로 손꼽히는 F카운터 옆 의자에는 이미 모든 여행객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휴대폰 충전기를 끼고 있는 의자에는 F카운터를 비롯한 모든 카운터가 여행객들로 붐볐다. 그러나 공항 노숙을 포기할 순 없다. 같은 층을 세 번이나 왕복하며 물색한 끝에 나는 B카운터 옆의 의자로 향했다. 비록 쿠션형 의자는 아니었지만 남아있던 자리들 중에서는 휴대폰 충전기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자리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시차가 다른 세계 각지로부터 출발하여 인천에 도착하고, 인천을 경유할 테니 나는 꼭두새벽이 되어도 인천공항의 활기가 넘칠 줄 알았다. 그러나 자정이 넘어가면서 인천공항도 서서히 감기는 점심시간의 눈꺼풀처럼 고요해지기 시작했다. 노숙은 시작됐다. 나는 신발을 벗고 준비해 온 담요를 꺼내 덮어 잠자리를 청했다. 그러나 나는 피로가 극도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불편했던 자세 때문에 도저히 잠에 들지 못했다. 몇 번을 뒤척이다가 1시를 겨우 넘기고서야 잠에 들었지만 그마저도 얕게 잠들어 2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했다.


B카운터 옆의 의자에 앉아서 노숙 중인 나의 모습

 

 새벽 3, B카운터 의자에서의 노숙을 끝내기로 결정했다. 나는 부랴부랴 짐을 싸서 공항의 1층으로 내려와 포켓와이파이를 수령했고, 더 편히 누울 수 있는 자리를 찾아 공항을 누비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노숙판을 벌이고 있어서 비어있는 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끝내 나는 다시 B카운터로 돌아와 다시 한 번 잠을 청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나는 5시 즈음이 돼서야 다시 잠에서 깼고, 체크인을 하기 전까지 공항 밖으로 나가 새벽 공기를 쐬며 얕게 남은 졸음을 떨쳐냈다.


 새벽에 맡는 비 온 뒤의 냄새는 오래간만이었다.

그 장소가 공항이었기 때문에 이 순간은 더 매력적이었다.

 

 117, 이 날 수도권에는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되었다. 그러나 잠깐 내린 새벽비 덕분에 조금이나마 정화된 찬 공기를 맡으며 인천공항에서의 아침을 맞았다.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비행기가 지연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짧은 여행 일정이기 때문에 출발을 할 때만큼은 제발 비행기가 지연되지 않기를 바랐다.

 

 수하물 수속과 출국심사를 마친 나는 공항 도착 8시간 만에 탑승동으로 들어와 던킨도너츠에서 케이준 또띠아를 먹으며 탑승을 기다렸다. 그 때, 군 생활을 할 때 나의 맞후임이었던 재철이로부터 생일 축하 연락을 받았다. 117, 자신의 입대일이자 맞선임인 나의 생일인 이 날을 어떻게 잊냐며 새벽부터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군 생활 당시, 나와 재철이의 사이에는 ‘117외에도 겹치는 평행이론이 너무나 많았다. 하마터면 재철이가 다른 사람의 후임이 될 뻔 했던 해프닝이 있긴 하지만 결국엔 나의 후임으로 맞이하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다시 한 번 강하게 들었다.


 

 

일본 출국 전, 게이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던킨도너츠에서 먹었던 케이준 또띠아 샌드위치

▶▶ 아침이 밝았다. 이번에도 항공사 로고가 가장 예쁜 제주항공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기로 결정했다.

▶▶▶ 시작된 탑승수속. 날씨 탓에 지연을 걱정했지만 제시간에 게이트가 오픈되어 정말 기뻤다.

▶▶▶▶ 미세먼지로 인해 최악의 오염 수치를 기록했던 이 날의 대기. 활주로의 풍경은 항상 맑았으면 좋겠다.


 710, 탑승이 시작되었다. 역대급의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인해 비행기가 지연되는 불상사가 일어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비행기는 정확히 730분에 이륙했다. 비행기가 지면을 떠나 활주로를 뜨기 시작할 때, 나도 모르게 조용히 미소가 지어졌다. 이 미소는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앞에서 보였던 미소와 달리 너무나 자연스럽게 지어졌다. 비행기가 하늘길에 다다랐을 때, 창밖에는 물감을 푸른 것처럼 파란 하늘의 풍경이 펼쳐졌다. 설레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행기 밖 풍경은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고 몇 번을 보아도 아름답다. 풍경에 넋이 나가 있다 보니 어느새 나는 잠에 들어 있었고 잠에서 깨고 나니 또 어느새 비행기는 착륙을 시도하고 있었다. 시간은 1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후쿠오카는 무척이나 맑고 청명했다. 제일 먼저 비행기에서 내린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공항을 빠져 나왔다.


 

▶ 비행기는 활주로를 떠난지 10분도 되지 않아서 이렇게나 맑은 하늘길을 날기 시작했다.

▶▶ 1시간을 날아서 후쿠오카에 도착한 비행기

 

두 번째 처음’ / 택시 탑승하기


 후쿠오카는 공항으로부터 시내인 하카타까지 지하철로 5분밖에 걸리지 않아 초보 배낭여행자도 쉽게 여행할 수 있는 대표적인 도시다. 그러나 나는 오늘 지하철을 타지 않고 택시로 이동할 것이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게 되면 무려 지하철 요금의 8배나 되는 비용이 발생하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택시는 일본에서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택시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나를 하카타까지 데려다 줄 기사님과의 대화는 그 덤이다.


 

▶ 입국 심사장으로 가는 도중, 셔틀버스 안에서 찍은 맑은 후쿠오카의 하늘. 맞은편 버스의 'Welcome to Japan'이 나를 향해 인사를 하는 것만 같다.

▶▶ 택시를 타고 기사님과 대화를 나누며 하카타 역으로 향하는 중

 

 기사님께서는 나의 일본어 실력에 놀라면서 그동안 한국 관광객에게 묻지 못했던 어려운(?) 질문들을 묻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로 최근 한국과 북한의 분위기가 평화적으로 조성되었는데 머지않아 한반도가 통일을 이룰 것 같은지를 물어 보셨고, 두 번째로 일본도 저출산 문제로 인해 청년의 수가 부족하다며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오는 많은 젊은이들이 일본의 상공업 발전에 큰 역할을 해 주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마지막으로 만 나이 계산법에 대한 말씀해 주셨다. 생일을 기준으로 나이를 세는 일본과 달리 신년을 기준으로 나이를 세는 한국의 계산법이 재미있다며 과거에도 일본에선 지금의 한국식 계산법으로 나이를 셌다고 말씀해 주셨다. 자유롭게 오고 가는 대화 속에 하카타에 도착한 나는 기사님께 일본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생일을 축하받으며 기분 좋게 두 번째 처음을 완수했다.


 

 지금까진 사실 무난하게 후쿠오카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무난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샤워다. 원래는 노숙을 마치고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24시간 무료 샤워장에서 샤워를 한 후 비행기에 탑승할 예정이었는데 샤워장의 청소 시간과 맞물려 샤워를 하지 못한 채 후쿠오카에 도착하게 되었다. 퇴근을 하고 집에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샤워를 한지도 하루가 넘었고, 체크인까지는 앞으로 5시간 가량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원래는 후쿠오카에 도착하자마자 명란 덮밥을 먹을 예정이었지만 샤워가 다급한 처지이기 때문에 온천 일정과 명란 덮밥 일정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내가 예약한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는 체크인을 하기 전에 짐만 맡기는 것이 가능했다. 서둘러 짐을 맡기고 바로 온천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원래 여행 일정>

하카타 도착 게스트하우스에 짐 맡기기

<배틀트립> 방송 맛집 멘타이쥬에서 명란 덮밥 먹기 나미하노유 온천 가기

 

<변경 여행 일정>

하카타 도착 게스트하우스에 짐 맡기기

나미하노유 온천 가기 <배틀트립> 방송 맛집 멘타이쥬에서 명란 덮밥 먹기

 

 하카타 역은 규모가 큰 편이라 3년 전에 왔을 때도 제자리 걸음을 하며 주변 일대를 헤매곤 했다. 이번에는 헤매지 않을 거라 자신했지만 결국엔 시민들에게 스미마셍.” 하면서 길을 묻고 말았다. 시민들의 도움과 3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게스트하우스의 프론트에 있는 직원에게 체크인은 규정대로 오후 3시에 하겠다면서 짐만 먼저 프론트에 맡겨도 되냐고 물었다. 직원은 내게 여권을 보여 달라고 하더니 오늘 생일이시네요. 축하합니다.” 라고 하며 지금 비어 있는 침대가 있으니 지금 바로 체크인을 해 주겠다고 했다. 직원은 자신이 내게 파티 요청 메일에 답장을 보낸 미셸이라며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에서의 1박을 환영해 주었다.


 

▶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로 향하는 길

▶▶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룸 2층 침대의 내부, 내가 후쿠오카에서의 하룻밤을 지낼 공간이다.

 

 미셸이 5시간이나 체크인을 빨리 허가해 준 덕분에 나는 굳이 온천에 가지 않고도 게스트하우스의 욕실에서 샤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사전에 계획했던 일정도 그대로 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서둘러 도미토리 룸에 캐리어를 놓고, 욕실에서 샤워를 했다. 개운하게 샤워를 끝내고 간단히 화장을 하려는 순간, 그 때였다.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났다. 세면대 거울을 보면서 왼쪽 눈에 렌즈를 끼려던 찰나에 렌즈가 떨어진 것이다. 세면대를 통틀어 거울 주변, 세면장의 바닥까지 손바닥으로 짚어가며 렌즈를 찾았지만 렌즈는 짚이지 않았다. 1박의 짧은 여행이었기 때문에 여분 렌즈는 가져오지도 않았던 데다가 렌즈는 오른쪽 눈에만 끼어져 있어서 시야가 무척이나 어지럽게 보였다. 세면장을 드나드는 여행객들은 내게 무슨 일이 있냐며 물었지만 나는 렌즈를 찾는 데 여념이 없어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끝내 렌즈 찾기를 포기하기로 했다. 렌즈를 찾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간 다른 일정을 소화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밤에 렌즈를 뺐을 때 낄 대용으로 챙겨 온 까만 뿔테 안경을 끼고 여행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썩 맘에 드는 코디는 아니지만 지금 그런 걸 가릴 처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 처음’ _ 명란 음식 먹기


 지난 여름, 정원이와 함께 떠난 태국에서 <워너원투어>의 큰 기반이 되어 준 나의 인생 예능 KBS <배틀 트립>의 도움은 이번에도 빠지지 않았다. 군 생활 때, 배우 양정아와 윤해영이 출연했던 후쿠오카 편 방송분을 보고서야 후쿠오카가 명란으로 유명한 곳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나중에 후쿠오카에 가게 될 때, 명란 덮밥을 꼭 먹어 보겠다는 위시리스트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번 여행을 통해 실현하게 되었다.






 나는 텐진 역에서 시민과 구글 지도의 도움을 받아 <배틀 트립>에 방영된 명란 덮밥 맛집 멘타이쥬에 도착했다. 방송에서 보았던 그대로 독특한 외관 건축 인테리어는 멀리서 보아도 시선을 집중시켰고, 덕분에 내가 찾는 식당이었다는 것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식사 시간대에 찾으면 대기 줄이 상당하다는 후기가 많아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대기 줄은 없었다. 나는 바로 식당으로 들어가 직원의 안내에 따라 맛을 고르고 2층에 있는 테이블로 자리를 안내받았다.


 

 

▶ 텐진 역에서 내려 멘타이쥬로 향하는 도중에 찍은 아날로그 감성의 일본 횡단보도

▶▶ 공원을 빠져나오자마자 보였던 멘타이쥬. 외관만 보면 마치 박물관을 닮은 것 같다.

▶▶▶ 후쿠오카에서의 첫 식사, 츠케멘과 명란 덮밥

▶▶▶▶ 남김없이 두 음식을 먹음으로써 일본에서의 두 번째 '처음' 명란 음식 먹기 이행 완료

 

 나는 츠케멘과 명란 덮밥이 같이 나오는 세트 메뉴를 주문했다. 명란 덮밥은 밥에 아무런 간도 되어 있지 않은 게 아쉬웠다. 그래서 명란 자체의 짠맛은 무엇인지 알 수 있었지만 명란 덮밥으로서의 맛을 인지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츠케멘이 더 좋았다. 물론 입맛에도 맞았다. 라멘의 국물보다도 면의 익힘 정도가 제일 마음에 들었으며 국물은 굉장히 깊은 맛을 담고 있었다. 그동안 익숙했던 인스턴트 라면과는 확실히 달랐다. 츠케멘의 특제 추가 스프는 면을 다 먹고 남은 국물에 추가해서 맛의 변화를 감미하는 용도로 음식과 같이 나왔다. 이 스프를 국물에 추가하니 짠맛의 정도가 급격히 얕아졌고, 원래 국물의 맛에서 전혀 다른 맛을 내는 게 정말 매력적이었다. 한국에서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만약,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음식이 유행하면 그 과정에서 맛이 변질될 우려가 있는데다가 무엇보다 누구나 알게 되는, 누구나 먹을 수 있는 흔한 맛이 되어 버리는 게 싫었다. 맛있는 음식은 아무 곳에서나 쉽게 먹을 수 있게 대중화되지 않아야 하며, 그것이 곧 희소성이고 조리사의 자부심을 뒷받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네 번째 처음’ _ 온천 가기


 일본을 찾았던 지난 네 번 동안 단 한 번도 온천을 간 적이 없었던 것이 나조차도 놀라웠다. 지인들로부터 일본 여행과 관련하여 연락을 받으면 십중팔구 온천을 물었고, 나는 유일하게 온천에만 가 본 적이 없었다며 대답을 해 주지 못했다. 일본과 온천의 관계는 실과 바늘과 같아 빼놓지 않고 생각되는 카테고리 중 하나인데 왜 나는 그동안 온천에 갈 생각은 해 보지 못했는지 의아했다. 아마, 혼자 떠난 여행이 많아서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가족이나 친구, 여자친구와 함께 일본에 갔다면 빼놓지 않고 온천에 들렀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짧은 일정 안에서 후쿠오카 교외로 나가 온천을 즐기고 오기란 쉽지 않다. 온천을 하려면 도심에서 시골 마을로 이동하는 시간까지 고려해야 하는 데다가 이동 시간이 오래 걸려 숙박을 료칸에서 해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료칸에서 숙박을 하게 되면 또 다른 처음의 리스트였던 게스트하우스에서 파티하기는 실현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나는 사전에 하카타 시내 안에서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을 열심히 찾았다. 후쿠오카는 항구 도시라서 분명히 도심지에도 관광객들이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을 것 같았다. 예상은 적중했다. 하카타 시내 안에는 무려 세 개의 온천이 있었다. 위치, 시간, 온천의 특성 등 모든 것을 고려한 끝에 나는 텐진 역에서 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는 하카타 부두 옆의 나미하노유 온천에서 생애 첫 일본 온천을 경험하기로 결정했다.


 

 

▶ 텐진 솔라리아 스테이지 역 앞에서 20번 버스를 타고 하카타 부두로 향하는 도중에 찍은 하카타 시내의 모습

▶▶ 나미하노유 온천 남탕 앞에서. 나중에 듣기를, 나미하노유 온천은 주기적으로 남탕와 여탕을 바꾸어 관리한다고 한다.

▶▶▶ 온천 입탕 전, 락카룸 열쇠와 함께 인증샷을 남기며 세 번째 '처음' 일본 온천 체험하기 이행 준비

▶▶▶▶ 탕으로 향하는 나미하노유 온천의 정갈한 내부 모습

 

 나미하노유 온천은 도심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해수 온천이라 온천탕의 물이 바닷물이었다. 그것이 내가 하카타 시내 안 세 개의 온천 중에서 나미하노유 온천을 고른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실제로 온천탕의 물에선 짠맛이 났고, 온천 내부도 정갈하고 아담하게 일본 전통식 스타일로 꾸며져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더해졌다. , 탕의 입구에선 다양한 기념품과 유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절로 어릴 적 보았던 일본 영화가 떠올랐다. 나의 기억 속 일본 영화 주인공들은 항상 온천을 하고 나오면 병에 담긴 우유를 마시며 탁구를 치곤 했다. 탁구대가 세팅되어 있지 않아서 탁구는 실현하지 못했지만 가득한 음료들을 보니 나중에 개운하게 온천을 마치고 나와서 가장 맛있어 보이는 음료를 마시며 온천을 마무리짓고 싶어졌다.

 

 온천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노천탕의 썬베드에 누워서 바깥 풍경을 보는 것이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오른쪽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 왼쪽에서는 태양이 내리쬐어 절로 눈이 찡그려졌다. 햇살과 바람이 동시에 나의 몸에 닿아서 간질이는 공기의 기운이 너무나 좋아서 나는 탕 안에 있다가도 몇 번이나 다시 나와 썬베드에 누웠다. 사실은 일본에 오기 전 온천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소 추운 날씨를 원했다. 그러나 후쿠오카는 남쪽에 있어서 11월 치고 다소 따뜻한 날씨를 보였다. 그래서 괜히 덥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따스함과 선선함의 콜라보레이션을 정통으로 만끽할 수 있었고 지금도 가장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주어 최근의 가장 큰 활력이 되어 주고 있다.

 

 온천을 마치고 나온 나는 레몬 크림빵과 플레인 요구르트를 사서 먹었다. 이 순간, 바랄 건 더 없다. 만약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 속의 마코토에게 주어졌던 타임 리프 능력이 나에게도 있었다면 나는 주저없이 이 순간을 몇 번이나 되돌렸을 것이다.


 

 

▶ 온천을 마치고 나오면 바로 보이는 다양한 기념품과 주전부리들

▶▶ 온천의 피날레를 장식할 음료는 플레인 요구르트로 결정했다.

▶▶▶ 가장 맛있어 보였던 레몬 크림빵과 플레인 요구르트

▶▶▶▶ 나미하노유 온천을 등지고 있는 하카타 포트타워. 입장료가 무료라서 온천 후 가볍게 전망대에 올라가 풍경을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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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logue

 사회인으로 본격적인 첫 발을 내딛었던 때도 어느덧 8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전역을 하고 사회인이 되면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면서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보단 해야 할 것들이 더 많았고 좋은 기회가 다가와도 결국엔 지금 내게 닥친 현실들을 이유로 언제 올 지도 모르는 나중이란 시기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에게 사회가 암묵적으로 정해준 길(대졸 학력, 필수 스펙 토익, 안정적인 직장생활 등)을 걷지 않고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나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는데 끝내 나도 삭막한 현실 앞에서 무너져가고 있었다.

 

가을 날씨가 점점 겨울 날씨로 변해가는 때가 오면 너 태어났을 때가 떠올라.”

 

 우리 아빠가 매년 가을마다 하는 단골 대사다. 겨울이 다가온다는 것은 내 생일이 다가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한 해의 끝이 다가오는 사인이기도 하다. 나는 직장생활의 쳇바퀴에 들어서면서 소중한 기회들을 너무나 많이 흘려보내며 겨울까지 살아온 것 같았다. 그래서 겨울의 길목에 들어서는 나의 이번 생일에는 꼭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결코 쉽지는 않았다. 당직 근무일과 올 해 나의 생일이 맞물려 또 한 번 소중한 기회를 미루어야 할 상황에 닥쳤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나는 친한 동료에게 당직 근무 변경을 부탁했다. 흔쾌히 나의 당직 근무와 바꾸어 준 동료 덕분에 나는 직장 휴무일을 활용하여 생일을 포함하는 13일의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연차를 활용하여 6일 퇴근 직후부터 8일 밤까지의 시간을 얻은 이번 여행

원래 8일은 나의 당직 근무일이었는데 은지 선생님이 바꾸어 주신 덕분에 여행이 가능했다.

 

 그래도 13일은 짧다. 그러나 쉽게 오는 기회 또한 아니다. 그래서 불만을 갖지 않기로 했다. 짧은 기간 안에 해외를 느끼고 만지며 내가 자유롭게 회화를 할 수 있는 외국. 답은 정해져 있다. 나는 26개월 만에 다섯 번째 일본 여행을 계획했다. 도시는 인천에서 비행 시간이 가장 짧으며 공항으로부터 시내까지도 무려 지하철로 5분밖에 걸리지 않는 후쿠오카로 결정했다. 후쿠오카는 무려 3년 만의 재방문이다.

 

 전역 후 첫 일본, 해외에서 맞는 첫 생일.

 

 이번 여행 또한 처음이 많다. 그래서 이번 여행의 테마는 처음으로 정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해 본 적이 없는 처음을 느끼고 돌아오는 것이 목표였다. 여행을 결심한 직후에는 일본에서의 처음을 찾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지만 생각에 잠기어 그동안의 여행 리뷰를 되새겨보니 금세 처음 리스트를 채울 수 있었다.

 

* 이번 여행에서 실현하고 올 처음리스트 *

공항에서 노숙하기, 게스트하우스에서 파티하기, 명란 음식 먹기, 키와미야 함바그 먹기,

온천 가기혼자서 스냅촬영하기, 택시 탑승하기, 일본 빵집에서 생일 케이크 사기

 

 이번 여행은 소중한 기회실현과 동시에 나에게 주는 생일선물이다. 나는 그 날, 그 곳에서 행복해야 할 나를 위해 철저하게 사전 조사를 거듭했다. 게스트하우스 파티를 실현하기 위해선 3년 전에 묵었던 게스트하우스로 전화를 걸어 파티 예정 일정과 신청 가능 여부를 묻기도 했고, 짧은 여행 기간 안에 일본 온천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선 하카타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온천을 조사하며 해당 온천의 예약, 할인 여부까지 꼼꼼하게 조사했다.


  

▶ 게스트하우스에 숙박 예약을 하면서 별도 요청 사항으로 11월 7일에 파티 가능 여부를 여쭈었다.

▶▶ 예약을 확인하고 파티 요청을 수락해 주신 키아오라 버짓스테이 게스트하우스


게스트하우스에서는 겨울의 길목에 들어서는 지금의 시즌에 걸맞는 음식으로 어묵 파티를 테마로 정해 주셨고,

키아오라 버짓스테이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나의 생일과 파티 일정을 공지해 주었다.


 사전 조사를 할 때, 가장 많은 검색이 필요했던 것은 일본 빵집에서 케이크를 사는 것이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일본 여행을 갔을 때마다 한국의 파리바게트’, ‘뚜레주르’와 같은 빵집을 본 기억이 없었고, 일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 또한 빵집을 여행 일정으론 넣지 않기 때문에 블로그에 아무리 검색을 해도 빵집 위치를 찾기란 꽤나 어려웠다. 물론, 빵집이 어딘가에는 있겠지만 후쿠오카에 도착했을 때, 빵집을 찾느라 시간을 할애하면 너무나 아까울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묵을 게스트하우스로부터 가장 가까운 빵집을 찾기 위해서 구글 위성맵과 현재 후쿠오카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워홀러들의 블로그를 무척이나 파헤쳤다.

 

 116일 저녁 7, 퇴근과 동시에 생일의 전야가 시작되었다.

 

 나는 대학 친구 종원이와 강남역에서 생일 전야 식사를 함께 하며 가볍게 맥주를 즐기기로 했다. 우리의 맥주가 끝나면 나는 공항으로 발걸음을 옮겨 본격적으로 내가 정한 처음’ 들을 이행할 예정이다. 그 첫 번째 처음’은 바로 공항 노숙. 종원이는 잠이 많은 나에게 깊은 잠에 빠져 비행기를 놓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길 바라 주며 1차에서 가볍게 식사를 마치고 신논현역으로 배웅해 주었다.


엄마가 생일선물로 보내주신 족발 기프티콘으로 종원이와 함께 먹은 강남역에서의 족발


 

 그렇게 나는 9호선 급행 열차와 공항철도선 열차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 공항철도선 지하철을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중

▶▶ 여행의 시작을 기념하며 찍은 공항철도선 지하철 탑승 인증샷


 5th JAPAN, AGAIN FUKUOKA

 슬레이트는 내려졌다.  짧지만 강렬할 다섯 번째 일본여행기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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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라이더

영화꼬집기 2018. 9. 20. 08:03


 20세기 최고의 건축물이라 불리는 오페라 하우스, 그리고 그 곳을 품고 있는 2030세대가 워킹홀리데이로 가장 많이 찾는 나라 호주. 만인이 예찬하는 그 아름다운 나라가 이렇게나 적적하고 쓸쓸해 보일지 미처 몰랐다타스마니아 섬에서 바다를 우두커니 바라보는 이병헌의 모습이 가히 압권이다<싱글라이더>는 삶의 목표와 방향을 고민하게 하는 지향적 여운이 아닌 지금까지 걸어온 나의 삶의 길 안에 자각하지 못했던 착각이 무엇이었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들며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표를 던진다.

 

 기러기 아빠와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소녀. 영화가 흔한 다큐멘터리처럼 흘러가는 기분이 들어 지루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그것은 괜한 오지랖이었다. 영화의 반전은 스토리를 뛰어넘어 관객의 여운까지 후비고 들어왔으며 자극적이지 않은 소재와 전개로 웬만한 흥행 영화 못지않을 정도로 웅장한 충격을 선사한다.

 

 이병헌에겐 설득을 당했고, 안소희에겐 공감을 받았다.

 

 관객 수로 흥행을 판가름받는안타까운 한국 영화계의 현위치. 그 안에 <싱글라이더>가 있다. 재평가가 필요한 영화다.


 아직도 대답하지 못한 여운 속의 질문.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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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oi0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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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34.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 조식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즐거운 여행을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이 빨리 갈 거라고 예상은 했다. 그러나 태국에서의 마지막 날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나는 우리의 마지막 날 일정에 체크아웃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일정을 단출하게 세웠다. 그 이유는 마지막 날의 체크아웃은 곧 공항에 도착하기 전까지 캐리어를 직접 이끌고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체크아웃은 낮 12시까지로 제한하고 있었다. 우리가 오늘 탑승할 인천행 비행기는 밤 1030분 이륙으로, 그 전까지 갈 곳은 단 두 곳뿐이었다. 고로, 오늘은 그 어느 날보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워너원투어>의 일정 중, 처음으로 기상시간을 정하지 않고 늦잠을 잤다. 그래도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의 조식은 먹어 보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830분에는 1층의 라운지로 내려와 조식을 먹었다.


 나는 3년 전, 일본 후쿠오카로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 게스트하우스의 라운지에서 화창하게 비치는 햇빛을 눈부셔 하며 조식 토스트를 먹은 적이 있다. 그 때, 토스트와 함께 마셨던 홍차가 생애 첫 홍차였다. 그 뒤로 여행을 떠날 때마다 아침에 홍차를 마시는 것은 내가 치르는 일종의 의식이 되었다. 그 의식이 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직접 구운 토스트 빵과 조식 옵션으로 제공되는 수박, 스크램블 에그, 그리고 홍차를 마시며 태국에서의 마지막 아침식사를 기억에 담았다.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조식

 

 찐빵 속에 앙꼬가 없으면 허전하듯 토스트에 딸기 잼이 없으면 어딘가 허전하다. 그런데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의 조식에 딸기 잼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한참동안 잼을 찾으며 딸기 잼 토스트를 먹고 싶어 했지만 라운지 직원이 잼은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대신 버터와 케찹, 핫 소스가 있다고 했다. 그래. 없으면 없는 대로, 오히려 익숙했던 맛에서 벗어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S#35. 카오산 로드

 식사를 마친 정원이가 갑자기 게스트하우스의 밖으로 나가더니 카오산 로드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갑자기 왜 혼자 나가냐고 묻자 정원이는 반박할 수 없는 대답을 했다.

 

 “그냥 발걸음이 이끌렸어.”

 

 나는 그 기분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아니,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정원이를 따라 같이 카오산 로드를 구경했다. 우리는 고작 이틀밖에 이곳에 있지 않았지만 이제야 조금 이 길이 익숙해지고, 이제야 조금 이곳의 감성을 알 것 같았다.


말도 없이 갑자기 게스트하우스의 밖으로 나가더니 카오산 로드를 누비기 시작하는 정원

 

 우리는 어둠이 내리지 않은 순간에 카오산 로드를 구경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덕분에 시야도 밝아진 걸까. 정원이는 밤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구석진 골목길로 들어가더니 미로 찾기와 같은 모험을 강행했다. 나는 그런 정원이를 뒤따라갔다. 처음에는 골목 안을 헤매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어느새 나는 골목 안의 운치에 빠져 정원이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카오산 로드의 뒷골목을 찍고 있는 나


 고양이를 좋아하는 정원이는 고양이가 보일 때마다 쓰다듬어 주곤 했다.

나는 그런 정원이에게 손을 씻기 전까지 절대 나를 터치하지 말라고 했다.

 

S#36. 짜뚜짝 공원

 여유롭게 게스트하우스의 체크아웃을 마치고 우리는 짜뚜짝 공원으로 향했다. 카오산 로드에서 짜뚜짝 공원은 꽤 시간이 걸리는 위치에 있었다. 가뜩이나 이제는 손에 캐리어를 쥐고 있는 상황. 대중교통보다는 택시가 나을 것 같다는 판단 아래에 우리는 택시를 찾아 카오산 로드를 방황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택시기사들은 우리가 이미 다녀온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까지 저렴한 가격에 태워다 주겠다며 호객행위를 걸어왔다. 우리는 그들의 말에 위 원트 고 짜뚜짝 파크, 미터기 온!” 이라 대답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기사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 곳까지는 가지 않는다며 승차를 거부했다. 그러던 중, 한 기사님이 우리의 미터기 온을 승낙했다. 심지어 짜뚜짝 공원에도 간다고 하셨다. 그러나 트래픽 잼 시간대임을 고려해서 일반 도로가 아닌 고가 도로로 가겠다고 하시며 톨게이트 비용만 잘 챙겨 달라고 하셨다.(태국에서는 택시를 이용하여 톨게이트를 지날 때, 톨게이트 비용을 운임과는 별도로 기사에게 지불해야 한다.)


짜뚜짝 공원까지 정상 미터기를 켜고 모셔다 주신 기사님

(미터기를 켜도 20바트씩 올라가면 조작된 미터기이다. 2바트씩 올라가야 정상 미터기이다.)


태국에서 처음 만난 미터기를 켜고 운전해주신 기사님과 함께

 

 20분 가량을 달려 도착한 짜뚜짝 공원. 그런데 습하고 흐린 날씨 탓에 공원을 찾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통행을 제한하고 있는 구역도 있어서 우리는 짜뚜짝 공원의 안에 있는 호수까지 가 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입구 주변에 있는 넓은 잔디밭에서 파노라마 사진을 찍거나 우거진 풀숲 안에서 설정샷을 찍으며 짜뚜짝 공원을 즐겼다. 또, 여름의 풀밭에서 찍은 우리의 병사 시절 단체 사진을 가져온 나는 정원이에게 지금의 순간과 단체 사진을 하나의 사진에 담아 보자고 제안했다. 그 말에 정원이는 벤치의 틈에 단체 사진을 꼽더니 짜뚜짝 공원을 배경 삼아서 분위기있는 사진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사실 짜뚜짝 공원은 여느 공원과 크게 다를 것 없이 드넓은 잔디밭과 다양한 식물들이 심어져 있는 흔한(?) 공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곳에 오고 싶었던 이유는 태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야자수 나무들이 공원에 심어져 있는 모습이 궁금했으며여유롭게 공원에서 쉼을 만끽하는 태국인들의 모습을 눈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공원의 제한적인 상황과 날씨 탓에 이 점을 만족하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쉬웠다. 그러나 여름 풀밭을 배경으로 과거의 1생활관을 상기시킬 수 있던 것은 계획했던 일정보다 더한 만족감과 뿌듯함을 가져다 주었다.


우거진 풀숲에서 찍은 설정샷. 이름하여 '숨은 영완 찾기'


짜뚜짝 공원의 잔디밭


나와 정원이가 막내 라인이던 때의 시설 1생활관.

전날 밤, 영상통화를 걸었던 종희형, 승호형, 김하사님, 재현이형이 선임이던 시절(2016.07)


선임이던 형들이 모두 전역하고 정원이가 분대장이던 시절의 시설 1생활관.

나는 정원이의 뒤를 이어 분대장 이임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2017.09)

 

S#37. 베스트 비프 뷔페

 우리는 이번 여행 내내 <배틀 트립>의 방콕, 파타야 편에 출연하며 태국의 매력을 소개했던 배우 김민교의 추천 스팟(꼬란 섬, 시암 앳 시암 호텔, 담넌 사두억 수상 시장 등)을 정말 많이 다녀왔다. 우리가 지금부터 향할 베스트 비프 뷔페도 김민교의 추천 스팟에 해당되는 여러 장소 중에 한 곳이다. 우리는 이곳을 워너원투어 대장정의 마지막 일정으로 결정했다. 이유를 말하자면 베스트 비프 뷔페에서의 식사를 태국에서의 마지막 만찬으로 장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베스트 비프 뷔페는 BTS의 온눗역 2번 출구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야외 테라스형 뷔페로, 고기와 해산물, 맥주와 음료를 439바트(한화 약 15,000)에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 베스트 비프 뷔페는 오후 4시부터 영업을 시작하지만 영업 시작과 동시에 웨이팅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4시보다 빨리 이곳에 도착하기로 했다.


비가 내리던 온눗역. 이 곳에서 10분을 걸어가면 베스트 비프 뷔페가 있다.

 

 우리는 베스트 비프 뷔페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위해 게스트하우스에서 조식을 먹은 이후, 맥도날드 파인애플 파이와 길거리에서 파는 음료수 한 잔을 나누어 먹은 걸 빼고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우리는 배고픔과 캐리어를 같이 이끌고 짜뚜짝 공원이 있는 모칫역에서 40분 가량을 달려 온눗역에 도착했다. 온눗역에 도착하자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행히 시로코 스카이바에서 만났던 정도의 굵은 빗줄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우산을 쓰지 않기에는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우리의 손에는 캐리어가 있다. 전철역 한구석에서 짐 정리가 끝난 캐리어를 열어 우비를 꺼내 입고 뷔페까지 가느냐. 아니면 빗속을 뚫고 지금의 옷차림으로 빠르게 뷔페까지 가느냐. 습한 공기와 등골에 맺혀있는 땀방울. 그리고 태국에 올 때보다 무거워진 캐리어의 무게.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고민 끝에 우리는 후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10분 가량을 걸어 베스트 비프 뷔페에 도착했더니 시간은 오후 3시를 갓 넘기고 있었던 데다가 웨이팅을 하고 있는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 이 날의 첫 번째 손님은 우리였던 것이다. 영업을 시작하기까지는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지만 오히려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아 우리는 여유롭게 벤치에 앉아 땀을 식히면서 영업이 시작되기까지를 기다렸다.


<배틀 트립> 외에 <원나잇푸드트립>에서도 소개된 방콕의 인기 맛집 '베스트 비프 뷔페'


베스트 비프 뷔페가 오픈하기까지 기다리며 찍은 셀카

 

 오후 4시가 되었다. 비는 그쳤지만 하늘이 맑게 개지는 않았다. 우리는 1차적으로 뷔페와 음료, 맥주까지 무제한 리필이 가능한 풀코스로 2인을 주문했고, 2차로 음식을 주문했다. 직원이 보여준 메뉴판에는 돼지의 간과 혀 등 한국에서도 쉽게 접하지 못했던 음식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다. 우리는 잠시 동안 고민하더니 모든 메뉴들을 한 접시씩 주문하기로 결정했다.

 

 “디스 원, 디스 원, 디스 원, 디스 원

 

 모든 주문을 마치자 직원은 맥주와 음료를 가져다주더니 직접 잔에 따라주었다. 직원은 다른 손님들을 응대하다가도 우리의 잔이 비어있거나 콜라에 얼음이 녹아있으면 잽싸게 우리의 테이블로 와서 빈 잔에 맥주를 채워주고, 콜라에 얼음을 넣어주었다. 서비스에 감탄한 정원이는 직원의 손에 팁을 쥐어주기도 했다.


주문과 동시에 제일 먼저 나온 창 맥주와 이스트콜라


 

녹는 버터를 기름 삼아 고소하게 구워지고 있는 고기들과

그물 석쇠 위에서 본연의 색을 잃어가며 빨갛게 익어가고 있는 해산물들

 

 베스트 비프 뷔페에서는 음식만큼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것이 바로 버터다. 이곳에서 버터는 고기를 먹기 전 프라이팬 불판을 칠하는 용도로 이용된다. 그래서 베스트 비프 뷔페에서 먹는 고기는 버터 향과 풍미가 더해져 다른 곳에서 먹던 고기보다 훨씬 고소했다. 반면 해산물에는 버터를 닿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화로 하나를 새로 주문하여 버터를 칠할 수 없는 그물 석쇠 위에 올려서 해산물을 구웠다. (화로 추가 시 비용 발생)


시원했던 맥주와 고소했던 고기, 그리고 맛있었던 해산물까지.

태국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베스트 비프 뷔페에서 먹기로 한 건 잘 내린 결정인 것 같다.

 

 정신없이 음식을 입에 넣었다. 우리는 빠짐없이 모든 음식들을 맛보기 위해서 전 메뉴를 한 접시씩 주문했지만 먹다 보니 그것도 너무나 많은 양이었다.(어떤 메뉴는 구워 보지도 못하고 남겼다.) 그러나 우리는 아쉽지 않을 정도로 원없이 뷔페를 즐겼다. 식사를 마치고 한 숨 고른 우리는 맥주와 음료를 채워주던 서비스 만점의 직원에게 우리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줄 것을 부탁했다. 직원은 그 부탁에 흔쾌히 응해 주셨다.


 베스트 비프 뷔페를 끝으로 태국에서의 모든 일정을 끝마친 사진 속의 우리는 태국에서의 46일동안 줄곧 그래왔듯, 워너원투어의 깃발을 들고 있었고 표정은 당연지사 웃는 얼굴이었다.


<워너원투어>의 대장정. 그 끝을 장식한 베스트 비프 뷔페에서.

 

S#38. 수완나품 공항

 식사를 마친 우리는 공항철도선을 타고 수완나품 공항으로 왔다. 언제나 그렇듯 공항은 항상 분주하고 정신없다. 그리고 두 가지의 감정을 느끼게끔 한다. 설레거나, 아쉽거나. 지금의 우리는 아쉬움이다. 인천에서 태국으로 올 때만 해도 갑작스럽게 지연된 비행기를 보며 질책하고 짜증을 냈는데, 지금은 지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너무나 간절했다.


지연 없이 제 시간에 출발하는 타이항공의 인천행 TG688 비행기

 

 “정원, 비행기 지연 안 되나? 여기 더 남아있고 싶은데…….”

 

 그러나 이럴 때는 꼭 모든 상황이 철두철미하게 흘러간다. 비행기는 지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체크인 카운터에서는 제 시간보다 빠른 시간부터 탑승 수속을 시작했다.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공항에서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면세점을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수하물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밟았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요기베라의 말은 여전히 참을 증명하는 명제였다. 나는 출국 심사장에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쳤다. 출국 심사원은 나의 여권과 탑승권을 검토하더니 출국 카드를 제출하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도 도통 모르겠는 태국어와 그 이상으로 더 모르겠는 영어. 그리고 내 뒤에서 줄줄이 출국 수속을 기다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 나는 출국 심사원이 말하는 출국 카드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리액션을 보였다. 그러자 그는 태국 입국 시 받은 출국 카드의 샘플을 보여주면서 이러한 카드를 제출하라고 말했다. 당황한 나머지 나는 옆의 줄에서 출국 심사를 기다리던 정원이에게 SOS를 요청했다. 그러자 정원이는 나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내가 태국 도착했을 때 말했었는데 이거(출국 카드) 나중에 한국 돌아올 때 꼭 필요하니깐 잃어버리지 않게 잘 보관하라고 했었잖아.”

 

 그러나 나는 지금도 정원이가 그런 말을 했던 게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추측이건대 방콕에 도착했을 당시, 지연된 비행기로 인한 짜증과 태국에 처음 닿았다는 설렘이 합쳐져 정원이의 공지를 귀담아서 듣지 않았던 것 같다. 이내 정원이는 서 있던 줄로부터 이탈해 출국 심사장의 입구를 지키던 승무원에게 가서 출국 카드 양식을 새로 받아왔다. 그러더니 나에게 다시 출국 카드를 작성해서 심사원에게 제출하라고 말했다. 만약, 정원이가 나보다 출국 심사를 먼저 마쳐서 이미 심사장을 빠져나간 뒤였다면 나는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했을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출국 심사를 마칠 수 있던 나는 심사장을 나오자마자 정원이에게 사과를 했다.

 

 “정원, 너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아 미안해. 앞으론 너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는 최영완이 될게.”

 

 그러나 정원이는 괜찮다고 했다. 오히려 파니니 레지던스 호텔에서 있었던 여권 해프닝과 방콕으로 올 때, 기내에서 잃어버린 정원이의 볼펜을 찾아 준 나의 전례를 들면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며 나의 태도를 포용해주었다.


집에 돌아와서 짐 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백팩 앞주머니에 있던 출국 카드

 

 이어 우리는 하루 내내 빗속에서 캐리어를 끌고 다니느라 땀에 젖은 몸을 씻기 위해서 수완나품 공항 내의 미라클 라운지로 갔다. 그곳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온 우리는 출출하게 허기진 배를 채우고자 푸드코트로 발걸음을 옮겨 똠얌꿍과 해물 볶음밥을 먹었다. 우리는 식사까지 마쳤음에도 수하물 수속을 빨리 마친 탓에 여전히 탑승까지의 시간이 꽤 남아있었다. 그래서 면세점을 둘러보면서 미처 다 사지 못했던 기념품을 구매하기로 했다. 나는 이번 여행을 떠날 수 있게 5일이라는 긴 휴가를 제공해준 생애 첫 직장에 감사하는 마음과 아직도 많이 부족한 나라는 막내 신입사원의 일솜씨를 크게 내색 없이 받아주시는 고마운 동료들에게 지금보다 더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마음을 함께 담아 선물할 초콜릿과 말린 망고를 한가득 샀다.


수완나품 공항에서 먹은 마지막 식사.

볶음밥은 너무나 맛있었지만 똠얌꿍이 적응되기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

 

 시간은 어느덧 1030분에 가까워져 있었다. 우리는 탑승장으로 발걸음을 옮겨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거짓말과 과장을 하나도 보태지 않고 나는 이번 여행이 꿈같았다고 말할 수 있다. 줄곧 말했듯이 우리는 우기인 시기에 태국에 왔지만 메인이 되는 일정을 소화할 때 단 한 번도 빗방울을 만나지 않았고, 일부러 계획하려고 해도 계획할 수 없는 기적적인 인연들도 많이 맺고 돌아왔다. 나의 인스타그램 속 태국 여행 게시글을 보고 좋아요를 눌러준 배우 김민교를 비롯하여 시암 앳 시암 호텔에서 만난 터키 청년들과 동갑내기 한국인 여직원, 또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대만 공군 팡야와 방콕에서의 일정을 깔끔하게 정리해 준 베드 박스 카오산 게스트하우스의 여직원과 그의 한국인 남자친구까지. 이 외에도 너무나 많은 인연들이 우리의 여행에 함께해 주었고 덕분에 다채롭게 워너원투어를 장식할 수 있었다. 진짜 꿈속에서도 이런 사람들을 만나서 이러한 에피소드를 만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번 여행은 꿈보다도 더 꿈같았.


내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파타야 시암 앳 시암 호텔 게시글에 '좋아요'를 눌러준 배우 김민교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나와 정원이는 빗방울이 맺힌 비행기 창문을 배경으로 네 장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각자 두 장의 사진을 나누어 갖기로 했다. 폴라로이드 사진이 갖고 있는 잔잔한 필름 감성과 사진 속으로 보이는 우리의 표정들을 보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군대에서 만난 선후임의 인연이라는 관계를 뛰어넘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청춘이라는 시기에 여행이라는 순간을 함께하며 평생의 안주거리를 만든 사이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그 안주거리도 평범한 여행이 아닌, 우리가 이루고자 했던 목적과 독특했던 기획들이 있었기 때문에 남들이 갖고 있는 여행 안주거리와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륙 전 기내에서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과 우리의 모든 여정을 함께한 <워너원투어> 깃발

 

S#39. 인천 공항

동이 트는 새벽, 어느덧 비행기는 한국의 영공에 진입했고 인천 도착을 얼마 남기지 않고 있었다.


 비행기는 6시간동안 하늘길을 날았지만, 도중에 시차가 적용되어 우리는 새벽 6시에 인천에 도착했다. 인천에 도착하고 나니 한국은 축구로 대동단결되어 있었다. 속출하는 기사들을 보니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피파 랭킹의 1위를 달리고 있는 독일을 2:0으로 이겼다고 한다. 그 역사적인 순간에 우리는 비행기의 안에 있어서 축구를 보며 열광하지 못했지만 아쉽지 않았다. 그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알 것이다. 방금 읽은 안주거리내용만 읽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아쉬운 인사를 나누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인천공항 리무진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온 나는 집에 오자마자 밀린 빨래를 돌렸고, 일요일 아침의 기상보다 귀찮은 여행 후의 짐 정리를 시작했다. 

 

S#-. 일상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내가 어제까지 아무리 꿈같았던 여행을 다녀왔다고 해도 신은 나에게 내일의 출근을 위해서 여행 후유증을 떨칠 수 있는 시간 따위를 주지 않는다.

 

 슬랙스 정장 바지와 파란색 셔츠, 그리고 까만 넥타이. 마지막으로 왼쪽 귀에 꽂는 무전기 이어폰까지.

 

 6일 만에 직장으로 복귀한 나는 동료들에게 면세점에서 샀던 선물을 건네며 고마움을 전했다. 동료들은 고맙다며 인증샷을 찍기도 했고 잘 먹었다는 메시지를 보내주기도 했다. 나는 고마워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이것이 부족한 나의 일솜씨에 대한 뇌물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처음 입사했을 때보다 주어진 업무에 더 성실하게 임할 수 있게 되었다.


담넌 사두억 수상시장에서 샀던 말린 호박을 다 먹고 인증샷을 보내주신 진료실의 새솔 선생님

 

 나는 오늘도 치과 데스크에 앉아서 내원하는 환자들의 예약 접수와 수납을 돕고, 일본인 환자들의 진료 통역을 이행하며 생애 첫 직장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이번 주가 지나면 워너원투어는 어느덧 한 달 전의 과거가 되고 만다. 그러나 몇 달, 아니 몇 년이 지나도 워너원투어는 나의 일상이 고단해질 때 피로회복제보다 더한 역할이 되어 주어 그 피로를 덜어줄 것이다.

 

 1생활관 영(0)완&정원(1), 그리고 영완(WAN)과 정원(ONE)이 원하던(WANNA) <WANNAONE TOUR>

 

 이 투어명을 기반으로 한 시즌2의 여행이 멀지 않은 시간 내에 다시 한 번 실행될 수 있기를 바라며 [방콕&파타야] 우리가 원하던 WANNAONE TOUR 포스트는 여기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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